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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 소명의식이 필요합니다.

2020.09.16

1987년 봄, 대학에 입학해 사회학 수업을 준비하면서 읽었던 원서에 ‘소명(vocation)으로서의 직업’이라는 구절이 나왔습니다. 필자는 이 대목에서 한참을 생각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직업이란 ‘돈을 버는 수단’이며 따라서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이 좋은 직업이라고 생각했던 제게 ‘소명으로서의 직업’이라는 개념은 매우 낯설었습니다. 게다가 역사와 종교, 문화가 우리와 전혀 달랐던 서양의 종교개혁 시기에 이 개념이 싹튼 것이기 때문에 더욱 이해가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이 ‘소명으로서의 직업’이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의 모체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모든 것이 명료하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자본주의의 정신적인 토대는 ‘돈을 버는 것’에 대한 신학적 면죄에서 시작합니다. 예수님이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고 했지만, 캘빈(Calvin)은 ‘근면, 절약, 금욕의 삶을 통해 축적한 부(富)는 하늘 나라로 가는 증거가 된다’라고 주장하면서 돈을 버는 행위에 대해, 면죄를 넘어 신의 은총을 쌓아 나가는 것으로 승격시켜 주었습니다. ‘메이플라워’ 호를 타고 신대륙으로 건너간 청교도들은 캘빈주의자들이었습니다. 이 사람들이 지금의 미국을 만들었고 그때와는 많이 변형되긴 했으나 미국은 여전히 자본주의의 중심으로 굳건한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자본주의의 모체인 캘빈주의는 근면, 절약, 금욕적 삶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흥청망청하는 천박한 자본주의와는 다른, 영적이고 관념적인 가치가 훨씬 더 우선시되었던 것입니다. 소명으로서의 직업은 이러한 토대 위에 설명이 가능합니다. 따라서 소명으로서의 직업은 단순히 개인의 적성에 맞는 천직이라는 개념이 아닌, 스스로 엄격하게 삶을 통제하는 가운데 이웃에 대한 봉사를 통해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수단이라고 봐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사랑의 실천을 통해 돈을 벌어 부자가 되는 것은 구원의 증거가 되는 것으로 간주하게 됩니다.

의사단체의 집단행동으로 국민은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고, 또 한번의 분열로 서로의 마음에 상처가 생겼습니다. 하필 코로나19로 힘든 시기에 의사들을 자극해서 결국 정부는 얻은 것도 없이 모양만 빠졌고, 의사 단체는 집단 이기주의라는 오명을 쓰게 됐으며, 국민은 또 한번 불편한 감정을 느껴야 했습니다. 갈등은 봉합됐지만, 여진은 남아서 ‘의사국가고시’를 거부한 의대 4학년 학생들을 구제하는 문제로 또 한번 파장이 예상됩니다.

요즘 부모들이 자식을 의대에 보낼 때, “너는 인술을 펼쳐서 병마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아픔을 덜어줘야 한다.”라는 얘기를 할까요? 아니면, “요즘 같은 때, 의사만큼 좋은 직업이 없다. 회사에서 잘릴 걱정 안 해도 되지, 사회적으로 대접도 받고 돈도 많이 벌 수 있잖니? 그리고 늘 ‘선생님’ 소리를 듣고 얼마나 좋아?”하고 말을 할까요? 이 빌어먹을 입시지옥에서 보통의 경우는 부모가 죽을힘을 다해서 뒷바라지를 하고 본인 스스로도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아야 가는 곳이 의대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기를 쓰고 의대에 가는 이유가 단지 세속적인 욕심을 채우기 위한 것이라면 우리는 자식 세대를 잘못 키우고 있는 겁니다.

직업을 통해 세상에 도움을 주는 대가로 돈을 버는 것이 소명으로서의 직업을 실천하는 것인데, 돈이 목적이 되어버리면 직업은 수단으로 전락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많아지면 세상도, 사람도 불행해집니다.

우리 사회에서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우대를 하는 대표적인 직업이 두 개가 있습니다. 바로 법조인과 의사입니다. 그런데 이 두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언제부터 다른 직종보다 돈을 더 많이 벌기 시작했을까요? 변호사의 수임료, 의사의 진료비는 누가 언제 어떤 근거로 책정한 것일까요? 아파서 못 살겠고, 억울해서 못 살겠고, 감옥 갈까 두려워 찾는 사람들이 그들입니다. 수요자의 절박함이 그들이 높은 수입을 올리는 근거입니다. 그리고 그 두 직종의 높은 진입장벽 또한 그들이 누리는 높은 수입의 원천입니다. 게다가 이 두 직종은 실패를 해도 돈을 법니다. 패소를 해도, 수술을 했지만 사람을 살리지 못해도 돈을 법니다. 다른 직종의 경우는 결과가 좋지 못하면 오히려 소송을 당하는데, 이 두 직종은 가능합니다. 그 이유는 의사와 변호사의 직업적 양심을 믿고 전문성을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렇기 때문에, 이 두 직종에 더 높은 사회적 책임이 있습니다. 그리고 더 높은 도덕적 양심이 필요합니다. 그렇다고 성직자 수준의 높은 희생정신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히 아닙니다. 다만, 이 두 직종은 잘못을 했을 경우 바로 잡을 수 있는 더 높은 전문가 집단이 없기 때문에 자정(自淨)이 가능할 정도의 사회적 책임의식과 윤리의식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그런데, 지난 십 수년간 우리 사회에 비친 이들의 모습은 돈에 의해 움직이는 인상을 많이 주었습니다.

국시를 거부한 의대생들은 “의료 전문가와 상의 없이 졸속으로 추진된 정책들이 결국 의료의 질적 하향을 야기하고 국민의 건강권을 위협할 것이 자명했다”며 “단체행동에 처음 나선 이유인 ‘옳은 가치와 바른 의료’를 지키겠다는 마음에는 일말의 변함도 없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옳은 말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들의 말이 진심인지를 못 느끼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어떻게 의사가 됐는데, 우리가 얼마나 고생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우리를 이렇게 궁지로 몰면 곤란하지.”라고 얘기하는 것으로 들리는 것 같습니다.

학생들은 어른이 보호해줘야 합니다. 그리고 제대로 가르쳐줘야 합니다. 그들에게 진정한 직업적 가치를 가르치지 않은 어른들이 지금 이런 사태를 초래한 겁니다. 하긴, 그 어른들조차도 그런 교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 거겠지만, 이제라도 각자, 자신의 직업에 소명의식이 생기기를 희망합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자유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박상도

SBS 선임 아나운서. 보성고ㆍ 연세대 사회학과 졸. 미 샌프란시스코주립대 언론정보학과 대학원 졸.
현재 SBS 12뉴스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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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산에서 찾아본 곳

2020.09.15

평생을 도회지에서 살아온 터라 어쩌다 시골 환경을 접하면 반가움을 느끼곤 했습니다. 드물게나마 인적 드문 산골에서 하룻밤 자고 나면 머릿속이 맑아지고 몸도 가뿐해지는 경험을 한 일은 별도의 즐거움이었습니다. 시골이 고향인 사람들을 보면 부럽기까지 했습니다. 그런 사람들과는 다른 상황이지만 언젠가부터 시골을 찾을 일이 생겼습니다.

10년 전에 막내 동생이 충북 괴산군으로 이사했습니다. 작년에는 어머니가 누님과 함께 동생이 사는 동네에 새 집을 지어 이사했습니다. 괴산읍에서는 거리가 먼 청천면의 한 마을입니다. 자연스레 서울에서 몇 차례 오가게 되었습니다.
고향을 찾아가는 사람들의 감성 같은 걸 느끼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낯선 곳을 찾는 이의 작은 호기심이 작동됩니다. 수목원 정도는 둘러보았지만 잘 알려진 쌍계계곡이나 화양구곡 같은 데에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이곳에만 있는 소박한 장소가 마음을 끌었습니다.

괴산읍을 거쳐 청천면으로 향하는 도중에 소금문화관이라는 표지가 붙은 건물이 있습니다. 괴산이 소금 산지라는 말을 들은 적은 없으니 어울리지 않는다고까지 생각했습니다. 몇 차례 그냥 지나치다가 둘러볼 기회를 가졌습니다. 문광저수지의 한쪽 끝자락에 있는 곳입니다. 문광은 면의 이름입니다. 전체 터는 꽤 넓습니다. 문화관 표지가 있는 건물에서 그곳에서 일하는 이를 만났습니다. 코로나 19 탓에 휴관 상태라고 들었습니다.

 

소금랜드 전경. 왼쪽 사진의 건물은 소금문화원이고 오른쪽의 낮은 회색 지붕이 육지염전. 오른쪽 사진은 육지 염전의 내부.

