우리는 진정으로 해방되었는가? [정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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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진정으로 해방되었는가?

2014.10.30


얼마 전에 아베 일본 총리가 파푸아뉴기니 북부 웨와크(Wewak) 소재 태평양전쟁 일본인 전사자 추모비를 참배한 기사가 사진과 함께 실린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 순간 머리에 떠오른 것은 “역시 아베로구나. 어렵사리 거기까지 갔으면 부근의 한국인 강제징용 전사자 추모비에 가보겠다는 생각을 왜 못했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한편 그것은 한동안 품어오던 생각을 확인한 계기도 되었습니다. 저는, 아베 총리는 예전 같으면 일본의 중급 무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라고 줄곧 생각해왔던 것입니다. 고급 무사나 쇼군(將軍)이 될 인물이었다면, 이랬건 저랬건, 전장에서 함께 싸우던 사람들의 영령에도 당연히 갔을 것으로 생각되니까요. 일본에도 이런 큰 인물들이 지배하던 시기가 있었을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지금의 일본 지도자들의 면모로 봐서는 우리의 대일관계가 매우 어려운 시기를 겪을 수밖에는 없다고 봅니다.

4천명으로 추산되는 이 영령들은 일제 하 지원병이란 명목으로 일본 대본영의 무모한 전쟁계획에 강제로 동원된 분들입니다. 이분들은 1943년 소위 ‘남방출정’으로 파푸아 뉴기니까지 갔다가 현지의 제반 악조건에 시달리다 종내에는 미군의 폭격에 사라져간 분들입니다. 제 삼촌도 그 일원으로 아이타페(Aitape)란 곳에서 산화하셨기에 저희 가족사의 일부로서 이런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 부대는 1942년 여름, 평양 사동의 보충대에 입대하여 이듬해 용산, 부산, 규수를 거쳐 팔라우에 도착, 약 2개월 간 정글 훈련을 마치고 그해 3월에 7일 간 험난한 항해 끝에 파푸아뉴기니 웨와크 인근의 어느 항구에 도착합니다.

대본영은 당시 연합함대사령부가 있는 트럭(Truk) 섬을 방위하기 위해 뉴브리틴 섬의 라바울을 확보해야 했었고, 라바울을 지키기 위해서는 뉴기니를 점령해야 했습니다. 일본 군부는 당시 이렇다 할 정보도 없이 낡은 지도 한 장에 의존하여 이 섬에 상륙을 시행한 것입니다. 포트 모레스비(Port Moresby)를 선점하기 위해 고도 4천 미터의 험준한 스탠리 산맥을 넘어야 했습니다. 인간의 접근을 불허하는 원시의 정글과 험악한 산맥이 이어지는 죽음의 길을 넘으면서 식량부족,  열대병, 혹한 등 온갖 악조건을 번갈아 견뎌내야 했고, 겨울에는 방한복 한 벌 없이 병사들 끼리 서고 껴안고 추위에 떨며 밤을 지새워야 했습니다. 말라리아와 영양실조로 병사의 절반이 환자가 될 수밖에 없는 극단의 상황이었지만 일본군은 이런 빈사상태의 중환자들을 사살하는 비인간적인 처분을 내립니다. 사지나 다름없는 전쟁터에 강제로 끌려가 처절하게 죽어간 우리 청년 4천 명이 결국 그 땅에서 사라지게 된 것이지요. 이런 생생한 이야기는 죽을 고비를 넘기고 살아 돌아오신 한 동료가 저희 가족에게 전해준 것입니다.

어이없이 돌아가신 비운의 영령을 포함한 우리 국민 2만 명이 지금 이른바 야스쿠니 신사란 곳에 합사(合祀)되어 있는 기막힌 사실에 대해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야 할까요? 이분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일본의 지배로부터 풀려나지 못 한 채 지내고 있는 것입니다.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의 힘겨운 활동에 떠밀려 우리 정부가 일본 정부에 이 영령들을 합사에서 제외시켜 달라고 요청했지만 일본 측은 시종 요지부동입니다. 강제 징용되었던 이분들을 야스쿠니 신사 전몰자 명단에서 제외하는 것은 소위 천황(天皇)과 신도(神道)에 대한 욕이 되기 때문에 불가하다는 것이 일본 측의 입장인 것입니다.

