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뷔페에서 글쓰기(1)

2014.07.21


별로 뷔페를 즐기지 않습니다. 왔다갔다 하는 것이 수선스럽고, 집에 돌아와선 꼭 라면을 먹어야 직성이 풀리더라고요. 하지만 내 주장대로 살 수만은 없죠. 문우들과 함께 신촌의 학교 근처에 있는 뷔페에 들렀어요. 13층 스카이 레스토랑이어서 전망이 좋은 데다 점심 특가인지라 저렴하고 그런대로 구색을 갖춰 괜찮았답니다.

뷔페 음식에 빗대어 글쓰기(수필)를 연결해 보았어요. 찰나적인 영감이 내습한 것은 아니고 그냥 평소 해오던 생각을 적은 것이니 그러려니 하세요. 그러니까 대수롭지 않은 착상이자 ‘웃기는(웃기지도 않는)’ 깨달음을 나누고 싶단 말이지요. 2회에 걸쳐 게재합니다.

#1: 거리를 두고 전체를 조망해야  

뷔페식당에 들어서면 무엇을 하나요? 겉옷을 벗어 의자 등받이에 걸치고 영역을 확보합니다. 그다음엔? 쫓기듯 대충 아무 줄에나 끼어들어 'TV 동물 농장'에 나올 법한 훈련된 개처럼 잽싸게 접시를 낚아챈 다음 ‘탑돌이’나 ‘강강술래’를 시작하는 순서입니다. ‘아일랜드(음식을 차려 놓은 섬)’가 몇 개 있고, 무슨 음식이 차려져 있으며, 어떤 줄이 붐비는지 등을 살펴보지 않는단 말이지요. 뷔페 음식이 ‘해치워야 할 그 무엇’은 아닐 텐데요.

글은 또 어떻게 쓰는가요? ‘필(글감)’이 왔다고 무작정 펜을 든다고요? 아니, 그건 옛이야기입니다. 컴퓨터를 켜죠. 근데 그 순간 그 많던 생각들이 눈 녹듯 사라진단 말이죠. 그러면 다음 순서는? 딜리트 앤 리셋(Delete & Reset)입니다. 또 딜리트 앤 리셋. 그런 난감한 상황이 되풀이됩니다. 타임루프에 갇히지 않으려면 대충이나마 어떤 내용을 포함할지 골격을 짜고 글의 순서를 머릿속에 그린 후 시작하는 편이 좋습니다. 그때그때 단상을 적은 메모지를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일필휘지(一筆揮之)’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우리가 무슨 동파(東坡) 소식(蘇軾) 같은 당송팔대가도 아니잖아요.

#2: 뷔페 음식에도 순서와 차례가 있다

뷔페 음식이 물론 고급 한정식이나 격식을 갖춘 코스 요리는 아니지요. 그러나 음식을 먹는 순서는 다를 바 없습니다. 대충이라도 차례를 지켜야 음식끼리 어긋나지 않아 맛을 제대로 즐길 수 있거든요. ‘전채나 샐러드ㅡ>수프나 죽ㅡ> 찬 음식ㅡ>더운 음식ㅡ>가벼운 식사 대용 음식(김치말이 국수 등)ㅡ> 케이크와 과일 같은 후식ㅡ> 커피나 홍차 같은 음료’ 순입니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랍니다. ‘서두ㅡ>발단 및 전개(본문1, 본문2, 본문3, 본문4, 본문5...)ㅡ>전환 및 절정ㅡ>결미’ 순으로 문단(음식 모둠)과 문단(또 다른 음식 모둠)이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변화가 있으며 나름의 질서가 잡혀야 하지요. 그래야 산만하지 않고 단정한 글이 됩니다. '옷'과 '글'은 아무려면 ‘선(線)이 살고 깔끔하게 떨어져야’ 입는 맛, 읽는 맛이 난다니까요.

#3: 한 접시에 산더미처럼 음식을 담지 말라

뷔페에서는 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여유를 가지며 욕심내지 말아야 해요. 음식 어디로 도망가지 않거든요. 부족한 음식은 식당 측에서 계속 채워 놓습니다. 글쓰기에 응용하자면, 한 편의 짧은 글에 생각과 느낌, 산하와 사물, 자연 현상을 한꺼번에 거론하지 말란 말이지요. 산, 숲, 꽃, 시내, 강, 바다, 하늘, 구름을 모두 책임지려고 고심하지 말아요. 잘못하면 '왕십리'로 빠져 '낙동강 오리알'이 된다고요(이거 말이 되나요?). 장 콕토가 말하길, ‘비눗방울도 뜰을 한꺼번에 다 담을 수 없어 떠돈다’고 하잖아요.

마찬가지로 한 개의 글에는 한 개의 주제만 다루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물론 두 개 이상의 주제를 배치하는 고난도 기법(서브플롯)도 있습니다. 하지만 조심조심. 강호의 절정고수나 시도해 봄 직해요. ‘청산리 벽계수야 쉬이 감을 자랑마라’로 시작하는 황진이의 시조가 그런 중의적(重意的) 표현의 예지요. 벽계수(碧溪水)는 마음에 둔 낭군, 명월(明月)은 황진이 자신이어서 자연 현상에 빗대 별리(別離)를 노래한 것입니다. 다음은 이어지는 구절입니다. ‘일도창해하면 다시 오기 어려워라/명월이 만공산할 제 쉬어감이 어떠리.’

필자소개

김창식

경복고, 외국어대 독어과 졸업. KAL 프랑크푸르트 지점장 역임.
한국수필(2008, 수필) 신인상 . 시와문화(2011, 문화평론) 신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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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하는 용기
야망이 있는 한 젊은 회사원이
자기 회사에서 수억 원의 공금을 빼돌려 달아날 준비를 마쳤다.
다행히 이런 사실은 곧 적발되었다.
모든 것이 사실이냐는 사장의 질문에 젊은이는
'그렇다' 고 답했다.
젊은이는 자신의 잘못과
자신이 받아야 할 법적 처벌이 얼마나 큰지 깨닫고
후회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사장은 의외의 질문을 던졌다.
"내가 자네를 용서하고 지금 그대로 일하게 해 준다면
앞으로 자네를 믿어도 되겠는가?”

순간 젊은이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물론입니다,사장님. 최선을 다해 일하겠습니다."

사장이 다시 말했다.
"좋네. 나는 자네에게 일말의 책임도 묻지 않겠네.
가서 일하게."

돌아서려는 젊은이에게 사장은 이런 말을 들려주었다.

"참 한 가지 자네가 알아야 할 것이 있네.
이 회사에서 유혹에 넘어 갔다가
관대한 용서를 받은 사람은 자네가 두 번째야.

첫 번째 사람은 바로 날세.
한 때 나도 자네와 같은 짓을 했지...
그리고 자네가 받은 용서를 나도 받았다네."

- 차동엽(신부) 저, '뿌리 깊은 희망' 중에서 -



용서는 용서를 낳고
그 용서는 다시 용서를 낳고...
아직도 용서하지 못한 일이 있습니까?
지금이라도 그 사람을 용서해 주세요.
놀라운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 오늘의 명언
그대에게 죄를 지은 사람이 있거든,
그가 누구이든 그것을 잊어버리고 용서하라.
그때에 그대는 용서한다는 행복을 알 것이다.
- 톨스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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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 짜증에 사람 짜증까지

2014.07.18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가만있어도 더워 죽겠는데 연일 답답하고 짜증스러운 뉴스만 들려오고 있습니다. 오늘이 초복. 비가 좀 내리든 말든 앞으로 본격적인 더위가 사람을 더 지치고 힘들게 할 텐데 대체 이 여름을 어떻게 넘기나 싶습니다.

