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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만의 만년필

2020.05.12

엄지를 올리며 “토마스 만은 최고야.”하는 어떤 분의 이 말 한마디에 저는 아주 오래된 기억을 뒤적여야 했습니다. 으스스한 제목 때문에 수십 년 전 공포소설로 착각하여 잡자마자 내려놓았던 <마(魔)의 산(山)>은 어렵고 지루한 책이었습니다. 뭐든 따라 하고 싶은 분의 말씀이라서 저도 토마스 만의 책을 읽고 엄지를 척하고 올리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토마스 만의 만년필’ 역시 꼭 풀어야 하는 수수께끼였습니다.

한동안 토마스 만을 열심히 조사했습니다. 정말 운 좋게도 만년필을 들고 있는 사진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사진은 1939년에 촬영된 것이었습니다. 토마스 만은 의자에 앉아서 안경을 쓰고 입에 담배를 문 채 자기가 지은 책 몇 권을 무릎에 올리고, 오른손으로 만년필을, 왼손으론 책의 겉장을 잡고 속지에 서명하고 있었습니다. 흑백사진이고 만년필은 작게 보이지만, 모델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선명했습니다. 저작권이 있는 유료 사진이라 사진을 사용할 수 없는 것이 안타깝지만, 다행히 이것과 같은 만년필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어 며칠 뒤 사진을 찍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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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마스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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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필은 은회색 줄무늬가 사선으로 들어간 미국 워터맨사(社)의 잉크 뷰로 1930년대 아르데코 형식의 전형적인 아름다운 것이었습니다.토마스 만이 1938년 미국으로 이주해 2년간 프린스턴 대학의 객원 교수로 지낼 때 구입한 것같습니다. 1930년대 후반 만년필의 종가(宗家) 워터맨은 파커와 셰퍼에 밀리고 있었고, 당시 가장 인기 있던 만년필은 파커의 버큐메틱이었습니다. 때문에 생산 기간과 숫자도 적어 지금 남아 있는 것은 파커의 버큐메틱보다 훨씬 적습니다. 토마스 만은 왜 저 만년필에 끌렸던 것일까요? 이제 그의 책을 읽어야 할 때입니다.

워터맨 잉크 뷰(Waterman Ink View silver ray 1935~1940)

이번엔 예전과 달리 만반의 준비를 하였습니다. 두툼한 노트 한 권과 만년필 몇 자루를 준비하였습니다. 지루해지면 필사(筆寫)를 하여 그 고비를 넘길 요량으로 말입니다. 앞부분은 별로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1권이 끝나고 2권에서 새로운 인물 나프타가 등장하자 책은 점점 지루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세템브리니와 나프타는 만나면 논쟁을 했는데 상당히 지루했습니다. 고비가 마침내 온 것이었습니다. 저는 비장의 카드인 만년필을 잡았고, 어렵거나 지루한 부분은 필사를 했습니다. 고비가 지나니 책은 술술 잘 읽히기 시작했습니다. 책을 다 읽는 데는 10일 정도 걸렸습니다. 70페이지 정도 필사를 하느라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걸렸습니다. 5월 황금연휴 내내 열심히 <마의 산>을 읽었습니다. 시간은 아주 빨리 갔습니다.책을 다 읽고 나니 토마스 만이 은회색 워터맨 만년필을 선택한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반갑게 만년필이라는 단어가  한 번 언급되었지만 구체적인 묘사가 전혀 없어 이것이 힌트가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책에서 드러나는 작가의 취향입니다.

아래는 책에서 표현된 주인공의 소지품과 주요 인물에 나타난 컬러입니다.

1. 손목에는 백금으로 된 사슬 모양의 팔찌를 찼고(한스 카스토르프의 팔찌)
2. 그의 눈은 청회색이거나 회청색이어서(히페의 눈동자)
3. 그것은 은으로 도금한 연필로서...(히페의 연필)
4. 먼 산처럼 회청색이나 청회색을 띠는 눈(쇼샤의 눈동자)
5. 은제 연필을(쇼샤의 연필)

<마의 산>에 등장하는 인물 소개를 하면 한스 카스토르프는 주인공으로 24세의 청년입니다. 히페는 한스 카스토르프가 13세 때 다니던 학교에서 호감을 가졌던 학생이고, 히페를 닮은 쇼샤는 한스 카스토르프가 요양원에서 사랑에 빠지는 러시아 여성입니다.

제시된 5개의 표현에서 느껴지는 것이 있나요? 한스 카스토로프. 할아버지와의 추억에서도 그가 좋아하는 1650년에 만들어진 세례반(洗禮盤)이 등장하는데 이 역시 은(銀)으로 만들어진 것이었습니다. 이 오래된 세례반은 극 전개상 매우 중요한 물건입니다. 정리하면 모두 은색 계열입니다. 취향은 소지품에서 읽을 수 있고 거꾸로 소지품으로 취향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진상의 만년필이 책 어디에 슬쩍 들어가 자리를 잡으면 이상할까요? 저는 하나도 이상할 것 같지 않습니다. 만년필의 수수께끼는 풀렸습니다. 하지만 엄지 척은 아직입니다. “토마스 만의 <마의 산>은 힘들었습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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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박종진

1970년 서울 출생. 만년필연구소 소장. ‘서울 펜쇼’ 운영위원장.
저서: ‘만년필입니다’, ‘만년필 탐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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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싶은 정필례 선생님

2020.05.11

초등학교=정필례, 우문자, 승◯◯, 심희택-이태수, 유영팔, 전병선. 중학교=박영희, 박영희, 노재찬. 고등학교=박종렬, 박흥서, 홍순태. 이상 열두 분이 나의 담임 선생님입니다. 이름만 세면 열세 분이지만, 초등학교 4학년 1학기와 2학기 담임이 다르고, 중학교 1, 2학년 때는 같은 분이 계속 담임을 하셔서 열두 학년에 열두 분입니다.

이 중 중학교와 고등학교 때 선생님은 각각 한 분씩 돌아가셨습니다. 초등학교 선생님들은 아마도 거의 다 고령으로 돌아가시지 않았나 싶습니다. 대학의 우리 학과 은사 다섯 분 중에서는 최근 한 분이 또 돌아가셔 이제 한 분만 계십니다.

초등 3학년 담임은 3학년으로 올라간 지 얼마 안 돼 돌아가시는 바람에 유일하게 이름이 생각나지 않습니다. 출산 후 곧 돌아가신 것 같은데, 날계란을 먹어 잘못됐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무슨 근거가 있는지 모르겠으나 어른들이 그렇게 말하는 걸 들었습니다.  

선생님이 출근하지 못할 때, 임시 담임교사가 급장인 나에게 문병을 가라고 해서 학교 앞 선생님 집(아마 하숙이었던 듯)에 찾아간 일이 있습니다. 산후조리 기간이었겠지요. 먼발치에서 보니 선생님이 거울 앞에서 머리를 빗으며 골똘히 화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나무 뒤에 숨어 지켜보는 동안 그 모습이 너무도 낯설고 이상하고 무서워서 그냥 되돌아오고 말았습니다. 임시 담임교사가 가르쳐주신 인사말을 수없이 외우고 갔는데도.

나는 그때 몹시 수줍었습니다. 1학년 정필례 선생님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그 선생님은 광대뼈가 약간 나왔지만 얼굴이 시원한 미인이었고, 학교 행사 때 풍금을 도맡아 치시던 분입니다. 1학년 마치고 2학년으로 올라갈 무렵, 선생님은 2학년 담임으로 정해진 우문자 선생님께 내 이야기를 했습니다. 마침 근처에 있던 내가 눈에 띄었던 모양입니다. 정 선생님이 “애가 수가 좁아.” 그러자 그분보다 젊은 우 선생님(당시 계룡초등학교 최고 미인)이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이더군요.

