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과 함께 님과 함께 [김창식]


신과 함께 님과 함께 [김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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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 함께 님과 함께

2018.02.07

영화 <신과함께-죄와 벌>이 2월 3일 현재 누적 관객 수 1400만 여명을 돌파하여 역대 박스오피스 3위에 올랐다는군요. 영화는 주호민 원작의 웹툰 <신과 함께-저승편>을 대폭 각색하였습니다. 주인공인 저승세계의 국선 변호사를 등장시키지 않고 별개로 전개되는 에피소드를 한 이야기로 연결하였더라고요. 그러면서도 저승삼차사들의 인본주의적 감성, 우리들 어머니의 헌신과 희생, 군대에서의 의문사와 은폐기도 같은 먹먹하거나 코끝 찡한 감동 코드를 적절히 배치한 것이 흥행몰이에 큰 몫을 하는 것 같습니다. 어쨌거나 ‘초군문’ 지나 ‘삼도천’ 건너 '도산지옥' 등 생각 밖으로 화려하고 '엣지 있는' 저승 구경 잘하고 아무 탈 없이 안전하게 귀가했습니다.

얼마 전 수필 인문학 강의 때 있었던 일이 생각나는군요. 마침 니체의 사상을 웅변하는, “신은 죽었다(Tod sind alle Goetter)”라는 말을 설명하던 참이었습니다. 니체는 당시 성행하던 기독교가 한갓 ‘노예도덕(Sklavenmoral)’일 따름이라고 차라투스트라의 입을 빌려 세상을 뒤엎는 비판적인 선언을 했죠. 스스로 선하며 약하다고 믿는 보통 사람들을 기독교가 세뇌하고 합리화했다나요. 조금은 알쏭달쏭하며 위험하기도 한 니체의 말을 들은 풍월로 설명하던 터에 변수가 생겼어요. 수강생 중 한 사람이 이의를 제기한 것입니다. “교수님요, 한번 죽은 신이 또 죽나요?” 

순간 교실 분위기가 ‘싸~’하게 얼어붙었습니다. 질문자는 일제강점기 때 ‘소학교’를 다니셨어요. 80이 넘은 비교적 많은 나이에도 향학열에 불타고 어린 수강생들을 잘 챙겨 ‘왕언니’로 통하며 신망이 두터운 분이었답니다. 그분은 조상신이나 터주신(집터) 성주신(대들보), 조왕신(부엌)처럼 ‘출퇴근이 자유로운 재택근무 가택신‘을 떠올렸던 모양입니다. 순간 얼굴이 달아오르며 난감하더군요. 죽은 니체한테 물어 볼 수도 없고, 독일어가 달리기도 하고…. 어쨌거나 답을 해야 하잖아요. 당황함을 감추며 얼결에 나온 말이, “아, 예. 신은 두 번도 죽을 수도 있답니다. 지가 신인데 뭘 못하겠어요?”

먹고사느라 바쁘기는 하지만 가끔은 ‘신과 함께’ 교류를 하는 것도 필요할 듯합니다. 상대가 유일신이든 만유신이든 인격신이든. 토착신이든, 아니면 가상의 신, 만들어진 신일지라도 말예요. 사실 신과 인간의 관계 해명은 철학(특히 서양 철학)의 중심 테마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거예요. 레이 커즈와일이나 유발 하라리 같은 일부 미래‧역사학자는 AI(Artificial Intelligence‧인공지능)가 앞으로 신의 역할을 수행하리라 예견하기도 합니다. 인류의 미래를 디스토피아적으로 보는 미래학자 말대로라면 인간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위계질서도 망가질 거고요. 인간을 만든 신, AI를 만든 인간, 인간보다 뛰어난 AI…. 그렇지 않아도 모호한 신의 위상과 정체성을 화두로 인류는 전대미문의 패러다임 시프트를 경험할는지도 모릅니다.

‘신과 함께’ 또는 ‘신과 하나이(기독교)’ 되는 것도 필요하지만 아무래도 ‘님과 함께’보다는 못 하겠죠. 국민가요처럼 불린 오래된 유행가 가사가 생각납니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 백년 살고 싶어~” 문제는 노래로 떠오르는 풍광과 정경이 현실감이 없고 ‘태초에 하늘이 열리는 날’에 있었던 것처럼 까마득하게만 여겨진다는 것이에요. 님은 어디에 있고 또 초원은 어디에 있담? 사실 우리끼리 말이지만, 뭐 그런 날이 이승에서 두 번 다시 오겠어요?


*‘임과 함께’가 표준말이지만 ‘님과 함께’가 더욱 친숙하여 옛날식으로 표기하였음.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그룹은 특정한 주의나 입장을 표방하지 않습니다.

필자소개

김창식

경복고, 한국외국어대학 독어과 졸업.수필가, 문화평론가. 
<한국산문> <시에> <시에티카> <문학청춘> 심사위원. 
흑구문학상, 조경희 수필문학상, 한국수필작가회 문학상 수상. 
수필집 <안경점의 그레트헨> <문영음文映音을 사랑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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