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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집에서 땅을 깊숙이 팝니다

2020.04.30

어느 날 옆집 땅 주변에 울타리가 쳐지고, 중장비가 오가더니 땅을 파기 시작합니다. 집을 새로 짓나 봅니다. 어떤 집을 지을까 궁금해지고, 아무 탈 없이 집을 짓길 기대해 봅니다. 그러나 이 기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이웃끼리 다툼으로 바뀝니다. 중장비가 오가면서 내는 먼지, 진동, 소음으로 생활하는 데 불편함이 생겼습니다. 정작 집주인은 미안하다는 마음조차 표시하지 않는 게 더욱 서운합니다.

어느 날 아침 마당을 바라보니 바닥 상태가 이상합니다. 바닥에 금이 가고 일부는 가라앉은 듯합니다. 옆집 땅을 보니 지하층을 만들기 위해 땅을 깊이 팠습니다. 땅 경계선을 보니 철골 기둥을 박고 그 사이에 널빤지를 끼웠는데 틈 사이가 엉성하여 흙이 빠져나오고, 심지어 물도 배어 나옵니다. 지하수가 있나 봅니다. 흙막이 공사를 했지만 땅을 파면서 흙막이 벽이 밀렸고 그 바람에 내 집 마당이 꺼진 것입니다. 놀라서 현장 사무실로 달려가 당장 공사를 중단하라고 호통을 치지만 공사는 계속됩니다. 며칠 더 지나면서 내 집 벽에 금이 가기 시작합니다. 열이 머리끝까지 뻗쳐서 현장 사무실로 달려가 항의해 보지만 공사는 멈추지 않습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옆집에서 공사할 때 흔히 겪는 일입니다. 옆집도 집을 새로 지으려면 땅을 깊숙이 파야 합니다. 옆집 짓는 바람에 내가 손해를 입어서도 안 됩니다. 그런데 현실은 이런 사태가 생길 때 풀어가는 방법이 쉽지 않습니다. 그렇게 사이좋게 지내던 이웃이 하늘을 같이 이고 살지 못할 원수로 변합니다. 이런 일은 자주 일어납니다. 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사건은 대부분 이렇게 시작됐습니다.

분쟁이 생겼을 때는 당사자끼리 피해액과 요구 사항을 들어주고 해결하는 게 제일 좋습니다. 우리는 서로 타협하여 해결하는 게 참 어렵습니다. 피해자가 상대방 건축주를 만나려 해도 피하는 경우가 많나 봅니다. 조정이나 감정사건에서 얘기를 들어보면, 소송 절차가 진행되면서 처음 만났다고 할 정도로 소통이 되지 않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사태가 생기면서 분한 감정이 솟구쳐 법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합니다. 사고 때문에 만나야 하므로 마음이 참 불편합니다. 그렇더라도 만나 푸는 것이 좋습니다.

소송에서는 피해자가 피해 사실과 피해액을 증명해야 합니다. 피해를 증명할 책임이 피해자에게 있습니다. 옆집에서 공사할 때 주로 나타나는 것이 침하, 균열, 누수, 뒤틀림, 표면 벗겨짐 같은 현상입니다. 이런 현상들은 공사 시작하기 전에도 있었을 수 있습니다. 피해자는 공사 때문에 저런 현상들이 더 진전되어 피해를 당했다는 것을 입증해야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 공사하기 전 상태를 기록해 두지 않습니다. 공사하는 쪽에서는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여 기록해 둡니다만, 피해자는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소송 과정에서 감정을 통해 피해 사실을 입증하려고 하지만 자료가 충분하지 못해 제대로 밝히지 못할 수 있습니다. 결국 불완전한 자료를 바탕으로 추론하여 정리하는데 양쪽 다 불만이 가시지 않습니다.

내 옆집에서 집을 새로 짓는다고요? 양쪽이 같이 참여하여 집안 내외부를 기록해 두십시오. 기록할 때 균열이나 침하상태는 숫자가 표시된 측정기를 대고 기록하십시오. 마당, 벽체 미장과 도장, 지붕 방수 상태, 내부 상태를 본인이 구석구석 기록하기 어렵다면 전문 업체의 도움을 받는 것도 좋습니다. 그리고 틈나는 대로 변화를 지켜보십시오.

기록은 문제가 생길 것을 염두에 둔 것이라 서로 껄끄러울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고가 생길 것을 대비하여 보험을 듭니다. 보험을 들었지만 사고가 생기지 않으면 더 좋습니다. 혹시 공사로 피해를 입을 수 있을까 봐 기록해 둡니다. 공사 피해는 일어나지 않으면 좋습니다. 만약 피해가 생긴다면 피해가 생긴 대로 서로 할 일을 하면 됩니다. 실상을 있는 그대로 서로 받아들일 때 문제를 해결하기 쉽습니다. 실상을 명확하게 밝히지 못하면 감정싸움으로 흘러갑니다. 소송은 언젠가 끝나겠지만, 사이좋던 이웃이 영원히 원수로 지낼지 모릅니다.

공사 시작할 때 잘 기록해 두어야 이웃을 잃지 않습니다. 4일 또는 6일 동안 쉬는 날이 이어질 때입니다. 겨우내 얼었던 땅이 녹거나 장마철에 비가 많이 오면 지반에 변화가 생길 위험이 높아집니다. 옆에 공사장이 있으면 가끔 주변을 돌아보십시오. 그렇지만 휴일은 편안하게 즐겁게 보내십시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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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고영회

경남 진주에서 태어나 진주고(1977), 서울대 건축학과(1981)와 박사과정을 수료(2003)했으며, 변리사와 기술사 자격(건축시공, 건축기계설비)이 있습니다.
대한변리사회 회장, 대한기술사회 회장, 과실연 공동대표, 서울중앙지법 민사조정위원을 지냈고, 지금은 서울중앙지검 형사조정위원과 검찰시민위원, 대한상사중재원 중재인, 법원 감정인입니다. 현재 성창특허법률사무소 대표와 ㈜성건엔지니어링 사외이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mymail@patinf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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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 유감(遺憾)

2020.04.29

필자는 유학생 아들을 둔 아빠입니다. 중국에서 시작된 코로나19가 대구를 중심으로 창궐하기 시작했을 때, 아들이 공부하고 있는 미국은 그래도 안전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젠 상황이 완벽하게 역전되어 미국이 코로나19의 가장 큰 피해를 입고 있습니다. 그 한가운데에 아들 혼자 덩그러니 놓여 있습니다. 미국의 대학들이 모두 온라인 강의로 전환되어 많은 학생들이 귀국했지만, 인턴과 리서치가 남아있고 인터넷 강의의 시차 문제를 고려해서 남아 있기로 한 것입니다.

미국에선 우리나라의 KF94 마스크를 구하기 어렵습니다. 한국에서 보내줘야 하는데, 그게 쉽지가 않습니다. 코로나 사태 초기에 마스크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탓에 마스크 5부제를 시행하면서 해외에 마스크를 보내는 것이 3월 중순까지는 불가능했습니다. 또한, 이번 주부터 5부제가 느슨해져서 등본을 들고 가면 가족 당 3매씩 마스크 구입이 가능해졌지만, 그 동안에는 해외에 나가있는 가족의 마스크를 대신 살 수 없었습니다.

어찌어찌 가족들이 마스크를 아껴서 유학 중인 아들에게 보내려면 우체국의 EMS(Express Mail Service)를 이용해야만 하는데, 이게 참 코미디입니다. EMS는 말 그대로 매우 빠르게 배송되는 서비스입니다. 보통의 경우 사흘이면 배송이 완료됩니다. 그런데 항공 운송이 원활하지 못하다 보니 보름이 넘어야 배송이 됩니다. 실제로 4월 16일에 접수한 EMS가 이 글을 쓰는 4월 26일에도 비행기에 실리지 않았습니다. 부모의 마음은 한시라도 빨리 마스크가 도착해서 자식의 안전을 지켜주고 싶은데 상황이 따라주지 않는 겁니다.

자체 화물 항공기를 운용하는 페덱스(FedEx)나 DHL 같은 특송업체를 이용해서 마스크를 보낼 수 있을까? 하고 문의를 해보니 우체국을 제외한 모든 업체의 마스크 배송은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우체국에 전화를 했습니다. 질문은 아래 세 가지였습니다.
1. EMS는 우체국 해외 배송 중 가장 빠른 수단인데 왜 늦게 가는 것이냐?
2. 이렇게 늦게 가면서 비싼 특송료(마스크 8매에 운송료 2만 5천원 내외)를 받는 것이 합당한 것이냐?
3. EMS 배송이 보름 이상, 길게는 한 달까지 걸린다면, 우체국에서 마스크 배송 업무를 맡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닌가? 그래야 페덱스나 DHL 같이 현재 정상적으로 운영되는 업체를 이용할 가능성이 생기는 것이 아니냐?