나는 그때 수가 좁다는 게 무슨 말인지 몰랐습니다. 다만 그 말을 할 때 사랑스럽게 바라보던 선생님의 눈길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정작 2학년에 올라가서는 수줍기는커녕 친구들과 장난(주로 교실에서 안고 뒤지기)을 너무 많이 쳐 내 인생에 전무후무하게도 ‘주의가 산만하다’는 나쁜 기록을 통지표에 남겼습니다. 가만히 생각하면 우 선생님은 날 싫어했던 거 같습니다. 얼굴이 예뻐서 매사 남자들의 눈길만 의식할 뿐 장래가 촉망되는 학생을 보는 눈이 없었던 탓이라고 주장하는 바입니다.

4학년 때가 최악이었습니다. 아버지와 초등학교 동기(그러니까 두 분 다 나의 초등학교 선배)인 선생님은 왕년에 라이벌이었던 친구의 아들을 엄격하게 대하는 걸 넘어 매일 못살게 닦달했습니다. 친구의 아들이니 더 잘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이었는지 몰라도 친구한테 당한 걸 그 아들에게 갚는 게 아닌가 싶을 만큼 나는 선생님이 이상해 보였고, 학교가 지옥같이 가기 싫었습니다.

무슨 일이든 나를 본보기로 삼아 벌주고, 싫어하는 산수 문제를 풀지 못하면 그것도 모른다고 혼내고, 신체검사할 때 교수 아들이 이게 뭐냐, 목간도 안 하고 사냐며 등짝을 때리고(다른 애들은 더 더러운데!) 그러니 학교 다닐 맘이 나겠습니까? 주눅이 들어 시키는 심부름도 제대로 못할 지경이었습니다. 선생님이 여름방학 중 작두질을 하다가 왼손 엄지가 잘려 나가는 바람에 2학기에 담임이 바뀐 게 좋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새로운 담임은 이상한 분이었습니다. 걸핏하면 옷 벗는 벌을 주고, 몽둥이로 성기나 둔부를 건드리면서 놀렸습니다. 아직 어리다 해도 남녀공학인 교실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요즘 같으면 즉각 교체되거나 쫓겨났을 겁니다. 그분이 다른 선생님과 함께 우리 동네까지 왔다가 눈치 없고 숙맥인 내가 집에 들어가시자는 말을 하지 않자 그대로 가버린 일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한테 혼이 났는데, 그 점은 두고두고 죄송합니다. 저 멀리 신작로길 산모퉁이를 걸어가던 선생님의 담배 연기가 지금도 생각납니다.

누구에게나 초등학교 1학년 담임교사가 중요합니다. 정필례 선생님 이야기로 돌아갑니다. 1학년이 끝났을 때 서울에서 고교 교사(교수가 된 건 몇 년 뒤)를 하고 있던 아버지가 선생님 드리라며 당신의 저서를 보내왔습니다. 노란 표지의 책 제목은 ‘알기 쉬운 생물 실험’. 지금 생각하면 시골 초등학교 교사에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책이었습니다.

하여간 그 책을 드렸더니 잠깐 기다리라고 한 뒤 신문지에 싼 것을 답례로 주셨습니다. 인사를 하며 뒷걸음질하다가 뒤로 넘어질 뻔했는데, 뜀박질해 집으로 가는 동안 궁금해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무도 없는 산 고갯길에서 호호 손을 불며 풀어보니 공책과 함께 연필 여러 자루가 들어 있었습니다. “공부 열심히 해라” 하면서 주신 그 선물에 나는 뛸 듯이 기뻤습니다. 선물이라곤 받아본 일이 없는 산골 아이에게 그 학용품은 함부로 쓸 수 없는 보물과도 같았습니다.

그 뒤 수도 없이 많은 필기구를 만지고 지금은 너무도 헤프게 여러 가지를 쓰고 있지만, 정필례 선생님의 연필만큼 좋고 귀한 게 없는 것 같습니다. 살아 계시다면 아흔쯤 되셨겠지요. 졸업 후 소식을 전혀 모르지만 늘 건강하고 평안하시기를 빕니다. 며칠 후면 다시 스승의 날입니다. 내 가족과 주변엔 선생님들이 많은데 나는 남을 가르쳐본 적 없이 가르침만 받고 사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지난 일을 돌이켜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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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임철순(任喆淳)

한국일보 편집국장 주필, 이투데이 이사 겸 주필 역임. 현재 한국언론문화포럼 회장. 한국기자상, 삼성언론상, 위암 장지연상 등 수상. 저서 ‘노래도 늙는구나’, ‘효자손으로도 때리지 말라’, ‘손들지 않는 기자들’, ‘내가 지키는 글쓰기 원칙’(공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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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원수, 적이 도우미 되는 세상

2020.05.08

-인간은 참 이상한 동물이다. 휴대폰에 찍힌 전화번호가 처음 보는 번호면 대부분 받지 않는다.
-집에 사람이 찾아와도 인터폰으로 슬쩍 보고 잡상인이거나 모르는 사람이면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처음 보는 사람한테 돈을 꿔 주는 사람도 없다.
-그런데 우리는 대부분 처음 보는 사람과 사랑에 빠진다.

‘막시무스’라는 필명으로 이근영이 쓴 <지구에서 인간으로 유쾌하게 사는 법>이란 책에 나오는 ‘농담사전’ 중 ‘사랑’이라는 대목입니다. 그는 유명 인사들의 인생을 에피소드 형식으로 펼치면서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과 철학을 압축적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특히 농담사전은 보통사람의 심리와 상식을 뒤엎는 반전(反轉) 논리가 미묘하고 특이합니다. 히죽 웃음이 나오면서도 수긍할 수밖에 없는 마력이 있습니다.

농담시리즈에서 ‘적’은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적(敵)과는 판이한 인생 멘토입니다.
-적은 당신보다 당신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는 사람이다. 적은 늘 당신의 단점과 허점을 생각한다. 적이 보는 당신의 모습은 당신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정확하다.(중략)
-그래서 적은 당신의 인생 도우미다. 만약 당신에게 적이 없다면 당신의 인생은 지금보다 개선될 여지가 거의 없다.

사랑하는 사람끼리 원수가 되고, 철천지원수인 적과도 동침하는 인간세태의 변화무쌍함이 마음먹기에 달렸음을 되새기게 하는 심상의 아이러니입니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터득한 해탈의 경지랄까. 아니면 잔망스럽고 간특한 인간에 대한 심리분석이랄까….
같은 사안을 두고도 생각의 틀(frame)을 바꾸면 삼라만상이 달라 보이는 요지경 현상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남미의 브라질에는 원시시대부터 이어오는 결혼자격시험이 있다고 합니다.
브라질의 결혼자격시험은 엄격하고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우선 결혼하려는 남녀는 열흘간 정부가 설립한 전문기관에서 합숙하며 하루 6~7시간씩 결혼생활과 부부관계, 일반 위생과 자녀교육 등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이 과정이 끝났다고 바로 결혼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교육 과정을 끝내고 결혼자격시험에 합격해야 비로소 자격증을 받아 혼례를 치를 수 있다고 합니다.

합격하지 못한 사람도 결혼이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하루 이틀 재교육을 받은 후 다시 자격시험에 응할 수 있습니다. 다만 여기서도 떨어져 자격증을 받지 못한 채 결혼하면 아무런 법률적인 보장을 받을 수 없습니다. 자녀 입학이 제한되고, 사회적 지위를 공인받지 못하며, 재산상속 문제에 있어서도 부부로서의 인정을 받지 못한다고 합니다. 1가구 1자녀 정책을 엄격히 적용하던 중국에서 둘째 아이부터는 호적에 올리지도 못했던 헤이하이즈(黑孩子)처럼 아이들은 공중에 뜨고 맙니다.

