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일기를 쓰는 까닭 [황경춘]

카테고리 없음|2018. 7. 9. 13:10


 다시 일기를 쓰는 까닭 [황경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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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일기를 쓰는 까닭

2018.07.09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수적(数的)으로 우세한 적군과의 생사를 건 싸움 중에서도 일기를 적어 귀중한 역사 자료를 후세에 남겼습니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해인 1592년 1월 1일부터 그가 전사하기 전전날인 1598년 11월 17일까지의 이 기록은 참으로 놀랄 만한 값진 사료입니다.

충무공을 극진히 승배하는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은 임기동안 거의 매년 4월 28일 충무공 탄생일에는 충청남도 아산에 있는 현충사를 참배하였습니다. 어느 해 외신기자로서 박 전 대통령의 현충사 참배 때 수행한 필자는, 현충사가 소장한 충무공의 ‘난중일기’를 보고 크게 감탄하였습니다.

그 어려운 시기에,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전황(戦況)은 물론이고 그 당시의 정치정세와 민심 등을 자세히 기술하여 후세에 남겼다는 현충사 직원의 설명을 듣고, 그의 지혜에 탄복하였습니다. 더욱이 지금같이 편리한 필기도구도 없는 그 시대에 필묵(筆墨)으로 이 긴 기록을 남겼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이웃 나라의 현대문학 대가의 한 사람 나가이 가후(永井荷風 1879~1959)도 죽기 전날까지의 일기를 후세에 남겨, 일기의 문학적 가치뿐 아니라 그 작품의 귀중한 역사적 가치 때문에 일본문단에서는 그의 대표작으로 지금도 칭송받고 있습니다.

그의 일기는 동양의 작은 섬나라가 제1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한 연합국 일원으로 세계 5대 열강(列強)의 대열에 진출하여, 자기 나라 역사상 최고의 부와 자유를 자랑하다가, 제국주의 팽창의 망상으로 미국이 주도한 연합국과의 오랜 전쟁 끝에 비참한 패전을 겪어 새로운 일본으로 재탄생하는 과정을 냉정한 문학가의 눈을 통해 소상하게 기술한 것입니다. 그의 일기는 사후 단행본으로도 나오고 그의 문학전집에 수록되기도 하여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선인들의 훌륭한 발자취에 영향을 받아서가 아니라, 전연 다른 뜻으로 저는 한동안 중단했던 일기쓰기를 2년 전에 다시 시작했습니다. 순전히 개인적 동기에서였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3학년 적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일제강점기였던 당시에는 학년별 혹은 직업별로 수많은 종류의 일기장이 연말 서점을 장식했습니다. 담임선생의 권유로 아버님은 예쁜 꽃무늬가 표지에 찍혀 있는 초등학교 저학년용 일기장을 사주셨습니다.

그때부터 시작한 일기쓰기는 일본이 패전하던 해 3월, 제가 일본군에 징집 입대할 때까지 계속됐습니다. 광복으로 고국에 돌아온 뒤 이 일기쓰기 습관은 언제부터인가 회복되었다가 한국동란의 혼란 중에 다시 중단되었습니다. 1954년 10월 피란 수도 부산에서 서울로 환도하여 안정을 되찾으면서 일기쓰기는 다시 시작됐습니다.

1961년의 5·16 군사혁명에 이은 1972년 10월의 유신헌법 공포 이후의 국내정치 풍토는 ‘보도의 자유’를 생명으로 하는 언론계에 큰 고통을 안겼습니다. 특히 외신에 종사하는 우리로서는 정확한 정보의 신속한 전달을 생명으로 여기는 본사와 이를 저지하려는 군사정부와의 사이에서 말 못할 어려움을 겪는 수가 많았습니다. 외신기자 개인의 행동에 정보 당국자의 감시가 심해지고 사생활에도 많은 정신적 제약이 뒤따랐습니다.

사무실에 비치하던 취재계획 등도 남겨두기 힘든 환경에서 오랫동안 계속해 오던 개인 일기쓰기도 중단해야 되겠다고 생각한 것이 1970년대 중반 어느 때였습니다. 그때까지의 개인 기록을 전부 없앤 것은 안타까웠습니다. 그 뒤 민주화가 된 후에 단속적으로 수첩이나 공책에 생활 메모를 쓰기는 했지만, 이번처럼 자신에게 ‘의무적’으로 일기를 쓴다고 인식시키고 서점에서 A5판 대학노트를 사서 정식으로 일기쓰기를 시작한 것은 2016년 8월 27일 토요일이었습니다.

부끄러운 개인적 이야기입니다만, 일기를 다시 쓰기 시작한 의도는 세 가지였습니다. 컴퓨터에 의존하는 바람에 자꾸만 잊혀가는 한자(漢字)를 되도록 사용하자, 늦깎이로 시작한 우리말 글쓰기에 도움을 주자, 그리고 천생의 악필을 조금이라도 고쳐 보자는 니름대로의 목표를 세웠습니다. 그중 특히 어렵게 익힌 한자를 모르는 사이 조금씩 잊어간다는 것은 정말 안타까웠습니다.

그동안 짧은 해외여행을 두 번 다녀왔습니다. 객지에서도 잠자리에 들기 전, 이 일기쓰기 습관은 계속했습니다. 악필로 제가 쓴 글을 해독하기 어려운 것도 아직 많이 발견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고단할 때도 한 번 빠짐없이 계속하는 이 습관을 이제는 죽을 때까지 계속할 생각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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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황경춘

일본 주오(中央)대 법과 중퇴
AP통신 서울지국 특파원, 지국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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