답답하고 짜증스러운 것은 소위 국가와 사회를 위해 공직을 맡아 일하겠다는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7·30 재보선에 등장한 인물들과, 박근혜 정부 2기 내각의 인선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우선 열다섯 군데에서 치러지는 7·30 재보선의 출마자 55명 중 55%인 30명이 전과자입니다. 민주화운동 과정 등에서 집시법 위반 혐의 등으로 처벌받은 사람들이 많지만 사기 뇌물수수 전과자들도 있습니다. 그런 이들이 국회의원이 되겠다니 배짱이 놀랍습니다.

출마자들 중 광주 광산을 후보인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은 사표가 수리될 때만 해도 “7·30 재보선 출마는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공언했지만, 열흘 만에 말을 뒤집었습니다. 국정원 댓글 의혹사건 수사과정의 외압을 폭로한 ‘양심 인사’가 이 짧은 기간에 생각이 바뀌었다면 처신이 가벼운 것이고 거짓말을 한 거라면 부도덕한 일입니다.

경기 수원을의 백혜련 후보도 비슷합니다. 2011년 11월 정치적 중립과 독립을 지키지 못하는 검찰을 비판했던 백 검사는 사표를 내고, 언론 인터뷰에서 “정치에 몸을 담는다면 검찰 개혁에 대한 국민들의 열망을 배신하고 왜곡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한 달 뒤 민주통합당에 들어가더니 안산 단원갑 국회의원 후보로 나섰습니다. 그때는 야권 단일화 경선에서 패했지만 이번에 드디어 공천을 받았습니다.

새정치연합이 이 두 후보를 공천한 것은 공직사회에 대해 ‘야당에 도움을 주면 확실한 보상을 해 준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양심적이고 정의로운 내부 고발을 긍정적으로 장려하고 보호하는 차원이라기보다 포상금을 노린 신고와 고자질을 사주하고 조장하는 꼴입니다.

백혜련 권은희 두 후보는 투표권도 없습니다. 국회의원 출마에는 거주지 제한이 없지만 후보자가 투표권을 행사하려면 선거인명부 작성 기준일인 선거일 전 22일(이번엔 7월 8일)까지 주소지를 옮겨야 합니다. 그런데 여야 모두 내홍 끝에 9일 이후에야 공천을 확정하는 바람에 이들은 미처 주소지를 옮기지 못했습니다. 서울 동작을의 새누리당 나경원 후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사람이 9명이나 됩니다. 자기도 찍지 못하는 후보가 한 표를 달라고 호소하고 다니니 우스운 일입니다.

그러나 정작 우습고 짜증스러운 것은 장관이 되겠다고 하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사회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였던 김명수 교수는 끝내 자진 사퇴를 거부하다가 대통령의 임명 철회라는 형식을 거쳐 물러나게 됐습니다. 대부분의 국민들이 부적격자라고 판정하는데도 별 문제를 느끼지 못하는 듯 스스로 장관감이라고 믿는 자신과 무감각이 정말 놀라웠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 정성근 씨는 더했습니다. 온갖 비리와 의혹 제기에 거짓말과 부인으로 넘어가다가 결국 다른 폭로가 임박했다는 말에 황급히 사퇴하는 모습이 가관이었습니다. 그렇게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데도 자신을 속여 가며 장관 자리를 탐하는 행태가 놀라움을 넘어 신기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어쩌면 그렇게도 사람을 잘 못 고르고 잘못 고르는지, 그리고 왜 남의 말을 안 듣는지, 왜 국민에게 설명해 주지 않는지 그것도 신기합니다. 옛부터 “의심스러운 사람은 쓰지 말고, 쓴 사람은 의심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TV로 청문회를 지켜본 사람들은 박 대통령이 그 두 사람을 10분만 만나서 이야기했더라면 문제점을 알 수 있었을 거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유진룡 문화부 장관이 면직됐으니 그의 유임은 낭설로 끝났고, 이제 또 다시 장관감을 골라야 할 판입니다. 정성근 씨는 아리랑TV 사장으로 임명된 지 석 달 만에 장관 후보가 됐는데 문화부 장관을 왜 바꿔야 하는지, 왜 하필 취임 석 달밖에 안 된 사람을 ‘차출’해야 하는지, 그렇게까지 자리를 챙겨줘야 할 은혜가 있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1997년 2월 개국한 아리랑TV의 사장은 정권 교체기마다 바뀌어 역대 사장 8명 중 임기 3년을 채운 이는 두 명뿐이었습니다. 이명박 정부 때 임명된 손지애 사장도 임기를 6개월 남기고 올해 2월 사퇴했고, 그 자리를 정성근 씨가 차지했습니다. 문제는 정씨의 거취입니다. 그는 아리랑TV 사장으로 돌아가는 건가요? 사표는 아직 수리되지 않았다는데, 지금 문화부에는 사표 수리권자인 장관도 없고 이 분야를 맡는 제1차관도 없으니 어떻게 되는 건지 궁금합니다.

조현재 전 제1차관은 정성근 장관 후보자의 국회 청문회가 진행되던 10일 오후 한국체육대에 총장 후보 등록을 하고 다음 날 청와대에 사표를 제출했습니다. 사표는 15일 수리됐고, 박 대통령은 17일 유진룡 장관을 면직조치했습니다. 이제 문화부는 비관료 출신의 제2차관 혼자서 다음 장관이 청문회를 거쳐 취임할 때까지 이끌어가게 됐습니다. 뭐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와중에 정씨가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원래 자리로 돌아간다면 ‘사장을 되찾은’ 아리랑TV 직원들은 어떻게 생각할까요? 그가 장관이 되는 걸 전제로 아리랑TV 사장에 내정된 사람(누군가 있을 거 아닙니까)은 또 어떻게 되는 건가요? 이런 걸 생각하다 보니 더 덥고 짜증이 나는 것입니다.

필자소개

임철순

1974~2012년 한국일보 근무. 문화부장 사회부장 편집국장 주필 및 이사대우 논설고문을 역임했다.
한국기자상, 삼성언론상, 위암 장지연상 수상.
현재 한국일보 논설고문, 자유칼럼 공동대표, 한국언론문화포럼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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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털 변소, 싸 재낀  댓글

2014.07.17


이달 말이면 한국에 다시 온 지 꼭 1년이 됩니다. 친정붙이를 비롯해서 자상하고 따뜻한 지인들과 친구들의 도움과 보살핌으로 연착륙한 안도감이 큽니다.

그럼에도 20년 넘게  한국을 떠나 있던 저로서는 격세지감에서 오는 ‘낯섦’을 어쩌지 못한 채 속된 말로 두어 차례 ‘멘붕’을 경험했고 황당한 일도 몇 번 겪었습니다. 그저 고국에 되돌아 온 신고식이려니 합니다.  

그러다 최근에는 어느 여성지에 연재하고 있는 글이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올라가는 바람에 매달 호된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주요 뉴스에 올랐다고 멋 모르고 좋아했다가 곤혹을 치르고 있습니다.  

사랑과 이별, 결혼과 이혼에 대한 저 나름의 성찰을 에세이 겸 칼럼 형식으로 써가고 있는데, 글의 일차적 기능이 그렇듯 이 글도 저 자신의 상처를 돌보고 내면을 치유하기 위해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글이 나가기 무섭게 마치 굶주린 하이에나떼에게 던져진 먹잇감마냥 악의와 적의, 분노와 증오의 독이 선지피처럼 뚝뚝 듯는, 이른바 악성 댓글, 악플러들에게 잔인하게 물어 뜯기고 갈갈이 해체되고 있으니 치유는커녕 ‘뼈도 못 추릴’ 상황에 매번 처합니다.  

 이대 나온 년이라는 둥, 엄청 못 생겼을 거라는 둥, 팔자 편해서 요강에 똥 싼다는 둥, 밑도 끝도 없는 해괴한 말과 도저히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내 깔기듯 제 글 밑에 달아댑니다.