이러한 풍습은 과거 부족사회 시절 통나무를 짊어지고 옮기거나 채찍질을 견뎌 내는 등 부족마다 다른 테스트 관습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남성의 노동력과 종족보존 능력에 방점이 주어졌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평균연령이 높아지고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육체적 테스트가 아닌 시험으로 바뀌었습니다.
꼭 자격시험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오늘날 브라질은 세계에서 이혼율이 가장 낮은 나라 중의 하나라고 합니다. 우리의 상식과는 엄청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부처님 오신 날을 소소(簫簫)히 보내고 나서 새삼 ‘사랑’과 ‘적’을 떠올린 것은 불교 개혁을 주창한 휴암(休庵 1941~1997) 스님의 법문이 떠올라서입니다. 스님이 입적한 그해 봄 경북 영천 은해사(恩海寺) 말사인 기기암(寄寄庵)에서 주지스님 휴암의 법문을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다 제쳐두고 기억에 남는 건 기기암이 기신사바 기심정토(寄身娑婆 寄心凈土 : 몸은 속세에 있지만 마음은 극락에 있다)에서 유래했다는 설명입니다. 허허바다에서 마음 둘 곳을 알려주는 나침반이랄까….

계절의 여왕, 가정의 달을 맞은 이 봄에 결혼을 연애의 무덤으로 만들지 않는 사랑, 적도 동지로 받아들이는 아량과 포용이 충만한 5월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허황한 송춘가(頌春歌)를 읊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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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김홍묵

경북고,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동아일보 기자, 대구방송 이사로 24년간 언론계종사.  ㈜청구상무, 서울시 사회복지협의회 사무총장, ㈜화진 전무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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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의 추억

2020.05.07

그날도 한탄강 물줄기는 하늘빛을 받아 맑고 푸르게 흐르고 있었습니다. 보리가 미처 여물기 전, 그래서 보리밭도 파랗게 물결치고 있었습니다. 강물이 내려다보이는 둑길을 터덜터덜 걷고 있을 때였습니다. 어디선가 윤용하의 ‘보리밭’이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이런 곳에서 저 노래를 듣게 되다니? 나도 몰래 양 볼에서 주르르 눈물이 흘렀습니다. 군복을 입고 부대로 돌아가는 병사의 꼴이라니…

처음 받아본 유격훈련은 그야말로 도깨비굴에 뛰어든 거나 다름없었습니다. 외줄다리를 배치기로 밀어 건너기, 세줄다리 건너기, 밧줄을 당겨 급경사의 나무판 오르기… 물론 옳게 해낸 종목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때마다 엎드려뻗쳤다가 쪼그려 뛰었다가 무릎을 꺾고 오리걸음 하다가 원산폭격(정수리와 모둠발을 땅에 대고 버티기)까지… 사이사이 유격체조인지 도깨비춤인지도 빼놓지 않았습니다.

종일 빨간 모자 유격대 조교들에게 휘둘리다 보니 넋이 빠져 힘든 줄도 몰랐습니다. 훈련이 끝났다고, 알아서 부대로 돌아가라고, 그 소리에 비로소 물먹은 솜처럼 나사 풀린 기계처럼 퍼져 앉고 말았습니다. 오리 정도의 귀대 발걸음도 천근만근이었습니다. 흐르는 강물, 출렁이는 보리 이삭을 굽어보며 절로 처연해지던 심사에 ‘보리밭’ 선율이 돌멩이처럼 날아든 것이었습니다.

이듬해 오월은 참으로 눈부셨습니다. 위병소로부터 “방 일병, 면회!” 하는 전화를 받고는 용수철처럼 튀어 일어나 내달렸습니다. ‘보나 마나 작은형이겠지,’ 꽁보리밥 점심에 쓰잘데없는 사역은 면하게 됐다고 쾌재를 부르면서. 한 해 먼저 입대한 형은 이웃한 미군 부대에서 카투사(미 육군에 파견된 한국군) 병으로 복무 중이었습니다. 매일 빵과 버터, 고기와 과일로 포식한다는 형은 도로 공사에 나선 국군 병사들을 노무자인 줄로만 알았다며 동생의 졸병 생활을 측은해하던 터였습니다.

뜻밖에 부대 앞에서 기다리는 이는 함지박만 한 음식 그릇을 이고 계신 어머니였습니다. 저 무거운 것을 이고 이 먼 시골 부대까지… 한동안 멍해져 인사도 제대로 차리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형에게 먼저 기별해 안내를 받으셨던 모양입니다.

형과 내가 몇 번이나 손을 내밀었지만 어머니는 “군복에 음식 그릇이라니”, 한사코 마다하시며 그 무거운 것을 머리에 인 채 보리밭 사잇길을 걸었습니다. 한탄강이 내려다보이는 둑방 옆 나무 그늘에서 세 모자가 나란히 앉아 점심을 먹었습니다. 철없던 어린 시절 가슴속에 겹겹이 쌓아두었던 빙하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녹아내리고 있었습니다.

“애비 없는 후레자식 소리를 들을 테냐?” 홀로 다섯 남매를 키우시며 언제나 호랑이같이 무섭기만 했던 어머니. 생계 꾸리기에 바쁜 탓에 이 아들을 찾아주신 건 딱 세 번이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웅변대회 대표로 뽑혔다가 발목이 접질려 대회는 못 나가고 도리어 담임선생님이 사 주시는 위로의 설렁탕을 얻어먹었을 때, 그 얘기를 전해 들으며 아무 말씀도 않으시더니 이튿날 와이셔츠 한 장을 사 들고 처음 아들 학교를 찾아 담임선생님께 감사의 인사를 올렸습니다. 논산 훈련소 얼어붙은 땅바닥을 박박 기어 6주간의 첫 훈련을 끝내고 부산에서 막 2차 교육을 받게 되었을 때 어머니는 이번처럼 음식을 한 보따리 싸 들고 찾아주셨습니다.

“내가 하늘을 날고 싶었는데…” 이따금 장탄식에 놀라곤 했지만 정말 젊은 시절 꿈과는 너무도 다르게 살아야 했던 어머니였습니다. 동란 와중에 남편을 잃고 어린 자식들을 홀로 떠안은 어머니, 그 고통과 슬픔을 어찌 짐작이나 할 수 있었겠습니까. 날개옷을 잃어 하늘나라에 오르지 못했다는 선녀처럼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붙들려 꿈은 천상에, 몸은 궂은 땅에 머물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오월이 되면 한탄강 둑길에서 들었던 보리밭 선율이 떠오릅니다. 그 둑길 옆으로 파랗게 물결치는 보리밭 사이를 하얀 모시 치마저고리를 입고 걸으시던 어머니 모습도 떠오릅니다.

오월을 가정의 달이라고 하지요. 어린이날, 어버이날이 함께 모인 달입니다. 요즘엔 도리어 가족 해체를 걱정하는 소리가 높기도 하지만 이래저래 가족을 많이 생각하게 하는 달입니다.

어머니가 떠나신 지도 어느덧 15년. 형제자매들의 건강이 예전 같지 않아 모임도 점점 뜸해집니다. 사는 곳도 점점 멀어져만 갑니다. 어머니가 살아계실 때엔 그 품으로 모여 들곤 했었는데 언제부턴가 오히려 자식들을 쫓아가며 살고 있습니다. 모든 게 예전과는 사뭇 다른 모습입니다. 살아계실 때엔 의식하지도 못했었는데 어머니의 큰 울타리가 새삼 그리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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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방석순

스포츠서울 편집국 부국장, 경영기획실장, 2002월드컵조직위원회 홍보실장 역임. 올림픽, 월드컵축구 등 국제경기 현장 취재. 스포츠와 미디어, 체육청소년 문제가 주관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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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생연분 vs 웬수

2020.05.06

“노 기자, 남편이랑 생년월일이 같은 거 맞지요? 참, 그새 나 몰래 갈라선 건 아니겠지요?”
“전 재산이 집 한 채라 갈라설 수가 없어요. 그랬다간 누군가는 살 곳조차 없는 걸요. 생년월일이 같은 건 변함없고요. 하하하~”

며칠 전 퇴근길, 마라톤 동호회 대장과의 통화 내용입니다. LG전자가 ‘부부의 날’을 기념해 진행하는 ‘천생연분 이벤트’에 꼭 참여하라는 전화였습니다. 생년월일이 같은 부부를 위한 이벤트입니다. 로또는커녕 ‘떡볶이 내기’ 사다리 타기에서조차 늘 밀리는 ‘꽝손’인지라 “에이, 당첨될 일이 없습니다”라고 웃으며 끊었습니다.

