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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대선은 결선 투표하자

2020.05.15

4·15 총선의 신인 당선자를 꼽으라면 나는 여당권에서 친문 고민정, 형사 피고인인 친조국 최강욱과 현직 경찰관 황운하, 정의기억연대(옛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전 이사장 윤미향을, 야당권에서는 탈북자 태영호와 장수 앵커우먼 배현진, 탤런트 유오성 형 유상범, 안보전문가 신원식 예비역 중장을 떠올립니다. 나는 번잡스럽더라도 당일 투표를 하려고 했지만, 예측 불허의 코로나로 26.69퍼센트인 사전투표 분산 대열에 끼었습니다.

수도권 121곳 중 여당이 103곳을 차지했죠. 전국적으로 민주당 사전선거 득표율은 당일 투표보다 10.60퍼센트 높아 당일의 부진을 만회하고 남았습니다. 새벽 2시께인가, 잠들기 전의 중앙선관위 홈페이지에 본 통합당은 94석이었는데 자고 일어나보니 10석 줄어 있었습니다. 마지막에 깐 사전투표로 격전지에서 획일적으로 패한 것입니다.

대부분의 총선에서 격전지는 끝까지 시소였죠. 20대 총선의 당일 투표와 사전투표의 득표율에 대한 갭이 여야 모두 평균 1~2퍼센트, 많아야 6퍼센트로 불규칙했지만 이번 총선은 수도권 대부분의 지역이 11~13퍼센트였다고 분석가들은 말합니다. 따라서 막판에 뒤집힌 거죠. 과거 엎치락뒤치락, 심야의 득표가 후보에겐 지옥이었겠으나 주권자인 국민들에게 ‘아, 이런 것이 민주주의구나’ 하고 실감시켰을 겁니다. 이번엔 3년 간 실정에도 여당 압승으로 나타났죠. 대통령이 트럼프에 내세운 대로 코로나 관리의 승리일까요? 재난지원금 때문일까요? 지역구 득표율은 여야 49.9  대 41.5퍼센트, 통합당은 243만 표 졌지만, 의석은 절반입니다. 수도권의 민주당과 통합당 사전투표 득표 비율이 소수점 이하를 빼고 ‘63 대 36퍼센트로 일치해 ‘인위적’이라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2018년 6·13 시도지사 선거에서도 인천, 경기, 강원, 충남의 자유한국당 득표율은 35.10~35.51퍼센트라는 놀라운 평준화를 보였습니다.

총선의 당일 투표와 비례 투표는 통합당이 대등하게 선전했는데 유독 사전투표는 여당이 압도적으로 표를 가져갔죠. 민심이 이렇게 변할 수 있을까, 3~4일 전 북쪽으로 운전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변심하여 남쪽을 몰려가는 현상이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여당 지지자가 사전투표는 여당에, 당일 투표는 야당에 교차 투표하기라도 한 듯한 희유한 일이었죠. 중앙선관위는 "투표는 원인이고 득표는 결과다, 선관위가 어떻게 결과를 설명해야 하느냐"는 식으로 항변했습니다.

부정선거 전문의 세계적인 통계학자인 미국의 월터 미베인 미시간대 교수는 한국 총선 분석 보고서에서 득표의 정당 간 이동 가능성을 주장합니다."수치가 자연발생적이라고 생각하기 어렵고 조작 의혹을 더해준다"면서 "이는 증거가 아니라서 추가 수사를 통해 입증돼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이상한 득표 비율을 보여준 총선 결과의 원인을 유권자는 알 수 없지만 통계학자는 각종 데이터 값과 분포를 과학적으로 분석하여 추정하는 거죠. 전 통계학회장인 박성현 서울대 명예교수는 ‘신(神)이 미리 그렇게 해주려고 작정하지 않고는 일어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선거무효 소송을 제기한 인천 연수을의 민경욱 의원 선거구는 당선자인 정일영, 낙선자인 민경욱, 이정미 세 후보의 관내 사전 득표에 대한 관외 사전득표 비율이 획일적으로 0.39였습니다.

민 의원의 선거무효 소송을 비롯하여 낙선한 유성을의 김소현 변호사, 부산 남구을의 이언주 변호사 등 10여 곳에서 투표함 등 증거보전신청과 선거무효 소송을 각각 냈답니다. 오늘이 소송 마감 시효인데 더 늘지도 모르죠. 그러나 부정선거 의혹을, 통합당의 일부 바른미래당 출신과 일부 고참 우익 유튜버들은 끝장 토론을 하자며 부인합니다. 학자들도 엇갈려 있습니다. 선거의 의혹은 토론이 아니라 수사와 재판의 대상입니다.

확고한 물증이 없어서 그런지 황교안, 오세훈, 나경원, 김진태 후보 등의 야권 유력 인사들이 매우 신중합니다. 무소속 당선자인 홍준표는 투표함 바꿔치기는 절대 없다고 큰소리칩니다. 전자개표기가 말해주듯 컴퓨터가 왕인 디지털 정보통신 시대입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의 그 '권력'은 투표가 부여하는 것이죠. 투표에 의혹을 품은 자는 알 권리가 있습니다. 법 위에 잠자고 싶은 제삼자가 왈가왈부할 게 아니라고 봅니다.

13일 서울대와 고려대 트루스 포럼은 각기 학내 집회를 갖고 “4·15 부정선거 의혹을 철저히 규명하라”, “부정선거 조사하여 국민주권 보장하라”고 외쳤습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의 말대로 ‘태산명동 서일필(泰山鳴動 鼠一匹)’이라면 그 '서일필' 도 없어야 하는 게 민주주의의 꽃, 선거입니다. 선거에서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워야 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죠.

혹시 후진하는 걸까요? 공직선거법에는 투표지에 막대형 바코드를 표시하도록 규정했지만, 선관위는 많은 정보를 심을 수 있다는 QR코드를 사전투표지에 인쇄했죠. 각종 상품 포장지에 찍히는 긴 네모꼴의 선형 바코드와 정사각형의 QR코드가 같다고 강변하지 말고 과학적이고 논리적으로, 어떤 과정을 거쳐서 왜 QR로 결정했는지, 설명해야 합니다. 수사 결과에 따라서는 헌법 위반도 될 수 있습니다. 총선 특검을 요구하는 국회 청원에 백악관 청원도 등장했습니다. 어차피 선관위의 민경욱 의원 고발로 부정선거 의혹 수사는 본격화할 전망입니다.

낙선자들과 일부 야당이 요구하는 중앙 서버 등 모든 정보통신 자료를 선관위는 공개해야 합니다. 미 공화당 대선 후보감으로 꼽혔던 니키 헤일리 당시 유엔 주재 미국 대사는 안보리에서 전자 개표기를 쓰지 말라고 콩고에 강력하게 요구하는 연설을 했습니다. 한국산 전자개표기가 수출된다고 자랑하지만 이를 쓴 이라크, 볼리비아 등에서 부정선거 논란의 불상사가 일어났습니다. 우리는 이번엔 개표기가 아니라 손 개표로 실업자에게 일자리 창출을 해줘야 했습니다.

여당 선거 압승의 일등 공신이라는 민주연구원장 양정철과 당선 예측치에서 ‘사전투표 보정 값’이라는 이상한 단어로 논란을 일으킨 전략기획위원장 이근형도 떠났습니다. 180석 압승에도 이해찬, 이낙연, 이인영 등 민주당 핵심 인사들이 기쁨은커녕 미소조차 짓지 않아 승리한 당에서 보기 힘든 매우 이상한 표정이었다고 한국 문제에 정통한 미국의 타라 오 박사는 월드 트리뷴지에 밝혔습니다. 그 ‘보정 값’을 어느 컴퓨터 전문가는 ‘조작 값’으로 상정해 20여 석이 여당에 넘어갔다는 놀라운 가설을 주장합니다.

