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문학 여행’을 찾아서 [임철순]


‘겨울 문학 여행’을 찾아서 [임철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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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문학 여행’을 찾아서

2018.02.14

“눈이 녹으면 뭐가 되냐고 선생님이 물으셨다. 다들 물이 된다고 했다. 소년은 봄이 된다고 했다.” 며칠 전 카톡으로 받은 글입니다. 

다른 카톡방에 글을 퍼뜨리면서 장난기가 도져 이 (훌륭한) 소년이 바로 임 머시기라고 덧붙였더니 금세 소년 소녀로 돌아간 사람들이 댓글을 보내왔습니다. 눈[雪]을 눈[目]으로 받아들여 눈이 녹으면 잔혹영화를 많이 보아온 소년은 시각장애인이 된다고 했고, 산골 대자연에서 살아온 소녀는 눈이 녹으면 꽃이 핀다고 했고, 올림픽만 보며 뒹군다는 소녀는 눈이 녹으면 평창올림픽이 망한다고 걱정했습니다. 

그렇게 댓글을 주고받으면서 겨울을 생각했습니다. 겨울을 모르면 봄도 잘 모릅니다. 중국 남조 양(梁)의 주흥사(周興嗣·470~521)가 지은 천자문에 봄 춘(春) 자가 없는 것은 그 지역이 겨울이 없는 곳이었기 때문이라지요? 봄은 겨울의 시련과 고난을 거친 뒤에 맞는 계절입니다. 寒徹骨 撲鼻香(한철골 박비향), 매화는 뼈에 사무치는 추위를 겪어야 비로소 코를 찌르는 향기를 얻게 됩니다. 

겨울과 밤, 비올 때가 책 읽기에 적당하다는 讀書三餘(독서삼여)도 생각했습니다. ‘독서가 그러면 문학도 그렇겠지’ 하다가 국립한글박물관이 개최 중인 ‘겨울 문학 여행’ 특별전이 궁금해서 찾아갔습니다. 

1월 29일부터 3월 18일까지 열리는 ‘겨울 문학 여행’은 역시 눈 여행이었습니다. 눈이 없는 겨울은 겨울 같지 않습니다. 한글박물관이 평창 동계올림픽을 기념해 기획한 행사는 동계올림픽을 개최했거나 개최할 10개 언어권 13개국의 문학 작품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132점을 비롯해 총 454점의 겨울문학을 한자리에 모은 기획입니다. 

겨울과 눈이라면 떠올릴 수 있는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의 ‘설국’이나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 유종원(柳宗元)의 한시 ‘강설(江雪)’, 백석(白石)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등을 요약본 발췌본 등으로 선보이고 있었습니다. 평창올림픽에 맞춘 행사답게 평창 출신인 이효석의 소설 ‘성수부(聖樹賦)’와 ‘벽공무한(碧空無限)’은 특히 눈에 잘 띄게 배치돼 있었습니다. 고난과 인내, 새로운 희망을 되새기게 하는 작품들을 공들여 모은 전시입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전시공간이 작아 아기자기하다기보다 지나치게 오밀조밀하고 군색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셋방살이하는 집의 옴치고 뛰기 어려운 부엌이 연상되기도 했습니다. 좁은 공간을 효율적으로 잘 활용하고 있다고 오히려 긍정적으로 평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작품 선정에도 이의가 제기될 수 있습니다. 내가 다 아는 건 아니며 내가 표준일 수도 없지만, 당연히 낄 법한 작품이 빠져 아쉬웠습니다. 문학인과 번역자, 주한 7개국 대사관의 자문과 추천을 거쳐 작품을 선정했다는데 이게 최선일까 하는 의문이 생겼습니다. 푸슈킨의 소설 ‘눈보라’는 눈 때문에 일어난 일을 다룬 작품입니다. 그러나 ‘러시아 문학의 아버지’라는 그의 위상에도 불구하고 목록에 없었습니다. 주제나 내용이 겨울과 멀지만 눈이나 겨울이라는 말이 나온다는 이유로 선정된 경우도 많았습니다. 

번역에서도 아쉬운 게 있었습니다. 많이 알려진 시라면 시를 줄줄 외우는 독자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친숙하지 않은 번역이 눈에 띄었습니다. 기존 번역이 잘못된 것이어서 바로잡은 거라면 모르겠으나 그것도 아닌데 우리말의 멋과 맛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번역인 경우 생소하고 거부감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또 하나, 여느 전시와 마찬가지로 틀린 것이 몇 가지 눈에 띄었습니다. 스위스의 시인이자 작가 고트프리트 켈러의 ‘겨울밤’은 ‘숨넘어갈 듯 비명을 토해 내내’라고 돼 있습니다. 우리 시조시인 장순하(張諄河)의 ‘고무신’은 전주와 군산을 잇는 全群街道를 全群假道라고 써놓았습니다. 

