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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투표를 한 사연

2020.04.16

작년엔 두세 달에 한 번꼴로 외출을 했는데 올해엔 지금까지 벌써 네 번이나 외출을 했습니다. 지난 토요일의 네 번째 외출은 사전투표를 위해서였습니다. 90평생 나라의 선거에는 한 번 빠지지 않고 투표했습니다. 아마 이번 선거는 내 생애 마지막 선거가 될 것 같아 아직 휠체어에 의지하는 몸이지만 기어코 참가하리라 마음먹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선거 때마다 갔던 낯익은 투표장이 이번에는 엘리베이터가 없는, 같은 초등학교 2층 교실로 바뀌었습니다. 한참 궁리 끝에 평생 처음인 사전투표를 하기로 했습니다. 사전투표를 하는 주민센터 건물엔 엘리베이터가 있고 예년에 경험한 투표일의 혼잡도 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틀 동안의 사전투표 마지막 날, 두 딸아이의 도움을 받으며 집에서 300미터 쯤 떨어진 주민센터로 갔습니다. 점심시간 전인데도 건물 밖 도로 위까지 투표자들이 길게 늘어서 있어 깜짝 놀랐습니다. 바람이 약간 쌀쌀했지만 휠체어에 앉은 채 기다렸습니다. 투표는 빨리 진행되어 아래층에서 손 소독을 한 뒤 비닐장갑을 끼고 엘리베이터로 3층 투표소로 올라갔습니다. 언론 보도로 알고는 있었지만 비례대표 투표용지의 길이에 당황하며 비닐장갑을 낀 어색한 손으로 투표를 마쳤습니다. 이웃 행정구에 살고 있는 딸아이 하나도 투표할 수 있어 편리했습니다.

지난주 목요일은 3개월에 한 번씩 받는 건강검진 날이었습니다. 아침을 결식하고 셋째 딸 차로 서둘러 병원 주차장에 도착했더니 주차장이 평소보다 훨씬 한산했습니다. 하루 외래환자 수가 만 명 정도라고 들었는데, 병원 로비도 평소처럼 붐비지는 않았습니다. 주차장 입구부터 본관 현관까지 코로나19 바이러스 예방을 위해 직원들이 길게 줄 서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외래환자 수는 예전처럼은 아니지만 혼잡해졌습니다.  

주치의가 처방한 3개월 치 약을 병원 약국에서 받아 동네 식당에 온 것은 2시 넘어서였습니다. 식당까지 오는 도중 차 안에서 올해 처음으로 벌써 일부 지기 시작한 벚꽃 구경을 했습니다. TV에서는 많이 보았지만 금년에는 코로나19 소동으로 꽃구경 외출은 삼가고 있었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social distancing)가 강조되는 요즘이지만, 원래 외출을 많이 하지 않는 제 사생활에 코로나19 소동은 큰 변화나 불편을 가져오지 않습니다. 다만 뉴스를 보는 시간이 좀 길어진 것뿐입니다. 신문 정치기사는 대충 훑어보는 대신 스포츠 기사와 부고기사, 문화면을 많이 찾습니다. 요즘은 좋아하는 골프를 비롯해 많은 경기가 취소되어 스포츠 기사에도 종전 같은 흥미는 잃었습니다.

지난 주초 신문 부고란을 보다가 친구 이도형(李度珩·전 ‘한국논단’ 대표) 씨의 별세 사실을 알았습니다. 2단짜리 기사를 읽으며 크게 슬퍼했습니다. 1933년생이니 올해 87세인데, 제가 외신사에서 기자로 일할 때부터 오랜 친지였습니다. 국방부 출입기자였고 군 관계 인사들 사이에 친구가 많은 그에게서 기사 취재에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가 신문기자를 퇴직한 뒤에도 우리는 계속 두터운 우정을 유지했습니다. 제 몸이 불편해 외출을 못 하고 한동안 서로 만나지 못하던 지난해 여름에 제가 쓴 글을 읽고 전화를 걸어와 외출이 자유롭지 않은 제 건강을 염려해 주기도 했습니다. 그때 이 형은 부산에 머무르고 있다고 했는데 평소 건강했던 그인지라 물어보지 않았지만 아마 당시 요양 차 시골에 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와의 오랜 우정을 회상할 때 특히 생각나는 것이 1976년 8월에 있었던 소위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입니다. 북한군 경비병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서 작업 중인 미군 2명을 도끼로 살해해 한반도가 심각한 긴장상태에 빠진 사건입니다. 거의 연일 판문점에서 양쪽 고위 당국자의 비밀 회담이 계속되었으나 일반 판문점 군사회담과 달리 언론매체의 취재를 일절 허락하지 않고 공식 발표문도 없었습니다.

이 긴박한 시기에, 이 형은 비밀 소식통을 통해 취재는 했으나 당시의 엄격한 군사정권 시절에 국내 신문에는 도저히 보도할 수 없는 특종을 비밀리에 저에게 전달하여, 몇 차례 정부와 미군 관계자를 놀라게 했습니다.

이 형은 그의 소식통의 정보가 절대 정확하다며 저를 믿게 했고, 저는 그를 신뢰하여 이 특종 기사들을 본사로 송고했습니다. 본사도 저의 말만 믿고 일절 경위를 묻지 않고 이 기사들을 전 세계에 송신했습니다.

북한의 김일성 주석이 이례적으로 사과문을 보내와 미군을 달래고 일촉즉발(一觸卽發)의 한반도 위기가 끝나고 나서야 이 형은 비로소 자기 소식통의 정체를 밝혔습니다. 신문사 양해를 얻은 행동인지는 밝히지 않았으나 그 당시의 긴박한 분위기 속에 용감하게 자기가 취재한 특종들을 아무 대가 없이 전 세계에 알린 고인의 용기와 우정을 저는 죽을 때까지 잊지 않을 것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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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황경춘

일본 주오(中央)대 법과 중퇴
AP통신 서울지국 특파원, 지국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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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5총선은 문재인 중간평가다

2020.04.14

손녀는 초등학교에 들어간다고 작년 말부터 가방, 운동화, 필통을 챙기고 기다렸는데 요즘 풀이 죽어 있습니다. 꼼짝도 안 해 “왜 안 나가 놀아?”라고 물으면 “코로나가 돌아다녀…”라고 대답합니다.

매일 유튜브에 몰입하는데 언제쯤이나 학교에 갈까요? 듣도 보도 못한 ‘흔한남매’, ‘밍꼬발랄’, ‘급식걸즈’ 등 중학생들이 나오는 상황극을 넋 놓고 봅니다. 교육부가 학교 문을 닫았으면 정규 교육에 갈음할 프로그램을 만들어 유튜브에 올리면 좋으련만 찾을 수 없습니다. 고교 한국사 교과서에 현직 대통령을 홍보하기 바쁜 교육부가 투표권이 없는 어린이들 온라인 교육에 신경 쓸 겨를이 있겠나 싶죠.

총선을 앞두고 코로나바이러스 모범 방역국이라고 떠들어서 이웃 나라 사정은 어떤지 살펴봤습니다. 인구 2,300만 명인 대만은 중국과는 한 해 수백만 명이 오가는데 의료 전문가들이 포진한 내각이 우한발 여행자 검역을 일찍 강화해 사망자를 6명으로 막고 있습니다. 학교는 초기 2주일 휴교를 빼고는 최근까지 정상 수업 중입니다. 마스크 5부제도 대만을 벤치마킹한 건데 대만은 줄을 세우지 않았습니다. 우린 1만 명 이상이 감염돼 200명 넘게 숨졌는데 덜 죽었다고 해외에서 칭찬받는다는 건가요? 180여 개 나라가 우리 국민 입국을 규제하고 있죠. 코로나는 투박한 정권이 키운 국난이고, 방역의 공(功)은 감염원인 중국에 초동 대응을 뭉갠 사대주의 정권이 아니라 바이러스와 사투 중인 의료진, 감염 확산을 막으려고 사회적 거리를 지키며 품귀 마스크를 갖은 방법으로 살균하고 빨아서까지 쓴 국민에게 있다고 봅니다. 2월 9일 청와대를 대대적으로 소독했다는 뉴스가 떴을 때, 안심하라면서 왜 유난을 떠나, 많은 국민이 의아했을 것입니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아시아 방역 모범사례로 대만 싱가포르 홍콩을, 초기 대응이 늦은 나라로 한국과 일본을 지적했습니다. 요즘 일본은 환자가 하루에 700명도 발생합니다. 8일 아베 총리는 도쿄, 오사카 등 7개 도·부·현(都府県)에 비상사태를 선언하고 국내총생산(GDP) 20퍼센트 규모의 108조 엔을 퍼붓는 코로나 대책을 발표했죠. 불요불급한 이동을 줄이고 휴업을 권장하여 감염자 급증으로 인한 의료 붕괴를 막는다는 거죠. 외국 매체들은 하나같이 ‘Stay at home’, ‘Restez à la maison'(집에 머뭅시다)을 강조합니다. 강화도는 노년층이 많이 살아 다리 2개의 입구에서 모든 차량에 발열 검사를 하는데 주말에는 기를 쓰고 들어가려고 하여 통과에 몇십 분이 걸립니다. 총선이 끝나면 우리도 감염자 숫자가 확 늘까 걱정입니다.

모든 총선은 국정 심판입니다. 4·15총선도 문 정권의 3년을 심판해야 하는데 그간의 악정은 싹 잊은 듯 여론조사 상으로는 코로나 대처를 찬양합니다. 옛날 막걸리, 고무신이 현금으로 진화한 듯 코로나로 몇 푼 준다니 감읍하나요. 모두 세금이죠. 저소득자만이 아니라 국민 전부를 현금 배급으로 중독시키려는 사회주의적 자세에서 베네수엘라 같은 장기집권의 우려가 나옵니다.

