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죽음] ‘딸, 왔니?’ ...임종 직전 맑은 정신 기적일까, 우연일까 ㅣ 할아버지 임종 때 함께 맥주 파티한 가족들...왜

 

임종 이야기 Story #1

 

호스피스 병동에서 일어나는 ‘회광반조’와 ‘섬망’

 

흰 침대에 누운 환자가 고개를 떨구면 가족들이 흐느낀다. 드라마 속 죽음은 차분하다. 그러나 현실의 죽음은 갑작스럽고 고통스럽다. 최후의 순간까지 ‘나’를 지키고, '나'로 살다 가고 싶은데…, 시간과 질병에 떠밀리지 않고, 손님을 들이는 집주인처럼 죽음을 맞이할 순 없을까. 우아하고 존엄한 죽음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편집자 주)

 

   ‘딸, 왔니?’ 병상에 누워 어제오늘 하던 어머니가 갑자기 자식을 알아본다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일이 일어난 것이다. 죽음은 임종을 앞둔 당사자에게도, 그를 지켜보는 보호자에게도 힘에 부친다. 마지막 이야기라도 나누고 싶은 마음에 잠시 ‘기적’이 일어난 걸까?

 

[우아한 죽음] ‘딸, 왔니?’ ...임종 직전 맑은 정신 기적일까, 우연일까
헬스조선

 

신체 상태가 호전되면 일시적으로 의식 돌아와

죽음을 앞두고, 의식이 흐려져 가던 환자가 거짓말처럼 정신을 차릴 때가 있다. 불교 용어를 빌려 와 ‘회광반조(回光返照)’라 일컫기도 한다. 해가 지기 직전에 하늘이 잠깐 밝아진단 뜻이다. 가족들은 갑자기 자기들을 알아보는 환자 곁에 모여 소곤거린다. 살고자 하는 인간의 의지가 죽음을 거스르는 ‘기적’을 이뤘다고 말이다.

 

이는 굉장히 특이한 경우다. 인간의 정신은 뇌의 기능에 직결된다. 뇌가 제 상태여야 의식이 명료하고 인지 기능도 정상적으로 유지된단 뜻이다. 그러나 임종을 앞둔 사람은 뇌의 상태가 나빠지는 게 보통이다. 죽음은 장기 부전이든 산소 부족이든 병이 심각해서든 몸이 망가지며 찾아온다. 이런 상황에선 뇌에 산소와 당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는다. 의식이 꺼져가고, 사람을 못 알아볼 정도로 인지 기능이 떨어지는 게 죽음에 이르는 일반적 수순이다.

 

 

 

드물다고 해서 과학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신비’는 아니다. 뇌는 굉장히 민감해 전해질 수치가 조금만 안 맞아도, 열이 조금만 올라도 제 기능을 못한다. 반대로 어쩌다 전해질 수치가 잘 맞았거나 뇌를 비롯한 몸 상태가 호전되면, 흐렸던 의식이 잠깐이나마 맑아지기도 한다. 고통을 덜려 진통제나 진정제를 맞던 환자는 투약을 중단할 때 정신이 또렷해진다. 환자가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일어난 기적이 아니다. 어떤 이유에서든, 뇌가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조건이 잠깐이나마 갖춰져 생긴 ‘우연’이다.

 

원자력병원 정신과 전문의로서 2002~2009년 호스피스 병동 실장을 지낸 조성진 과장은 “회광반조가 나타나는 건 극히 예외적인 경우”라며 “일반적으로는 뇌를 비롯한 신체 상태가 나빠지며 인지 기능도 계속 떨어진다”고 말했다. 운 좋게 회광반조를 경험하더라도 이 상태가 지속되지 않는다. 몸 상태가 일시적으로 좋아진 덕에 정신이 들었으니, 몸이 다시 나빠지기 시작하면 의식도 흐려진다.

 

호스피스 환자 대부분이 정신·심리적 어려움 겪어

죽어가는 환자 대부분은 이런 우연조차 기대하기 어렵다. 죽음에 가까워지며 몸 상태는 착실히 나빠지고, 의식 역시 이에 발맞춰 점점 흐려진다. 개선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게 보편적이다. 의식이 흐려지는 양상도 가지각색이다. 헛것을 보거나 자식을 알아보지 못하는 환자가 있는가 하면 말 그대로 정신을 잃은 채 잠든 환자도 있다. 고통을 달래려 진통제나 진정제를 맞은 경우가 여기 해당한다.

