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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책감을 내려놓으며

2014.08.11

캐나다로 이민을 떠나 온 지 벌써 20여 년이 되어갑니다. 캘리포니아의 따뜻한 지방에서의 생활을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갔지만 귀국 생활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다시 캐나다 동부가 얼마나 추운 곳인지도 모르고 떠나왔습니다. 끝없이 쌓이는 눈과 추위에 적응하며 산 20여 년 동안 가끔 죄책감에 시달린 것이 있었는데 요사이 그 괴로움에서 해방된 느낌입니다.

캐나다로 이민을 떠날 무렵 큰아들이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에 입학할 시기로 대학을 가지 않거나 이민을 가지 않으면 한국군에 입대를 해야 할 시점이었습니다. 미국 대학의 학비가 비싸 이민자에게 학비가 싼 캐나다 대학으로 진학시킬 목적이 우선 컸던 것인데 공교롭게도 미국이나 한국에서 큰아들이 대학을 다녀야 한다면 나와 함께 캐나다로의 이민이 불가했습니다. 그 당시 캐나다의 이민법 조건에는 부모가 캐나다로 이민을 할 때 자녀의 나이가 20세를 넘으면 그 자녀는 이민 자격에서 제외되기 때문입니다.

미국 사립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시 한국에 나와 있던 큰아들이 너무 놀기를 좋아한 데다 성실하게 대학에 다닐 것 같지 않아서 사실은 한국 군대를 보낼 생각도 했습니다. 한국군에 입대하여 한국남성으로서의 병역의무를 마치는 것도 바람직하고 또 군대에서 고생을 하면 정신을 차릴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한국군에 입대하여 군 복무를 마치고 제대를 할 때가 되면 큰아들은 나이 문제로 캐나다 이민 자격에서 제외될 뿐만 아니라 미국 시민권자인 막내아들과 함께 이곳으로의 이주가 불가능해서 가족이 떨어져야만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한국군대를 가게 할 것인가, 아니면 캐나다로 같이 떠나야 할 것인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습니다만 큰아들에게서 성실하게 공부하겠다는 약속을 받고 함께 이민 길에 올랐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이민 길은 내게는 후회스럽고 실망스런 생활의 연속이었습니다. 약속을 했던 큰아들은 캐나다에 와서도 공부에 뜻이 있지 않고 노는 데 열중하여 기대 밖의 결과만 보여주었던 것입니다. 계속 발생하는 문제로 나와 마찰을 자주 일으키게 되니 차라리 한국에서 대학과 군복무를 끝내고 그곳에서 살게 했다면 큰 아들의 장래가 더 나았지 않았을까, 또 나는 나대로 아들의 군복무를 마치지 않은 것 때문에 항상 대한민국에 죄를 지은 기분이 들지 않았을 것입니다.

내게는 군대에서 죽은 두 명의 친척 젊은이가 있습니다. 한 명은 월남전에 장교로 참전했다가 사망한 조카입니다.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청운의 뜻을 펼치려 할 즈음 월남에 해병대 장교로 파병되었다가 우리 집안에 깊은 상처를 주고 떠난 조카입니다. 나보다 나이가 많아 오빠 같았던 미남 조카의 해맑은 얼굴, 월남으로 떠나기 전날 밤 조카와 나누었던 정겨운 대화들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또 한 사람은 형부의 동생으로 나와 자주 장난도 치곤 했던 사돈총각인데 군대에서 총을 맞고 죽었습니다. 어떻게 죽었는지 그 진상을 파헤치지도 못하고 군대에서 하는 말, 총알이 장전되지 않은 총인 줄 알고 군인들끼리 장난을 치다가 그만 총알이 발사되어 죽었다고 했습니다. 그 사건은 믿을 수가 없을 정도로 상황과 설명이 의문투성이였지만 군대에서의 죽음은 일반인으로서는 그 억울함을 어찌할 수 없는 사각지대, 군대에서 그렇다면 그렇다고 믿을 수밖에 없는 영역이었던 것입니다.

요즈음 한국군대 28사단 윤 일병의 죽음으로 언론과 인터넷이 떠들썩합니다. 그 허무한 죽음 앞에서 나도 가슴이 아린데 윤 일병의 부모는 어떤 심정일까 괴롭습니다. 상습적인 구타와 인간이기를 포기한 저열하고 수치스러운 가혹행위에 이런 세상도 있는가,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폭행을 당하면서도 구조의 손을 뻗칠 수 없는 군대는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닌지요? 무자비한 폭언과 폭행을 가족에게도 알릴 수 없는 그곳이 민주국가 대한민국입니까? 그야말로 공산국가와 뭐가 다를까요? 이런 집단 폭행 치사는 살인행위입니다. 강력한 형량을 적용해야 할 것입니다. 어디 윤 일병뿐이겠습니까? 또 다른 윤 일병이 부대마다 곳곳에서 고통 받고 있을 것입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 지옥을 왔다갔다 했을 윤 일병의 젊음과 생명은 그 어떤 것으로도 보상될 수 없습니다.

'진짜 사나이' 라는 연예인들의 군대 입대기와 훈련 프로를 즐겨보고 있는데 방송에 비치는 군대 생활은 규율과 고된 훈련을 이겨내는 젊은이들의 패기와 인내로 나를 감동하게 했습니다. 한창 젊음을 발산하며 즐겨야 할 청년들이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있는 모습에서 대한민국의 미래가 밝아 보였고 거기에 수십 년 전과 달리 군인들의 배급 물품이나 식사가 너무 훌륭해져서 방송을 보는 내내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았습니다. 먹는 거라도 잘 먹이니 얼마나 다행인가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런데 방송에서 보이는 그게 모두가 아닌가 봅니다. 힘든 군대 생활에서도 훈훈한 인정이 보이던 방송 프로는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모르겠습니다. 잘 먹이고 잘 입히는 것만 중요한 게 아니고 젊은이들의 내면의 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큰아들의 이민을 결정하였을 때, 군대에서 죽은 나의 친척들을 생각했습니다. 이제야 솔직하게 고백하지만 나 역시도 아들이 군대에 가서 죽임을 당할까봐 걱정했습니다. 독불장군인 데다 고집이 센 큰아들이 군대에 가서 적응을 못하여 맞아 죽지나 않을까, 싸우다 욱하는 성격 때문에 누구에게 해를 끼치지나 않을까 우려했던 것입니다.

어쨌든 이민을 함으로써 큰아들이 한국의 병역의무를 마치지 못하고 떠나온 것에 대하여 나는 항상 떳떳하지 못했고 조국에 부끄러울 때가 많았습니다. 군대를 빼려고 의도적으로 이민을 한 것도 아니건만 오랜 시간 죄책감에 시달렸습니다. 그러나 이제 윤 일병의 죽음을 보며 차라리 젊은이들을 때려서 죽이는 한국군대 안 보냈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윤 일병의 영혼에게도 그의 부모에게도 죄송하지만 이번 사건으로 나는 더 이상 죄책감을 느끼지 않기로 했습니다.

필자소개

오마리

미국 패션스쿨 졸업, 미국 패션계에 디자이너로 종사.
현재 구름따라 떠돌며 구름사진 찍는 나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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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온탕 오가는 백년대계

2014.08.08


한국인은 모두 교육 전문가, 입시 전문가라고 말을 합니다. 입시가 그만큼 중요한 인생사라는 뚯이죠. 2~3년 쯤 전에 길가의 재활용 분리수거장에서 중학교 국어 교과서를 주워 집에 갖고 가서 읽다가 놀랐습니다. 담장을 없앤 학교를 찬양하는 글이 교과서의 비교적 앞쪽에 삽화와 함께 길게 실려 있었습니다. ‘담장을 없애고 난 후 좋은 점이 무엇일까요’라는 식의 일방적인 질문도 보였습니다.