그런데 이벤트 내용을 찬찬히 살펴보니 선물에 욕심이 생깁니다. 늘어진 피부를 올려주고 주름까지 없애준다는, 그 유명한 ‘ㅍㄹㅇ’ 미용기기를 준다고 합니다. 선착순으로 스무 쌍을 뽑는다니 기대도 좀 됩니다. 우리나라에 생년월일이 같은 부부가 그리 많을 것 같진 않기 때문입니다.

26년 전 경향신문에 입사해 같은 날 태어난 동기를 만났습니다. 생김새, 성격, 취미 등 통하는 것 하나 없는데, 놀라운 인연이다 싶어 붙어 다녔지요. ‘한 쌍의 바퀴벌레’, ‘못난이 쌍둥이’라 부르며 놀리는 선배들도 많았습니다.

결혼 24년 차인 지금은 어떻냐고요? 티격태격이 현실입니다. 긴 세월, 참 많은 일을 겪으며 함께 웃고 울었는데, 툭하면 감정이 상해 싸우고 있습니다. 친구들과 만난 자리에선 자연스럽게 남편 흉을 보고 비난하기 일쑤입니다. 그 남자도 마찬가지겠지요. 식성과 생활습관이 유사하면 생김새는 물론 감정, 심지어 병까지도 닮는다니 말입니다.

요즘엔 ‘부부싸움의 도(道)’라는 우스개가 허투루 들리지 않습니다. “상대방 특기와 주먹의 강도 등을 미리 아는 것이니 이를 지(智)라 한다. 비록 상대방이 아픈 표정을 짓는다고 해도 이를 과감히 무시하는 것이니 이를 강(强)이라 한다. 때려서 피가 나는 곳은 두 번 때리지 않으니 이를 선(善)이라 한다. 싸움 도중에도 두발이나 의상이 흐트러지면 바로 고치는 것이니 이를 미(美)라 한다. 옆집에서 살림을 부수며 싸우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것이니 이를 인(仁)이라 한다….”

돌아누우면 남남인 ‘부부’. 이토록 허망한 사이가 또 있을까요. 하지만 다시 돌아누워 얼굴을 마주하면 또다시 ‘부부’가 된다지요. 그런데 20여 년 살아보니 같이 잠자리에 드는 것도 힘이 듭니다. 코골이, 잠꼬대, 침실 온도, 몸부림, 화장실 가기 등등 함께하기엔 불편한 점이 너무도 많습니다.

살을 맞대고 살 때도 못 했던 ‘사랑한다’는 말은 점점 더 멀어지는 듯싶습니다. ‘웬수 같은 정’만 쌓이고 있습니다. 멋진 그대, 아름다운 그녀는 물 건너간 지 오래입니다. <탈무드>의 “부부가 진정으로 서로 사랑하고 있으면, 칼날 폭만큼의 침대에서도 잠잘 수 있지만, 서로 반목하기 시작하면, 십 미터나 폭이 넓은 침대로도 너무 좁아진다”라는 문장에 무릎을 탁 치게 됩니다.

가장 편하면서도 가장 불편한 존재 남편. 시인 문정희와 같은 마음으로 그의 시 ‘남편’을 읊어봅니다.

“아버지도 아니고 오빠도 아닌/아버지와 오빠 사이의 촌수쯤 되는 남자/내게 잠 못 이루는 연애가 생기면/제일 먼저 의논하고 물어보고 싶다가도/아차, 다 되어도 이것만은 안 되지 하고/돌아 누워버리는/세상에서 제일 가깝고 제일 먼 남자/이 무슨 웬수인가 싶을 때도 있지만/지구를 다 돌아 다녀도/내가 낳은 새끼들을 제일 사랑하는 남자는/이 남자일 것 같아/다시금 오늘도 저녁을 짓는다/그러고 보니 밥을 나와 함께/가장 많이 먹은 남자/나에게 전쟁을 가장 많이 가르쳐 준 남자”

부부간의 사랑을 ‘다반향초(茶半香初)’라고 하지요. 차를 반쯤 마셨는데도 향기는 처음처럼 여전하다는 것으로 ‘변함없는 사랑’을 뜻하는 말입니다. 남편에 대한 미운 마음을 옆으로 밀어두고 연애 시절을 떠올려 봅니다. 사랑 때문에 가슴앓이를 했고, “당신이 있어 행복하다”라는 고백을 백 번쯤 했지요. 지금의 헝클어진 감정을 잘 풀어야겠습니다. 싸우더라도 칼로 물을 베듯 감정을 말끔히 돌려놓을 여유도 가져야겠습니다.

금실상화(琴瑟相和·거문고와 비파가 서로 조화를 이룸)까진 아니더라도 함께 밥상을 옮길 수 있는 만큼의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야겠습니다. 잘난 척하지 않고 겸손한 마음으로 상대방을 존중하며 한 발, 한 발 생의 마지막까지 걸어가야겠습니다.

“긴 상이 있다/ 한 아름에 잡히지 않아 같이 들어야 한다/ 좁은 문이 나타나면/ 한 사람은 등을 앞으로 하고 걸어야 한다/ 뒤로 걷는 사람은 앞으로 걷는 사람을 읽으며/ 걸음을 옮겨야 한다/ 잠시 허리를 펴거나 굽힐 때/ 서로 높이를 조절해야 한다/ 다 온 것 같다고/ 먼저 탕 하고 상을 내려놓아서도 안 된다/ 걸음의 속도도 맞추어야 한다/ 한 발/ 또 한 발.” (함민복 ‘부부’)

“둘(2)이 하나(1) 되어 행복한 가정을 만들자”는 부부의 날이 21일입니다. 청소년들이 밸런타인데이나 화이트데이에 사랑을 일구는 것처럼 이날이 부부의 사랑을 확인하는 날로 자리매김했으면 좋겠습니다. 돌아누워 남남이 된 부부들이 다시 돌아누워 환하게 웃는 날이 된다면 참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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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아

경향신문 교열기자·사보편집장, 서울연구원(옛 시정개발연구원) 출판담당 연구원을 거쳐 현재 이투데이 부장대우 교열팀장. 우리 어문 칼럼인‘라온 우리말 터’연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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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영호에 대한 비난, 지나치다

2020.05.04

나는 지난 3월 21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미래통합당이 탈북 외교관인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대사관 공사를 비례후보가 아니라 지역구 후보로 공천한 것에 문제가 있다고 이 칼럼에서 지적한 바가 있다. 그가 보수진영의 텃밭이라고 할 수 있는 서울 강남 갑구에서 당선된 지금에도 나의 생각에는 변함이 없음을 먼저 말하고 싶다.

나는 그에게 신변안전에 문제가 없다면 지역구 국회의원이 아니라 장관을 시켜도 무방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경찰이 태 당선자를 위한 경호 인력을 늘리고 그중에 무장경호원을 붙여 최고 수준의 경호를 제공키로 한 것은 당연한 절차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입장에서 만고의 배신자인 그는 자신의 출마를 “김정은과 싸우기 위한 것”이라고 했었다. 그가 남한의 국회의원으로 북한 체제를 비판하는 모습은 김정은에겐 눈엣가시임에 틀림이 없다.

선거일인 4월15일은 북한에서 태양절(太陽節)로 기념하는 김일성 주석의 생일이다. 북한 왕조체제의 상징일인 이날 김정은은 금수산 태양궁전에 참배하지 않아 유고 소동의 발단이 됐고, 태영호는 국회의원이 되어 자유민주주의를 북한 주민들에게 알리겠다고 한 약속을 지켰다.