1588-1300번인 우체국 콜센터로 전화를 해서 담담하게 질문을 하니, 처음에는 국제우편물류센터 전화번호를 알려줘서 그쪽 직원과 통화를 했습니다. 1번 질문의 답변을 들었습니다. 미국으로 가는 배송 물량은 많은데 현재 비행기 운항 횟수가 줄어서 물류센터에 열흘 이상 대기해야 비행기에 실을 수 있다는 대답을 들었습니다. 2번 질문은 그쪽 직원은 자신이 대답할 사안이 아니라며 서울청 국제영업과 전화번호를 알려주었습니다. 그쪽 직원과 통화를 했습니다. 여기서는 “배송이 오래 걸린다고 해서 우체국이 부담하는 비용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요금은 그대로일 수밖에 없다.”라는 궤변을 들었습니다. KTX를 타고 부산에 가는데 20시간이 걸렸는데, KTX를 탔으니 KTX요금을 내라는 얘기와 다를 게 뭐가 있을까요? 실제로 KTX는 운행이 지연되면 규정에 따라 환불을 해줍니다. 하지만 그 직원과 이런 문제로 옥신각신 따지고 싶지 않아서 바로 다음 질문을 했습니다. “지금 해외로 마스크를 보내는 유일한 방법이 EMS인데, 정상적인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는 상황이면 못한다고 해야, 다른 방법이 생기지 않겠습니까?”라고 물어보자 세종시에 있는 우정사업본부 우편사업단 국제사업과로 문의하라면서 그쪽 전화번호를 알려주었습니다. “EMS로 보내는 데 차질이 있다는 의견을 관계부처에 보냈구요. 우체국 EMS로 마스크를 보내는 결정은 관세청에서 한 겁니다.”
국제사업과 주무관이 퉁명스럽게 대답했습니다.

관세청으로 전화를 했습니다. 대표번호인 125로 전화를 했더니 상담원이 받습니다. 상황을 설명하자 본청으로 전화를 해서 물어보라는 대답이 돌아옵니다. 가장 설명을 잘해줄 것 같은 대변인실에 전화를 했습니다. 조목조목 궁금한 것을 물어보자, “어디신가요?”라는 질문이 돌아옵니다. “시민입니다. 해외에 있는 자식에게 마스크를 보내고 싶은데 발만 동동 구르고 있습니다.” 그러자 “지금 EMS가 아닌 페덱스 같은 특송업체로도 보낼 수 있게 하려고 합니다.”라는 대답을 합니다. 맥이 빠집니다. 그 결정을 내리는 데 한 달이 넘게 걸렸습니다. 그리고 아직 확정된 것도 아니구요.

현재 마스크TF라는 것이 구성되어 있다고 합니다. 우정사업본부, 관세청, 식약처, 총리실 등 관계부처 국장들이 매주 회의를 통해서 마스크와 관련한 결정을 내리는데 그 결과는 총리에까지 보고된다고 합니다. 그만큼 마스크 공급 문제가 큰 이슈라는 얘기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외에 있는 국민에 대한 배려는 한 달 동안 제대로 하지 못했던 겁니다. 자식을 생각하는 급한 마음에 페덱스 같은 서비스를 이용해서 내용물을 속이고 마스크를 보내다가 적발되면 필자는 범법자가 됩니다. 그게 싫어서 시간을 쪼개서 이리 알아보고 저리 알아보면서 보낸 시간이 벌써 몇 주가 흘렀습니다. 그사이 아들은 마스크 없이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아직 건강히 잘 지내고 있지만, 만에 하나라도 무슨 일이 생겼다면 차라리 법을 어기고 말 것을 하는 후회를 했을 겁니다.

애당초 마스크를 우체국 EMS로만 보내자는 결정을 내린 것은 무리한 결정이었습니다. 보통 모든 결정은 플랜A와 플랜B를 같이 마련하는데 왜 이번에는 플랜A만 고집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우리의 의료시스템과 의료인력의 우수함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또한 공공서비스 분야의 민첩한 대응과 신뢰도 역시 다른 나라의 부러움을 살만 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런 비상시국에 모두를 다 만족시킬 수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군복부를 마치고 다시 유학길에 올라 한국인의 긍지를 갖고 꿈을 좇아 밤을 낮 삼아 공부하고 있는 자식에게도 자랑스러운 조국이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자유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박상도

SBS 선임 아나운서. 보성고ㆍ 연세대 사회학과 졸. 미 샌프란시스코주립대 언론정보학과 대학원 졸.
현재 SBS 12뉴스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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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꿈꾸기

2020.04.28

2013년에 피아니스트 손열음의 글(https://news.joins.com/article/10463423)을 읽은 기억이 납니다.
그는 ‘새 악보를 읽고 외우는 것’은 가장 자신 있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그래도 사흘에 한 번씩 새 곡을 연주하려면 암보(暗譜)는 힘든 일이라고 토로합니다. 연주회 준비 때 손으로 하는 연습을 하지 않는 동안에는 연주할 곡 듣기를 한답니다. 그래서 무대에서 연주할 때는 손만이 아니라 머리와 귀가 함께 암보를 도와주고 있음을 느낀다는군요. 그 글을 쓸 즈음 라흐마니노프의 협주곡 1번을 연주할 때는 기억을 돕는 제4의 ‘기관’도 있음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마음’이라구요. 

이 글이 생각난 것은 책 한 권 때문입니다. 이미 4년 전에 발간된 『1만 시간의 재발견』을 최근 손에 잡았습니다. 읽는 내내 흥분을 느꼈습니다. 원저의 제목은 『절정(Peak)』입니다. 읽는 동안 여러 가지 생각과 기억들을 떠올리게 해 주었습니다.
저자 앤더스 에릭슨은 유전적으로 타고난 천재는 없다고 말합니다. 어떤 선천적 재능을 가진 사람이 스킬을 배우는 초기 단계에서는 어느 정도 이점을 가지고 있을지 모르지만, 이런 이점은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줄어들고, 결국 개인의 실력을 결정하는 데는 노력의 양과 질이 훨씬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는 타고난 천재가 아니라 아버지가 행한 훈련으로 재능을 개발시킨 결과라고 말합니다. 아버지의 음악 재능을 이어받은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좋은 훈련법이 만들어낸 인물이라고 말이지요. 그에게 한 것과 같은 훈련으로 재능을 키운 손위 누이의 모범도 도움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에릭슨은 수많은 사례를 들면서 어떻게 재능을 개발하고 훈련할 것인지를 설명합니다.

타고난 천재가 많다고 믿어온 나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이전까지는 타고난 재능과 후천적으로 갈고닦은 재능이 모두 중요하다고는 여겼습니다. 그러면서도 타고난 재능이 우위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저자에게 설득되었습니다. 읽는 내내 떠오른 생각과 기억들 중 손열음의 글 외에 개인적 경험 하나를 소개하겠습니다.

여러 정황을 고려해 보면 어린 시절에 음치였습니다. 그 사실과는 관계없이 중학교에 입학하여 맞은 첫 음악 시간에 당황스러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선생님은 우리가 처음 대하는 노래를 계명으로 부르라고 하였습니다. 다 장조라면 몰라도 샤프(#)나 플랫(b)이 붙은 악보의 계명을 전혀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니 모두들 입을 크게 벌리고 잘도 부르더군요.
그날 이후로 음악 시간만은 예습을 했습니다. 혼자 입 닫고 있어야 하는 부끄럼을 겪지 않으려고요. 학교 다니는 동안 예습, 복습은커녕 숙제도 잘 하지 않았는데, 음악 시간 전날이면 다음 날 부를 노래를 펼쳐놓고 한 음씩 계명을 적어 넣었습니다. 오선지의 조표(調標)에서 맨 오른쪽 플랫이 붙은 줄이 ‘파’이고 샤프이면 ‘시’라고는 알았습니다. 그걸 기준으로 음표 하나마다 “파미레도”, “시도레미” 하는 식으로 계산해서 계명을 적다보니 한밤중이 되곤 했습니다. 그렇게 예습하길 얼마나 했을까. 언젠가부터 계명을 일일이 적지 않고도 처음 보는 노래를 계명창으로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후로는 여러 경로로 음악을 대하였습니다. 피아노 교습을 받은 적도 없지만 고교 때는 보통의 찬송가는 피아노로 칠 수 있을 만큼 노력도 했습니다. 집엔 피아노가 없었으니 교회나 학교의 풍금으로 하루에 한 번씩은 독습(獨習)하였죠. 학생 애창곡 삼백 몇 곡이라는 제목의 악보 책도 구입해서 틈틈이 기타 코드에 맞추어 노래를 불러보았습니다. 대학 시절에는 교회에서 어린이성가대를 맡기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엉뚱하고도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경영학과 학생이 어린이들에게 호흡법과 모음 발성법을 훈련시켜 한때나마 상당한 수준의 소리를 내게 했지요.
그렇게 지내다보니 주변 사람에게서 음치라거나 노래를 못부르는 사람이라는 말을 듣지는 않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노래를 부르노라면 음감이 좋은 아마추어나 전문 성악가에게서는 음정이 불안하다는 지적을 받습니다. 그 문제까지 극복하려고 노력했으면 해내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음악과의 접촉에서 에릭슨이 말하는 (직접 가르침을 받은) 좋은 교사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심적 표상(현재보다 높은 단계의 성취 수준)’을 지닐 만한 상황이 있었기에 흥미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이 경험에서의 심적 표상은 ‘계명으로 부를 줄 알기’, ‘피아노로 찬송가를 치기’, ‘아이들을 효과적으로 훈련하기’ 등일 것입니다.