요즘 학교 모습이 어떤가요. 성추행이다 뭐다 해서 범죄의 표적이 되자 담장을 높인 학교에 인력이 배치되어 출입자를 감시하고 학교 주변에 모니터가 설치되었습니다. 아기를 데리고 운동장에라도 들어갈라치면 무엇으로 힘을 쓸까 걱정스런 연로한 보안관이 “왜 왔냐”고 꼬치꼬치 캐묻습니다. 학교 운동장을 동네 주차장으로 쓰자는 발상까지 나오던 나라입니다. 한치 앞을 못 내다보는 교육현장의 증거들입니다.

공원이 부족한 한국적 현실에서 운동장은 동네 사람들이 운동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학생과 교사 외에는 출입하지 못하는 외국의 예를 들먹일 것도 없이 운동장은 기본적으로 교육의 성역인 학교 고유의 것입니다. 너무 넓은 운동장이 탐난다면 운동장을 용도변경해야죠.

초중고교는 아니지만 세계적인 건축가 도미니크 페로가 설계한 이화여대의 복합 캠퍼스가 떠오릅니다. 모임 때문에 몇 번 가 본 교정은 볼 때마다 참 예술적이어서 경탄했습니다. 그런데 그 소중한 금남(禁男)의 역사적 교정이 관광지로 등장해 뭇 관광객의 무차별한 사진 촬영에 노출되는 것이 씁쓸합니다.

교육이 지표 없이 흔들리는 모습을 여기저기서 봅니다. 특목고와 자율형 사립고 논란도 그렇고 교육부의 방침에 순응한 듯 입학생의 25퍼센트를 차지하는 정시모집에서 논술을 폐지하고 100퍼센트 수능으로 선발한다는 서울대도 그렇습니다. 1997년 대학입시에서 논술을 도입한 것은 19세기 초 나폴레옹 시대에 만든 200년 전통의 프랑스 대입자격시험 바칼로레아 등의 창의적인 교육 방식을 원용하자는 목표였습니다. ‘역사는 인간에게 오는 것인가 아니면 인간에 의해 오는 것인가?’ ‘우리는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만을 진리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자유는 주어지는 것인가 아니면 싸워서 획득해야 하는 것인가?’ 라는 문제처럼 평소에 깊게 탐구하지 않고서는 쓸 수 없는 교육을 본받자는 것이었죠.

논술 덕분에 활자이탈 세대인 대입 수험생들은 상위권 대학을 겨냥하며 교양서적과 신문을 탐독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논술이 사교육을 부추긴다는 교육부 주장에 20년도 못 가 달달 외우는 주입식 암기교육으로 되돌아갈 수는 없죠. 수능의 변별력을 보완하면서 나름대로 대학의 특성도 살리고 고교 교과과정 안으로 정착되어가던 통합교과형 논술을 흔드는 냉·온탕 왕복의 모습입니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 당시에 교육부를 없애려고 했습니다. 교육부가 뭐 하는지는 국민들도 잘 모른다는 불만이었을 것입니다. 역사교과서 논쟁, 수능시험의 변별력 시비, 전교조 문제, 특목고와 자사고 논란, 학교 ‘왕따’와 폭력. 어느 갈등 하나 해결의 조짐은 안 보입니다.

성공회대 총장 출신인 이재정 경기도 교육감이 최근 경기도 안산시의 신흥 명문인 동산고의 자사고 지정을 취소하여 교육부의 결정만 남겨 놓았습니다. 안산 동산교회 김인중 목사가 설립한 동산고는 해마다 서울대에 20~30명이 진학하는 학교입니다. 서울대 합격이 교육의 전부가 아니지만 일단 동산고는 경기도에서 수월성 교육에 가장 성공한 학교라고 평가받을 만 합니다. 이런 수월성의 ‘블랙홀’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여러 가지 잣대를 들이대 일반고로 평준화하려는 시도에 학부모들은 세종시의 교육부로 가서 강력하게 항의했습니다.

답답합니다. 인권조례다 뭐다 해서 교사는커녕 경찰관들도 의심스런 젊은이조차 마음대로 조사할 수 없는 세상입니다. ‘학폭’이 28사단 고 윤 모 일병 폭행 살해 같은 무서운 병영의 폭력으로 자라납니다. 교육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걸핏하면 어릴 때부터 공부만 강조해 인성이 안 키워졌다며 공부와 인성을 딴 세상의 것처럼 분리하지만 제대로 된 공부는 인성을 마땅히 포함하는 것이죠. 승객을 팽개치고 도주한 세월호 선원들, 선장 이준석, 유병언 사주와 그의 후계자라는 차남 유혁기는 누가 교육시켰나요? 세월호 침몰로 이 나라 교육의 실패가 그대로 드러났다고 봅니다. 학력도 인성도 놓친 것이죠.

뻔뻔한 정치인들이 고개를 빳빳하게 쳐들고 ‘민생’을 염불처럼 외면서 평준화를 주장하지만 제 자식들은 왜 비싼 국내 외국인 학교에 보내거나 외국행을 택하게 한 것일까요? 비교우위를 믿는 영악함 때문일 겁니다. 그렇다면 돈이 모자라 자녀를 외국에 못 보내는 부모들은 국내에서라도 좋은 교육을 실시한다고 믿는 학교에 자녀를 보낼 권리가 있습니다.

국내에서 아무리 학교가 못 크게 막는다고 해도 해외의 경쟁 학교들은 쑥쑥 자라고 있습니다. 급부상하는 중국의 교육열은 폭발적입니다. 서울대를 없애면 교육의 모든 게 해결된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서울대를 없앤다고 미국의 하버드나 MIT, 영국의 옥스퍼드, 중국의 칭화대, 일본의 동경대 같은 명문대가 사라지나요.

우물안 개구리들처럼 글로벌 경쟁을 보지 못하고 ‘두더지 잡기’ 오락처럼 고개를 내밀면 때려잡으려는 식의 ‘교육 협박’은 미래지향적인 창조적 교육을 망치는 쇠망치일 뿐이라고  믿습니다.

필자소개

김영환

한국일보, 서울경제 근무. 동유럽 민주화 혁명기에 파리특파원. 과학부, 뉴미디어부, 인터넷부 부장등 역임. 우리사회의 개량이 글쓰기의 큰 목표. 편역서 '순교자의 꽃들.현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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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야, 조선족 사토라레

2014.08.07


얘들아,

<사토라레> 라는 일본 영화가 있다.

‘사토라레’란 자기 생각이 주변 사람들에게 모두 들리는 사람을 말하는데, 인구 천만 명 당 한 명 꼴이라고 한다. 영화 얘기다.

하지만 본인은 그 사실을 모른다. 심리적 안정을 위해 사람들이 보호해 주기 때문이지.

이 영화가 갑자기 생각난 건 왜일까...

엄마는 서울에 와서 사토라레가 된 기분이다... 게다가 마음을 다 읽힌다는 약점이 잡혀 보호받기는커녕 조롱을 당하는 ‘한국형’ 사토라레...

사람들이 엄마 마음을 다 아는 것 같고 그래서 엄마를 놀리는 느낌이 들어...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이런 일들이!

몇 차례 '멘붕'과 뒤통수를 맞았고, 지금도 등짝에 칼이 몇 개 꽂혀 있다…

엄마가 한국에서 얻은 별명이 조선족이라고 했지?

엄마에게 '조선족'이란 '사토라레'의 다른 표현, 같은 뜻의 별명이라는 걸 요즘 깨닫는다.

엄마는 지나칠 정도의 역지사지, 타인에 대한 이해와 공감력이 있지만,

정작 나 자신을 '타자'의 위치에 놓고 역지사지하거나 공감해 주진 못한 것 같다.

