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臨終)의 자유
“병원 싫다” 자택서 눈감은 노모, 가족과 대화속 떠나
‘연명의료 반대’ 작성해 두면 임종시점 심폐소생술 등 중단
[존엄사법 7년, 갈길 먼 ‘존엄한 죽음’]
“내 집에서 살다 떠나고 싶다.”
지난해 4월 고옥임 할머니(당시 94세)는 화장실에 가다 넘어져 다친 뒤 움직이기 어려워지자 자녀들에게 이같이 말했다. 낯선 병원보다는 집에서 치료를 받으며 인생의 마지막을 보내겠다는 것이다. 막내딸인 우효순 씨(64)는 인천 부평구와 인천성모병원 권역호스피스센터, 인천평화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평화의원이 운영하는 ‘지역사회 생애말기돌봄’ 사업을 접하고 어머니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줄 수 있었다. ‘지역사회 생애말기돌봄’ 사업은 환자가 자택 등에서 존엄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통증관리, 심리적 돌봄 등을 지원한다.
연명치료 중단하고 통증-증상 관리
가족과 대화 나누며 용서와 화해
노인 68%, 집에서 죽기 원하지만
낮은 수가-부검 등 이유로 비율 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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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명치료 대신 가족과 더 많은 대화를”
지난해 5월 평화의원 의료진은 할머니 댁을 찾아 더 이상의 진료와 투약을 원하지 않는다는 연명치료 중단 의사를 확인했다. 이후 매주 한 차례 이상 할머니 댁을 찾아 통증과 증상을 관리했고 일상 생활을 돌보고 가족의 심리적 상태까지 살폈다.
의료진은 증상을 호전시키는 치료보다 임종까지 편안하게 보낼 수 있게 진통제 등을 처방했다. 엄민정 평화의원 책임간호사는 “할머니가 시원하고 개운함을 느낄 수 있게 머리를 감기거나 이를 닦을 때 도왔다”며 “통증을 잠시라도 잊을 수 있도록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의료진은 가족들에게 할머니와 더 많은 대화를 하라고 권유했다. 또 할머니의 침대 주위에 가족 사진을 붙이고 행복했던 순간을 추억하게 만들라고 제안했다. 우 씨는 침대 곁에 어머니가 젊었을 때 사진과 자신의 어릴 때 사진, 손주들의 사진 등을 붙여 놨다.
할머니와 우 씨는 사진들을 보며 그동안 가슴 속에 담아 뒀던 모녀의 이야기를 했다. 할머니는 “엄마가 부족해서 미안하다. 잘못한 게 있다면 용서해 달라”고 말했고 우 씨는 “내 엄마라서 늘 고마웠고 사랑한다”고 했다. 할머니는 지난해 8월 29일 자택에서 눈을 감았다. 임종을 지킨 우 씨는 “좋은 시설에 있는 것보다 가족과 함께 마지막 시간을 보낼 때 마음이 더 편할 것”이라며 “엄마의 마지막 시간을 함께 보내며 가족과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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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수가-부검 등 자택 사망에 ‘걸림돌’
국민건강보험공단 조사에 따르면 장기요양 등급 노인 67.5%는 임종을 희망하는 장소로 자택을 꼽았다. 하지만 자택에서 임종을 맞는 비율은 줄어들고 있다. 보건복지부와 통계청에 따르면 주택 사망자 비율은 2013년 17.7%에서 2023년 15.5%로 감소했다. 반면 의료기관 사망자 비율은 2013년 71.5%에서 2023년 75.4%로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재택의료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재택의료 수가(건강보험으로 지급하는 진료비)를 현실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재 재택의료 시범사업의 수가는 1회에 약 13만 원 수준이다. 박건우 대한재택의료학회 이사장은 “진료와 이동시간 등을 고려하면 재택의료 환자 1명의 집을 방문하는 데 1시간 정도 필요하다. 이런 사정을 고려할 때 수가가 낮은 편이다”라고 말했다. 또 재택의료 시범사업 종류가 많아 개인 의원이 참여하기가 쉽지 않고 제대로 홍보되지 않은 점도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혔다.
환자가 자택 임종을 원해도 보호자가 사망신고 부담 등을 이유로 꺼리기도 한다. 현재 자택에서 숨지면 원칙적으로 부검을 해야 한다. 부검하지 않으려면 담당 의사에게 ‘임종기에 접어들었으며 수일 내 사망할 수 있다’는 소견서를 받아야 한다. 복지부 관계자는 “사망신고 절차를 개선하는 등 자택 임종이 확대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조유라 기자 jyr0101@donga.com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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