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S 2025에 나타난 집사 로봇들
[개관]
첨단기술 각축전인 ‘CES(Consumer Electronics Show) 2025’가 7일 미 라스베이거스에서 공식 개막했다. CES는 각 기업이 실용화를 코앞에 둔 첨단기술을 소개하는 자리다. 실제 수개월 이내에 상용화되는 기술도 많아 ‘현실이 될 미래’를 가장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자리라는 평가가 많다.
올해 행사는 전 세계 160개국에서 약 4500개 기업이 참여하며 사실상 역대 최대 규모로 치러진다. 주제는 ‘Connect. Solve. Discover. DIVE IN.(연결하고, 풀고, 발견하고. 뛰어들어라)’. 약칭으로 ‘DIVE IN’만 적고, 그 뜻을 ‘몰입’으로 해석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로봇과 AI’로 대표되는 새로운 세상에 ‘집중적으로 도전하자’는 의미는 잘 전달되는 것으로 보인다. 미래 사회에 뛰어들기 위해 우리가 필수적으로 알아야 할 것은 바로 ‘로봇기술’이다. 인공지능(AI)과 더불어 세상의 변화를 끌어내는 양대 축이기 때문이다.
4년 전인 2020년. 삼성전자는 그해 CES 현장에서 개인 맞춤형 로봇 ‘볼리(Ballie)’를 처음으로 공개했다. 김현석 당시 삼성전자 사장(CE부문장)은 이날 CES 2020 기조연설에서 볼리를 소개하며 “개인 삶의 동반자 역할을 하는 볼리는 인간 중심혁신을 추구하는 삼성전자의 로봇 연구 방향을 잘 나타내 주는 사례”라고 했다. 처음엔 이벤트성 행사로 여겨지기도 했으나 삼성은 볼리 개발을 포기하지 않았다. 지난해 CES 2024에서도 볼리를 공개하고 실용화 계획을 선보이더니, 마침내 올해 CES 2025에서 ‘올해 상반기 중 볼리를 공식 출시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4년간의 추가 개발과 조정을 거쳐 마침내 판매에 나선 셈이다.
삼성의 ‘볼리’와 LG의 ‘Q9’
볼리는 4년 전 처음 소개되면서부터 ‘로봇 집사’란 별명을 달고 있었다. 조그만 공처럼 생긴 작은 로봇이지만 집안에서 주인을 따라다니며 주인의 명령을 따라 다양한 일을 한다. 외견만 보고 ‘장난감 이외에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기능적으로는 그저 굴러다니고, 사람과 간단한 대화를 주고, 꼭 필요한 경우 소리를 내거나 내장된 작은 빔프로젝터를 켜서 뭔가 이미지를 보여주는 것이 전부다.
그런데 볼리는 이 기능을 십분 이용해 사람과 소통할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가정의 모든 기능을 총괄할 수 있다. ’로봇 집사‘란 이름이 붙는 것은 이 때문이다. 예를 들어 졸졸 따라다니던 볼리에게 “실내 온도를 섭씨 25도로 맞추고 2시간마다 환기를 해 줘”라고 명령하면 볼리는 실제로 알아듣고 가정의 여러 전자기기를 스스로 통제해 명령의 조건을 충족하는 식이다. 삼성이 볼리에 ‘인공지능(AI) 컴패니언(컴퓨터 프로그램이나 장치의 기능이나 사용을 보완하거나 도움을 주는 역할을 수행하는 소프트웨어)’란 명칭을 붙인 건, 이 때문이다. 간단해 보이질 수 있지만 의외로 로봇과 AI, 가전, 그리고 사물인터넷(IoT) 기술이 하나로 어우러져야 가능한 서비스다.
삼성과 경쟁 관계인 LG전자도 이번 CES에서 비슷한 기능의 로봇을 들고 나왔다. 이름은 ‘Q9’. 커다란 강아지 정도 크기로, 한 쌍의 바퀴로 이동한다. 이른바 ‘인버티드 펜듈럼(도립진자, 일명 세그웨이 방식) 기술로 균형을 잡고 서 있거나 움직일 수 있다. 볼리보다는 크기가 크지만 집안 곳곳을 빠르게 돌아다니며 안정적으로 이동할 수 있다.
Q9은 두 바퀴로 실내를 자유롭게 돌아다니면서 카메라, 스피커, 홈 모니터링 센서를 통해 수집한 실시간 환경 데이터로 에어컨, 조명 등 다양한 가전 제어를 맡는다. LG는 이 로봇 발표 후 빠르게 자사 뉴스룸에 영상을 공개하고 ‘공감지능 AI 기반으로 풍부한 감정 표현과 고객 목소리, 표정, 감정을 파악할 수 있다’며 ‘AI 에이전트로서 신개념 만능 가사도우미 역할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LG가 Q9을 처음 공개한 건 지난해다. ‘이동형 AI 홈허브’라는 슬로건을 달았다. 볼리는 기능과 편의에, LG전자는 공감과 감성에 초점을 맞춰 차별화했다는 평가가 많다. 조주완 LG전자 사장은 라스베이거스 CES 현장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Q9을 가정용 로봇으로 부를 수 있고, 반려 로봇으로 부를 수도 있을 것”이라며 “(LG는)가전에서 리딩을 해온 만큼 가정 내 로봇 사업을 진행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조 사장은 “LG는 Q9에 이어 향후 가사일을 볼 수 있는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 개발도 콘셉트를 갖고 준비 중”이라고 했다.
