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좇는 공직자들 [박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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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좇는 공직자들

2019.04.19

필자가 대학에 다닐 때였습니다. 사회학 이론 수업 시간이었습니다. 다른 강의실에서 수업이 먼저 끝난 학생들이 무리를 지어 복도로 나와 큰소리로 떠들기 시작했습니다. 사회학 이론을 가르치던 박영신 교수님은 정의롭고 엄하기로 유명한 분이셨는데 문을 열고 나가시더니, “어느 과 학생인데 이렇게 소란스럽냐?”라고 물으셨습니다. 한 학생으로부터 “경영학과입니다.”라는 대답을 들으시더니, “돈만 생각하니 예의를 모르는 거 아니냐? 너희들 눈에는 수업 중인 다른 강의실이 보이지 않느냐?”하시면서 문을 닫고 들어오셨습니다. 그리고 수업을 듣고 있는 필자를 비롯한 학생들에게 한 말씀을 더 하셨습니다. “대학은 학문을 하는 곳인데 돈에 오리엔트된 학과에서 공부를 하면 저렇게 되는 겁니다. 여러분은 나와 남을 함께 생각하는 올바른 자세를 함양하세요.”

혈기왕성한 학창시절 복도에서 떠드는 학생이 유독 경영학과 학생들뿐이었겠습니까? 하지만, 교수님의 눈에는 젊은 학생들이 돈을 좇아 전공을 선택하는 모습이 좋게 보이지 않았던 게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해 보았습니다. 또한 사회학 개론이 교양 필수 과목이었던 때라, 각과 학생들의 특성을 파악한 교수님의 일침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어쨌든 그날 이후 필자는 ‘돈에 경도된’ 개인의 행동과 사회적 현상에 대해 경계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사회학자 게르르그 짐멜(Georg Simmel)은 1900년에 발간한 ‘돈의 철학’이라는 저서에서 자본주의를 물질문화로 인식하고 이 물질문화가 당시에 새로운 정신문화로 자리 잡게 되었다고 판단했습니다. 더 나아가 그는 돈과 영혼의 결합 가능성을 언급했습니다. 그가 말한 돈과 영혼의 결합은 돈이 개인의 인격과 자유를 함양할 수 있는 가능성에 더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이는 전근대적인 경제적 집단주의에서 경제적 개인주의로 변하고 있는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짐멜이 이 시대를 다시 산다면, 그것도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배고픈 지식인으로 살게 된다면, 돈과 영혼의 결합에 대해 낙관적이었던 자신의 시각을 과감하게 시정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돈에 영혼을 파는 사람들이 넘쳐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에는 돈을 벌고 싶으면 사업을 하고, 명예나 권력에 욕심이 있으면 학자나 공무원 또는 군인이 되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니 돈이 모든 욕망의 꼭지점이 되었습니다. 1995년 국회에서 당시 박계동 의원이 노태우 전 대통령의 4,000억 원 비자금을 폭로하면서 사람들은 권력의 최정점에 있던 대통령마저 결국엔 퇴임 후 호의호식할 돈을 챙겼다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2,000년에 시작된 인사청문회는 소위 지도층의 부도덕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주었고 투기와 자녀교육을 위한 위장전입, 병역문제, 논문표절은 공직 후보자들마다 빠지지 않고 훈장처럼 줄줄이 차고 나왔습니다. 재산공개 내용을 보면 간혹 마이너스 재산을 신고한 후보자도 있었지만, 다들 차고 넘치게 잘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돈과 명예를 다 챙기겠다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았고 상당수는 이 둘을 다 챙기며 살고 있었습니다.

최근에는 언론인 출신인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부동산 투기로 사퇴했습니다. 오늘날 돈의 유혹은 삶에 직접적이고 강력하게 영향을 끼쳐서 이제는 공직자로서의 도덕적인 판단마저 무디게 만들고 있는 것 같습니다. 평생 전세를 살다가 노후를 위해 상가 건물을 마련했다는 말에 순간 연민의 마음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수십 억에서 수백 억 원의 재산을 신고한 다른 공직자들을 보면서 김의겸 전 대변인의 부조리는 살짝 작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냉담했습니다. 시기와 내용이 적절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근본적으로 공직에 있으면서 돈을 좇는 행위에 대해 거부감과 그의 표리부동함에 대한 실망이 컸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본인이나 정치를 하는 사람들은 적은 액수로 보이는지 몰라도 그가 투자한 금액은 보통 사람들에겐 도달할 수 없는 매우 큰 액수였다는 점을 간과했기 때문입니다.

아복기포 불찰노기(我腹旣飽 不察奴飢)라고 했습니다. 내 배가 고파야 노비들 배고픔을 아는 법인데, 이미 부자로 공직에 있는 사람이 더 많이 가지려고 아등바등하고 있으니 국민의 배고픔을 살필 마음이 생길 리 없습니다. 필자를 포함한 기성세대가 이 나라를 헬조선으로 만든 원인은 많이 가진 사람은 많이 가진 대로, 적게 가진 사람도 적게 가진 대로 자신이 가진 것을 이용해서 조금이라도 더 잘살고 높은 자리로 가고 싶어만 했지 사회정의를 바로 세우고 약자를 배려하여 따뜻한 사회를 만드는 데에는 너무나 소홀했기 때문입니다.

이미선 헌법재판관 후보자의 임명을 두고 정치권의 갈등이 연일 뉴스에 오르고 있습니다. 중앙아시아를 순방 중인 대통령이 전자결재로 임명을 한다는 얘기가 들리는 것으로 봐서 독자께서 칼럼을 받아보시는 지금쯤엔 헌법재판관이 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필자는 정치인의 말은 숨소리 빼고는 다 거짓말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이쪽저쪽에서 어떤 말을 하는지에 별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다만, 주변의 보통 사람들의 의견을 살펴 균형 잡힌 시각을 유지하려고 애를 씁니다. 따라서 ‘되네 안 되네’ 하는 정치적 공방은 차치하고 보다 근원적인 질문을 공개적으로 던져 봅니다.

