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더 입원하고 싶지 않아" [추천시글]

카테고리 없음|2021. 4. 23. 12:07

 

이젠 더 입원하고 싶지 않아

2021.04.22

 

3년 전 급성폐렴으로 입원하여 인연을 맺은 대학병원에 지난달 하순 다시 입원하여 똑같이 1주일 신세를 졌습니다. 새로운 문제가 생긴 게 아니라 지병인 신부전(腎不全) 지수(指數)의 변화가 평소보다 좀 심했는데, "고령이시니 입원해 정밀 관찰을 한 뒤 새로운 치료방법을 찾는 게 좋겠다"는 주치의의 권고에 따른 것입니다.

 

이 병원에는 ‘성인내과’라는 부서가 따로 있어, 저는 3개월에 한 번씩 혈액검사를 받은 뒤 전에 제 폐렴 진료를 담당했던 교수의 진찰과 새 처방을 받아왔습니다. 콩팥은 한 번 기능을 잃기 시작하면 정상으로 회복되는 사례가 극히 드물며, 차선책으로 식생활 개선과 약으로 기능저하 속도를 완화시키는 방법을 취해야 한다는 것을 다년간의 투병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습니다.

 

90대 후반의 제 나이에 비해 3개월에 한 번씩 받는 혈액검사 결과가 비교적 무난하게 나오는 것을 보고, 주치의는 지난해 말 만족스럽다고 말하며 그러나 고령자는 언제 갑작스럽게 신체 변화가 일어날지 모르니 조심하라고 당부했었습니다.

 

 

저는 입원에 반대하였지만, 언제나 휠체어를 밀고 검사 수치까지 점검하는 보호자 셋째딸의 강권에 못 이겨 입원을 승낙했습니다. 3년 전과 같은 긴급한 사유가 아닌 데다 당시 지긋지긋하게 불편했기 때문에 병실이 아니라 몇 십년 살아온 집 안방에서 남은 생을 마감하겠다고 다짐한 적도 있었습니다.

 

입원 신청은 했으나 빈 병상이 곧 생기지 않았습니다. 저는 잘 됐다고 느긋해했는데, 딸아이는 원무과에 매일 재촉을 하여 사흘 만에 겨우 입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외과수술 대기자나 수술 후 치료를 위해 머무는 환자들의 병실이었습니다.

 

입원실 내부의 시설이나 집기는 3년 전보다 개선된 흔적이 보였습니다. 그러나 5인실의 구조 자체는 거의 변화가 없었습니다. 환자용 침대와 보호자용 간이침대 및 옷장, 소형 냉장고 등 집기가 짜임새 있게 갖춰진 약 두 평 반 정도의 공간이 이동 커튼으로 구분되고 거기에 공용 화장실 겸 세면실이 하나 있는 게 각 병실의 공통 구조였습니다.

 

이 복잡한 병실에 환자 5명, 보호자 5명 등 상주인구 10명이 머물러 있는데 화장실은 하나뿐이어서 아침식사 전후에는 극히 불편하였습니다. 저는 평소 하루에 두 번 화장실 가는 습관을 한 번으로 줄였습니다. 하루에 한 번밖에 없는 주치의 회진시간과 간호사의 혈압 등 정기 측정 시간엔 침대를 지켜야 하는 고충도 있었습니다.

 

흔히 ‘창살 없는 감옥’이라 비유(比喩)되기도 하는 병실에서 개인 자유를 바랄 수는 없지만, 환자들의 상태를 살피기 위해 수시로 드나드는 간호사, 고통 때문에 내지르는 환자들의 비명, 다른 환자를 개의치 않고 퇴원 직전의 환자끼리 담소하는 고성…이런 것 등이 언제 퇴원하게 될지 몰라 불안한 저를 더욱 괴롭게 했습니다.

 

코로나19 소동 속에 지정된 보호자 한 명 외 가족이나 친지의 방문을 엄격히 규제하는 지금의 병원은 3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원내 분위기가 달라졌지만, X선 촬영 때 대기하는 외래환자 수를 보면 총 환자수가 줄지 않았다는 인상을 주었습니다.

 

신문과 방송 등 외부와의 소식이 단절된 생활을 계속하던 어느 날 회진 때 새 주치의인 신장내과 교수가 콩팥기능이 아직은 괜찮다며 이번 주말경에 퇴원할 수 있기를 바란다는 반가운 말을 해주었습니다.

 

갑자기 생기가 돌고 모든 생각이 긍정적으로 바뀌었습니다. 잘 하면 이번 주말은 내 집에서 보낼 수 있겠다는 생각에 흥분하기 시작해 그러잖아도 고생하던 불면증이 더 심해질 것 같았습니다. 저보다 보호자인 딸아이가 더 기뻐하고 바빠졌습니다. 간이침대 위에서 선잠을 자며 주야 병든 애비의 뒤치다꺼리에 생활리듬을 잃은 딸아이의 초췌한 모습에 몰래 가슴 아파했던 저는 지금까지의 입원비 알아보기 등 새로운 일로 더 바빠졌습니다. 남동생 대신 보호자 역을 맡아 개인사업까지 희생하며 고생하는 딸아이의 기쁨을 충분히 알 수 있었습니다.

 

 

이리하여 돌아온 집에서의 생활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며 살고 있음은 물론입니다. 개선장군도 아닌 이 애비를 반겨주는 아이들이 고맙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생의 마지막 날까지 집을 떠나지 않고 눈을 감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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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황경춘

일본 주오(中央)대 법과 중퇴

AP통신 서울지국 특파원, 지국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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