부정선거 논란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방법이 뭘까요. 당일 투표, 당일 개표입니다. 3~4일 보관하면 선도가 떨어지기 쉽죠. 또한 유럽 등 많은 나라들이 대선과 총선, 지방선거에서 실시하는 결선투표를 적용해야 합니다. 2017년 프랑스 마크롱(당시 39세)은 대선 1차전에서 24.01퍼센트 득표로 21.30퍼센트의 국민전선 마린 르 펜을 간신히 눌렀지만 50퍼센트 미달로 1,2위의 결선을 치렀고 66.10 대 33.90퍼센트로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1노 3김의 대결로 13대 노태우 대통령 득표율은 매우 낮은 36.64퍼센트였습니다.

대선의 결선 투표는 당선자에게 정통성과 국민통합의 자신감을, 국민들에게는 다시 한 번 투표를 심사숙고할 말미를 주는 것입니다. 과거 많은 여,야당이 결선투표제 도입을 주장했지만 어디로 실종했는지 모릅니다. 단 한 번의 우연의 총합으로 당선시켜 미래를 결정하자는 건가요. 이 나라 정치가 민주주의의 심화와 높은 완성도에는 관심이 희박하다는 증거입니다. 2022 대선도 이대로 할 건가요.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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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김영환

한국일보, 서울경제 근무. 동유럽 민주화 혁명기에 파리특파원. 과학부, 뉴미디어부, 인터넷부 부장등 역임. 우리사회의 개량이 글쓰기의 큰 목표. 편역서 '순교자의 꽃들.현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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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그늘에 대한 노래

2020.05.14

경제나 군사력에서 세계 최강국 미국이 코비드-19 대응에서 보인 난맥상은 어처구니없었습니다. 바이러스 확산을 처음 겪은 나라들에 비해 한 달 넘는 시간적 여유가 있었음에도 대비가 미흡한 탓에 바이러스 감염 희생자가 많이 발생했습니다. 이들 가운데는 여러 분야에서 이름이 알려진 사람들도 있습니다. 4월 초에 사망한 컨트리 음악 가수인 존 프라인(John Prine, 1946년 생)이 그중 한 명인데 한국에서는 좀 생소하지만 미국 내에서 잘 알려진 음악가입니다.

컨트리 음악은 미국 남부 및 중서부 농촌 지역 백인들 가운데 좋아하는 사람이 많지만 젊은 사람, 도시적 취향인 사람들과 거리가 있는 장르입니다. 하지만 노래에 따라 장르에 대한 호불호의 경계를 넘어 널리 사랑받습니다. 존 프라인의 노래들이 이 경우에 해당됩니다. 지난 반세기 미국 대중음악의 지주인 밥 딜란이 그의 노래를 좋아했고, 19세기 미국 시대상을 잘 그려낸 촌철의 소설가 마크 트윈에 비교되기도 합니다. 왜 그런 평가를 받는지 이해를 돕기 위해 그의 노래 두 곡을 소개합니다.

‘Sam Stone,’ 모르핀에 중독되어 돌아온 참전 용사
첫 번째 노래 제목 샘 스톤은 노래 주인공의 이름입니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강한 국가는 전쟁을 불사했고, 20세기부터 지금까지 세계 패권국 지위를 지켜온 미국도 마찬가지이죠. 식민지 상전 영국과의 독립 전쟁을 통해 국가로 탄생한 것이 3백 년도 되지 않았는데, 그동안 국익을 위해 숱한 무력충돌을 겪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누가 추상적 인격체 나라가 결정한 전쟁에서 희생하는지 일정치 않습니다. 2차 세계대전 때까지 대체로 다양한 사회적 계층 구분 없이 참전했습니다.

시어도어 루스벨트(19세기 말 스페인과의 전쟁에 참전한 26대), 존 F 케네디(35대), 조지 부시(41대)는 본인들이 실전에 참전했던 미국 대통령들입니다. 근래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던 밥 돌, 존 케리, 존 매케인도 마찬가지입니다. 26대 대통령 루스벨트의 아들과 존 F 케네디의 형은 2차 대전 때 전사했습니다. 제정 로마 시대에 귀족 가문 남자들이 다 전사하여 대가 끊긴 경우가 드물지 않았다는 역사적 사실이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예로 자주 쓰이곤 하지요.

하지만 베트남 전쟁부터는 상대적으로 저소득층 희생이 큰 전쟁이었습니다. 추첨에 의한 징병제가 실시되었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나 빌 클린턴 전직 대통령의 경우처럼 부유한 가정, 요령이 좋은 남자들은 피해갈 길이 있었지요. 5만 8천 명이 넘는 베트남전 전사자들의 출신지 자료를 검토한 연구들에 따르면 상대적으로 저소득 지역 출신 비중이 더 높았습니다.

베트남 전쟁은 미국이 참전한 명분이나 목표가 불분명해 상당히 반대가 많았습니다. 청년들의 기성세대에 대한 반발과 반전 운동으로 나라가 시끄러웠습니다. 이런 분위기가 거세던 1971년에 참전 용사의 비극을 그린 프라인의 노래는 빠르게 알려지며 그는 단숨에 유명 가수가 되었습니다.

노래는 잔잔히 해외 전쟁에 참전했다 가족에게로 돌아온 샘 스톤에 대해 들려줍니다. 훈장까지 받았지만 그는 무릎에 파편이 박히는 부상, 그리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로 인해 모르핀 중독자가 되어 돌아왔습니다. 비싼 마약 중독 때문에 가정의 사정이 어려워지고 심지어는 돈을 마련하기 위해 도독질하게 됩니다. 결국 마약 과다 투여로 사망하고 장례비를 마련하기 위해 제대군인 대출로 샀던 집까지 넘어갑니다.

Sam Stone came home/ To the wife and family/
After serving in the conflict overseas/
And the time that he served/ Had shattered all his nerves/
And left a little shrapnel in his knees./ But the morhpine
eased the pain/ And the grass grew round his brain/
And gave him all the confidence he lacked/
....
There was nothing to be done/ But trade his house that he bought on the GI bill/ For a flag-draped casket on a local hero's hill....

노랫말 중에 “아빠의 팔에는 돈을 먹는 구멍이 있단다/ 예수 그리스도는 쓸데없이 죽었나 보다 ” (There's a hole in daddy's arm where all the money goes/ Jesus christ died for nothin' I suppose)과 같은 가사는 왜 이 조용한 기타 반주의 노래가 헤비급 권투선수 펀치의 충격을 주었는지 알게 해줍니다.

‘Hello in there,’ 간단한 인사말이 그리운 노인들
두 번째는 쓸쓸히 늙어가는 노인들에 대한 노래입니다. 역시 1971년에 발표되었는데 당시 20대 중반의 청년이었던 프라인이 노인의 애환을 애틋이 그린 것은 참 특이합니다. 더욱이 ‘30세를 넘은 사람은 믿지 말라!’라는 것이 청년들의 구호였던 때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시류에 상관없이 그는 어려운 사람을 배려하는 심성이 깊은 사람이었습니다. 죤 바에즈(Joan Baez) 등 여러 유명 가수들도 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노래에 흐르는 세월에 대한 한탄과 적적함은 한국이나 중국의 옛 시를 연상시킵니다. 세 명의 자식이 있으나 하나는 멀리 살고, 하나는 어디 있는지 모르고, 다른 아들을 한국전에서 잃은 늙은 부부는 멍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나무는 나이를 먹을수록 더 튼튼해지고, 강은 날이 갈수록 점점 넓어지지만, 사람은 늙어갈수록 더 외로워져 어쩌다 지나가는 사람이 안녕하세요 하고 말을 건네지나 않을까 기다리고 있네.”

You know that old trees just grow stronger/
And old rivers grow wider everyday/
And old people just grow lonesome/
Waiting for someone to say Hello in there, hello.

청년 프라인은 우리에게 이렇게 권합니다, “길을 가다 오래된 멍한 눈을 보면, 그냥 무심히 보며 지나치지 말고, ‘안녕하세요’ 하고 말을 거세요.”

If you're out walking down the streets of town/
And spot some hollow ancient eyes/
Well please just don't pass them by and stare/
As if you didn't care/ Say hello in there, hello.