1. 공직자는 근무시간에 주식 투자를 해도 될까요? 필자의 경우 회사에서 매년 한 차례 자기 윤리 진단을 합니다. 그중 ‘나는 근무 시간에 주식투자를 하지 않는다’가 명시되어 있습니다. 사기업에서도 이런 명문 조항이 있는데 법원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주식 거래가 가능한 시간이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 30분이니 점심 시간을 제외하면 주식 거래를 할 시간이 없을 겁니다. 그런데 후보자와 그 배우자가 거래한 횟수를 보면 과연 점심 시간에만 거래를 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2. 먹고살 만한 전문직종 종사자이면서 사회적 지도층인 판사의 과도한 주식투자에 대해 우리 사회가 용인할 수 있을까요? 주식 거래의 패턴을 볼 때, 후보자 부부는 장기 투자로 배당금을 받으며, 투자한 회사의 발전과 함께 자신들의 이익을 키워나가는 소위 정석 투자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말 그대로 돈을 벌 욕심에 주식 투자를 했는데, 사실 이는 자본주의에서 그다지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다만, 자신의 지위가 사회 지도층인 판사이고, 그 정도로 심취해서 주식 투자를 했다면 자신의 본업에 충실하기 힘들었을 거라는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추측을 할 수 있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후보자는 주식투자는 남편이 전담했다고 밝히고는 있으나 자신의 이름으로 투자한 것은 결국 자신의 책임이고 자신의 소유인 것입니다. 율사들이 흔히 하는 말이 “억울하시겠지만 법이 그렇습니다.” 아니었던가요? 후보자 역시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그 주식은 법적으로 후보자가 투자한 겁니다. 그리고 백 번 양보해서 남편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한다고 해도 가족의 문제로 낙마한 수많은 예를 볼 때, 이 또한 께름칙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궁금한 것은 이렇게 돈도 좇고 명예도 챙기는 것이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것인가? 하는 의문입니다.
3. 후보자 부부가 주식으로 얼마의 수익을 올렸는지 제대로 된 정보가 없습니다. 문제가 되자 후보자는 아무 조건 없이 자신의 주식을 매각했습니다. 그런데 얼마를 벌었는지 아니면 손해를 봤는지에 대해 아무런 언급이 없습니다. 이러한 행위가 설득력이 있으려면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겠다. 또는 얼마 손해를 봤다."는 얘기가 있어야 할 겁니다.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것 같고 국민을 기만하는 것 같기도 하여 오히려 불쾌합니다.

필자는 후보자가 좋은 사람일 거라는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막중한 사회적 책임이 따르는 고위 공직에 어울리는 이미지인가? 하는 질문에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됩니다. 헌법재판관은 상징적인 자리입니다. 어찌보면 총리나 장관보다 더 완전무결한 인물이 올라가야 하는 자리입니다. 돈도 좇고 명예도 챙기려는 사람으로 드러난 후보자가 어떤 이유에서건 그 자리에 오른다면 국민이 느끼는 상실감은 매우 클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이제는 어느 누가 권위를 내세우며 사회질서를 바로잡으려 해도 아무도 그 권위에 순응하지 않을 겁니다. 점점 더 존경할 어른이 없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것이 돈에 정신이 팔려서 우리가 지켜야 할 소중한 가치를 놓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제 퇴임한 서기석 헌법 재판관은 퇴임의 변에서 “헌법 정신과 시대의 가치가 무엇인지 살피고 진정한 통합과 화합을 이룩하는 것이 헌법재판소가 수행할 역사적 소명이라고 믿는다.”라고 말했습니다. 대다수의 국민들은 충실하게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하며 곁눈질할 시간도 없이 열심히 삽니다. 그런데도 먹고 살기가 점점 더 팍팍해졌다고 한숨짓습니다. 통합과 화합을 원한다면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과 명예를 다 챙기고 싶은 분에게는 성경 글귀를 하나 보내드립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이들은 미혹에 빠져 믿음을 떠나 많은 근심으로 자신을 찌르는도다> 성경 디모데전서 6장 10절.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자유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박상도

SBS 선임 아나운서. 보성고ㆍ 연세대 사회학과 졸. 미 샌프란시스코주립대 언론정보학과 대학원 졸. 
현재 SBS 12뉴스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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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香)나무 뽑기와 적폐청산 [이성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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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香)나무 뽑기와 적폐청산

2019.04.18

필자가 학창시절에 ‘고려청자’, ‘세종대왕’, ‘한글 창제’, ‘이순신’ 등에 대한 역사를 배우면서 얼마나 우리 민족의 기상을 드높였는지 기억이 생생합니다. 반면 각종 사화(士禍)를 배우면서는 마음이 매우 답답하였던 기억도 떠오릅니다. 그중에서도 이미 죽은 자의 묘를 파헤쳐, 관을 부수고 시신의 목을 베는 부관참시(剖棺斬屍)라는 대목에서는 그 ‘잔인함’에 어찌할 줄 모르던 ‘쓰디쓴 기억’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일본 나무 뽑기’가 근래 들어 적폐청산의 한 모습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천안 독립기념관에서, 현충사에서, 국회의사당에서 일본 나무를 뽑아내더니 바로 얼마 전에는 지방교육청 건물 앞에서 ‘일본 나무’를 뽑아내는 장면이 보도되었습니다. 

“나무가 무슨 죄가 있다고?” 하는 볼멘소리가 들립니다. 나무가 뽑히는 이유는  바로 향나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향나무는 오랜 세월 이 땅에서 우리 민족과 함께했습니다. 수령(樹齡) 400년 된 경상북도 안동석수암향나무(安東石水庵香), 367년 된 전라북도 고창군 향나무, 200년 된 경

  연합뉴스, 2019. 02. 19.

기도 포천 향나무, 그리고 서울 창덕궁에도 오래된 향나무가 있습니다. 향나무는 울릉도를 비롯하여 영호남 지역은 물론, 일본 여러 지역에도 분포된 수종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된 향나무는 일본에서 개량된 품종인 ‘가이즈카(Kaizuka)향나무’입니다. 일본 사람들이 좋아해서 일본 정원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고 이제는 우리의 정원이나 공원 등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낯익은 나무이기도 합니다. 

그런 향나무를 왜 뽑았을까? 이해가 안 되어 문헌을 찾아보니, 나름대로 이유가 있습니다. 1909년 1월 12일 대구의 달성공원에 일본 요배소(遙拜所, 동쪽을 향해 멀리 바라보며 절을 하는 곳)가 신축되자 조선의 27대 마지막 왕이자 대한제국의 제2대 황제 순종(純宗)이 아마도 당시 정치  

  동궐도(東闕圖)의 향나무

상황상 어쩔 수 없었을 것으로 짐작되지만 멀리 대구까지 내려가, 그것도 일본 신사의 전신인 ‘황조천조대신(皇朝天照大神)의 요배소’ 봉헌식에 참석하여 기념식수한 나무가 바로 일본에서 가져온 ‘가이즈카향나무’였다고 전해옵니다. 