글의 내용과는 아무 관련 없는 악에 받친 소리들, 심지어 “네 글 따위는 읽지도 않았다, 그러나 보아하니…” 라는 식으로 매도할 정도이니 백 개가 넘는 욕설을 듣고 나면 예전 ‘오마이 뉴스’나 ‘일베’ 등에서 ‘꾸준히’ ‘맷집’을 불려왔건만 그럼에도 만신창이가 되는 느낌입니다.
인터넷 댓글로 욕을 먹은 지도 어언 15년, 독의 수위는 점점 높아만 갑니다. '무플보다 악플이 낫다'는 자위 수준을 넘은 지는 이미 오래 전입니다.  

오죽하면  ‘댓글을 쓴다’고 하지 않고 ‘댓글을 싼다’고 할까요.

한마디로 사회에 대한 욕구 불만 해소와 감정 배설을 위한 '변소' 역할을 하는 곳이 포털 사이트인가 봅니다. 화풀이할 대상을 찾아 눈을 희번덕대며 온라인 광장을 헤매던 무리들에게 제 글이 재수없게 걸려든 형국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온라인 상의 감정 배설 장소라도 있으니 한국 사회가 이 정도라도 일상을 유지하는가 싶기도 합니다.

“변소'가 뭐냐, 똥을 한 곳에 모아두는 곳이잖아. 변소가 없다면 똥을 아무 데나 쌀 거 아냐.  감정도 마찬가진 거야. 좌절된 욕구 불만을 세상과 타인을 향해 쏟아 부을 데가 있어야 하는 거지. 이유 모를 미움과 원망과 울분과 분노와 불만과 시기와 질투 등등 부정적 감정과 화가 속에서 부글부글 끓는데 그걸 어디다 배설해얄 거 아니냐고. 똥오줌을 참으면 병이 되듯이. 그러니 ‘감정 변소’가 필요한 거야. 애꿎게도 내 글은 '밑씻개'인 거고. 난 그래서 '포털 변소'라고 부르는 거야.”    

제 블로그에 ‘내 편’ 들어줄 사람들에게 이런 글을 올려 ‘똥물 튄 기분’을 씻어내자니 아니나 다를까 “똥은 밥이다. 차라리 토사물이라고 해라,  똥이라는 말로도 아깝다.”는 응원까지 있었습니다.  

“제 글에 모든 사람이 공감을 할 수는 물론 없습니다. 다만 다른 사람의 아픔과 고통에  최소한의 예의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사람은 누구나, 생명 가진 것이라면 예외 없이 본질적 고통을 갖고 있다는 것, 그 너무나도 자명한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미지 시대에 살면서 너남없이 이미지 관리에 매달리다 보니 존재의 본질과 자신의 본래적 모습, 내면적 성찰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보이는 것, 보여지는 것에 사로잡혀서 타인에 대한 공감력을 점점 잃어가고,  어쩌면 자기 자신의 감정이나 정서, 자기 마음조차 제대로 읽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는지 모릅니다. 자기 내면의 뜰이 황폐한 사람이 다른 이의  뜰을 돌아보고 배려하기는 힘든 법이니까요.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은 타인도 사랑할 줄 알고 자기 자신에게 만족하는 사람은 상대에게도 너그럽습니다. “

블로그의 글을 이렇게 마무리하며 한국 생활 1년을 다시 돌아봅니다.  마침 오늘은 22년 전, 어린 것을 들쳐 업고 시드니로 이민을 떠났던 날입니다.
어쩌다 보니 다시 맨 몸뚱이로 돌아와 무지막지한 봉변을 당하고 있지만  내 글이 ‘공공의 먹잇감’ 내지는 유독 화가 난 사람들의 '화풀잇감'이라도 될 수 있다면 그 또한 고국에서의 몫이라 여기며 달게 받겠습니다.  

필자소개

신아연

이화여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1992년 7월, 호주로 떠났다. 시드니에서 호주동아일보 기자, 호주한국일보 편집국 부국장으로 일하다 2013년 8월, 한국으로 돌아와 자유기고가, 강연자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는 중앙일보, 여성중앙, 과학과 기술 등에 에세이를 연재하며, KBS 라디오에 출연 중이다.    
낸 책으로 <심심한 천국 재밌는 지옥> <아버지는 판사 아들은 주방보조>, 공저 <자식으로 산다는 것>이 있고, 2013년 봄에 <글 쓰는 여자, 밥 짓는 여자>를 출간했다.
블로그http://blog.naver.com/shinayo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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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 권하는 사회?

2014.07.16


10년도 더 전부터 ‘느림의 미학’이라는 말이 유행했습니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세상에서 심신을 재충전할 수 있게 좀 천천히 살자는 세태를 반영한 듯합니다. 그것이 진화하여 요즘에는 여기저기서 ‘힐링’, ‘슬로시티’가 식상할 정도로 회자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비행기나 차를 오래 타고 떼를 지어 찾아가는 슬로시티는 탄소 마일리지를 높여 환경 파괴에 일조하는 일이니 별로 권장할 일이 아니라고 봅니다, 멀리 갈 것 없이 주말에 경인운하 아라뱃길(정동진로)을 자동차로 달리다 보면 한가로운 편도 1차선 10여 킬로미터의 운하 옆 잔디에 군데군데 울긋불긋한 텐트를 치고 아라벳길을 정원 삼아 야영하는 풍경이 부쩍 늘어난 게 드러납니다. 부럽기도 해서 아내에게 “나도 텐트 하나 살까”하면 펄쩍 뛰며 “캠핑카는 못 사지?”하며 비꼽니다. 최근 아파트에 캠핑카 한 대가 서 있는 게 꽤나 부러운 모양입니다. 안을 들여다보고 빌려도 주느냐고 물었더니 “자가용”이라고 했답니다.

슬로시티를 찾는 게 팔자 좋은 사람들만의 여유는 아니지만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늘 부지런한 ‘패스트시티 주민’들의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동대문이나 남대문시장의 상인들은 별을 보고 움직이니 전국에서 물건을 떼러 상인들이 밀려옵니다. 입에 냄새가 나고 발에 불이 붙도록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밤 새워 일하는 여러 종합병원 응급실의 의료진들도 마찬가지죠.

며칠 전에 대형 할인점 ‘코스트코’에 갔습니다. 8시부터 영업하는 줄 알았는데 4월부터 10시로 늦춰졌다는 안내였습니다. 이 회사는 2012년 가을 초대형마트(SSM)의 영업제한 조례에 맞서 규제할 법이 없다며 영업을 강행하며 맞서다가 결국 법과 조례가 바뀌면서 정기 휴무를 도입하고 개점시간도 늦추게 되었습니다.

SSM규제는 영세상과 상생 발전을 도모한다는 취지지만 먹이를 일찍 찾아야 하는 ‘얼리 버드’들은 어떻게 하라는 건지 대책이 안 보입니다. 더욱이 ‘코스트코’는 최종 소비자 고객만이 아니라 코스트코에서 파는 물건을 뗴러 오는 상인들도 기업회원이 되어 많이 찾죠.

얼마 전 서울역을 지나다가 16만8,000원 가격이 붙은 구두를 대폭 할인한 7만6,000원인가에 한 켤레 샀습니다, 굽이 바깥쪽으로 너무 닳아 발목을 접질릴 것 같아 한 6년 신은 구두를 벗어 던진 것이죠.  마트 본점의 문은 닫혀 있었는데 밖에서 구두를 팔고 있었습니다.  여행에는 신발이 중요하니까요. 놀랍게도 마트 개점시간은 오전 11시라니 해가 중천에 떠야 열린다는 이야기입니다 새벽부터 각종 열차를 타고 길 떠나는 사람들이 편리할 까닭이 없죠. 이런 최고의 상권에서 누가 11시부터 영업하고 싶겠습니까?