찾아오는 이 없으니 여유롭게 둘러볼 수 있었습니다. 괴산에 웬 소금문화관이냐고 물었더니 그의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괴산의 대표 산물은 고추, 절임배추, 옥수수, 사과라는 말로 시작했습니다. 그중 절임배추는 소득원은 되지만 절이고 난 소금물은 아무 데나 버리면 환경 오염 문제를 일으킵니다. 이곳 농업기술센터에서 실험을 거쳐 소금물 처리장을 만들었습니다. 괴산의 소금물은 이곳에 다 모읍니다. 그 소금물로 이곳에 만든  ‘육지 염전’에서 다시 소금을 추출합니다. 그렇게 만든 소금은 산업용으로 사용합니다.

육지 염전은 문화관 옆에 따로 있습니다. 육지 염전 뒤로는 땅을 깊이 파 만들었다는 소금물 저장고가 있습니다. 그곳 전체의 이름은 소금랜드라고 한답니다. 문화관은 회수한 소금물의 재활용과는 직접적 관계는 없는 곳이고 글자 그대로 소금문화관입니다. 2층은 소금에 관한 안내를 겸한 전시장이고 1층은 천일염을 활용하여 몇 가지 체험을 하는 곳입니다.
체험 활동장 한 공간에는 맷돌이 놓인 탁자들이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구워낸 소금을 맷돌로 갈아낸다고 합니다. 안내해준 이의 말로는 이 소금으로 음식을 한번 해 보니 너무 맛있어서 다른 소금은 아예 사용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여러 가지 차와 장아찌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 중 익모초차의 맛을 보았습니다. 소금을 이용해서 쪄낸 익모초로 찻물을 우려낸 것입니다. 커피에 익숙해진 내 입에 보통의 차는 밍밍하다고 느껴지는데 이 차는 마실 만했습니다. 소금 맛은 나지 않는데 심심하지 않았습니다. 장아찌는 간장과 소금을 적당히 배합해서 만들어 독특한 맛을 낸다고 합니다.

문화관을 나와 육지 염전도 살펴보았습니다. 지붕이 있어 바닷가 염전과 달라 보이긴 하지만 염전의 모양은 그대로입니다. 한쪽은 의자를 설치해 체험장도 겸하고 있습니다. 가운데에는 수차도 있습니다.
내륙 한 곳에서 이런 사업을 하고 있는 일이 신기하였습니다. 나오는 길에 소금을 사러 왔다는 나이 지긋한 일가족을 만났습니다.

처음 괴산에 갔을 때 읍에 있는 홍범식 고택을 둘러보았습니다. 홍범식은 금산 군수이던 시절 한일합방이 되자 자결한 분입니다. 이 집은 그가 자란 곳입니다. 그의 아들로서 소설 『임꺽정』을 쓴 홍명희의 생가이기도 합니다. 집은 18세기에 지어졌습니다.

함께 이 집에 간 어머니는 굽은 허리에 지팡이를 짚고서도 집안 이곳저곳을 유심히 살펴보았습니다. 대문과 중문을 지나 사랑채를 둘러보고 다시 안채로 가서는 부엌까지도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러면서 북에 두고 온 집과는 어떻게 다른지 설명하였습니다.

홍범식 고택. 왼쪽이 사랑채이고 그 오른쪽 뒤편이 안채. 맨 오른쪽이 중문

이제는 세월이 지나 옛 기억이 상당히 흐릴 텐데 광의 모양과 구조, 문 형태가 어떻게 다르다고 찬찬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숲속작은책방’은 칠성면에 있습니다. 산속의 작은 마을에 있습니다. 허리 높이의 정문 안쪽에 소박하게 꾸민 뜰과 평범한 가옥이 있는데 1층이 책방이고 2층이 살림집 공간입니다. 신은 벗고 들어가는 곳입니다. 거실에 해당하는 부분이 책 전시 공간이고 주방에 해당하는 곳에 탁자와 계산대가 있습니다. 부부가 운영하는데, 작은 공간에 나름대로 다양한 책을 갖추어 놓았습니다. 한정된 공간이니 주인의 안목으로 선택한 책들일 터입니다.

주인에게 책이 얼마나 팔리는지 물었더니 지역 주민도 오고 다른 지방에서도 찾아와서 운영은 된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이곳은 두 번 찾았는데 그때마다 어머니가 자녀 둘을 데리고 와서 책을 골라 주는 광경을 보았습니다. 한 가족을 두 차례 본 듯하기도 합니다.
책값을 치르면서 주인에게 말했습니다. “큰 서점에서는 발견 못하거나 보고도 그냥 지나쳤을 책을 고르게 되네요.” 작은 책방의 매력입니다. 여행하다가 모르는 사람을 만나도 쉽게 친밀감을 느끼는 경우와도 비슷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북콘서트를 비롯한 행사가 있다는 안내장을 받았는데 때에 맞추어 가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소금문화관에서 안내해 준 이에게도 이 책방이 좋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주인과 막걸리라도 같이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어야 제멋이 나겠지요”라고 했습니다. 언제 여유를 가지고 그런 기회를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는 이 책방 가까이에 목각 공예를 하는 이가 있다고 알려주었는데 다음 기회에 찾아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숲속작은책방의 외부와 내부

작은책방에서 수백 미터 되는 거리에 산막이옛길이란 곳이 있습니다. 차에서 내려 몇 십 미터 정도 오르막길을 걸으니 1957년에 만들었다는 괴산호의 물빛이 숲에 가려 약간만 보였습니다. 안내도를 보니 물 건너편에 산막이마을이 있는데, 산막이라는 이름은 산밖에 보이지 않는 지역이어서 붙은 것이랍니다.

산막이옛길이며 충청도양반길, 그리고 등산로가 괴산호를 둘러싸고 이어져 있습니다. 주차장에서 오르막길까지에는 식당과 점포가 몇 개 있지만, 인적 드물어 보이는 산속 길을 걸으면 세상 잡념을 잠시 잊을 수 있겠다 싶습니다. 그 길들을 일주하는 일은 숙제로 남겨 두었습니다.

괴산을 방문한 횟수가 꽤 되지만 둘러본 곳은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그래도 풍기는 시골의 냄새가 있고 괴산만의 공간이 있어 좋습니다. 앞으로도 틈틈이 괴산의 작은 명소를 더 찾아보려 합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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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홍승철

고려대 경영학과 졸. 엘지화학에서 경영기획 및 혁신, 적자사업 회생활동 등을 함. 1인기업 다온컨설팅을 창립, 회사원들 대상 강의와 중소기업 컨설팅을 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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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토리 6형제’ 이야기

2020.09.14

코로나19 확산으로 ‘집콕’하는 시간이 늘며 컴퓨터 앞에 오래 앉아 있어 생기는 지루함과 눈의 피로를 풀어보고자 거의 매일 한 시간 이상 산책을 하고 있습니다. 산책로는 아파트 단지의 쪽문을 열고 나가면 바로 마주하는 매봉산 둘레길이나 10분 정도 걸으면 갈 수 있는 양재천변길입니다.

태풍 ‘바비’와 ‘마이삭’ 그리고 ‘하이선’이 지나가고 나서 매봉산 산책길을 걷다보니 산책로와 숲 안쪽 바닥에 평소보다 더 많이 떨어져 있는 도토리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바닥에 떨어진 참나무 가지를 집어 들어 예쁜 도토리 모양을 보며 “산골짝에 다람쥐 아기 다람쥐 / 도토리 점심 가지고 소풍을 간다 / 다람쥐야~ 다람쥐야 재주나 한번 넘으렴 / 파~알딱 파~알딱~ 팔딱 날도 참말 좋구나”라는 ‘다람쥐’ 동요 가사와 함께 ’도토리 6형제‘란 말이 떠올랐습니다.

‘도토리 6형제’는 우리나라 전역에 분포하고 있는 대표적 낙엽성식물로 참나무과 참나무속(Quercus)에 속하는 갈참나무, 굴참나무, 떡갈나무, 상수리나무, 신갈나무, 졸참나무 등 6종의 참나무를 일컫는 말로 ‘참나무 6형제’라고도 부릅니다. 식물도감에 없는 ‘참나무’란 명칭은 한 종(種)의 식물을 지칭하는 말이 아니라 이들 참나무 6형제를 통칭하는 용어입니다. 산책길은 물론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도토리 6형제들은 열매인 도토리를 싸고 있는 깍정이를 일컫는 각두(殼斗)와 잎의 모양이나 잎자루의 유무 등에 따라 구분이 됩니다.