지금도 미국은 해외에서 전쟁을 이어가고 있고, 많은 참전 군인들이 민간으로 돌아온 후 마약에 중독되거나, 자살을 선택하는 일이 빈번하다고 합니다. 전에 이 칼럼(‘21세기판 아편전쟁’ 2019년 1월 15일)에서 다루었듯이 미국 내 치명적 마약의 확산과 중독에 의한 사망자 급증은 심각한 사회적 문제이지요. 소득 불평등이 더 악화되고 있고, 인종갈등과 같은 심각한 문제들이 여전하고 개선되는 기미가 없어 보입니다. 아울러 현재 8만 명에 가까운 코비드-19 사망자 가운데 약 3분의 1 정도가 요양보호시설의 노인들이라고 하니 프라인이 노인들을 측은히 여겼던 일이 새삼스럽습니다.

21세기 들어선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미국은 9/11, 2008년 금융위기, 그리고 최근 코비드-19 대유행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정부가 우왕좌왕하는 사이 바이러스 위기는 더 커졌습니다. 심각한 내부적 문제는 등한시한 채 인종적 편견과 국제사회에서 미국이 피해자라는 선동으로 집권한 세력들의 국가 운영 역량이 크게 모자란 것을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세계 질서가 혼란스러워 구심점이 절실한 요즘 휘청거리는 제국의 모습과 그 그늘에 대한 노래가 더 구슬프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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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프라인, LA Times 사진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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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허찬국

1989년 미국에서 경제학 박사학위 취득 후 미국 연지준과 국내 민간경제연구소에서 각각 십년 넘게 근무했고, 2010년부터 2019년 초까지 충남대 무역학과 교수로 재직. 다양한 국내외 경제 현상을 조사하고 연구하는 것이 주된 관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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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라, 미스터트롯

2020.05.13

2020년은 ‘코로나19’와 ‘미스터트롯’의 해로 기억될 만합니다. 지난겨울과 초봄은 참으로 ‘위태(危殆)’했어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 여파로 자의 반 타의 반 자가 격리를 하며 의욕을 잃고 하루하루를 때우던 시절이었죠. TV에서 이 채널 저 채널 돌리며 엇비슷한 뉴스와 시사토론에 지칠 무렵 아내의 권유로 한 종편 채널에서 방영하는 가요 프로그램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미스터트롯’! 트롯과는 평소 담쌓고 지낸 터라 처음엔 신파조려니 심드렁했다가 흠뻑 빠져들어 나중엔 ‘도시락 싸 들고’ 찾아 듣기에 이르렀답니다.

추억의 서랍 속에 대충 쟁여 두고 ‘내가 알바야?’ 듣거나 말거나 했던 이 장르가 그토록 마음에 와닿을 줄이야! ‘미스터트롯’이 없었다면 그 힘겨운 시절을 어떻게 견뎌냈을까? 종편 방송으로는 이례적으로 시청률 30%를 넘겨 지상파를 압도한 ‘역대급’ 프로그램은 무력감으로 시달리던 그 무렵의 나와 가족에게, 어쩌면 실의에 잠긴 국민 대다수에게, 그러니까 우리 모두에게 거의 유일한 통풍구였습니다. 왜 그 프로그램이 그처럼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던 것일까요, 도대체? 그 프로그램의 좋은 점이 무엇이었기에 그다지도?

무엇보다 참여 가수들의 노래 실력이 우수해 감탄을 자아냈습니다. 실력이 없으면 될 일도 안 되잖아요. 무대에 오른 가수들의 노래 실력은 판정단석에 앉은 레전드급 가수(남진, 설운도, 진성, 노사연, 주현미, 장윤정)의 ‘리즈 시절’을 웃도는 것이었습니다. 잘 알려진 히트곡을 부르는데도 감성과 호소력이 오리지널 가수 못지않더라니까요. 마스터들도 후배들의 수월성을 흔쾌히 인정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새로운 감성으로 들려주는 트롯의 매력은 중장년층을 넘어서 젊은 세대까지 아우르는 것이었어요.

시청자들의 마음을 훔친 가수들의 면면을 살펴봅니다. 결선(7명)에 오른 가수들은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지만 어쩔 수 없이 그중에서 진, 선, 미를 정할 수밖에요. 임영웅은 타고난 목소리의 질이 발군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임영웅의 우승을 예상했을 것이에요. 낭랑하고 강한 음색이면서도 애수가 섞여 호소력이 짙었습니다. 영탁은 능수능란한 전형적인 트로트 창법이면서도 흥이 돋보였고요. 이찬원은 목소리에 힘이 있으면서도 외모에 걸맞은 순수함으로 어필했습니다.

‘미스터트롯’ 프로그램의 탁월함은 무엇보다 출연자들이 보여준 발군의 노래 실력과 예능감에 힘입은 바 크지만, 오늘의 성과를 일굼에 큰 몫을 했을 개개인의 비하인드 스토리(가족사) 또한 큰 관심을 모았습니다. 어머니가 집을 나가 할아버지 손에서 자란 정동원을 비롯해 미장원을 운영하는 홀어머니와 사는 임영웅, 막창집 아들 ‘찬또배기’ 이찬원, 아들의 건강을 염려하며 법당을 차린 어머니를 둔 영탁, 트롯 가수로 첫 앨범을 내기 직전 돌아가신 아버지를 그리워 하는 장민호 등등.

혼자 또는 그룹으로 보여준 팀워크도 눈에 삼삼합니다. 이를테면 예비 중학생인 ‘찐막내’ 정동원과 44세 최고령인 ‘신사의 품격’ 장민호의 조합 같은. 둘의 관계는 ‘아버지 같은 삼촌-아들 같은 조카’에 다름 아니었어요. 1:1 준결승 무대에서 장민호는 티 나지 않게 배경화음으로 물러나며 어린 조카 정동원을 메인 보컬로 알뜰살뜰 챙기더군요. 퍼포먼스가 끝난 후 뛰어오른 정동원을 가슴에 안고 무대를 떠나는 둘의 모습은 시청자들의 눈시울을 자극하는 가장 멋진 장면이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트롯맨 외 성악가 출신의 트바로티 김호중은 전심전력으로 노래를 불러 마음속 깊은 곳을 건드렸지요. 현역 해군(당시)인 김희재의 목소리도 수줍은 듯 흥이 넘쳤고요. 김수찬, 신인선, 류지광, 황윤성, 김경민, 나태주, 강태관, 노지훈, 남승민도 거론하고 싶습니다. 레전드 판정단의 격한 공감과 MC 김성주의 진정성 있는 진행도 근래 보기 드문 조화를 이루었지요. 이들을 포함해 이 칼럼에서 미처 언급하지 못한 참여자 모두가 승자였습니다. 근데 진정한 수혜자는 따로 있었다니까요.  프로그램을 접한 시청자, 그러니까 우리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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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김창식

경복고, 한국외국어대학 독어과 졸업.수필가, 문화평론가.
<한국산문> <시에> <시에티카> <문학청춘> 심사위원.
흑구문학상, 조경희 수필문학상, 한국수필작가회 문학상 수상.
수필집 <안경점의 그레트헨> <문영음文映音을 사랑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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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만의 만년필

2020.05.12

엄지를 올리며 “토마스 만은 최고야.”하는 어떤 분의 이 말 한마디에 저는 아주 오래된 기억을 뒤적여야 했습니다. 으스스한 제목 때문에 수십 년 전 공포소설로 착각하여 잡자마자 내려놓았던 <마(魔)의 산(山)>은 어렵고 지루한 책이었습니다. 뭐든 따라 하고 싶은 분의 말씀이라서 저도 토마스 만의 책을 읽고 엄지를 척하고 올리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토마스 만의 만년필’ 역시 꼭 풀어야 하는 수수께끼였습니다.