어찌 땅을 치고 통탄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들로서 천황과 신도는 중요하고, 어버이를 잃고 제사 날짜도 몰라서 몇 번이나 날을 바꾸어 영령을 위로해야 했던 자식들과 가족의 슬픔은 아랑곳하지 않는, 이런 미신에 가까운 사고에 빠져 있는 나라가 제대로 된 나라이며 정상적인 국가입니까? 이런 나라에 갇혀있는 2만의 우리 영령들이 해방되지 않았는데도 진정 일본으로부터 해방되었다고 할 수 있는지, 모두가 통렬하게 성찰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저는 일제에 강제로 끌려간 우리 국민의 영령이 해방되지 않고는 대한민국이 완전한 해방을 맞은 것이 아니라고 감히 주장합니다.

같은 곳에서 전사한 일본군 영령에는 참배하고 인근의 조선 징용병사 영령에는 참배치 않는 일본 정부입니다. 뒤틀린 역사로 인해 버림받고 오지에서 떠돌고 있는 수많은 젊은 영령은 누가 보살펴 주어야 합니까. 금년 봄 뒤늦게나마 우리 정부가 이 영령들을 위한 추모비를 설립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비슷한 시기에 건립된 아웅산 순국선열 추모비 제막식 행사에 보인  우리 국민의 관심에 비해 너무나 초라한 대우를 받은 것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라를 지키지 못한 탓으로 일제에 강제 징집되어, 그들의 전쟁에서 소리 없이 사라지신 분들을 이렇게 대하면서도 우리는 진정 떳떳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과거사 문제로 냉냉한 관계 속에서 우리 정부가 일본 측의 그릇된 태도를 바로잡으려고 노력해오고 있음은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인류보편의 인권 문제로 부각된 이른바 위안부 문제, 즉 전시 성노예 문제 못지않게, 우리 정부는 진정한 해방을 위해 일제에 강제 징용되어 산화한 우리 영령들을 그들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한 노력을 끈질기게 해나가야 합니다. A급 전범이 합사돼 있다는 이유로 일본 정부 관계자들의 야스쿠니 신사참배는 극렬하게 반대하면서, 자기들을 사지에 몰아넣은 전범들과 같이 합사돼 있는 우리 젊은 영령들을 모셔올 생각은 왜 하지 못할까요? 우리 정부는 지금이라도 이 문제를 과거사 문제의 핵심 사안으로 다루어야 합니다. 우리의 해방을 온전하게 하는 일만큼 중요한 일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우리 민족에게 말로 다 못할 온갖 해악을 끼친 일본이 오늘날 그들이 말하는 대로 정상국가가 되려면 '헌법 개정'이니 '자위대'니 하는 것들에 앞서 그들이 저지른 범죄 행위로 인해 고통 받는 사람들을 구제하는 일부터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사죄’니, ‘통석(痛惜)의 념’이니 하는 말로 백번 사과를 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지금 같은 무성의한 태도로 볼 때 일본은 여전히 과거의 죄업을 반성한 것으로 볼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여전히 이웃을 존중하지 않으면서, 독도 영유권이란 무도한 주장을 하고,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도 한 때의 협정 하나로 다 끝난 일이라고 시침을 떼는가 하면, 강탈해 간 수많은 우리 문화재를 우리에게 돌려줄 생각은 털끝만큼도 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정부는 지역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이웃과 우호협력 관계를 추구해나가는 한편, 과거를 바로 잡기 위해 진지하게 노력해야 합니다. 과거를 잊고자 하는 이웃을 어찌 믿고 같이 손잡고 나갈 수 있겠습니까? 이웃 일본이 국제적 양심에 비추어 어긋나지 않는 진정한 정상국가로 돌아와야만 선린우호는 물론 미래를 향한 진정한 협력을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5천 만 중의 한 국민으로서 또 제국주의 전쟁에서 처참하게 스러지신 분들의 가족으로서 저는, 파푸아뉴기니 웨와크의 4천, 나아가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돼 있는 2만의 우리 젊은 영령들을 일제로부터 해방시켜 주기 위한 노력을 정부에 강력하게 촉구하는 바입니다. 국민행복 시대에, 쉬운 일에는 생색을 내고 어려운 일은 외면하면서 국민을 제대로 돌보지 않는 그런 정부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필자소개

정달호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후 직업 외교관으로 일했으며 주 이집트 대사를 역임했다. 현재 제주 소재 유엔국제훈련센터(UNITAR)소장으로 재직 중이며, 제주특별자치도의 외국인자문위원회 위원장으로 외국인거주환경개선을 위해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한라산 자락에 텃밭과 나무를 가꾸며 자연의 품에서 생활의 묘미를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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