참나무 6형제를 통칭해 참나무라 일컫는 이유는 이들이 같은 속 식물로 유전적으로 매우 가깝기 때문입니다. 형제끼리 서로 연을 맺기도 하는데, 한 실례로 떡갈나무와 신갈나무 사이에 연이 맺어지면 떡신갈나무로 불리는 아종(亞種)이 생겨납니다.

도토리는 숙성해서 나무에서 떨어지기 전까지 털모자 모양과 뚜껑모자 모양으로 구분이 되는 깍정이로 덮여있습니다<그림 1>. 6형제 중 굴참나무, 떡갈나무, 상수리나무 3형제의 각두는 털모자 모양이며, 굴참나무와 상수리나무의 깍정이 색깔은 연두색인데 비해 떡갈나무 깍정이는 갈색(혹은 주황색)입니다. 뚜껑모자 모양의 각두로 덮인 다른 3형제인 갈참나무, 신갈나무, 졸참나무에서 신갈나무의 뚜껑모자 비늘은 울퉁불퉁하며, 졸참나무의 도토리는 가늘고 길쭉한 모양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림 1> A; 털모자를 쓴 떡갈나무 열매, B; 뚜껑모자를 쓴 신갈나무 열매, C; 뚜껑모자를 쓴 길쭉한 모양의 졸참나무 열매

잎의 모양을 비교해 보면 떡갈나무, 신갈나무, 갈참나무 3형제의 잎은 폭이 넓고 넓적한 모양입니다. 잎자루가 없는 떡갈나무와 신갈나무 잎의 가장자리는 둥근 물결 모양인 데 비해 신갈나무 잎 가장자리의 물결은 좀 더 급한 물살 모양입니다. 다른 3형제 잎의 가장자리는 톱니 모양입니다<그림 2>. 졸참나무 잎에 비해 굴참나무와 상수리나무의 잎은 폭이 더 좁고 길며, 잎 가장자리에 뾰족한 침이 돋아 있습니다. 굴참나무의 침은 녹색이고, 상수리나무의 침은 흰색으로 구분이 됩니다.

참나무 6형제 중 갈참나무, 졸참나무, 굴참나무에는 참나무라는 이름이 붙어 있지만 신갈나무, 떡갈나무, 상수리나무에는 참나무란 말이 없는데, 이렇게 다양한 참나무 명칭에는 나름 사연이 있습니다.

참나무 이름이 붙어 있는 형제들 중 갈참나무는 다른 나무들에 비해 가을 늦게까지 잎이 달려있어 붙여진 ‘가을참나무’에서 유래되었으며, 졸참나무는 잎도 작은 편이지만 도토리 크기가 가장 작아 ‘졸(卒)’이 붙여진 것입니다. 굴참나무는 두꺼운 껍질이 코르크 재료로 이용이 되는데, 이런 줄기에 세로로 골이 깊게 파여 있어 ‘골참나무’로 불리다가 굴참나무로 변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참나무란 말이 없는 형제들 중 신갈나무의 이름은 짚신을 신던 시절 짚신을 갈아 신을 때 이 나무의 잎을 깔고 신었다고 해서 붙여졌으며, 떡갈나무는 떡을 찔 때 이 나무 잎을 바닥에 깔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그림 2> A; 둥근 물결 모양의 떡갈나무 잎, B; 톱니 모양의 굴참나무 잎

상수리나무에는 더 진지한 사연이 담겨 있습니다. 상수리나무의 원래 이름은 ‘토리’였는데, 임진왜란 때 의주로 피난 간 선조가 제대로 먹을 음식이 없어 토리나무의 열매 토리로 만든 묵을 먹었다고 합니다. 묵을 맛있게 먹고 배고픔을 견뎌낸 선조는 왜란이 끝나고 왕궁으로 돌아온 후에도 토리로 만든 묵을 즐겨 찾아 토리묵이 상시(常時) 수라상에 오르게 되어 ‘상수라’로 불렸다가 ‘상수리’로 불리게 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로 ‘개밥에 도토리’라는 속담이 있는데, 이는 개가 밥에 있는 도토리를 먹지 않고 남기는 데서 유래한 속담입니다. 하잘것없는 재주를 가지고 서로 낫다고 다투는 것을 비유한 ‘도토리 키 재기’라는 속담도 있습니다.

‘집콕’에서 벗어나 주변 숲길을 산책하면서 재미 삼아 바닥에 떨어진 도토리를 주워 살펴보며 ‘도토리 6형제’ 이야기와 함께 ‘개밥에 도토리’나 ‘도토리 키 재기’라는 속담을 음미하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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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방재욱

양정고. 서울대 생물교육과 졸. 한국생물과학협회, 한국유전학회, 한국약용작물학회 회장 역임. 현재 충남대학교 명예교수, 한국과총 대전지역연합회 부회장. 대표 저서 : 수필집 ‘나와 그 사람 이야기’, ‘생명너머 삶의 이야기’, ‘생명의 이해’ 등. bangjw@c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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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통령선거 잘 될까

2020.09.11

오는 11월 3일은 미국 대통령 선거일입니다. 50여 일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이 선거 결과에 따라 미국도 세계도, 그리고 한국도 요동칠 것입니다. 어쩌면 대통령 선거 자체가 혼란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2016년 10월 미국 대통령 선거전에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와 힐라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의 마지막 TV 토론회가 열렸습니다. 트럼프는 선거 결과에 승복하겠느냐는 질문에 답변을 유보해서 언론의 논란거리가 됐습니다. 당시 그가 선거 유세에서 부정선거 음모를 주장하곤 할 때였습니다. 선거 승복 여부가 이슈가 되자 TV 토론 다음 날 트럼프는 자신의 입장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전적으로 선거 결과에 승복하겠다, 내가 이기면.”

만약 그때 트럼프가 졌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지금 미국 언론들은 새롭게 그때 그가 한 말을 떠올리며 미국 대선 진행 상황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지난봄 이래 여론조사 추이를 보면, 트럼프 대통령이 도전자인 민주당 조 바이든 후보에게 계속 밀리고 있습니다. 선거는 투표함을 열어봐야 안다고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그의 사저 트럼프타워로 이사해야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재선이 안 될 확률이 높다는 얘기입니다.

만약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트럼프 대통령이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합니다.

올해 미국 유권자들은 대통령 선거와 관련해서 예년에 경험하지 못한 일들을 보고 있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으로 거의 모든 주에서 유권자들이 감염을 우려하여 우편투표를 많이 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노스캐롤라이나 주는 이미 지난 4일 우편 투표를 접수하기 시작했습니다. 또 많은 주가 선거일보다 일찍 조기 투표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우편투표는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에게 유리하다는 게 대통령선거 평론가들의 의견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편투표에 부정 요인이 있다고 트집을 잡고 있습니다. 또 최근 자신의 측근을 우정 국장으로 임명해서 우편투표 예산을 깎고 직원들의 초과 근무를 못하게 규제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우편투표를 효율적으로 관리하지 못하게 허들을 놓고 있다고 합니다.

우편투표를 하는 유권자가 많아지고 우편 투표함 수송이 원활하지 못해 11월 3일 선거 당일 우편투표가 개표소에 도달하지 않으면 선거결과 발표가 늦어질 수 있습니다. 최악의 경우 트럼프가 투표소 투표에서 이겼으나 늦게 도착한 우편투표에서 바이든 표가 쏟아져서 당락이 바뀔 경우 논란이 불거질 수 있습니다. 이 부분에서 “이기면 승복하겠다.”는 트럼프의 말이 께름칙한 여운을 던집니다.

각 주가 승자 독식으로 선거인단을 가져가는 간접선거 방식의 미국 대통령 선거는 이런 논란의 소지가 큽니다. 지난 2000년 민주당 앨 고어와 공화당 조지 W 부시 대결에서 승패가 걸린 플로리다 개표가 문제가 되어 대법원의 판결로 부시 후보가 대통령이 된 사례가 있습니다. 민주주의 시스템과 정치인들의 절제에 의해 헌정 위기가 극복된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는 전통 같은 것이 있습니다. 선거일 저녁 개표가 진행되어 당락의 윤곽이 드러날 때 패자가 승자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 패배를 인정합니다. 승자는 이때에야 비로소 TV 화면에 나타나 “방금 아무개가 전화를 걸어왔다”며 승리를 선언합니다. 정치 결투에서 발휘되는 일종의 신사도입니다. 우편투표가 결정적인 당락 요인이 될 수 있을 때 투표소 투표 집계만 갖고 트럼프가 일방적인 승리 선언을 하면 어떻게 될까요.