한동안 토마스 만을 열심히 조사했습니다. 정말 운 좋게도 만년필을 들고 있는 사진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사진은 1939년에 촬영된 것이었습니다. 토마스 만은 의자에 앉아서 안경을 쓰고 입에 담배를 문 채 자기가 지은 책 몇 권을 무릎에 올리고, 오른손으로 만년필을, 왼손으론 책의 겉장을 잡고 속지에 서명하고 있었습니다. 흑백사진이고 만년필은 작게 보이지만, 모델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선명했습니다. 저작권이 있는 유료 사진이라 사진을 사용할 수 없는 것이 안타깝지만, 다행히 이것과 같은 만년필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어 며칠 뒤 사진을 찍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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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마스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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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필은 은회색 줄무늬가 사선으로 들어간 미국 워터맨사(社)의 잉크 뷰로 1930년대 아르데코 형식의 전형적인 아름다운 것이었습니다.토마스 만이 1938년 미국으로 이주해 2년간 프린스턴 대학의 객원 교수로 지낼 때 구입한 것같습니다. 1930년대 후반 만년필의 종가(宗家) 워터맨은 파커와 셰퍼에 밀리고 있었고, 당시 가장 인기 있던 만년필은 파커의 버큐메틱이었습니다. 때문에 생산 기간과 숫자도 적어 지금 남아 있는 것은 파커의 버큐메틱보다 훨씬 적습니다. 토마스 만은 왜 저 만년필에 끌렸던 것일까요? 이제 그의 책을 읽어야 할 때입니다.

워터맨 잉크 뷰(Waterman Ink View silver ray 1935~1940)

이번엔 예전과 달리 만반의 준비를 하였습니다. 두툼한 노트 한 권과 만년필 몇 자루를 준비하였습니다. 지루해지면 필사(筆寫)를 하여 그 고비를 넘길 요량으로 말입니다. 앞부분은 별로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1권이 끝나고 2권에서 새로운 인물 나프타가 등장하자 책은 점점 지루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세템브리니와 나프타는 만나면 논쟁을 했는데 상당히 지루했습니다. 고비가 마침내 온 것이었습니다. 저는 비장의 카드인 만년필을 잡았고, 어렵거나 지루한 부분은 필사를 했습니다. 고비가 지나니 책은 술술 잘 읽히기 시작했습니다. 책을 다 읽는 데는 10일 정도 걸렸습니다. 70페이지 정도 필사를 하느라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걸렸습니다. 5월 황금연휴 내내 열심히 <마의 산>을 읽었습니다. 시간은 아주 빨리 갔습니다.책을 다 읽고 나니 토마스 만이 은회색 워터맨 만년필을 선택한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반갑게 만년필이라는 단어가  한 번 언급되었지만 구체적인 묘사가 전혀 없어 이것이 힌트가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책에서 드러나는 작가의 취향입니다.

아래는 책에서 표현된 주인공의 소지품과 주요 인물에 나타난 컬러입니다.

1. 손목에는 백금으로 된 사슬 모양의 팔찌를 찼고(한스 카스토르프의 팔찌)
2. 그의 눈은 청회색이거나 회청색이어서(히페의 눈동자)
3. 그것은 은으로 도금한 연필로서...(히페의 연필)
4. 먼 산처럼 회청색이나 청회색을 띠는 눈(쇼샤의 눈동자)
5. 은제 연필을(쇼샤의 연필)

<마의 산>에 등장하는 인물 소개를 하면 한스 카스토르프는 주인공으로 24세의 청년입니다. 히페는 한스 카스토르프가 13세 때 다니던 학교에서 호감을 가졌던 학생이고, 히페를 닮은 쇼샤는 한스 카스토르프가 요양원에서 사랑에 빠지는 러시아 여성입니다.

제시된 5개의 표현에서 느껴지는 것이 있나요? 한스 카스토로프. 할아버지와의 추억에서도 그가 좋아하는 1650년에 만들어진 세례반(洗禮盤)이 등장하는데 이 역시 은(銀)으로 만들어진 것이었습니다. 이 오래된 세례반은 극 전개상 매우 중요한 물건입니다. 정리하면 모두 은색 계열입니다. 취향은 소지품에서 읽을 수 있고 거꾸로 소지품으로 취향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진상의 만년필이 책 어디에 슬쩍 들어가 자리를 잡으면 이상할까요? 저는 하나도 이상할 것 같지 않습니다. 만년필의 수수께끼는 풀렸습니다. 하지만 엄지 척은 아직입니다. “토마스 만의 <마의 산>은 힘들었습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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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박종진

1970년 서울 출생. 만년필연구소 소장. ‘서울 펜쇼’ 운영위원장.
저서: ‘만년필입니다’, ‘만년필 탐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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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싶은 정필례 선생님

2020.05.11

초등학교=정필례, 우문자, 승◯◯, 심희택-이태수, 유영팔, 전병선. 중학교=박영희, 박영희, 노재찬. 고등학교=박종렬, 박흥서, 홍순태. 이상 열두 분이 나의 담임 선생님입니다. 이름만 세면 열세 분이지만, 초등학교 4학년 1학기와 2학기 담임이 다르고, 중학교 1, 2학년 때는 같은 분이 계속 담임을 하셔서 열두 학년에 열두 분입니다.

이 중 중학교와 고등학교 때 선생님은 각각 한 분씩 돌아가셨습니다. 초등학교 선생님들은 아마도 거의 다 고령으로 돌아가시지 않았나 싶습니다. 대학의 우리 학과 은사 다섯 분 중에서는 최근 한 분이 또 돌아가셔 이제 한 분만 계십니다.

초등 3학년 담임은 3학년으로 올라간 지 얼마 안 돼 돌아가시는 바람에 유일하게 이름이 생각나지 않습니다. 출산 후 곧 돌아가신 것 같은데, 날계란을 먹어 잘못됐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무슨 근거가 있는지 모르겠으나 어른들이 그렇게 말하는 걸 들었습니다.  

선생님이 출근하지 못할 때, 임시 담임교사가 급장인 나에게 문병을 가라고 해서 학교 앞 선생님 집(아마 하숙이었던 듯)에 찾아간 일이 있습니다. 산후조리 기간이었겠지요. 먼발치에서 보니 선생님이 거울 앞에서 머리를 빗으며 골똘히 화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나무 뒤에 숨어 지켜보는 동안 그 모습이 너무도 낯설고 이상하고 무서워서 그냥 되돌아오고 말았습니다. 임시 담임교사가 가르쳐주신 인사말을 수없이 외우고 갔는데도.

나는 그때 몹시 수줍었습니다. 1학년 정필례 선생님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그 선생님은 광대뼈가 약간 나왔지만 얼굴이 시원한 미인이었고, 학교 행사 때 풍금을 도맡아 치시던 분입니다. 1학년 마치고 2학년으로 올라갈 무렵, 선생님은 2학년 담임으로 정해진 우문자 선생님께 내 이야기를 했습니다. 마침 근처에 있던 내가 눈에 띄었던 모양입니다. 정 선생님이 “애가 수가 좁아.” 그러자 그분보다 젊은 우 선생님(당시 계룡초등학교 최고 미인)이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이더군요.

나는 그때 수가 좁다는 게 무슨 말인지 몰랐습니다. 다만 그 말을 할 때 사랑스럽게 바라보던 선생님의 눈길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정작 2학년에 올라가서는 수줍기는커녕 친구들과 장난(주로 교실에서 안고 뒤지기)을 너무 많이 쳐 내 인생에 전무후무하게도 ‘주의가 산만하다’는 나쁜 기록을 통지표에 남겼습니다. 가만히 생각하면 우 선생님은 날 싫어했던 거 같습니다. 얼굴이 예뻐서 매사 남자들의 눈길만 의식할 뿐 장래가 촉망되는 학생을 보는 눈이 없었던 탓이라고 주장하는 바입니다.

4학년 때가 최악이었습니다. 아버지와 초등학교 동기(그러니까 두 분 다 나의 초등학교 선배)인 선생님은 왕년에 라이벌이었던 친구의 아들을 엄격하게 대하는 걸 넘어 매일 못살게 닦달했습니다. 친구의 아들이니 더 잘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이었는지 몰라도 친구한테 당한 걸 그 아들에게 갚는 게 아닌가 싶을 만큼 나는 선생님이 이상해 보였고, 학교가 지옥같이 가기 싫었습니다.