한국은 작년 명목 GDP성장률이 1.1퍼센트, 36개 OECD 국가 중 최하위권입니다. 국민소득은 4.1퍼센트 줄었습니다. 노무라연구소는 코로나로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최저 12.2퍼센트 역성장, 잘해야 5.5퍼센트 역성장이라고 내다봤죠. 추산하면 GDP 감소는 최대 233조 원입니다. 기업 매출액은 더 줄어들 것입니다. 지금 항공기 80퍼센트가 놀고 있고 호텔의 객실 점유는 10퍼센트대랍니다. 여행사, 면세점, 요식업, 승무원, 케이터링, 관광버스, 유학 등 관련 업종이 연쇄 타격입니다. 내가 아는 여행사 사장은 아예 집에 있습니다. 사람들은 외출을 안 하죠. 이미 50대 기업 중 18개 기업의 작년분 법인세 납부가 전년의 절반인 15조 원으로 줄어든 세수 쇼크가 일어났습니다. 자동차도 해외 판로가 막히고 있습니다.

경제 난국에는 탈원전도 가세합니다. 한 해 몇조 원의 순익을 올리던 초우량 기업 한국전력은 탈원전 공약으로 비싼 화석원료나 태양광 전기를 매입하는 바람에 작년 1.2조 원의 적자를 냈습니다. 교육부는 코로나 와중에도 조 단위로 들어가는 나주 한전공대 법인설립을 허가했죠. 선거가 끝나면 전기료가 오를 겁니다. 탈원전으로 2040년까지 283조 원 이상의 전기요금을 더 내야 하고 천연가스는 외국에 더 의존하는 에너지 종속 구조에 편입됩니다. 해외 원전 건설 500조 원의 국익도 날아갑니다. 원전 산업에서 실업자도 급증했습니다. 러시아 가스관의 북한 경유를 위해 탈원전하나요?

이렇게 평시에도 세계 최강, 경쟁력 있는 산업을 자빠트리는 문재인 정권이 우한 코로나 폐렴으로 강타당한 경제를 일으킬 수 있을까요? 간신이 더 많아 보이는 정권에 국운 상승보다 회전문 인사로 입신양명하려는 자들이 많지 않나요. 그러니 ‘소득주도성장은 아닙니다’, ‘탈원전도 아닙니다’라고 정직한 입장을 내놓지 못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부정부패와 비리를 앞장서서 감시해야 할 감사원장 최재형은 총선을 의식했는지 한수원 월성 1호기 조기 폐쇄의 경제성 축소 조작 심사에 늑장을 부리다가 직무유기 혐의로 시민단체에 고발당했습니다. 대학교수 200여 명은 그를 탄핵소추 대상이라고 경고했죠.

세계 경제는 배급이 아니라 정글전입니다. 그런데 이 정권은 배급을 최고의 미덕으로 아는지 주 52시간 근무 강제, 최저임금 보전으로 경쟁을 없애 경제를 오도합니다. 물론 허약한 분야는 보조도 필요하지만, 기업의 상황을 고려해 정책을 써야죠. 심지어 상장기업의 시가총액 1퍼센트를 세금으로 환수하겠다는 황당한 공약도 여권 비례당이 냈습니다. 이런 사회주의화를 증시의 약 3분의 1인 545조 원을 보유한 외국인 주주들이 좋아할까요?

지금 6·25전쟁 후 최악의 위기라는 이 나라에는 대통령의 복심이 아니라 민심을 받들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대통령의 숨결도 느낀다는 고민정을 비롯해 윤건영, 윤영찬, 최강욱, 김의겸 등 청와대 출신 30명이 출마했다는 겁니다. 탄핵이 겁났는지, 약속과 달리 친문, 친조 비례당도 2개나 만들었죠. 대통령 입맛대로 통법부(通法府)의 거수기 짓을 한다면 삼권분립과 국회가 왜 필요한가요? 사회주의자 조국을 보호하고, 헌법을 수호하여 살아있는 권력을 수사하는 윤석열 검찰총장을 공수처로 수사하려고요? 유시민의 범여권 ‘180석 호언’이 소름 끼칩니다. 폭정은 강력한 야당의 견제가 필수적입니다.

고위직의 능력 부족은 국민의 불행인데 집권 세력의 일부는 미국, 일본 좋은 것은 알아서 자녀들을 유학 보내면서 북·중·러 환상에 빠져 있습니다. 시인 도종환은 북한이 쏜 미사일보다 남한이 쏜 게 더 많다는 억설을 늘어놓아 대한민국수호예비역장성단이 후보 사퇴를 요구했습니다. 미국은 세계적인 코로나 경제 위기를 우려해 10여 년 전 이명박 시대에 처음 맺은 한미통화협정을 600억 달러 규모로 다시 체결했죠. 역시 혈맹 미국입니다. 그런데 여당 대표가 야당을 ‘토착 왜구’라고 망언하는 판에 일본은 한국이 간절히 원하는 통화스와프를 다시 맺어줄까요?

미래가 실종한 국정에 대해 통합당의 세종을 김병준 후보는 "노무현 정신의 최대 배신자는 문재인 정권"이라고 공격했습니다. 미 국무부는 2019 인권보고서에서 한국의 부패 사례로 조국 일가를 소개했죠. 그런 조국에 마음을 빚을 갖고 있다는 대통령은 대선 후보로 두 번에 걸친 공약에서 특권과 반칙의 불용, 광화문 대통령, 월 1회 기자회견 등 돈 안 드는 공약까지 식언한 것에 어떤 마음의 빚을 갖고 있습니까? 불만스런 국민들이 확실하게 지켰다고 보는 공약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일 겁니다. 조국 일가 비리를 감싸는 세력이 있는 한 평등·공정·정의는 구호일 뿐입니다.

현재를 과거와 싸움 시켜 미래를 잃게 하는 세력이 총선에 득세하여 절망의 나날을 보내게 된다면 그건 투표자의 자업자득입니다. 경제, 안보, 외교, 교육 붕괴, 그리고 소속 기자가 대통령에게 정직한 질문을 했다고 문을 닫는 방송사로 상징되는 언론 장악, 기울 대로 기운 국운입니다. 뿌린 대로 거둔다는 말이 있죠. 국민은 내일 21대 총선에서 무슨 씨앗을 뿌리고 있는지, 문재인 정권은 지난 3년간 무엇을 했는지, 한강의 기적을 이룩해 세계의 축복을 받은 자유 대한민국에 끼친 심대한 손상(損傷)을 어떻게 복구할 것인지, 똑똑하게 평가하고 투표해야 할 것입니다. 나와 후손들의 앞날을 위하여.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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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김영환

한국일보, 서울경제 근무. 동유럽 민주화 혁명기에 파리특파원. 과학부, 뉴미디어부, 인터넷부 부장등 역임. 우리사회의 개량이 글쓰기의 큰 목표. 편역서 '순교자의 꽃들.현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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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밀도 시골생활을 시작하며

2020.04.13

경기 남부 지역으로 이사 온 지 한 달이 넘었습니다. 도시의 높은 건물 대신 평지, 낮은 언덕과 산이 눈을 편하게 합니다. 대부분 나무들이 아직도 앙상하지만 조만간 신록의 의상을 입은 모습이 기대됩니다. 새로 심은 화초도 얼마 후 꽃을 피우겠지요. 밤에 별이 보이는 것도 신기하고요. 뉴스나 서울 나들이 때 접하는 마스크 쓴 사람들 모습이 아니었다면 역질이 얼마나 심각한지 잘 모를 뻔했습니다.

이전에 자주 와본 곳이 아니어서 이사 후 이곳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습니다. 농사짓는 냄새도 나지만 공기가 맑아 좋습니다. 기존 농가와 전원주택 단지가 섞여 있는 동네라 중장년 주민이 많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애들이 많습니다. 한 학년에 20명 정도의 소규모인 초등학교 분교가 가까이 있는데 새 주택단지 애들이 대다수로 보입니다. 개학이 미루어져 애들이 삼삼오오 몰려다녀 한대수의 노랫말처럼 ‘...작은 창가로 흘러드는 산뜻한 노는 아이들 소리 ...’를 자주 듣습니다. 전에 살던 아파트 단지에서는 보기 힘든 일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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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고층 아파트 단지를 보면 답답한 느낌이 듭니다. 아파트(5층 이상의 공동주택)는 효율성의 상징입니다. 작은 면적에 많은 가구의 주거 공간을 제공합니다. 30층 아파트의 경우 단독 주택에 비해 같은 면적의 땅에 29가구가 더 살죠. 전기, 수도 등 생활편의 수단 공급에서도 매우 효율적입니다. 새 아파트들이 더 높아지고 있습니다. 재개발 지역의 초고층 아파트는 층수를 늘려 이익을 보려는 경제적 유인이 발전된 건축 기술과 손발이 맞아 빚어낸 결과이지요. 울창한 숲에서 나무들이 햇빛을 차지하려 키를 키우는 행태를 연상시킵니다. 실제 도시에서는 녹지가 줄며 나무들이 사라져 가는데 말입니다.

사막에 단기간에 건설된 카타르의 수도 도하에는 200미터가 넘는 고층 건물의 호텔이나 아파트가 드물지 않다고 합니다. 국내 부동산 개발업자가 이를 보고 아이디어를 얻어 흉내 내는 것은 아닌지 의심됩니다. 필자에게 높은 아파트들은 블레이드러너(Blade Runner)와 같이 암울한 미래 디스토피아 모습을 보여주는 공상과학영화의 배경을 연상시킵니다. 황사나 미세먼지가 심해 하늘이 잿빛인 날은 더욱 그렇습니다.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아파트 공화국’입니다. 인구밀도가 매우 높은 홍콩이나 중국 대도시들을 제외하면 서울처럼 높은 아파트 건물들이 즐비한 풍경은 흔치 않습니다. 과거 빠른 경제 성장과 더불어 대규모 인구이동이 진행되었습니다. 1960년대 초 우리나라 사람 10명 중 1명이 서울에 살았는데, 서울 집중 추세가 정점이었던 1990년에는 4명 중 1명이 서울에 살았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효율적으로 주거 공간을 제공하는 아파트의 건설이 없었더라면 서울에 여건이 열악한 소위 달동네가 많았을 겁니다. 개발도상국에서 흔한 일이지요.

아파트가 처음 보급될 때 현대적 주거양식이라고 선망의 대상이었습니다. 요즘 기준으로 보면 그때 집들은 웃풍으로 춥고, 방음이 안 되고, 부엌이나 화장실 등 불편한 것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요. 문제를 개선해주었던 아파트는 주거 형태 변혁의 화신으로 각인되었다고 생각됩니다. 196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지어진 아파트는 이제 가장 보편적 주거양식입니다. 2018년 기준 국내 전체 약 1,760만 주택(호) 가운데 아파트가 약 1,100만 호, 단독주택이 400만 호입니다.