세계 가전의 양대 축인 삼성과 LG가 볼리와 Q9을 실제로 시판매할 것이 기정사실화 된 만큼 2025년은 이른바 ‘가정용 로봇의 원년’으로 불릴 공산이 크다. 로봇기술이 이른바 ‘스마트 홈’ 기술의 완성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흐름을 인지하고 해외 기업도 가전 총괄 매니저 로봇을 들고나오고 있다. 중국 ‘TCL’은 가정용 로봇 ‘에이미(AiMe)’를 공개했는데, 요람과 같은 탈것을 타고 다니는 작은 귀여운 동물 형상을 하고 있다. 볼리나 Q9의 기능을 따라잡는데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흔히 있는 후발업체의 모방전략으로 풀이할 수 있지만, 관건은 이 같은 ‘스마트 홈’ 기술의 완성에 세계적 대기업들이 로봇을 적극적으로 적용하기 시작하고 있는 기술적 흐름이다.
‘돌봄 로봇’ 개발 경쟁도
볼리나 Q9 등과 형태나 사용법은 비슷하지만 개발 목적 자체가 전혀 다른 로봇들이 존재한다. 이른바 ‘돌봄 로봇’이다. 주로 노령층 등의 헬스케어 목적으로 개발된다. 외형이 비슷하니 소프트웨어를 업그레이드 해주면 볼리나 Q9처럼 쓰지 못하란 법도 없지만, 모든 가전기기와 연결해 일괄 통제할 수 있도록 만들려면 가전분야 대기업이 아니면 쉽지 않은 일이다. 따라서 중소규모 로봇 전문기업은 이 돌파구를 ‘헬스케어’ 시장에서 찾는 경우가 많다.
돌봄 로봇은 가정 내에서 움직이거나 말을 하면서 사용자의 일상생활을 보조해주는 형태로, 정서적 교감부터 복약 알림, 응급상황 감지, 식사와 이동 보조, 생채 데이터 모니터링 등 기능을 수행하는데도 쓰인다.
예를 들어 국내기업 신성델타테크가 울산과학기술원(UNIST) 기술지원을 받아 개발한 시니어 돌봄로봇 ‘래미’가 대표적이다. 이 회사는 래미를 선보여 CES 2025 스마트 홈 부문 혁신상을 수상했다. 가정 내 곳곳에 신호기(센싱포트)를 설치하고, 이 센서가 사용자의 실시간 정보를 수집하면, 이런 정보가 로봇에게 전달된다. 로봇은 이를 통해 상황에 맞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비슷한 형태로 국내기업 ‘로보케어’가 개발한 자율주행 기반 돌봄 로봇 ‘케미 프렌즈’도 참고할만 하다. 전면 카메라로 주변과 상황을 인식하고 바퀴로 주행하며 사용자와 상호 소통한다.
반려로봇 개념을 어느 나라보다 빠르게 도입해왔던 일본도 헬스케어 목적의 돌봄로봇을 이번 CES에서 공개했다. 일본 기업 믹시(Mixi)는 물방울 모양의 돌봄로봇 ‘로미(Romi)’를 공개해 CES 혁신상을 받았다. 사용자와의 과거 대화를 기억하며, 스크린으로 다양한 표정을 표현해 교감을 나눌 수 있도록 만들었다. 독자 개발한 AI를 기반으로 대규모 대화 데이터를 학습해 자연스러운 대화가 가능한 것이 특징이다. 애완동물을 다루듯 쓰다듬어주면 다양한 감정을 표현할 수도 있다. 말동무해줄 주변인이 없는 노령층이나 애완동물을 키우기 힘든 가정이 주 고객이 될 것으로 보인다.
가정용 로봇의 형태는 과거부터 ‘작은 디스플레이에 바퀴가 붙은 형태’로 개발되는 일이 많았다.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거기에 이동기능을 얹어 집안 곳곳에서 완구, 비서, 정보검색 등의 목적으로 쓸 수 있도록 만드는 식이다. 이런 형태가 집사 로봇이나 돌봄 로봇 형태로 발전하는 건 자연스러운 결론이다. 중요한 건 그 소프트웨어에 어떤 기능을 담느냐다. 발전하고 있는 AI와 IoT 기술은 가능성을 앞으로도 무궁무진하게 확대해 나갈 것으로 기대된다.
전승민 기자 enhanced@irobotnews.com 로봇신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