무슨 일이든 나를 본보기로 삼아 벌주고, 싫어하는 산수 문제를 풀지 못하면 그것도 모른다고 혼내고, 신체검사할 때 교수 아들이 이게 뭐냐, 목간도 안 하고 사냐며 등짝을 때리고(다른 애들은 더 더러운데!) 그러니 학교 다닐 맘이 나겠습니까? 주눅이 들어 시키는 심부름도 제대로 못할 지경이었습니다. 선생님이 여름방학 중 작두질을 하다가 왼손 엄지가 잘려 나가는 바람에 2학기에 담임이 바뀐 게 좋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새로운 담임은 이상한 분이었습니다. 걸핏하면 옷 벗는 벌을 주고, 몽둥이로 성기나 둔부를 건드리면서 놀렸습니다. 아직 어리다 해도 남녀공학인 교실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요즘 같으면 즉각 교체되거나 쫓겨났을 겁니다. 그분이 다른 선생님과 함께 우리 동네까지 왔다가 눈치 없고 숙맥인 내가 집에 들어가시자는 말을 하지 않자 그대로 가버린 일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한테 혼이 났는데, 그 점은 두고두고 죄송합니다. 저 멀리 신작로길 산모퉁이를 걸어가던 선생님의 담배 연기가 지금도 생각납니다.

누구에게나 초등학교 1학년 담임교사가 중요합니다. 정필례 선생님 이야기로 돌아갑니다. 1학년이 끝났을 때 서울에서 고교 교사(교수가 된 건 몇 년 뒤)를 하고 있던 아버지가 선생님 드리라며 당신의 저서를 보내왔습니다. 노란 표지의 책 제목은 ‘알기 쉬운 생물 실험’. 지금 생각하면 시골 초등학교 교사에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책이었습니다.

하여간 그 책을 드렸더니 잠깐 기다리라고 한 뒤 신문지에 싼 것을 답례로 주셨습니다. 인사를 하며 뒷걸음질하다가 뒤로 넘어질 뻔했는데, 뜀박질해 집으로 가는 동안 궁금해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무도 없는 산 고갯길에서 호호 손을 불며 풀어보니 공책과 함께 연필 여러 자루가 들어 있었습니다. “공부 열심히 해라” 하면서 주신 그 선물에 나는 뛸 듯이 기뻤습니다. 선물이라곤 받아본 일이 없는 산골 아이에게 그 학용품은 함부로 쓸 수 없는 보물과도 같았습니다.

그 뒤 수도 없이 많은 필기구를 만지고 지금은 너무도 헤프게 여러 가지를 쓰고 있지만, 정필례 선생님의 연필만큼 좋고 귀한 게 없는 것 같습니다. 살아 계시다면 아흔쯤 되셨겠지요. 졸업 후 소식을 전혀 모르지만 늘 건강하고 평안하시기를 빕니다. 며칠 후면 다시 스승의 날입니다. 내 가족과 주변엔 선생님들이 많은데 나는 남을 가르쳐본 적 없이 가르침만 받고 사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지난 일을 돌이켜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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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임철순(任喆淳)

한국일보 편집국장 주필, 이투데이 이사 겸 주필 역임. 현재 한국언론문화포럼 회장. 한국기자상, 삼성언론상, 위암 장지연상 등 수상. 저서 ‘노래도 늙는구나’, ‘효자손으로도 때리지 말라’, ‘손들지 않는 기자들’, ‘내가 지키는 글쓰기 원칙’(공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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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원수, 적이 도우미 되는 세상

2020.05.08

-인간은 참 이상한 동물이다. 휴대폰에 찍힌 전화번호가 처음 보는 번호면 대부분 받지 않는다.
-집에 사람이 찾아와도 인터폰으로 슬쩍 보고 잡상인이거나 모르는 사람이면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처음 보는 사람한테 돈을 꿔 주는 사람도 없다.
-그런데 우리는 대부분 처음 보는 사람과 사랑에 빠진다.

‘막시무스’라는 필명으로 이근영이 쓴 <지구에서 인간으로 유쾌하게 사는 법>이란 책에 나오는 ‘농담사전’ 중 ‘사랑’이라는 대목입니다. 그는 유명 인사들의 인생을 에피소드 형식으로 펼치면서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과 철학을 압축적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특히 농담사전은 보통사람의 심리와 상식을 뒤엎는 반전(反轉) 논리가 미묘하고 특이합니다. 히죽 웃음이 나오면서도 수긍할 수밖에 없는 마력이 있습니다.

농담시리즈에서 ‘적’은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적(敵)과는 판이한 인생 멘토입니다.
-적은 당신보다 당신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는 사람이다. 적은 늘 당신의 단점과 허점을 생각한다. 적이 보는 당신의 모습은 당신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정확하다.(중략)
-그래서 적은 당신의 인생 도우미다. 만약 당신에게 적이 없다면 당신의 인생은 지금보다 개선될 여지가 거의 없다.

사랑하는 사람끼리 원수가 되고, 철천지원수인 적과도 동침하는 인간세태의 변화무쌍함이 마음먹기에 달렸음을 되새기게 하는 심상의 아이러니입니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터득한 해탈의 경지랄까. 아니면 잔망스럽고 간특한 인간에 대한 심리분석이랄까….
같은 사안을 두고도 생각의 틀(frame)을 바꾸면 삼라만상이 달라 보이는 요지경 현상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남미의 브라질에는 원시시대부터 이어오는 결혼자격시험이 있다고 합니다.
브라질의 결혼자격시험은 엄격하고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우선 결혼하려는 남녀는 열흘간 정부가 설립한 전문기관에서 합숙하며 하루 6~7시간씩 결혼생활과 부부관계, 일반 위생과 자녀교육 등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이 과정이 끝났다고 바로 결혼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교육 과정을 끝내고 결혼자격시험에 합격해야 비로소 자격증을 받아 혼례를 치를 수 있다고 합니다.

합격하지 못한 사람도 결혼이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하루 이틀 재교육을 받은 후 다시 자격시험에 응할 수 있습니다. 다만 여기서도 떨어져 자격증을 받지 못한 채 결혼하면 아무런 법률적인 보장을 받을 수 없습니다. 자녀 입학이 제한되고, 사회적 지위를 공인받지 못하며, 재산상속 문제에 있어서도 부부로서의 인정을 받지 못한다고 합니다. 1가구 1자녀 정책을 엄격히 적용하던 중국에서 둘째 아이부터는 호적에 올리지도 못했던 헤이하이즈(黑孩子)처럼 아이들은 공중에 뜨고 맙니다.

이러한 풍습은 과거 부족사회 시절 통나무를 짊어지고 옮기거나 채찍질을 견뎌 내는 등 부족마다 다른 테스트 관습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남성의 노동력과 종족보존 능력에 방점이 주어졌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평균연령이 높아지고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육체적 테스트가 아닌 시험으로 바뀌었습니다.
꼭 자격시험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오늘날 브라질은 세계에서 이혼율이 가장 낮은 나라 중의 하나라고 합니다. 우리의 상식과는 엄청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부처님 오신 날을 소소(簫簫)히 보내고 나서 새삼 ‘사랑’과 ‘적’을 떠올린 것은 불교 개혁을 주창한 휴암(休庵 1941~1997) 스님의 법문이 떠올라서입니다. 스님이 입적한 그해 봄 경북 영천 은해사(恩海寺) 말사인 기기암(寄寄庵)에서 주지스님 휴암의 법문을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다 제쳐두고 기억에 남는 건 기기암이 기신사바 기심정토(寄身娑婆 寄心凈土 : 몸은 속세에 있지만 마음은 극락에 있다)에서 유래했다는 설명입니다. 허허바다에서 마음 둘 곳을 알려주는 나침반이랄까….