내 손톱 밑의 가시는 아예 안 돌보고 남의 염통 썩는 걱정을 너무 많이, 거의 습관적으로 하고 있는 거지...

네 아빠를 비롯해서 주변 사람들을 이해하느라, 호주에서 한국으로 나라를 바꿔 가면서 사람들을 이해하느라, 거의 '사이코 급수'의 사람들한테까지 '이해의 오지랖'을 넓히느라 급기야는 이해 주체인 엄마의 존재가 소실점처럼 사라져 버린 느낌이다...

그래..., 그렇긴 해도 사토라레로 당분간 지내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서울에 온 후 엄마는 어떤 경험을 통해서도 배우려는 자세로 살고 있다...

어떤 상처도 경험으로 받아들인다면 성숙과 성장의 거름이 될 수 있으니...

그렇게 말하는 것에서 벌써 엄마가 상처를 무지 받고 있고, 상처로 인해 힘들어 한다는 걸 알 수 있다고?  

후덜덜~~

엄마의 마음이 너희들에게도 ‘들려’ 버렸구나. 엄마는 어쩔 수 없는 사토라레구나…

한국에 온 지 만 1년, 인터넷상의 ‘무차별 몽둥이’서껀 아주 가까운 사람들에게 ‘린치’를 서너 차례 당한 후 상처 핥는 짐승마냥 ‘블로그 동굴’에 웅크린 채 시드니의 제 아이들에게 쓴 편지입니다.

차 사고 났을 당시에는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아 털털 털고 집에 왔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여기저기 쑤시고 후유증에 괴로운 것과 비슷한 증상입니다.

불쌍한 처지로 모국에 돌아온 저를 왜 못 잡아 먹어서 안달인가요. 좋다고 먼저 다가올 땐 언제고 차갑게 등 돌리는 것으로도 모라자 뒷담화 '까는' 것은 뭐며, 동냥은 못 줘도 쪽박은 깨지 말랬다는데 이 따위 글도 글이냐며 불러다 '쫑코'주는 출판업자의 태도에는 어떤 의도가 깔린 건지요. 기부터 죽이고 보자는 겁니까. 종로에서 뺨 맞고 저한테 눈 흘기는 사람들은 또 뭔가요.

내 처신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 생각만 해도 신물납니다. 이미 신물나게 많이 했으니까요. 설혹 그렇다 해도 사람이 사람에게 그런 식으로 무례하고 잔인해서는 안 되는 겁니다. 주는 대로 받는다는 말도 있지만 저는 그런 식으로 준 적 없습니다.

저는 자기 반성적인 사람이며 성찰적 자기 객관화를 끊임없이 해 온 사람입니다. 너무 해서 탈인 사람입니다.  

92년에 한국을 떠나 이 땅과 22년 갭을 가진 ‘돌포(돌아온 해외동포)’로서 작금 한국의 키워드는 ‘무관심과 폭력’이라고 정의하고 싶습니다.

무관심이 병균처럼 ‘잠복’해 있다가 폭력이란 질병이 ‘창궐’하는 식입니다.

일상에선 그 둘을 ‘무기력’이라는 두꺼운 껍질이 싸고 ‘냉소’라는 끈으로 묶어 두고 있습니다.

가정이라는 가장 작은 울타리에서부터 나라의 테두리를 지킨다는 군대에 이르기까지 기막힌 폭력이 만연해 있으니 공기로 숨을 쉬듯, 매 순간 폭력을 들이마시고 내뱉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김해 가출 여고생 살해 사건과 윤일병 사망 기사는 가슴이 오그라들어 끝까지 읽지도 못했고 그 이후 지금까지 아예 신문을 안 봅니다.

이런 지경이니 20년 전 가치관을 가진, 도통 현실 감각 떨어지는 어리바리한 ‘조선족’ 하나쯤 갖고 노는 거야 거의 애교 수준이고 놀다가 제자리에 갖다 놓지 않는다 한들 누가 뭐랄까요.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사토라레’인 것 같은 섬뜩한 느낌,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약자이자 강자, 갑이자 을이라는 잠재적 폭력관계에 사회적 그물코를 꿰고 있는 한 저처럼 등짝에 칼 몇 개 꽂고 꽂히는 것은 일도 아닐 것입니다.

사회가 거칠어도 너무 거칩니다.

누구는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하고, 내가 잘 아는 또 다른 누구는 ‘효자손으로도 때리지 말라’ 했거늘.

필자소개

신아연

이화여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1992년 7월, 호주로 떠났다. 시드니에서 호주동아일보 기자, 호주한국일보 편집국 부국장으로 일하다 2013년 8월, 한국으로 돌아와 자유기고가, 강연자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는 중앙일보, 여성중앙, 과학과 기술 등에 에세이를 연재하며, KBS 라디오에 출연 중이다.    
낸 책으로 <심심한 천국 재밌는 지옥> <아버지는 판사 아들은 주방보조>, 공저 <자식으로 산다는 것>이 있고, 2013년 봄에 <글 쓰는 여자, 밥 짓는 여자>를 출간했다.
블로그http://blog.naver.com/shinayoun

게스트칼럼 / 유능화

'연민의 땅 네팔'


2011년에 이어 두 번째로 네팔 땅을 밟게 되었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28몀의 팀원들이 여름휴가 일정을 의료봉사 일정에 맞추어 히말라야 산그늘로 오게 된 것입니다. 벽돌로 지은 국제공항 청사는 자연친화적이기는 하지만 네팔의 빈약한 실정을 반영하는 것 같아서 언제 보아도 약간 씁쓸합니다. 이번 사역지는 덩더리 근처로 네팔 서쪽 끝이면서 인도와 접해있는 국경지역입니다.

진료를 하게 된 곳은 학교인데 마침 학생들이 학교 지붕 위 옥상에서 시험을 치르는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네는 아무리 형편이 어려웠어도 지붕 위 옥상에서 시험을 치르지는 않았는데 네팔에서는 다반사로 이루어지는 일인 모양입니다. 신기한 광경이기도 했지만 네팔의 어려운 경제 사정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첫날 주요 진찰 대상자는 HIV 감염자들입니다. HIV는 Human immunodeficiency Virus의 약자인데 쉽게 말해 에이즈 바이러스입니다. 간염 바이러스 보균자가 간염 환자가 아니듯이 HIV 감염자는 에이즈 환자는 아닙니다. 다만 치료가 안 되는 경우 종국에는 에이즈로 변하게 됩니다. HIV 감염자는 차트에 빨간 십자가 표시를 했습니다. 겉보기에는 멀쩡한데 평생을 에이즈에 대한 공포를 안고 살아야만 합니다. 네팔에서는 마땅한 직업을 구할 수 없어서 많은 네팔인들이 인도로 갑니다. 거기서 살면서 성병을 얻은 후 네팔로 돌아와 부부관계를 가지니 부녀자는 물론 태어나는 신생아들까지 에이즈에 노출되는 것입니다.

HIV에 감염된 아이들은 평생 ART라는 약을 먹게 됩니다. 그것도 아침저녁으로 먹어야 합니다. 우리는 감기가 들어 며칠 동안 약을 먹는 것도 힘들어하는데, 그네들은 평생 그 약을 먹어야 하고 조금이라고 게을리하게 되면 약의 용량을 올려야 하는 어려움에 직면하게 됩니다. 그나마 네팔 정부는 워낙 가난해서 WHO(세게 보건 기구)의 도움을 받아서 ART를 나눠주는 정도밖에 할 수 없다고 합니다.