사회는 언제나 굴러가야 하니 장을 일찍 볼 사람은 서두를 수 있게 해줘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새벽에 어떤 물건이 화급한지를 박원순 서울시장이 알겠습니까, 요즘 살인교사 혐의로 경악의 초점인 김형식 서울시 시의원이 알겠습니까? 대형점이 개점 시간을 늦춘다고 영세상들이 가게 문을 일찍 여는 것도 아니고 대형점이 늦게 열면 기다려서 산다는 사람도 있는 판에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영업시간 단축으로 일요일은 생지옥’이라는 아우성이 일고 있는데 규제 실적을 자랑하고 싶은 행정편의주의 발상이 아닌가 비난하고 싶은 사람도 많을 것입니다.  아니라면 영업시간 단축으로 인한 구매자의 불편을 딛고 골목상권이 얼마나 살아났는지 매출액 증가를 수치로 제시해야 할 것입니다.

악평등이라고 볼 수 있는 기계적인 사고가 한국경제를 질척거리게 하고 발전을 가로막는 원인의 하나가 아닌지 걱정됩니다. 입으로는 서민경제를 되뇌고 민생을 외치지만 그 해법과는 거리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24시간을 목표로 잘 돌아가는 사회는 교대할 인력이 더 필요해 직원을 더 뽑아 실업률을 떨어트리는 효과가 있죠. 영업시간은 억지로 짜맞출 게 아니라 영세 상인들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방안으로 도와줘야죠.

마치 엘레나 이신바예바 같은 정상급 장대높이뛰기 선수에게 '너는 너무 높이 뛰니까 연습장에 일찍 오면 안돼'라고 강요하는 꼴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떠오릅니다. 고객이 구입한 물건에 불만이면 무조건 환불해주는 이 코스트코는 직전 회계연도 매출이 2.5조원을 넘었고 1년 순익이 1,000억원을 넘은 지는 여러 해가 될 정도로 급성장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잘 나가는 회사는 조금이라도 ‘배 아파할 게’ 아니라 철저히 ‘벤치마킹’해야죠. 우리나라 기업도 그렇게 글로벌 유통 기업으로 키울 생각을 해야지 억누른다고 낙후한 우리 유통업이 해결될 리는 없습니다.

그날도 경인고속도로 끝에서 영등포구 양평동 매장으로 이동하는데 20분 가까이 걸렸습니다.  돈을 갖다 바치려고 꼬리에 꼬리를 물며 차량들이 늘 줄을 길게 서는 것이죠. ‘얼마라도 싸니까.’ 모이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날 우리 부부는 호주산 쇠고기를 좀 많이 사는 바람에 39만원을 썼습니다. '재화와 용역의 공급 속도를 높여라.' 대형 병원의 MRI 같은 초고가 기계건, 혹은 상품이건, 사람의 생각이건, 유통 속도를 높이는 것이 경제발전의 지름길이 아닐까? 마트를 나오면서 생각했습니다.

필자소개

김영환

한국일보, 서울경제 근무. 동유럽 민주화 혁명기에 파리특파원. 과학부, 뉴미디어부, 인터넷부 부장등 역임. 우리사회의 개량이 글쓰기의 큰 목표. 편역서 '순교자의 꽃들.현 자유기고가.

박대문의 야생초사랑

왜솜다리 (국화과) Leontopodium japonicum

한여름 삼복더위에 비 오듯 땀을 흘리며 설악의 귀때기청봉 너덜길을 지나 대승령 오르는 바위길 목에서 만난 왜솜다리입니다. 한국 자생 에델바이스(Edelweiss)라고도 합니다. 한계령 삼거리에서 대청봉 반대방향인 이 길은 칼날 같은 바윗돌이 제멋대로 들쭉날쭉 솟아올라 등산로도 이어지지 않아 밧줄로 방향을 표시할 수밖에 없는 지루한 귀때기청봉 너덜길을 지나야 합니다.

필자소개

박대문

환경부에서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과장, 국장, 청와대 환경비서관을 역임했다.
우리꽃 자생지 탐사와 사진 촬영을 취미로 삼고 있으며,
시집 『꽃벌판 저 너머로』, 『꽃 사진 한 장』, 『꽃 따라 구름 따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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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비행기는 안전합니까

2014.07.15


며칠 전 제주도에 갈 일이 생겨서 비행기를 탔습니다. 김포공항을 이륙한 비행기는 강화도 상공에서 기수를 남쪽으로 돌려 구름을 뚫고 날아올랐습니다.

그늘진 왼쪽 창가에 앉은 나는 창문을 통해 구름과 산의 풍경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는데, 이륙 후 약 20분이 흘렀을까 갑자기 햇볕이 얼굴에 내려쬐는 것이었습니다. 정상적으로 비행한다면 내 좌석은 계속 그늘지고 있어야 합니다. 창밖을 자세히 보니 비행기가 선회하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비행기는 남쪽이 아니라 북쪽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왜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승객 여러분 저는 기장입니다." 하는 안내 방송이 나왔습니다. 어조와 첫마디가 평상시 내보내는 기장의 안내 방송과 달랐습니다. 곧 이어 나오는 방송 내용은 순간적으로 가슴을 얼어붙게 만들었습니다. 비행기에 기술적인 이상이 발견되어 김포공항으로 회항한다는 설명이었습니다. 그리고 김포까지 20분쯤 걸린다는 얘기만 내보내고 안내 방송은 끝났습니다.

기내는 쥐죽은 듯이 조용해졌습니다. 비행기가 조용히 날고 있지만 잘못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자 두려움과 안도가 간단없이 교차했습니다. 옆 좌석 승객이 “어떤 이상이냐?”고 스튜어디스에게 묻자 여승무원은 "그건 저희가 알 수 없고요, 비행기가 착륙하기 전에 연료를 다 공중에 버려야 하니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이렇게 위험을 느낄 때는 사람의 오감과 육감이 모두 작동하는 것인가 봅니다. 비행기는 조용히 날고 있고, 객실 승무원들은 부지런히 그러나 차분히 승객들의 질문에 대답하는 것을 보며 아주 위기 상황은 아닌가보다 하는 예감이 들었습니다.

창밖으로 비행기 날개를 내려다보았습니다. 날개에 붙은 엔진은 돌고 있고, 날개도 겉보기에 이상이 없어 보였습니다. 다른 쪽은 어떤가 하는 걱정도 생겼지만 이내 부질없는 생각이라고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무슨 일이 생긴들 공중에서 별도리가 없는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불가항력의 무력감이 몸을 휘감는 것 같았습니다.

회항하는 20여 분이 그렇게 더디게 갈 수가 없었습니다. 사실 비행기 속도가 많이 줄어든 것 같았습니다. 사람이 밖에서 갑자기 아팠을 경우 집이나 응급실까지 가는 동안 충격을 주지 않기 위해 자동차를 천천히 모는 것과 같이 비행기도 조심조심 그런 비행을 하는 게 아닌가 하고 생각되니, 더욱 고장 난 비행기에 타고 가는 것이 스트레스 덩어리였습니다.

비행기가 곧 착륙할 것이라는 안내 방송을 듣고는 안도감과 동시에 불안감이 커졌습니다. 혹시 그 고장이란 게 랜딩기어의 이상은 아닐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승객은 아무 것도 모르기 때문에 모든 상상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비행기는 공항 활주로를 향해 돌진했고 ‘덜컹’하며 착륙했습니다. 승객들이 “휴”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고 다시 떠들기 시작했습니다.

김포공항은 조용히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다만 서너 대의 소방차가 비상등을 깜빡거리며 램프에 대기 중인 광경을 보고 내가 탄 비행기의 착륙 이상에 대비하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국내선 비행기를 자주 타는 편이라 가끔 기상 상황 때문에 비행기가 회항하거나 오랜 시간 체공하는 경험을 한 적은 있습니다. 공중에서 벌어지는 일이라 그럴 때도 막연한 불안감이 커집니다. 그러나 이상이 생긴 비행기를 타고 회항할 때의 경험은 처음이었습니다.