책을 읽으며 피아니스트 손열음의 글이 생각난 이유는 에릭슨이 집중이라는 단어를 여러 번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집중의 의미를 정리해 봅니다.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하나는 시간 배분과 관련됩니다. 집중한다는 말은 시간을 많이 배분한다는 뜻입니다. 고교 시절 두 해 동안은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대학 입시를 한 해 앞두고 다급해지니 입시와 관련 없는 모든 일을 포기할 정도로 마음을 한데 모은 일이 집중의 예입니다. 이후에야 집중의 의미와 효과를 몸으로 깨달아 알게 되었습니다.
집중의 다른 한 의미는 한 가지에 생각을 모아서 그 순간에 다른 생각이 끼어들 틈이 없게 만든 상태이지요. 앞의 의미가 시간의 양에 관한 것이라면 뒤의 것은 시간 소비의 질에 관한 것입니다.

손열음이 말한 ‘마음’의 뜻을 다시 생각합니다. 그는 그 뜻을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맥락상 집중(또는 의지)이라고 추정합니다. 집중한 결과 음표 한두 개, 혹은 한 악절까지 깜빡 잊을 뻔한 순간에도 손가락이 ‘저절로’ 연주할 수 있겠지요. 머리와 귀의 도움만이 아니라 거의 무의식적으로 말이지요. 우리는 자기 분야의 일에서 비슷한 경험을 합니다. 서른이 채 되지 않았던 나이에 지혜로운 글을 쓴 피아니스트에게 감사를 표합니다.

나이가 들 만큼 들었는데 웬 재능 개발 이야기냐고 묻는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에릭슨의 말을 더 인용해야겠습니다. “모든 잠재능력은 개발할 수 있다.” “나이 들어서도 꿈을 가질 수 있다.”

그는 이렇게 덧붙입니다. 신체와 두뇌 모두 성인이 되어서보다는 유년기와 청소년기에 적응력이 뛰어나지만, 대부분의 경우 평생토록 어느 정도의 적응력을 보유한다고 합니다. 나이와 적응력의 관계는 개인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다르다고 합니다.

책을 읽으면서 다른 기억도 떠올랐습니다. 10여 년 전 라디오 방송에서 유명 발레리나와의 인터뷰를 들은 일이 있습니다. 진행자가 발레리나의 초등학교 5학년 때 일화를 알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엄지발톱이 빠져서 기뻤다고 했더군요. 아프지 않았나요?” “그전에 선배들에게서 들은 말이 있었어요. 연습을 굉장히 많이 하면 발톱이 빠진다고요. 실제로 발톱이 빠졌으니 내가 열심히 하긴 한 모양이라고 생각되어 만족스러웠죠.”

나이 들어서도 어린 발레리나 지망생과 같은 경험을 해보면 좋겠다고 꿈을 꾸어 봅니다. 대가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감은 갖지 않아도 될 테니까요. 그래도 말입니다. 평생 종사해온 분야에서 미처 이루지 못한 일이 있다면 뒤늦게라도 하나쯤은 이룰 수 있겠지요.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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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홍승철

고려대 경영학과 졸. 엘지화학에서 경영기획 및 혁신, 적자사업 회생활동 등을 함. 1인기업 다온컨설팅을 창립, 회사원들 대상 강의와 중소기업 컨설팅을 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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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 수치로 돌아보는 4·15 총선

2020.04.27

코로나19 사태로 산책이나 특별한 약속 외에는 ‘방콕’하고 지내며 4월 15일에 치른 ‘제21대 국회의원선거’가 벌써 열흘 넘게 지나고 있습니다. 선거를 마친 다음 날 아침 투표 결과를 보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푸념하며 보내온 친구의 카톡에서 ‘사법부, 행정부, 지방 자치단체는 물론 언론까지도 장악한 진보 세력이 이제 입법부까지 보수 세력을 압도하며 석권했고, 40대 이하 젊은 층들이 감상적으로 좌경화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 우려된다.’는 내용을 읽으며, 우리 정치 현실에 대한 답답한 마음과 함께 국민 정서가 흐트러지고 있다는 우려도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방콕하는 김에 정치에 대한 아마추어로 선거에 대한 공부를 겸해 나름 재미있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선거 결과에 관한 통계를 일부 살펴보았습니다.

21대 국회의 의석수는 지역구 253석에 비례대표 47석으로 300석입니다. 뉴스로 보도되는 당선자들의 분포를 색깔로 나타낸 지도에서 영남 지역과 함께 전북과 강원의 아주 일부 지역의 붉은색(야당)을 제외하고는 거의 전국이 파란색(여당)으로 깔려 있는 것을 보고, 이번 선거에서 나타난 민심의 향방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이번 선거에는 기호 1번인 더불어민주당과 기호 2번인 미래통합당을 비롯해 민생당, 미래한국당, 더불어시민당, 정의당, 우리공화당, 민중당, 한국경제당, 국민의당, 친박신당, 열린민주당, 코리아, 가자! 평화인권당, 가자 환경당, 국가혁명 배당금당, 국민새정당, 국민참여신당, 기독자유통일당, 깨어있는시만연대당, 남북통일당, 노동당, 녹색당, 대한당, 대한민국당, 미래당, 미래민주당, 새누리당, 여성의당, 우리당, 자유당, 새벽당, 자영업당, 충청의미래당, 통일민주당, 한국복지당, 홍익당 등 무려 37개 정당이 참여했습니다. 정당명들을 보며 이렇게 많은 정당들이 난립하는 이유가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아 헛웃음이 절로 나오며, 우리 사회에 선거에 대한 진정한 상식이 정착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http://www.nec.go.kr)의 자료에 따르면 이번 총선의 선거인 수는 43,994,247명이고, 투표자 수는 29,126,396명으로 투표율은 66.2%였습니다. 지역별 투표율은 충남이 62.4%로 가장 낮았고, 울산시가 68.6%로 가장 높게 나타났습니다. 선거인 수가 가장 많은 지역인 경기도의 투표율은 1,100만 명이 넘는 선거인에서 719만 명 넘게 투표에 참가해 65.0%였고, 그 다음으로 선거인 수가 많은 서울시에서는 840만 명이 넘는 선거인단에서 577만 여명이 참여해 68.1%의 투표율을 보였습니다. 제일 작은 지역구인 세종특별자치시에서는 선거인 수 263,388만 명 중 180,395명이 참여해 투표율은 68.5%였습니다.

정당별 의석수 현황을 살펴보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163명으로 위성정당(?)으로 불리는 비례당인 더불어시민당의 17명을 합쳐 180명으로 과반수를 훌쩍 넘어섰습니다. 제1야당인 미래통합당은 당선자 84명에 비례당인 미래한국당 19명을 포함해 103석을 차지했으며, 그 뒤를 이어 정의당 6명(당선자 1명 + 비례대표 5명), 국민의당과 열린민주당이 비례대표 각 3명 그리고 무소속 당선자는 5명입니다. 무소속을 제외하고 지역구와 비례대표 선거에 후보를 내세운 37개 정당에서 7개 정당에서만 당선자가 배출된 것입니다.

비례대표를 내세운 35개 정당 중 비례대표 확보의 마지노선인 득표율 3%를 넘긴 당은 미래한국당(33.84%)과 더불어시민당(33.35%)을 비롯해 정의당(9.67%), 국민의당(6.79%), 열린민주당(5.42%) 등 5개 정당뿐이었습니다. 득표율 1%를 넘긴 당은 민생당(2.71%), 기독자유통일당(1.83%) 그리고 민중당(1.05%) 등 3개 정당뿐이었고, 득표율 1%를 넘기지 못한 27개 정당 중 득표율이 0.1%에도 미치지 못한 정당이 15개나 됩니다.

득표율이 0.03% 이하인 정당의 수도 6개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0.03%의 득표율은 선거에 참여한 2,900만 명이 넘는 선거인 수에서 겨우 1만 표 내외의 표를 얻은 것입니다. 이런 결과를 보며 왜 이렇게 많은 정당들이 만들어져 선거에 참여했는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지역구 의석수 253석을 제외한 비례대표 47석은 어떻게 배분되는 것일까요. 비례대표 선정 방법이 궁금해 자료를 조사해 보았더니, 예전에는 비례대표를 정당득표율에 비례해 배분했는데, 그 방법이 공직선거법 개정으로 개편되어 예전대로 정당득표율에 따라 비례해 분배하는 병립형 17석, 좀 복잡한 수식을 이용해 배분하는 연동형 30석으로 바뀌었습니다.

그 실례로 33.35%의 득표율을 보인 더불어시민당의 경우 비례석의 배분에서 병립형의 의석 배분 수는 17석 X 0.33(33.35%) ≒ 5.6석으로 6석이 배분됩니다. 연동형 30석 배분의 계산에서는 우선 의석수 300석에서 무소속 당선자 5명을 제외한 295명에 대상으로 득표율에 따른 인원을 계산하면 약 9.7명(295명 X 0.33 ≒ 9.7명)입니다. 그리고 유효 득표수의 3% 이하를 획득한 정당은 연동비례에서 컷오프 되기 때문에 3% 이상 득표를 한 정당들의 유효 득표율을 모두 더하면 90%(0.9) 정도가 되기 때문에 득표율에 따른 9.7명에 유효 득표율을 적용하면 9.7명∻0.9(90%) ≒ 10.8명으로 11석이 배분됩니다. 그래서 더불어시민당의 비례석 배분 수가 병립형 6석과 연동형 11석을 합쳐 17석이 되는 것입니다. 좀 복잡한 계산 방식이라는 생각으로 머리가 찡해지기도 합니다.