HIV 감염자들을 진찰할 때 느끼는 감정은 바로 ‘컴패션(compassion, 憐愍)’ 그 자체입니다. 엄마 손을 붙잡고 오는 HIV에 감염된 꽃봉오리 같은 아이들을 대하면 나도 몰래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부모를 잘못 만나서 자기도 모르게 수직 감염된 아이들. 자칫 잘못하면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기 어려울 수 있는 이 아이들에 비하면 우리나라 어린이들은 얼마나 행복한지를 느끼게 됩니다. 맹자가 말한 측은지심(惻隱之心)이 절로 발동되어 좀 더 세세하게 진찰하고 싶고, 필요한 약도 더 주고 싶어집니다.

임시 진료소로 사용하고 있는 공간의 옆은 넓다란 잔디밭입니다. 어린아이들이 신 나게 축구를 하면서 놀고 있습니다. 축구는 전 세계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스포츠인가 봅니다. 세계의 지붕이라 할 수 있는 히말라야 어린이들도 축구를 하는 동안 걱정 근심을 잊고 즐거움에 젖어듭니다. HIV에 감염된 어린이들까지도 즐겁게 만드니 축구공의 위력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네팔로 가는 기내에서 2030년까지는 에이즈가 근절될 수 있다는 희망적인 기사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인천으로 돌아오는 기내에서는 말레이시아 여객기 추락으로 탑승했던 에이즈 전문가 100명이 사망했다는 슬픈 기사를 접했습니다. 이러저래 지난 한 주간은 에이즈를 잊을 수 없는 주간이었습니다. 자기들의 미래가 어떤지도 모르고 신 나게 뛰어놀던 네팔 아이들 모습이 눈에 아른거립니다. 공을 찰 때마다 해피 바이러스가 묻어 나와 HIV를 격퇴하고 더 나아가서는 에이즈의 공포로부터 벗어나는 판타지를 꿈꾸어 봅니다.

필자소개

유능화


경복고, 연세의대 졸업. 미국 보스톤 의대에서 유전학을 연구했다. 순천향의대 조교수, 연세의대 외래교수를 지냈으며 현재 서울시 구로구 온수동에서 연세필 의원 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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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人文學 Humanities)

인간과 인간의 근원문제, 인간의 사상과 문화에 관해 탐구하는 학문이다.

자연 과학과 사회 과학이 경험적인 접근을 주로 사용하는 것과는 달리, 분석적이고 비판적이며 사변적인 방법을 폭넓게 사용한다.

 

고전학

역사학

언어학

문예학

음악사학

공연예술학

연극

무용

철학

종교학

미술사학

 

 

철학자 플라톤

 

서양에서 인문학에 대한 연구는 시민들에 대한 광범위한 교육의 기준으로서, 고대 그리스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로마 시대 동안에, 4과(음악, 기하, 산술, 천문)과 함께, 3학(문법, 수사 그리고 논리)을 포함하여, 7가지의 자유 인문 학문의 개념이 만들어졌다.

 

이들 과목들은 인문학에서 기술들 또는 "행위의 방법들"로써 강조되어, 중세 교육의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르네상스 시대에 하나의 중요한 전환이 발생했으며, 그때 인문과학은 전통적인 분야로부터 문학 및 역사와 같은 분야로의 전환에 상응하는, 실용적이기보다는 오히려 학문적인 과목으로 간주되기 시작하였다.

 

20세기에는, 민주사회에서 평등원칙에 더 적합한 용어로써, 인문과학을 재정의하려는 포스트모더니즘 운동에 의해 재차 논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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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족의 공중의식

2014.08.06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참 많아졌습니다. 특히 한강변은 자전거 타는 사람들로 넘쳐납니다. 자전거 족은 낮에도 있지만, 황혼녘에 특히 많습니다. 일과를 끝내고 즐기기에 좋은 스포츠입니다. 자전거를 타는 연령층은 폭넓지만 젊은이보다 오히려 중장년층이 많은 것 같습니다. 힘차게 페달을 밟으며 한강변 자전거 길을 달리는 모습은 정말 건강해보입니다.

강서구 가양동에 구암((龜巖)공원이 있습니다. 조선조 명의 허준(許浚)의 공적을 기려 그가 태어난 곳에 조성된 근린공원입니다. 또 구암공원 근처에는 화가 겸재(謙齋) 정선(鄭)이 말년에 이곳 현감을 지낸 것을 기념하여 세운 ‘겸재정선 기념관’도 있습니다. 공원, 허준박물관, 겸재정선기념관이 모두 산책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런 정감 있는 분위기 때문인지 남녀노소 시민들이 즐겨 이곳을 찾아옵니다.

이들 공원과 한강 수변 산책로 사이에 올림픽대로가 지나갑니다. 터널이나 구름다리를 통해 한강 강변으로 나가면 유유히 흐르는 강물, 행주산성, 강 건너 하늘공원과 절두산 그리고 그 너머로 북한산과 남산이 시원하게 시야로 들어옵니다. 바로 300년 전 겸재의 그림에 등장하는 풍광입니다. 그 경치가 너무 시원해서 요즘 같이 여름 행락철에는 사람들이 올림픽도로를 건너 강변으로 나가 걷거나 자전거를 탑니다.

근린공원에서 한강변으로 나가거나 반대로 돌아올 때에 올림픽대로를 건너는 방법에는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두 개의 터널과 한 개의 구름다리를 이용해야 합니다. 터널 길이야 문제가 없지만 구름다리 길을 이용하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구름다리는 높은 계단을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서울시가 사람들의 통행을 돕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설치해 놓았습니다. 노약자와 어린애를 데리고 나온 산책객들에게 엘리베이터는 참으로 편하고 유용합니다.

문제는 이 엘리베이터가 점점 자전거 족의 이동수단으로 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건장한 장년 남자 2명이 자전거를 끌고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오면 엘리베이터 안이 가득합니다. 그 기세에 엘리베이터를 타려는 산책객들은 다음 차례를 기다리게 되고, 이미 타 있는 사람들은 자전거를 밀고 들어오는 자전거 족의 기세에 눌려 구석으로 물러서서 웅크리고 있어야 합니다. 특히 노약자에겐 자전거가 위협적인 무기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이 엘리베이터는 자전거를 태울 요량으로 설계한 것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그런 세세한 용도까지 생각하지 않고 서울시가 설치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기에 엘리베이터 입구에, 별로 잘 보이지 않는 조그만 안내표를 붙여 놓았습니다. ‘자전거를 타시는 분들은 보행자를 위해 계단을 이용하여 주십시오.’

그러나 자전거 족들은 거의 그런 안내 사인엔 관심이 없습니다. 일반 보행자가 얼마나 위축되는지 전혀 느끼지 못한 채 자전거를 마구 밀어대며 엘리베이터로 들어옵니다. 공중도덕의 기준으로 보아도 무례해 보일 때가 많습니다.

자전거 타는 일은 일종의 스포츠인데, 모두가 안전하게 통행할 수 있는 터널 길을 이용하지 않고 굳이 좁은 엘리베이터에 자전거를 끌고 들어오는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들의 구릿빛 얼굴은 건강미가 넘쳐 보이지만, 그들의 행동에는 스포츠 정신도 없고 한 조각의 공중 도덕이나 시민 의식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냥 무심코 지나가는 사람에겐 자전거 족이 아무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엘리베이터를 자주 이용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듭니다.
엘리베이터는 보행자 전용으로 확립시켜줘야 한다고 봅니다. 형식적으로 안내문을 붙이지 말고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잘 보이게끔 안내표지를 설치해서 그들이 스스로 자제하도록 서울시가 유도해야 할 것입니다.

서울시는 근린공원을 비롯하여 시민편의 시설을 정말 잘 만들어 놓았습니다. 편의시설을 지을 때 서울시는 여러 가지를 고려하리라고 봅니다. 그러나 설계단계에서뿐 아니라 완공 후에도 시민들이 이용할 때 어떤 문제가 생기는지 면밀히 관찰하고 드러나는 문제점을 체크해야 합니다.