세월호 침몰 사고가 생각났습니다. 공중에 떠 있는 비행기에 중대한 고장이 생기면 기장이 관제사의 도움을 받으며 착륙하는 길 외에 아무의 도움도 받을 수 없습니다. 사고 비행기에서 승객을 구조하는 것은 영화 속 얘기일 뿐입니다. 같은 교통수단이지만 비행기와 배는 아주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비행기 여행이 대중화된 지금, 항공 관련 공직자와 항공사 관계자들에게 물어보고 싶어집니다.
"이 비행기는 안전합니까."

필자소개

김수종

한국일보에서 30년간 기자 생활. 환경과 지방 등에 대한 글을 즐겨 씀.
저서로 '0.6도' '다음의 도전적인 실험' 등 3권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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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모리의 경륜

2014.07.14


대형 사고에 무능한 정부, 낭패를 거듭하는 고위직 인사, 국권을 조롱하는 사이비 종교집단, 흠집을 내기 위한 무차별 비방, 국익과 민생을 외면하는 정치 공방, 희망은커녕 불안과 불신이 팽배한 사회, 나사 빠진 나라, 그래서 안녕하지 못한 국민들···. 2014년 오늘 대한민국의 자화상입니다.

그 답답함에 ‘경영의 신’ 이나모리 가즈오(稻盛和夫)를 다시 떠올려 봅니다. ‘전후 최대의 파산’ 선고가 내려진 일본항공(JAL)을 3년 만에 기사회생시킨 이나모리. 스스로 기업(교세라)을 창설하여 성공하고, 철저하게 망한 JAL을 일으켜 세운 그의 경영 철학에는 국가 경영의 경륜(經綸)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 경영의 목적은 직원의 행복추구
“나는 다른 업무도 있어서 JAL에는 일주일에 사흘밖에 나오지 못합니다. 그래서 보수를 받지 않고 일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해서든 회사를 갱생시킬 생각입니다. 그 목적은 사원의 행복을 위해서입니다.”
2010년 12월 1일 200명의 간부들에게 던진 이나모리 회장의 일성이었습니다.
“주주를 위해서도 관재인을 위해서도 아닙니다. 전 직원의 물심양면에 걸친 행복 추구입니다. 경영 목표는 이것 하나로 승화해서 JAL 재건에 매진하려고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경영정보를 모든 사원에게 공개하겠습니다.”
기존의 간부들에게는 폭탄선언이었습니다.

이날 뒤풀이 때 한 임원이 이나모리의 선언에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회장님, 아까 하신 말씀은 금기어입니다.”
“어떤 말이 금기어라는 건가?”
“직원의 행복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리고 정보를 공개하면 조합이 기어오릅니다.”

이나모리는 괴이하다는 표정으로 되받았습니다.
“사원이 있어야 회사가 있지 않은가? ‘사원의 행복’을 지향하면 노사의 종착역이 같아지고, 목적이 같으면 말이 통할 거야, 그리고 경영진과 사원이 정보를 공유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네. 이게 안 되면 전원이 참여하는 경영은 할 수가 없어.”

전 직원이 경영자가 되는 이른바 이나모리의 ‘아메바 경영’에 대한 설파였습니다.
회사의 수천, 수만 명 직원을 수백 개의 소집단(아메바)으로 나누어 각각의 소집단이 ‘오늘 한 업무의 이득과 손해’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하는 이나모리 경영의 핵심입니다. 공개된 정보를 토대로 스스로 할 행동을 찾게 하는 소통 경영입니다.

# 관료적인 수식어는 전부 버려라
“대략 50억 엔입니다.”
“대략은 숫자가 아니야.”
“80% 정도 됩니다.”
“정도라는 말은 사용하지 말게.”
창업 초부터 임원 선임 때 철저하게 관료 출신을 배제해 온 이나모리는 회의나 보고서에서조차 관료적인 수식어를 쓰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항공사는 태풍이 불면 비행기가 뜨지 못하고, 경기가 나빠지면 비즈니스 고객이 줄어들고, 환율 변동·유가 폭등 땐 실적이 악화됩니다. 아무리 ‘근사한 계획’을 세워도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위의 온갖 이유를 찾아 ‘계획보다 근사한 변명’을 늘어놓는 JAL의 엘리트들에게 그는 관료식 변명 대신 철저한 숫자와 대안을 요구했습니다.

실적보고회 때 이나모리와 담당 임원 간의 문답은 살벌하기까지 했습니다.
“····라는 이유로 이번 달은 수입이 줄었습니다.”
“줄었는데, 그래서 어떻게 할 계획인가?”
“그것은 아직···.”
“자네는 평론가인가?”
‘모든 숫자에는 이유가 있다’고 믿는 이나모리는 숫자의 변화를 파악해서 그 원인을 찾아내고 다음 대책을 세우도록 강조했습니다.

변명과 수식어를 금지당한 임원들은 회의석상에서의 받아쓰기나 서류검토보다, 회의 전에 세세하게 숫자를 분석하여 정보로 무장하려는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임원실만 지키면서 현장엔 통 나가지 않던 임원들은 자신도 모르게 현장을 찾게 되고, 대안을 모색하는 등 현장 사정에 정통하게 되었습니다. 80을 눈앞에 둔 나이에도 수치에 밝은 회장의 지적에 대응하기 위해서입니다.

# 목숨을 걸고 약속은 지킨다
“정기승급은 약속할 수 없지만, 사원 급여가 올라갈 수 있도록 회사 경영에 필사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나를 믿어 주세요. 만일 내가 엉터리 경영을 하고 사리사욕을 취하는 일이 생긴다면 내 목숨을 내놓겠습니다.”
교세라 창업 3년째 정기승급과 장래 보장을 요구하는 고졸사원들의 요구에 대한 이나모리의 대답이었습니다. 거짓말이 될 약속은 하지 않겠다는 각오였습니다.

‘JAL 재건의 관건은 기득권과의 싸움’이라고 단정한 그는 가장 강경파인 기장조합과 승무원조합 설득에 나섰습니다. 회유책이나 해고 위협을 쓰지 않았습니다. 단체교섭 같은 형식도 버리고 단신으로 그들의 원 안에 뛰어든 이나모리는 있는 그대로의 경영 실태를 들려주었습니다.

“회사의 파산 상황을 이기고 일어나고 싶다는 생각은 승무원들도 나와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선입견을 버리고 진실을 이야기했지요.”
JAL은 갱생계획에 따라 조종사 인건비를 약 40% 삭감했습니다. 동맹 휴업 우려도 있었지만 노조는 조용했습니다.

조종사 중 한 명은 이나모리의 이야기를 들은 후 이렇게 말했습니다.
“회장님은 진짜 우리를 위해 화를 낸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그 모습을 보니 경영자의 진심을 알 것 같았습니다.”
민낯의 정보를 공유하면 사원은 경영자 마인드를 갖게 되고, 윗선의 지시가 아닌 현장의 의지로 돌아가 ‘스스로 타오르는 집단’이 된다는 이나모리 경영철학이 뿌리내렸다는 증좌입니다.

# 거짓말과 독점은 악이다
“나는 매일 ‘나의 동기는 선한가?’ '사심은 없는가?'라는 질문을 나에게 던집니다.”
이나모리가 항상 되새기는 ‘이타적 마음’의 바탕입니다. 그는 이를 토대로 △거짓말을 하지 마라 △정직하라 △욕심 부리지 마라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마라 △남에게 친절히 대하라 △부모님과 선생님으로부터 배운 인간으로서 당연하게 지켜야 할 규칙을 규범으로 삼아 경영을 하라는 좌우명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거짓말 하면 안 된다’라고 머릿속으로 이해하는 것은 간단하지만, 거짓말을 하지 않고 일을 하는 것은 그리 쉽지 않습니다.”
그는 JAL 재생의 첫걸음으로 사원에게 이것을 요구했습니다. 설득→ 공감→ 합의의 프로세스를 거치면서. ‘마음가짐’을 갖추지 못하면 아무리 훌륭한 제도를 도입해도 조직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50여 년의 경험철학으로.