계절의 여왕, 가정의 달을 맞은 이 봄에 결혼을 연애의 무덤으로 만들지 않는 사랑, 적도 동지로 받아들이는 아량과 포용이 충만한 5월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허황한 송춘가(頌春歌)를 읊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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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묵

경북고,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동아일보 기자, 대구방송 이사로 24년간 언론계종사.  ㈜청구상무, 서울시 사회복지협의회 사무총장, ㈜화진 전무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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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의 추억

2020.05.07

그날도 한탄강 물줄기는 하늘빛을 받아 맑고 푸르게 흐르고 있었습니다. 보리가 미처 여물기 전, 그래서 보리밭도 파랗게 물결치고 있었습니다. 강물이 내려다보이는 둑길을 터덜터덜 걷고 있을 때였습니다. 어디선가 윤용하의 ‘보리밭’이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이런 곳에서 저 노래를 듣게 되다니? 나도 몰래 양 볼에서 주르르 눈물이 흘렀습니다. 군복을 입고 부대로 돌아가는 병사의 꼴이라니…

처음 받아본 유격훈련은 그야말로 도깨비굴에 뛰어든 거나 다름없었습니다. 외줄다리를 배치기로 밀어 건너기, 세줄다리 건너기, 밧줄을 당겨 급경사의 나무판 오르기… 물론 옳게 해낸 종목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때마다 엎드려뻗쳤다가 쪼그려 뛰었다가 무릎을 꺾고 오리걸음 하다가 원산폭격(정수리와 모둠발을 땅에 대고 버티기)까지… 사이사이 유격체조인지 도깨비춤인지도 빼놓지 않았습니다.

종일 빨간 모자 유격대 조교들에게 휘둘리다 보니 넋이 빠져 힘든 줄도 몰랐습니다. 훈련이 끝났다고, 알아서 부대로 돌아가라고, 그 소리에 비로소 물먹은 솜처럼 나사 풀린 기계처럼 퍼져 앉고 말았습니다. 오리 정도의 귀대 발걸음도 천근만근이었습니다. 흐르는 강물, 출렁이는 보리 이삭을 굽어보며 절로 처연해지던 심사에 ‘보리밭’ 선율이 돌멩이처럼 날아든 것이었습니다.

이듬해 오월은 참으로 눈부셨습니다. 위병소로부터 “방 일병, 면회!” 하는 전화를 받고는 용수철처럼 튀어 일어나 내달렸습니다. ‘보나 마나 작은형이겠지,’ 꽁보리밥 점심에 쓰잘데없는 사역은 면하게 됐다고 쾌재를 부르면서. 한 해 먼저 입대한 형은 이웃한 미군 부대에서 카투사(미 육군에 파견된 한국군) 병으로 복무 중이었습니다. 매일 빵과 버터, 고기와 과일로 포식한다는 형은 도로 공사에 나선 국군 병사들을 노무자인 줄로만 알았다며 동생의 졸병 생활을 측은해하던 터였습니다.

뜻밖에 부대 앞에서 기다리는 이는 함지박만 한 음식 그릇을 이고 계신 어머니였습니다. 저 무거운 것을 이고 이 먼 시골 부대까지… 한동안 멍해져 인사도 제대로 차리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형에게 먼저 기별해 안내를 받으셨던 모양입니다.

형과 내가 몇 번이나 손을 내밀었지만 어머니는 “군복에 음식 그릇이라니”, 한사코 마다하시며 그 무거운 것을 머리에 인 채 보리밭 사잇길을 걸었습니다. 한탄강이 내려다보이는 둑방 옆 나무 그늘에서 세 모자가 나란히 앉아 점심을 먹었습니다. 철없던 어린 시절 가슴속에 겹겹이 쌓아두었던 빙하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녹아내리고 있었습니다.

“애비 없는 후레자식 소리를 들을 테냐?” 홀로 다섯 남매를 키우시며 언제나 호랑이같이 무섭기만 했던 어머니. 생계 꾸리기에 바쁜 탓에 이 아들을 찾아주신 건 딱 세 번이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웅변대회 대표로 뽑혔다가 발목이 접질려 대회는 못 나가고 도리어 담임선생님이 사 주시는 위로의 설렁탕을 얻어먹었을 때, 그 얘기를 전해 들으며 아무 말씀도 않으시더니 이튿날 와이셔츠 한 장을 사 들고 처음 아들 학교를 찾아 담임선생님께 감사의 인사를 올렸습니다. 논산 훈련소 얼어붙은 땅바닥을 박박 기어 6주간의 첫 훈련을 끝내고 부산에서 막 2차 교육을 받게 되었을 때 어머니는 이번처럼 음식을 한 보따리 싸 들고 찾아주셨습니다.

“내가 하늘을 날고 싶었는데…” 이따금 장탄식에 놀라곤 했지만 정말 젊은 시절 꿈과는 너무도 다르게 살아야 했던 어머니였습니다. 동란 와중에 남편을 잃고 어린 자식들을 홀로 떠안은 어머니, 그 고통과 슬픔을 어찌 짐작이나 할 수 있었겠습니까. 날개옷을 잃어 하늘나라에 오르지 못했다는 선녀처럼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붙들려 꿈은 천상에, 몸은 궂은 땅에 머물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오월이 되면 한탄강 둑길에서 들었던 보리밭 선율이 떠오릅니다. 그 둑길 옆으로 파랗게 물결치는 보리밭 사이를 하얀 모시 치마저고리를 입고 걸으시던 어머니 모습도 떠오릅니다.

오월을 가정의 달이라고 하지요. 어린이날, 어버이날이 함께 모인 달입니다. 요즘엔 도리어 가족 해체를 걱정하는 소리가 높기도 하지만 이래저래 가족을 많이 생각하게 하는 달입니다.

어머니가 떠나신 지도 어느덧 15년. 형제자매들의 건강이 예전 같지 않아 모임도 점점 뜸해집니다. 사는 곳도 점점 멀어져만 갑니다. 어머니가 살아계실 때엔 그 품으로 모여 들곤 했었는데 언제부턴가 오히려 자식들을 쫓아가며 살고 있습니다. 모든 게 예전과는 사뭇 다른 모습입니다. 살아계실 때엔 의식하지도 못했었는데 어머니의 큰 울타리가 새삼 그리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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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방석순

스포츠서울 편집국 부국장, 경영기획실장, 2002월드컵조직위원회 홍보실장 역임. 올림픽, 월드컵축구 등 국제경기 현장 취재. 스포츠와 미디어, 체육청소년 문제가 주관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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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생연분 vs 웬수

2020.05.06

“노 기자, 남편이랑 생년월일이 같은 거 맞지요? 참, 그새 나 몰래 갈라선 건 아니겠지요?”
“전 재산이 집 한 채라 갈라설 수가 없어요. 그랬다간 누군가는 살 곳조차 없는 걸요. 생년월일이 같은 건 변함없고요. 하하하~”

며칠 전 퇴근길, 마라톤 동호회 대장과의 통화 내용입니다. LG전자가 ‘부부의 날’을 기념해 진행하는 ‘천생연분 이벤트’에 꼭 참여하라는 전화였습니다. 생년월일이 같은 부부를 위한 이벤트입니다. 로또는커녕 ‘떡볶이 내기’ 사다리 타기에서조차 늘 밀리는 ‘꽝손’인지라 “에이, 당첨될 일이 없습니다”라고 웃으며 끊었습니다.

그런데 이벤트 내용을 찬찬히 살펴보니 선물에 욕심이 생깁니다. 늘어진 피부를 올려주고 주름까지 없애준다는, 그 유명한 ‘ㅍㄹㅇ’ 미용기기를 준다고 합니다. 선착순으로 스무 쌍을 뽑는다니 기대도 좀 됩니다. 우리나라에 생년월일이 같은 부부가 그리 많을 것 같진 않기 때문입니다.

26년 전 경향신문에 입사해 같은 날 태어난 동기를 만났습니다. 생김새, 성격, 취미 등 통하는 것 하나 없는데, 놀라운 인연이다 싶어 붙어 다녔지요. ‘한 쌍의 바퀴벌레’, ‘못난이 쌍둥이’라 부르며 놀리는 선배들도 많았습니다.

결혼 24년 차인 지금은 어떻냐고요? 티격태격이 현실입니다. 긴 세월, 참 많은 일을 겪으며 함께 웃고 울었는데, 툭하면 감정이 상해 싸우고 있습니다. 친구들과 만난 자리에선 자연스럽게 남편 흉을 보고 비난하기 일쑤입니다. 그 남자도 마찬가지겠지요. 식성과 생활습관이 유사하면 생김새는 물론 감정, 심지어 병까지도 닮는다니 말입니다.