 

호스피스 입원 환자 다수는 임종 48~72시간 전에 ‘섬망’이란 정신적 문제를 경험한다. 뇌 기능 부전 탓에 집중, 사고, 지각, 기억, 행동, 감정, 수면 등에 장애가 생긴 상태다. 환각과 환상을 보거나, 시간·장소·사람을 잘 분간하지 못하게 된다. 위독한 환자보다는 섬망이 늦게 시작될 수 있겠지만, 집에서 자연사하는 사람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조성진 정신과 전문의는 “누구도 이를 피할 수 없고,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라 말했다. 말기 암 환자든 아니든 죽어가는 인간이라면 보편적으로 거치는 단계라서다. 환자가 갑자기 가족도 못 알아보면 보호자는 당황하기 쉽다. 그럴수록 의료진에게 상황과 예후에 관해 충분한 설명을 듣고 환자를 지지해줘야 한다. 약물, 수액, 비타민을 투여하면 증상이 완화되기도 한다.

 

 

 

죽음이 목전에 다가왔단 공포에 우울해하는 환자도 많다. 약물이나 의료진 면담을 통해 조절할 수는 있으나, 임종 직전에 느끼는 불안을 완전히 뿌리 뽑는 건 불가능하다. 죽음은 ‘나’라는 존재가 우주에서 사라지는 큰 사건이기 때문이다. 조성진 과장은 “존재가 소멸한다는 것 자체가 편안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조금이라도’ 환자가 편안하게 마지막을 맞이하도록 하는 게 치료의 목적”이라 말했다. 말기암 등 질환 탓에 고통스러워하는 환자에게선 고통을, 불안해하는 환자에게선 불안을 덜어 삶의 질을 최대한 높이는 것이다.

 

[우아한 죽음] ‘딸, 왔니?’ ...임종 직전 맑은 정신 기적일까, 우연일까
임종을 앞두고 의식이 흐려진 환자가 갑자기 정신을 차리는 때도 있지만, 이는 매우 드문 일이니 정신이 흐려지는 ‘섬망’이 오기 전 환자와 충분한 대화를 나눠야 한다./사진=셔터스톡

 

죽을 때 ‘혼자가 아닐 것’이란 확신 줘야

몸이 스러지면 정신이 꺼져가고, 그 후에 죽는 것은 실존으로서의 ‘나’다. 의료진과 보호자가 환자를 지지하고 안심시켜 줘야, 환자도 자신에게 남은 시간을 잘 매듭지을 수 있다. 섬망이 오기 전, 그러니까 임종 1~2달 전에 환자와 그간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는 게 좋다. 싸운 것이 있으면 화해하고, 꼭 하고 싶었던 말이 있으면 미리 하는 것이다. 환자의 삶의 의미를 찾아주기 위해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 몸 상태가 나빠져 섬망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

 

죽어가는 이의 불안을 덜려면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끊임없이 확인해줘야 한다. 임종의 순간에 가족들이 함께할 것이며, 환자가 힘들지 않도록 보호자와 의료진 모두 온 힘을 다할 것이라는 믿음을 주는 것이다. 손을 자주 잡아주는 것도 안정에 효과적이다. 병동이라는 공간 자체가 집보다는 낯서니, 집에 있던 물건 중 환자에게 친숙한 것들을 곁에 가져다 둬도 좋다.

 

대부분의 죽음은 드라마 속 장면처럼 고통에 몸부림치다 돌연 숨이 끊어지는 것도, 의식의 끈을 붙잡고 할 말을 다 하고 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의료진과 보호자의 도움을 받아 함께 결승선을 통과하는 마라톤 같다. 서울대병원 완화의료임상윤리센터 유신혜 교수는 “통증이나 호흡 곤란이 있는 환자라도 증상을 잘 조절하며 남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며 “편안하게 주무시듯이 임종에 이르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죽음이 고통스럽고 힘들 것이라며 너무 두려워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해림 헬스조선 기자

 

출처 : https://health.chosun.com/site/data/html_dir/2022/06/17/2022061701869.html

 

 


 

임종 이야기 Story #2

 

이 임종 사진에서 우리 모두가 배울 수 있는 것

 

  임종을 앞두고 마지막 맥주를 마시는 할아버지의 사진이 전 세계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는 까닭은 무엇일까?