3년 전 지은 단독주택에 살아보니 편하고 요즘 주택도 잘 짓는구나 감탄이 나옵니다. 1990년대 미국에서 10년 넘게 주택에서 생활했던 터라 주택생활에 적응하는 것이 쉬웠습니다. 미국은 단독주택이 가장 일반적인 거주형태이고 대부분 도시지역에서 고층 상업용 건물들이 집중된 도심(city center, downtown)과 저밀도 주택으로 이루어진 교외(suburb)로 뚜렷이 나누어져 있습니다. 땅이 많아 평면적으로 널리 퍼지는 것이 쉬웠던 거지요. 출퇴근 시간대의 교통흐름은 방향이 뚜렷합니다.

그런데 근래 미국 내에서 저밀도 단독 주택거주를 우선시하는 시각을 바꿔야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자원의 낭비와 더불어 인구 유입이 많은 도시에서는 주택공급이 쉽지 않아 집값이 비싸져 저소득층 주민들이 집 마련에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예를 들어 도시계획법이나 규제가 주거지역에 단독주택 건축만을 허가하는 것을 완화해야 한다는 겁니다. 전문가들뿐 아니라 저명한 환경단체인 시에라클럽(Sierra Club)도 이런 정책 변화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고밀도 주거양식 아파트가 주류인 우리나라의 경우 밀도를 낮추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생각됩니다. 토지 사정이 여유 있어 보이는 소도시에서도 좀 생뚱맞게 높은 아파트 건물을 보게 됩니다. 수요가 많지 않을 것 같은 지역에 위치한 이런 건물들은 효율성을 떠나서 미관상으로 거슬리는 애물단지입니다. 이미 아파트가 숲을 이룬 서울이나 인접 지역이 어렵다면 새로 도시화되는 지역에서라도 고층 아파트 건축을 제한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 대신 저층 아파트와 단독 주택들이 섞여 있고, 운전할 필요가 없는 거리에 생활 편의 시설들이 분포하는 공동체가 조성되도록 하면 좋겠지요.

학생들의 창의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은데 획일적 교육을 원인으로 지목합니다. 획일적 주거 형태도 사고방식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요? 동네 아이들이 스스럼없이 새로 이사 온 집에 고양이를 안고 놀러와 자기 집 우체통에 새가 일을 낳았다고 대박 사건을 알려줍니다. 이들은 나중에 아파트에서 자란 아이들과 달리 자연의 모습이 깃든 영롱한 추억을 지닐 것입니다. 이 동네 젊은 부모들의 선택에 찬사를 보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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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허찬국

1989년 미국에서 경제학 박사학위 취득 후 미국 연지준과 국내 민간경제연구소에서 각각 십년 넘게 근무했고, 2010년부터 2019년 초까지 충남대 무역학과 교수로 재직. 다양한 국내외 경제 현상을 조사하고 연구하는 것이 주된 관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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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널들의 이상한 말 습관

2020.04.10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짙은 어둠이 나라 곳곳에 내려앉고 개인의 삶은 흔들리고 있습니다. TV방송의 큰 축을 이루는 시사토론 프로그램을 시청하며‘귀 살을 찌푸릴’때가 많습니다. 세칭 전문가들이 보통 사람들도 하지 않을 법한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를 강조한다든지, 사회자의 물음과는 관련 없는 딴 이야기를 한다든가, 상황이 한참 지났는데 뒷북을 친다거나, 구체적인 방법과 절차를 묻는 질문에 당위성을 언급하고 흐뭇해하질 않나, 정치적 성향에 따라 지나치게 편파적인 의견을 제시한다든지. 주고받는 내용이야 그렇다 하더라도 패널들의 말 습관도 문제입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주 듣지만 귀에 거슬리는 말입니다. 사전에서‘불구(不拘)하다'의 뜻을 찾아보면‘얽매여 거리끼지 아니하다'로 되어 있습니다. 도대체 언제 적 말인가요? 고색창연하지도 않고 그냥 연식이 오랜 표현이지요. 반대 의사를 나타냄에 굳이 '불구하고'라는 말을 쓸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괄호에 넣으면(생략하면)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공적인 토론은 물론 일상생활에서도 흔히 사용된다는 것이 문제이긴 하지만요. 조금은 다른 이야기지만 이런 표현은 얼마나 어색한가요? “나는 너를 열렬히 사랑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떠나지 않을 수 없다.”

# “…처럼 보여집니다”
수동에 피동을 더한 말법입니다. 모든 것이 모호하고 불명료한 세태 때문인지, 사람됨이 지나치게 겸손한 탓인지, 매사에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사회적 풍조 때문인지, 아니면 단순한 말 버릇인지 모르겠군요. 비슷한 말 습관으로“…처럼 여겨집니다”“…인 거 같아요”도 있습니다. 이런 말법은 젊은 층에서도 자주 들을 수 있어 고개를 젓게 만듭니다. 연전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과를 거둔 구기 대표팀 인터뷰에서 기자가 수훈 선수에게 소감을 물으니 이렇게 대답을 하더라니까요.“매우 기쁜 거 같아요.”어제 방송에선 이런 일도  있었답니다. 현장 기자가 한 여의도 벚꽃 상춘객에게 코로나가 무섭지 않으냐고 물으니, 이 사람 거동 보소, 검연쩍은 미소를 지으며 하는 말이라니! "별 일 없을 거 같아요.”

# “개인적 의견을 말한다면…”
패널 토론에서 흔히 듣지만 듣고 싶지 않은 말투이기도 합니다. 공적인 프로그램이지만 패널들이 개인적 의견을 말한다는 것을 시청자들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굳이 그 점을 강조할 필요가 없습니다. 토론 참가자들이 정당이나 기관, 조직의 대변인은 아니잖아요. 그런데 왜 이런 말법을 사용하는 것일까? 본인의 생각에 자신이 없어서일 것입니다. 아니면 치우친 의견임을 잘 알고 있어 비난과 구설수에 말려들고 싶지 않아서인지도 모르지요. '개인적’운운하기 전에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상식 기준에 합당한 의견을 제시하도록 평소에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요? 물론 그 시도가 쉽진 않겠지만. 그보다 국민 정서를 고려치 않은 정당의 대변인이나 공직자의 말실수가 더 문제가 되는 것이겠지만요.

# “이 단계에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토론이 한참 진행 중인데 침묵을 지키던 사람이 툭 한마디 던집니다. 우리가 이 단계에서 한번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다른 패널들의 낯빛을 보면 그러려니 별반 괘념치 않는 듯 보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말법은 예를 그르친 것입니다. 그러면 토론에 참여 중인 다른 사람들은 지금껏 허방다리를 짚고 있다는 말인가요? 어처구니없는 것은 그 사람의 의견 또한 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는 데 있습니다. 이미 논의가 끝난 내용을 되짚거나 요약하기도 합니다. 혹 이런 표현은 어떤지요? “우리가 이 단계에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은… 근데 지금 우리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죠?”

위에서 패널들이 저지르는 바람직하지 않은 말 습관을 살펴보았지만 구체적인 발언 내용과 논지가 더욱 중요할 것입니다. 필자의 '개인적’의견에 허점이 있을 수 있고 별것도 아닌 일을 지나치게 부각하지 않나 조금은 마뜩치 않게 생각하는 분들도 있으리라 짐작합니다. 다만 평소 생각하고 느낀 점을 독자 여러분과 나누고 싶을 따름입니다.“그러게. 생각해보니 그런 면이 없잖아 있었네!”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자유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김창식

경복고, 한국외국어대학 독어과 졸업.수필가, 문화평론가.
<한국산문> <시에> <시에티카> <문학청춘> 심사위원.
흑구문학상, 조경희 수필문학상, 한국수필작가회 문학상 수상.
수필집 <안경점의 그레트헨> <문영음文映音을 사랑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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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을 읽으며

2020.04.09

요즘 이율곡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어떤 계기로 율곡 이이(1536~1584)에 관심을 갖게 돼 여러 가지 책을 사고 찾아서 읽는 중입니다.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이 율곡은 우리 역사에 우뚝한 인물입니다. “전하, 아니 되옵니다”로 시작해서 “통촉하소서”로 끝나는 보통 사대부들, 자리나 지키는 구신(具臣)들, 학식과 덕망은 있지만 일을 모르는 선비들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율곡이 그 시대에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시무(時務)를 알고, 국가를 경장할 방략을 갖춘 분이라는 점입니다. 성호 이익(1681~1763)이 <성호사설>에서 “조선조 이래로 시무를 알았던 분을 손꼽아 봐도 율곡 이이와 반계 유형원 두 분이 있을 뿐”이라고 말한 대로입니다.

율곡은 12년이 조금 안 되는 벼슬살이 기간에 임금을 바른길로 이끌어 ‘무너져 가는 집’ 조선을 다시 세우려 진력했고, 동서 붕당을 보합(保合)하려고 애썼습니다. 특히 경제사(經濟司, 기획재정부 같은 기구) 설치, 과세제도와 인사제도 개혁, 서얼 허통책(양반 첩의 자식인 서얼에게 관직을 고루 주자는 정책) 실시, 10만 양병설(지금도 허위라는 사람들이 있지만) 등 현실에 바탕을 둔 구체적 개혁안을 제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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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시무(識時務). 시대의 중요한 일을 아는 것. 필자의 졸필.

그러나 선조는 어둡고 우유부단했고, 동과 서로 편이 갈린 사림은 율곡의 말을 받아들이기보다 시비하고 탄핵하기 바빴습니다. 각 단계의 과거에서 아홉 번 장원한 빛나는 경력과, 명민하고 직설적인 율곡의 태도가 질시와 반감을 산 점도 있습니다. 결국 율곡은 큰 뜻을 제대로 펼치지 못한 채 49세로 병사하고 말았습니다. 율곡은 가장 존경했던 정암 조광조(1482~1519)의 묘지명(墓誌銘)을 쓰면서 그의 좌절을 한탄했지만, 자신도 그와 비슷하게 배척당해 꺾이고 말았습니다.