요즘엔 ‘부부싸움의 도(道)’라는 우스개가 허투루 들리지 않습니다. “상대방 특기와 주먹의 강도 등을 미리 아는 것이니 이를 지(智)라 한다. 비록 상대방이 아픈 표정을 짓는다고 해도 이를 과감히 무시하는 것이니 이를 강(强)이라 한다. 때려서 피가 나는 곳은 두 번 때리지 않으니 이를 선(善)이라 한다. 싸움 도중에도 두발이나 의상이 흐트러지면 바로 고치는 것이니 이를 미(美)라 한다. 옆집에서 살림을 부수며 싸우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것이니 이를 인(仁)이라 한다….”

돌아누우면 남남인 ‘부부’. 이토록 허망한 사이가 또 있을까요. 하지만 다시 돌아누워 얼굴을 마주하면 또다시 ‘부부’가 된다지요. 그런데 20여 년 살아보니 같이 잠자리에 드는 것도 힘이 듭니다. 코골이, 잠꼬대, 침실 온도, 몸부림, 화장실 가기 등등 함께하기엔 불편한 점이 너무도 많습니다.

살을 맞대고 살 때도 못 했던 ‘사랑한다’는 말은 점점 더 멀어지는 듯싶습니다. ‘웬수 같은 정’만 쌓이고 있습니다. 멋진 그대, 아름다운 그녀는 물 건너간 지 오래입니다. <탈무드>의 “부부가 진정으로 서로 사랑하고 있으면, 칼날 폭만큼의 침대에서도 잠잘 수 있지만, 서로 반목하기 시작하면, 십 미터나 폭이 넓은 침대로도 너무 좁아진다”라는 문장에 무릎을 탁 치게 됩니다.

가장 편하면서도 가장 불편한 존재 남편. 시인 문정희와 같은 마음으로 그의 시 ‘남편’을 읊어봅니다.

“아버지도 아니고 오빠도 아닌/아버지와 오빠 사이의 촌수쯤 되는 남자/내게 잠 못 이루는 연애가 생기면/제일 먼저 의논하고 물어보고 싶다가도/아차, 다 되어도 이것만은 안 되지 하고/돌아 누워버리는/세상에서 제일 가깝고 제일 먼 남자/이 무슨 웬수인가 싶을 때도 있지만/지구를 다 돌아 다녀도/내가 낳은 새끼들을 제일 사랑하는 남자는/이 남자일 것 같아/다시금 오늘도 저녁을 짓는다/그러고 보니 밥을 나와 함께/가장 많이 먹은 남자/나에게 전쟁을 가장 많이 가르쳐 준 남자”

부부간의 사랑을 ‘다반향초(茶半香初)’라고 하지요. 차를 반쯤 마셨는데도 향기는 처음처럼 여전하다는 것으로 ‘변함없는 사랑’을 뜻하는 말입니다. 남편에 대한 미운 마음을 옆으로 밀어두고 연애 시절을 떠올려 봅니다. 사랑 때문에 가슴앓이를 했고, “당신이 있어 행복하다”라는 고백을 백 번쯤 했지요. 지금의 헝클어진 감정을 잘 풀어야겠습니다. 싸우더라도 칼로 물을 베듯 감정을 말끔히 돌려놓을 여유도 가져야겠습니다.

금실상화(琴瑟相和·거문고와 비파가 서로 조화를 이룸)까진 아니더라도 함께 밥상을 옮길 수 있는 만큼의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야겠습니다. 잘난 척하지 않고 겸손한 마음으로 상대방을 존중하며 한 발, 한 발 생의 마지막까지 걸어가야겠습니다.

“긴 상이 있다/ 한 아름에 잡히지 않아 같이 들어야 한다/ 좁은 문이 나타나면/ 한 사람은 등을 앞으로 하고 걸어야 한다/ 뒤로 걷는 사람은 앞으로 걷는 사람을 읽으며/ 걸음을 옮겨야 한다/ 잠시 허리를 펴거나 굽힐 때/ 서로 높이를 조절해야 한다/ 다 온 것 같다고/ 먼저 탕 하고 상을 내려놓아서도 안 된다/ 걸음의 속도도 맞추어야 한다/ 한 발/ 또 한 발.” (함민복 ‘부부’)

“둘(2)이 하나(1) 되어 행복한 가정을 만들자”는 부부의 날이 21일입니다. 청소년들이 밸런타인데이나 화이트데이에 사랑을 일구는 것처럼 이날이 부부의 사랑을 확인하는 날로 자리매김했으면 좋겠습니다. 돌아누워 남남이 된 부부들이 다시 돌아누워 환하게 웃는 날이 된다면 참 좋겠습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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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아

경향신문 교열기자·사보편집장, 서울연구원(옛 시정개발연구원) 출판담당 연구원을 거쳐 현재 이투데이 부장대우 교열팀장. 우리 어문 칼럼인‘라온 우리말 터’연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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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영호에 대한 비난, 지나치다

2020.05.04

나는 지난 3월 21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미래통합당이 탈북 외교관인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대사관 공사를 비례후보가 아니라 지역구 후보로 공천한 것에 문제가 있다고 이 칼럼에서 지적한 바가 있다. 그가 보수진영의 텃밭이라고 할 수 있는 서울 강남 갑구에서 당선된 지금에도 나의 생각에는 변함이 없음을 먼저 말하고 싶다.

나는 그에게 신변안전에 문제가 없다면 지역구 국회의원이 아니라 장관을 시켜도 무방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경찰이 태 당선자를 위한 경호 인력을 늘리고 그중에 무장경호원을 붙여 최고 수준의 경호를 제공키로 한 것은 당연한 절차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입장에서 만고의 배신자인 그는 자신의 출마를 “김정은과 싸우기 위한 것”이라고 했었다. 그가 남한의 국회의원으로 북한 체제를 비판하는 모습은 김정은에겐 눈엣가시임에 틀림이 없다.

선거일인 4월15일은 북한에서 태양절(太陽節)로 기념하는 김일성 주석의 생일이다. 북한 왕조체제의 상징일인 이날 김정은은 금수산 태양궁전에 참배하지 않아 유고 소동의 발단이 됐고, 태영호는 국회의원이 되어 자유민주주의를 북한 주민들에게 알리겠다고 한 약속을 지켰다.

외신들은 한 때 공산주의자였던 그가 한국의 최고 부자동네에서 국회의원이 되었다고 보도했다.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는 북한에서 부자는 인민의 적이다. 남한이 공산화되면 부자들이 가장 큰 피해자가 된다.

북한의 그런 체제가 싫어 목숨을 걸고 자유대한으로 망명한 사람을 한국의 부자들이 찍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한 것이다. 강남갑구 유권자의 45%가 태 후보를 찍지 않은 것은 우리 사회의 의견의 다양성을 말해주는 것이지만, 그의 남다른 경력으로 인해 주민과의 소통이 불편해질 지도 모를 우려를 나타낸 것일 수도 있다.

당선 이후 인터넷 상에 태 당선자에 대한 공격이 가열되고 있다. 여당인 민주당과 친여세력이 주축이 된 공격자들은 그가 망명자라는 사실은 도외시하고, 과거 북한체제에 충성한 전력만을 문제 삼아, 그를 ‘간첩’ 또는 ‘이중간첩’이라며 낙인찍기 바쁘다.

친여 세력만이 아니라 극우세력도 여기에 가세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하기야 그를 공천한 미래통합당 안에서조차 그의 지역구 공천에 대해 “나라 망신”이며, “그는 남한에 뿌리가 없는 사람”이라고 말한 사람도 있었다.

최근 김정은 유고 소동의 와중에서 태 당선자가 김정은의 건강상태와 관련, ‘거동 불능’이라고 한 추측과, 미래한국당의 탈북민 비례의원인 지성호 당선자의 ‘99% 사망설’이 빗나가자 기다렸다는 듯이 공격은 한층 극렬해지고 있다.