외신들은 한 때 공산주의자였던 그가 한국의 최고 부자동네에서 국회의원이 되었다고 보도했다.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는 북한에서 부자는 인민의 적이다. 남한이 공산화되면 부자들이 가장 큰 피해자가 된다.

북한의 그런 체제가 싫어 목숨을 걸고 자유대한으로 망명한 사람을 한국의 부자들이 찍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한 것이다. 강남갑구 유권자의 45%가 태 후보를 찍지 않은 것은 우리 사회의 의견의 다양성을 말해주는 것이지만, 그의 남다른 경력으로 인해 주민과의 소통이 불편해질 지도 모를 우려를 나타낸 것일 수도 있다.

당선 이후 인터넷 상에 태 당선자에 대한 공격이 가열되고 있다. 여당인 민주당과 친여세력이 주축이 된 공격자들은 그가 망명자라는 사실은 도외시하고, 과거 북한체제에 충성한 전력만을 문제 삼아, 그를 ‘간첩’ 또는 ‘이중간첩’이라며 낙인찍기 바쁘다.

친여 세력만이 아니라 극우세력도 여기에 가세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하기야 그를 공천한 미래통합당 안에서조차 그의 지역구 공천에 대해 “나라 망신”이며, “그는 남한에 뿌리가 없는 사람”이라고 말한 사람도 있었다.

최근 김정은 유고 소동의 와중에서 태 당선자가 김정은의 건강상태와 관련, ‘거동 불능’이라고 한 추측과, 미래한국당의 탈북민 비례의원인 지성호 당선자의 ‘99% 사망설’이 빗나가자 기다렸다는 듯이 공격은 한층 극렬해지고 있다.

이들은 태 당선자를 당선시킨 강남지역을 조롱하듯이 역삼동을 ‘력삼동’, 래미안 아파트를 “내래미안” 등 이북식으로 호칭하는가 하면, 강남구에 탈북자 새터민 아파트를 의무비율로 법제화해달라는 내용의 청와대 국민청원을 제기하기도 했다.

김정은 유고 소동에 대한 두 탈북민 의원 당선자의 발언은 그들의 정보능력에 한계를 드러낸 것으로, 앞으로 그들의 의정활동 방향이 북한 정세에 대한 단편적인 논평이 아니라 깊이 있는 연구를 토대로 한 정책제안이어야 한다는 교훈을 주었다.

또한 여야는 이들을 정쟁의 도구로 이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도 담겨 있다고 본다. 특히 여당인 민주당은 북한의 눈치를 보느라고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소외계층인 ‘탈북자 국회의원’은 엄두도 낼 수 없는 처지임을 깨닫고, 이들이 제시할 정책대안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태영호 당선자에 대한 지금의 비판적인 사회적인 분위기는 다시금 그의 신변안전에 대한 우려를 갖게 한다. “태영호가 제거됐다”는 말은 김정은이 듣고 가장 기뻐할 말일 것이다. 북한에 있는 김정은의 ‘기쁨조’는 물론 국내의 ‘태영호 체포조’ 같은 종북세력들의 암약을 경계해야 한다. 일거수일투족이 공개되는 국회의원으로서 그의 신변 안전은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그의 신변안전을 위해 특별히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이 그의 해외 의정활동이다. 국내에서의 테러는 경호의 벽을 뚫기가 쉽지 않을 것이고, 어떤 식으로든 범행의 흔적을 남기기 쉽다. 그 점에서 테러의 장소로 해외가 더 유리할 수 있겠기에 하는 말이다.

북한은 지난 2017년 말레이시아에 4인 암살조를 파견,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김정은의 이복형인 김정남을 독살했고, 그에 앞서 1983년에는 당시 버마(현 미얀마)를 방문 중인 전두환 대통령 일행을 향해 아웅산 묘소 폭탄테러를 자행한 전력이 있다.

나는 태영호 당선자가 주민들과의 관계에서 야기될 수 있는 이질감을 극복하면서 4년 임기를 무사히 마칠 수 있기를 바란다. 아울러 그가 현 정부의 대북 정책이 보다 건설적이고 합리적으로 추진되는 데 기여한 국회의원으로 남을 수 있다면 더욱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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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건

한국일보와 자매지 서울경제신문 편집국의 여러 부에서 기자와 부장을 거친 뒤 서울경제신문 논설위원 및 사장을 끝으로 퇴임했으며 현재는 일요신문 일요칼럼, 논객닷컴 등의 고정필진으로 활동 중입니다. 한남대 교수,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위원 및 감사를 역임했습니다. 필명인 드라이펜(DRY PEN)처럼 사실에 바탕한 글을 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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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에서 ‘마마병’을 다시 보다

2020.05.01

근래 온 나라가, 그리고 온 세계가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이라는 역병(疫病)의 급습으로 크게 당혹해하고 있습니다. 전에 전혀 겪어보지 못한 상황이 갑자기 우리의 생활권을 그저 경악할 정도로 흔들어놓고 말았습니다. 문학 소설이나 전문 의학 서적에서 간접 경험한 ‘전염병’이 우리의 생명과 삶의 터전을 크게 위협하는 현실을 직·간접적으로 체험하고 있습니다. 정녕 놀랍고 무섭기까지 합니다.

‘대형 전염성 질환’ 하면 우선 ‘페스트(Pest)’가 자연스레 떠오릅니다. 기록에 의하면 "5년 만에 유럽 인구의 4분지 1 내지 3분의 1이 이 질병으로 죽음을 맞이했고, 시신들 대부분은 전염병 확산 방지를 위해 불에 태워지거나 구덩이에 한꺼번에 파묻혔다." (<Wie Krankheiten Geschichte Machen>, R.D. Gerste, 2019).

유럽에서는 지금도 대화하던 사람이 가벼운 기침을 하면 “건강하세요[Good health(英) / Gesundheit(獨)]”, “신의 가호가 있기를(Bless you / Sei gesegnet)”, 이라는 인사를 반사적으로 건네곤 합니다. 이는 페스트가 창궐할 당시 환자의 첫 임상 증상이 ‘기침’이었기 때문입니다. 60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난 오늘날까지 그 ‘역사의 상흔(傷痕)’이 남아 있는 것을 보면, 페스트가 얼마나 무섭게 유럽 사회에 창궐했었는지를 짐작케 됩니다. (https://praxistipps.focus.de)

‘질병과 언어’라는 측면에서 돌아보면 우리 생활 언어에도 질병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얼굴이 심하게 얽은 사람을 낮잡아 부를 때 우리는 흔히 ‘곰보’라는 단어를 씁니다. 이는 ‘천연두(天然痘)’, ‘마마(媽媽)’, ‘두창(痘瘡)’, ‘Small pox’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질병의 흔적인데, 여기엔 ‘손님 병’이라는 순수 ‘국산(國産)’ 병명도 있습니다. 참 별난 병명이라 그 어원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필자가 피부과학 전공자로서 ‘한국 탈과 조선 시대 초상화에 나타난 피부질환’에 관심을 갖고 연관 자료를 찾을 즈음 왜, 그리고 어떻게 ‘손님 병’이라는 병명이 생겼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습니다.

그러던 중 《한국인의 의식구조》라는 방대한 저서를 통해 한국인의 감정과 사고방식 등 우리네 생활 속에 스며 있는 고유의 정서와 생활 문화를 파헤친 이규태(李奎泰, 전 조선일보 주필, 1933~2006) 선생의 도움을 받기로 했습니다. 필자는 유선상으로 “천연두, 또는 마마라는 병명을 가진 피부질환의 병명이 어떻게 ‘손님 병’이라는 별칭을 얻게 되었는지 궁금하다”는 질문을 했습니다.