이때 순종 황제를 ‘모시고’ 당시 통감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수행하였다고 합니다. 1909년 10월 26일에 이토 히로부미가 안중근 의사에 의해 생을 마감하였으니, 죽기 약 10개월 전의 행사였습니다. 기념식수를 하였다면 어떤 상황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 왜 하필 일본 개량종인 ‘가이즈카향나무’를 기념수로 선택하였는지 일본이 의도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식민정치의 초기 본색을 드러낸 것이라는 그런 ‘그림’으로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그런데 가이즈카향나무 식수와 관련해서 전해오는 ‘전설’은 일화(Anecdote) 수준을 넘지 못한다고 주장하는 연구 논문이 발표되어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계명대학교 김종원·이정아 연구팀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순종이 기념식수를 했다고 알려진 1909년 1월 9일은 엄동설한의 계절이라 나무를 심는 데에는 한계가 있으며 “식물 생장에 치명적인 제한 조건이다”라고 지적합니다. 그러므로 기념식수의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의 가이츠카향나무의 실체 – 대구 달성(達城) 사적지의 노거수 두 그루를 사례로” 《정신문화연구》 제41권, pp. 335-352, 2018.).

연구자는 달성공원 요배소의 ‘기념식수’는 적어도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다고 주장하면서 하지만 그곳에 있는 두 그루의 가이즈카향나무에 얽힌 이야기는 “진실인 양 정설로 받아들여 지는 실정이다.”라고도 지적하였습니다. 

‘가이즈카향나무는’의 유래를 아는지 모르는지 현실은 우리나라 정원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수종으로 자리매김한 것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무엇이 그리 ‘일본 색’이기에 ‘적폐청산(積弊淸算)의 대상으로 몰리게 되었을까? 궁금해지는 대목입니다. 

필자가 우리 조선 시대 초상화를 연구하면서 일본에 전해오는 초상화를 미술사적 측면에서 비교하며 얻은 생각은, 두 나라의 초상화가 완연(完然)하게 다르듯, 두 나라의 정원문화 역시 크게 다르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정원수의 형태가 두 나라 사이에 크게 다른 것은 우리는 사람이 손질하지 않는 ‘자연 그대로’를 선호한 반면, 일본은 사람이 손을 써서 ‘조형’하는 경향이 뚜렷하기 때문입니다. 

나무에 ‘가위질’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차이입니다. 마치 프랑스의 정원이 기하학적으로 손질한다면, 영국식 정원은 자연에 순응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1866년 병인양요(丙寅洋擾) 때 강화도 땅을 밟은 프랑스 장교(Henri Zuber, 1844~1909)가 “한국의 정원은 영국식 정원(English garden)이다.” (《프랑스 군인 쥐베르가 기록한 병인양요》, 앙리 쥐베르, 살림출판사, 2010) 라고 지적한 것이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그 본보기가 바로 향나무에서 여실히 나타납니다. 필자는 일본의 향나무가 여기저기, 오밀조밀하게 손질하여 하나의 ‘조형물’로 다듬어진 반면, 우리의 조경수는 예나 지금이나 ‘가위질’을 하지 않는 것이 두드러진 차이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나무 그 자체보다, ‘나무 가꾸기’ 차원의 다름이라는 뜻입니다. 게다가 지금 우리가 뽑아대는 향나무는 일본에서 갑자기 공수하여온 것도 아닙니다. 우리 땅에 적응하여 뿌리내리고 살아온 ‘생물’입니다. 그래서 ‘일본계 나무’라는 이유로 마구 뽑아대는 모습이 지각이 있는 행동이라고 느껴지지를 않습니다. 잘 자라는 나무를 뽑아내는 것이 왠지 ‘부관참시’와 맥이 닿아 있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필자는 최근 들어 ‘적폐청산’이란 말이 난무하는 현실이 부담스럽게 다가옵니다. 특히 적폐청산이 친일파청산과 맞물리면서 사회가 혼란스러운 파도에 휘몰리고 있습니다. 주변에서 하도 ‘친일파’, ‘친일파’를 외쳐대니 일제강점기에 ‘그 일본’에서 태어나 짧지만, 일본초등학교 교육을 받고, 어렴풋한 기억이지만 ‘시무라(志村)’란 일본식 이름으로 불리던 필자는 아마도 친일파청산을 외쳐대는 세대에게는 ‘친일파’로도 인식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스러운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제 서로를 아우르고 품고 가야 할 역사도 있는 것이 아닐까요? 부관참시와도 같은 ‘일본 나무 뽑아내기’는 시대정신에도 어긋나기 때문에 더욱 그러합니다. 삼일운동 100주년을 맞이하고 광복 70여 년이 지난 올해야말로 ‘친일’의 눈초리를 받는 당사자나 후손들이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고 인정하는 가운데 우리가 서로를 아우르고 품는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기를 진심으로 기대해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자유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이성낙

뮌헨의과대 졸업. 프랑크푸르트대 피부과학 교수, 연세대 의대 교수, 아주대 의무부총장 역임.
현재 가천대 명예총장, 전 한국의ㆍ약사평론가회 회장, 전 (사)현대미술관회 회장, 
(재)간송미술문화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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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 리듬과 함께하는 세상살이 [방재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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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 리듬과 함께하는 세상살이

2019.04.17

포근하고 아리따운 봄을 맞이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바람처럼 강물처럼 쉬지 않고 흐르는 세월을 따라 하늘이 맑아진다는 청명(淸明, 4월 5일)이 지나고, 봄의 마지막 절기로 비가 내려 농사에 도움이 된다는 의미를 지닌 곡우(穀雨, 4월 20일)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기후변화에 따라 나타나는 계절의 리듬은 24절기의 명칭에 잘 담겨있습니다. 

봄의 전령사인 산수유나무에 이어 꽃을 피우는 벚꽃과 개나리, 여름에 개화하는 나팔꽃이나 해바라기, 그리고 가을에 피는 국화나 코스모스에서 보는 것처럼 식물들의 개화 시기는 종(種)에 따라 다르게 나타납니다. 동물들에서도 개구리는 경칩이 지나며 동면(冬眠)에서 깨어나 산란을 하고, 같은 종의 물고기들의 산란 시기는 개체들 사이에 비슷하게 나타납니다. 그리고 제비나 청둥오리와 같은 철새들은 계절에 따라 먼 거리를 이동해 번식하며 살아갑니다. 