필자소개

김수종

한국일보에서 30년간 기자 생활. 환경과 지방 등에 대한 글을 즐겨 씀.
저서로 '0.6도' '다음의 도전적인 실험' 등 3권이 있음.

박대문의 야생초사랑

왜박주가리(박주가리과)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 허공, 허공뿐입니다. 어디론가 손을 뻗쳐 잡아야 합니다. 한들거리는 바람결 타고 이리로 저리로 흔들리는 반동으로 더 멀리 더 높게 손을 뻗쳐 봅니다. 가녀린 줄기에 앙증맞게시리도 작은 꽃을 피워대는 꽃! 붉은 자줏빛의 왜박주가리 꽃이 그리움 맺힌 절규의 몸짓으로 허공을 더듬습니다. 언젠가 줄기 끝에 무엇인가가 잡히는 그날까지 끊임없는 자맥질과 그네타기를 반복해야 합니다.

필자소개

박대문

환경부에서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과장, 국장, 청와대 환경비서관을 역임했다.
우리꽃 자생지 탐사와 사진 촬영을 취미로 삼고 있으며,
시집 『꽃벌판 저 너머로』, 『꽃 사진 한 장』, 『꽃 따라 구름 따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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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생 절반, 10억 원 그리고 감옥’

2014.08.04


최근 나는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는 두 분이 같은 통계를 인용해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한 분은 내가 다니는 성당의 신부님이고, 다른 한 분은 젊은이들의 인성교육에 여생을 바치고 있는 교육계의 원로이십니다.

초등생 16%, 중등생 33%, 고교생 47%가 문제의 통계수치입니다. ‘10억 원이 생긴다면 감옥에 가겠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했다는 초중고교 학생의 비율입니다. 포털에서 ‘고교생, 10억원, 감옥’이라는 검색어를 치면 ‘고교생 절반, 10억 원 생기면 감옥에 가겠다’는 제목의 글들이 뉴스, 카페, 블로그 등에서 와르르 쏟아집니다.

위의 수치는 작년 10월 흥사단 투명사회운동본부 윤리연구센터에서 실시한 청소년 정직지수 조사결과이자 가장 최근의 수치인데 2012년의 12%, 28%, 44%보다 높아졌다는 설명을 덧붙이고 있습니다.

비슷한 내용의 조사를 흥사단 외에 한국투명성기구에서도 실시하고 있었습니다. 해마다 수치는 올라가고, 상위 학교로 올라갈수록 수치가 높아지는 현상도 비슷했습니다. 학교등급이 오를수록 배 가까이 늘어나니 그런 비율이라면 대학생은 80%, 대학원 졸업할 때쯤이면 감옥행을 감행할 학생이 100%에 달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린이는 어른의 거울이라고 합니다. 우리 사회의 부패현상이 어린 학생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그런 정도인가 하는 데에 이르면 걱정이 커집니다. 신부님과 교육계 원로께서도 우리 사회의 부패구조의 심각성을 염려하면서 경쟁위주의 사회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마음 한 편에서 이런 조사결과가 얼마나 맞는 것인지, 이런 조사를 왜 하는지에 대한 의구심을 떨칠 수 없었습니다. 무릇 여론 조사는 대상자가 잘 숙지하고 있는 내용을 물어야 정확한 답변이 나올 것입니다. 초중고생들은 10억 원의 화폐적인 가치나, 감옥의 실재적인 의미에 대해서 이해를 갖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가 아니겠습니까?

정확한 이해도 없고, 경험한 적도 없고, 또 결코 경험해서도 안 되는 내용에 대한 질문에 정확한 답변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다분히 작위적이고, 보기에 따라서는 어린 학생들을 희롱한다고 할 수 있는 이 질문에 학생들도 장난삼아 또는 호기심이나 영웅심으로 아무렇게나 한 대답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질문 가운데는 ‘인터넷에서 영화나 음악파일을 불법 다운로드 한 적이 있나?’ ‘시험을 보며 커닝한 적이 있나?’ ‘친구에게 참고서를 안 빌려주려고 거짓말을 한 적이 있나?’와 같이 나이에 어울리고, 자연스럽게 체험할 수 있는 유효한 질문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조사 결과를 보도하는 언론은 하나같이 ‘고교생 절반이 10억 원을 번다면 감옥에도 간다’는 제목을 답니다. 가장 학생답지 않아서 가장 자극적인 제목입니다. 그리고 짐짓 학생들을 타락케 한 현실을 개탄합니다.

그 질문은 어린 학생들에게 던지기에는 너무 난폭한 질문입니다. 조사 결과 또한 난폭한 일반화의 위험이 큽니다. 조사결과가 비록 정확하다 하더라도 보도자료보다는 참고자료로 남겨두는 편이 더 교육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임 병장의 총기난사 사건 때 어느 신문은 ‘상관을 쏴 죽이고 싶은 적이 있었다’는 제목의 기사를 전역 사병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 결과라며 보도했습니다. 군대에 갔다 온 사람 중에서 심정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사람도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훨씬 더 많은 사람들에게는 그런 감정은 이미 극복됐거나 한 때의 추억으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학생들을 부패 예비 집단으로 인상 지우고, 사병들에게 하극상을 자극하며, 범죄와 인명을 가볍게 여기게 하는 여론조사 설문이나 언론보도는 자제돼야 한다고 봅니다. ‘말이 씨가 된다’는 속담도 있지 않습니까?

필자소개

임종건

74년 한국일보기자로 시작해 한국일보-서울경제를 3왕복하며 기자, 서울경제논설실장, 사장을 지내고 부회장 역임. 주된 관심 분야는 남북관계, 투명 정치, 투명 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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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학벌만 있고 학파가 없다

2014.08.01


독일 대학에서 겪은 에피소드입니다. 필자가 독일에서 처음 입학한 대학교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하이델베르크 대학교입니다. 장구한 역사만큼 고풍스럽고 아름답기로 으뜸가는 옛 도시에 있는 학교입니다. 그런데 여름 학기가 시작되자 독일 전국은 물론 해외에서 몰려오는 관광객이 대학 도시의 정취를 망가뜨렸습니다. ‘붕 떠 있는’ 분위기가 처음에는 활력을 주는 것 같아 좋았습니다만, 시간이 지나자 왠지 싱숭생숭해져 차분한 대학 정서와는 거리가 생겼습니다.

마침 지도교수님과 대화를 하던 중 지나가는 이야기로 관광 도시 분위기가 학업에 방해를 준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랬더니 교수님께서 필자 의견에 동감하며 조용한 다른 대학교로 옮기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하는 것이었습니다. 입학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 전학을 한다는 게 왠지 ‘부도덕’한 행동인 것만 같아 걱정이 앞섰습니다. 그러면서도 내심 학생 마음대로 대학교를 옮길 수 있다는 사실이 생소하기만 했습니다.

며칠 후, 필자를 만난 외국 학생 담당자가 어느 대학교를 염두에 두고 있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입학시켜준 대학을 의리도 없이 떠난다는 게 부담스러워 우물쭈물하는 필자를 보고 담당자가 말했습니다. “대학을 옮기는 것은 학생에게 주어진 큰 권리이며, 이는 독일 대학이 추구하는 학문의 자유(Akademische Freiheit)에 기초한 것이니 아무 부담 갖지 말고 말하세요.”

그래서 필자는 먼저 얘기를 꺼낸 책임도 있어 하이델베르크보다는 조용한 대학이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담당자는 남쪽 지방에 있는 튀빙겐 대학과 북쪽 지방에 있는 마르부르크 대학을 추천해주었습니다. 필자는 마르부르크가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6~1546)가 세운 첫 대학교라는 말에 대학 도시(Universitaet Stadt) 마르부르크로 옮기기로 했습니다.