선거 결과는 우리 국민이 선택한 것입니다. ‘모든 국민은 자신들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는 알렉시드 드 토크빌의 말을 떠올리며, 이제 선거에 대한 유언비어는 자제하고 승리와 패배를 인정하는 긍정적인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신의 뜻대로 안됐다고 속상해하는 것은 내 욕심이고, 결과에 대해 안타까워하는 마음은 우리 모두의 욕심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코로나보다 무서운 것은 서민이 먹고사는 문제’라는 말도 있습니다. 너무 교과서적이고 상식적인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이번 총선을 계기로 시대착오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코로나19 사태로 가라앉고 있는 민생경제를 되살리고, 미래 사회에서 주역을 담당하게 될 청년들이 일자리를 찾으며 희망찬 미래를 설계하는 사회 분위기를 조성해 나라의 기틀을 바로 세우는 데 국회가 앞장서 나설 것을 제안해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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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방재욱

양정고. 서울대 생물교육과 졸. 한국생물과학협회, 한국유전학회, 한국약용작물학회 회장 역임. 현재 충남대학교 명예교수, 한국과총 대전지역연합회 부회장. 대표 저서 : 수필집 ‘나와 그 사람 이야기’, ‘생명너머 삶의 이야기’, ‘생명의 이해’ 등. bangjw@c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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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의 조용한 반란

2020.04.24

우리나라 지하철은 쾌적하고 능률적인 것으로 이용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을 뿐 아니라 외국에서 오는 관광객들도 만족해하고 부러워하기까지 합니다. 노선에 따라 편차가 있겠으나 최근에 건설한 노선들은 승강장이 넓고 편리하며 역사(驛舍)의 공간들이 전반적으로 깔끔하게 장식돼 있습니다. 최근의 노선 하나를 건설하는 책임을 맡았던 한 지인으로부터 그 노선을 잘 만들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들였는지를 직접 듣기도 했습니다. 그런 노력과 정성이 투입되었기에 최근 노선들이 훌륭하게 건설되었음을 더욱 잘 알 수 있습니다. 아무튼 우리나라 지하철은 매우 우수한 대중교통 수단으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그렇지만 지하철 이용에 있어 몇 가지 문제점도 있습니다.

지하철에 오르면 우선 시야를 불편하게 하는 것이 핑크색 임산부석입니다. 그 자리는 거의 비어 있고 임산부가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을 보기가 어렵습니다. 한 객차당 4~6개 정도가 있는데 가끔 사람이 앉아 있기는 하지만 임산부가 아닌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다른 이들만큼 눈치를 덜 보는 연세 있는 아주머니들이 요새 무슨 임산부가 있다고 아까운 자리를 비워 놓나, 하면서 망설임 없이 그 자리에 앉는 것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그분들 말이 맞습니다. 초저출산 운운하면서 막대한 돈을 쏟아붓는데도 출산율이 증가되기는커녕 하락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임산부 보호, 크게는 출산장려의 일환으로 임산부 배려석을 만들어 놓았으며 이를 매우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습니다. 어떤 역사 앞에는 '임산부석 비워놓기' 배너를 세워놓고 캠페인을 합니다. 현실과 동떨어진 착상을 참신한 아이디어라고 내놓았을 것이며 여성 인권 향상이란 좋은 생각도 작용했을 것입니다. 일곱 개 좌석 중 양 끝을 핑크색으로 구별해 놓은 것에서 더 나아가 그 앞 공간도 온통 핑크빛으로 칠하고 그것도 모자라 아기 인형까지 올려 놓았는데 때가 꼬깃꼬깃 묻어 미관상으로도 위생상으로도 좋을 것이 없어 보입니다. 그런 걸 바라보면서 정작 앉고 싶은 사람들이 못 앉는 이런 왜곡된 현상이 우리의 후진성을 나타내는 것 같아 안쓰럽습니다. 특히 출퇴근 시간에도 승객들이 서로 눈치를 보며 아까운 자리를 비워 놓고 있는 것은 불합리해 보입니다.

현실에 맞지 않고 상식에 맞지 않는 것은 오래 못 가는 모양입니다. 언제부턴가 그 핑크색 금단의 자리에 아무나 앉는 현상이 생기고 있습니다. 여성뿐 아니라 남성도 주변에 임산부가 없다 싶으면 크게 눈치를 보지 않고 그 자리에 앉습니다. 물론 임산부가 타면 언제라도 양보하겠다는 마음일 것입니다. 어느 날 한번은 양쪽 끝 자리 임산부석에 남성 하나, 임산부가 아닌 여성 하나가 각각 앉아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귀에 못이 박이도록 흘러나오는 임산부 배려석 비워놓기 방송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 자리에 앉는 승객들이 지하철 당국의 정책에 반기를 든 것입니다. 맞지 않는 일을 자연스레 바로잡는 조용한 반란입니다.

우리 사회의 시민의식이나 교양 수준으로 보아 그런 특별 배려석이 없다고 하더라도 임산부를 보고 자리를 양보하지 않을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봅니다. 이번에 큰 난리를 겪고 있는 코로나 19 사태에서 드러난 우리 국민의 시민의식이라면 드러나게 임산부석을 만들어 놓고 방송이나 캠페인을 하지 않아도 임산부에게 스스로 자리를 양보하는 문화가 자리를 잡은 것으로 봅니다. 바꾸어 말하면 그 정도 캠페인을 했으니 이제는 그만해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차량당 한두 석 정도만 남겨 놓고 나머지 좌석은 다 일반석으로 환원하는 것이 합리적이며 현실적이라고 봅니다. 지키지 않아도 되는 규율을 유지함으써 오히려 준법의식이 흐려질 우려가 있음도 고려해야 합니다. 승객의 자연스러운 반란이 이를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우수한 지하철 시스템이지만 승객의 편의를 위해 한두 가지 더 지적하고자 합니다. 지하철을 타고 난 다음에는 내릴 역을 바로 알고 내리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가끔은 지하철 객차에서 바깥을 내다보며 역 이름을 확인하려는데 역 이름이 잘 보이지 않아 당황하다가 내릴 역을 놓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내릴 역은 방송으로도 나오고 요즘은 디지털 안내판이 좋아서 굳이 바깥을 내다보지 않아도 알 수 있게 돼 있지만 차 안이 매우 혼잡하면 방송도 안 들리고 디지털 안내판도 잘 볼 수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럴 때는 바깥에 써 붙여 놓은 역 이름을 보고 확인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인데 외국의 경우에 비해 역사 내 역 이름 표시가 여전히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지하철 당국은 승객의 입장에서 모든 역을 꼼꼼히 살펴서 역 이름 표지를 더 보강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그 밖에도 내려서 출구를 찾아가는 데도 혼선이 있을 수 있습니다. 크고 복잡한 역에서는 꽤 많이 걸어야 바른 출구를 찾아서 나갈 수 있는데 중간중간에 표지가 안 보여 당황하거나 다른 표지가 끼어들어서 혼선을 초래하기도 합니다. 지하철을 많이 이용하다 보면 표지의 글자들이 비교적 작다는 느낌을 받기도 합니다. 역사 내 제반 표지는 멋지게 보이는 것보다 승객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므로 실용성을 앞세워 이 부분을 더 개선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필자의 경우 고속터미널역과 서울역에서 해당 출구를 잘 못 찾아 당황한 경우가 있었습니다. 늘 이용하는 사람들은 역사 내 지리에 익숙하므로 안내표지 문제로 불편을 느끼지 않겠지만 가끔 이용하는 사람들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더 신경을 써 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문제점은 대강 그 정도로 하고, 전보다 크게 개선된 점을 하나 들라면 저는 지하철 역사의 청결 상태, 특히 화장실의 청결을 들겠습니다. 백 퍼센트 다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대체로 어느 지하철 역사의 화장실에 들어가도 항상 깨끗하게 유지돼 있어 기분이 좋아지곤 합니다. 어느 날 밤 11시쯤 어떤 역사의 화장실엘 들렀는데 그때까지도 물과 세제로 깨끗하게 씻어내는 아주머니들이 있었습니다. 아, 이렇게 열심히 청소를 하니 화장실이든 역사 내 다른 공간이든 깨끗하지 않을 수 있겠나, 하는 생각이 들어 이분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분들뿐 아니라 지하철이라는 대중 교통시설이 잘 돌아가게끔 운행하고 유지해주는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갖습니다. 우리나라 사회가 지하철 역사의 청결을 유지해주는 분들만큼 각자가 책임감을 가지고 자기 일을 성실히 해나간다면 일등 선진국이 될 날이 머지않을 것이란 생각을 해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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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정달호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후 줄곧 외교관으로 일했으며 주 파나마, 이집트대사를 역임했다. 은퇴 후 제주에 일자리를 얻는 바람에 절로 귀촌을 하게 되었고, 현재 제주평화연구원 객원연구위원으로 있으면서 한라산 자락에 텃밭과 꽃나무들을 가꾸며 자연의 품에서 생활의 즐거움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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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것에 대하여

2020.04.23

'사회적 거리두기'(social distancing)는 2020년을 사는 사람들의 생활규범이 되었습니다. 너도 나도 사람 만나는 일에 신경 쓰입니다. 밥을 같이 먹는 것도, 가까이 앉아 대화를 나누는 것도 조심스러워집니다. 만에 하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과 접촉한 것이 드러나면 나와 나의 가족은 14일간 자가격리 대상이 될 것입니다. 평소에 자주 보던 사람들과 만나는 것도 미안한 일이 됩니다.