식물 종들이 절기를 달리해 꽃을 피우고, 철새들이 철 따라 이동하며, 동면하던 동물들이 봄이 되면 깨어나 산란하는 것은 계절 변화에 따른 것입니다. 몸 안에 간직되어 있는 유전적, 생리적, 발생적 특징과 같은 내적 요인과 낮과 밤의 일주기, 온도나 습도와 같은 환경 요인의 변화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생물 종들의 세상살이는 계절 리듬에 적응해온 진화의 산물이기도 합니다. 

계절 리듬에 따른 동식물의 생활주기 변화를 다루는 연구 분야는 식물계절학과 동물계절학으로 구분이 되는 생물계절학(生物季節學, Biophenology)입니다. 식물계절학에서는 계절의 변화에 따른 식물의 발아, 개화, 숙성, 낙엽 등과 같은 식물의 적응 현상을 다루며, 동물계절학에서는 계절에 따른 특정 종의 출현, 발성, 산란, 부화 등이 연구 대상이 됩니다. 

식물계절학은 꽃이 피는 내력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화력학(花曆學)’으로 불리기도 했는데, 오래 전 학부 시절 강의 시간에 들었던 화력학에 대한 추억이 떠오릅니다. 담당 교수님은 4월에서 5월 사이에 잎이 피어나기 전에 진분홍의 밥태기(밥풀) 같은 꽃들을 나뭇가지에 다닥다닥 붙여 피우는 ‘박태기나무’를 실례로 식물계절학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주요 내용은 박태기나무에서 평년과 다르게 꽃보다 잎이 먼저 돋아나오면 화력학적으로 그 해의 기후가 예년과 다를 것으로 예측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꽃보다 잎이 먼저 피어난 그 해에 남쪽 지방에 극심한 가뭄으로 벼농사가 큰 피해를 보았고, 식수난까지 심하게 겪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예전부터 우리나라 농촌에 전해져오던 ‘도토리는 벌판을 내려다보면서 연다.’라는 말과 함께 ‘쌀농사가 흉작이면 도토리는 풍작'이라는 속설도 있습니다. 이는 계절적으로 도토리가 꽃 피는 시기와 모내는 시기가 비슷하기 때문에 모내는 철에 비가 많이 내리지 않으면 모내기가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해 흉작이 들지만, 도토리 꽃은 만개해 풍작이 든다는 데서 유래한 말입니다. 

곤충의 출현이나 새들의 번식도 환경변화에 따른 계절 리듬에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예년보다 봄 날씨가 따뜻해지면 곤충의 출현이나 새들의 번식이 앞당겨질 수 있고, 봄 기온이 낮으면 그 현상이 늦추어질 수 있습니다. 계절 리듬에 대한 반응은 사람에게서도 다양하게 나타나는데, 그 실례로 꽃샘추위를 심하게 느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무더위를 참지 못하거나 엄동설한 추위를 견디기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인간을 비롯해 모든 생물 종들이 생존하고 있는 생태계는 기후변화에 따른 계절 변화의 영향을 크게 받습니다. 기후변화로 꿀벌이나 나비의 꽃가루 매개 시기와 식물의 꽃 피는 시기가 서로 어긋나는 상황이 발생하면 꿀벌과 식물이 함께 생존에 크게 위협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한 종이 지구상에서 사라지는 멸종위기를 언급할 때 북극곰이나 호랑이가 언급되곤 하지만, 꿀벌이나 나비의 멸종은 지구 생태계를 더 크게 흔들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전 세계 식량의 90%를 차지하는 100대 농작물 생산량의 약 70%가 꿀벌과 나비의 꽃가루 매개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현재 인류가 겪고 있는 가장 큰 환경문제는 기후변화입니다. 여름이 예년보다 무더워지거나 겨울에 혹한이 자주 다가오는 계절변화는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닙니다. 국립기상과학원은 우리나의 계절변화 분석에서 겨울은 109일에서 91일로 줄었고, 여름은 98일에서 117일로 크게 는 것으로 보고하고 있습니다. 봄은 85일에서 88일로 늘었고, 가을은 73일에서 69일로 줄었다고 합니다. 이는 봄과 여름이 183일에서 205일로 22일이 늘어나는 온난화로 한반도의 ‘사계절’이 ‘이계절’로 점차 변하고 있는 원인으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기후변화로 생물계절 리듬이 깨지면 생태계를 이루는 먹이사슬이 정상적으로 이어질 수 없으며, 생태계 피라미드의 가장 꼭대기에 위치하고 있는 인간도 그 영향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계절 리듬에 대한 생물 종들의 적응은 계절변화를 예측할 수 있는 지표로 이용될 수 있습니다. 생물에 간직되어 계절 리듬의 변화를 감지하는 요소들의 역할을 밝히는 생물계절학 연구가 활성화되어 지구 생태계에 크게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 장기적 기후변화의 올바른 예측이 이루어지는 날이 기다려집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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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방재욱

양정고. 서울대 생물교육과 졸. 한국생물과학협회, 한국유전학회, 한국약용작물학회 회장 역임. 현재 충남대학교 명예교수, 한국과총 대전지역연합회 부회장. 대표 저서 : 수필집 ‘나와 그 사람 이야기’, ‘생명너머 삶의 이야기’, ‘생명의 이해’ 등. bangjw@c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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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과 전동킥보드 [허찬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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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과 전동킥보드

2019.04.16

유행에 무덤덤하고 혁명과는 더더욱 무관하게 살아온 필자가 4차 산업혁명의 한 분야인 스마트 모빌리티 물결을 타는 혁명전사가 되었습니다. 작년 여름 전동킥보드를 장만하여 학교를 오가는 주된 교통수단으로 이용하면서부터입니다.

도보로 20여 분 정도 걸리는 거리를 작년까지 주로 걸어 다녔습니다. 그런데 2년 전쯤부터 넓은 교정에서 전동킥보드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신기해하다 단거리 개인용 교통수단으로 좋을 것 같아 점점 관심이 갔습니다. 결정적으로 작년 여름 심한 더위에 아침부터 땀을 흘리는 것이 짜증 나 킥보드를 한 대 장만 한 후 자주 이용하고 있습니다.