당시엔 ‘학문의 자유’라는 개념도 별로 와 닿지 않던 때라 학생 마음대로 대학교를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습니다. 그러나 대학 생활을 하면서 차츰차츰 그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객관성보다는 주관적 이론이 본질인 철학이나 인문학을 전공하는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지내면서 ‘학문의 자유’가 대학 교육철학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실감했습니다. 이를테면 어떤 교수가 펼치는 이론에 따라 학생들이 철새처럼 대학교를 자유롭게 옮겨 다니는 것입니다. 그중엔 ‘영구 추종자’가 되어 스승의 학문을 계속 연구하는 학생도 많습니다. 그렇게 영역을 더욱 넓혀가니 이른바 ‘학파’가 자연스레 형성되고 발전하는 것입니다.

독일에서 전문의 수련 과정을 밟을 때 겪은 일입니다. 한 학회에 참석한 필자가 토론 시간에 질문을 하려고 마이크 앞에 서자, 사회자가 어느 교수 밑에 있는지 밝히라는 것이었습니다. 필자가 스승의 성함을 밝히자 사회자가 말했습니다. “아, 그럼 나제만(Nasemann) 학파이니 토론 대상인 질병에는 00계통 약을 적용하지 않겠군요.” 정확한 지적이었습니다. 이처럼 의학계에서도 학파에 따른 치료 지침이 따로 있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래서 학파 중심의 독일 대학교에는 입학식은 있어도 아예 졸업식이란 행사가 없습니다. 특히 전공 분야에서 어느 대학교 ‘출신’이란 표현은 쓰지 않습니다. 어느 교수의 문하생인지만 있을 따름입니다.

우리 역사를 보면 조선시대에도 여러 학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학파는 곧 당시 권력 구조와 밀착해 정쟁을 일삼곤 했습니다. 사색당파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와 같은 전통이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일본 학벌주의까지 덧붙어 오늘날에 이어졌습니다. 즉 끼리끼리의 ‘학벌 맹종주의’로 변질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은 ‘학연·지연·학벌’이 의리라는 모호한 개념 아래 더욱 증폭되어 비논리적이고 반사회적 병폐로 우리 사회를 수렁에 빠트리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대형 부정부패의 악폐도 많은 경우 ‘학벌 맹종주의’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다음 세대를 위해서라도 이를 극복할 지혜를 모색해야 합니다. 아울러 이는 아마도 우리 사회에 걸맞은 ‘학문의 자유’ 개념을 개발정립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게 옳을 것입니다.

필자소개

이성낙

뮌헨의과대 졸. 프랑크푸르트대 피부과학 교수, 연세대 의대 교수, 아주대 의무부총장 역임.
현재 가천대 명예총장, 의사평론가, (사)현대미술관회 회장, (재)간송미술문화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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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루와의 전쟁: 그 내키지 않은 결말

2014.07.31


노루를 보호동물로 보느냐, 아니면 유해동물로 보느냐를 놓고 농민들과 환경단체들이 논란을 벌여오던 중, 제주도 당국은 작년부터 노루를 유해동물로 선포하고 노루의 포획이나 사살을 지원하기로 하였습니다. 제주도 전체로 농가에 피해를 주지 않을 적정 수준의 노루 개체 수는 3천 정도임에 비해 실제 개체 수가 2만이 넘어 노루들이 먹을 것이 모자라 농가로 침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합니다. 그러므로 이 대책은 농가 피해를 막기 위한 하나의 고육지책이었다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지난 일 년 동안 실제 포획 또는 사살된 노루가 수백 두밖에 안 되어 노루 피해 방지책은 일단 실패로 끝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농가별로 개별적으로 노루와의 전쟁을 치를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저희 집은 해발 250미터의 산중이라 노루가 어린 나무들을 공격하러 오기에 딱 좋은 위치에 있는 셈입니다. 노루는 연약해 보여도 높이 그리고 빨리 뛸 수 있는 강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노루가 침입하지 못하게 집 마당 주위에 2미터 높이로 노루 망을 쳤지만 노루는 또한 영리한 동물이라 어디로든 틈을 비집거나 담을 넘어서 들어옵니다.

방어책 2단계로 나무에 비닐을 매달아 나풀거리게 하거나 허수아비를 세워 나무에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한편, 사다리, 쇠스랑, 갈고리와 같은 장애물을 나무 근처 곳곳에 늘어놓았습니다. 이런 장치들이 처음에는 대 노루 전(戰)에 어느 정도 효과를 보였지만 시일이 지나면서 노루는 이 모든 장애물을 비웃는 듯 홀연히 나타나 매화 밭의 어린 나무 순들을 따먹고 사라지곤 하였습니다.

조석으로 어스름을 틈타 혹은 한밤의 어둠을 택해 침입해 오는 노루를 더 이상 막을 수 없어 저와 아내는 나날이 안달하면서 지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거의 매일 밤 밭쪽으로 나가 경계를 한 덕에 노루의 침입이 다소 줄어들기는 하였지만 그들의 입에 닿을 높이에 있는 매화 순들은 여지없이 따먹히고 심한 경우는 나무 자체의 생명이 위협받을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런 상황을 맞아 더 이상 노루와의 전쟁이 일방적인 승리를 가져올 수 없다는 전망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제 대 노루 전을 포기하느냐, 아니면 다른 어떤 특단의 조치를 취하느냐로 고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노루와의 전쟁으로 우리가 지쳐 있을 즈음 저는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집 매화 순을 따먹고 꽃밭을 짓밟는 노루는 밉지만 길에서 만나는 노루는 귀엽다. 우연히 노루를 만난 날은 괜히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이란 희망을 품어 왔다. 노루라는 동물도 천지간에 더불어 살아가는 생명이 아닌가? 먹고 살자고 우리 집에 들어오는데 이걸 굳이 침입으로 보고 막지 못해 안달할 필요가 있겠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매화나무들이 노루에 시달리긴 해도 그새 이럭저럭 자라기도 했으니 노루가 계속 침입해 온다 해도 제법 자란 나무들은 생존의 위기를 넘어선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렇다면 굳이 어린 나무들까지 다 살리려고 더 이상 난리를 칠 필요가 있겠나? 노루가 와서 어린 순들을 먹더라도 생존할 나무들만 잘 키워 나가면 이 또한 상생이 아닐 것인가?’ 하면서 이제부터는 노루 걱정을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렇게 마음을 정하고 나니 참 편안하였습니다. 인간과 자연의 조화라 할까요, 그런 고상한 경지에 가까이 온 기분이었습니다.

한번은 밤 산책 중에 손전등 불빛에 놀란 노루 두 마리가 사방 가리지 않고 후닥닥 도망을 치는데 오히려 더 놀란 것은 추격자인 저였습니다. 소리를 지르고 잔돌을 주워 던지며 추격을 하니 노룬들 어찌하겠습니까. 담을 이루고 있는 촘촘한 바위들 사이에 온전히 빠졌다가 일어나 노루 망을 타 넘고 달아나긴 했는데 그 노루들은 아마도 크고 작은 상처를 입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들도 이후 우리 마당에 오는 것을 꺼리게 되었을 것으로 짐작해보지만 왠지 마음 한구석엔 씁쓸함이 일었습니다.

아무튼 노루와의 전쟁은 이렇게 막을 내리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러던 중 며칠 전,  전혀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산책을 나가려고 문을 열었더니 개 세 마리가 앞마당에 모여 앉아 있는 것이었습니다. 집에서는 개를 키우지 않기 때문에 야생견이라 생각하고 소리를 질러 쫓아버렸습니다.

