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블루베리 농부입니다[함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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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블루베리 농부입니다[함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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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블루베리 농부입니다(2) [함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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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블루베리 농부입니다
2021.09.11

<1>겁없이 버텨온 10년
올해로 블루베리 농사를 시작한 지 꼭 10년이 되었습니다. 2011년 봄, 제 이모님이 일찍이 사두셨던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600평 정도의 밭에 5종의 블루베리 묘목 600주를 심었답니다. 그 정도면 노년의 부부가 다른 사람 도움 없이 수확이 가능하다는 말을 덜컥 믿고 말입니다. 이후 저는 계절노동자(?) 자격으로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는 학교 강의를 하고,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는 주경야독(晝耕夜讀-실상은 晝耕夜眠이었지만요)하는 고달픈 삶을 시작하게 되었습지요.

지금은 블루베리 재배법이 궁금하면 배울 곳도 생겼고, 블루베리 재배에 필수인 피트모스나 블루베리에 최적화한 각종 비료를 공급해주는 곳도 있지만, 10년 전만 해도 제대로 된 책 한 권 구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일본책 번역한 것이 틀림없는 책자를 가까스로 구해 밑줄 쳐 가며 초보 농사꾼이 겁도 없이 일을 저질렀답니다.

 

 

 


“요즘 웬만한 농사꾼은 연간 억 단위로 투자하니 돈 아끼지 말라”고 부추기는 동네 이장님 말에 잔뜩 주눅 들었던 기억이 새롭네요. 어쨌든 블루베리는 물을 엄청 좋아하는 식물이라 관정을 파서 매일매일 물주는 시설도 갖추고, 연녹색 담장도 예쁘게 치고, 일하다 쉴 수 있는 컨테이너도 들여놓으면서 농사가 “돈 먹는 하마”임을 실감했습니다.

묘목을 심은 이듬해엔 꽃눈을 모조리 따 주었기에 수확은 2013년부터 했지요. 수확 첫해는 알음알음 지인들에게 권유도 하고 강매(?)도 하면서 800kg 정도를 출하했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블루베리 열매는 학기 말 즈음 익기 시작해서 여름방학 중에 수확을 마칠 수 있었기에 계절노동자 자격을 유지하는 데 별 어려움이 없었답니다. 실제로 2013년에는 6월 25일경부터 열매를 따기 시작하여 8월 20일까지 거의 두 달 동안 블루베리 열매를 땄습니다. 그때만 해도 조생종은 조금 일찍, 만생종은 조금 늦게 시차를 두고 열매를 맺은 덕분에 수확이 비교적 수월했습니다.

한데 기후 변화 탓인가, 첫 수확 시기가 불과 7년 만에 보름이나 앞당겨진 데다, 조생종 만생종 가리지 않고 비슷한 시기에 익기 시작해서 올해는 7월 15일에 수확을 끝냈습니다. 그러고 보니 40일도 안 되어 “쫑”을 했네요. 예전엔 사과하면 대구였는데 지금은 충주를 지나 강원도까지 올라왔다더니, 가속이 붙은 기후 변화만 생각하면 우울합니다.

 



요즘 과일값이 대체로 비싸긴 하지만 블루베리는 값비싼 과일이 틀림없습니다. 500g짜리 한 팩에 1만 5,000원이면 8kg짜리 수박 값과 거의 맞먹습니다. 저 같으면 커다란 수박 한 덩어리 사지 블루베리엔 손이 안 갈 것 같은데…. 올해 처음으로 저희 블루베리를 로컬푸드 싱싱장터에 내놓고 보니 “새로 따 놓은 것 있으면 빨리 가져오시라”는 전화를 종종 받곤 했답니다. 아마 냉장고도 많이 차지하고 껍질 버리기도 귀찮은 수박보다 아이들 두뇌 건강에 최고인 데다 세계 10대 슈퍼 푸드로 인정받았다는 블루베리를 더욱 선호하게 된 모양입니다.

한데 블루베리가 비싼 이유가 있긴 합니다. 수입종이기에 토양까지 수입해야 하는 애로가 있는 데다, 한 송이씩 익는 것이 아니라 한 알씩 익어 열매를 따는 데 품이 정말 많이 들어갑니다. 미국엔 ‘블루베리 누가 누가 잘 따나’ 대회가 있다는데, 참가자들은 하루에 40kg 정도를 거뜬히 딴다고 합니다. 제 실력(?) 정도면 하루 종일 쉬지 않고 25kg까지 가능한데요, 그냥 따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85~90% 잘 익은 열매를 하얀 분 손상하지 않고 크기까지 구분하면서 따려면 생각보다 꽤 높은 숙련도가 요구된답니다. 물론 대규모 농장에서는 인력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고 크고 작은 열매를 골라내는 선별기도 있지만, 저희같이 애매한 규모의 농장에서는 언감생심입니다.

그래도 블루베리 농사 10년차를 지나고 보니, “박사(博士)의 박은 ‘엷을 박(薄)’이 틀림없다”던 농담의 영락없는 주인공이었는데, 이젠 ‘오뉴월 하루 볕의 차이’를 알 만큼은 되었구요, 블루베리를 통해 다양한 사람들과 인연을 맺는 동안 저마다의 삶에 담긴 풍성한 이야기를 만나는 행운 또한 누렸답니다. ^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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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미 에모리대대학원 사회학 박사. 이화여대 사회과학대학장 역임.

2006 자유칼럼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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