그러면서 그는 반독점의 철학을 적극 펼쳤습니다. 과거 국내선은 반드시 전일본항공(ANA)을 이용해 온 그는 JAL이 없어지면 ANA 독점체제가 되고, 일본 경제도 치명상을 입게 된다는 일념으로 JAL 회생에 몸을 던졌습니다.
독점으로 시외전화 요금이 미국보다 몇 배나 비싼 일본전신전화공사(NTT)에 맞서 제2전신전화주식회사(KDDI)를 설립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그는 손익보다 신뢰에 무게중심을 두었습니다. 파산 전부터 자본업무 제휴로 위기를 모면하려 했던 JAL에 항공 동맹체 이전 문제가 본격 거론되었습니다. 아메리칸항공과 영국항공이 이끄는 원월드(One World)에 속해 있는 JAL은 델타항공이 중심인 스카이팀(Sky Team)의 파격적인 제안을 받았습니다. 양측의 프레젠테이션을 듣고 난 이나모리는 각고 끝에 원월드 잔류를 결정했습니다.

그는 마지막 결론을 내리기 전에 자신이 임명한 사장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니시 마사루 사장, 나는 비즈니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의라고 생각하네. 아메리칸항공은 지금까지 함께 걸어온 동료인데, 그것을 우리만 좋자고 관계를 끊어서야 되겠는가?”
이나모리 회장은 눈앞의 이해득실보다 인간성과 신뢰에 근거해 결단을 내렸습니다.

필자소개

김홍묵

경북고,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동아일보 기자, 대구방송 이사로 24년간 언론계종사.  ㈜청구상무, 서울시 사회복지협의회 사무총장, ㈜화진 전무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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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문화 Economy , Cuture/추천시글 Best Writings2014. 7. 11.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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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진 삽

2014.07.11


며칠 전 삽질을 하던 중 13년 동안 써오던 삽날이 마침내 쪼개졌습니다. 언젠가부터 삽 가운데가 옆으로 금이 가기 시작하더니 작년에는 더욱 깊게 파였지만 버리지를 못했습니다.
어떤 삽은 크기와 무게 때문에 영 내 손과 몸에 맞질 않고 힘들었는데 우연히 샀던 이 삽만큼 편한 것이 없었습니다. 마치 내 수족처럼 부리던 것을 버리려니 웬일인지 허무하고 쓸쓸하여 올해도 계속 그 삽으로 정원 일을 했던 것입니다. 금년에는 뜻하지 않게 성치 않게 된 왼쪽 다리 때문에 정원 일이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오른쪽 다리로 삽질을 해왔는데 결국 이 삽이 완전히 갈라져 작별을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가슴에 휭 하고 바람이 불어 사진을 찍어두기로 했습니다.

이 쪼개져버린 삽으로 몇 십만 삽질을 했는지 나 자신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정원이 없던 덩그런 집으로 세 번의 이사와 세 번의 정원 디자인을 하고 내 손으로 꽃나무와 화초들을 심었습니다. 그러니 이 삽은 나의 캐나다 생활의 표상과 같습니다. 정원 일을 함으로써 유일하게 정신적 위안을  받았으니 상당한 의미가 있지요. 캐나다 이주 후 일 년 만에 암에 걸려 수술과 치료 후유증으로 생긴 손가락 장애를 이겨내는 동안 깊어진 우울증을 조금씩 걷어 내게 된 것은 정원 일을 시작하면서부터였습니다.

항암 치료의 후유증으로 일상적인 직장 생활을 할 수 없었을 뿐 아니라 다사했던 가정사로 우울증이 한층 심하여질 때 꽃들과의 대화를 할 수 있는 정원은 나의 유일한 안식처, 힐링 장소였습니다. 유년기와 평창동 집 지은 후 꽃모종 삽이나 만졌던 내가 경험이 전혀 없는 삽질도 어려웠고 흙 한 포대를 들 수 없어 낑낑대야 했던 정원 일은 막노동이라 매우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자식처럼 키우고 정성을 다하면 피어나는 꽃들이 가족이나 사람들에게서 기대할 수 없는 것들을 보상해주었으니 내 몸에 꼭 맞는 삽이 더더욱 고마울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열 손가락이 모두 아파 면장갑을 낀 그 위에 커다란 고무장갑을 덧끼고 그렇게 13년 동안 4월 말부터 10월 말까지 매해 이 삽과 더불어 정원 일을 했던 것입니다.

이제는 정원 일도 고달파서 작년 같지 않습니다. 서너 시간 정원 일을 하고 나면 그 다음 날까지 끙끙 앓는 것이 예전의 내가 아닙니다. 그러니 어쩌면 나와 함께 고락을 같이해왔던 이 삽도 내 몸을 알고 ‘주인이여 이제 고만 쉬시오’ 라는 뜻으로 깨졌는지도 모릅니다. 곧 정원과의 작별을 할 때가 다가오기에 삽이 미리 눈치를 챈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쉬운 것은 이제 내가 정원에 대해선 상당히 전문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꽃들과 나무들의 생태, 토질과 물 그리고 정원 디자인(landscape design)에 대해서도 일가견이 생겼으니까요. 내 전공 용어와 영어 단어는 많이 잊어버렸지만 오히려 꽃들의 이름과 정원일 용어들은 줄줄이 꿰고 있습니다. 하긴 13년간 정원에 매달려 살았으면 그 또한 정원 전문가라고도 할 만하지 않나, 좀 더 내가 젊었더라면 차라리 정원 디자인 직업인으로 나설 수도 있을 것을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얼마 전 이제 만으로 33세가 된 막내아들을 만났습니다. 미국 국적과 캐나다 국적을 가진 막내아들이 마땅한 직장도 없이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살고 있는 모습이 어미로서는 정말 딱하고 속이 상하여 제안을 하려고 만났던 것입니다. 어려서 미국에 홀로 떼어놓을 수가 없어 캐나다로 데려와 같이 거주하다가 다시 미국으로 데려다 놓았더니 미군에 들어가 복무를 하자마자 캐나다로 돌아와 버렸습니다. 장가를 갈 나이도 되었는데 일정한 직장이 없이 지금까지 캐나다 이주 후 20년을 떠돌고 있습니다. 잠깐 잠깐 다니던 직장들이 하나같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언제나 시니컬하고 불만투성이인 아들이 걱정이었습니다.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으며, 내 마음에 드는 직장,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직장, 인내하지 않고 일할 수 있는 직장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거기다 전문적인 것은 공부한 게 없으니 직장 잡기가 결코 쉽지 않지요. 내 지인들의 아이들은 모두 문제 없이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잡아 부모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는지라 나는 지인들이 부럽기가 그지없지만 이 또한 내 운명이라 생각하고 살고 있습니다.

막내아들에게 제안을 했던 것은 다시 학교로 돌아가서 전문적인 지식을 쌓으라는 것이었습니다. 꼭 학문적인 것은 아니더라도 학비를 다시 대줄 테니 기술학교를 가서 현재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전문적인 기술을 습득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40이 되었을 때를 대비할 수 있지 않느냐라는 내 말이 막내아들에게는 영 먹히지가 않았습니다. 앞으로 7년 세월 어영부영 지내다보면 40이 금방 될 테고 40이 넘으면 직장 잡기도 더욱 어려워질 텐데 막내아들은 무슨 자신이 넘쳐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아직도 세상에 대한 무서움이 없어 보입니다. 놀기를 좋아하고 부모나 타인의 조언을 들으려 하지 않는 고집이 형과 동생이 어쩌면 그렇게 똑같아서 가는 길도 그렇게 비슷하게 가는지, 큰 아들처럼 40이 되어서도 밥 걱정하고 살까봐 막내만큼은 30대 초반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깨달아 주었으면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막내아들과 말싸움만 하다가 돌아오는 차안에서 눈물이 났습니다.

