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의 신·재생에너지 설비, 서울시 황당한 해석 '논란'


아파트 신·재생에너지 생산만 하고 사용은 안해도 된다?… 서울시 황당한 해석 '논란'


     서울시가 신축 아파트의 사업 승인 요건인 ‘신·재생에너지 설비’에 대해 "생산 설비만 설치하고 사용 설비는 설치하지 않아도 된다"와 "고의적으로 신·재생에너지를 사용하지 않는 경우 행정 처분을 받을 수 있다"는 상반된 해석을 내놓아 논란이 되고 있다.


4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2022년 1월 준공 예정인 서울 송파구 거여동 ‘송파시그니처롯데캐슬’의 입주예정자들은 아직 신·재생에너지 냉난방기 설치 여부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신·재생에너지가 아닌 일반 냉난방기를 설치했다가 추후 과태료 부과 및 시정 명령 처분을 받거나 심지어 준공 허가가 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2022년 1월 준공 예정인 서울 송파구 거여동 ‘송파시그니처롯데캐슬’ 투시도. /롯데건설 제공


해당 아파트는 송파구 거여마천뉴타운 2-1구역을 재개발한 단지다. ‘서울특별시 에너지 조례’ 및 ‘서울특별시 신·재생에너지 시설의 에너지 생산량 산정 지침’에 따라 전체 에너지량의 9.05%(6334KW)를 신·재생에너지로 생산해야 한다. 송파시그니처롯데캐슬은 이러한 기준을 맞추기 위해 저층인 1~7층은 신·재생에너지인 지열 냉난방 시스템에어컨을 설치하기로 하고 사업 허가를 받았다. 지열 열펌프에서 끌어올린 열 에너지로 실외기가 에너지를 생산하고, 이를 천장에 부착된 실내기에 공급해 냉난방을 하는 구조다.




냉난방기 설치는 시행사인 재개발 조합이 입주 예정자들과 협의해 자체적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문제가 된 것은 고층에 적용되는 일반 냉난방기 뿐만 아니라 저층에 설치해야 할 지열 냉난방 시스템에어컨 설치도 유상 옵션 계약으로 제시했다는 점이다. 지열 냉난방 시스템에어컨의 가격은 실내기 수에 따라 약 850만원에서 1300만원 사이로 일반 냉난방기에 비해 2배 이상 비싸다.


이에 송파시그니처롯데캐슬 입주예정자협의회(입예협)는 "저층의 신·재생에너지 냉난방기는 사업 승인 조건에 포함된 필수 설비인데, 옵션 계약으로 진행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며 이의를 제기했다. 그러면서 "필수 설비를 분양가에 포함시키지 않은 것은 조합의 귀책 사유로, 조합이 책임지고 설치하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재개발 조합은 "지열 열펌프와 저층 각 세대의 실외기는 설치하겠지만, 실내기는 필수 설비에 포함되지 않으므로 유상 옵션 계약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서울시 녹색에너지과 등 유관 부서에서 받은 ‘실내기가 설치되지 않고 지열 열펌프만 설치되어도 신·재생 에너지 냉난방 설치기준에 부합한다’는 서면 유권해석이 근거였다.


저층 가구에 신·재생에너지 냉난방 실내기가 설치되지 않아도 된다는 취지의 서울시 녹색에너지과 서면 유권해석. /송파시그니처롯데캐슬 입주예정자협의회 제공.




조합 관계자는 본지 통화에서 "서울시 뿐만 아니라 국토교통부, 한국에너지공단 등에서 공통적으로 실내기 설치하지 않아도 문제가 없다는 해석을 받았다"며 "냉난방 실내기를 옵션 계약으로 진행하는 것에 문제는 없다"고 말했다. 실내기를 설치하지 않는 만큼 조합 측이 부담해야 할 비용이 절감된다.


하지만 입예협이 최근 서울시 녹색에너지과와 환경정책과에 ‘신·재생에너지 실내기를 설치하지 않을 경우 불이익이 없느냐’고 질의한 결과, "사후 환경영향평가를 통해 고의로 신·재생에너지 사용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사례가 적발될 경우, 과태료 부과나 시정명령 등에 처해질 수 있다"는 상반된 답변이 돌아왔다.


국토교통부도 지난 2일 ‘친환경주택 건설기준 평가 시 사용된 사용계획승인 도면에 실내기와 관련된 정보가 있고, 이를 기준으로 승인받았다면 실내기를 설치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라는 서면 답변을 내놨다.


입예협 관계자는 "모든 저층 가구에 실내기를 설치해야 하는지, 아니면 일부 가구만 설치하거나 아예 설치하지 않아도 문제가 없는지 통일된 기준이 없어 혼란스럽다"며 "아파트를 다 짓고나서 준공을 퇴짜맞는 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어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저층 가구에 신·재생에너지 냉난방 실내기를 설치하지 않으면 사후 환경영향평가 등을 통해 시정 조치 및 과태료 부과가 가능하다는 서울시 관련부서 답변. /송파시그니처롯데캐슬 입주예정자협의회 제공.


문제가 복잡해지자 서울시는 지난달 ‘환경영향평가 상 지열 에너지 세부설비 설치와 관련된 사항이 없다’며 해당 사안에 대한 판단을 송파구청에 넘겼다. 송파구청 관계자는 "관련 자료를 사업 주체(조합)에게 요청한 상태로 자료가 제출되면 사안을 종합적으로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신·재생에너지 생산 설비만을 갖추고, 사용 설비는 갖추지 않는 편법이 선례로 남게 되면 신·재생에너지 정책 자체가 무력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공희 국민대 건축학과 교수는 "통상 분양가 산정 과정에서 냉난방기 설비는 유상 옵션 계약으로 진행하는 게 대부분이지만, 다만 준공 요건에 포함되는 설


비까지 옵션 계약에 포함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며 "이번 사건으로 관련 조항에 허점이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만큼 보완 절차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관계기관에서 일관되지 않은 해석을 하면서 문제가 복잡해진 것 같다"며 "시행사를 믿고 분양받은 입주 예정자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하는 원칙이 지켜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최상현 기자  조선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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