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의 마무리 [안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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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의 마무리

2017.12.29

11월을 연말의 시작이라 생각하고 12월을 새해의 시작이라고 느끼며 지낸 것이 여러 해가 됩니다. 나름대로의 자기 보호 본능일까요? 그렇게 하면 연말에는 여러 가지 일과 사람과의 만남에 쫓기지 않아 좋고, 새해가 되어도 큰 사명감이나 부담감이 없이 자연스럽게 일상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그렇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보통의 직장인들의 스케줄이라는 것이 직장의 업무일정을 따라가듯이, 이제 저의 시간은 대학의 연간 학사 일정에 맞춰졌기 때문인데, 점점 사적으로 시간을 조율하기가 어려워졌습니다. 더욱이 11월은 수업이 한창 진행되고 논문지도 및 심사로 분주한 때이며, 12월은 학과의 전시 및 학생들 작품 마무리, 평가 등으로 분주하니 새해맞이 마음가짐이란 언감생심입니다.

미술대학 학생들의 지도는 수업시간으로만 그치지 않습니다. 실기수업의 특성상 학생들은 수업이외에도 실기실에 상주하다시피 작업을 이어가고, 교수는 수시로 학생들의 요청에 피드백을 주게 됩니다. 수업 이외에도 학생들을 만나 논문을 지도해야 하고, 학생들의 정기상담 및 각종 보고서 제출, 산학협력 프로젝트 진행, 학과 행사 등 교육 이외의 업무가 많습니다. 

그래도 교수는 봉사하는 직업으로 알고 있었으며, 제 꿈이었으니 즐거이 책임감 있게 일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저의 딜레마는 제가 창작을 하는 작가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바빠도 저는 작품 활동을 통해 스스로도 성장하고 더불어 학생들에게도 선한 영향력을 주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미술대학 교수의 작품 활동은 곧바로 학생을 지도하는 연구 활동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학교 일로 늦거나 피곤한 때에도 어떻게든 시간을 내서 작업실에 들르는 편입니다. 제 공간에서 몇 번의 붓질이라도 해야 마음이 안정되며, 그 과정과 그 시간이 쌓여야 작품이 만들어집니다. 그림만이 온전히 저를 받아주는 휴식이고 때로는 저에 대한 도전으로 삶을 의욕적으로 만들어 줍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종강하자마자 대형 캔버스 여러 개를 주문하였습니다. 혼자서는 들기도 버거운 화판과 힘든 씨름 중입니다. 비록 11월을 연말로 마음속으로 삼지 못했지만 적어도 12월의 끝을 그냥 보낼 수가 없었습니다. 남은 12월이 다 가기 전에 새해를 맞이하는 마음을 그림에 심어놔야 늘 그랬듯이 마음이 한결 가벼울 것 같았습니다. 

여러 가지 여건상 스스로 시간을 선택하고 제어하는 것이 어려워지기도 했지만, 나아가 제 나이를 잊은 지도 오래된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나이를 물어볼 때마다 계산을 해야 할 만큼, 실제의 제 나이가 확고히 인식되지 않고, 제 아이의 나이를 자주 떠올립니다. 제 나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아이의 나이로 제 나이가 갖게 되는 삶의 무게를 생각하는 것이지요.

며칠 전 지인의 문자에는 욕심과 스트레스를 줄이자며, 긍정마인드, 저탄수화물 무설탕 소식, 하루 30분 이상 빨리 걷기 운동, 무조건 11시에 잠들어 7시간 자기, 너무 바쁜 척 일 많은 척 안하기, 하루 중요한 일은 3시까지 끝내기, 사회적 관계 줄이기, 일주일에 한번 이상 취미 생활 즐기기라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가만 문자를 들여다보다 제가 제대로 지키고 있는 것이 하나도 없는 것 같아 허탈하게 웃었습니다. 그리고는 특히 '너무 바쁜 척, 일 많은 척 안하기'라는 대목을 명심하고, 더욱 긍정의 마인드로 살아가자고 다짐해보았습니다. 이제 11월이 연말이고 12월이 새해라는 모드로 전환될 수는 없더라도, 마음만큼은 긍정의 마인드로 시간에 쫓기지 않고 스트레스를 줄이려 노력해야겠습니다. 한 해의 마무리, 자신을 더욱 사랑하는 긍정의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그룹은 특정한 주의나 입장을 표방하지 않습니다.

필자소개

안진의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 교수. 삶의 중심은 그림이지만 그림과 함께 일상을 풀어내는 방법은 글이다. 꽃을 생명의 미학 그 자체로 보며 최근에는 ‘꽃과 문명’이라는 화두를 붙잡고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저서 <당신의 오늘은 무슨색 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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