바퀴가 달린 보드를 발로 차며 타는 킥보드에 전기배터리를 달아 구륜하고, (안장 설치도 가능하지만) 서서 조정하도록 핸들이 더해져 탄생한 것이 전동킥보드입니다. 요즘에는 전기자전거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오토바이와 자전거 중간쯤 되는데 오토바이의 매연, 소음이 없는 것이 큰 장점이죠. 이 분야 자료를 보면 전동킥보드, 전기자전거, 전동휠, 초소형 전기자동차 등 개인형 이동수단을 통칭하여 스마트 퍼스널 모빌리티, 또는 마이크로 모빌리티로 부르고 있습니다. 여기에 우버와 같은 개인수요 대응형 공유모빌리티, 자율주행셔틀처럼 정해진 노선을 순환하는 대중교통형 모빌리티를 더해 스마트 모빌리티라고 통칭하고 있습니다.

전동킥보드는 구름 잡는 소리 ‘4차 산업혁명’의 구체적인 예입니다. 기왕에 청소년들이 주로 쓰던 이동 수단에 전기배터리, 정보통신(IT) 기능이 추가되며 사용자층이 확산되면서 새로운 교통수단으로 진화해가고 있지요. 요즈음 혼자 짧은 거리를 이동하기 위해 대형 SUV를 운행했을 때 발생하는 매연, 혼잡 등의 비효율이 더 눈에 들어옵니다. 점점 선진국의 도시에서 마이크로 모빌리티가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승용차를 대체할 것입니다.
 

작년 여름 주차장에서 전동킥보드 운전 연습 중인 필자

전동킥보드/자전거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국내 판매대수가 2016년 6만 대에서 2017년에는 7.5만 대로 20% 이상 늘었고 3년 후에는 20만대 판매를 예상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교통수단에 우호적인 해외 선진국 시장의 규모는 더 삐르게 늘 것으로 보이는데, 작년 말의 한 해외 자료는 2025년 세계시장 규모가 31조원을 넘을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정부의 거창한 구호에도 불구하고 교통수단 관련 새로운 발상의 구체화가 상당히 더딥니다. 그 이유를 근래 큰 논란거리인 자동차 공유 서비스의 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자신들의 영업 영역을 침범한다고 택시업계가 크게 반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매우 실용적이고 친환경적임에도 불구하고 전동킥보드 운행을 둘러싼 여건도 그리 원만하지 않습니다. 두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첫째는 ‘자전거도 아닌 것이 오토바이도 아닌 것이’(윤선도의 五友歌를 차용한 표현)라 기존 규제의 틀에서 분류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전동 장치가 있기 때문에 오토바이와 마찬가지로 ‘원동기 장치 자전거’로 분류되어 운전면허가 있어야 하고 인도와 자전거전용도로에서 주행을 못 합니다. 최근 저속 운행을 전제로 자전거 길 이용을 허용할 것이라는 방침이 발표되었지만 아직까지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자전거 길을 이용하게 될 것인데 이것이 두 번째 문제점입니다. 그동안의 늘어난 강변 자전거 길에 비해 도시 내 자전거 길은 턱없이 모자랍니다. 전동킥보드와 같은 소형 친환경 교통수단이 체감할 수 있게 도시 교통문제 해결에 기여하려면 차로를 줄여서라도 자전거 길을 확보할 필요가 있습니다.

중국은 훨씬 먼저 전기자전거를 개발하여 널리 사용하고 있습니다. 세계 시장의 90% 정도를 중국이 점유하고 있는데 중국에서 일찍 보급된 이유 중 하나가 별도의 규제 없이 일반 자전거처럼 판매되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도시의 자동차 수가 크게 늘며 이제는 전기자전거의 차도이용을 규제하고 있다고 합니다. 동시에 무공해 전기 자동차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요.

한국·중국에서는 전동킥보드와 전기스쿠터(electric scooter)가 다른 제품을 지칭하지만 미국·영국에서는 스쿠터가 더 일반적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작년 여름 런던을 방문했을 때 직접 전기스쿠터 사용자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아침 일찍 시내 중심부로 향하는 자전거 길을 이용하는 사람들을 볼 기회가 있었는데 약 10명 중 한 명은 전기스쿠터를 타고 있었습니다.

미국, 유럽에서도 이들 이용과 관련된 규정이 정비되어 있지 않지만 한국처럼 국가 단위에서가 아니라 시(市)정부가 관장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많은 곳에서 이용을 허용하는 것이 대세입니다. 우리의 경우와 다른 특징은 대여 사업자들이 전동스쿠터의 확산에 중요하게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회원가입을 통해 원격결제가 가능하고, GPS 기능을 활용하여 어디에서나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다고 합니다. 유럽의 대도시들에도 Bird, Lime과 같은 미국 임대회사가 사업망을 확장하여 진출하고 있습니다.

끝으로 이용에 관심 있는 분들께 몇 가지 조언을 드립니다. 첫 번째, 안전모를 착용하십시오. 부러진 팔, 다리는 붙일 수 있어도 아직까지 머리는 좀 어렵습니다. 두 번째, 저속 킥보드 운행자 관점에서 보면 도시 내 넓은 차도는 난폭 운전자 전용도로이니 차가 많은 길은 피하시고 이면도로를 이용하십시오. 너무 혼잡하지 않다면 이 도로가 안전합니다. 세 번째, 킥보드는 지면에 가까워 손으로 브레이크를 잡으면서 발로 땅을 짚으면 멈추는 것이 쉽습니다. 상황이 애매하면 무조건 멈춘 후 판단하시고 융통성 있게 차도나 인도를 이용하세요. 마지막으로 횡단보도에서 초록색 신호등이 꺼지기 전에 무리해서 가려고 하지 마십시오. 큰 사고가 날 수 있습니다. 횡단보도에서는 끌고 가는 것을 권장합니다. 이런 점을 유의하면 전동킥보드는 안전하고 편리한 수단입니다. 많은 분들의 혁명 동참을 기대합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자유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허찬국

1989년 미국에서 경제학 박사학위 취득 후 미국 연지준과 국내 민간경제연구소에서 각각 십년 넘게 근무했고, 2010년부터 2019년 초까지 충남대 무역학과 교수로 재직. 다양한 국내외 경제 현상을 조사하고 연구하는 것이 주된 관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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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洑) 대신 완고한 생각을 먼저 헐어라 [신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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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洑) 대신 완고한 생각을 먼저 헐어라

2019.04.15

4대강에 설치된 보를 두고 또 한 차례 논란이 거세게 일고 있습니다. 정부가 금강의 공주보와 세종보, 영산강의 죽산보를 철거하겠다고 발표하자, 유역 주민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습니다. 항의 현장에서는 예외 없이 보를 세울 때처럼 졸속, 불통, 통계자료 왜곡 등의 단어가 확성기를 통해 울려 퍼집니다. 참석 주민들은 가뭄에 물 걱정 안 했고, 강기슭에 조성된 공간도 유용하고, 물이 많아져 풍광도 좋다고 말합니다. 세울 때 반대하던 구호와 다른 것은 “강이 더 유용해졌는데 왜 보를 깨느냐”는 말이 추가된 점입니다. 심지어는 “국민과 소통을 하겠다더니, 우리는 국민 아니냐”고 소통 부재에 핏대를 세우는 사람도 있습니다.