틈을 내서 걸어봅니다. 한강 둔치길이나 동네 공원에 나가 걸으면 무르익은 봄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요즘 서울의 공기가 무척 깨끗해진 것 같습니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자동차 통행이 줄어들고 또 중국에서 미세먼지가 덜 유입되어 그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바이러스 사태는 원했던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걷기에 참 좋은 조건입니다.
걷는 것은 바이러스 시대의 스트레스를 완화하는 좋은 방법일 듯합니다.
걷기 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고무적인 정보가 있습니다.

지난 3월 발간한 ‘미국의사협회저널’(JAMA)이 “하루 평균 8,000보를 걷는 사람은 4,000보를 걷는 사람보다 심장질환이나 암에 의한 사망 위험이 51% 감소할 수 있다.”는 데이터 분석 연구 결과를 내놨는데,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보았습니다.
이 데이터 분석 연구 작업에 참여한 사람들은 미국 ‘국립건강원’과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전문가들이며 미국국립암연구소의 찰스 매튜스 박사가 이 작업을 주도했다고 합니다. 2003년~2006년에 시계나 만보기 등으로 자기 걸음을 측정한 40세 이상 미국인을 성별 인종을 고려하여 수만 명을 선정해서 10년 동안에 걸쳐 이들 조사 대상자의 걸음 수와 걷기 속도에 대한 데이터를 축적했습니다. 이 기간 죽은 사람을 포함해서 4,800명을 분석 샘플로 최종 선정해서 그들의 데이터를 분석 연구했다고 합니다.
이 분석 연구는 4,000보를 기준으로 했습니다. 즉 하루 평균 8,000보를 걸었던 사람은 4,,000보를 걸었던 사람보다 사망 위험이 51% 감소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 1만2,000보를 걸은 사람은 4,000보를 걸은 사람보다 사망 위험이 65% 낮아질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그런데 이 데이터 분석에서 통념과는 다른 흥미로운 점이 발견됐다고 합니다. 걸음 수가 많을수록 사망 위험이 감소하지만, 걷기 속도와는 상관없다는 겁니다. 즉 천천히 걸어도 많이 걸으면 심장질환과 암에 의한 사망 위험을 줄일 수 있다는 겁입니다. 이 연구에 참여했던 한 전문가의 충언이 인상적입니다. “이 방 저 방을 왔다 갔다 하거나, 허공을 향해 주먹을 내지르기라도 하세요.”

사회적 거리두기는 우리나라 일만이 아닙니다. 77억 전 세계인의 심리를 지배합니다. 그래서인지 외신에 보면 사회적 거리두기의 아이디어가 다양하게 나옵니다. 앞으로 여행도 이런 추세에 맞춰 변할 것이라고 합니다. 미국에서는 19세기 중엽 자연 속에 묻혀 단순한 생활의 경험을 회상하며 쓴 책 ‘월든’, 그리고 그가 살았던 숲과 연못이 새롭게 조명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걷는 것은 사회적 거리두기의 한 방법입니다. 걸으면 사회적 스트레스와 고립감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혼자 걸으면 자연과 교감하는 시간이 되고, 같이 걸으면 눈을 마주치지 않아도 인간과 소통하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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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김수종

‘뉴스1’고문과 ‘내일신문’ 칼럼니스트로 기고하고 있다. 한국일보에서 32년간 기자생활을 했으며 주필을 역임했다. ‘0.6도’ 등 4권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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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라 읽고 문예라 쓴다 (上 문학과 문예)

2020.04.22

시나 소설을 쓰고 희곡 등 문예 작품을 빚는 행위를 일반적으로 ‘문학’이라고 합니다. 문예지나 신춘문예 등에 공모하기 위해 습작품을 쓰는 사람들도 ‘예비 문학인’이라고 합니다. 고등학교에서 배우는 문예 수업의 교과서 이름도 ‘문학’이며, 일반 서술문이나 서사에서 멋진 글이나, 심오한 뜻을 품고 있는 글을 볼 때도 통상 ‘문학적으로 썼다’라고 표현합니다. 그러나 중고등학교의 특별활동에서는 ‘문학반’이 아닌 ‘문예반’이라고 하고, 대학에서도 ‘문학창작과'라고 하지 않고 ‘문예창작학과’라 합니다.

이처럼 ‘문학’과 ‘문예’가 지향하는 길은 같지만, 명칭은 혼용되어 사용되고 있습니다. 교육현장이나 실전에서도 아무런 혼란을 느끼지 않을 뿐만 아니라, 상황에 따라서 ‘문학적’, ‘문예적’을 적당히 사용하면 됩니다. 예컨대 부산에서 경상도로 가나 전라도로 가나 서울만 가면 그만이라는 식으로 ‘문학’과 ‘문예’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국어사전에도 〔문학〕은 사상이나 감정을 상상의 힘을 빌려 언어로 표현한 예술, 또는 그러한 작품 시, 소설, 희곡, 수필, 평론 등을 이른다. 〔문예〕는 미적 현상을 사상화하여 언어로 표현한 예술작품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라 해석되어 있습니다.

‘문학’과 ‘문예’가 지향하는 목적이 같지만 ‘문학’과 ‘문예’를 구분 지음으로써 교육 효과나 실전에서 얻을 수 있는 예술효과가 다르게 나올 수 있다면 문제가 달라집니다. 이번 회를 포함한 3회 동안 제가 실전과 교육현장에서 경험하고 느낀 점을 토대로 ‘문학’과 ‘문예’는 반드시 구분 지어야 한다는 타당성에 대한 소회를 밝혀 보겠습니다.

우선 ‘문학’은 ‘문예’를 포함한 ‘글을 매개로 하는 모든 학문’을 통칭하는 명사입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가운데 미국의 가수 밥 딜런이 있는가 하면 독일의 역사학자 테오도어 몸젠외 다수의 철학자와, 정치인 윈스턴 처칠도 있습니다. ‘문학’의 범위를 명확하게 알려주는 실례라 할 수 있습니다.

문학은 하나의 학문입니다. '학문’은 말 그대로 지식을 배워서 익힌다는 뜻입니다. ‘지식’은 교육이나 경험, 또는 연구를 통해 얻은 체계화된 인식의 총체입니다. 즉 ‘앎’을 뜻합니다. ‘앎’은 안다는 것이고, ‘앎’을 전제로 하는 예술 행위는 복제품을 양산할 여지가 다분합니다.

문인이 되거나, 문예를 익히기 위해서는 저처럼 독학으로 깨우치거나, 교육기관을 통해서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일반인들은 문화원이나, 문화센터, 평생 교육기관 등에 등록을 해서 시인이나 작가들에게 교육을 받습니다. 아니면 ‘문예창작학과’가 설치되어 있는 대학에 등록을 해서 교육을 받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82개 대학이나 대학교에 ‘문예창작학과’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문예창작학과’는 말 그대로 ‘문예창작’에 대한 지식을 학문적으로 다루는 과입니다. 학생들을 지도하는 교수진진은 거의 시인이나 소설가, 희곡작가, 평론가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습니다. 학생들은 교수이기 전에 선배 문인들로부터 어떻게 글을 쓰는지에 대한 문예에 대한 지식을 학문적으로 전수받습니다.

예술과 학문은 분명히 틈새가 있습니다. 학문은 기왕에 존재한다는 것을 아는 것이고, 예술은 기왕에 있는 것을 새롭게 창조하는 것입니다.

교수는 학생들이 춤을 출 수 있는 마당만 열어 주어야 합니다. 어떠한 형식으로 춤을 추는지에 대해서는 오롯이 학생의 몫이 되어야 합니다. 현실이 그럴까요? 교수는 학생들이 춤을 추는 방법은 물론 자세까지 교정을 해주고 있습니다.

예컨대, 시(詩)에는 여러 가지 형식이 있습니다. 사람마다 개성이 다르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른 것처럼 시를 쓰려는 학생들도 시를 취하려는 방법이 각각일 것입니다. 교수가 모더니즘 성향으로 시를 쓰고 있다고 해서, 학생들도 모두 모더니즘 시를 쓴다면 창조보다는 답습에 가깝습니다.