선생의 답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마마병은 강남(중국)에서 도래한 외래 질병으로, 성별(性別)로 볼 때 유일하게 국내 질병 중 유일하게 여성인데 시기심이 아주 강한 게 특징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마마의 한자 표기 ‘媽媽’가 어머니, 할머니 등 여자를 통칭하는 것과도 일맥상통합니다.) 특히 아름다운 여인네의 곱디고운 얼굴을 할퀸 흉한 곰보 자국은 여인에게 평생의 한으로 남았습니다.

그래서 먼 마을에서 역병(疫病)이 돈다고 하면, 우선 크고 작은 모든 행사를 취소했습니다. 특히 젊은 여인네들은 의복도 소박한 것으로 입고, 언행도 조신(操身)하게 하면서 온 가족이, 온 마을이 조용히 지냈습니다. 이렇게 ‘손님을 깍듯이 모신다’고 하여 ‘손님 병’이라는 별칭을 갖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현대판’ 페스트인 ‘COVID-19’와 지금은 전 세계에서 소멸한 마마병을 예방의학적 시각에서 고찰하면 유사하면서도 다른 점이 있습니다. 예컨대 그 옛날 페스트의 경우 사람들 간의 배려 및 ‘예(禮)’의 범주 안에서 수동적인 예방의학적 측면을 보였다면, ‘손님 병’의 경우는 우리 선조들이 지금의 ‘자가 격리’와 ‘사회적 거리 두기(Social distancing)’ 같은 현대의학의 첨단 예방 조치를 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통영 오광대(五廣大)에 등장하는 손님탈에 천연두 자국이 묘사되어 있다

작금에 우리 사회가 보여준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관련 대처 방안과 그 결과는 아마도 우리 역사의 시·공간에서 배어난 우리 고유 DNA의 또 다른 표출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지 아니하고서는 오늘 ‘코로나’를 둘러싸고 우리 사회가 보인 ‘기현상’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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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낙

뮌헨의과대 졸업. 프랑크푸르트대 피부과학 교수, 연세대 의대 교수, 아주대 의무부총장 역임.
현재 가천대 명예총장, 전 한국의ㆍ약사평론가회 회장, 전 (사)현대미술관회 회장,
(재)간송미술문화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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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집에서 땅을 깊숙이 팝니다

2020.04.30

어느 날 옆집 땅 주변에 울타리가 쳐지고, 중장비가 오가더니 땅을 파기 시작합니다. 집을 새로 짓나 봅니다. 어떤 집을 지을까 궁금해지고, 아무 탈 없이 집을 짓길 기대해 봅니다. 그러나 이 기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이웃끼리 다툼으로 바뀝니다. 중장비가 오가면서 내는 먼지, 진동, 소음으로 생활하는 데 불편함이 생겼습니다. 정작 집주인은 미안하다는 마음조차 표시하지 않는 게 더욱 서운합니다.

어느 날 아침 마당을 바라보니 바닥 상태가 이상합니다. 바닥에 금이 가고 일부는 가라앉은 듯합니다. 옆집 땅을 보니 지하층을 만들기 위해 땅을 깊이 팠습니다. 땅 경계선을 보니 철골 기둥을 박고 그 사이에 널빤지를 끼웠는데 틈 사이가 엉성하여 흙이 빠져나오고, 심지어 물도 배어 나옵니다. 지하수가 있나 봅니다. 흙막이 공사를 했지만 땅을 파면서 흙막이 벽이 밀렸고 그 바람에 내 집 마당이 꺼진 것입니다. 놀라서 현장 사무실로 달려가 당장 공사를 중단하라고 호통을 치지만 공사는 계속됩니다. 며칠 더 지나면서 내 집 벽에 금이 가기 시작합니다. 열이 머리끝까지 뻗쳐서 현장 사무실로 달려가 항의해 보지만 공사는 멈추지 않습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옆집에서 공사할 때 흔히 겪는 일입니다. 옆집도 집을 새로 지으려면 땅을 깊숙이 파야 합니다. 옆집 짓는 바람에 내가 손해를 입어서도 안 됩니다. 그런데 현실은 이런 사태가 생길 때 풀어가는 방법이 쉽지 않습니다. 그렇게 사이좋게 지내던 이웃이 하늘을 같이 이고 살지 못할 원수로 변합니다. 이런 일은 자주 일어납니다. 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사건은 대부분 이렇게 시작됐습니다.

분쟁이 생겼을 때는 당사자끼리 피해액과 요구 사항을 들어주고 해결하는 게 제일 좋습니다. 우리는 서로 타협하여 해결하는 게 참 어렵습니다. 피해자가 상대방 건축주를 만나려 해도 피하는 경우가 많나 봅니다. 조정이나 감정사건에서 얘기를 들어보면, 소송 절차가 진행되면서 처음 만났다고 할 정도로 소통이 되지 않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사태가 생기면서 분한 감정이 솟구쳐 법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합니다. 사고 때문에 만나야 하므로 마음이 참 불편합니다. 그렇더라도 만나 푸는 것이 좋습니다.

소송에서는 피해자가 피해 사실과 피해액을 증명해야 합니다. 피해를 증명할 책임이 피해자에게 있습니다. 옆집에서 공사할 때 주로 나타나는 것이 침하, 균열, 누수, 뒤틀림, 표면 벗겨짐 같은 현상입니다. 이런 현상들은 공사 시작하기 전에도 있었을 수 있습니다. 피해자는 공사 때문에 저런 현상들이 더 진전되어 피해를 당했다는 것을 입증해야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 공사하기 전 상태를 기록해 두지 않습니다. 공사하는 쪽에서는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여 기록해 둡니다만, 피해자는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소송 과정에서 감정을 통해 피해 사실을 입증하려고 하지만 자료가 충분하지 못해 제대로 밝히지 못할 수 있습니다. 결국 불완전한 자료를 바탕으로 추론하여 정리하는데 양쪽 다 불만이 가시지 않습니다.

내 옆집에서 집을 새로 짓는다고요? 양쪽이 같이 참여하여 집안 내외부를 기록해 두십시오. 기록할 때 균열이나 침하상태는 숫자가 표시된 측정기를 대고 기록하십시오. 마당, 벽체 미장과 도장, 지붕 방수 상태, 내부 상태를 본인이 구석구석 기록하기 어렵다면 전문 업체의 도움을 받는 것도 좋습니다. 그리고 틈나는 대로 변화를 지켜보십시오.

기록은 문제가 생길 것을 염두에 둔 것이라 서로 껄끄러울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고가 생길 것을 대비하여 보험을 듭니다. 보험을 들었지만 사고가 생기지 않으면 더 좋습니다. 혹시 공사로 피해를 입을 수 있을까 봐 기록해 둡니다. 공사 피해는 일어나지 않으면 좋습니다. 만약 피해가 생긴다면 피해가 생긴 대로 서로 할 일을 하면 됩니다. 실상을 있는 그대로 서로 받아들일 때 문제를 해결하기 쉽습니다. 실상을 명확하게 밝히지 못하면 감정싸움으로 흘러갑니다. 소송은 언젠가 끝나겠지만, 사이좋던 이웃이 영원히 원수로 지낼지 모릅니다.

공사 시작할 때 잘 기록해 두어야 이웃을 잃지 않습니다. 4일 또는 6일 동안 쉬는 날이 이어질 때입니다. 겨우내 얼었던 땅이 녹거나 장마철에 비가 많이 오면 지반에 변화가 생길 위험이 높아집니다. 옆에 공사장이 있으면 가끔 주변을 돌아보십시오. 그렇지만 휴일은 편안하게 즐겁게 보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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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고영회

경남 진주에서 태어나 진주고(1977), 서울대 건축학과(1981)와 박사과정을 수료(2003)했으며, 변리사와 기술사 자격(건축시공, 건축기계설비)이 있습니다.
대한변리사회 회장, 대한기술사회 회장, 과실연 공동대표, 서울중앙지법 민사조정위원을 지냈고, 지금은 서울중앙지검 형사조정위원과 검찰시민위원, 대한상사중재원 중재인, 법원 감정인입니다. 현재 성창특허법률사무소 대표와 ㈜성건엔지니어링 사외이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mymail@patinf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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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 유감(遺憾)

2020.04.29

필자는 유학생 아들을 둔 아빠입니다. 중국에서 시작된 코로나19가 대구를 중심으로 창궐하기 시작했을 때, 아들이 공부하고 있는 미국은 그래도 안전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젠 상황이 완벽하게 역전되어 미국이 코로나19의 가장 큰 피해를 입고 있습니다. 그 한가운데에 아들 혼자 덩그러니 놓여 있습니다. 미국의 대학들이 모두 온라인 강의로 전환되어 많은 학생들이 귀국했지만, 인턴과 리서치가 남아있고 인터넷 강의의 시차 문제를 고려해서 남아 있기로 한 것입니다.

