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베이 성당의 바티칸 깃발 [허영섭]

카테고리 없음|2018. 11. 1. 10:21



타이베이 성당의 바티칸 깃발 [허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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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베이 성당의 바티칸 깃발

2018.11.01

성당 입구에서 방문객을 맞은 것은 프란치스코 교황 얼굴이 그려진 미사 안내판이었다. 안내판의 교황은 너그러운 눈빛으로 손을 흔들고 있었다. ‘Come and See’라는 안내판의 영어 글귀처럼 천주교 신자만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향한 축복의 손길일 터다.
타이베이 신생남로에 위치한 천주교 성가당(聖家堂). 일대 성당 중에서는 가장 규모가 크다는 이 성당을 찾은 것은 지난달 27일. 타이베이 한국대표부 주최의 한국-대만 인문교류대회 참석차 타이베이를 방문한 길에 성당 분위기가 궁금해졌던 때문이다. 대만과 바티칸과의 관계가 끊어질지도 모른다는 전망이 제기되는 요즘이다. 그런데, 사진일망정 입구에서부터 교황의 영접을 받게 된 것은 뜻밖이었다.

성당 안에서는 드문드문 신자들이 앉아 기도를 드리고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조용한 편이었다. 정식 미사가 없는 토요일인 때문이었을 것이다. 마침 강단 앞에서는 결혼식이 열리고 있었다. 하객이라고 해야 기껏 열 명 남짓에 지나지 않을 만큼 조촐한 예식이다. 신랑과 신부의 차림 자체가 허름했다. 예식이 끝나고 신랑이 신부 이마에 입맞춤하는 장면까지 지켜보지 않았다면 결혼식인지도 모르고 지나칠 뻔했다.
타이베이에서는 가장 대표적인 성당인데도 굳이 격식을 차리지 않는 분위기가 느껴진다. 성당을 둘러보다가 마주친 아르투로 비예하스 신부부터가 소탈한 성격이다. 이미 20년 전 주임신부를 지낸 원로 신부인데도 처음 대하는 외국인 방문객에게 꾸밈이 없다.

그런 가운데서도 눈에 두드러지는 것이 있었다. 설교단 뒤쪽에 세워져 있는 청천백일기의 모습이다. 특정 종교를 국교로 삼는 경우가 아니라면 있을 법한 일이 아닌데도 설교단을 사이에 두고 맞은편에 놓인 바티칸 국기와 하나의 쌍을 이루고 있었다. 국가적 차원에서 교황청과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대만의 절실한 현실을 보여주는 듯했다. 물론 이 성당에서만 볼 수 있는 광경이라고 한다.
최근 교황청이 중국 정부와 주교 서품에 관해 합의를 이루는 등 관계가 급속히 가까워지고 있다는 점에서 대만 정부로서는 위기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천주교 신자인 천젠런(陳建仁) 부총통을 교황청에 파견해 프란치스코 교황을 초청한다는 의사를 전달하기도 했지만 돌아온 답변은 실망적이다. “검토해 보겠다”는 의례적인 수준을 넘어 “교황께서는 타이베이 방문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는 직설적인 답변이었다.

중국의 압력으로 국제무대에서 입지가 자꾸 위축되고 있는 대만으로서는 조바심을 느끼기 마련이다. 전임 마잉지우(馬英九) 총통 때만 해도 모두 22개이던 수교국이 차이잉원(蔡英文) 총통 취임 이래 2년 반이 지나는 동안 17개국으로 줄어든 상태다. 이제 교황청도 그 사정권에 들어간 듯한 조짐이다. 교황청의 대만 방문 거절 답변에서도 그런 기미가 엿보인다.
그렇다고 대만 천주교계로서는 교황의 방문을 거듭 요청할 만큼 교세가 그렇게 큰 것도 아니다. 대만 전체로 따져 가톨릭 교도가 20만 명 안팎에 지나지 않는다. 전국에서 규모가 큰 편이라는 이 타이베이 성가당만 해도 일요 미사에 참석하는 고정 신자가 2000명 정도에 불과하다. 가톨릭 신자가 1,200만 명에 이르는 중국에 비한다면 교황청의 관심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다. 이중 700만 명으로 추산되는 지하교회 신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도 중국과의 관계 개선이 필요하다는 게 교황청의 입장이다.

대만 정부로서는 유럽 유일의 교두보인 교황청과의 관계마저 끊어지면 국제무대에서 사실상 고립되는 셈이나 마찬가지다. 중국의 개입으로 종교적 구심점인 교황청조차 대만으로부터 고개를 돌리려 한다는 사실이 야속할 법하다.
가톨릭 교도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장제스(蔣介石)가 마오쩌둥(毛澤東)과의 국공내전에서 패배해 대륙에서 쫓겨나올 때 함께 옮겨온 신자들이 가톨릭계를 이끌어 왔다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이 성당의 경우에도 국민당 패퇴 직후인 1952년 신자들의 미사가 처음 시작된 이래 몇 차례 예배처를 옮겨 지금 자리에서 성당 건축이 시작된 것이 1962년에 들어서라고 한다.

이러한 기억을 떠올린다면 청천백일기가 설교단 위에 자리 잡고 있는 의미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대만 외교부 차원에서도 외교사절을 비롯해 미사를 드리려는 외국 손님들을 안내하는 데가 또한 이 성당이라고 한다. 일요일이면 영어와 일본어, 인도네시아어로 미사가 열리는 게 그런 이유다. 내국인 신자들을 위해서도 표준어 외에 남방 사투리인 민남어(閩南語)로 별도 미사가 진행된다.
양안관계의 쓰라린 기억을 간직한 교인들에게는 대만을 홀대하는 듯한 교황청의 접근 방식에 불만을 느낄 만도 하다. 하지만 성당 안내원은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도 다 생각이 있으실 것”이라며 애써 속마음을 감추려는 기색이다.

아마 교황청이 실제로 대만과 단교하고 중국과 수교하더라도 청천백일기와 교황청 깃발은 지금 자리를 그대로 지킬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안내판의 교황 사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교황께서 부디 대만을 잊지 말아 달라”는 교도들의 염원을 느낄 수 있었다. 성당을 돌아나오면서 그래도 마음 한구석으로는 어딘지 허전했다. 영성을 추구하는 종교가 세속의 정치와는 어떻게 달라야 하는 것인지, 교황의 권위는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인지 머릿속으로 자꾸만 되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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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허영섭

이데일리 논설실장. 전경련 근무. 경향신문과 한국일보에서 논설위원 역임. 미국 인디애나대학 저널리즘스쿨 방문연구원. '일본, 조선총독부를 세우다, '대만, 어디에 있는가', '영원한 도전자 정주영'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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