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 피해] 아파트 덮친 그 옹벽...형식적인 지자체의 안전점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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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덮친 그 옹벽

구청, 6월 균열 알고도 '통보'만

[단독] 

 

   이번 폭우로 옹벽이 크게 무너져 9일 오세훈 서울시장에 이어 10일 윤석열 대통령까지 현장을 방문해 살핀 서울 동작구 사당동 극동아파트에 대해 동작구청이 이미 지난 6월 '이상 조짐'을 발견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상 조짐이 발견됐음에도 이번 붕괴 사고가 일어나기 전까지 아무 안전 보강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 또 산림청의 산사태위험지도에는 이 현장이 '매우 안전한 지역'으로 등록돼 있다. 국가재난방지시스템의 허점이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다.

 

[#폭우 피해] 아파트 덮친 그 옹벽...형식적인 지자체의 안전점검

 

서울 동작구 사당동 극동아파트 옹벽 붕괴 현장. 아파트 외벽 일부도 피해를 입었다. 김원 기자

 

동작구청은 지난 5~6월 극동아파트 옹벽을 점검해 옹벽 이음매에 1~2㎝의 단차(균열의 다음 단계)를 발견했다. 이 아파트 옹벽은 행정안전부가 관리하는 급경사지관리구역으로 1년에 세 차례 이상 전문가의 안전 점검을 받아야 한다.

 

[#폭우 피해] 아파트 덮친 그 옹벽...형식적인 지자체의 안전점검
산림청 산사태위험지도 캡쳐 화면. 빨간 원 부분이 이번 옹벽 붕괴 사고지인데 위험 경고가 없다. 산림청

 

 

동작구청 관계자는 "점검 결과를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통보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구청은 통보 이외에 아무 안전 보강 조치를 하지 않았다. 구청 측은 "옹벽이 사유지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 아파트 옹벽이 행안부가 위험을 관리하는 구역(급경사관리구역)인 만큼 위험 신호가 감지됐을 경우에는 국가 차원에서 더 적극적으로 위험을 관리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윤대통령은 사당동 붕괴 현장에서 "국민 안전은 국가가 책임진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만난 주민들은 옹벽에 위험 신호가 감지됐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극동아파트 주민 김모(61)씨는 "옹벽에 위험 신호가 감지됐다는 얘기를 들었다면 당연히 주민 차원에서 안전 보강 조치를 강구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무너진 옹벽 바로 앞 동에 거주하는 이모씨는 "옹벽이 무너지면서 3층인 우리집 작은방 쪽을 바로 때렸다"며 "정말 아찔해서 지금도 가슴이 뛰는데 관리사무소에 통보만 하고 '나 몰라라'하는 구청의 태도가 너무 화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8일 이 아파트에서는 높이 10m, 길이 35m가량의 옹벽이 붕괴했고, 아파트 주민 및 인근 거주민 160여 명은 추가 붕괴 우려 등으로 현재 사당2동주민센터 등에 분산 대피해 있다.

 

[#폭우 피해] 아파트 덮친 그 옹벽...형식적인 지자체의 안전점검
이수곤 전 서울시립대 토목공학과 교수가 서울 동작구 사당동 극동아파트 옹벽 붕괴 현장에서 붕괴 원인을 설명하고 있다. 김원 기자

 

 

이날 함께 사고 현장을 둘러본 이수곤(69) 전 서울시립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단차가 생겼다는 건 이미 균열이 시작돼 옹벽이 움직였다는 의미"라며 "이런 상황이라면 폭우가 쏟아질 때 주민들이 먼저 대피할 수 있도록 안내해야 했다"고 설명했다.

 

부처 간 칸막이로 인한 소통 부재도 이번 사고의 원인으로 지적된다. 이 아파트 옹벽은 행안부의 급경사지관리구역으로 지정됐지만, 산림청의 산사태위험지도에는 '매우 안전한(5등급)' 지역으로 등록돼 있다. 두 곳의 국가기관에서 같은 지역을 전혀 다른 판단 기준으로 관리한 것이다. 이 교수는 "위험 절개지를 행안부와 산림청으로 이원화해 관리한 것부터가 문제"라며 "이번 사고는 사실상 국내 재난관리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고 강조했다.

 

[#폭우 피해] 아파트 덮친 그 옹벽...형식적인 지자체의 안전점검
11일 서울 동작구 사당동 극동아파트 옹벽 붕괴 현장. 김원 기자

 

이수곤 전 교수는 자타가 공인하는 산사태 최고 권위자다. 지질학 1세대인 이정환 전 국립지질광물연구소장의 아들로 토목지질학 분야에서 세계적인 명문대인 영국 임페리얼컬리지 왕립광산대학에서 한국 화강암의 풍화 및 토목공학적 특성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87년 귀국해 2019년 정년퇴임 때까지 서울시립대 교수로 있으면서 산사태 연구에 매진해왔다.

 

 

 

이 교수는 "국내에서 일어난 크고 작은 32건의 재난 사고를 분석해보니 전문가나 공사 관계자, 주민 등의 사전 경고가 있었다"고 했다. 그는 "이번 붕괴 사고도 사전 징후가 주민들에게 제대로 전달됐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원 기자 kim.won@joongang.co.kr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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