미국 위스콘신 애플턴에 살던 노버트 쉠이 삶의 마지막 순간에 원했던 건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맥주 한 잔 마시기였다.

 

할아버지 임종 때 함께 맥주 파티한 가족들...왜

 

맥주를 마시면서 가족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웃으며 옛날을 회상했다. 쉠의 아들 탐이 이 모습을 담은 사진을 찍었고 가족 채팅방에 사진을 올렸다.

 

그러나 몇 시간 후 쉠은 사망했고 그의 손자 애덤은 그 사진을 SNS에 올렸다. 그의 마지막 사진을 보고 전 세계에서 수많은 낯선 이들이 위안을 얻자 가족들은 매우 놀랐다.

 

사진에는 40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고 트위터에서만 3만 회 리트윗과 31만 7000회의 '좋아요'를 받았으며 이후 다른 SNS에도 올라갔다.

 

애덤은 이렇게 말했다. "저희 할아버지는 평생 다른 사람들에 비해 건강하셨어요. 그렇지만 입원하시고 나서 지난주 일요일이 되자 의료진은 이게 마지막이 될 것임을 깨달았죠. 월요일에 손자들을 불러 그 이야기를 해주셨고 화요일 저녁에 그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리고 수요일 결장암 4기로 돌아가셨어요."

 

"아버지는 할아버지께서 맥주를 원했다고 했어요. 이 사진을 보면 위안이 됩니다."

"할아버지는 웃고 계셨어요. 원했던 걸 하고 계셨죠."

 

 

 

인디애나폴리스에 사는 벤 릭스는 트위터에서 이 사진을 보고 감명받은 사람 중 하나였다. 릭스는 사진을 보고 본인의 할아버지 리언 릭스(86)가 마지막 시가와 맥주를 즐기는 모습이 담긴 사진을 공유했다.

 

벤은 트위터에서 쉠의 사진을 보고 2015년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시가와 맥주를 청했던 것이 떠올랐다고 BBC에 말했다.

 

"제 폰에서 사진을 안 지웠더라고요. 그 사진을 보고 답장을 해서 제 사진을 공유하고 싶었어요. 죽음을 앞둔 한 움큼의 행복이 기분 좋은 일이라는 걸 보니 다시 그때를 회상하게 됐죠."

 

사진이 공감을 얻은 까닭은?

'좋은 죽음'이란 책의 저자 앤 노이먼은 이렇게 말한다. "그 사진이 공감을 얻는 까닭은 그게 우리 모두가 갈망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진은 우리에게 사랑하는 사람들을 생각해볼 기회를 주고 가장 심원한 순간에 쉠의 가족들과 함께할 기회를 주기 때문이죠."

 

"또한 사진은 우리에게 그들과 함께 비통해할 기회를 줍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늙고 병들고 죽는 것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되죠."

 

그는 이 사진 한 장에 모든 이가 자신의 임종 때 바라는 것을 잘 담겨 있다고 말했다. 바로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기.

 

할아버지 임종 때 함께 맥주 파티한 가족들...왜


 

"우리가 언제 죽을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우리는 긴 인생을 살면서 가끔은 가족이 다른 동네 또는 다른 나라에 떨어져 살기도 하죠. 먼 거리 때문에 부모 임종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부지기수입니다."

 

 

 

"임종을 앞두고 의식불명이 되는 사례도 마찬가지로 많습니다. 작별을 고할 순간을 놓친다는 건 인간에게 정말 큰 두려움이죠. 임종을 이렇게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아름답게 맞는 보기 드문 기회를 공유하면서 큰 공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것이 이상적인 죽음의 방식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진에서 한 가지 교훈을 배울 수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모든 시간을 중히 여기라는 겁니다. 맥주를 들어 올리고 손을 맞잡고 이야기를 나누세요. 시간은 유한합니다."

 

드루티 샤

BBC 뉴스, 워싱턴D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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