경향신문(1988년 6월 15일 자 1면 톱기사)이, 88서울 올림픽을 코앞에 두고 전 국민이 들떠 있던 때, 한강을 시작으로 낙동강, 금강, 영산강의 오염실태를 차례로 실었습니다. 한강 편입니다.

죽음이 흐르는 경안천
“벌레 못사는데 물고긴들 살겠습니까”
산업폐수·분뇨 거침없이 방류
논물대면 벼 枯死(고사)
축사하수 하루 3만ℓ씩 유입 단속 엄두못내
간장색 毒水(독수) 상수원 팔당으로 등
“산업화로 발생한 공해에 대한 무방비, 강물의 중요성에 대한 국민의 인식부족, 행정력의 미흡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우리의 생명의 젖줄인 강을 썩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영산강 편, “湖南(호남)의 毒水(독수) 榮山江(영산강)”이란 제목에 우선 기가 질립니다. 신문은 “광주시의 한 복판을 남북으로 관통하며 흐르는 광주천은 냇물이 아니라 하수도 그대로다. 학동에서 광주동까지의 광주천은 하상이 잘 정리돼 있고 고수부지엔 잔디가 심어져 있고 호안벽을 곱게 쌓아 겉모양은 번드르르 하지만 흐르는 물은 생활하수와 공장 폐수로 인해 악취를 풍기는 독수에 지나지 않는다.”고 고발했습니다.
금강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죽음이 흐르는 甲川(갑천). 낙원을 찾아온 珍客(진객) 황새마저 죽어갔던 곳이 바로 금강 상류 갑천이다.”라며 가장 큰 원인은 “정화시설이 제구실을 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20여 년이 지난 뒤, 미디어 오늘(2010.6.28.)의 기사입니다.
“현재 중랑천에는 다양한 동물과 식물이 살고 있다. (중략) 희귀어종인 버들치, 밀어, 살치 등 14종의 어류와 호랑나비, 왕잠자리 등 곤충류 234종의 하천 동물과 흰뺨검둥오리, 가창오리, 왜가리 등의 조류 등이 하천을 보금자리 삼아 살고 있다.”
“중랑천은 90년대까지 죽음의 하천으로 불렸다. 물고기가 살 수 없어 떼죽음을 당하는 일이 자주 목격 되었다.(중략) 중랑천은 중앙 및 지방정부 민간단체의 노력으로 수질이 크게 개선되었다.”

죽었던 강물이 주민의 자발적인 참여, 정부와 지자체의 투자, 관리·감독 강화, 강한 법 집행, 무거운 벌금 부과 등으로 다시 살아났습니다.(자유칼럼 2018.9.5. 참조) 분류 하수관과 정화 시설, 분뇨와 가축 폐수 처리장 등을 설치, 오염원 유입을 크게 줄여, 강의 자정능력을 회복한 결과입니다.

독일의 하이델베르크 성에서 바로 내려다보이는 넥카 강에는 보와 갑문이 설치돼, 관광선은 물론 화물선들도 이용합니다.
하류의 라인강에는 준천(濬川)선이 오르내립니다. 동부를 흐르는 베저강 8개의 보(댐)에서는 발전까지 합니다. 모두 잘 정화된 물을 흘려내려 부패하지 않습니다.

얼마 전 “오염의 법칙… 약자·저소득층 많은 ‘만만한 곳’ 노린다”는 세계일보 기사가 눈길을 끕니다.
영산강 뱃길연구소장 김창원 씨는 언론 인터뷰에서 “광주에서는 보를 못 건드리고, 나주(죽산보)는 주민수가 적어 만만해 이러는가”라고 답답한 가슴을 토로했습니다. 철거대상 보 유역주민들은 지역 강물을 한강물만큼만 관리해 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보를 헐 비용으로 강의 자정(自淨) 능력을 회복시키는 것이 답입니다.  회자되던 “전라도 푸대접, 충청도 무대접”이라던 말이 또다시 들리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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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덕

서울대학교, 서독 Georg-August-Universitaet, 한양대학교 행정대학원, 몽골 국립아카데미에서 수업. 몽골에서 한국인 최초로 박사학위 방어. 국민일보 국제문제대기자, 한국산업기술대학교 교수, 경인방송 사장 역임. 현재는 국민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서독은 독일보다 더 크다, 아내를 빌려 주는 나라, 몽골 풍속기, 몽골, 가장 간편한 글쓰기 등의 저서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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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개떡이 그리운 이유 [한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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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개떡이 그리운 이유

2019.04.12

얼마 전에 영국의 경제분석기관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에서 2018 세계 생활비 보고서를 냈습니다. 서울의 물가는 조사대상 133개 도시 가운데 미국 뉴욕, 덴마크 코펜하겐 등과 함께 공동 7위를 차지했습니다. 싱가포르, 파리, 홍콩이 공동 1위입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의 빵 1kg 평균 가격은 15.59달러(약 1만7천600원)에 달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10곳 중에서도 가장 비쌉니다. 2위와 격차도 큽니다. 1kg당 8.33달러(약 9천400원)에 불과하니까 서울이 거의 두 배 가까이 차이가 나는 셈입니다.

저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제과점 빵을 거의 먹지 않습니다. 어떤 행사나 모임 같은 곳에서 나눠주는 제과점 빵을 얻어먹기도 하지만 빵을 사러 직접 제과점에 방문한 적은 손가락으로 헤아릴 수 있을 정도입니다. 가장 최근에 간 적이 2년 전쯤으로 출판사에 미팅을 하러 가면서 직원들 간식용으로 빵을 산 적이 있습니다.

