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당한 이유는 없다 - 김세정 런던 GRM Law 변호사

 

합당한 이유는 없다

 

김세정 런던 GRM Law 변호사

18살 짜리 청년의 두개골에 망치가 박혔다. 잠자던 중이었고, 이유는, 동성애자라는 것이었다.

이 청년을 가격한 것은 아파트를 나누어 쓰던 21살짜리 청년이었다.


이 사건을 다룬 언론 보도들은 범인이 가톨릭 집안 출신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데, 개신교가 더 엄격한 시각을 고수하고 있는 듯한 한국에서와는 달리 영국에서는 가톨릭 신자라고 하면 그 사고가 훨씬 더 완고하고 보수적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이곳이 가톨릭과 개신교가 대판 싸우고 서로 대박 많이 죽인 후 결국 개신교(성공회)가 국교가 된 나라라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만서도.


잠깐 이 부분에 관해 살펴보자면, 영국에서 성공회가 국교가 된 계기는 그 유명한 헨리 8세와 앤 볼린의 연애라고 할 수 있겠다.

 

당시 헨리 8세는 유부남이었는데, 앤과 합법적인 결혼을 하고 싶어했고, 그러기 위하여 잠깐 동안 형수이기도 했던(형인 아서가 결혼한 지 20주 만에 15살의 나이로 죽는 바람에) 첫번째 부인(유명한 이야기지만, 헨리 8세는 부인이 총 6명이었다)인 에스파냐 왕국의 공주 캐서린과의 결혼을 무효로 만들어 달라는 요청을 교황으로부터 거절당하자, 에라, 바티칸의 그늘 아래서 벗어나 걍 자기가 영국국교회를 만들어 버리고 수장이 되어 버렸다(1534년 수장령 Acts of Supremacy) .

 

이후 영국에서는 왕이나 여왕은 가톨릭 교도가 될 수 없음은 물론, 가톨릭 교도와는 결혼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을 아예 법제화 하였더랬다(1770년의 왕위계승법 Act of Settlement). 아니 뭐 결혼하는 것 자체를 말리지는 않는데, 가톨릭 교도와 결혼하는 경우 왕위 계승과 관련하여서는 죽은 걸로 간주되어 자동적으로 그 지위를 박탈당하는 것이니, 그게 그거다.

 

사랑 때문에 지위를 버리는 인간이라는 건 그다지 많지 않다. 재미있는 것은 가톨릭 교도 이외의 다른 종교를 가진 자에게는 이러한 제한이 적용되지 않았다는 점인데, 사실 이는 다른 종교에 대한 포용력이 있었다기보다는 단지 기독교 이외의 종교를 가진 자가 왕이나 여왕의 배우자가 된다는 것을 상상도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이것은 매우 심각한 차별이다. 영국의 개별 차별금지법들을 통합한 평등법 Equality Act 2010은 연령, 장애, 성전환, 혼인 상태, 인종, 종교 또는 신념, 성별, 성적 지향성을 이유로 차별을 하면 안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도 국가 및 왕실이 솔선하여 종교를 사유로 한 차별을 하고 있었던 셈이다. 하여 드디어 2013년 왕위계승법 Succession to the Crown Act 2013에 의하여 왕/ 여왕의 배우자가 가톨릭 교도이어서는 안된다는 규정이 폐지되었다. 다만 여전히 왕이나 여왕은 가톨릭으로 개종할 수는 없다. 영국국교회의 수장이니까. 아니 뭐 이 이야기가 본문이 아닌데 길어졌다. 죄송. 하지만 사실은 이런 이야기가 더 재밌지 않나?

 

하여간, 다시 사건으로 돌아가 보면, 피해자는 머리뼈가 함몰되었고, 죽다가 살아났으며, 현재 운동장애와 간질 등의 후유증이 남았다. 사진을 보라. 뭘 잘못한 것도 아니면서 저런 꼴을 당한 청년이, 그래도 웃는 것이 참 참혹하게 느껴진다.

 

가해자에게는 최종적으로 살인미수가 인정되어 14년간 복역할 것을 선고받았다. 다만, 범행 시 정신적인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인정되어 감옥이 아닌 정신병원에서 수감 생활을 시작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오랫동안 차별받는 그룹의 일원이었던 젊디젊은 가톨릭 교도 청년이, 성적 지향성만을 이유로 같은 집에 살던 또래 청년의 머리를 망치로 박살 내려고 하였다. 사실, 이것이 과연 정상적인 사람의 소행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한국사회의 경우 요 몇 년간(어쩌면 그 전에도 이런 일은 늘상 벌어지고 있었는데 SNS의 발달로 인하여 더 쉽게 눈에 띄는 것일 수도 있겠으나) SNS를 통하여 접하게 되는 여러 종류의 차별적인 언사가 줄어들기는커녕 점점 더 빈번해지고 그 수위를 높여 가더니, 이제는 그 공격성 때문에 흠칫 놀랄 지경이 되었다. 때로는 그 폭력성의 정도가 참으로 과도하여, 저 증오를 뒤집어 쓴 사람은 정신적으로 매우 상처를 받겠구나, 하고 생각하게 된다. 글자에는 손과 발이 안 달려 있으니 망치를 들 수 없을 뿐.

 


비록 아직까지는 이 사건과 같은 정도로 끔찍한 차별 범죄까지는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만, 이와 같은 언어 폭력이 향후 행동력까지 갖추게 될 것인가? 일베 회원들의 광화문 집회가 집중적인 주목을 받은 주된 이유는 그 동안 온라인 상에서만 모여 있던 개개인이 모임을 형성하여 실제 세상으로 나와 목소리를 냈다는 데 있다고 할 것이다.


차별은 잘못된-옳지 않은 신념이다. 이를 이유로 폭력적 언사를 구사하는 것은 도저히 정상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이와 같은 언사가 더 나아가 폭력적 행동으로 귀결되기 전에, 이를 막기 위한 조치가 취해져야 하는 것은 아닌가. 현재 개별 법률에서 개별적인 차별 행위들을 금지하고는 있지만, 실효성 있는 통합 차별금 지법은 보수적인 기독교 단체들 등의 반대로 인하여 제정되지 못하고 있다.


피해자인 헌틀리의 가족은, 헌틀리는 죽을 때까지 고통받을 것이라며 누구도 어떤 이유로든 이런 사악한 방법으로 끔찍한 공격을 당할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그것이 게이건, 여자건, 가톨릭 교도이건, 장애인이건, 동남아 출신이건, 전라도 사람이건, 그와 같은 사유만을 이유로 한 언어적 신체적 공격은 용납되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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