‘시적 허용’이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시에서만 특별히 허용되는 비문법성을 말합니다. 시의 특성에 있는 ‘운율’에 맞추기 위하여 문법에 맞지 않는 문장이라도 허용이 된다는 말입니다. 학생들에게 ‘시적 허용’에 대하여 교육을 할 때는 정확하게 이론이 적립되어 반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시적 상상력’이란 용어도 교수의 몫은 ‘시적 허용’이 무엇인지에 대한 지식까지입니다. ‘시적 상상력’을 발현하는 방법은 학생들에게 맡겨야 합니다. 현실은 교수의 성향에 따라서 ‘시적 상상력’을 발현하는 방법이 천차만별로 설명이 되거나 다른 작품의 예를 들어서 차용이 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교육 방법은 교수와 시적 성향이 같은 학생들은 문제가 없지만, 그렇지 않은 학생들은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자유롭게 예술성을 발휘하는 데 있어서 한계를 줄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예술가의 상상력은 자유로워야 합니다. 그럴 리야 없겠지만 예술가의 상상력이 경직되어 있다면 작품의 예술성에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더불어서 예술의 발전에 저해 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문예는 예술의 하위 장르입니다. 시는 문예의 하위장르로 느낌이나 사상을 운율이 있는 언어로 압축하여 표현한 글입니다. 소설은 작가가 경험한 사실을 허구를 통해 미적으로 서술한 서사 문예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운율’과 ‘미적’은 예술성입니다. 시와 소설이 예술적으로 씌어야 한다고 명시가 되어 있습니다.

시는 언어를 창조해야 하고, 소설가는 이야기를 창조해야 합니다. ‘창조’는 예술에서 추구하는 핵심입니다. 여기서 ‘창조’는 조물주처럼 없는 것을 창조해내는 것이 아니고, 기왕에 있는 것을 새롭게 해석한다는 의미의 창조와 가깝습니다. 이처럼 시와 소설은 물론 희곡에도 예술성이 가미되어 있어야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당연히 문예 작품을 쓰기 위해서는 먼저 ‘예술론’부터 교육받아야 합니다. 예술이 뭔지 알아야 예술적인 작품을 쓸 수 있다는 겁니다.

현재 대학이나 대학교의 문예창작학과에서 ‘예술론’을 필수과목이나 선택과목으로 채택하고 있는 곳은 한 곳도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미학’을 교양과목으로 듣는 학생들이 더러 있기는 하지만 ‘예술론’을 교양과목으로 듣는 학생들도 소수일 것입니다. 물론,  ‘예술론’에 대한 지식이 없더라도 문예작품이 지향하는 꼭짓점이 예술성에 있으니까, 굳이 ‘예술론’을 학습받을 이유가 있느냐고 반문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술성을 앞세워 문예 행위를 하는 것이 지름길이고, 문학성을 앞세운 것은 돌아가는 길이라면 문제는 달라집니다.
다음 회에는 '문예와 예술'에 대해서 올리겠습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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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한만수

1990년부터 전업으로 소설을 쓰고 있음. 고려대학교 문학석사. 실천문학 장편소설 “하루” 등단. 대하장편소설 “금강” 전 15권 외 150여권 출간. 시집 “백수블루스”외 5권 출간. 이무영문학상 수상. 장편소설 “활” 문화예술진흥위원회 우수도서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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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레지꽃 같은 정치인과 시민이 되었으면...

2020.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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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레지 (백합과) 학명 Erythronium japonicum

밝고 아름다운 삼사월이 어느덧 지나가고 있습니다. 참으로 답답하고 지루하고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일상을 보내야 했습니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세상’을 맞으리라 기대도 했었는데 전혀 뜻밖에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미증유(未曾有)의 국면으로 몰아붙였습니다. 아마도 이번 사태를 계기로 이제까지 지내왔던 우리의 일상과 문화, 사회체계 등 다방면에 걸쳐 참으로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변화가 여러 분야에서 전개되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코로나19에 대처하는 동안 우리 주변에서도 많은 변화를 모두가 직접 체험해야만 했습니다. 전쟁 때도 경험해 보지 못한 사회 격리는 이제까지의 일상과 문화에서의 의례적 행동과 양식, 당연함에 대한 제반(諸般) 사항을 다시금 성찰해보는 새로운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만물의 영장이라고 오만했던 인간의 지식과 기술이 눈에 보이지도 않게 작은, 하찮고 힘도 없는 바이러스에도 무력한 측면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전 세계 인류가 국가, 인종, 문화에 따라 각각이 아닌 생물계의 같은 한 종(種)일 뿐이라는 것도 일러 주었습니다. 구경꾼을 모으고자 추진했던 유채밭을 갈아엎고, 튤립밭의 꽃을 따서 폐기하고, 화려한 벚꽃 길에 금줄을 치면서 ‘손님이 왕’이라는 기존의 경제 상식이 맞지도, 틀리지도 않는다는 것도 배워야 했습니다. 비로소 인간의 삶과 자연이 모두가 함께 얽혀 세상천지가 이루어지고 이어간다는, 깨우침의 시간이 아닌가 여겨지기도 합니다. 있는 듯 없는 듯 서로 해(害)하지 아니하고, 있는 그대로 꾸밈없이 때맞춰, 더불어 살고 존재하는 순리의 세계, 자연이 상도(上道)임을 비로소 알 듯합니다.

밝고 화사한 사월의 따스한 봄 햇살 아래 온갖 산들꽃은 자작자작 다투어 피어나는데 집안에 콕 박혀 있어야 한다는 것이 어느 일보다도 더 어렵고 힘든 벌(罰)로만 여겨져 행장을 꾸려 산들꽃을 찾아 나섭니다. 봄꽃이 다양한 천마산에 닿으니 꽃만큼이나 밝고 활기찬 사람 떼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전과 달리 아는 사람을 만나도 눈인사에 그치고 멋진 꽃 한 포기에 우르르 몰려들지 않는 변화가 암묵 간에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코로나19가 꽃 산행 행태에도 변화를 가져온 것입니다.

많은 꽃이 아침 햇살 아래 해맑은 미소로 반겨줍니다. 졸지에 ‘꽃이 반긴다.’는 표현도 이제까지의 습성에 따른 사람 중심의 아전인수이지, 꽃은 사람을 반기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번쩍 듭니다. 이 또한 코로나19 때문에 다시 생각해 보는 결과인가 봅니다. 아무튼 꾸밈없이 소박한 산들꽃을 보니 탐탁하지 않은 위선 꾸러기 선거꾼들을 종일 보고 들어야 하는 집콕에 비교할 수 없는 감흥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천마산으로 오르는 길은 산 입구부터 산들꽃이 만발했습니다. 다양한 제비꽃 종류, 알쏭달쏭한 현호색 종류, 나름 멋을 자랑하는 바람꽃 종류, 흰색, 분홍색, 청색으로 치장한 노루귀, 돌밭 사이에 무성하게 솟아나 자주색 꽃을 치렁치렁 매단 미치광이풀이 한창이었습니다. 기중(其中) 낫게 눈길을 끈 것은 밝은 분홍빛에 상큼하고 발랄한 얼레지꽃이었습니다. 흰색, 노란색이 대부분인 이른 봄 산기슭과 길섶에서 환하고 밝은 진달래 빛의 얼레지가 황량한 숲 바닥을 곱게 밝히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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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큼발랄한 진달래 빛의 얼레지꽃

얼레지는 가재무릇이라고도 합니다. 얼레지라는 꽃 이름이 외래어처럼 들리지만, 순수 우리말입니다. 이름의 유래에 몇 가지 설이 있는데 잎에 있는 얼룩얼룩한 무늬에 연유한 것으로 보는 설이 통설로 보입니다.

얼레지는 높은 지대의 비옥한 땅, 산골짜기에서 자랍니다. 알뿌리인 비늘줄기는 땅속 깊이 박혀 있고 2개의 잎이 나와서 수평으로 퍼집니다. 잎은 긴 타원형으로 녹색 바탕에 얼룩얼룩한 자주색 무늬가 있습니다. 두 잎 사이에 한 개의 꽃줄기가 나와, 그 끝에 크고 화려한 분홍빛 꽃을 피웁니다. 오전에는 꽃이 밑을 향하여 수줍은 처녀처럼 다소곳이 고개 숙였다가 오후에는 꽃잎이 뒤로 발라당 젖혀져 화사하고 상큼발랄한 도시의 멋쟁이 아가씨로 돌변합니다. 이른 봄 황량한 계곡에서 봄바람에 살랑대는 얼레지꽃 무리의 화려한 군무(群舞)를 보면 가히 환상적입니다.