요즘 한국에서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가 정치적 화두인데, 미국에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대통령 선거’가 나올지 모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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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김수종

‘뉴스1’고문과 ‘내일신문’ 칼럼니스트로 기고하고 있다. 한국일보에서 32년간 기자생활을 했으며 주필을 역임했다. ‘0.6도’ 등 4권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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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숭아 서리

2020.09.10

올해 여름 장마에는 유난히 비가 많이 내렸습니다. 여름 장마가 길어지면 과수농가의 얼굴은 그늘이 집니다. 토양에 수분이 많아져서 나무는 웃자라지만, 갈색무늬병이라든지, 탄저병, 노균병 등 병해충 피해가 늘어납니다. 비가 오지 않아도 흐린 날이 많아서 농약도 효과가 없어 하늘만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영동(永同)은 서울과 부산의 중간 지점인 산간지역이라서 여러 가지 과일이 생산됩니다. 포도와 곶감, 호두를 비롯해서 복숭아, 사과, 배, 자두 등 종류가 다양합니다. 과일이 많이 생산된다고 해서 가격이 싼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인터넷이나 도시에서 영동산 과일을 사 먹을 때보다 비쌉니다.

1990년 초에 섬에서 염소를 사육해 볼 작정으로 남해 사량도라는 섬에 갔던 적이 있습니다. 참고로 그 시절에는 섬 가격이 육지의 임야보다 훨씬 쌌습니다. 배 안에서 50대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동태를 들고 있었습니다. ‘섬에 가면 생선이 흔할 터인데 왜 동태를 사 들고 가지?’ 혼자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날 저녁 선착장 근처에 있는 여관에서 저녁상을 받았습니다. 명색이 섬인데 생선이라고는 육지에서 파는 어묵 조림하고 된장찌개에 들어 있는 멸치밖에 안 보였습니다. 여주인 말인즉 “여가 생선이 얼매나 귀한데예, 어부들이 고기를 잡으면 죄다 충무나 부산에 가서 팔고 빈 배만 들어온다 안 합니까?” 사량도에서는 어차피 소비가 안 되니까, 집에서 먹을 잡고기만 들고 온다는 말이었습니다.

영동의 과일도 그렇습니다. 생산자들이 옛날처럼 직접 내다 파는 것이 아니고, 서울의 가락시장이나 용산의 청과물시장, 가깝게는 대전의 농수산물 시장 등에 판매를 하는 까닭입니다.

예전에 생산자들이 소비자에게 직거래를 할 때는 요즘처럼 kg 단위로 판매를 하지 않았습니다. 100개를 한 접으로 해서 얼마씩 팔거나, 송판으로 짠 상자 단위로 팔았습니다. 과수원도 한 동네에 두서너 농가밖에 없었지만, 가격은 물가 대비로 볼 때 지금보다 훨씬 쌌습니다. 보리쌀 한 되면 복숭아 한 접 정도를 살 수 있었는데, 지금은 과일 한 접을 구매하려면 쌀 20kg짜리 두 포는 줘야 할 겁니다.

영동에 처음 포도가 생산되던 1990년대 초에만 해도 상자 단위가 15kg이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모든 과일이 3kg짜리 상자부터 시작이 됩니다. 3kg짜리는 생산 원가로 볼 때는 배보다 배꼽이 더 클 정도로 과일 생산단가보다 포장비가 많이 먹힙니다. 비닐 포장은 기본이고, 과일이 상하지 않게 스티로폼 소재로 개당 포장을 하고, 상자도 재질이 단단한 것으로 사용합니다.

요즘에는 과수원 울타리를 하지 않습니다. 사람보다는 들짐승들이 못 들어오게 망을 치는 정도입니다. 가을날 과수원 옆길을 걷다 보면 먹음직스러운 사과며 배가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 매달려 있는 걸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주인도 보이지 않겠다, 한 개쯤 따 먹고 싶은 충동이 마른입을 다시게 하지만 이내 포기를 합니다. 만에 하나 주인에게 걸리면 절도죄에 해당됩니다.

예전에는 가시가 단단한 탱자나무로 울타리를 만들었습니다. 오래된 과수원엔 탱자나무 가지가 촘촘히 얽혀 있습니다. 그래도 어느 구석엔가 허술한 곳이 있게 마련입니다. 개가 드나드는 구멍이라고 해서 개구멍이라고 하는 정도의 크기지만, 서리를 하는 아이들도 충분히 드나들 수는 있습니다.

사과나 배서리를 하다 주인에게 들키면 크게 꾸중을 듣습니다. 땡볕에 무릎 꿇고 양손을 들고 있는 얼차려를 받기도 합니다. 어느 때는 한나절 일을 시키기도 합니다.

복숭아 과수원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사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이 친구가 복숭아서리를 하자고 말했습니다. 시간은 오후 2시 무렵이었습니다. 며칠 전에 다른 과수원에서 서리하다 주인 아들에게 걸려서 혼이 났던 적이 있어서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야, 이 시간이면 낮잠 자는 시간이라 주인한테 안 걸려.”

아는 놈이 도둑질한다고 친구가 자신 있게 하는 말에 서리하기로 했습니다. 보통 과일 서리를 할 때는 자루를 준비합니다. 그런데 친구는 자루를 준비하지 않고 양동이에 물을 담았습니다. 물은 뭐 하는 데 쓸 것이냐는 제 말에, “복숭아를 씻어 먹어야 할 거 아니냐?”라고 당연한 표정으로 대답했습니다.

친구는 익숙하게 개구멍을 통해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복숭아나무 저 밑으로 주인의 집이 보이는 지점에 앉았습니다.

   “일단 배부터 채우고, 따 가자.”

저는 금방이라도 주인이 뛰어 올라올 것 같은 두려움에 떨고 있었습니다. 친구는 자기 집 복숭아를 따듯 크고 잘 익은 걸로 골라서 몇 개를 땄습니다. 양동이 물에 복숭아를 씻어서 제게 권했습니다. 요즘 같으면 복숭아 한 개만 먹어도 더 먹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그때는 나이도 어린데 네 개쯤은 먹은 것 같았습니다.

   “야, 복숭씨 다 모아. 공짜로 배부르게 복숭 먹고 주인 승질 나게 하면 안 되잖여.”

친구는 한두 번 해 본 서리가 아니었습니다. 양동이 물은 복숭아나무 밑에 버리고, 복숭아 씨를 줍고, 앉았던 흔적을 정리한 다음에 복숭아를 따기 시작했습니다.

지금도 그 과수원이 있습니다. 주인들은 모두 돌아가시고 장남이 이어받아서 사과나무를 심었습니다.

탱자나무 울타리는 예전처럼 빽빽하게 서 있지 않습니다. 가을이면 열리는 탱자 처리가 귀찮다는 이유로 산 쪽에만 탱자나무 울타리가 있고, 도로 쪽에는 울타리가 없습니다. 부친들이 복숭아 과수원을 할 때는 동네에서 잘사는 집이라는 소문이 날 정도였는데, 지금은 그냥저냥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과일 가격은 예전보다 열 배 이상 올랐지만 나가는 돈은 스무 배 이상 될 것입니다. 농촌에서는 열심히만 일하면 도시인 못지않은 수입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은 농촌의 실상을 모르는 말입니다. 예전에는 비료가 귀해서 산에서 풋나무와 풀을 베다가 썩혀서 사용하거나, 인분을 밭에 뿌렸습니다. 요즈음은 농약이며 농자재. 상자와 포장지값이 만만치 않아서 돈이 없으면 농사도 못 짓습니다. 귀농을 해서 실패를 하는 가장 큰 이유도 농사에 대한 지식의 부족도 있지만, 농사가 잘되고, 못되고를 떠나서 지속해서 들어가는 농비 때문일 것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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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한만수

1990년부터 전업으로 소설을 쓰고 있음. 고려대학교 문학석사. 실천문학 장편소설 “하루” 등단. 대하장편소설 “금강” 전 15권 외 150여권 출간. 시집 “백수블루스”외 5권 출간. 이무영문학상 수상. 장편소설 “활” 문화예술진흥위원회 우수도서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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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앞에 ‘개’, 그래도 곱거늘, ‘개상사화’

2020.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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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상사화 (수선화과) 학명 Lycoris flavescens (붉노랑상사화)

