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反)적자생존 [신현덕]


반(反)적자생존 [신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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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反)적자생존

2018.04.06

지난달부터 기온이 크게 올라 화단을 손봤습니다. 팬지를 한 판 사다가 양지바른 곳에 먼저 심었고, 튤립 구근 몇 개를 화분에 묻었습니다. 한편에는 상추와 프리지아와 봉선화 씨를 각각 뿌렸습니다. 코스모스와 분꽃은 씨 뿌릴 때를 기다립니다.

팬지가 처음에는 추위 때문에 애처로워 보이더니, 제법 화사한 자태를 뽐냅니다. 노랑, 보라색 꽃을 심었는데 정말 멋집니다. 벌써 포기가 벌었고, 피어날 봉오리도 늘었습니다. 아침에 물을 주러 나가면 은은한 향기를 풍깁니다. 낮에는 벌도 와서 날아다닙니다.

튤립은 빨간 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일찍 핀 포기는 꽃잎이 지기 시작했고, 생육이 조금 늦겠다고 생각했던 것이 막 꽃잎을 열었습니다. 꽃을 사진 찍어, 지인에게 전송했더니, “예쁜 입술 같다”는 평을 보내왔습니다. 암스테르담을 방문했을 때, 긴 제방 아래 풍차 옆으로 펼쳐진 넓은 면적에 놀라 입이 벌어졌습니다. 지평선이 보일 만큼의 땅에 크레파스로 그린 듯 빨강 노랑 보라 흰색 꽃이 어우러져 자연의 카펫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너무 광활해 기가 질릴 정도였지, 하나하나가 아름답다는 느낌은 없었습니다. 화단에 핀 튤립은 다릅니다. 봉오리 하나하나가 우아하고 해맑습니다.

청치마 상추씨를 종묘상에서 샀습니다. 단 10그램뿐인데, 좁은 화단에 뿌리기에 충분했습니다. 다만 씨가 워낙 작고 가벼워 뿌리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준비 작업으로 3월 초순에 퇴비를 사서 화단에 뿌렸고, 삽으로 흙을 파 엎었습니다. 객토는 못할망정 흙이라도 깊이 팔 요량으로 삽을 깊이깊이 박아 흙을 뒤집었습니다. 어깨가 뻐근하도록 땅을 파고 또 팠습니다. 같은 자리에 3번이나 상추를 심었으니 해거리를 할까봐 정성을 쏟은 셈입니다. 고랑을 파고, 10㎝가량 높여 이랑을 만들었습니다. 작지만 이랑 모양만은 제법 그럴듯합니다.

며칠 동안 물을 주었더니 뭉텅이뭉텅이로 새싹이 돋아납니다. 이번 파종이 네 번째로, 숙달될 만도 한데 아직도 서툴기는 전과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이는 너무 많이 뿌렸다고 하고, 어떤 이는 어설픈 농사꾼이 망쳤다고 아예 놀리기까지 합니다. 제가 봐도 엉터리 농사꾼인 것은 확실합니다.

잎이 다 크기도 전인데, 벌써 어린싹을 솎아 먹을 생각에 입맛을 다십니다. 어린 싹을 솎아 뿌리를 잘라내고, 맑은 물에 깨끗이 씻어서, 참기름을 한 방울 떨어뜨리고 된장찌개에 비벼 먹으면 어느 것보다 향기롭습니다.

지난해 상추를 솎다가 적자생존을 뒤집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솎을 때는 언제나 잘 자란 상추를 먼저 뽑았습니다. 미처 다 자라지 않은 것은 뽑아야 먹을 것도 없습니다. 당연히 뭉텅이 중에 가장 실한 것을 먼저 뽑고, 덜 자란 것은 더 때를 기다렸습니다.

반(反)적자생존입니다. 화단에 적응하여 잘 자란 놈이 먼저 뽑히는 화(?)를 당합니다. 다윈이나 스펜서가 보면 깜짝 놀랄 일이겠지요.  적응 못해 비실거리는 포기는 뒤에 남아 씨까지 받았습니다.

자연이나 인간사나 같은가요? 최근 지난, 지지난 정부에 잘 적응했던 인사들만 쏙쏙 뽑혀 나가는 것을 보며 상추밭의 반적자생존을 생각합니다. 어린 상추처럼 웃자라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기우이겠지만, 이번 정부에 잘 적응한 인사들도 차기 정부에서 또, 먼저 솎아지는 일이 반복될까 걱정됩니다. 모든 공복(公僕)은 오로지 국민을 받들고, 국민의 뜻에 따라, 원칙과 순리로 일을 처리해야만 애꿎게 뽑히지 않겠지요.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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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신현덕

서울대학교, 서독 Georg-August-Universitaet, 한양대학교 행정대학원, 몽골 국립아카데미에서 수업. 몽골에서 한국인 최초로 박사학위 방어. 국민일보 국제문제대기자, 한국산업기술대학교 교수, 경인방송 사장 역임. 현재는 국민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서독은 독일보다 더 크다, 아내를 빌려 주는 나라, 몽골 풍속기, 몽골, 가장 간편한 글쓰기 등의 저서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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