얼레지는 예외 없이 한 개의 구근에서 두 개의 잎이 나고 한 개의 꽃이 피는 1경 1화로서 원칙에 충실한 꽃입니다. 얼레지의 알뿌리는 땅속 20~30cm 정도로 깊이 박힙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땅에 떨어진 씨앗은 첫해에 떡잎 하나만 내밉니다. 해마다 조금 더 큰 잎을 내밀며 알뿌리는 더 깊이 들어가 4~5년이 되는 해에 비로소 두 개의 잎을 내밀고 다음 해가 되어서야 두 개의 잎 사이로 꽃줄기를 올려 오직 하나의 아름다운 분홍색 꽃을 피워내는, 인고의 때를 기다릴 줄 아는 꽃입니다. 한 송이 꽃을 피우기 위해 얼레지는 5년이라는 세월을 기다립니다. 알뿌리를 깊이 다지고 균형 잡힌 두 잎을 내고 나서야 비로소 한 줄기에 하나의 꽃을 피우는 원칙을 실행합니다. 간혹 잎이 하나이면서 꽃이 달린 얼레지가 보이지만 이 개체는 산짐승이 잎을 뜯어 먹었거나 훼손된 것일 뿐 처음부터 그러한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황량한 이른 봄 가벼운 미풍에도 일일이 대응하여 살랑대며 밝고 환한 웃음을 보냅니다. 겸손과 친절을 아는 꽃입니다. 익으면 씨앗에 개미가 좋아하는 먹이를 품고 있어 씨앗 이동의 대가를 개미에게 갚는, 은혜에 보답할 줄 아는 꽃이기도 합니다.

지금 피어 있는 한 송이 얼레지꽃이 얼마나 대단한가! 한 송이 꽃을 피우기 위해 참고 인내할 줄 알며 긴 세월에 걸쳐 알뿌리 다지고 두 잎 펴서 때가 될 때까지 나대지 않고 기다릴 줄 압니다. 있는 그대로 꾸밈없는, 위선과 거짓 없이 맑고 밝은 꽃을 피워내는 화사하고 친절, 겸손한 꽃입니다. 익으면 개미에게 먹이를 주고 심지어 흉년에는 인간에게 구황식물로 요긴하게 이용되었으며 구토와 설사를 치료하는 약재로도 사용되는 요긴한 식물입니다.

얼레지꽃을 생각하며 문뜩 우리의 현상을 떠올려 봅니다. 총선이 끝나고 새로운 나라 일꾼이 뽑혔습니다. 그동안 거짓과 위선과 독단의 기준으로 사회를 편 가름하고 유체이탈의 언행에 수오지심도 없이 나댄 일이 너무도 많았습니다. 더불어 살아가야 할 상대를 불구대천의 적으로 몰아붙이는 한심한 언행을 서슴지 않았던 정치인들, 이들에게 부화뇌동하여 균형감 없고 줏대도 없는 도당(徒黨)이 인터넷 세상에서 암약하던 총선도 막을 내렸습니다. 이제 모두가 조용히 코로나19를 계기로 얼레지와 같은 자연의 뜻을 새길 줄 아는 정치인이 되고, 시민이 되어 언행에 책임질 줄을 아는 평온한 사회가 이어졌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을 띄워봅니다.

(2020. 4월 얼레지꽃을 되새겨 보며)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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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박대문

환경부에서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과장, 국장, 청와대 환경비서관을 역임했다. 우리꽃 자생지 탐사와 사진 촬영을 취미로 삼고 있으며, 시집 『꽃벌판 저 너머로』, 『꽃 사진 한 장』, 『꽃 따라 구름 따라』,『꽃사랑, 혼이 흔들리는 만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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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디 살아남으시길

2020.04.20

새가 노래하는 아침입니다. 어디에선가 아름다운 소리가 들려와 발코니로 나가보니 새 몇 마리가 지저귀고 있었습니다. 변함없는 봄의 전령입니다만 우리는 자유로운 새들보다 못한 몸으로 집 안에 갇혀 있습니다. 가슴을 설레게 하는 꽃 시장조차도 모두 문을 닫아 갈 수도 없으니 생전 경험하거나 상상도 못한 봄을 맞고 있는 것입니다.  

내 생에서 두 번째 어두운 봄, 항암치료의 후유증으로 수족을 맘대로 쓸 수 없어 절망했던 어느 봄과 인류가 몰고 온 재앙 앞에서 운신의 폭이 좁아진 2020 년 봄 입니다. 갑자기 T.S. Eliot 시 황무지(The Waste Land)의 역설적인 표현이 떠올랐습니다. 위대한 시인은 어떤 통찰력으로 이런 시를 남겼을까, 라일락이 피어나는 4 월이 잔인하다는, 차라리 지난겨울이 따뜻했다는 역설적 표현이 이렇게 절묘하게 맞아떨어질 수가 있을까요.

중국 우한에서 시작되어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치명적인 코로나바이러스의 심각도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깨닫지 못했던 비위생적인 습관에 대하여 많은 반성을 하게 합니다. 오래 해왔던 습관을 바꾸기는 쉽지 않지만 여러분의 일상생활은 어떠한지요?

면역체계가 무너진 나는 일상생활을 까다롭게 할 수밖에 없어 비행기를 탈 때도 항상 소독제 티슈를 가지고 좌석이나 벨트를 모두 닦습니다. 호텔방에 들어가면 문고리 등, 머무르는 동안 상용해야 하는 호텔의 물건들을 모두 소독제 티슈로 닦고 사용하는 버릇은 오래된 습관입니다. 한국 방문 중 지하철을 탈 때는 반드시 장갑을 끼고 손잡이를 잡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승객들이 나를 이상한 나라에서 온 외계인처럼 쳐다보곤 했습니다.  

영주 귀국하여 아예 모국에서 머물러 살 생각을 하고 작은 사업을 시작했던 88 올림픽 무렵 사람들과의 모임이 많았습니다. 디자이너인 내가 직업적 일보다 유통업체 사람들을 만나 사교를 해야 한다는 것도 힘들었지만 문제는 한잔 하는 일이 많았고 더욱 견딜 수 없었던 것은 비위생적인 일들을 목격하게 된 것입니다. 술잔을 주고받고 돌리거나 찌개, 탕 종류 음식을 모두 함께 숟가락을 냄비에 넣고 떠먹는 것이었습니다.

그로부터 세월이 많이 흘러 한국인의 생활 수준과 민도가 향상되어 자랑스럽지만 일부의 TV 프로그램 방송에서 그때와 다름없는 비위생적인 상황이 지금도 연출되고 있어 당황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모두 나름대로의 청결 수칙이 있겠으나 공포스러운 코로나바이러스 앞에서 나의 위생 수칙이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1) 귀가 후 외출복을 벗고 실내복으로 갈아입은 후 손을 씻는다.(지하철이나 공공장소에서 앉았던 의자에는 많은 세균과 바이러스가 묻어 있는데도 세균이 묻은 외출복을 입은 채 수면을 취해야 할 쾌적한 침대에 앉는 모습이 한국 방송에 많이 나옴)

2) 외출 때 이용했던 핸드백, 핸드폰, 장보고 온 시장바구니 봉지나 패키지 등을 부엌 상판 위나 식탁 위에 올려놓지 않는다.(여기저기 놓았던 핸드백이나 시장에서 가져온 봉지는 매우 많은 세균 바이러스가 묻어있는데도 식탁이나 음식하는 부엌 상판 위에 올려놓는 장면이 한국 드라마에 많이 나옴)

3)슈퍼에서 식품을 구입할 때는 상품을 자신의 손으로 이것저것 많이 만지지 않고 장갑을 끼고 만진다.    

4) 구입한 식품 패키지(우유, 요구르트, 양념병, 포장된 식품)는 유통과정에서 많이 오염되었으므로 냉장고 오염을 방지하기 위해 반드시 비눗물로 씻고 물기를 닦은 후 냉장고에 넣고 야채, 과일은 씻은 것과 안 씻은 것을 구분하여 냉장한다.

5) 식탁 상차림 할 때 숟가락 젓가락을 그냥 식탁 위에 놓지 않는다. 식탁 위엔 많은 세균이 노출되었을   가능성이 많으니 개인 트레이를 사용하거나 냅킨 혹은 접시받침을 사용하여 숟가락 젓가락을 놓는다.(소독된 식탁이라면 안 해도 됨)

6) 변기는 사용 후 뚜껑을 반드시 닫은 후 물을 내린다(세균이 변기보다 30 센티 위로 튀어 올라 화장지와 화장실, 목욕실을 오염시킴). 남성들은 반드시 좌변기에 앉아서 이용하도록 한다. 서서 시용하면 소변이 튀어올라 바이러스나 박테리아가 오래 남아 있게 된다.(주거용 좌변기는 앉아서 이용하는 것이지 서서 사용하는 것이 아니니 이참에 앉아서 사용하는 습관을 들일 것)

7) 술잔을 주고받는 것보다 자작이 더 위생적이며 자신의 입에 들어간 젓가락으로 음식을 집어 상대방에게 권하지 않는다. 남들과 함께 먹는 식탁 위의 요리를 자신의 젓가락으로 여기저기 헤집어서 들었다 놓았다 하지 않는다. 비빔밥을 한 양푼에 비벼서 같이 숟가락을 넣고 떠먹지 않는다.(아직도 한국 유명 방송 드라마나 심지어 유명한 요리 프로그램에도 이런 모습이 자주 등장함 )

8) 노래방 마이크와 노래책은 가장 비위생적이므로 사용 후에는 반드시 손을 소독하거나 아니면 일회용 비닐장갑을 사용 후에 버린다.

9) 지하철 손잡이는 고무장갑이나 일회용 장갑, 삶아 쓸 수 있는 장갑을 끼고 잡는다.