퇴계 이황(1501~1570)과 율곡을 비교해봅니다. 1567년 선조 즉위 직후 퇴계는 예조판서에 임명됐으나 병을 이유로 물러납니다. 이때 율곡은 35세 연상인 퇴계에게 머물러 일할 것을 권하면서 “벼슬이란 남을 위한 것이지 어찌 자기를 위한 것이겠습니까?”라고 말합니다. 퇴계는 “벼슬은 진실로 남을 위하는 것이지만, 남에게 이로움이 미치지도 못하고 자신에게 근심만 절실해진다면 할 수 없는 일이네.”라고 답합니다. 율곡이 “선생이 조정에 계시면서 아무것도 원대한 계획이 없다 하더라도 상(왕)이 마음으로 중하게 의지하고 사람들이 기뻐하며 신뢰할 것이니 이 또한 이익이 남에게 미치는 것입니다”라고 했으나 퇴계는 끝내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퇴계는 물러나고 물러남으로써 더욱더 높아지고 존경을 받았지만, 율곡은 물러났다가도 다시 나와 현실과 싸우며 상처받고 피 흘리는 삶을 살았습니다. 나라 사랑은 같아도 출처(出處, 벼슬살이와 물러남)는 이처럼 달랐습니다. 율곡인들 물러나 후학이나 기르면 명예롭고 편안하리라는 걸 몰랐겠습니까? 벼슬을 하지 않으면 안 될 만큼 가난하기도 했지만, 율곡은 나라와 백성의 참담한 현실을 끝내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열 살 때 지은 ‘경포대부(鏡浦臺賦)’에 “선비가 세상에 태어나 그 자신을 사사로이 하지 않고, 혹시 풍운제회(風雲際會, 밝은 임금과 어진 정승의 만남)를 이룬다면 마땅히 사직의 신하가 되어야 하리.”라는 말이 이미 나옵니다.

여덟 살 때 지은 ‘화석정(花石亭)’ 시는 다음과 같습니다.

林亭秋已晩 숲속 정자에 가을이 이미 깊어
騒客意無窮 시인의 생각 끝이 없네
遠水連天碧 먼 물은 하늘에 닿아 푸르고
霜楓向日紅 서리 맞은 단풍 햇빛 받아 붉구나
山吐孤輪月 산은 외로운 달을 토해 내고
江含萬里風 강은 만 리 바람을 머금는데
塞鴻何處去 변방의 기러기는 어디로 가나
聲斷暮雲中 저녁 구름 속에 소리 끊기네

사람들은 이 시에서 소년율곡의 천재를 읽지만 나는 가을과 황혼, 울음소리 끊긴 기러기의 이미지가 정말 가슴 아픕니다. 사람의 운명이 그가 지은 시대로 된다는 시참(詩讖)도 생각납니다. 율곡은 임진왜란 8년 전에 졸(卒)했는데 더 살았더라면, 영의정에까지 올라 좀 더 나라에 기여할 수 있었다면 나라 꼴이 많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자꾸 하게 됩니다.

21대 총선 투표일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배달된 선거 공보물을 살펴보며 이렇게도 인물이 많나, 잘도 그러모았구나, 다 뭘 하는 자들인가, 이 중에서 ‘벼슬은 남을 위해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조금이라도 하는 사람이 있기는 할까, 이런 의심을 하게 됐습니다. 하도 비루하고 정직하지 못하고 좁쌀 같은 정치꾼들만 조석으로 접하다 보니 사심 없고 공명정대했던 율곡이 더욱 그리워집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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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任喆淳)

한국일보 편집국장 주필, 이투데이 이사 겸 주필 역임. 현재 자유칼럼그룹 공동 대표, 한국언론문화포럼 회장, 시니어희망공동체 이사장. 한국기자상, 위암 장지연상, 삼성언론상 등 수상. 저서‘노래도 늙는구나’, '효자손으로도 때리지 말라’,’손들지 않는 기자들‘,‘1개월 인턴기자와 40년 저널리스트가 만나다(전자책)’,‘내가 지키는 글쓰기 원칙(공저)’'마르지 않는 붓'(공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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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가 풍을 맞았다

2020.04.07

‘우한(武漢) 바이러스는 하루에 막을 수가 없지만,
주사파 바이러스는 4월 15일 하루에 막을 수 있다.‘

‘대한민국 여권으로는 다른 나라에 갈 수 없다.
그래서 야권으로 바꿔야 한다.‘

‘뭉치면 죽고, 헤치면 산다.’

‘코로나 바이러스 오래 안 갈 거야.
왜냐하면 중국제(Made in China)니까.‘

코로나 바이러스 재앙이 온 나라와 전 세계로 확산되면서 낯선 말들이 횡행하고 있습니다. 착한 임대료, 사회적 거리, 도시 봉쇄, 코로나 백수, 코로나 난민, 코로나 블루(corona blue), 팬데믹(pandemic), 인포데믹(infodemic), 록 다운(lock down), 경제 빙하기, 고용 암흑기 등도 익숙하지 않은 말들입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았던 말의 강도가 갈수록 불안과 공포를 더해 가는 양상입니다. 지구촌 모든 나라가 우두망찰하고, 사람들은 넋을 잃어 가고 있습니다. 잔인한 死(사)월입니다.

말의 번롱(翻弄)을 넘어 나라 안에서는 절망에 가까운 상황이 엄습해오고 있습니다.
보육공백, 졸업·입학식 없는 학교 인터넷 강의 진통, 병실 없어 입원 못한 어머니 딸 옮을까봐 목숨 끊어, 무료 급식 스톱…독거노인·노숙인 끼니 막막, 코로나가 삼킨 취업시장…실직 쓰나미, 항공사 국내 첫 셧 다운…코로나 생이별, 한 달 매출 0원…여행사 93곳 폐업(3·월 6일), 한국 올해 마이너스 성장 예측…. 사람·기업뿐만 아니라 나라가 풍(風)을 맞은 격입니다.

# 창살 없는 감옥, 단절 좌절의 시대를 맞다

지구촌은 적막강산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단절의 시대가 되었습니다
도쿄 올림픽 1년 연기, 이동제한 급속 확대…35개 국 10억 명이 갇힌 상태(3월 23일), 전 세계 학생 40%가 등교 못해, 세계 자동차공장 셧 다운…붕괴 위기, 세계 증시 한 달 새 3경 원 증발, 미국 실업자 매주 400만 명 쏟아져, 이탈리아 신문 부고(訃告)란 1~3개 면서 10개 면으로 늘어, 세계 소비 50% 차지하는 미국·유럽 마비…물건 팔 곳이 없다, 美 감염 방치 땐 최대 2억 명 감염-170만 명 사망할 수도….

인류가 급격한 생태계 변화에 전전긍긍하고 있습니다. 아비규환입니다.
후진국에서나 있을 법한 휴지·빵·쌀·채소·과일·고기에 이르기까지, 생필품 사재기가 선진국에서 더 극성입니다. 한 달여 전 손자들 뒷바라지 도와주러 오스트레일리아에 간 아내는 “모든 것이 흔한 이 나라에서 키친타월을 휴지 대신 쓰고 있다”며, “여차하면 신문지로 밑 닦을 판”이라고 안달입니다. 한국으로 돌아올 항공편조차 없어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는 처지에 아노미 상태가 된 듯합니다. 일부 국가에선 가택 격리 위반 시민에 곤봉 세례, 사살 명령까지 내렸습니다.

질병보다 무서운 앞날이 시나브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정치판 야료(惹鬧)입니다.
맨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비례당’입니다. 민주당과 군소정당 4+1이 만든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산물입니다. 야당이 선수를 치자 반대하던 민주당도 유령정당을 만들었습니다. 구차스런 변명은 “의병(義兵)이 자꾸 나와서”(이인영 원내대표)입니다. 정작 실체를 보니 의원 꿔주기에다 ‘사돈’ ‘형제’ 운운하며, 선거 후에는 흡수·통합을 공공연히 거론하는 위성정당입니다. 의병이 아닌 귀태(鬼胎)의 의병(疑兵)들입니다.

이 원내대표가 거론한 의병은 죽창을 든 의로운 지사라기보다는 관군(官軍)입니다. 진짜 의병은 바이러스 창궐에 전력 대항하는 사람들입니다.
코로나 극복에 써 달라며 암보험 깬 기초수급자, 적어서 미안하다며 마스크 11장을 기부한 장애 어린이, 환자가 급하다고 대구로 뛰어간 신혼 1년차 간호사, 개인의원 접고 대형병원서 자원봉사 나선 의사, 죽음을 감내하는 의료진에 도시락·간식 후원하는 야시장 상인들. 이들이 진정한 의병입니다.

# 코로나 이후의 정치 또 다른 전쟁 되나

또 다른 걱정은 코로나를 왜곡하는 꼼수정치의 암담한 미래입니다.
여당은 ‘코로나 방역 성공’을 총선 슬로건으로 내걸었습니다. 그런데 아시아 4룡(龍 )국가의 확진자와 사망자 수를 보면 어이가 없습니다. 대만 298-2, 홍콩 644-4, 싱가포르 844-2인데 한국은 9,661-158입니다.(3월 30일 현재) 정부 여당은 이를 어떻게 설명할지 궁금합니다. 일부 외신들의 한국 방역 찬사를 앞세워 정치판은 자화자찬에 여념이 없습니다. 제비 한 마리 보고 여름이 왔다고 떠드는 꼴입니다.

