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계가 너무 많은 '무단 횡단'


핑계가 너무 많은 '무단 횡단'


교통량 적은 지방일수록 심해

남들 무단횡단 보면 바보된 느낌도

본의 아니게 따라 건너

핸드폰 보며 횡단 절대 금물

선진국에서 무단 횡단은 있을 수 없는 일

불필요한 횡단보도 신호등도 정비돼야


   26일 금요일 오후 9시, '불금'을 맞이한 홍대입구역 부근 걷고 싶은 거리. 10여 명의 젊은 남녀가 왕복 2차선 도로를 잇달아 무단 횡단하고 있다. 한 20대 여성은 "횡단보도도 멀고 남들도 다 그냥 건너서 그랬다"고 말했다.



이곳을 관할하는 경찰 관계자는 "무단횡단 단속을 꾸준히 시행하는데 대부분 '왜 나만 잡느냐'고 억울해 한다"며 "특히 취객의 경우에는 시비로 번지는 경우도 많아 쉽지 않다"고 말했다.


도심 차량 제한 속도는 줄이고, 운전 중 횡단보도가 보이면 일단 정지한다. 지난 23일 정부가 보행사고 사망자를 줄이기 위해 내놓은 교통 정책 중 하나다. 길을 건너다 사망한 이들은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의 40%를 차지한다.


그러나 무단 횡단 근절 없이는 보행자 안전도 없다. 2016년 보행 사망자 4명 중 1명은 무단 횡단 중 참사를 당했다. 게다가 사망자와 발생 건수 모두 증가 추세다. 전문가들은 교통 시스템의 보수와 보행자나 운전자 등 당사자의 인식 개선만이 무단 횡단 사고를 줄일 수 있는 길이라고 강조한다.



5년간 2만5천명...무단 횡단으로 죽거나 다쳐

무단 횡단 교통사고는 최근 들어 급증하고 있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2014년 4천93건이던 무단횡단 교통사고는 2015년 4천883건, 2016년 5천266건으로 매년 증가했다. 2년 만에 1천100건 이상 늘어난 셈이다. 5천 건을 넘긴 것도 2016년이 처음이다.


사상자도 함께 늘었다. 같은 기간 부상자는 3천994명에서 5천179명으로, 사망자는 372명에서 418명으로 각각 증가했다. 최근 5년간 무단 횡단으로 인해 2만5천명 가량이 죽거나 다친 것이다.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는 무단횡단 사고와는 달리 전체 보행자 교통사고는 감소하고 있다. 2016년 보행자 교통사고는 4만8천489건으로 최근 5년간 가장 적은 건수다. 사망자 수는 5년 연속 감소했다. 2012년 1천977건에서 매년 줄어 2016년에는 1천662건까지 감소했다. 부상자 수는 2016년에 처음으로 5만 명 미만으로 줄었다.


도로교통공단 설문조사에 따르면 무단 횡단 경험자의 절반 이상은 "횡단보도가 멀어서"(51.6%)라고 답했다. 이밖에 "건널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23.7%, "다른 사람들도 해서"는 13.4%를 차지했다.




"힘들어서…" 더 심각한 노인 무단횡단

노인 보행자의 무단횡단 사고는 더 큰 문제다. 한국교통연구원과 도로교통공단 등이 발표한 '무단횡단 사고 특성 분석 및 진단' 보고서에 따르면 무단횡단 피해자 중 가장 많은 연령대는 60대 이상으로 25.18%를 차지했다. 전체 무단 횡단자 4명 중 1명은 60대 이상 고령층이란 얘기다.


김진형 도로교통공단 교수는 이런 현상에 대해 "차만 안 오면 건너도 된다는 과거 교통 의식 습관이 남아 있기 때문"이라며 "동시에 육체적으로 횡단보도까지 가기 힘들어 '그냥 건너자'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다"이라고 말했다.


교통 순찰을 담당하고 있는 한 경찰 관계자는 "단속 중에 무단 횡단을 하는 노인들을 종종 마주치는데, 이들 대부분이 거동이 불편할 뿐더러 리어카 등을 끌고 가기 때문에 횡단보도로 우회하기 힘들었다고 한다"며 "이런 사정을 고려해서 벌금을 물리기보다 차라리 안전하게 건너도록 유도하는 편을 택한다"고 말했다.


도로교통공단이 무단 횡단 단속에 걸린 고령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횡단보도가 멀어 무단횡단을 했다"고 답한 이들은 26.5%에 달했다. "특별한 이유 없음"도 11.2%를 차지했다..



치사율 8.4%, 무단 횡단 사고의 위험성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갑자기 사람이 차 앞으로 뛰어든다. 무단 횡단 사고의 위험성이 일반 사고보다 크게 높은 이유다.


