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高 저주' 시작된 韓경제…'잃어버린 20년' 겪나/청년 이어 중장년 실업률도 美 추월

#1 '원高 저주' 시작된 韓경제…'잃어버린 20년' 겪나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경착륙, 중진국 함정, 샌드위치 위기, 제2의 외환위기, 삶은 개구리 신드롬(boiled frog syndrome), 일본형 복합불황…. 2019년을 한 달 앞두고 한국 경제의 앞날에 대한 비관론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각종 비관론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은 1990년대 일본 경제가 겪은 전철처럼 복합불황에 빠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다.


지난 4월 경기 침체 논쟁이 시작된 이후 한국 경제에 나타나고 있는 가장 뚜렷한 특징 중 하나가 ‘불황형 흑자’다. 성장률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와 함께 세계 양대 평가사인 무디스는 내년 성장률을 2.3%까지 내려 잡았다. 가장 낮은 잠재성장률 2.8%와 비교해 0.5%포인트의 디플레 갭이 발생하는 수준이다.




반면 경상수지 흑자는 늘어나는 추세다. 지난 4월 17억7000만달러까지 감소했던 경상수지 흑자가 9월에는 108억3000만달러로 급증했다. 불과 5개월 새 여섯 배 이상 늘었다. 이른 시일 안에 경상수지 흑자가 줄어들지 않으면 지정요건 완화 기준을 처음 적용할 내년 4월 미국 재무부의 환율 보고서에서 환율조작국으로 걸릴 수 있다.


불황형 흑자가 가장 무서운 것은 배리 아이켄그린 미국 버클리대 교수가 지적한 ‘원고(高)의 저주(curse under safe haven)’에 걸릴 가능성이다. 경기 침체 땐 원화 가치가 떨어져야 수출이 늘고 경기가 회복된다. 하지만 경상수지 흑자 때문에 원화 가치가 올라가면 수출이 줄고 경기가 더 침체하는 악순환 국면에 빠진다.


올 들어 국내 증시에서 외국인 자금의 매도세가 추세적으로 지속되는 가운데 지난 9월 이후 5조원 가깝게 빠져나갔다. 외국인 매도 요인만 따진다면 1조원 순매도할 때마다 원·달러 환율은 10원 정도 오른다(원화 약세). 하지만 불황형 흑자 등으로 원·달러 환율은 1120원 안팎으로 떨어졌다(원화 강세).




‘한국 경제가 일본형 복합불황에 빠질지 모른다’는 우려가 급부상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1990년대 들어 일본은 경기 침체 속에서도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 때문에 엔화 가치가 오르기 시작했다. 1985년 플라자합의 이후 미국 등 선진 5개국(G5)의 엔화 강세 압력까지 겹치면서 1995년 4월에는 달러당 79엔대까지 치솟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당시 미에노 야스시 일본은행(BOJ) 총재가 부동산 거품만을 잡기 위해 금리를 올리는 정책 실수까지 겹치며 복합불황에 빠졌다. 막대한 재정 지출로 경기 살리기에 나섰으나 ‘잃어버린 20년’이란 용어가 나올 정도로 긴 침체 터널에 허덕이던 일본 경제는 인위적으로 엔저를 유도하는 아베노믹스를 추진하고 나서야 빠져나올 수 있었다.


올해 마지막 금융통화회의에서 한국은행은 외자 이탈 방지, 강남 등 수도권 집값 잡기, 가계부채 억제, 통화정책 여지 마련 등과 같은 2선 목표를 이유로 금리를 올렸다. 하지만 금융위기 이후 각국 중앙은행은 물가 안정과 고용 창출을 양대 책무(dual mandate)로까지 설정해 1선 목표에 보다 충실하게 통화정책을 운용해오고 있다.




1선 목표를 감안하면 한은이 금리를 올릴 이유는 없었다. 오히려 ‘쇼크’라고 표현할 만큼 악화된 고용 사정을 감안하면 금리를 내렸더라도 할 말이 없었던 여건이다. 우리보다 경제 사정이 좋은 일본은행은 마이너스 금리제를 고수하고, 미국 중앙은행(Fed)도 금리 인상 속도를 조절할 뜻을 내비쳤다.


금리 인상의 빌미가 된 2선 목표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한국과 같은 신흥국은 금리 역전에 따른 외자 이탈 방지의 최선책은 외환보유액을 확충하는 길이다. 우리 외환보유액은 상시 협정으로 규모가 정해지지 않은 캐나다와의 스와프 자금을 빼더라도 5300억달러에 달한다. 가장 넓은 개념의 캡티윤 방식으로 추정된 적정 규모보다 1000억달러 이상 많다.


시중 부동자금을 흡수하는 것도 의외로 효과가 적을 수 있다. 은행 이기주의를 감안하면 시중 부동자금을 흡수하기 위해 금리를 올리면 대출금리가 더 오르는 만큼 행정지도 등을 통해 예금 금리를 올려주는 방안이 실효성이 높다. 강남 등 수도권 집값을 잡는 것은 경기 안정보다 후순위다. 지방 부동산시장 침체 정도는 의외로 심각하다.




가계부채 역시 늘어난 이자를 갚기 위해 악성 대출에 의존하는 풍선효과가 발생할 경우 중하위 계층이 빚의 악순환 고리에 내몰릴 가능성이 높다. 1선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 여건에서 2선 목표를 앞세워 올린 금리가 경기를 더 침체시킬 경우 우리 통화정책 역사상 처음으로 ‘이주열 실수(Lee’s failure)’라는 용어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 그 점이 우려된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한국경제


#2 청년 이어 중장년 실업률도 美 추월..."드문 사례"


외환위기 17년만


   청년실업률이 고공행진을 하는 가운데 올해 중장년층(55~64세) 실업률이 외환위기 후 처음으로 미국보다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급격한 고령화로 중장년층 경제활동인구가 늘어난 데다 취업난까지 겹친 영향이라는 분석이다.


2일 통계청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올해 2분기 한국의 55~64세 실업률은 1년 전보다 0.4%포인트 상승한 2.9%였다. 같은 기간 미국의 중장년층 실업률(2.7%)보다 0.2%포인트 높다. 한국의 중장년층 실업률이 미국보다 높아진 것은 1999년 3분기~2001년 1분기 이후 17년여 만이다.




한국의 중장년층 실업률은 2011~2012년 미국보다 3~4%포인트 낮았지만 이후 격차가 점차 축소되다가 올해 2분기 역전했다. 역전 현상은 2분기 연속 계속되고 있다. 올해 3분기 한국의 중장년층 실업률은 1년 전보다 0.5%포인트 상승한 3.0%였다. 반면 미국은 같은 기간 0.3%포인트 하락하면서 한국보다 0.1%포인트 낮은 2.9%에 머물렀다.


실업률 악화는 조선·자동차 등 주력산업 구조조정과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등의 영향이 크다는 분석이 많다. 고령화로 경제활동 의지가 있는 장년층이 많이 늘어난 점도 실업률 지표 악화의 원인으로 꼽힌다. 전체 경제활동인구에서 60세 이상 비중은 5년 전인 2013년 13% 안팎이었지만 올해 3분기 16.5%까지 늘어났다.

김일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 한국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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