보이지 않는 질병보다 보이지 않는 정치는 더 두렵습니다.
시민정신을 외면한 채, 넘쳐나는 가짜뉴스 속에서, 황당한 공약을 남발하는, 정체도 모를 깜깜이 정당들. 후보 얼굴도 못 보는 비대면 선거로 뽑을 21대 국회는 어떤 모습으로 어떤 행태를 자행할까요? 세금 쏟아붓기로 폭증한 나라 빚, 훌쩍 오른 공시지가가 부를 세금폭탄과 조세저항은 어쩔 건지, ‘사회적 패권 교체’는 무엇을 위한 꿍꿍이인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미래는 불안하고 암담하기만 합니다.
BC(Before Corona)는 겪어 봤지만, AD(After Disease)는 앞이 캄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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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김홍묵

경북고,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동아일보 기자, 대구방송 이사로 24년간 언론계종사.  ㈜청구상무, 서울시 사회복지협의회 사무총장, ㈜화진 전무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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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의 어둠을 밝히는 온라인 공연

2020.04.06

어제는 키릴 페트렌코(Kirill Petrenko)가 지휘하는 베를린 필의 연주를 들었습니다. 구 소련 옴스크에서 태어난 유태계 러시아 사람 키릴은 꼭 마음씨 좋은 이웃집 아저씨처럼 생겼습니다. 그의 곰살가운 표정과 몸짓이 유려하게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있었습니다. 베를린의 상징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 모인 수많은 무료 관객들을 위한 노천 연주회였습니다. <2019년 8월 24일 공연>

인류의 평화와 화합을 노래한 베토벤의 9번 교향곡 ‘합창’, 듣는 이의 가슴을 울렁거리게 하는 걸작이지요. 1, 2악장에서는 저 가슴속 밑바닥에서부터 치밀어 오르는, 용암처럼 뜨거운 것이 몇 번이나 꿈틀거리다 가라앉기를 반복합니다. 3악장에선 마치 그 뜨거움을 달래는 듯한 아름다운 선율이 계곡의 물소리처럼 잔잔히 흐르다가 마침내 폭발하는 환희의 합창이 4악장에서 이 대작의 절정을 이룹니다.

“오! 벗들이여. 이 소리가 아니오. 좀 더 즐겁고 환희에 넘친 노래를 함께 부르세!
(O Freunde, nicht diese Toene! Sondern lasst uns angenehmere anstimmen, und freudenvollere)”

환희의 송가를 여는 이 멋진 서창을 자랑스럽게도 우리나라의 베이스 연광철이 우렁찬 목소리로 불렀습니다.

오늘은 쇼스타코비치의 7번 교향곡 ‘레닌그라드’를 역시 베를린 필의 연주로 들었습니다. 2차 대전 중 약 900일에 걸친 나치 독일군의 봉쇄 작전으로 수많은 시민들이 포탄에 맞아 죽고 굶어 죽고 병들어 죽어간 레닌그라드(지금의 상트페테르부르크). 근 2년 반의 봉쇄가 풀렸을 때 250만 도시 인구가 50만으로 줄었다고 합니다. 작곡가는 자신이 태어나고 사랑했던 고향에 이 곡을 바쳤습니다. 그 처절했던 봉쇄 기간 첩보작전처럼 악보가 죽음의 도시로 전달되고, 목숨을 부지한 연주가들이 모여 이 곡을 연주했다지요. 당시 포위한 독일군마저 숙연히 들었다는 ‘레닌그라드’를 오늘은 동베를린 태생의 미하엘 잔데를링(Michael Sanderling)이 지휘했습니다. <2019년 6월 1일 공연>

마치 진격의 행군 소리처럼 무겁게 시작된 곡은 점차 길고 긴 고난을 이야기하듯 가냘픈 선율로 이어집니다. 반복되는 진군의 리듬, 불안과 혼돈의 소요, 인내의 고요, 절망 가운데 피어오르는 승리에의 기대, 생존의 환희. ‘레닌그라드’는 아마도 그런 희망을 노래한 듯합니다.

지휘자 미하엘은 세계 대전 이전에 동프로이센에서 태어나 독일과 소련에서 활약했던 쿠르트 잔데를링(Kurt Sanderling)의 아들입니다. 베를린 국립극장 지휘자였던 유태 혈통의 아버지 쿠르트는 나치 광풍이 몰아치던 1935년 모스크바로 망명했고, 2차 대전 중에는 독일군의 봉쇄로 참혹한 희생을 치른 바로 그 레닌그라드에서 지휘자로 지냈던 기연을 가지고 있습니다. 1960년 독일로 돌아온 그는 베를린과 드레스덴에서 토마스, 스테판, 미하엘의 세 아들과 함께 지휘자 가족으로 이름을 떨쳤습니다.

어제오늘 뜻하지 않은 안방 음악회의 호사는 친구의 귀띔 덕분이었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 창궐로 전 세계의 공연과 전시가 취소되거나 무기한 연기되는 게 현재 상황입니다. 듣고 싶어도 공연장을 찾기 어렵고, 보고 싶어도 극장을 찾아 나서기 어려운 문화적 암흑시대가 도래한 분위기입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들이 무료로 안방을 찾아든 것입니다. 베를린 필하모닉은 준비했던 공연 일정을 취소하는 대신 디지털 콘서트홀을 무료로 활짝 열어 주었습니다. 누구든지 인터넷 홈페이지(www.digitalconcerthall.com)를 열어 자신의 이메일 주소만 입력하면 간단히 회원으로 가입되어 한 달 동안 무료 공연을 즐길 수 있습니다. 1960년대부터 최근까지 600여 편의 공연 영상이 공개되고 있습니다.

베를린 필만이 아닙니다.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도 매일 공연 한 편을 무료로 공개한다고 합니다. 오스트리아 빈 국립오페라단, 독일 바이에른 국립오페라단도 온라인 무료 공연에 합류했습니다. 국내 예술의전당, 국립국악원도 홈페이지와 유튜브 등을 통해 온라인 무료 서비스에 나섰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온 세계가 사회적 거리두기, 고독의 공포에 휩싸인 이 고통의 시기에 고맙게도 문화단체들이 다투어 세계 시민들에게 무료 공연의 은혜를 베풀고 있습니다.

이 위태로운 시기에 병구완을 자청해 병상으로 달려가는 아름다운 발길이 이어졌습니다. 위로의 엽서를 띄우고, 성금을 모으는 따뜻한 손길이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국내외 유수의 예술·문화단체들이 외로움과 우울증에 시달리는 세계 시민들에게 예술의 향기, 문화의 온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시련이 인내와 극기의 정신을 기른다고 하지요. 정말 이 봄 시련의 비를 뿌려 이 땅에 인내와 극기, 배려와 사랑의 싹을 돋게 하려는 뜻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내일은 이탈리아 밀라노 출신 리카르도 샤이(Riccardo Chailly)의 지휘로 햇살같이 밝고 경쾌한 멘델스존의 4번 교향곡 ‘이탈리안’을 들어볼 참입니다. 코로나바이러스의 발원지 중국보다 더 혹심한 고초를 겪고 있는 이탈리아 시민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마음으로.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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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방석순

스포츠서울 편집국 부국장, 경영기획실장, 2002월드컵조직위원회 홍보실장 역임. 올림픽, 월드컵축구 등 국제경기 현장 취재. 스포츠와 미디어, 체육청소년 문제가 주관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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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재윤 인터뷰] "한국 권력자들이여, 변방의 중국몽에서 깨어나라"

'슬픈 중국' 출간한 캐나다 맥매스터대 교수


'집단이 개인에 우선, 공산당은 무오류' 앞세워
수천만명 죽인 중국정부의 인권유린 방관 안돼
현 정부의 반미친중 흐름의 뿌리는 NL자주파에
홍콩 시위가 중국 체제 변화의 신호탄 될 것

신간 ‘슬픈 중국: 인민민주독재 1948~1964’는 중국의 역사와 현재를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내년까지 제2권 ‘문화대반란 1964~1976’, 제3권 ‘대륙의 자유인들 1976~현재’ 등 3부작으로 출간할 계획인 저자 송재윤(51) 캐나다 맥매스터대 교수는 “인간의 기본권이 보장되지 못하고 공산당 일당독재로 유지되고 있는 중국은 한마디로 ‘슬픈 중국’이라고 했다. 이메일로 질문하고 답변을 받았다. 아래는 인터뷰 전문.

'슬픈 중국'을 쓴 송재윤 캐나다 맥마스터대 교수.



―책 제목이 ‘슬픈 중국’이다.

“오늘날 중국은 중국공산당 일당독재의 국가다. 1949년 건국 이래 1976년 마오쩌둥 사망 때까지 중국의 인민들은 1948년 유엔총회에서 채택한 세계인권선언에 보장된 인간의 기본권을 거의 모두 박탈당한 채 비참한 극빈의 늪에서 허우적댔다. 집산화가 절정에 이르렀던 대약진운동 시기 중국의 인민은 대규모 집단농장에서 국가의 농노로 전락한 채 인류사 최악의 기근에 시달려야만 했다. 그 과정에서 3000만에서 4500만에 이르는 인민이 굶어죽고, 맞아죽고, 강제노역에 시달리다 숨졌다.
이어지는 문화대혁명(1966-1976) 시기 중국인들은 다시 또 ‘10년의 대동란(大動亂)’에 내몰렸다. 1978년 12월 13일 중공중앙 부주석 예잰잉(葉劍英·1897~1986)의 담화에 따르면, 문혁 기간 10년 동안 무려 전체 인구의 9분의 1에 달하는 1억 1300만 명이 ‘정치적 타격’을 입었다. 많게는 23만이 4300 여 건의 큰 규모 무장투쟁에서 희생됐고, 억울하게 죽임 당한 숫자는 수백만을 넘어 심지어는 2000만에 달한다는 주장도 있다. 정확한 피해의 규모는 영원히 밝힐 수 없을지 모른다.
그야말로 상상을 절하는 극단의 역사였다. 1978년 이후 개혁개방으로 중국은 30~40년에 걸쳐 경이로운 경제성장을 이어갔지만, 정치체제의 기본골격은 바뀌지 않았다. 중국공산당은 여전히 일당독재의 권위주의 체제를 이어가고 있다. 중국 헌법 전문과 총강령 제1조는 중국이 ‘인민민주독재’의 사회주의 국가라 명시하고 있다. 중국의 인민들은 여전히 인간의 기본권을 누리지 못한다. 언론, 출판, 집회, 결사 등 표현의 자유는 극히 제한돼 있다. 사상, 종교, 양심의 자유도 보장되지 못한다. 거주 이전의 자유, 출산, 양육 등 사생활의 자유도 제한된다. 인구 14억의 ‘비대한 대륙 국가’인데 여전히 중국공산당의 일당독재로 유지되고 있다. 그런 중국의 현대사를 한 마디로 압축하면 ‘슬픈 중국’이 아닐까.”

