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이 대만에 다시 주둔하게 될까 [허영섭]


미군이 대만에 다시 주둔하게 될까 [허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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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이 대만에 다시 주둔하게 될까

2018.06.11

대만에서 미국 대사관 역할을 수행하는 미국재대협회(美國在台協會, AIT) 신축 청사가 내일 준공식을 갖는다. 2009년 공사가 시작된 이래 9년 만에 타이베이 북부 네이후(內湖) 교외 지역에 새 청사가 공식 문을 열게 되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사이의 싱가포르 정상회담이 같은 날짜로 잡히는 바람에 준공식 일정이 다소 늦춰질 것이라는 추측도 없지 않았으나 결국 당초 예정대로 행사가 진행되도록 결정됐다.

관심을 끄는 것은 이 행사가 미국-대만 관계의 새로운 이정표를 보여줄 것이라는 점이다. 진작부터 존 볼턴 안보보좌관의 참석 가능성이 거론됐을 만큼 미국의 획기적인 대만 정책 전환을 예고하고 있었다. 중국의 거센 반발을 무릅쓰면서까지 볼턴과 같은 최고위급 인사를 공식 파견한다는 것만으로도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볼턴 보좌관이 싱가포르 정상회담에 수행토록 돼있어 이번 행사에는 참석하지 못하게 됐다. 그 대신 트럼프 대통령의 장남인 도널드 주니어가 참석할 것이라는 얘기가 나돌고 있다. 사실 여부는 내일이면 가려지겠지만 미국의 대만 정책이 강화될 것이라는 기류가 느껴지는 것만은 틀림없다.

새 청사를 미군 해병대 병력이 지키도록 ‘해병대의 집(Marine House)’ 공간이 마련됐다는 사실도 마찬가지다. 설계 의도대로 해병대 병력이 파견된다면 1979년 미·중 수교가 이뤄지면서 철수한 대만주둔 병력이 39년 만에 다시 진주하게 되는 셈이다. 공간 배치상 기껏 10명 안팎에 불과하겠지만 ‘하나의 중국’을 내세우는 중국과의 관계를 감안한다면 분명히 ‘레드 라인’을 넘어서는 조치다. 물론 실제로 병력 배치까지 이르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청사 신축작업이 버락 오바마 대통령 때 시작됐다는 점에서 현 트럼프 행정부의 의중이 반영된 것도 아니다.

그러나 최근 미국과 중국의 외교·군사적 마찰이 전방위적으로 확대되는 단계여서 이 신청사가 양국 갈등에 기름을 끼얹는 요인이 될 가능성은 다분하다. 미국에서 대만과의 고위급 교류를 확대하는 대만여행법이 지난 3월 시행에 들어간 뒤끝이란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중국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남중국해에서 미국 군함의 ‘자유 통행권’ 작전이 수시로 진행되고 있으며, 심지어 대만의 연례적인 한광(漢光) 군사훈련에 미군이 참여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현재 미·중 양국이 서로 북한 핵문제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어 양안관련 갈등이 상대적으로 덜 부각되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배경에는 볼턴 안보보좌관의 타협 없는 대(對)중국 입장이 작용하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유엔대사를 역임한 그는 중국이 요구하는 ‘하나의 중국’ 원칙에 매달리지 말고 대만과 복교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내세웠던 강경파다. 그가 친(親)대만 인사로 비치는 이유이기도 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으로부터 축하 전화를 받았다는 사실을 트위터로 전하면서 중국의 반발을 의식하면서까지 ‘대만 총통(President of Taiwan)’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데도 볼턴의 조언이 뒷받침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주목되는 것은 이러한 논의가 주한미군 문제로까지 번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북·미정상회담 추진 과정에서 주한미군 철수 문제가 불거졌고, “아무데도 가지 않는다”는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의 언급에도 불구하고 불씨는 여전하다. 더욱이 장차 남북한 사이에 한반도 평화협정이 체결된다면 변화는 불가피하다. 매티스 장관도 “지금으로부터 5년 후, 10년 후에 변화가 생긴다면 검토해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여지를 남기고 있다. 미국 외교계의 대부인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도 여전히 주한미군 철수를 권유하는 입장이다.

만약 주한미군이 철수한다면 동북아의 최전방 교두보로서 대만이 또 다른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오키나와에 주둔하는 주일미군 일부를 대만으로 돌려야 한다”는 과거 볼턴 안보보좌관의 제안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일본 일각에서도 볼턴의 주장을 인용해 주한미군의 대만 재배치 가능성이 제시된다. 이런 주장이 아니라도 중국의 확장정책에 따라 미·중의 긴장관계가 고조될수록 대만의 전략적인 위상도 그만큼 높아지기 마련이다. 이번 새 청사에서 해병대 경비 의중을 드러낸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물론 미국 내에서도 트럼프 행정부의 급속한 양안정책 변화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이 전혀 없지는 않다. 중국과의 갈등을 일부러 불러올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이러한 여러 논란을 떠나서도 내일 준공되는 미국재대협회 신청사는 6.5㏊의 넓은 부지에 지어져 비좁았던 타이베이 신이루(信義路) 기존 청사의 불편함을 덜어주게 된다. 5층 규모의 보루식 건물로, 현재 대만에 거주하는 7만9,000명 미국 시민들의 이익을 보호하는 데도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게 됐다. 이전작업이 모두 끝나고 정상 업무가 시작되는 것은 오는 9월께나 가능하다고 한다. 그러나 미국이 2015년 쿠바와 관계정상화를 이룸에 따라 아직 국교를 맺지 않은 나라가 북한, 이란, 부탄, 대만 등에 불과하지만 그중에서도 대만을 대하는 각별한 의지를 확인하게 된다. 여기에 북한과의 관계도 조속히 정상화될 수 있을지 지켜보고자 한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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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허영섭

이데일리 논설실장. 전경련 근무. 경향신문과 한국일보에서 논설위원 역임. 미국 인디애나대학 저널리즘스쿨 방문연구원. '일본, 조선총독부를 세우다, '대만, 어디에 있는가', '영원한 도전자 정주영'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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