미국에선 우리나라의 KF94 마스크를 구하기 어렵습니다. 한국에서 보내줘야 하는데, 그게 쉽지가 않습니다. 코로나 사태 초기에 마스크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탓에 마스크 5부제를 시행하면서 해외에 마스크를 보내는 것이 3월 중순까지는 불가능했습니다. 또한, 이번 주부터 5부제가 느슨해져서 등본을 들고 가면 가족 당 3매씩 마스크 구입이 가능해졌지만, 그 동안에는 해외에 나가있는 가족의 마스크를 대신 살 수 없었습니다.

어찌어찌 가족들이 마스크를 아껴서 유학 중인 아들에게 보내려면 우체국의 EMS(Express Mail Service)를 이용해야만 하는데, 이게 참 코미디입니다. EMS는 말 그대로 매우 빠르게 배송되는 서비스입니다. 보통의 경우 사흘이면 배송이 완료됩니다. 그런데 항공 운송이 원활하지 못하다 보니 보름이 넘어야 배송이 됩니다. 실제로 4월 16일에 접수한 EMS가 이 글을 쓰는 4월 26일에도 비행기에 실리지 않았습니다. 부모의 마음은 한시라도 빨리 마스크가 도착해서 자식의 안전을 지켜주고 싶은데 상황이 따라주지 않는 겁니다.

자체 화물 항공기를 운용하는 페덱스(FedEx)나 DHL 같은 특송업체를 이용해서 마스크를 보낼 수 있을까? 하고 문의를 해보니 우체국을 제외한 모든 업체의 마스크 배송은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우체국에 전화를 했습니다. 질문은 아래 세 가지였습니다.
1. EMS는 우체국 해외 배송 중 가장 빠른 수단인데 왜 늦게 가는 것이냐?
2. 이렇게 늦게 가면서 비싼 특송료(마스크 8매에 운송료 2만 5천원 내외)를 받는 것이 합당한 것이냐?
3. EMS 배송이 보름 이상, 길게는 한 달까지 걸린다면, 우체국에서 마스크 배송 업무를 맡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닌가? 그래야 페덱스나 DHL 같이 현재 정상적으로 운영되는 업체를 이용할 가능성이 생기는 것이 아니냐?

1588-1300번인 우체국 콜센터로 전화를 해서 담담하게 질문을 하니, 처음에는 국제우편물류센터 전화번호를 알려줘서 그쪽 직원과 통화를 했습니다. 1번 질문의 답변을 들었습니다. 미국으로 가는 배송 물량은 많은데 현재 비행기 운항 횟수가 줄어서 물류센터에 열흘 이상 대기해야 비행기에 실을 수 있다는 대답을 들었습니다. 2번 질문은 그쪽 직원은 자신이 대답할 사안이 아니라며 서울청 국제영업과 전화번호를 알려주었습니다. 그쪽 직원과 통화를 했습니다. 여기서는 “배송이 오래 걸린다고 해서 우체국이 부담하는 비용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요금은 그대로일 수밖에 없다.”라는 궤변을 들었습니다. KTX를 타고 부산에 가는데 20시간이 걸렸는데, KTX를 탔으니 KTX요금을 내라는 얘기와 다를 게 뭐가 있을까요? 실제로 KTX는 운행이 지연되면 규정에 따라 환불을 해줍니다. 하지만 그 직원과 이런 문제로 옥신각신 따지고 싶지 않아서 바로 다음 질문을 했습니다. “지금 해외로 마스크를 보내는 유일한 방법이 EMS인데, 정상적인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는 상황이면 못한다고 해야, 다른 방법이 생기지 않겠습니까?”라고 물어보자 세종시에 있는 우정사업본부 우편사업단 국제사업과로 문의하라면서 그쪽 전화번호를 알려주었습니다. “EMS로 보내는 데 차질이 있다는 의견을 관계부처에 보냈구요. 우체국 EMS로 마스크를 보내는 결정은 관세청에서 한 겁니다.”
국제사업과 주무관이 퉁명스럽게 대답했습니다.

관세청으로 전화를 했습니다. 대표번호인 125로 전화를 했더니 상담원이 받습니다. 상황을 설명하자 본청으로 전화를 해서 물어보라는 대답이 돌아옵니다. 가장 설명을 잘해줄 것 같은 대변인실에 전화를 했습니다. 조목조목 궁금한 것을 물어보자, “어디신가요?”라는 질문이 돌아옵니다. “시민입니다. 해외에 있는 자식에게 마스크를 보내고 싶은데 발만 동동 구르고 있습니다.” 그러자 “지금 EMS가 아닌 페덱스 같은 특송업체로도 보낼 수 있게 하려고 합니다.”라는 대답을 합니다. 맥이 빠집니다. 그 결정을 내리는 데 한 달이 넘게 걸렸습니다. 그리고 아직 확정된 것도 아니구요.

현재 마스크TF라는 것이 구성되어 있다고 합니다. 우정사업본부, 관세청, 식약처, 총리실 등 관계부처 국장들이 매주 회의를 통해서 마스크와 관련한 결정을 내리는데 그 결과는 총리에까지 보고된다고 합니다. 그만큼 마스크 공급 문제가 큰 이슈라는 얘기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외에 있는 국민에 대한 배려는 한 달 동안 제대로 하지 못했던 겁니다. 자식을 생각하는 급한 마음에 페덱스 같은 서비스를 이용해서 내용물을 속이고 마스크를 보내다가 적발되면 필자는 범법자가 됩니다. 그게 싫어서 시간을 쪼개서 이리 알아보고 저리 알아보면서 보낸 시간이 벌써 몇 주가 흘렀습니다. 그사이 아들은 마스크 없이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아직 건강히 잘 지내고 있지만, 만에 하나라도 무슨 일이 생겼다면 차라리 법을 어기고 말 것을 하는 후회를 했을 겁니다.

애당초 마스크를 우체국 EMS로만 보내자는 결정을 내린 것은 무리한 결정이었습니다. 보통 모든 결정은 플랜A와 플랜B를 같이 마련하는데 왜 이번에는 플랜A만 고집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우리의 의료시스템과 의료인력의 우수함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또한 공공서비스 분야의 민첩한 대응과 신뢰도 역시 다른 나라의 부러움을 살만 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런 비상시국에 모두를 다 만족시킬 수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군복부를 마치고 다시 유학길에 올라 한국인의 긍지를 갖고 꿈을 좇아 밤을 낮 삼아 공부하고 있는 자식에게도 자랑스러운 조국이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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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박상도

SBS 선임 아나운서. 보성고ㆍ 연세대 사회학과 졸. 미 샌프란시스코주립대 언론정보학과 대학원 졸.
현재 SBS 12뉴스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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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꿈꾸기

2020.04.28

2013년에 피아니스트 손열음의 글(https://news.joins.com/article/10463423)을 읽은 기억이 납니다.
그는 ‘새 악보를 읽고 외우는 것’은 가장 자신 있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그래도 사흘에 한 번씩 새 곡을 연주하려면 암보(暗譜)는 힘든 일이라고 토로합니다. 연주회 준비 때 손으로 하는 연습을 하지 않는 동안에는 연주할 곡 듣기를 한답니다. 그래서 무대에서 연주할 때는 손만이 아니라 머리와 귀가 함께 암보를 도와주고 있음을 느낀다는군요. 그 글을 쓸 즈음 라흐마니노프의 협주곡 1번을 연주할 때는 기억을 돕는 제4의 ‘기관’도 있음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마음’이라구요. 