'슬픈 중국'(까치) 표지.

 


―앞 부분에서 홍콩 시위 이야기를 썼다. 홍콩의 미래를 어떻게 전망하나. 중국의 미래이기도 하고, 코로나 사태에서 보듯 중국의 문제가 곧 세계의 문제이기도 하다.

“홍콩의 미래에 관한 단기 전망은 어두울 수 있겠지만, 장기 전망은 매우 밝다고 생각한다. 홍콩 사람들은 자유, 민주, 인권, 법치 등 인류 보편의 가치를 체득하고 날마다 영어로 전 세계의 정보를 흡수하는 세계시민들이다. 그들은 베이징의 중공정부가 원하는 중국인들이 될 수가 없다. 2019년 홍콩 시민들은 ‘반송중(反送中)’의 구호를 들고 나왔다. 반송중의 영어 번역은 ‘No extradition to China’이다.

홍콩 시민들이 중국에 범죄인을 인도할 수 없다고 주장한 셈이다. 일국양제에 의하면 홍콩은 중국의 일부이며, 홍콩시민들 역시 중국인들일 테지만, 홍콩시민들은 스스로를 홍콩어(Hong Kongers)라고 자칭한다. 홍콩 중문대학의 시위에서는 ‘천멸중공(天滅中共)’ 곧 ‘하늘이 중국공산당을 멸망시킨다!’는 구호까지 등장했다. 이 책의 제1장에 그 장면의 사진이 증거로 포함돼 있다. 시위에 참여하는 학생과의 교신을 통해서 어렵게 입수한 사진이다.
2019년 홍콩의 반공산당 자유주의 운동은 곧바로 타이완의 선거혁명으로 이어졌음에 주목해야 한다. 전 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는 해외 중국계의 인구는 5000만에 달한다. 홍콩, 타이완, 해외 중국계 인구로 연결되는 자유의 벨트는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세력이라 볼 수도 있다. 2000년 존속되던 황제 지배체제를 종식한 중국 공화혁명의 아버지 쑨원은 홍콩에서 혁명운동을 시작했다. 1895년 홍콩의 흥중회(興中會)가 일으킨 혁명의 마파람이 결국 15~16년에 걸쳐 청조를 무너뜨리는 민국혁명으로 이어졌다. 2019년 홍콩의 자유화 운동의 여진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전 세계가 숨죽이며 바라보고 있는 상황이다.

 


친중 이데올로그들은 흔히 중국공산당의 능력주의(meritocracy), 시진핑의 탁월한 지도력, 공산당에 대한 중국인민의 압도적 지지 등을 강조하지만, 중국체제에 관한 그 모든 찬사는 중공정부의 프로파간다에 불과하다. 중국의 열악한 인권상황을 살펴보라. 빈부격차, 지역갈등, 도농갈등, 낙후된 의료시스템, 관료주의, 부패구조 등등 중국은 흡사 큰 화물을 싣고 육중하게 굴러가는 저거너트(Juggernaut)를 연상시킨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으로 다시금 증명되었다. 중국의 문제는 더는 중국만의 문제일 수가 없다. 세계는 더 이상 중국공산당의 전체주의적 인권유린 및 정치범죄를 그대로 방관할 수는 없다. 중국은 변해야만 존속할 수 있다. 홍콩의 시위는 그 변화의 시작일 수 있다.”

―홍콩 이후엔 대만, 대만 이후엔 한국이 중국 지배에 들어갈 것이란 우려도 있다. 시진핑 주석은 한국이 원래 중국 것이었다고 한 적도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를 잘 돌아보자. 타이완과 홍콩은 모두 기민하게 중국발(發) 입국을 막았다. 그 결과 2020년 4월 1일 현재 타이완의 확진자는 329명, 홍콩은 714명으로 통제되고 있다. 일국양제 하에서 홍콩은 중국의 일부이다. 타이완의 제1교역국은 바로 중국이다. 대중국 수출이 전체 수출의 27.9%에 달한다. 그럼에도 타이완은 기민하게 중국발 입국을 막았다. 타이완은 또한 홍콩과 긴밀한 경제적 유대관계를 맺고 있다. 홍콩은 타이완의 제3교역 대상이다. 결국 타이완과 홍콩의 시스템이 연동돼 있음을 보여준다. 타이완과 홍콩 모두 중국 현실에 빠삭하기 때문에 기민한 봉쇄(containment) 전략으로 방역(防疫)의 성공을 이룰 수 있었다.

 

 

과연 중화인민공화국이 현 체제를 그대로 유지한 채로 타이완과 홍콩을 흡수할 수 있을까? 그럴 수는 없을 듯하다. 2019년 홍콩의 시위를 보라! 날마다 대규모 시위가 이어졌지만, 중공정부는 1989년처럼 무력진압을 시도할 생각조차 못한 듯하다. 이미 중국은 전 세계와 무역을 하는 세계 제2의 경제대국으로 덩치를 키웠다. 국제적 고립을 자초할 수 없다. 세계가 실시간으로 홍콩의 상황을 감시하는데, 베이징이 어떻게 1989년처럼 시민들에게 탱크부대를 보낼 수 있겠는가?
홍콩, 타이완, 한국, 일본, 베트남, 몽고 등 중국을 에워싼 모든 국가들은 강력한 ‘자유’의 연대를 결성해야 한다. 중국은 세계 제2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했지만, 글로벌 스탠다드(Global standards)에 맞는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지 못한다. 오늘날 중국공산당은 인류를 위한 보편 이념을 창출하지 못한다. 기껏 ‘부강(富强)’을 제1가치로 내세우고 있다. 아편전쟁 이후 자강운동 당시의 모토 그대로이다. 100년 국치를 극복하고 부강한 국가를 만들겠다는 일념이다.
과거 중화제국은 동아시아에 통용되는 세계적 가치를 창출했다. 변방의 지식인들이 중화제국의 가치에 매료됐던 이유도 거기 있었다. 오늘날의 중국은 인류를 감동시키는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지 못한다. 중국 정부는 자유주의가 서구의 가치이므로 배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중국의 인권문제를 거론하면 ‘문화침략’이라 맞선다. 마르크스-레닌이즘 역시 서구에서 발원했으며, 인권은 서구의 가치가 아니라 보편가치이다.

 

 

오늘날 중국은 열린 대륙이 아니라 닫힌 섬과 같다. 인구는 많고 국토는 방대하지만, 이념적으로 너무나 왜소한 나라가 되어버렸다. 중화인민공화국이 존속하기 위해선 앞으로 보다 민주적이고(more democratic), 보다 자유롭고(more liberal), 보다 헌정적이고(more constitutional), 보다 열린(more open) 체제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코로나 사태 이후 세계 모든 국가들이 공식적으로 중국 정부에 투명한 정보의 개방과 국제기준의 확립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


―마오쩌둥은 내전 승리를 위해 일본에 정보를 넘기고 대가를 받기도 했다는 얘기가 있다. 이런 일을 중국인들은 알지 못하나.



“이 책의 3, 4장에서는 국공내전 당시 공산당군의 만행이 집약된 ‘창춘 홀로코스트’를 다룬다. 창춘 홀로코스트의 생존자 중에는 당시 7세의 소녀 엔도 호마레(遠藤譽)가 있었다. 이 소녀는 이후 중국 정치를 연구하는 학자로 성장해 최근까지도 왕성한 저술활동을 하고 있다. 엔도 선생은 창춘 홀로코스트의 체험을 세밀하게 기록한 넌픽션을 발표했고, 이어서 중일전쟁 당시 중국공산당의 친일행각을 고발하는 문제작 ‘마오쩌둥: 일본군과 공모한 남자’를 발표했다. 한국어 번역본도 나와 있다(‘모택동: 인민의 배신자’). 엔도 선생의 고발에 의하면, 국공내전 당시 마오쩌둥은 일본과 공모한 친일분자다. 창춘 홀로코스트의 생존자가 역경을 딛고 일어나 그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간 중국공산당에 무서운 복수를 하고 있는 셈이다.
중국 정부는 대외적으로 200만의 인원을 고용해서 인터넷을 감시하고 있다고 선전하고 있다. 실제로 중국의 인터넷은 실시간으로 감시를 받는다. 중국의 언론통제, 소셜미디어 감시는 상상을 초월한다. 여러 사람이 가입한 소셜미디어의 단톡방 메시지에서 문제가 되는 한 두 텍스트를 핀셋으로 집듯 잡아내기도 한다. 2014년 이래 중국 정부는 개개인의 모든 신상정보를 취합해 등급을 매기는 사회신용시스템까지 구축해가고 있다. 때문에 인터넷 공간에서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거나 ‘불온’ 메시지를 주고받기 쉽지 않다. 시진핑 집권 이후로 더더욱 언론통제가 강화되고 표현의 자유가 위축됐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여성의 신체 통제에 대해 썼는데,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하나.

“1자녀 정책(One Child Policy)이 대표적이다. 책의 2장에 다루고 있지만, 중국에서는 아이를 낳기 전에 정부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혼외임신, 특히 미혼임신일 경우엔 낙태가 강요된다. 모든 가임기 중국 여성의 신체는 국가의 통제 대상이라 할 수 있다. 2009년 당시 중공 정부는 1자녀 정책을 도입한 이래 3억 3800만 명의 인구가 덜 태어났다며 성과를 자랑했다. 또 중공 정부는 1979년 이래 여성의 몸속에 강압적으로 자궁내 피임기구(IUD)를 삽입했는데, 2015년 이후에는 그 기구를 빼라고 강요하고 있다. 인간의 신체에 가해지는 무시무시한 오웰적 전체주의 통제가 아닐 수 없다.”

―중국은 코로나 사태가 중국발이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최근 통계상 중국에서 코로나는 잠잠해진 것으로 돼 있는데 이 역시 조작으로 보나.

“중국 정부로선 코로나 바이러스의 외부 유입설을 주장해야만 대내적으로 정부의 권위를 유지할 수 있지 않을까. 현재 통계를 보면, 중국 측 주장을 진실로 믿기는 어렵다. 3월 31일 현재 코로나 발원지 중국의 확진자는 8만여 명인데, 미국은 이미 20만에 육박하고 있다. 홍콩대학 생물통계학 전문가 가오번언(高本恩) 교수의 추산에 의하면, 중국 내 확진자의 실수(實數)는 4월 1일 현재 이미 23만을 초월했다. 과연 무엇이 진실일까?

