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기관과 소송, 공평하지 않다"

 

국가기관과 소송, 공평하지 않다 [고영회] 

2021.04.19

 

살면서 이런저런 부당하다고 여기는 일을 겪을 수 있습니다. 이때는 분쟁을 해결하는 소송에 들어갑니다. 소송은 주로 3심제로 첫 재판 결과가 불만스러우면 항소심(2심)에 이어 상고심(3심)에서도 다툴 수 있습니다. 개인들이 서로 다툴 때는 공격과 방어 수단에 차별은 없다고 봅니다. 물론 개인이라도 재력에 따라 능력 있는 대리인을 구할 수 있으니 돈이 많고 적음에 따라 재판 결과가 영향을 받을 수 있지만, 차별이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소송 상대방이 국가, 지방자치단체, 공기업(이들을 ‘국가기관’이라 부르겠습니다.)같이 자기 돈을 쓰지 않는 상대일 때에는 사정이 달라집니다. 상대방은 소송비용에 거의 부담을 느끼지 않지만 그들을 상대로 싸움을 벌여야 하는 사람은 공격과 방어에서 현저하게 차별이 생깁니다.

 

 

​“2020년 4월 한국국토정보공사 최창학 사장은 ‘갑질 의혹’ 논란으로 해임됐습니다. 이에 최 사장은 부당하다면서 임명권자인 대통령을 상대로 해임취소 소송을 제기하였고, 2021년 2월 26일 서울행정법원은 해임처분을 취소하라고 판결했습니다. 여기까지 해임처분이 부당하다고 다투는 것은 당사자에게 주어진 권리입니다. 문제는 그 다음에 생겼습니다. 1심에 패소한 피고(대통령)는 항소하면서 대리인을 선임하면서 1심과는 달리(1심에서는 정부 법무공단 소속 변호사 5명이 대리인으로 참여), 2심에서는 민간 법무법인에 맡기면서 변호사 3명을 대리인으로 선임하였고, 국토교통부는 자신들도 피고인 대통령의 보조참가인으로 신청하면서 민간 법무법인 변호사 3명을 선임하여 소송에 함께 참여겠다고 나섰고, 한국국토정보공사가 피고인 대통령의 보조 참가자로 소송에 참여하겠다고 또 변호사를 5명 선임했다고 합니다. 결국, 개인 최창학 사장은 피고 쪽(피고와 보조참가인 2인) 3개 법인 총 11명의 변호사를 상대해야 할 형편이라 합니다.”

 

​국가기관은 공익목적으로 있고, 나라 예산으로 운영됩니다. 이런 국가기관을 상대로 하는 소송에서는 국민 개인이 1심을 이긴다고 하더라도, 국가기관은 고등법원과 대법원까지 소송을 끝까지 끌고 나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국가기관이 1심에서 졌는데도 끝까지 소송을 계속하는 이유는 뭘까요? 1심 판결이 부당하므로 항소심에서 바로잡아야 하는 사건도 있겠지요. 그렇지만 1심에서 졌으니 최종으로 질 가능성이 높은 데도, 2심과 3심까지 가는 다른 사정은 없을까요?

 

 

​공적 업무를 잘못 처리했다면 문책받아야 합니다. 여러 사건에서 보면 문책받아야 할 이들이, 걸지 않아도 될 소송을 겁니다. 최종 3심까지 가서 ‘법원이 그렇게 판단하는데 어쩔 수 없지.’ 하면서 법원을 핑계 삼아 문책을 피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는게 아닐까요? 대법원 판결이 나올 때쯤이면 그 책임자는 다른 자리에 가 있을 것이고, 후임자는 그가 저지른 일이 아니어서 그를 문책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소송을 계속하는 것은 잘못을 저지른 담당자가 책임을 피하는 수단으로 활용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도 생깁니다.

 

​개인이 국가기관과 싸움을 벌일 때 공격과 방어 면에서 공평하지 못합니다. 국가기관은 소송을 벌일 조직과 자금을 갖고 있습니다. 이들은 조직 안에 법률가나 법률문제를 담당할 부서가 있어 법률검토, 증거자료 수집에 어려움이 없습니다. 소송비용도 국민세금으로 내니 소송비용 부담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국민 개개인은 자기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합니다. 법률지식은 이리저리 물어보거나 책으로 공부해야 합니다. 사건 하나 당해보면 법률전문가가 된다는 넋두리가 틀린 말이 아닙니다. 잘못은 국가기관이 저질러도 바로잡을 책임은 국민 개인만 지는 셈입니다.

 

국민 개개인과 국가기관이 서로 다투는 일이야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사법제도의 1심에서 잘못됐다고 판단한 사건을 국가기관이 대부분 2심과 3심까지 끌고 가는 것은 공평하지 않습니다.

 

 

국가기관이 부당하게 처리했다고 생각했던 국민은, 국가기관이 잘못했다는 판결을 받아내기가 참 힘겹습니다. 국가기관은 소송하는 데 별로 부담이 없습니다. 국가기관은 설령 자신이 잘못했다 할지라도 꽃놀이패처럼 끝까지 싸움을 계속하려 하고, 그런 국가기관을 상대로 다툴 때 생기는 모든 짐을 국민이 부담해야 합니다. 국가기관이 그렇게 끌고 가면서 생긴 소송비용은 누가 부담합니까? 공평하지 않습니다.

 

​국가기관이 1심에서 졌다면 먼저 결과를 받아들이는 게 좋겠습니다. 그래도 판결이 잘못됐기 때문에, 잘못을 바로잡아야 할 사건이라면, 항소사건 이후에서는 국가기관이 상대방의 소송비용을 부담토록 할 것을 요구합니다. 국가기관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자기가 가진 권력과 예산을 자신들 맘대로 쓰는 환경이어서는 곤란합니다. 공권력을 향해 국민의 분노가 쌓이지 않는 사회가 돼야겠습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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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고영회

경남 진주에서 태어나 진주고(1977), 서울대 건축학과(1981)와 박사과정을 수료(2003)했으며, 변리사와 기술사 자격(건축시공, 건축기계설비)가 있습니다.

대한변리사회 회장, 대한기술사회 회장, 과실연 공동대표, 서울중앙지법 민사조정위원을 지냈고, 지금은 서울중앙지검 형사조정위원과 검찰시민위원, 대한상사중재원 중재인, 법원 감정인입니다. 현재 성창특허법률사무소 대표와 ㈜성건엔지니어링 대표이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mymail@patinf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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