이 글이 생각난 것은 책 한 권 때문입니다. 이미 4년 전에 발간된 『1만 시간의 재발견』을 최근 손에 잡았습니다. 읽는 내내 흥분을 느꼈습니다. 원저의 제목은 『절정(Peak)』입니다. 읽는 동안 여러 가지 생각과 기억들을 떠올리게 해 주었습니다.
저자 앤더스 에릭슨은 유전적으로 타고난 천재는 없다고 말합니다. 어떤 선천적 재능을 가진 사람이 스킬을 배우는 초기 단계에서는 어느 정도 이점을 가지고 있을지 모르지만, 이런 이점은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줄어들고, 결국 개인의 실력을 결정하는 데는 노력의 양과 질이 훨씬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는 타고난 천재가 아니라 아버지가 행한 훈련으로 재능을 개발시킨 결과라고 말합니다. 아버지의 음악 재능을 이어받은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좋은 훈련법이 만들어낸 인물이라고 말이지요. 그에게 한 것과 같은 훈련으로 재능을 키운 손위 누이의 모범도 도움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에릭슨은 수많은 사례를 들면서 어떻게 재능을 개발하고 훈련할 것인지를 설명합니다.

타고난 천재가 많다고 믿어온 나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이전까지는 타고난 재능과 후천적으로 갈고닦은 재능이 모두 중요하다고는 여겼습니다. 그러면서도 타고난 재능이 우위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저자에게 설득되었습니다. 읽는 내내 떠오른 생각과 기억들 중 손열음의 글 외에 개인적 경험 하나를 소개하겠습니다.

여러 정황을 고려해 보면 어린 시절에 음치였습니다. 그 사실과는 관계없이 중학교에 입학하여 맞은 첫 음악 시간에 당황스러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선생님은 우리가 처음 대하는 노래를 계명으로 부르라고 하였습니다. 다 장조라면 몰라도 샤프(#)나 플랫(b)이 붙은 악보의 계명을 전혀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니 모두들 입을 크게 벌리고 잘도 부르더군요.
그날 이후로 음악 시간만은 예습을 했습니다. 혼자 입 닫고 있어야 하는 부끄럼을 겪지 않으려고요. 학교 다니는 동안 예습, 복습은커녕 숙제도 잘 하지 않았는데, 음악 시간 전날이면 다음 날 부를 노래를 펼쳐놓고 한 음씩 계명을 적어 넣었습니다. 오선지의 조표(調標)에서 맨 오른쪽 플랫이 붙은 줄이 ‘파’이고 샤프이면 ‘시’라고는 알았습니다. 그걸 기준으로 음표 하나마다 “파미레도”, “시도레미” 하는 식으로 계산해서 계명을 적다보니 한밤중이 되곤 했습니다. 그렇게 예습하길 얼마나 했을까. 언젠가부터 계명을 일일이 적지 않고도 처음 보는 노래를 계명창으로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후로는 여러 경로로 음악을 대하였습니다. 피아노 교습을 받은 적도 없지만 고교 때는 보통의 찬송가는 피아노로 칠 수 있을 만큼 노력도 했습니다. 집엔 피아노가 없었으니 교회나 학교의 풍금으로 하루에 한 번씩은 독습(獨習)하였죠. 학생 애창곡 삼백 몇 곡이라는 제목의 악보 책도 구입해서 틈틈이 기타 코드에 맞추어 노래를 불러보았습니다. 대학 시절에는 교회에서 어린이성가대를 맡기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엉뚱하고도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경영학과 학생이 어린이들에게 호흡법과 모음 발성법을 훈련시켜 한때나마 상당한 수준의 소리를 내게 했지요.
그렇게 지내다보니 주변 사람에게서 음치라거나 노래를 못부르는 사람이라는 말을 듣지는 않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노래를 부르노라면 음감이 좋은 아마추어나 전문 성악가에게서는 음정이 불안하다는 지적을 받습니다. 그 문제까지 극복하려고 노력했으면 해내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음악과의 접촉에서 에릭슨이 말하는 (직접 가르침을 받은) 좋은 교사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심적 표상(현재보다 높은 단계의 성취 수준)’을 지닐 만한 상황이 있었기에 흥미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이 경험에서의 심적 표상은 ‘계명으로 부를 줄 알기’, ‘피아노로 찬송가를 치기’, ‘아이들을 효과적으로 훈련하기’ 등일 것입니다.

책을 읽으며 피아니스트 손열음의 글이 생각난 이유는 에릭슨이 집중이라는 단어를 여러 번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집중의 의미를 정리해 봅니다.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하나는 시간 배분과 관련됩니다. 집중한다는 말은 시간을 많이 배분한다는 뜻입니다. 고교 시절 두 해 동안은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대학 입시를 한 해 앞두고 다급해지니 입시와 관련 없는 모든 일을 포기할 정도로 마음을 한데 모은 일이 집중의 예입니다. 이후에야 집중의 의미와 효과를 몸으로 깨달아 알게 되었습니다.
집중의 다른 한 의미는 한 가지에 생각을 모아서 그 순간에 다른 생각이 끼어들 틈이 없게 만든 상태이지요. 앞의 의미가 시간의 양에 관한 것이라면 뒤의 것은 시간 소비의 질에 관한 것입니다.

손열음이 말한 ‘마음’의 뜻을 다시 생각합니다. 그는 그 뜻을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맥락상 집중(또는 의지)이라고 추정합니다. 집중한 결과 음표 한두 개, 혹은 한 악절까지 깜빡 잊을 뻔한 순간에도 손가락이 ‘저절로’ 연주할 수 있겠지요. 머리와 귀의 도움만이 아니라 거의 무의식적으로 말이지요. 우리는 자기 분야의 일에서 비슷한 경험을 합니다. 서른이 채 되지 않았던 나이에 지혜로운 글을 쓴 피아니스트에게 감사를 표합니다.

나이가 들 만큼 들었는데 웬 재능 개발 이야기냐고 묻는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에릭슨의 말을 더 인용해야겠습니다. “모든 잠재능력은 개발할 수 있다.” “나이 들어서도 꿈을 가질 수 있다.”

그는 이렇게 덧붙입니다. 신체와 두뇌 모두 성인이 되어서보다는 유년기와 청소년기에 적응력이 뛰어나지만, 대부분의 경우 평생토록 어느 정도의 적응력을 보유한다고 합니다. 나이와 적응력의 관계는 개인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다르다고 합니다.

책을 읽으면서 다른 기억도 떠올랐습니다. 10여 년 전 라디오 방송에서 유명 발레리나와의 인터뷰를 들은 일이 있습니다. 진행자가 발레리나의 초등학교 5학년 때 일화를 알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엄지발톱이 빠져서 기뻤다고 했더군요. 아프지 않았나요?” “그전에 선배들에게서 들은 말이 있었어요. 연습을 굉장히 많이 하면 발톱이 빠진다고요. 실제로 발톱이 빠졌으니 내가 열심히 하긴 한 모양이라고 생각되어 만족스러웠죠.”

나이 들어서도 어린 발레리나 지망생과 같은 경험을 해보면 좋겠다고 꿈을 꾸어 봅니다. 대가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감은 갖지 않아도 될 테니까요. 그래도 말입니다. 평생 종사해온 분야에서 미처 이루지 못한 일이 있다면 뒤늦게라도 하나쯤은 이룰 수 있겠지요.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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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홍승철

고려대 경영학과 졸. 엘지화학에서 경영기획 및 혁신, 적자사업 회생활동 등을 함. 1인기업 다온컨설팅을 창립, 회사원들 대상 강의와 중소기업 컨설팅을 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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