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책의 날과 셰익스피어 [추천시글]

 

 

세계 책의 날과 셰익스피어

2021.04.23

 

4월 23일은 '세계 책의 날',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입니다. 유네스코는 독서, 출판, 저작권 보호의 촉진을 목적으로, 1995년 파리 회의에서 이날을 제정하여 1996년부터 기념일로 실시해 오고 있습니다. 유네스코 홈페이지는 4월 23일이 셰익스피어, 세르반테스, 베가(Vega) 같은 대작가들이 사망한 날이어서 이날이 자연스레 책의 날로 선정되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또 한국유네스코 홈페이지에는 “4월 23일은 스페인 카탈루니아 지방에서 전통적으로 책을 사는 사람에게 꽃을 선물했던 세인트 조지의 날과 1616년 세계적 작가인 세르반테스, 셰익스피어가 사망한 날에서 유래한다.”고 적혀 있습니다.

 

그러니 세계 책의 날이 셰익스피어 사망일과 관련 있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래서 셰익스피어 사망일을 맞이하여 그의 미스터리한 생애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셰익스피어는 제임스 1세의 후원을 받은 '왕의 극단'(King’s Men)의 전속 극작가로 그 유명한 4대 비극을 비롯하여 38편의 극을 집필했습니다. 그런데 왕의 후원을 받을 정도로 잘 나가던 당대 최고 극단의 전속 극작가였던 셰익스피어에 대한 기록은 아주 단편적이고 불확실해서 셰익스피어 삶은 수수께끼로 남아 있습니다. 자필 원고도 전혀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저 셰익스피어의 세례 기록이나 결혼, 사망 신고서, 자녀들의 세례 기록 등만이 남아 있을 뿐입니다.

 

 

셰익스피어의 생가 마을인 스트랫포드 어펀 에이번에는 그가 1564년 4월 26일에 세례를 받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당시 태어나서 2, 3일 뒤에 세례를 받았던 관습에 비추어 그의 탄생일을 4월 23일로 추정합니다. 그러면 탄생일과 사망일이 둘 다 4월 23일이 됩니다. 이런 사실은 셰익스피어 신비화에 자주 이용되곤 합니다. 그리고 1582년 11월 27일에 발행된 결혼 증서를 통해 볼 때 셰익스피어는 18세 어린 나이에 앤 해서웨이(Anne Hathaway)라는 이웃 마을 여성과 결혼했습니다. 그런데 앤 해서웨이의 묘석기록으로 추정해볼 때 그녀는 셰익스피어보다 여덟 살 연상입니다. 부부의 나이 차이가 이렇게 많이 나는 데다가 결혼한 지 6개월도 안 되어 첫째 딸 수잔나를 출산했기 때문에(세례 증명서 기록 참조) 두 사람의 결혼에 온갖 추측이 난무합니다.

 

수잔나에 이어 태어난 쌍둥이 남매 햄닛과 주디스의 세례 기록이 남아 있는 1585년부터 1592년까지 셰익스피어에 대한 기록이 전혀 없어서 이 시기를 ‘잃어버린 시기’라고 합니다. 하지만 당시 공연 기록을 통해 1580년대 후반부터 셰익스피어가 런던의 극장에서 수습배우로 활동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단역 배우로 명단에 셰익스피어 이름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동료 극작가인 로버트 그린(Robert Greene)이 1592년에 쓴 비방 글을 통해서 셰익스피어가 이때쯤에는 극작가로 명성을 떨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벼락출세한 까마귀가....이 나라의 무대를 흔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비난하는데, 이 글에서 쓰고 있는 표현들 상당수가 셰익스피어가 극 속에서 사용한 문구들이고 “Shake-scene”이라는 단어가 Shakespeare 이름을 이용한 말장난으로 여겨져 이것이 셰익스피어를 저격한 글이라고 학계에서는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제 글에서 '추측, 추정, 여겨지다'라는 표현들이 넘친다는 것을 느끼셨을 겁니다. 그만큼 셰익스피어의 생애와 관련된 주장들은 무엇 하나 명료한 것이 없고 각종 정보들을 짜깁기하여 만들어진 추정에 불과한 것들입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셰익스피어라는 작가에 대한 미스터리의 핵심에는 그의 학력과 그의 작품에 담긴 박학다식한 지식 사이의 괴리입니다. 셰익스피어는 사립 초등학교인 그래머 스쿨만 다니고 13세에 학업을 마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에 비해 그의 극 속에 담긴 수많은 고전 문헌, 지리, 법률, 천체, 역사, 의학 등에 대한 해박한 지식 등이 많은 의문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지금처럼 누구나 맘만 먹으면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을 수 있는 때도 아니었기에 셰익스피어 진위 논란은 수 백 년 동안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급기야 2007년 7월에 셰익스피어 관련 업종에 종사하는 영국의 유명 배우와 연출가 등 287명이 모여 우리가 셰익스피어로 알고 있는 그 작가가 그의 극을 쓴 진짜 작가가 아닐 수도 있다는 ‘합리적 의심 선언’을 발표하기에 이릅니다.

 

지금까지 셰익스피어 작품들을 쓴 실제 인물로 거론되어 온 사람들은 당대 최고의 지성인이자 정치가요, 경험론의 창시자인 프랜시스 베이컨(1561-1626), 젊은 나이에 의문의 죽음을 당한 동시대 극작가 크리스토퍼 말로(1564-1593), 셰익스피어 후원자 중 한 명으로 알려진 옥스퍼드 백작 에드워드 드 비어(1550-1604), 그리고 셰익스피어의 먼 친척인 외교관 헨리 네빌(1564-1615)입니다. 이들이 진짜 셰익스피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각자 저술을 통해 자신들이 그렇게 주장하는 근거를 제시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셰익스피어 학계가 공식 인정을 한 사람은 없는 실정입니다.

 

 

또한 그의 극은 한 사람이 쓴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쓴 거라는 주장도 계속 제기되어 왔습니다. 실제로 셰익스피어 일부 극들은 토머스 미들턴이나 존 플레처 같은 작가들과 공저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셰익스피어 사망일에 훑어본 미스터리한 생애, 그러나 한 가지만은 확실합니다. 그가 진짜 누구이든, 인간에 대한 무한한 통찰력을 갖고, 인간에 대한 연민과 동정의 마음으로 다양한 인간의 삶을 그려낸 작가 덕분에 우리가 세상을, 사람을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는 사실 말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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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권오숙

한국외대에서 셰익스피어 연구로 박사학위 취득. 현재 한국외대, 서울과학기술대 외래교수, 한국셰익스피어학회 연구이사. 주요 저서 『셰익스피어: 연극으로 인간의 본성을 해부하다』 『청소년을 위한 셰익스피어』, 『셰익스피어와 후기 구조주의』, 『셰익스피어 그림으로 읽기』 등. 『햄릿』, 『맥베스』,『리어 왕』, 『오셀로』, 『베니스의 상인』, 『살로메』 등 역서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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