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쉽게 쓴 글 [정숭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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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쉽게 쓴 글

2017.11.29

김관진 전 국방장관과 임관빈 전 국방부 정책실장을 구속적부심에서 석방해준 판사에 대한 신상털기·욕설·험담이 넘쳐납니다. 사이버공간에서 네티즌들이 날뛰고 정치인들이 부추깁니다. ‘적폐 부역자’, ‘사법부 양아치’, ‘산을 황폐화하는 재선충(소나무를 말려죽이는 벌레)’ 같은 진짜 양아치 언어가 쏟아지는 가운데 몇 여당 정치인들은 ‘적폐 판사가 다수의 판사들을 욕되게 한다’면서 인신공격을 퍼붓습니다. 입에서 침 튀기는 게 보이는 듯합니다. 서로 주고받으며 불길을 키우는 꼴이 가관입니다. 

전형적인 ‘입 다물어!’입니다. ‘내 생각, 내 기대, 내 예상과 다르면 입을 열지도 마라’라는 이 무지막지한 폭력! ‘너는 나와 다른 게 아니고 틀려먹었다’는 이 오만과 독선! 논리와 설득을 위한 노력은 없고 내 성질 돋웠으니 너도 한번 당해 보라며 무조건 퍼붓고 보는 이 막무가내! 구속적부심 제도가 왜 있는지, 구속이 곧 유죄이고 불구속이 곧 무죄가 아님을 아랑곳하지 않고, 인권과 정의가 최고의 가치라고 소리 높여 부르짖고는 이럴 때는 외면하는 이 뻔뻔스러움! 역겹습니다. 지겹습니다.

그래서 나는 내 나름의 논리로 이런 것들이 왜 틀렸는지 설득해보려 합니다. 
몇 가지 질문을 하겠습니다. 이런 것, 자신의 생각과 다른 말을 한 사람을 떼 지어 공격하고, 댓글로 인격을 짓밟고, 나아가 신상을 털어 신상에 위협까지 느끼도록 하는 것은 옳은 건가요? ‘다른 것과 틀린 것을 혼동하지 마라. 다른 것은 다른 것일 뿐 틀린 것은 아니다’라는 멋진 말은 어디로 갔나요? 왜 ‘네티즌’들은 자신들처럼 자신들의 생각을 말했을 뿐인 그들로 하여금 “나는 틀린 말을 했습니다”라고 자백하도록 몰아붙이는가요? 

의견이 다양하고 그걸 표출할 수 있는 사회가 건전하고 발전하는 사회라고 주장하던 사람들이 왜 이런 문제에서는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나요? 정치적 지향이 다른 사람에게는 이런 식으로, 획일적이고 전체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옳다고 믿는 이유는 뭔가요? 각각의 네티즌들이 각각의 에스엔에스로 자기 말을 하는 것이니 다양성은 확보됐다고 말하는 건 아니겠지요? 같은 떡을 각각 다른 포장지로 싼다고 해서 다른 떡이 됩니까? 의견과 내용이 달라야 다양한 거지, 구성과 형식이 다양하다고 다양한 건 아닙니다. 이런 모순, 이런 이율배반이라니!!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힌 후 수제자인 베드로가 그리스도 추종자들을 이끌고 예루살렘에서 복음을 전하며 ‘소요’를 일으키자 그리스도 탄압에 앞장섰던 바리새인들은 이들마저 처벌하려 합니다. 하지만 바리새인들의 지도자 가말리엘은 내버려두라고 지시합니다. “(베드로 등의) 사상과 소행이 사람에게서 비롯된 것이면 무너질 것이요, 하나님에게서 시작된 것이면 너희가 무너뜨릴 수 없지 않겠느냐?”고 물으면서 말입니다. 저는 이 말을 기독교적으로만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틀린 것과 다른 것이 어떻게 다른지를 담고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옳은 것은 못 무너뜨리지만 틀린 것은 스스로 드러나 언젠가는 허물어지지 않겠습니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도 그래서 드러난 것 아닌가요? 더러운 것은 스스로 냄새를 풍깁니다. 정권 바뀔 때마다 그랬습니다. 네티즌들을 부추기는 정치인은 냄새가 풍기지 않도록 자신은 물론 주변에서 썩는 것들을 물리치도록 살피는 게 먼저 해야 할일이지 싶습니다.

한마디 하고 싶을 때는 다른 이들도 한마디 하게 하십시오. 그들의 말을 경청까지는 하지 않더라도 비웃지는 마십시오. 내 생각과 다르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들 입을 막지는 마십시오. 

마지막으로, 이 글이 왜 ‘참 쉽게 쓴 글’인지를 말씀드려야겠습니다. 올 1월에도 ‘왜 남의 입을 막나’라는 제목으로 같은 내용의 글을 이곳에 올린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더 솔직히 말씀드리면, 오늘 이 글 상당 부분은 그 글과 겹치는 게 많습니다. 그대로 복사해서 붙인 것도 여러 줄입니다. 그렇게 했으니까 쓰기가 쉬웠지요. 변한 게 없으니 내 글도 달라질 게 없다고 나서면 뻔뻔하다고 하시겠습니다만 사실이 그러니 새로 고치고 말고 할 것 없이 그냥 내보내렵니다. 오늘 쓴 이 글을 가까운 시일에 다시 베껴 쓸 일이 생기지 않기만 바랄 뿐입니다. 제발 ….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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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정숭호

1978년 한국일보 입사, 사회부 경제부 기자와 여러 부서의 부장, 부국장을 지냈다. 코스카저널 논설주간, 뉴시스 논설고문, 신문윤리위원회 전문위원 등 역임. 매주 목요일 이투데이에 '금주의 키워드' 집필 중. 저서: '목사가 미웠다'(2003년), '트루먼, 진실한 대통령 진정한 리더십'(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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