개들이 부랴부랴 달아난 후 살펴보니 잔디밭에 노루 한 마리가 누워 있었습니다. 개들에게 공격을 받아 죽은 것이지요. 가까이서 살펴보니 제법 큰 암노루였는데 목 부분이 깨물렸는지 목이 힘없이 늘어져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아마도 노루가 바깥에서 추격을 당해 우리 마당으로 도망쳐 왔다가 힘에 부친 나머지 결국 물려 죽은 것으로 보입니다. 다행히도 핏자국은 한 점도 없었습니다.

노루의 사체는 옆 농장의 주인이자 그 개들의 주인이기도 한 이웃에게 부탁하여 농장 주위의 빈터에 묻도록 했습니다. 겨울 노루라면 딱히 묻지 않고 ‘자가소비(自家消費)’를 하여도 무방하게 돼 있지만 여름 노루는 먹지 않는 게 좋다고 합니다. 그 이웃은 노루 피해를 많이 입은 분이라 노루의 생태에 대해 비교적 잘 아는 편이었는데 그에 의하면 집에서 노루가 이렇게 개에게 물려 죽으면 노루들이 한동안 더 이상 침입을 하지 않을 것이라 합니다.

이런 처참한 광경이 노루와의 전쟁의 종말이라면 차라리 이런 종말이 없었더라도 괜찮았을걸, 하고 혼자 생각해 보았습니다. 겨우 상생으로 풀어간다는 생각에 이르렀는데 이런 비극적 사건이 일어난 것이니 착잡한 기분이 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이후 아직까지 노루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만 어쨌든 이렇게 하여 오래 계속돼 온 노루와의 전쟁은 일단락을 짓게 되었습니다.

필자소개

정달호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후 직업 외교관으로 일했으며 주 이집트 대사를 역임했다. 현재 제주 소재 유엔국제훈련센터(UNITAR)소장으로 재직 중이며, 제주특별자치도의 외국인자문위원회 위원장으로 외국인거주환경개선을 위해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한라산 자락에 텃밭과 나무를 가꾸며 자연의 품에서 생활의 묘미를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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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슨의 이중나선 - 작은길 제공..왓슨의 이중나선

(박승호 외 著, 작은길 刊)

 


생명공학을 공부한 독자라면 누구나 들어봤을 법한 이름이 있다. DNA의 구조가 이중나선이라는 사실을 밝힌 왓슨과 크릭이다. 그리고 조금만 더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들어봤을 이름들이 또 있다. 모리스 윌킨스, 로절린드 프랭클린, 그리고 라이너스 폴링이다.

 

책은 유전자 연구가 막 진행되던 1950년대 초를 집중조명했다. 당시 학계에서는 젊은 박사후 연구원이 DNA의 구조를 밝혀내는 영광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일례로 미국 캘리포니아공대(칼텍) 라이너스 폴링은 1951년 단백질의 입체구조를 밝혀낸 인물이기 때문에 학계에서는 DNA의 구조를 밝혀내는 것 또한 그의 몫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었다.


저자는 라이너스 폴링이 DNA 구조를 밝히는 영예의 주인공이 되지 못한 까닭을 “명성으로 인한 오만함” 때문으로 해석했다. 로절린드 프랭클린과 모리스 윌킨스와 한 연구팀을 이루고 있었지만 팀내의 불협화음 때문에 구조를 밝혀내는 데 필수였던 물리학, 유전학, 바이러스학 등을 한 데 모아 분석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반대로 왓슨은 죽이 잘 맞는 크릭과 함께 필요한 모든 데이터를 종합해 DNA가 이중나선 구조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여러분! 연구실에서 가장 똑똑할 필요는 없어요.”


실제로 왓슨이 한 말로 전해진다. 저자는 똑똑한 동료들의 능력을 인정하고 수용할 수 있는 능력 덕분에 왓슨이 업적을 남길 수 있었다고 평가한다. 양자역학의 태동기만큼이나 흥미로운 DNA에 얽힌 과학사 이야기를 들어보자.

 


나무생각힐링 제공...나는 내가 아픈 줄도 모르고

(가토 다이조 외 著, 나무생각힐링 刊)


우리나라의 자살률과 흡연율이 10년 연속 경제협력개발기구
(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진료 통계에 따르면, 불안장애 환자의 수는 2008~2013년 31%나 증가했다.


독일 정신분석학자 카렌 호나이는 “인간은 기본적으로 내재된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잘못된 욕구들을 과도하게 발산하기 때문에 도리어 불안의 딜레마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말했다.

 

불안을 끌어안은 사람은 남으로부터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 칭찬받고 싶은 욕구, 힘을 갖고 싶은 욕구, 성취하고 싶은 욕구, 안주하고 싶은 욕구, 의존하고 싶은 욕구에 사로잡혀 있다. 그러나 이러한 욕구가 지나치면 신경증적 욕구가 된다. 자신을 파괴함으로써 더 큰 불안을 가져오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인 가토 다이조 일본 와세다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카렌 호나이의 정신분석 이론을 발전시켜 현대인을 지배하는 불안의 원인을 밝히고, 자신을 올바로 이해함으로써 보다 주체적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조언한다. 우화를 통해 우리에게 결핍된 것이 무엇인지, 어떤 선택이 행복하게 살기위한 것인지 저자에게 들어보자.

 


GBRAIN 제공... 누구나 알아야 할 모든 것

(마이클 히틀리 외 著, GBRAIN 刊)

 

우주의 역사 중 주목해야 할 사건 사고, 인류의 역사를 바꾸고 풍요롭게 한 대표적 발명품 96가지를 한 데 모았다. 그리고 이해를 돕기 위한 그림 286장까지.


저자는 이 책에서 특히나 그림에 신경을 썼는데, 그 이유가 재미있다. 미술관에 간 사람들은 정작 그림을 보는 것보다 그림 설명을 읽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소비한다. 독자가 꼭 알았으면 하는 내용을 그림 옆에 함축해서 담았다. 덕분에 독자는 더 빨리 핵심만 파악할 수 있다.


주제는 ‘알아야 할 모든 것’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정말 다양하다. 활과 화살의 발명에서부터 화약은 물론 헬리콥터와 텔레비전, 아이패드까지 다룬다. 빅뱅 이전의 시간과 빅뱅, 지구의 탄생에 이어 유목생활의 종결 그리고 공산주의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본격 박학다식 프로젝트다.

 

[기사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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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동아

이우상 기자 ido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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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2014.07.30


산책을 하려고 아파트 현관을 나서는데 집 앞 공터에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라는 굵직한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현관문을 나서 보니 두 남매와 엄마가 서 있고 아빠가 나무에 이마를 대고 술래잡기 놀이를 하며 외치는 소리였습니다. 어린 시절 가위바위보로 술래를 정하고, 술래는 전봇대나 나무에 이마를 대고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큰소리로 외친 다음 다른 사람을 치러 다니는 놀이의 추억과 함께 문득 나라꽃 ‘무궁화’가 떠올랐습니다.    

광복절(光復節)이 있는 8월은 우리 민족이 태극기를 흔들며 외치던 독립만세와 나라꽃 무궁화가 떠오르는 달입니다. 제69주년 광복의 달을 맞이하며, 애국가 후렴의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가 실현되는 날이 기다려집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무궁화가 우리나라의 국화라는 이유로 전국적으로 뽑아버리기 시작하며, 무궁화는 민족의 꽃, 나라의 꽃으로 더욱 더 소중하게 인식되었습니다. 무궁화가 독립운동의 구심점으로 자리매김을 하자 일제는 무궁화 꽃가루가 살에 닿으면 부스럼이 나는 '부스럼 꽃'이라는 말을 퍼트리며, 무궁화를 화장실 옆이나 울타리의 모퉁이에 심는 천대 받는 나무로 전락시키려 했다고 합니다. 한 나라의 국민이 사랑하는 꽃을 정치적 이유로 말살하려 한 이런 일본의 행위는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일입니다.  