'거리는 멀게, 마음은 가까이’, ‘뭉치면 죽고 헤어지면 산다.' 이제까지 듣고, 보고, 배웠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희한하고 별난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팬데믹(pandemic)으로 세상이 확 뒤바뀐 것 같습니다. 곰곰 생각해보니 듣도 보도 못한 세상사가 한둘이 아닙니다, 통일, 화합 외쳐대면서 부추기는 내 편, 네 편 편 가르기로 어느 사이에 사회가 이분법으로 쫙 갈라지니 서로가 불구대천, 앙숙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부모, 형제, 친구, 동창 아랑곳하지 않고 진영 논리에 갇히고 말았습니다.
정의, 평등, 공정의 잣대는 내 편인가 아닌가에 따라 양심, 체면, 거리낌도 없이 수시로 들쭉날쭉한 묘한 세상을 맞고 있습니다. 기관도 아닌 개인에 관하여 3억 원짜리 ‘OO백서’가 나오더니 5백만 원짜리 'OO흑서’도 나옵니다. 야릇하게 바뀐 세상사를 조목조목 지적하는 ‘시무 7조’가 나오더니 ‘유창하나 혹세무민하고 편파에 갇혀 졸렬하고 억지스럽다.’라는 ‘사돈 남 말 하는’ 반박문도 나왔습니다. ‘잘못했음’의 지적에 대해서는 어김없이 되받아 한술 더 뜨는 ‘되치기 공세’와 ‘남의 탓’으로 돌리는 데에 이골이 난 뻔뻔함에 엉기가 납니다. 기존의 통념적 상식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떳떳하게 낯 내놓고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혹자는 이를 두고 ‘개판’이라고 합니다. 야릇한 느낌이 드는 용어입니다. 이러함에도 많은 사람이 이 사태를 지지하고 있다는 세상사가 믿기지 않고 야속하기만 합니다.

하늘마저 변했나 봅니다. ‘1973년 기상관측 이래 가장 길었다.’는 장마가 끝났다고 하더니만 다시 태풍 8호 ‘바비’, 태풍 9호 ‘마이삭’, 태풍 10호 ‘하이선’이 연이어 비바람을 몰고 와 산천을 뒤흔들며 할퀴고 지나갔습니다. 많은 강수량과 일조량 부족으로 작물이 잘 자라지 못해 올가을의 풍작은 기대난망이라 합니다. 이토록 엄청난 사람 사는 세상의 변화를 아는지 모르는지 흐르는 계절 따라 산들꽃은 행여 시기를 놓칠세라 때맞춰 고운 꽃을 다투어 피웁니다. 이 난리 북새통의 세상 변화와 긴 장마도 아랑곳하지 않고 예전과 다름없이 계절의 순리 따라 피어난, 곱고 화사한 꽃무리를 만났습니다. 정명(正名)인 붉은상사화보다 개상사화로 더 널리 알려진 꽃입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이제껏 대수롭지 않게 넘겨왔던 꽃 이름 앞의 ‘개’자가 부쩍 신경이 쓰입니다.

이름 앞에 ‘개’자가 붙은 꽃이 참 많습니다. ‘변변치 못한 또는 야생의’ 뜻으로 쓰이기도 하고, 배고픈 시절 ‘식용 가능성과 맛’의 차이를 두고 ‘개’와 ‘참’을 구분했던 것으로도 보입니다. 어찌 보면 자연스럽고 소탈한 느낌도 드는 앞말입니다. 개꽃, 개살구, 개망초, 개별꽃, 개쑥부쟁이, 개불알꽃, 개양귀비, 개나리... 어느 것 하나 예쁘지 않은 꽃이 없습니다. 개상사화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름 앞에는 ‘개’자가 붙어도 곱기만 합니다. 그런데 왜 사람 사는 세상사와 사람 앞에 ‘개’자가 붙으면 그리도 혐오스러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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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앞에 ‘개’를 달았지만 화사하기 그지없는 개상사화

상사화(相思花)는 그 이름 한자어가 뜻하는 바와 같이 ‘잎과 꽃이 만날 수 없어 서로를 그리워한다.’는 꽃입니다. 잎과 꽃이 서로 만나지 못하여 상사화라 이름 붙은 꽃으로는 상사화, 붉노랑상사화, 진노랑상사화, 제주상사화, 위도상사화 등이 있습니다. 이중 분홍빛의 꽃을 피우는 상사화를 제외하곤 모두가 개상사화라 불리다가 근래에 들어 각기 제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연노랑 꽃잎에 붉은 꽃밥을 지닌, 아직도 속칭 개상사화라 불리는 이 꽃은 붉노랑상사화와 사뭇 달라 보임에도 붉노랑상사화의 일종으로 분류하고 있어 억울할 것만 같은 꽃입니다. 대부분의 상사화는 꽃 색이 고유색으로 고정되어 있지만, 붉노랑상사화는 흰색, 노란색, 붉은색 등 다양합니다.

풀꽃은 으레 싹이 트고 잎이 나고 햇볕을 받아 자라서 꽃을 피웁니다. 그러고 나서 열매를 남긴 후 햇볕이 약하고 추운 겨울이 되면 사라집니다. 그러나 상사화는 사뭇 다릅니다. 봄이 되면 다른 풀꽃과 마찬가지로 일찍 싹을 틔워 무럭무럭 자라다가 햇볕이 강한 6~7월이면 잎이 말라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맙니다. 여름 장마가 끝나고 가을이 시작되는 8~9월이 되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그 자리에서 잎도 없이 꽃대만 불쑥 올라, 화사하고 고운 꽃을 피웁니다. 그러나 꽃은 열매를 맺지 못하고 이내 시들고 마는 불임(不姙)의 꽃입니다. 흔히 상사화라고도 부르는 꽃무릇이 있는데 이는 생태 사이클이 아주 다릅니다. 잎과 꽃이 서로 만나지 못한다는 점과 6~7월에 잎이 시들어 사라진다는 공통점은 있습니다. 하지만 꽃무릇은 꽃이 상사화보다 훨씬 작고, 한두 달 늦게 피고, 꽃이 지고 나면 11월경에 새싹이 나와 혹한 속에서 겨울을 납니다. 또한 열매를 맺을 수 있어 종자번식도 가능합니다.

개상사화는 전국적으로 분포하여 야산이나 들, 인가 주변, 절 주변 등 여기저기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꽃입니다. 꽃은 8월 말부터 노란색으로 피지만 개화되어 시간이 지날수록 수술이 붉게 변합니다.

고유의 이름도 없지만, 여느 상사화와 다른, 황금빛 밝은 색의 곱고 화사한 꽃을 피우고 열매도 맺지 못한 채, 불현듯 사그라지는 개상사화, 꽃말은 ‘이룰 수 없는 사랑’이라 합니다. 이름 앞에 ‘개’자가 붙은 개상사화가 이다지도 곱거늘, 근래 들어와 변한 인간사(人間事)의 판세 앞에 ‘개’자를 붙이기에는, ‘개’자라는 단어마저 너무 아깝고 턱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러한 판세를 무슨 ‘판’이라 이름 지어 불러야 하나? 개상사화 앞에 서니 쓰잘데기 없는 고민거리가 생겼습니다.

(2020. 9월 곱고 화사한 개상사화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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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문

환경부에서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과장, 국장, 청와대 환경비서관을 역임했다. 우리꽃 자생지 탐사와 사진 촬영을 취미로 삼고 있으며, 시집 『꽃벌판 저 너머로』, 『꽃 사진 한 장』, 『꽃 따라 구름 따라』,『꽃사랑, 혼이 흔들리는 만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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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외교 서두를 이유 없다(1)

2020.09.08

지난 8월 24일은 대한민국 외교사에 가장 큰 오점(汚點)으로 남은 외교 분야 기념일입니다. 1992년 이날 대한민국은 베이징(중화인민공화국, 이해를 돕기 위한 표기 임)과 수교함과 동시에 타이베이(중화민국)와는 단교했습니다. 당시 정부는 대한민국을 멸망시키려던 베이징에게는 면죄부를 주었고, 상해 임시정부 수립을 지원하고 대한민국 탄생을 도왔으며 6・25 때 우리를 지원한 타이베이에게는 회복 불가능한 상처(배신)를 남겼습니다. 임기 말의 대통령이 북방외교를 마무리하겠다면서 서두르다가 남긴 가장 참담한 외교 결과입니다. 조급함이 만든 아픔이기도 합니다. 그 뒤 우리는 대통령이 임기 내에 못다 한 일을 후임 정권으로 넘겨주는 것이 더욱 빛나는 업적이라는 것을 잊었습니다.

베이징은 수교회담에서 미일 등과 수교 때 내세웠던 ‘하나의 중국 원칙’을 우리에게도 들이밀었고, 수교 협상팀이 (지시에 따랐겠지만) 냉큼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는 UN에서도 인정한 ‘대한민국이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라던 조항을 헌신짝처럼 버렸습니다. 또 국가 자존심과 명예 원칙 그리고 국가 수립의 정당성을 인정한 UN결의 등 중요한 가치를 스스로 훼손했습니다. 이처럼 한・중 수교는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습니다.