교통사고분석시스템(TAAS)에서 공개한 자료를 토대로 분석한 결과, 최근 5년간 무단횡단 사고의 치사율은 8.4%로 나타났다. 2012년부터 2016년까지 무단 횡단 사고는 2만3천440건이 발생해 1천961명이 숨졌다.


정상 횡단시 치사율은 이보다 절반 이상 낮은 3.5%다. 같은 기간 14만3천98건이 발생했고 5천4명이 숨졌다.


조준한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연구원은 "운전자에게 무단 횡단이란 예측 불가능한 행동이나 다름없다"며 "돌발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시간도 짧아 방어 운전이 힘들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차와 보행자 간의 충돌 속도가 일반 사고보다 높고 보행자가 받는 충격도 크다.


조 연구원은 "무단횡단 당사자의 상당수가 어린이나 노인, 임산부 등 교통 약자라는 특성도 피해를 키운다"고 덧붙였다. 치안정책연구소에 따르면 노인이 교통사고를 당할 경우 중상 이상의 상해를 입을 확률이 일반인보다 50%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돌발 상황은 2차 사고의 위험성을 낳기도 한다. 추재호(36) 씨는 최근 퇴근길인 경기도 파주시 문산 부근 국도에서 마주친 무단 횡단자만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떨린다고 한다.


추 씨는 "인적이 드물고 가로등도 없어 시야가 제한된 왕복 6차선 도로에서 중앙선을 건너고 있는 무단 횡단자를 마주쳤다"며 "다행히 아슬아슬하게 사고는 피했지만 아찔한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만일 뒤따라 오는 차량이 있었다면 분명히 2차 사고가 났을 것"이라며 "어느 운전자가 그런 상황에서 보행자가 나올 거라 예상하느냐"고 되물었다.



'사고 안 날 것 같아 건넜어요' 막을 길 없나

운전자와 보행자의 의식 개선과 함께 교통 시설이 확충돼야 무단 횡단 사고를 막을 수 있다.


임재경 한국교통연구원 위원은 "무단횡단을 하는 이유는 횡단보도까지 가는 거리가 멀거나 보행자의 통행로 확보가 안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우리나라의 경우 동선이 끊기지 않도록 하는 이른바 '보행로의 연결성'에 대한 세심함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임 위원은 "독일 함부르크 역사 앞 도로를 보면 불과 50m 구간에 횡단보도 두 개가 놓여있다"며 "교통 당국 관계자에게 이유를 물어보니 버스나 자가용 하차 후에 역으로 건너오는 승객들의 동선에 맞게 횡단보도를 많이 설치한 것이라고 답한다"고 말했다. 보행자 움직임에 맞게 교통 시스템을 개선했다는 의미다.


횡단보도 설치를 늘리자는 여론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경찰대학에서 운영하는 치안정책연구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4년 기준으로 서울시 무단횡단 사고 중 37%는 횡단보도 간 거리가 100~200m에서 발생했다. 횡단보도 설치가 100m를 넘어갔을 때 무단 횡단 시도가 급증한다는 의미다.


보고서는 "보행자 입장에서 100~200m는 심리적으로 매우 먼 거리이며, 교통 약자인 노인과 어린이의 경우 육교나 지하보도 이용도 한계가 있다"며 "일본이나 미국 등에 비해 우리나라의 횡단보도 간 거리는 2배 가까이 멀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절반 이상이 횡단보도 설치 간격과 무단횡단이 관련이 있다고 답했다.



보행자에 대한 운전자의 경각심은 필수다. 강경우 한양대 교통공학 교수는 "운전자는 횡단보도가 아니더라도 주변에 사람이 보인다면 반드시 감속해야 한다"며 "인명 사고는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다"고 당부했다


김기복 시민교통안전협회장은 "영국의 경우 횡단보도가 아니더라도 보행자가 길을 건너면 운전자가 우선 양보하는 교통 의식이 배어있다"며 교통 약자에 대한 배려를 강조했다.


그러나 무단 횡단 사고의 당사자인 보행자의 의식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크다.


한문철 교통사고 전문변호사는 "취객이 도로 폭 20m에 달하는 왕복 6차로를 뛰어서 건넌다고 할 때 7~8초가 걸리지만, 시속 70km로 달리는 자동차는 1초만에 같은 거리를 갈 수 있다"며 "150m 넘게 떨어져 있던 차도 무단 횡단자를 때릴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고 말했다.


한 변호사는 "과거에는 무단횡단 사고 시 보행자의 과실 60% 정도로 봤지만 요즘은 상황에 따라 100%로 될 수도 있다"며 "무단횡단은 목숨을 건 도박이나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인포그래픽=장미화 인턴기자 shlamaze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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