그때 느낀 점은 제과 프랜차이즈점이었는데 빵을 고르는 선택의 폭이 분명하다는 점입니다. 개당 2천 원짜리를 고르느냐 5천 원 이상짜리를 고르느냐 양자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2천 원 이상부터 5천원 이하까지는 구색만 맞춰 놓으려고 그랬는지 모르지만 빵의 모양새나 재료 측면에서 꽤 비싸다는 생각, 그럴 바에는 5천 원 이상짜리를 사는 것이 낫다는 보이지 않는 압력을 느꼈습니다.

보리개떡을 먹어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대부분 저하고 같은 느낌이 들었을 겁니다. 요즘에는 별미로 먹어  보려해도 구경조차 할 수 없는 보리개떡은 봄날 끼니 대용으로 먹기도 했습니다. 보릿가루와 보리순을 반죽해서 솥에 찐 보리개떡은 이름이 주는 의미만큼 천한 대접을 받지는 않았습니다.

개떡을 비유해서 흔히 쓰는 말로 “개떡 같은 소리 하고 있네.”“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어!”“생긴 것이 뭐 이리 개떡 같냐?”는 말이 있습니다. 개떡의 모양새가 볼품없고 대충 뭉쳐 놓은 것처럼 보이는 데서 생긴 말들입니다. 하지만 그 보릿고개 시절 초근목피로 생명을 연명하던 때 보리개떡은 귀한 먹거리였습니다.

개떡 재료인 보릿가루를 가는 채로 곱게 치지 않으면 모래 같은 것이 씹히기도 합니다. 목 넘김도 미국에서 원조받은 옥수수 가루로 만든 빵보다 부드럽지가 않습니다. 그렇거나 말거나 가족끼리 모여 앉아서 먹는 개떡의 맛은 꿀맛이 따로 없습니다.

형제가 많은 집에서 둥글게 모여 앉아 개떡을 먹을 때는 생존경쟁의 현장 그 자체입니다. 대부분 가정이 연년생 형제들입니다. 서로 한 개라도 더 먹으려고 눈치 볼 것도 없이 입안에 구겨 넣기 일쑵니다. 마냥 욕심만 부리는 것이 아닙니다. 심부름 간 형제, 혹은 어디 놀러 나간 형제의 몫은 얌전히 남겨둡니다.

외출하고 집에 와서 남겨 둔 개떡을 먹으면 동생들이 군침을 삼키며 바라봅니다. 혼자 먹어도 부족한 양이지만, 부모님들에게서 형제끼리는 콩 한 쪼가리라도 나눠 먹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군침을 삼키고 있는 동생이며 형제들에게 나눠줍니다. 그 시절만 해도 이웃하고 담장이 없거나 싸리나무나 망개나무 울타리라서 개떡 냄새가 이웃까지 풍겨갑니다. 어머니는 가족들이 먹기 전에 이웃에게 개떡 접시를 돌리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십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가난하던 시절에 먹던 음식이라 개떡이 그리운 것만은 아닙니다. 우물에서 퍼 올린 찬물에 만 국수에 파를 종종 썰고, 고춧가루를 푼 간장 한 숟갈만 얹어 먹어도 꿀맛입니다. 학교 갔다 와서 찬밥을 물에 말아서 깍두기 김치 한 가지만 있어도 뚝딱 먹어치운 것은 반드시 가난 때문은 아닙니다.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이 넓었기 때문입니다. 요즘 시골에 사는 부모들이라도 열 살도 안 먹은 자식이 온 산이며 들로 뛰어다니게 버려두지 않습니다. 그 시절에는 예닐곱 살짜리도 동네 형들을 따라서 산으로 들로 쏘다녔습니다. 여름날에는 냇가에 가서 입술이 새파래지도록 목욕을 하다 모래밭에 앉아서 성을 쌓고, 풀을 뽑아 정원수를 심기도 하고, 빨간 돌을 빻아서 고추장을 만들며 놀았습니다. 뒷산이며 앞산 계곡의 맑은 물에서 가재를 잡아서 모닥불에 구워 먹기도 하고, 돌배를 따 먹거나, 빨갛게 익은 보리똥이라고 부르는 보리수며, 깨금이라고 부르는 개암을 따 먹으며 놀다가 해질 무렵에야 집으로 갔습니다.

온종일 산으로 들로 헤매고 다녔으니 시장이 반찬이라는 말이 따로 필요 없습니다. 열 살도 안 먹은 초등학생들도 어른만큼 밥을 먹고도, 밤이 되면 또 느티나무 밑이며 공터로 나가 밤이 이슥해지도록 뛰어놀기도 합니다. 그래서 보리개떡의 맛을 알고 있는 세대들에게, 보리개떡은 단순히 한 끼의 밥을 대신하는 음식일 수가 없습니다.

보리개떡은 어느 봄날 아지랑이 일렁거리는 논에서 베어 온 보리순을 절구통에 찧고 계시는 어머니의 표상입니다. 갓 찌어낸 보리개떡이 뜨거워서 양손으로 번갈아 잡고 한입 살짝 베어 먹다 모래가 씹혀도 눈살을 찌푸리지 않던 귀한 먹거리였습니다.

제과점의 주요 고객층은 20~30대 여성층입니다.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20~30대 남성들은 빵을 먹지 않는다는 말이 됩니다. 요즈음 어글리 베이커리가 유행이라고 합니다. 개떡처럼 못생긴 빵이 오히려 식욕을 자극해서 인기가 있다고 합니다. 그들에게 빵은 보릿고개 시절의 개떡이 아닙니다. 유행을 좇는 트렌드일 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전 세계에서 빵 가격이 가장 비쌀 수밖에 없는 이유가 아닌지 하는 생각도 듭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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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한만수

1990년부터 전업으로 소설을 쓰고 있음. 고려대학교 문학석사. 실천문학 장편소설 “하루” 등단. 대하장편소설 “금강” 전 15권 외 150여권 출간. 시집 “백수블루스”외 5권 출간. 이무영문학상 수상. 장편소설 “활” 문화예술진흥위원회 우수도서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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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버린 ‘자연사랑’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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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버린 ‘자연사랑’