시간이 필요하다던 타이베이와의 외교관계는 군사작전(군 출신이라서?) 하듯이 일거에, 매몰차게 끊었습니다. 아시아인(유교)의 중요한 가치 중 하나인 의(義)를 저버림으로써 우리는 한족(漢族, 베이징 타이베이 모두 포함)에게 믿을 수 없는 국가・국민이 되었습니다. 타이베이에게는 배신자, 베이징에게는 불신의 아이콘으로 낙인찍혔습니다.

지구상의 수많은 국가 중 베이징과 타이베이와 동시에 수교할 수 있는 국가는 대한민국 하나뿐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유일한 권리를 너무 쉽게 포기해 아주 많은 것을 잃었고, 잃고 있으며, 대한민국이 통일되기 전까지는 계속 잃을 것입니다. 베이징과의 수교가 경제적으로 큰 이득이며 북한을 간접 통제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많은 것이 우리만의 생각으로 끝났습니다. 북한은 보라는 듯이 핵무기를 개발해 대한민국을 겁박하며, 베이징은 은근히 이를 후원하는 모습입니다.

랴오둥반도의 다롄 박물관은 모택동 일가의 밀랍 인형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6・25 때 중공군으로 파병돼 전사한 모택동의 아들(모안영)을 중공군의 영웅으로 떠받들기 위한 것이지요. 동시에 베이징이 주장하는 항미원조(抗美援朝)를 대대적으로 홍보합니다. ‘미국에 대항하고 북한을 도왔다’는 즉 대한민국을 말살하려던 내용을 드러내놓고 한국 관광객에게도 자랑합니다. 인형을 본 지 꽤 지났으나 지금까지도 불쾌하기 짝이 없습니다.

우리는 국운이 걸린 포커 게임에서 북한을 압박할 외교, 경제의 에이스 카드를 손에 쥐고서도 카드를 덮었습니다. 현재 두 카드를 모두 사용할 수만 있다면 한반도의 상황은 크게 달라졌을 겁니다. 전 세계가 북한 핵무기 제거를 위해 온갖 제재를 다 가해도 북한 경계를 몰래 넘나드는 중국 물자가 있는 한 100% 제재 효력을 발휘할 수 없다는 것을 삼척동자라도 압니다.

지금부터라도 대한민국이 흔들리지 않는 기준을 가지고 차근차근히 베이징과 외교를 펼쳐가야 합니다. 최근 베이징과 수교할 때와 같은 조짐이 여기저기서 감지됩니다. 한족(漢族)의 만만디(萬慢的), 한・베이징 외교에 딱 맞는 말입니다. 얼마 전 조선일보에 게재된 베이징 특파원의 기사로 글을 맺습니다. “1992년 한중(필자 註, 베이징)수교가 이루어졌던 이유 중 하나는 천안문사태로 인한 서방의 제재와 압력에서 탈출하기 위한 중국의 전략이었다는 분석이 있다. 당시 한국은 수교를 서두르면서 중국이 북한을 압박해 도발을 억제해 주길 기대했고, 그런 기대는 실망으로 돌아오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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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덕

서울대학교, 서독 Georg-August-Universitaet, 한양대학교 행정대학원, 몽골 국립아카데미에서 수업. 몽골에서 한국인 최초로 박사학위 방어. 국민일보 국제문제대기자, 한국산업기술대학교 교수, 경인방송 사장 역임. 현재는 국민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서독은 독일보다 더 크다, 아내를 빌려 주는 나라, 몽골 풍속기, 몽골, 가장 간편한 글쓰기 등의 저서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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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쑥 나온 말 “오래도 살았다”

2020.09.07

  “벌써 75년이라, 오래도 살았다.”
  “누구 말이에요?”
  “나 이야기야.”
  “아니, 아버지는 별 말씀도…."

광복절 아침 식탁에 앉으면서 흘러나오는 뉴스를 들으며 무심코 나온 제 말끝에 자연히 계속된 딸아이와의 대화였습니다. 그러고 보니 “오래 살았다”는 말을 아이들 앞에서 해본 건 처음인 것 같습니다. 아니, 누구에게도 말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오래 살았다”는 말에는 어딘지 부정적인 분위기가 풍기는 듯해 애써 피해온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 애비가 갑자기 “오래 살았다”는 말을 하니 딸아이가 이상하게 생각한 것도 당연하다고 후회했습니다. 그러나 이번 광복절 아침에는 이 말이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튀어나왔습니다.

75년 전, 일본의 패전으로 노예생활 같은 군 복무에서 풀려나 수많은 동포의 귀국 꿈을 앗아간 현해탄을 건너 구사일생으로 부모님이 기다리는 고향집으로 돌아온 그때가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쳐가 저도 모르게 흘러나온 한마디였습니다.

그때 부모님이 기뻐하시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 일은 제 일생에서 가장 뜻있는 효도였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일본 군대에 끌려간다는 것은 그만큼 충격적이고 죽음으로 연결되는 큰 사건이었습니다. 조선인 징병(徵兵) 1기생에 해당하는 제가 소집되어 용산부대에 입대한 것은 미군의 일본 본토 상륙 작전이 임박했다는 유언비어가 나돌던 1945년 3월이었습니다.

4주의 기본훈련이 끝나고 배치된 곳은 일본군이 연전연패(連戰連敗)하던 남방이 아니라 후방인 도쿄(東京) 북쪽의 시골 마을에 신설된 부대였습니다. 고향 집에 소식을 보내라는 명령과 군사우편엽서 한 장을 받고, 언제 배달될지 모르지만 우선 일선에 배치되지 않았다는 것만은 아시겠지 하고 일본어 편지를 썼습니다.

시골 마을 공회당을 고쳐 급조한 병사에서 우리 조선인 신병 30여 명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7~8명의 일본인 고참 군인과 ‘농경부대(農耕部隊)’라는 생소한 부대 이름이었습니다. 광복 후 발간된 일본 단행본에 의하면, 일본 패전 5개월 전에 노동력이 필요해 급조한 특수 목적 부대로 일본 본토에 다섯 소대가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명색이 군 부대라면서 무기라고는 목총 한 자루도 없고 대신 낫, 곡괭이, 삽 등 노동 기구만이 주로 농촌 출신인 우리 신병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전라도와 경상도 출신이 많은 신병들 중에는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해 일본어를 모르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일본군이 필요했던 것은 오직 우리들의 노동력뿐이었습니다. 그래서 도착 다음 날부터 훈련이 아닌 고된 노동이 시작되었습니다.

일본군 용어로 ‘타코쓰보(문어 항아리)’라는 1인용 참호(塹壕)를 파는 일이 주요 임무였습니다. 농지가 아닌 야산 비슷한 땅이어서 참호 만들기가 매우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농촌 출신 신병들은 생소한 일본말 호령에 따라 움직이는 군사훈련보다 이 노동이 훨씬 마음 편하다고 했습니다. 저와 광주(光州) 출신의 신병 한사람이 통역을 맡았지만 그렇다고 노동을 면제받지는 못했습니다. 한 1주일 지나니 온몸이 피로의 극에 달해 하루는 아침 조례 시간에 실신하여 쓰러지기도 했습니다.

일본군 상관들의 설명은 없었지만, 이 참호들이 혹시 있을지도 모를 미군의 이 지역 상륙에 대비하기 위한 것임은 누구 눈에도 뻔하였습니다. 당시 미군의 오키나와 상륙작전은 거의 끝나 일본군은 미군의 일본 본토 상륙전을 각오하고 있었습니다.

3월과 5월 두 차례의 도쿄 대공습을 비롯해 일본의 주요 도시는 미군의 B29 폭격기 공습으로 큰 피해를 입었고, 제공권을 거의 확보한 연합군은 전투기를 동원하여 일반 시민의 생활까지 위협했습니다. 우리도 작업 도중 몇 번 기총 공격을 받았지만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습니다.

이런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남아 고향에 돌아왔으니 부모님들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 부모님이 돌아가신 지도 반세기가 넘어 저도 모르게 “오래 살았다”는 말이 튀어나온 것은 당연했습니다. 다만 이 말의 약간 부정적인 분위기 때문에 평소에는 애써 이 말 하기를 조심했을 뿐입니다.

아이들도 세배 때의 인사말에 “오래 사세요”라는 표현에 “건강하게”라는 말을 꼭 붙여 사용할 정도로 신경을 쓰는 나이입니다. 일반인이 이 말을 쓸 때도 퍽 조심하는 것을 자주 경험합니다. 5~6년 전 외손자의 대학 졸업기념 전시회 참관하러 가족들과 대전에 갔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역전에서 택시를 타는데 운전기사가 저를 보고 “90세 되셨지요?” 하고 제 나이를 정확하게 맞혔습니다. “해병대 출신인 우리 아버지가 금년 90세입니다”라고 자랑스럽게 덧붙였습니다. 그러면서 “건강하세요”라는 말을 잊지 않았습니다.