나는 아이들에게 명문대학을 가라든지, ‘사’자가 들어가는 직업을 갖기 위해 공부를 하라고 윽박지르거나 강요를 한 번도 한 적이 없었습니다. 어쩌면 그래서 저렇게 태평한 생각으로 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출세가 중요한 것은 아니니 소시민으로 살더라도 바른 인성을 가진 사람으로 평화로운 가정을 유지하며 살라는 내 교육 방법이 이 시대와 맞지 않았는지 자문해봅니다. 다른 극성스러운 엄마들처럼 명문학교를 보내기 위해 공부하기를 싫어하는 아이들과 싸우는 일은 나 자신부터 힘들어 할 수도 없었으니 아이들이 저렇게 된 것도 내 책임인가 싶어 요즘은 시름이 깊어집니다.

이젠 오직 네 밥벌이는 해야 한다, 결혼을 한다면 네 자식의 교육에 대한 책임을 지는 아빠가 되어야 하지 않느냐, 법을 어기는 일이 아니라면 어떤 종류의 직장도 가릴 필요 없고 어떤 일이라도 수치스러워 할 필요 없으니 한 곳에서 오래 경험을 쌓으라고 했습니다. 식당의 주방장이 되는 것도 주방에서 허드렛일부터 10년 이상 중노동을 참고 견뎌야 주방장이 되는 것이고 그 어떤 직업 세계에서도 10년 이상 같은 일을 하지 않고서는 전문가가 될 수 없지 않습니까? 더욱이 요즘의 젊은이들은 우리 시대와 달리 이기적이지만 영민하여서 젤라또 아이스크림 가게나 빵 가게를 개업하려고 해도 해외 유학을 가서 전문성을 키웁니다. 세상이 예전과 달라 평범한 생각으로 도전했다가는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겠지요. 그런데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알 수 없는 막내아들은 내가 헤아리지 못하는 숨겨진 꿈이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인간이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살기가 어려워진 무서운 시대입니다. 삶의 의미가 모두 물질적인 것으로 집중되니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물질적인 것이 아니면 대화나 정을 나눌 수 없습니다. 그러니 정신적으로 여유롭게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이제 한여름 밤의 꿈과 같습니다. 이곳 캐나다도 노인층과 이민자들의 빈곤이 더욱 심각해지고 있고 세계 경제대국이라는 미국도 빈곤층이 급증하여 영양실조된 아이들, 집이 없어 부모와 자동차에서 생활하며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 치과 치료를 받지 못해 이를 잃고 치료를 제때 받지 못해 치아의 염증이 머리로 퍼져 죽은 아이도 있다는 뉴스를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 복잡하고 스피디한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전문성을 키워야 한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입니다. 한 우물을 10여 년은 파야 그 분야에 전문가가 된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진리입니다. 흙을 파다가 완전히 깨어져버린 정든 삽과 작별을 하며 새삼 다시 한 번 느낀 이 깨달음을 5분 이상 대화를 나눌 수 없는 막내아들에게 전해줄 길은 없을까요. 무슨 말이든 들으려 하지 않는 막내아들과는 이렇게 용도폐기 처분 상태인 삽에 대한 대화조차도 나눌 수 없어 서운합니다. 그러나 시간은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사실, 더 이상 태평하게 지낼 시간이 없음을 어서 깨닫고 한 우물을 파면서 전문성을 키우려 노력만 해준다면 내 서운함 같은 건 아무것도 아닙니다. 어쨌든 결단과 결정은 아들의 몫입니다. 그저 훗날 깨어진 삽의 사진이나 아들에게 보낼까 합니다.

필자소개

오마리

미국 패션스쿨 졸업, 미국 패션계에 디자이너로 종사.
현재 구름따라 떠돌며 구름사진 찍는 나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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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문화 Economy , Cuture/추천시글 Best Writings2014. 7. 10.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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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일관계의 전도와 한계

2014.07.10


북일관계 개선에 대해 다양한 평가가 있지만 결론부터 말해 근본적으로 바람직한 흐름이라고 봅니다. 가장 흔한 평가가 북한 핵문제에 대한 한미일 공조체제의 균열 우려인데 북한의 핵무기가 한미일 모두에게 위협인 상황에서 일본만 안전해질 리는 없겠지요.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가 북한과의 대화를 시도한 것은 한일관계 및 일중관계 악화에 대한 돌파구적 성격이 강했습니다. 한일, 중일관계는 아직껏 경색국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이달 초 습근평(習近平 시진핑) 중국 주석의 방한으로 한중의 대일본 견제 전선은 더 견고해진 듯이 보입니다.

그렇더라도 한미일 동맹의 축인 미국이 존재하는 한 한일관계가 파국으로 갈 수는 없습니다. 이미 지난 3월 오바마 미국대통령의 중재로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자리를 함께한 바도 있습니다. 한중 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서 일본에 대한 공개적인 비판문구를 넣지 않은 것도 대일정책에서 한중의 입장차를 반영한 것입니다.

그러나 일본의 우경화 정책은 어떤 명분을 내걸어도 한중으로부터 용납될 수는 없습니다. 한중 외에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의 침략을 받은 많은 아시아 국가들로부터도 불신의 대상입니다. 북일관계가 호전되고 있다지만 북한 역시 남한과 같은 일제 식민지 피해지역으로 일본의 우경화까지 찬동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일본의 우경화에 명시적으로 찬동을 표시한 나라는 미국입니다. 일본의 전력을 키워서 함께 중국을 견제하자는 것이 주목적이지만, 일본이 미국의 아시아 지역 군비를 분담해주고, 미국제 무기를 구매해주는 것에 대한 보상의 의미도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미국도 일본의 전력을 키워준 결과가 태평양 전쟁이었다는 역사를 잊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런 구도 아래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이 북일 대화입니다. 지난 5월 26일~28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북일 협상의 합의문이 그 발판입니다. 두 나라는 ‘조일(朝日) 평양선언*에 따라 불행한 과거를 청산하고, 현안을 해결하며, 국교정상화를 실현한다.’는 전제 아래 북한에 의한 일본인 피랍자 문제를 해결하고, 일본의 대북한 독자제재를 해제키로 합의했습니다.

한중 정상회담이 열리던 날 일본의 언론들은 마치 이를 시샘이라도 하듯 일본 정부가 대북 제재 해제를 구체화한 소식을 대서특필했습니다. 북한은 핵무기로, 일본은 우경화로 국제사회, 특히 아시아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는데 두 왕따 국가가 소외감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손을 맞잡는 형국입니다.

북일협상의 일차적인 성과는 북한으로 하여금 핵개발을 확실하게 포기토록 함으로써 6자회담의 틀 속으로 끌어들이는 것입니다. 일본이 중국도 미국도 못해낸 그 일을 해낸다면 동북아의 안정을 위해 큰일을 하는 것입니다. 한국 미국은 물론 6자회담의 모든 당사국들이 북일 협상을 측면에서 지원해야 할 이유입니다.

북핵문제가 해결되면 6자회담 참가국들은 북한에 대한 경제재건 약속을 이행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특별한 기여를 해야 할 나라가 일본입니다. 북한은 일본의 한반도 식민지배의 공동피해지역인 만큼 최소한 남한에 지불한 정도의 배상금을 일본에 청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1965년 일본으로부터 받은 청구권 자금 5억 달러(무상 3억·유상 2억) 상업차관 3억 달러는 대한민국 경제성장에 밑거름이었습니다. 그 금액의 현재 가치는 양측의 계산방법이 다르긴 하지만 최소 50억 달러에서 최대 200억 달러 쯤으로 추산됩니다.

