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 셋에 화장실 둘...21평' 아파트의 놀라운 변신
"작아도 방 여러 개로" 진화
21평형 아파트(전용면적 49㎡)에 방 3개와 화장실 2개, 주방과 거실에 다용도실까지 있다. 오는 6월 입주 예정인 서울 서초구 잠원동 ‘메이플자이’는 일반 분양 물량(162가구) 중 66%(107가구)를 이런 설계의 전용 49㎡로 구성했다. ‘주력 상품’이란 얘기다.
과거 ‘방 3개, 화장실 2개’ 아파트의 전형은 ‘국민 평형’이라 불리는 전용 84㎡(34평형)였다. 방 크기를 줄여도 전용 59㎡(25평형)가 ‘마지노선’이라고 했는데, 이젠 더 작은 전용 49㎡에도 적용된다. 방 2개짜리 전용 49㎡ 아파트와 비교하면 방이나 거실 크기가 대폭 작아지는데도 왜 이런 설계를 적용한 것일까.
메이플자이 시공사인 GS건설 관계자는 “최근 대세가 된 1~2인 가구의 주거 수요를 분석하니 크기가 작아도 방이 여러 개 있는 것을 더 선호한다”면서 “남는 방을 드레스룸이나 서재로 꾸미고 싶은 수요를 겨냥해 새로운 설계를 시도했고, 큰 인기를 끌었다”고 했다. 실제로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국내 1인 가구 중 방이 2개 이상 있는 집에서 거주하는 비율은 2000년에 12.2%였지만, 2020년엔 34.3%로 3배 가까이 급증했다. 혼자 살아도 방을 2개 이상 원하는 수요자가 많다는 트렌드를 포착해 아파트 설계도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공간 활용 극대화에 달라지는 평면
최근 건설사들은 ‘공간 활용’에 예민한 수요자들을 위해 갖가지 아이디어를 짜낸다. 집 안 자투리 공간을 수납용으로 활용할 수 있게 도입된 ‘알파룸’은 최근 들어 방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크기가 커지는 추세다. 알파룸을 베타룸, 오메가룸 같은 이름으로 복제해 2~3개 제공하는 아파트도 있다. 팬트리(식용·잡화 창고)나 드레스룸도 이제는 없는 게 이상한 ‘기본 옵션’ 취급을 받는다. 현관문을 2개 두고, 거실도 2개를 배치하는 ‘세대 분리’ 아파트도 과거엔 40평 이상 중대형 아파트에서나 볼 수 있었지만, 최근엔 20평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아파트 수요자들이 방처럼 구분되는 독립 공간 수에 민감한 것을 두고 전문가들은 “가구원 취향에 따라 선택 가능한 옵션을 다양하게 갖고 싶어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한 설계사무소 관계자는 “코로나 팬데믹 때 자가 격리를 경험하면서 식구 수만큼 방이 필요한 것은 기본이고, 남는 방을 서재나 취미용 공간으로 꾸미려는 수요가 많다”고 했다.
방이 여러 개 있는 것이 인테리어 측면에서도 깔끔하다며 선호하는 사람도 많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안방에 붙박이장처럼 옷장을 넣는 것보다 별도의 방을 드레스룸으로 꾸미는 걸 훨씬 좋아하기 때문에 아파트 설계에도 반영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가족끼리도 독립, 채광보단 전망
가족끼리도 독립성을 중시하는 문화가 확산하면서 생활공간을 ‘분리’하는 신형 평면 설계가 계속 나오고 있다. HDC현대산업개발이 서울 노원구 월계동에서 짓는 ‘서울원 아이파크’ 전용 84㎡ 일부 주택형은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한 복도가 설계됐다. 현관과 이어진 복도를 따라 차례로 방과 거실을 배치한 구조다. 현관에 들어서면 바로 확 트인 거실을 볼 수 있는 실내 구조와 다른 시도를 한 것이다.
지난해 포스코이앤씨가 개발한 실내 평면 중에는 부부간 수면 방해를 예방하는 아파트도 있다. 맞벌이 부부끼리 취침·기상 시간이 다른 경우를 고려해 안방에서 잠자는 공간과 아닌 공간을 문으로 분리할 수 있도록 했다. 화장실과 욕실을 부스로 구분하지 않고, 아예 벽으로 분리한 아파트도 있다. 가족끼리도 불편할 수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했다는 설명이다.
아파트 선택 시 조망권을 중시하는 경향 때문에 과거엔 ‘금기’였던 북향(北向) 아파트도 이제는 흔하다. 최근 한강 이남에서 재개발·재건축되는 강변을 낀 아파트는 북향을 선택하는 곳이 절대다수다. 업체 관계자는 “남향으로 해가 잘 드는 것보다 한강이 보이느냐 여부가 집값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설계에 반영한 것”이라고 했다.
이태동 기자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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