무궁화는 우리나라의 국화(國花)로 한반도 전역에 널리 분포하며, 예로부터 꽃이 아름답고 꽃피는 기간이 길어 우리 민족의 사랑을 받아온 꽃입니다. 나라꽃을 지칭하는 국화는 법령으로 제정한 나라들도 있으나, 나라마다 자연과 풍토 그리고 역사나 문화와 관련이 깊은 식물이 자연스럽게 나라꽃으로 정해진 경우가 많습니다. 그 실례로 영국의 국화는 장미이고, 스위스와 오스트리아의 국화는 에델바이스입니다. 일본의 경우 벚꽃(벚나무)이 국화로 알려져 있지만 공식적으로 정해진 국화는 없습니다. 미국은 주마다 주를 상징하는 주화(state flower)는 있지만 미국을 대표하는 국화는 제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1945년 광복 후 법적으로 태극기가 국기(國旗)로 제정되며, 국기봉이 무궁화 꽃봉오리로 정해졌습니다. 정부의 공식문서나 외교 문서에는 나라를 대표하는 국장(國章; 國家紋章의 줄임 말)이 사용되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국장은 1963년에 제정되었습니다. 여권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우리나라의 국장은 가운데 태극 문양을 무궁화 꽃잎 다섯 개가 감싸고 있는 모양이며, 꽃잎 아래쪽의 파란 리본에는 '대한민국'이라는 국명이 한글로 쓰여 있습니다(그림 참조). 무궁화의 문양은 정부와 국회를 상징하는 표장(標章)으로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무궁화는 식물학적으로 아욱과의 무궁화속(Hibiscus)에 속하는 식물 종(학명; Hibiscus syriacus L.)으로 키는 3~5m 정도로 자라며, 병충해에 강한 식물입니다. 꽃은 7월에서 9월 사이에 피며 8월에 개화의 절정기에 이르는데, 꽃봉오리가 한 번에 만개하지 않고 순차적으로 피고 지기를 반복하기 때문에 꽃이 항상 피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무궁화의 꽃말은 ‘섬세한 아름다움’과 일편단심‘ 그리고 ’은근‘과 끈기입니다. 무궁화(無窮花)의 한자말 무궁(無窮)에서 無는 없을 무, 窮은 다할 궁으로 국어사전에 ‘공간이나 시간 따위가 끝이 없음’이라고 명기되어 있습니다. 무궁화가 목근(木槿) 또는 순화(舜花)로 불리다가 꽃이 아주 오래 피는 특징에 따라 ‘무궁화’로 불리게 되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무궁화의 자생지는 중국과 인도 지역으로 알려져 있지만 무궁화가 옛적부터 우리나라에서도 자란 식물이라는 근거로는 신라를 ‘무궁화의 고장’이라는 의미의 근화향(槿花鄕)으로 나타낸 기록이 있습니다. 무궁화의 영어 명칭은 ‘성스럽고 선택받은 곳에서 피어나는 아름다운 꽃’이라는 의미가 담긴 샤론의 장미(Rose of Sharon)입니다.  

광복 후 한동안은 일제의 무궁화 천대의 후속 결과로 주변에서 무궁화 꽃을 보기 쉽지 않았지만, 지금은 백 품종이 넘게 개발되어 심겨져 있어 전국 어디서나 다양한 모양과 색깔의 무궁화 꽃들을 볼 수 있습니다. 길을 걸으며 무궁화 꽃이 보이면 가까이 다가가 관찰해 보세요. 꽃의 중심으로부터 다섯 꽃잎으로 힘차게 뻗어 오르는 우리 민족의 기개를 보여주는 붉은 빛깔의 강건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사진 참조).

나라꽃 무궁화 축제도 매년 전국적으로 열리고 있습니다. 금년 7월 31일~8월 3일에는 강원도 홍천의 무궁화테마파크와 홍천읍 토리숲 등지에서 ‘제24회 나라꽃 무궁화 전국축제’가 열리고, 8월 1일~3일에는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에 위치한 효원공원에서 ‘제24회 전국 무궁화 축제’가 개최됩니다. 그리고 8월 중에 경기도 가평, 전북 완주, 경북 포항, 전남 나주 등지에서도 나라꽃 무궁화 축제가 열릴 예정입니다. 주말에 가족들과 함께 무궁화 축제에 참여해 아름다운 나라꽃을 감상해보면 어떨까요.

무궁화가 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는 이유는 꽃의 순수한 아름다움과 강건함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무궁화는 지금까지 숱한 고난을 견디어내며 선진국으로 발돋움하고 있는 우리 민족처럼 피고지고 또 피는 강인한 모습을 간직한 진정한 우리나라 꽃입니다. 이제 머리만이 아닌 가슴으로 나라꽃 무궁화를 사랑하며, 개인의 행복에 앞서 무궁(無窮)한 마음을 이웃과 함께 나누는 아름다운 공동체 삶을 실현해야 합니다. 무궁화를 아끼고 가꾸는 마음이 바로 나라 사랑이고 가족 사랑입니다.

동요 ‘우리나라 꽃’의 가사 “무궁화 무궁화 우리나라 꽃 / 삼천리강산에 우리나라 꽃 / 피었네 피었네 우리나라 꽃 / 삼천리강산에 우리나라 꽃“에서도 무궁화를 삼천리강산의 꽃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무궁화 행진곡’, ‘무궁화’ 등의 노래도 있습니다.

북한의 국화는 함경북도 일부를 제외한 한반도 전 지역에 자생하는 수목인 함박꽃나무로 불리는 목란(木蘭)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목란이 북한의 국화로 지정된 것은 1991년 4월 10일 김일성 주석이 목란 꽃이 아름답고 생활력이 강해 꽃 가운데서 왕이라 지칭하며 국화로 삼을 것을 지시해 정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루빨리 남북이 통일이 되고 애국가의 후렴이 실현되어, 무궁화가 우리 민족의 진정한 나라꽃으로 삼천리강산을 화려하게 덮는 날을 맞이하기 바라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이 강산 무궁화 겨레 / 서로 손잡고서 앞으로 앞으로 / 우리들은 무궁화다.”라는 ‘무궁화 행진곡’에서처럼 남북한 민족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무궁화처럼 강건하고 순수한 아름다음을 지닌 대한사람으로 보전되어 거듭나는 날을 기대해 봅니다.  

필자소개

방재욱

양정고. 서울대 생물교육과 졸. 한국생물과학협회, 한국유전학회, 한국약용작물학회 회장 역임. 현재 충남대학교 명예교수, 한국과총 대전지역연합회 부회장. 대표 저서 : 수필집 ‘나와 그 사람 이야기’, ‘생명너머 삶의 이야기’, ‘생명의 이해’ 등. bangjw@cnu.ac.kr

박대문의 야생초사랑

터리풀(장미과)

한여름 숲 속은 생명의 기가 넘쳐흐릅니다. 땡볕 더위 속에서도 숲에 들어가면 서늘한 숲 공기가 온몸을 감싸고 싱그럽고 풋풋한 풀내음이 몸에 배어듭니다. 녹음 짙은 숲 속 그늘에서 환하게 반겨주는 꽃! 짙은 숲 위에는 강렬한 태양이 내리쬐는데 솜사탕처럼 몽글몽글 피워내는 연분홍 꽃 더미가 가느다란 한줄기 숲바람결 따라 야들야들 춤을 춥니다.‘바람결 당신의 뜻을 따르겠다.’는 연정의 몸짓인 양.

필자소개

박대문

환경부에서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과장, 국장, 청와대 환경비서관을 역임했다.
우리꽃 자생지 탐사와 사진 촬영을 취미로 삼고 있으며,
시집 『꽃벌판 저 너머로』, 『꽃 사진 한 장』, 『꽃 따라 구름 따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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