2차 세계대전으로 파괴된 일본은 북한의 김일성이 도발한 한국전쟁의 특수에 힘입어 경제 재건에 성공, 오늘의 경제대국이 되었습니다. 조국을 초토화하고, 수백만 명의 동족을 살상한 6·25의 참화가 식민지배 세력인 일본을 경제대국으로 만들어 준 결과가 되었다는 것은 민족사에 뼈아픈 대목입니다.

그런 과거사를 기억한다면 일본은 북한에 대해 남한에 지불한 것보다 훨씬 큰 규모의 배상금을 지불해야 합니다. 그러나 과연 일본이 그럴 상대인가요? 한일협정 초기 협상과정에서 일본이 제시한 배상금 규모는 5,000만 달러였다고 합니다. 북한으로서는 50억 달러를 받아내는 것도 쉽지 않다고 봐야 합니다. 일본 경제가 1960년대 한일협정 체결 당시의 욱일승천하던 기세와는 달리 지금은 장기침체를 벗어나지 못한 상황이라 더욱 그렇습니다.

이처럼 북일협상의 종점은 북핵 해결에 닿아 있습니다. 북한은 북일 협상장에서도 핵을 포기할 수 없다는 입장을 명백히 했고, 대외적으로 일관되게 핵 포기 불가를 외치고 있습니다. 북한의 핵무기에 대한 집착으로 미뤄 북일회담의 갈 길은 멉니다.

핵문제 외에도 배상금 산정 문제로 파국이 올 수도 있고, 납북자 문제로 난관이 새롭게 조성될 수도 있을 겁니다. 난관은 필요에 따라 일본도, 북한도 조성할 수 있으나, 갑의 입장인 일본의 수중에 달려 있다고 봐야합니다.

일본과 북한이 한중에 대한 압박카드로 북일협상을 이용하는 지금의 근시안적인 자세를 벗지 않는다면 북일협상은 진전보다는 파국의 가능성이 더 크다고 하겠습니다. 그것이 한미일 공조의 균열보다 더 우려되는 사태라고 봅니다.

*조일 평양선언 : 2002년 9월 17일 평양에서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일본의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간에 채택된 선언문으로 양국간 국교정상화 방안을 담고 있다.

필자소개

임종건

74년 한국일보기자로 시작해 한국일보-서울경제를 3왕복하며 기자, 서울경제논설실장, 사장을 지내고 부회장 역임. 주된 관심 분야는 남북관계, 투명 정치, 투명 경영.

박대문의 야생초사랑

모감주나무 (무환자나무과)

따뜻하고 부드러운 봄 날씨가 무덥고 습기 찬 장마철로 변해가는 계절, 통영의 바닷가에서 화려한 꽃 구름을 한여름 뭉게구름처럼 모닥모닥 피워올리는 모감주나무를 만났습니다. 황금빛으로 달아오른 모감주나무 꽃 더미 너머로 시원스레 탁 트인 통영 앞바다가 자지러지게 고운 모습을 드러냅니다.

필자소개

박대문

환경부에서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과장, 국장, 청와대 환경비서관을 역임했다.
우리꽃 자생지 탐사와 사진 촬영을 취미로 삼고 있으며,
시집 『꽃벌판 저 너머로』, 『꽃 사진 한 장』, 『꽃 따라 구름 따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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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문화 Economy , Cuture/추천시글 Best Writings2014. 7. 9.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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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독 간호사ㆍ광부를 생각하며 ‘외국인 근로자’를 보다

2014.07.09


15 여 년 전 상황입니다. 국내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외국인 근로자의 복지문제를 다루는 KBS TV공개토론장에서 동남아 출신으로 보이는 근로자가 국내에서 겪고 있는 여러 가지 근무 및 생활환경의 문제점을 토로하였습니다. 그러자 국내 중소기업협회를 대표한다는 한 기업인이“왜 외국노동자의 복지 운운하며 임금을 올리게 하느냐?”고 볼멘소리로 항의성 코멘트를 서슴없이 하는 것이었습니다. KBS TV라는 공익매체에서 참으로 낯 뜨거운 장면을 보게 돼 당혹스러웠습니다. 그런데 당시 필자가 더욱 놀라웠던 것은 공개토론회를 이끄는 사회자가 한마디 제재하는 코멘트 없이 지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사회가 정말로 함께 이웃하고 있는 ‘소수인의 복지’에 대해 개념이 없는 큰 병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하면서 마음이 많이 무거웠습니다.

그러면서 떠올린 것이 우리 파독간호사ㆍ광부가 살아야 했던 독일 사회는 어떠했을까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지난해 파독간호사ㆍ광부가 독일 땅을 밟은 지 50년이 되는 해여서 다양한 기념행사가 국내외에서 이루어졌습니다. 1960년대 당시 국내 삶의 질이 얼마나 열악하였는지를 다시 반추하기도 하면서, 멀고도 먼 모든 것이 생소하기만 하였을 독일 땅에서 우리 간호사ㆍ광부들이 얼마나 적응하기에 힘들었을까 생각하는 것도 잠시 그들이 얼마나 빨리 유능하고 훌륭한 직능인으로 서 독일 사회에서 인정받고 적응하였는지를 알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 사회의 감동이 있는 현대사의 일부인가 봅니다.

그런데 필자는 잠시 이런 역발상적 가상을 하여 봅니다. 우리 간호사나 광부가 독일 사회에서, 직장에서 공개적으로 인종차별에 따른 임금차별을 받았고, 건강보험을 비롯하여 제반 크고 작은 복지혜택에 차등이 있었다면 어떠했을까 생각하여 봅니다. 직장에서 보이지 않은 차별성이 전혀 없지 않았다고 주장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개개인 간의 다른 생활문화에서 비롯된 범주 안의 일입니다. 공익사회규범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큰 틀에서 우리파독 간호사와 광부들은 독일사회가 마련한 근로기준법에 따라 임금은 물론 모든 사회복지혜택을 동급 동료와 동등하게 받고 누렸습니다. 이를 설명하는 한 에피소드가 떠오릅니다.

1965년 당시 독일사회는 ‘한 가정에 차 한 대 갖기’시대가 막 시작되려던 때입니다. 당시 필자 주변의 지인들 중 자기 차를 소유한 사람보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독일 남부지역 뮌헨에 사는 필자를 찾아 북부독일 탄광지역의 옛 친구가 동료들과 함께 4명이 승용차 한 대를 몰고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이태리로 여행가는 길에 들렸다는 것입니다. 독일 땅을 밟은 지 약 1년 반 후 일이었습니다. 그들 모두는 직장에서 3주간의 휴가를 받아 긴 여행을 즐길 수 있다는 그들의 밝은 모습을 필자는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독일사회가 스스로 제정한 복지 관련 여러 규정들이 예외 없이 지켜지고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었습니다.

우리 간호사나 광부도 독일 사회에서, 직장에서 또는 어떤 계기에 사사로운 개인적 갈등을 경험하고 마음 아픈 상처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물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표현하지 않고 넘기고 있는 것은 독일사회가 큰 틀에서 그들을 법으로 감싸 안아 주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파독 간호사나 광부들이 전해주는 이야기 속에 스며 있는 독일 사회복지개념이 우리 사회에 전하는 메시지를 다시 차분한 마음으로 읽을 시점에 왔다고 봅니다. 특히 우리 주변에는 이미 해외에서 온‘파한근로자’가 우리 사회 구성원의 일부가 된 지 오래되었습니다만 우리 사회는 그들에게 공평 공정한 복지혜택을 주고 있을까 염려어린 생각에서 자유롭지 못해서입니다.

필자소개

이성낙

뮌헨의과대 졸. 프랑크푸르트대 피부과학 교수, 연세대 의대 교수, 아주대 의무부총장 역임.
현재 가천대 명예총장, 의사평론가, (사)현대미술관회 회장, (재)간송미술문화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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