주최 측은 각 나라와 지역의 겨울문학에 대해 나름대로 특성과 의미를 규정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지난 일과 감정을 회상하고,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에서는 인간의 한계와 현실을 깨달으며, 스위스와 독일에서는 삶과 죽음에 대해 고민하는가 하면 북유럽에서는 혹한의 겨울이나 어두운 밤을 배경으로 한 스릴러문학이 유명하다는 식입니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문학은 시대와 지역을 초월합니다. 인류 공통의 감성을 제공하는 겨울이 없거나 밤이 없으면 문학은 성립할 수 없는 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눈은 그런 예술에 정채(精彩)를 더해주는 하늘의 선물이거나 장치가 아닌가 싶습니다. 프랑스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의 ‘눈이 내리는데/웬일인가/내 품에 사랑하는 여자가 없네’, 이런 작품에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겨울 문학 여행'과 같은 전시를 기획한다는 것 자체가 문화적 성숙의 한 징표일 수 있습니다. 기대가 커서 그런지 오히려 아쉽고 부족한 느낌이 드는 걸 어쩔 수 없지만, 앞으로도 좋은 기획을 많이 해주기를 바랍니다. 전시기간이 긴 만큼 설날 연휴든 언제든 한번 ‘겨울 문학 여행’을 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이 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상업적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임철순

1974~2012년 한국일보 근무. 문화부장 사회부장 편집국장 주필 및 이사대우 논설고문을 역임했다. 
한국기자상, 삼성언론상, 위암 장지연상 수상. 
현재 이투데이 이사 겸 주필, 자유칼럼그룹 공동대표, 한국언론문화포럼 회장, 
시니어희망공동체 이사장.

박대문의 야생초사랑

히말라야등불 (진달래과) agapetes serpens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의 하나라고 하는 포브지카 계곡에서
세계적 희귀조인 아름다운 검은목두루미 탐방을 끝내고
해발 3,175m인 사실라(Sasila) 정상을 넘어가는 길입니다.
해발 2,880m에 있는 포브지카는 히말라야 동부의 부탄에 있는 빙하 계곡입니다. 
울창한 숲의 가파른 언덕이 에워싼 이 계곡의 바닥은 
검은목두루미의 가장 큰 겨울 서식지로서
2016년 강티-포비지 람사르 사이트로 지정된 곳입니다.
   
포브지카 계곡을 둘러싼 울창한 삼림의 사실라 고개는 
국내에서는 볼 수 없는 운무림(雲霧林, cloud forest)입니다.
이러한 곳은 끊임없이 구름이나 안개가 끼는 지역이므로
높은 습도 때문에 이끼류나 착생식물이 나무에 두껍게 붙어 자랍니다.
   
운무림을 지나자면 치렁치렁 매달린 이끼 더미나 
두터운 이끼 식물 덩어리가 괴기스럽게 얽혀 있어서
때로는 오싹한 무서움증이 들기도 합니다.
그 울창하고 칙칙한 운무림 속에서
작지만 또렷한, 앙증맞게 고운 호롱불 같은 빨간 꽃을 만났습니다.
   
으스스한 운무림에서 만난, 
작지만 밝게 빛나는 빨간 호롱불 같은 꽃
국내에서 ‘히말라야등불’이라 불리는 아가페테스 세르펜스였습니다.
마치 옛 전설 속의 캄캄한 밤길 산속에서 만난 호롱불처럼 반가웠습니다.
묵직한 이끼류가 켜켜이 뒤덮인 숲속에서 밝게 빛나는 작은 호롱불.
무술년 원단(元旦)을 맞아 새해를 밝게 빛내줄 축복의 등불로 소개합니다.
   
화훼점에서의 유통명이 ‘히말라야등불’인 아가페테스 세르펜스와
비슷한 종으로 인디언귀걸이(Agapetes Ludgvan Cross), 
심홍수목(深弘樹夢, Agapetes lacei Craib) 등이 있습니다.
이들은 같은 속(屬)의 식물로서 꽃 피는 시기나 모습, 자라는 환경이 비슷합니다.
추위에 약해서 노지 월동은 안 되고 여름에는 시원하게 해 주어야 합니다.
주로 실내 분재용으로 많이 재배하고 있는 식물이며
화훼점에 따라서 심홍수라복, 홍초롱, 등롱화 등 유통명이 약간 다르기도 합니다.
   

(2018, 2월. 무술년 구정을 맞이하여)

필자소개

박대문

환경부에서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과장, 국장, 청와대 환경비서관을 역임했다. 우리꽃 자생지 탐사와 사진 촬영을 취미로 삼고 있으며, 시집 『꽃벌판 저 너머로』, 『꽃 사진 한 장』, 『꽃 따라 구름 따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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