 


해외 전문가들 중에 중국 정부의 주장을 그대로 믿는 사람은 드물다. 중국공산당의 어두운 역사를 돌아보면, 통계조작쯤은 경범죄에 속한다. 공산 유토피아 건설을 목적으로 추진됐던 대약진운동이 수천만 인명을 앗아가는 대기근을 초래한 이유도 바로 정부기관의 허위보고, 통계조작 및 폭력구조에 기인했다. 중국의 반체제 아티스트 왕펑(王鵬, 1964~)의 주장대로 ‘집단은 개인에 우선하며, 공산당은 무오류’라는 두 가지 전제가 중국 정부를 지배하는 ‘인민민주독재’의 실상이다.
물론 중국이 코로나 바이러스의 통제에 큰 성과를 발휘했을 수도 있다. 전체주의적 격리 및 통제의 방법으로 전 인민을 감시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며칠 전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뉴욕, 뉴저지 일대의 전면적 출입금지(lock-down)를 언급한 직후 뉴욕주의 주지사 쿠오모(Cuomo)는 불법(illegal)이라 맞서는 장면을 보았다. 코로나 바이러스 같은 비상의 위기관리에서 입헌민주주의(constitutional democracy)가 중국식 인민민주독재보다 비효율적일 수 있다. 입헌민주주의에서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다. 그런 이유 때문에 중국식 인민민주독재가 입헌민주주의보다 우월한 체제라 말할 수 있을까?”

 


―한국이 중국 지배권에 속하면 안 되는 이유는? 그리고 어떻게 해야 중국 지배권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이 책은 중국 건국 비사(祕史)에서 대기근까지 약 15년의 세월을 중국 헌법 총강 제1항에 명시된 ‘인민민주독재’라는 그릇된 정치이념이 빗어낸 비극이라 해석하고 있다. ‘인민민주독재’는 1949년 6월 마오쩌둥이 인민일보에 발표한 논설을 통해 정식화한 중국 정부의 통치 원칙이다. 마오쩌둥은 인민민주독재는 “반동 세력의 발언권은 박탈하고, 인민만이 발언권을 누리게 하는 것”이라 규정한다. 중국공산당은 인간을 ‘인민’과 ‘적인’으로 나눈다. 인류를 인민(people)과 “비인민”(non-people)으로 양분하는 전체주의적 발상이다. 20세기 역사를 돌아보면, 바로 그 인민의 이름을 특정계급, 혹은 특정 종족이 선점하고 사칭할 때, ‘비인민’에 대규모 인종청소, 인권유린 및 정치범죄가 자행되었다.
대한민국의 헌법은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결합한 자유민주주의를 기본이념으로 삼고 있다. 대한민국의 헌정사는 자유, 인권, 법치의 확장 과정이었다. 선거를 통해 수차례 정권교체를 이룬 민주제도의 정착 과정이었다. 오늘날 대한민국 지식계 및 정치계에 널리 퍼져 있는 친중·사대주의는 중국현대사에 대한 몰이해와 무관심에서 비롯되는 듯하다. ‘반미·친중’의 사상적 근저에는 1980년대 NL 자주파의 ‘민족해방’ 이데올로기가 깔려 있지는 않나? 당시에는 NL자주파는 ‘반전반핵 양키고홈!’을 외쳤다. 그들은 북한과 손 잡고 ‘미제를 몰아내자’고 주장했었다. 그들에게 중국은 민족해방운동의 종주국과도 같았다. 그들로서는 중국과 한국이 ‘운명공동체’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다. 더 깊이 보면 일본제국의 범 아시아적황색인종주의에까지 소급될 수도 있다. 당시 일제는 ‘귀축미영(鬼畜美英)’이란 구호로 미국과 영국을 악마화했다.

 


수학과 과학은 인류의 공동유산이다. 마찬가지로 자유와 인권은 서구의 가치가 아니라 인류의 보편가치다. 한국현대사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수렴해 가는 과정이었다. 한국현대사의 성공사례가 중국의 미래를 밝히는 등불이 되어야 한다. 그 역(逆)은 역사의 퇴보이며, 문명의 쇠퇴이다.”

―책은 3부작으로 예정했다. 책을 관통하는 궁극적 메시지를 한마디로 말한다면.

“제2권 ‘문화대반란 1964-1976’을 집필 중에 있다. 가능하면 올해 안에 마치고, 내년에는 제3권 ‘대륙의 자유인들 1976- 현재’를 쓸 계획인데, 과연 끝낼 수 있을지 두렵다. ‘문화대반란’은 오늘날 중국의 정치문화를 만든 10년의 대참사를 조명한다. ‘대륙의 자유인들’은 마오쩌둥 사망 이후 전개된 중국 민주화 운동의 도도한 흐름을 조망할 예정이다.
궁극적 메시지를 한 마디로 압축하자면, 아마도… 한국인들이여, ‘변방의 중국몽’에서 깨어나 ‘세계시민의 눈’으로 현대 중국의 슬픈 역사를 직시하자! 보다 자유로운, 보다 민주적인, 보다 헌정적인, 보다 열린 미래의 중국을 위해 ‘대륙의 자유인들’과 더불어 세계시민의 자유 연대를 이루자!”
이한수 기자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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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 같은 남자로 사는 법

2020.04.03

아들이 좋을까, 딸이 좋을까? 이 어려운 질문을 40대 초반의 결혼한 남자 후배한테 하니 “고양이가 좋아요”라고 대답합니다. 30대 중반의 여자 후배는 “고양이보다 토끼가 예뻐서 세 마리 키우고 있어요”라고 합니다. 아기 대신 애완동물이라니, 세상 정말 많이 변했습니다. ‘농장지경, 농와지경’이 삶의 가장 큰 기쁨이던 조상님들이 이 이야기를 듣는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요.

농장지경(弄璋之慶)과 농와지경(弄瓦之慶)은 자식을 낳아 기르는 부모의 자상함이 듬뿍 담긴 옛말입니다. ‘손에 구슬을 쥐어주는 즐거움’을 뜻하는 농장지경은 아들 낳은 기쁨을 표현한 말입니다. 고대하던 아들을 봤는데, 구슬만 쥐어줬을까요. 비단 이불에 누이고 고까옷을 입히고 무럭무럭 자라라고 참젖으로 소문난 젖엄마도 구했겠지요.

딸을 낳으면 ‘실패를 갖고 놀게 하는 경사’인 농와지경이라고 축하했습니다. 바느질을 배워 집안일을 돕는 살림꾼으로 자라라는 뜻이겠지요. ‘딸은 살림 밑천’이라는 말처럼, 덕담 같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아들이 아닌 것에 대한 섭섭함이 담겨 있습니다. 어쩌면 농와지경은 경사에 한참 못 미치는 그저 ‘즐거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남아선호 사상이 극심했던 시절 이야기입니다.

구슬을 갖고 놀던 사내아이는 좀 자라면 친구들과 칼싸움·창싸움을 하며 놉니다. 바로 ‘희롱’을 하는 것이지요. ‘농(弄)’은 사내아이가 손에 구슬(玉)을 들고 장난치는 모습을, ‘희(戱)’는 창(戈)을 들고 전쟁놀이하는 모습을 묘사합니다. 그러니까 스마트폰, 게임기가 없던 시절의 사내아이들은 ‘희롱’을 하며 성장했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선 ‘희롱’을 어떻게 풀이했는지 궁금합니다. ①말이나 행동으로 실없이 놀림. ②손아귀에 넣고 제멋대로 가지고 놂. ③서로 즐기며 놀리거나 놂. 사내아이가 손에 옥구슬을 쥐고 노는 모습은 ②, 좀 자란 사내아이가 친구들과 함께 창놀이를 즐기는 모습은 ③에 해당하겠지요. 둘 다 유쾌한 장면입니다.

그런데 어려서나 하는 희롱을 나이가 들어서도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특히 ‘성(性)’이라는 글자를 보태 ‘성희롱’을 하다 다른 사람의 인생까지 망친 못나고 어리석은 이들도 많지요. 말 한마디, 행동 하나로 누군가에게 큰 상처를 줄 수 있는 게 성희롱입니다. 시각적·언어적·신체적으로 수치심이 들게 하는 모든 성적 행위가 성희롱입니다. 성적 내용을 담은 정보를 의도적으로 유포하는 행위, 성적 관계를 강요하거나 회유하는 행위, 음란한 내용의 전화 통화 등이 모두 해당합니다. 외설적인 사진이나 그림, 낙서를 게시하거나 자신의 특정 신체 부위를 고의적으로 노출하거나 만지는 것도 당연히 성희롱입니다. “웃자고 한 얘기”라도, 누군가 수치심을 느꼈다면 성희롱 범죄가 성립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음담패설과 유머를 구분하지 못하는 친구가 있습니다. 모처럼 만난 자리에서 ‘유머감각 넘치는’ 친구가 분위기를 띄워놓으면 여지없이 ‘낯뜨거운 음담패설’로 찬물을 끼얹곤 하지요. 밖으로 데리고 나가 주의를 주면 “조크를 모르는 너희들이 답답하다”고 되레 성질을 냅니다. 참 무지하고 위험한 친구입니다.

반대로 과하게 조심하는 지인도 있습니다. 강원도의 한 대학 교수인데, 제자들과의 관계에서 행여 성희롱 등 추문에 휘말릴까 봐 무척 조심한다고 합니다. 학생이 학점·진로 등의 문제로 찾아오면 연구실 문을 활짝 열어 놓거나 조교를 부른다네요. 학생을 위로할 상황이나 축하할 일이 있어도 악수는커녕 어깨도 토닥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교수가 존경받는 길은 사제간의 정은 멀리하고 오로지 지식을 바탕으로 지도만 하는 것입니다. 코로나19로 온라인 강의를 하는 요즘이야말로 정말 마음 편합니다.” 무척 씁쓸한 말을 무덤덤하게 합니다.