어릴 적부터 철도기관사가 되는 것을 꿈꾸어 오던 외손자는 군 복무를 마친 뒤 4년 전 철도기관사 시험에 합격하여 지금 교외를 다니는 지하철과 열차의 기관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직장에서 일하는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그가 어려운 취직 시험에 합격했을 때 저는 “오래 산 보람이 있다”고 정말 기뻐했습니다.

3년 전, 동네 외과병원에서 젊은 물리치료사가 의사의 처방전을 보면서 “1924년생이시네요. 정말 오래 사셨습니다” 하고 진심으로 탄복하는 말을 했습니다. 이 경우에도 부정적인 분위기는 조금도 못 느꼈습니다.

이제 아이들도 다 장성해 독립해 나갔고 한때 걱정했던 저의 건강도 어느 정도 회복되어 크게 걱정할 일은 없습니다. 오직 코로나19 바이러스 소동으로 그나마 누렸던 조그마한 자유가 제한되어 아쉽습니다. 1년에 두세 번 가족들과 휴가여행을 즐기고, 가족 생일엔 근처 호텔이나 식당에서 회식을 하는 조그마한 즐거움도 지금 삼가고 있습니다. 국내외 많은 전문가들이 코로나19 바이러스 소동은 단시일에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앞날이 많이 남지 않은 노인들에게는 ‘좋은 세상 다 봤다’는 시쳇말이 한층 더 실감 있게 느껴집니다.

제가 회원으로 있는 어느 인터넷 카페에 최근 서울대 의대 모 교수의 ‘죽음학’ 강의를 소개하는 글이 있어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딸아이가 유튜브에서 이 교수의 강의 두 편을 찾아주어 그것도 보았습니다. 비슷한 내용의 글을 수년 전 일본 잡지에서 읽은 기억도 있습니다.

저의 선친은 독실한 불교신자였습니다만, 저는 이름만 불교도이고 건강할 때 1년에 두세 번 절을 찾을 정도였습니다. 어릴 적에 불교의 지옥 이야기를 듣고 굉장히 무서워한 기억이 있습니다. 이제는 “오래 살았다”는 말을 아이들 앞에서도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나이여서 터놓고 죽음 문제도 서로 이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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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황경춘

일본 주오(中央)대 법과 중퇴
AP통신 서울지국 특파원, 지국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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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지

2020.09.04

장마가 시작되기 전 윗마을 아주머니들이 지나가다가 내가 일군 밭을 보면서 “고추가 참 잘됐네” 하고 덕담했습니다. 얼굴이 다 엇비슷한 아주머니들이죠. 초등학교를 폐교할 만큼 인구가 줄었지만, 집성촌이라 일가붙이들이 살아서 남자들 이름은 돌림자가 많죠. 사람들은 마스크를 쓰지 않고 지내지만, 사회적 거리는 길도, 땅도 넓어 저절로 지켜집니다.

옛날 유명 대학교의 사회학과에서 집성촌을 연구하러 찾아왔었다는 말을 빠뜨리지 않았던 노인이 작년 인지장애로 한밤에 해변에 나갔다가 불귀의 객이 되었습니다. 밭일하는 내게 그는 유럽 여행담을 들려주면서 “내년엔 꼭 인삼 심어. 잘 가르쳐 줄게. 나도 인삼 길러 아들 대학까지 보냈잖아”라며 아들이 K대 출신임을 또 자랑했습니다.

시골 생활의 인정은 메마른 도회지와 다르죠. 밭에서 일할 때 지나가면 "뭐 하세요?“ "어디 가세요?"라고 꼭 주고받죠. 농사 이야기로 말이 길어질 때도 있습니다. 파란색 포터를 몰고 바닷가 밭으로 내려가는 농부도 눈이 마주치면 차창에서 고개를 끄떡합니다.

아주머니들의 고추 인사에 나는 대견한 고추를 매만지면서 “끝 가봐야 알죠.”라고 자신 없이 대답했고 아주머니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무언의 공감을 나눴습니다. 그게 농사만은 아니란 것이 요즘 드러납니다.

이내 장마가 시작되었고 8월 초순 해가 반짝하던 날 첫물을 따서 비닐하우스 안의 검정 고추 망 속에 널어놓았습니다. 며칠 뒤 밭두렁 가의 몇 그루가 탄저병에 걸린 것을 알았습니다. 탄저는 아주 어린 풋고추건, 빨간 고추건 거무튀튀하게 썩어 들어가고, 마른 것은 잿빛으로 흉하게 부스러지게 하는 강력한 병이죠. 병을 옮기지 말라고 몇 포기 뽑아내며 “도시의 코로나를 피해 온 시골 고추밭엔 탄저병인가?”하고 한탄했습니다. 늘 어린이날에 모종을 심었는데 올해는 좀 이른 5월 1일 심은 게 일렀나 하는 후회도 들었죠. 식물이란 묘해서, 옥수수도 단 며칠 상관에 낟알이 딱딱해지고 껍질이 두꺼워집니다.

고추가 탄저병에 걸리면 대책이 없어 온갖 약을 치다가 지쳐서 결국 될 대로 되라 하며 방치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습니다. 고추는 11월까지 하얀 꽃을 피우다가 서리가 내려야만 비로소 한살이를 마감합니다. 심은 지 넉 달이 다 되어 가는 이제, '땀방울을 흘리며 풋고추도 안 따고 애써 키웠는데 포기 못 하지’, 오기가 생겼죠. 10월 중순까지도 빨간 고추가 달리는 그때를 바라보며 약통을 지고 분무기로 약을 뿜어댔습니다.

물론 장마가 어서 끝나 어떤 약보다 잘 듣는 강렬한 햇볕이 탄저를 죽여주기를 바랐습니다. 기대와 달리 장마는 점점 더 길어졌고 어느 날 변색하는 희나리를 막도록 덮어놓은 고추 망 속에서 잘 말랐을 거라고 짐작한 첫물 고추가 모두 탄저병에 걸려 있어 탄식했습니다. 탄저병이 이토록 기승을 부리는 것은 하우스를 만들고 나서 10여 년 만에 처음 있는 일입니다. 탄저는 장마철의 후덥지근하고 바람이 안 통하는 환경을 좋아하죠. 올해는 일부러 1미터 간격으로 넓게 심고 통풍이 잘되게 가지도 부지런히 쳐주었는데요.

탄저엔 특효약이 없습니다. 탄저만 아니면 고추 농사는 지을 만하다고들 말하죠. 농민들은 뭐가 잘 들을까, 농약 취급자의 말을 듣고 이 약 저 약 돌려가면서 칩니다. ‘농튜버(농사 유튜버)’들도 탄저를 언급합니다. 식염과 락스를 0.3퍼센트 농도로 뿌리면 즉효라는 주장도 나왔습니다. 일부 전문가들은 위험하다고 경고했습니다. 탄저병을 그렇게 치료할 순 있겠지만 열매는 안 달린다는 댓글도 있었습니다.

탄저의 발생 원인을 더듬어보니 물 폭탄으로 밭고랑에 물이 차자 물길을 트려고 이랑의 중간을 자른 것이 탄저의 통로가 된 모양이었습니다. 탄저병이 손쓸 수 없게 퍼져가자 며칠 걸려 병에 걸린 고추를 손으로 거의 다 따내고 검정 비닐 ‘멀칭(바닥 덮개)’ 위에 떨어진 잔해까지 쓸어 냈습니다. 발본색원이었죠. 버려야 할 병든 고추를, 찜통 무더위 속에서 요리조리 보며 따는 일은 고행이었습니다. 이마에서 땀이 줄줄 흘러 눈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숨이 막혔습니다. ‘노인들이 이렇게 밭일을 하다가 열사병으로 가나?’ 갑갑한 방호복을 입고 더위 속에서 코로나 19와 싸우는 의료진의 모습도 떠올렸습니다.