이들은 태 당선자를 당선시킨 강남지역을 조롱하듯이 역삼동을 ‘력삼동’, 래미안 아파트를 “내래미안” 등 이북식으로 호칭하는가 하면, 강남구에 탈북자 새터민 아파트를 의무비율로 법제화해달라는 내용의 청와대 국민청원을 제기하기도 했다.

김정은 유고 소동에 대한 두 탈북민 의원 당선자의 발언은 그들의 정보능력에 한계를 드러낸 것으로, 앞으로 그들의 의정활동 방향이 북한 정세에 대한 단편적인 논평이 아니라 깊이 있는 연구를 토대로 한 정책제안이어야 한다는 교훈을 주었다.

또한 여야는 이들을 정쟁의 도구로 이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도 담겨 있다고 본다. 특히 여당인 민주당은 북한의 눈치를 보느라고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소외계층인 ‘탈북자 국회의원’은 엄두도 낼 수 없는 처지임을 깨닫고, 이들이 제시할 정책대안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태영호 당선자에 대한 지금의 비판적인 사회적인 분위기는 다시금 그의 신변안전에 대한 우려를 갖게 한다. “태영호가 제거됐다”는 말은 김정은이 듣고 가장 기뻐할 말일 것이다. 북한에 있는 김정은의 ‘기쁨조’는 물론 국내의 ‘태영호 체포조’ 같은 종북세력들의 암약을 경계해야 한다. 일거수일투족이 공개되는 국회의원으로서 그의 신변 안전은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그의 신변안전을 위해 특별히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이 그의 해외 의정활동이다. 국내에서의 테러는 경호의 벽을 뚫기가 쉽지 않을 것이고, 어떤 식으로든 범행의 흔적을 남기기 쉽다. 그 점에서 테러의 장소로 해외가 더 유리할 수 있겠기에 하는 말이다.

북한은 지난 2017년 말레이시아에 4인 암살조를 파견,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김정은의 이복형인 김정남을 독살했고, 그에 앞서 1983년에는 당시 버마(현 미얀마)를 방문 중인 전두환 대통령 일행을 향해 아웅산 묘소 폭탄테러를 자행한 전력이 있다.

나는 태영호 당선자가 주민들과의 관계에서 야기될 수 있는 이질감을 극복하면서 4년 임기를 무사히 마칠 수 있기를 바란다. 아울러 그가 현 정부의 대북 정책이 보다 건설적이고 합리적으로 추진되는 데 기여한 국회의원으로 남을 수 있다면 더욱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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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건

한국일보와 자매지 서울경제신문 편집국의 여러 부에서 기자와 부장을 거친 뒤 서울경제신문 논설위원 및 사장을 끝으로 퇴임했으며 현재는 일요신문 일요칼럼, 논객닷컴 등의 고정필진으로 활동 중입니다. 한남대 교수,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위원 및 감사를 역임했습니다. 필명인 드라이펜(DRY PEN)처럼 사실에 바탕한 글을 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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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에서 ‘마마병’을 다시 보다

2020.05.01

근래 온 나라가, 그리고 온 세계가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이라는 역병(疫病)의 급습으로 크게 당혹해하고 있습니다. 전에 전혀 겪어보지 못한 상황이 갑자기 우리의 생활권을 그저 경악할 정도로 흔들어놓고 말았습니다. 문학 소설이나 전문 의학 서적에서 간접 경험한 ‘전염병’이 우리의 생명과 삶의 터전을 크게 위협하는 현실을 직·간접적으로 체험하고 있습니다. 정녕 놀랍고 무섭기까지 합니다.

‘대형 전염성 질환’ 하면 우선 ‘페스트(Pest)’가 자연스레 떠오릅니다. 기록에 의하면 "5년 만에 유럽 인구의 4분지 1 내지 3분의 1이 이 질병으로 죽음을 맞이했고, 시신들 대부분은 전염병 확산 방지를 위해 불에 태워지거나 구덩이에 한꺼번에 파묻혔다." (<Wie Krankheiten Geschichte Machen>, R.D. Gerste, 2019).

유럽에서는 지금도 대화하던 사람이 가벼운 기침을 하면 “건강하세요[Good health(英) / Gesundheit(獨)]”, “신의 가호가 있기를(Bless you / Sei gesegnet)”, 이라는 인사를 반사적으로 건네곤 합니다. 이는 페스트가 창궐할 당시 환자의 첫 임상 증상이 ‘기침’이었기 때문입니다. 60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난 오늘날까지 그 ‘역사의 상흔(傷痕)’이 남아 있는 것을 보면, 페스트가 얼마나 무섭게 유럽 사회에 창궐했었는지를 짐작케 됩니다. (https://praxistipps.focus.de)

‘질병과 언어’라는 측면에서 돌아보면 우리 생활 언어에도 질병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얼굴이 심하게 얽은 사람을 낮잡아 부를 때 우리는 흔히 ‘곰보’라는 단어를 씁니다. 이는 ‘천연두(天然痘)’, ‘마마(媽媽)’, ‘두창(痘瘡)’, ‘Small pox’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질병의 흔적인데, 여기엔 ‘손님 병’이라는 순수 ‘국산(國産)’ 병명도 있습니다. 참 별난 병명이라 그 어원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필자가 피부과학 전공자로서 ‘한국 탈과 조선 시대 초상화에 나타난 피부질환’에 관심을 갖고 연관 자료를 찾을 즈음 왜, 그리고 어떻게 ‘손님 병’이라는 병명이 생겼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습니다.

그러던 중 《한국인의 의식구조》라는 방대한 저서를 통해 한국인의 감정과 사고방식 등 우리네 생활 속에 스며 있는 고유의 정서와 생활 문화를 파헤친 이규태(李奎泰, 전 조선일보 주필, 1933~2006) 선생의 도움을 받기로 했습니다. 필자는 유선상으로 “천연두, 또는 마마라는 병명을 가진 피부질환의 병명이 어떻게 ‘손님 병’이라는 별칭을 얻게 되었는지 궁금하다”는 질문을 했습니다.

선생의 답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마마병은 강남(중국)에서 도래한 외래 질병으로, 성별(性別)로 볼 때 유일하게 국내 질병 중 유일하게 여성인데 시기심이 아주 강한 게 특징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마마의 한자 표기 ‘媽媽’가 어머니, 할머니 등 여자를 통칭하는 것과도 일맥상통합니다.) 특히 아름다운 여인네의 곱디고운 얼굴을 할퀸 흉한 곰보 자국은 여인에게 평생의 한으로 남았습니다.

그래서 먼 마을에서 역병(疫病)이 돈다고 하면, 우선 크고 작은 모든 행사를 취소했습니다. 특히 젊은 여인네들은 의복도 소박한 것으로 입고, 언행도 조신(操身)하게 하면서 온 가족이, 온 마을이 조용히 지냈습니다. 이렇게 ‘손님을 깍듯이 모신다’고 하여 ‘손님 병’이라는 별칭을 갖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현대판’ 페스트인 ‘COVID-19’와 지금은 전 세계에서 소멸한 마마병을 예방의학적 시각에서 고찰하면 유사하면서도 다른 점이 있습니다. 예컨대 그 옛날 페스트의 경우 사람들 간의 배려 및 ‘예(禮)’의 범주 안에서 수동적인 예방의학적 측면을 보였다면, ‘손님 병’의 경우는 우리 선조들이 지금의 ‘자가 격리’와 ‘사회적 거리 두기(Social distancing)’ 같은 현대의학의 첨단 예방 조치를 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통영 오광대(五廣大)에 등장하는 손님탈에 천연두 자국이 묘사되어 있다

작금에 우리 사회가 보여준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관련 대처 방안과 그 결과는 아마도 우리 역사의 시·공간에서 배어난 우리 고유 DNA의 또 다른 표출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지 아니하고서는 오늘 ‘코로나’를 둘러싸고 우리 사회가 보인 ‘기현상’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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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이성낙

뮌헨의과대 졸업. 프랑크푸르트대 피부과학 교수, 연세대 의대 교수, 아주대 의무부총장 역임.
현재 가천대 명예총장, 전 한국의ㆍ약사평론가회 회장, 전 (사)현대미술관회 회장,
(재)간송미술문화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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