이슬같이 맑은 남자로 사는 법, 어렵지 않습니다. 음담패설하지 말고, 손 가볍게 놀리지 말고(아내와 딸은 제외), 머릿속에서 남녀 차별적 의식 버리기!
꼰대로 살지 않는 법도 어렵지 않습니다. 아기 대신 개나 고양이 키우는 게 좋다는 후배에게 반론 제기하지 않기, 결혼한 후배들에게 아기 낳지 않는 이유 묻지 않기!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자유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노경아

경향신문 교열기자·사보편집장, 서울연구원(옛 시정개발연구원) 출판담당 연구원을 거쳐 현재 이투데이 부장대우 교열팀장. 우리 어문 칼럼인‘라온 우리말 터’연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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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에게 묻다

2020.04.02

지금 세계는 코로나19 바이러스와 전쟁 중입니다. 눈으로 보이지도 않는 이 미물은 현미경에선 왕관을 쓴 제법 위엄이 있는 모습이어서 이름조차 왕관을 뜻하는 코로나(Corona)로 지어졌습니다. 보기에는 산수유 꽃 같기도 하나, 하는 짓은 꽃 달린 수류탄입니다.

보통 전쟁은 적대세력 간에 벌어지는데, 코로나19는 전 인류를 상대로 무차별 공격을 가하고 있습니다. 공격하는 의도가 무엇인지도 분명치 않습니다. 이 전쟁은 코로나19가 이겨 인류가 망하면 코로나19도 멸망하는 공멸의 전쟁입니다. 

전 지구적 지혜로 대처해야 할 이 전쟁에서 인간의 단합을 방해하기라도 하려는 듯이 코로나19는 사람 사이는 물론 나라 사이를 단절시키고 있습니다. 학교와 교회와 공항의 문이 닫히고, 올림픽이 연기됐습니다. 공장이 문을 닫아 실업자가 쏟아집니다.

인간이 개발한 핵무기와 같은 고성능의 무기는 이 전쟁에선 아무런 쓸모가 없습니다. 인간이  쓸 수 있는 대응책이라곤 검사하고, 격리하고, 통행금지하고, 마스크를 쓰고, 손을 씻는 것이 고작입니다. 그 결과 한국에서는 5,000만 명의 전체 인구가 마스크를 쓰는 단군 이래 처음 보는 동시패션이 나타났습니다. 인류의 종말이 이렇게 오는 건가 하는 공포가 엄습합니다.

인류의 공적(公敵) 1호가 된 코로나19를 만났습니다. 그는 숙주로 삼은 인간의 몸속 깊숙이 숨어 있었습니다. 보자마자 그의 숨통을 누르고 싶었지만 나에게 들러붙을 게 분명해 악수도 하지 않았습니다. 끓어오르는 분노를 누르며 그에 대한 호칭을 2인칭(너)으로 했습니다.

- 단도직입적으로 묻는다. 사망은 사탄의 흉계라고 했는데 너는 사탄의 자손인가?
▲ 천만의 말씀! 나를 품게 될지도 모르면서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 나도 인간을 만든 창조주의 질서 안에서 존재할 뿐이야. 내가 사탄이 되는 것도, 천사가 되는 것도 인간이 하기나름이지.
- 너의 존재가 인간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거야?
▲ 생각해 보라구. 인간들은 서로 편을 가르고 싸울 궁리만 하잖아? 그 싸움에서 이기겠다고 지구를 파멸시키고도 남을 만큼 많은 핵무기를 만들어 놨잖아? 자신의 몸 안에 있는 나 같은 미물을 다스리지 못하면서 핵무기로 어쩌겠다는 거야? 그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유익한 거지.
- 너로 인해 인간 사이의 불신이 깊어진 것 같은데.
▲ 그렇다면 미안해. 허나 “세상에 믿을 x  없다”는 말을 누가 하는데. 인간들이 나를 막겠다고 하는 행동 모두가 인간에 대한 불신의 표현이더군. 누가 나한테 걸린 사람인지 모르니 모두를 걸린 사람으로 일단 의심하고 보겠다는 거지. 마스크를 쓰는 것, 악수 대신 팔꿈치 치기, 구두치기 인사를 하는 게 다 그런 거 아냐?
- 남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도 의심해야 하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불신 사회가 됐다는 거지.
▲ 하기야 발병하기 전까지는 자신이 나에게 걸렸는지 알 수가 없지. 걸렸으면서도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사람도 있고. 자기 살자고 남을 의심하는 것이니 ‘불신사회 조장’ 어쩌구 하며 나를 탓하지 말라고.
- 세계 패권을 다투는 미국과 중국, 그리고 한국도 들어 있긴 하지만 G20의 강대국들이 너의 공격 앞에 속수무책이던데?
▲ 무기개발에 퍼부은 돈의 100분의 1이라도 나를 막는 데에 썼더라면 나도 꼼짝을 못했겠지. 돈 가지고 엉뚱한 짓을 한 업보 아니겠어? G2라는 미국과 중국이 나의 공격에 최대 피해자가 된 이유를 새기라고. 한심하게도 사람들은 나에게 대비한다고 생필품 사재기하더군. 미국에선 총을 사려고 줄을 섰고. 나를 총으로 죽이겠다는 거야?
- 한국에선 마스크를 사려고 매일 약국앞에서 줄을 서는데.
▲ 매우 안타깝지. 핸드폰 자동차를 각각 수천만, 수백만 대 만드는 나라에서 어쩌다 천과 재봉틀만 있으면 되는 마스크 하나 충분히 못 만드느냐고? 하기야 한국은 기다려서라도 살 수 있지만 없어서 못 사는 나라도 많더군. 그래서 한국은 인구 전체가 마스크를 차는 나라가 됐고, 그런 국민들의 열성 덕에 나를 잘 다스린 나라라고 칭찬을 듣더군. 나를 원망하지 말고, 그런 것으로 위안을 삼으셔.
- 사회적 거리두기(Social Distancing)는 어떻게 생각해
▲ 자기편이라고 너무 친한 척 하지 말고, 자기편 아니라고 너무 미워하지 말라는 거야. 인간 사이는 좋을 땐 간을 빼줄 듯하다 돌아설 때 원수가 되기가 다반사 아냐? 서로 거리를 두고 바라볼 때도 있는 게 좋은 거지. 그렇게 다져진 관계가 건강하고 오래가는 법이니까.
- 사회적 거리 2m만 떨어지면 너로부터 안전한 거야?
▲ 말할 때 침이 튀는 거리가 2m라던데 물리적 거리가 중요한 게 아니지. 한국은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사회라고 하잖아. 나도 인간이 침을 튀기며, 입에 게거품을 물고 큰 소리로 떠들면 여기저기 달라붙기 좋지. 소통도 중요하지만 조용한 목소리로, 때로는 눈빛으로, 때로는 침묵으로 소통하는 법도 익혀두라는 얘기로 이해해줘.
- 노약자 치사율이 매우 높던데 노인한테 가혹한 것이 아닌가?
▲ 나는 누구를 공격할 때 남녀 노소 강약을 차별하지 않아. 공격거리 안에 있으면 누구에게든 달라 붙지. 노약자 치사율이 높은 것도 노인일수록 건강에 더 조심하라는 뜻일 뿐이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경제를 살리기 위해선 노인의 희생은 감수해야 한다고 했더군. 그런 게 차별이지.
- 네가 온 목적은 달성될 것이라고 보나?
▲ 그게 그리 쉽겠어? 미국과 중국이 나의 원산지를 놓고 서로 싸우는 것만 봐도 알만하잖아.
지난달 26일 나를 잡기 위해 열린 G20 정상 간의 사상 첫 화상회의에서 좋은 말들을 많이 했더군. 역시 정치꾼들이다보니 고작 돈을 왕창 풀자는 것 외에 뾰족한 얘기는 없더군. 내가 할 걱정은 아니지만 뒷감당이 될지 모르겠어. 어떻든 인간들이 불신과 적대를 깨고 양보와 협동의 정신으로 뭉쳐서 나와 대적하지 않는 한 나는 인간에게 패배하지 않을 거야.
- 이런 판국에 미사일 발사하는 북한은 어떻게 생각해?
▲ 한심하지. 나 같은 미물보다도 생각이 모자란 거지. 총도 아닌 미사일로 바이러스를 잡겠다는 발상이 아니겠어. 주민 수천 명을 격리시켰다고 하면서도 감염자가 없다고 시치미를 떼고 있으니, 얼굴도 두껍지. 북한의 집권자에게 나의 맛을 보여 주는 수밖에 없겠어.
- 신천지는 어때?
▲ 종말론을 근거로 교세를 키워온 종파라지? 세상의 종말에 14만4,000명만 구원을 받는다니 그게 믿어지는 얘긴가. 세상이 혼란스러우면 그런 종파들이 기승을 부리게 되니 조심하라고 일찍이 성인들도 말했지. 서울시장이 그들을 반사회적 집단이라고 했던데 나의 얘기를 대신했더군.
- 언제 갈 거야?
▲ 백신을 개발한다고 나라마다 난리던데 한 곳에서라도 성공하면 나도 갈 거야. 내가 간다고 너무 좋아하지는 말아. 없는 동안 내가 놀고 있을 거로 생각하면 큰코다칠 거야. 다시 올 때는 훨씬 세질지도 몰라. 더 치명적인 것은 공기전염기술로 무장할 수도 있어. 그 때는 마스크도, 손 씻기도 소용없을 거야. 그렇다고 숨을 안 쉴 수도 없을 테니.
- 얘기를 듣고 보니 “서로 믿고 살지 않으면 멸망한다”는 메시지를 인간에게 전하러 온 예언자 같군.
▲ 인간이 그걸 알면 인간과의 전쟁에서 내가 불리해지지만, 인간의 몸에 기숙하는 입장이니 "고맙다"는 인사는 해야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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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임종건

한국일보와 자매지 서울경제신문 편집국의 여러 부에서 기자와 부장을 거친 뒤 서울경제신문 논설위원 및 사장을 끝으로 퇴임했으며 현재는 일요신문 일요칼럼, 논객닷컴 등의 고정필진으로 활동 중입니다. 한남대 교수,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위원 및 감사를 역임했습니다. 필명인 드라이펜(DRY PEN)처럼 사실에 바탕한 글을 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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