따버린 고추가 세 발 손수레로 다섯 개 정도 분량이 되었습니다. 저걸 온전히 말렸다면 몇 관이 되었을까? 며칠 전 만난 위 밭 아주머니는 작황이 좋아 고추를 XX만 원에 열 관을 팔았다면서 고추는 약을 흠뻑 치고 따자마자 건조기로 말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간의 노고가 아쉬웠지만 정성을 더 쏟지 못한 게 잘못이지요. 이건 약과입니다. 수만 주를 심었으나 탄저로 포기했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이런 생각이 지나갔습니다. 고추의 탄저병도 고치지 못하는데 인간의 병은 얼마나 고치기 어려울까? 코로나 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일어나기 훨씬 전에 사람 간의 전염은 없다고 낙관했던 세계보건기구 사무총장의 수염이 떠올랐습니다. 영국의 연구진은 수백만 명 사망의 대재앙을 예고했었죠. 그 후 학질약이 듣네, 에이즈약이 듣네 하다가 나라마다 백신 개발에 열을 올리는 듯합니다만 아직 이렇다 할 성과는 없죠.

나는 친환경 태양초를 사랑합니다. 날만 좋으면 비닐하우스 속에서 사나흘에 투명하고 아름다운 태양초가 되어 속의 노란 씨까지 다 볼 수 있으니까요. 장마가 거짓말처럼 끝나 해가 며칠 빤할 때 널어둔 고추는 60도가 넘는 고온의 비닐하우스 속에서 금세 루비색으로 반짝였습니다. 한 개를 집어 코에 대봅니다. 향긋하고 달콤한 냄새가 납니다. 길을 잘못 든 벌레들이 날아들어 고추에 앉아 있습니다. "빨대를 꽂으면 단맛이라도 나냐?" 하고 물어봅니다. 사람이나 곤충이나 맛은 기막히게 잘 아는가요? 예년 수확의 10분의 1도 안 될 건(乾) 고추를 바라보며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는 교훈을 깨닫습니다. 근거 없는 낙관론을 멋대로 펼치다가 '~와의 전쟁'을 강조하는 사람들도 되새겨야 할 말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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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김영환

한국일보, 서울경제 근무. 동유럽 민주화 혁명기에 파리특파원. 과학부, 뉴미디어부, 인터넷부 부장등 역임. 우리사회의 개량이 글쓰기의 큰 목표. 편역서 '순교자의 꽃들.현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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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막소 간 운동권 대부의 신세타령

2020.09.03

보소 보소 86동지 벗님네야,
가막소에 갇힌 신세, 왜 이리도 처량한가.
태양광 비리 의혹, 이리 뺀질 저리 뺀질,
그동안엔 잘 피해서, 이번에도 풀려날 줄 알았더니,
결국에는 꼬리 밟혀, 쇠고랑을 차게 됐소.
추미애의 미친 장풍, 한국 검찰 완전히는 못 죽였네.
죽긴커녕, 모질게도 살아남아,
내 모가지 칼 들이댄 저 ‘개검’이 악착같소.

올해 5월, 경찰 수사 시작될 때,
내 신세 이리될 줄, 나는 정말 몰랐다오.
그때 내 혐의는 전기공사업법 위반 등이었으나,
몇 해 전에 비슷한 혐의 수사받고 풀려난 적 있는지라, 이번에도 그럴 줄 알았더니,
경찰이 불구속 송치한 이 내 몸을,
북부지검 개검 나리, 절묘하게 구속하네.

86동지 국회의원 몇몇, 지자체장 두어 서넛 만나서는,
아는 사람 회사에서 취급하는 무선도청 탐지장치를,
관공서와 공공기관, 지자체에 두루두루 납품하게 힘써달라 스리슬쩍 부탁하고,
3억9천 받았다며
변호사법 위반으로 꼼짝없이 나를 엮네, 피할 길이 없었구려.

이제는 수갑 차고 포승줄에 꽁꽁 묶여
구치소와 북부지검 쉴 날 없이 오가면서,
그 돈 받아 혼자 썼냐 누구랑 나눴느냐, 추가 수사 받는 일방,
태양광 비리 의혹 파헤치는 끈질긴 문초(問招)에
슬기롭고 교활하게, 의연하고 배짱 좋게 버틸 일이 걱정이오.

그나저나 이 지경이 되고 보니, 86동지 벗님네들 미안하기 그지없소.
태양광 비리 의혹 말 나올 때마다,
동지들은 안 다치게 몸조심 말조심 입단속 몸단속 게으르지 않았으나,
돈 욕심을 못 눌러서 이 지경이 벌어졌네.

그러나 어찌하오, 돈이라면 다다익선,
밥 썩는 냄새는 못 참아도 돈 썩는 냄새에는 환장하는 똥86이 나뿐만은 아니잖소.
평생 돈 벌어본 적 없는 우리 86,
별 수입 없이도 아들딸들 거만금이 들어가는 해외유학 보내려면
여기서는 빌고 저기서는 뜯어야만 가능한 건 배웠잖소.
그래야만 천신만고 풍찬노숙, 겨우겨우 깔고 앉은 때깔 좋은 이 기득권, 최소 3대는 물려주지.

어떨 때는 눈빛으로 도원결의, 어떨 때는 술집에서 똥창 맞추기,
그렇게 맹서하며 거친 세상 헤쳐왔네.
종석이, 인영이, 두관이, 미향이 … ,
신문에 난 86 이름 차례차례 불러보니 열 손가락 부족하네.

직(職) 대신 집을 챙긴 동지들도 마찬가지.
촛불 팔아 대권 잡고, 180석 거대 여당 신주류가 되고 보니 이 기득권 꿀맛이네.
‘내 머리는 잘라도 내 머리칼은 못 자르오[此頭可斷此 髮不可斷]’가 아니라
‘내 목은 치소만은, 이 꿀통은 못 내놓소’이외다.

86 벗님네야, 그 꿀맛이 좋다한들 영원히는 못 가노니, 긴 꼬리는 밟히는 법.
화무는 십일홍이요, 달도 차면 기우나니.
왕년의 운동권 대부, 내 모양이 처량하다.
가막소에 갇혀보니 국회의원 못한 것이 천추에 한이로세.
총선 두 번 떨어지고 백수신세 되어서는,
먹고살자 사업 길에 나섰으나 결국에는 이 모양이 되고 마네.
태양광 사업 한창일 땐, 낙선하면 건달 되는 국회의원 우습더니,
가막소에 갇혀서는 부러운 게 국회의원, 아쉬운 게 정치권력.
이권개입 국회의원, 들통나면 모르쇠요, 검찰이 부를 때는 일 바쁘다 안 나가네.
유야무야 뭉개다가 재판 가도 집행유예, 운 좋으면 무죄라네. 여러 명이 그랬다네.

86동지들아, 내 말 한번 들어주소.
3억9천 받은 돈, 용처(用處) 묻는 검사 질문 최선 다해 피할 테니,
동지들도 백방으로 손을 써서 가막소서 날 빼주소.
못 빼주면 검사 심문 못 견뎌서 무슨 말을 하게 될지,
누구 이름 불게 될지 지금 나는 모른다오.

탈 원전과 태양광도 아는 거 모르는 거, 내가 죄다 분다 치면.
여러 사람 귀찮아라, 다칠 수도 있을 거요. 그런 꼴 나기 전에 나를 얼른 빼주시오.
나를 못 빼주면 저 ‘검새’ 놈을 빼주시오.
추미애가 알아서 할 거라고? 그렇다면 다행이나 혹시라도 모를 일, ‘단도리’를 해주시오. 단단히 해주시오.

밤이 되니 가막소 공기 더 차갑네.
가을 기운 쓸쓸쌀쌀, 내 신세가 한량없이 처량하네.

*‘시무 7조 상소’와 이에 대한 하교(下敎) 형식의 답글이, 내용이야 어떻든 이 시대를 왕조시대로 착각하는 먹물들의 말장난이라는 비꼼이 넘쳐, 긴 세월 여염(閭閻)과 누항(陋巷)의 음률이었던 4·4조에 의지해 시대적 상황의 일단( 一 端)을 애타는 마음으로 풀어본 농문(弄文)임을 밝혀둠.
**왕년의 운동권 대부로 태양광 사업을 하다가 여권 인맥을 활용해 특정 도청탐지장비 제조업체의 국가기관 납품을 돕고 업체로부터 수억 원대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8월 7일 구속되고, 27일 기소된 허인회가 글의 모델임. 이 글은 기소 전 시점에서 작성됨.
***가막소는 감옥(監獄)의 전라도 방언.
****단도리는 일의 순서를 말하는 일본말이나, 한국에서는 일을 꼼꼼히 하라는 뜻으로 종종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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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정숭호

1978년 한국일보 입사, 사회부 경제부 기자와 여러 부서의 부장, 부국장을 지냈다. 코스카저널 논설주간, 뉴시스 논설고문, 신문윤리위원회 전문위원 등 역임. 매주 목요일 이투데이에 '금주의 키워드' 집필 중. 저서: '목사가 미웠다'(2003년), '트루먼, 진실한 대통령 진정한 리더십'(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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