10) 주유소에서 주유할 때는 일회용 비닐장갑을 사용 후에 버리고, 급유 시스템에 설치된 신용카드를 넣는 slot(touchless 신용카드 시스템이 아닌 경우)에 카드를 밀어 넣어 결제를 해야만 할 때는 사용 후 반드시 크레딧 카드와 손을 소독한다. (신용카드를 넣는(insert) 카드 접수기 slot 안에는 다른 사람의 오염된 카드로 인한 바이러스가 남아 있어서 내 카드를 오염시킬 수 있음 )

11) 은행 ATM 사용할 때의 카드는 앞 사람이 쓴 카드로 인한 바이러스가 slot 안에서 내 카드를 오염시킬 수 있으니 사용 후 손과 함께 소독을 하거나 7 일간 쓰지 않고 놔두면 자연히 바이러스가 죽는다.

이제는 친한 이들과의 자연스런 포옹이나 악수조차도 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이렇게 살아야 하는 것은  비인간적이어서 정말 숨이 막힙니다. 사실 오랫동안 철저한 위생 습관을 들여온 나 자신도 요즘은 무척 힘들고 지칩니다만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젠 대충대충 해서는 살아남기가 어려운 시대가 온 것을요. 인간의 탐욕이 자멸의 굴레를 자초했고 그 댓가로 받는 죄와 벌입니다. 미래에 이보다 더한 바이러스가 창궐하여 인류를 멸망에 이르게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  

여기 캐나다에 사는 사람들은 미국인들보다는 정부의 지시를 잘 듣는 편이어서 거리두기도 잘 지키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미국과 캐나다 국경이 봉쇄되었고 미국에서 캐나다로 의료장비와 PPE(personal protective equipment)용품을 일절 수출할 수 없게 한 트럼프의 정책이 시작되어 이곳의 사정은 어떻게 변할지 모릅니다. 몇 주 전의 사재기 경험을 겪은 나는 무섭습니다. 아직은 식품 등 일상 필요한 물자들은 국경을 통해 들어오고 있지만 식품(쌀, 고구마, 과일, 야채는 미국 캘리포니아산이 많음)뿐만 아니라 많은 일상용품을 미국에 의존하고 있는 이곳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내일을 모르기 때문에 불안하지요. 아직까지 사재기가 없는 한국의 시민의식은 선진국보다 훨씬 높습니다.

어려서부터 정리정돈을 좋아하고 더러운 것을 참지 못하여 까탈을 부리기도 했지만 이런 시기에는 오히려 나의 습관이 여러모로 코로나바이러스 퇴치에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특히 사회적 거리두기(social distancing)는 매우 중요합니다. 봄 꽃놀이도 좋겠지만 이 시련을 이기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매사를 참아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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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리

미국 패션스쿨 졸업, 미국 패션계에 디자이너로 종사.
현재 구름따라 떠돌며 구름사진 찍는 나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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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의료 수준을 80대 20으로 끌어올려라

2020.04.17

코로나19 전염병이 혼돈을 일으키며 국가별로 감염 예방과 치료 및 대처 방법이 마구 뒤섞여 갈피를 못 잡고 있습니다. 정보를 감추다 핵폭탄 같은 확산피해를 당한 국가(중국 등), 국경을 꽁꽁 걸어 잠가 감염자 유입을 차단해 사망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은 국가(몽골, 베트남 등)가 있는가 하면, 늑장 대응하여 사망자가 급증한 국가(미국, 유럽 등)도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 눈여겨볼 것은 미국의 열일곱 개 정보기관이 수집한 정보에서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을 계속 경고했음에도 행정부가 이를 접수하지 않은 점입니다. 미군 정보기관은 전시도 아닌 평시에 코로나로 인해 미국 군대의 전투력이 약화될 것을 크게 우려했습니다. 1898년의 미국과 스페인 전쟁에서는 장티푸스와 이질이, 제1차 세계대전 동안은 인플루엔자와 말라리아가, 제2차 세계대전 기간에는 말라리아와 전염성 간염으로 인한 피해가 전투 부상으로 인한 손실보다 더 컸습니다. 미국 정보기관들은 이번에도 그와 같은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분석했습니다. 그럼에도 미국은 국민은 물론 군의 방역에 미온적이었고, 오히려 병사들을 역병에서 구하는 것이 우선이라던 해군제독의 옷을 벗겼습니다.

세계 234개 국가와 지역에서 코로나 전염병과 치열한 전투 중입니다. 16일 현재 감염자가 2백만 명 이상이고, 사망자도 13만 명을 훌쩍 넘었습니다. 국내 감염자 수는 1만 명을 넘어 세계에서 스물세 번째입니다. 사망자는 229명으로 스물일곱 번째로 많습니다. 사망자 수가 많은 대부분의 나라 특징은 공공의료 기관이 민간보다 뒤처집니다. 나라마다 치료약 개발 또는 발견을 위해 효험이 있다는 약과 치료방법을 모두 시험하고 있습니다만 바이러스가 기다리지 않습니다. 벌써 여기저기서 변종이 발견되었다는 뉴스가 이어집니다. 어쩌면 백신 개발이 더 멀어질지도 모릅니다. 많은 이들이 애타게 기다리다가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아찔합니다.

감염병 대처방법으로는 예나 지금이나 주로 비상경제 체제에 의한 현금 살포가 주류입니다. 우선 먹고 살게 하겠다는 취지입니다. 병에 걸린 사람 목숨을 살리는 일도 매우 중하지만 산목숨을 연명하게 하는 것도 뒤질 수 없습니다.
세종은 평안도 감사가 “도내에 들어와서 각 성(城)을 지키는 인민들 중 역병을 앓는 사람들이 많으니, 약재와 의방을 청합니다.”고 하자 이를 허락하여 급히 약재를 보내고 치료방법을 알려줬습니다. 광해군 때는 “함경도에 역병이 창궐하여 2,900명이 죽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시 인구가 1,000만 명도 안 되었으니 현재 우리나라 코로나19 사망자보다 수는 물론 비율로도 훨씬 대단했습니다. 거리에는 시체가 널려 있었을 겁니다. 마치 미국의 뉴욕에서 시체 처리를 못해 냉동 창고나 컨테이너 등에 임시 안치한 것보다 열악한 상황이었나 봅니다. 광해군은 시체 처리보다 산 사람을 우선 챙겼습니다. “죽은 자의 처자 등에게는 식물(食物, 먹을 수 있거나 먹을 만한 음식 식품)을 빨리 지급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지금 사정도 마찬가지지요. 국가가 100조 원 이상으로 코로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나섰는데 단기처방으로는 잘하는 일입니다. 돈 주는 속도가 너무 느린 것 말고는 탓할 일이 없습니다. 빨리 공평하게, 불평불만 없이 지급되어야 합니다. 직접 생산 업종은 말할 것도 없고, 생산 업종을 보조하는 분야 업종들은 아사 직전입니다. 이를 막아야 코로나 위기가 끝났을 때 곧바로 급상승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항공 해운 등 운송업계를 들 수 있습니다.

이런 분야를 두루 점검하여 내일을 대비하는 지혜를 모아야 합니다. 통계청(2018년 자료)에 따르면 전체 의료기관의 병원수 3,937개 중 공공의료기관은 224개(5.7%)이며 병상수는 641,044 중 63,924(10%)입니다. 적지 않아 보이지만 실은 허접하기 짝이 없습니다. 보건 분야 최고 당국자조차도 “실상은 ‘98대 2’ 정도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감염병은 물론 총상 화상 암 등 각분야 최고 병원은 민간이 운영 중입니다. 그는 민간과 공공 비율을 “80대20” 정도로 시설과 내실을 확충해야 공공의료 체계가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폭군이라고 내몰린 광해군조차도 “감염병이 한성 함경도 강원도 등에 이미 전염되어 곳곳이 다 그러합니다. 앞으로의 걱정이 또한 지금 정도에서 그치지 않을 것이니 미리 대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벽온방*이란 책은 장수가 많지 않아 만들기가 쉽습니다. 속히 교서관으로 하여금 많은 수를 인출하게 한 다음 중외에 널리 나누어 주어 위급한 사태를 구원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라는 승정원의 장기(長期)적인 제도 수립 제안을 받아들여 곧장 시행했습니다. 지금도 머뭇거려서는 안 됩니다. 국립의료원을 비롯한 공공의료기관의 시설과 의료 및 연구 수준 향상에 적극 투자해야만 이번보다 더 큰 위기가 닥쳐와도 허둥대지 않을 것입니다. 추가경정 예산의 1%만이라도 공공의료 수준향상으로 돌렸으면 좋겠습니다. 국립의료원이 중심이 되어 수익에 연연하는 민간분야가 감당할 수 없는 곳까지 반드시 준비해야 합니다.

*벽온방(僻瘟方): 조선시대의 의서(醫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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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덕

서울대학교, 서독 Georg-August-Universitaet, 한양대학교 행정대학원, 몽골 국립아카데미에서 수업. 몽골에서 한국인 최초로 박사학위 방어. 국민일보 국제문제대기자, 한국산업기술대학교 교수, 경인방송 사장 역임. 현재는 국민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서독은 독일보다 더 크다, 아내를 빌려 주는 나라, 몽골 풍속기, 몽골, 가장 간편한 글쓰기 등의 저서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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