2019.04.10

“19일 오전 1시26분께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 자연사랑 미술관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동부소방서에 따르면 옛 가시초등학교(폐교) 내 4개동 중 숙소 용도로 사용 중인 1동이 전소됐다. 이 화재로 소방서 추산 1,091만7,000원 상당의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인명피해는 없었다.  소방서는 화재 원인을 누전으로 보고 조사 중이다.”
지난 1월 19일 제주도 지방신문에 났던 아주 짧은 화재 기사입니다. 만약 내가 그날 이 기사를 보았다면 신음 소리라도 냈을 터인데, 이 뉴스를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가 3월 초에 인터넷 검색 중에 이 화재 기사를 발견하고 아연했습니다.
친구의 불행을 보는 것은 마음 아픈 일입니다. 40년 간 교유해왔던 친구 집에 불이 났는데도 그걸 모르고 두어 달을 보냈으니, 과연 내가 친구 자격이 있나 하는 민망함까지 겹쳐져서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친구의 화재 소식을 뒤늦게 알고 전화를 걸어 위로하자, 그의 첫 마디가 이랬습니다. “그렇게 됐네. 그런데 내가 표구해주려고 파일 상자에 두었던 자네 사진도 다 타버렸어. 열심히 정리하던 중이었는데. 미안하다.” 
지난 3월 하순 그 친구를 위문하러 '자연사랑' 갤러리를 찾아갔습니

화재로 꺼멓게 타버린 갤러리 별관 작업실 건물(오른쪽). 왼쪽은 전시장으로 쓰이고 있는 폐교 교실.

다.      

화재를 당한 친구는 50여 년간 카메라를 어깨에 메고 살아온 사진작가 서재철입니다. 작가라기보다 사진기자라고 부르는 게 더 적절한 것 같습니다. 그는 1972년 제주신문에서 시작해서 30년간 일선 사진기자로 일하다가 신문사에 사직서를 내고 프리랜서 사진작가로 셔터를 누르며 옛 가시초등학교 폐교를 2004년 임차해 사진 갤러리 ‘자연사랑’을 운영해왔습니다.   
사실 그는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사진기를 들고 다니면서 제주도의 사람과 풍물을

자연사랑 갤러리 전경

찍었던 사진광이었습니다. 그는 폐교 부속건물에 살림방과 작업실을 차리고 사진작업을 했으며, 얼마 전부터는 50년간 찍은 방대한 필름 정리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1월 중순 동남아 소수민족 사진을 찍으러 나간 사이에 화재가 일어났고, 며칠 후 제주공항에 도착해서야 이 사실을 알고 넋을 잃었습니다. 그나마 부인이 그날따라 제주 시내에서 묵었기에 화를 면한 것이 다행이었다고 합니다. 하마터면 전시실이 있는 폐교 교실까지 타버릴 뻔했습니다. 밤낚시를 갔다오던 동네 사람이 불을 발견해서 신고했고, 출동한 소방차는  전시실로 옮겨붙는 불길을 가까스로 잡았다고 합니다. 

타버린 사진 자료 중엔 1960년대와 70년대 제주의 풍물과 자연을 찍은 귀중한 흑백필름과 사진 자료가 많았습니다. 해녀, 등대, 포구 등 제주도 풍물의 흑백사진은 지금은 어디서도 볼 수 없는 것들입니다. 그는 또 제주도내 360여 개의 오름을 전부 찍어낸 산사람이기도 합니다.

내가 신문사에 근무할 때 그에게 전화를 걸어 부탁하면 목숨같이 아끼던 필름을 등기우편으로 부쳐주곤 할 정도로 그의 신세를 졌습니다. 자유칼럼그룹이 2007년 웹사이트를 개설했을 때부터 2011년까지 그는 제주도의 꽃과 갯마을 그리고 오름의 모습을 연재했습니다. 지금도 자유칼럼 사이트에는 그의 아름다운 사진작품이 자료로 남아 있습니다.
그는 필름을 애지중지했습니다. 필름을 부쳐주면서 “사진은 맘대로 인화해서 써도 좋으니 필름만은 잘 간수했다가 꼭 돌려주기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화재가 나던 날 전소해버린 건물 안에는 그가 이렇게 모아놓은 필름 자료가 가득 있었습니다. 그는 해녀와 갯마을 풍경을 찍은 필름이 불타버린 것이 너무나 애석한 듯 눈물을 글썽거렸습니다. 폐교를 약간 개조해 만든 사진 전시실은 화재가 번지기 전에 소방차가 도착해서 불길을 잡아서 전시 작품이 보존되었던 게 불행 중 다행이었습니다.

넋을 잃고 있던 그가 정신을 차리고 요즘 하는 일은 그의 사진을 썼던 신문사나 출판사 등에 연락하여 사진이나 필름을 하나씩 모아보는 일이라고 합니다. 짚 무더기에서 바늘 찾기 같은 그 일을 하는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있었지만 그 속에는 망연함이 가득했습니다. 한라산 나무와 바위를 다람쥐처럼 오르내리던 그 친구의 까만 머리에 허옇게 서리가 내린 모습을 보며, 시간이 무척 빠르게 흘렀다는 걸 느꼈습니다. 

“그래도 셔텨는 눌러야지.”라고 풀 안 서는 작별 인사를 하고 폐교 갤러리를 나섰습니다. 3월 말 자연사랑이 소재한 가시리 마을에는 유채꽃 봉오리가 터질 듯이 물이 올랐고, 망아지들이 돋아나는 풀을 뜯고, 풍력발전기가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소방서의 화재피해 감정가 1,000만원. 한 인간이 일생을 걸고 기록해놓은 사진 자료에 대한 공공기관의 평가액입니다. 인생은 대단한 듯 아무것도 아닌 듯 종잡을 수 없습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자유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김수종

한국일보에서 30년간 기자 생활. 환경과 지방 등에 대한 글을 즐겨 씀.
저서로 '0.6도' '다음의 도전적인 실험' 등 3권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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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사우나의 직원 [임철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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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사우나의 직원

2019.04.09

내가 다니는 스포츠 센터의 사우나는 규모가 꽤 큽니다. 평일이건 주말이건 이용자가 아주 많습니다. 이곳 직원은 일거리가 많아 고달플 수밖에 없습니다. 아마 정규직도 아닐 것입니다. 

최근 사우나의 직원이 바뀌었습니다. 입구와 라커 주변이 좀 깔끔해지고 덜 어지러워진 이유를 궁금해 하다가 담당자가 바뀐 걸 뒤늦게 알게 됐습니다. 50대로 짐작되는 그 직원은 얼핏 몽골 사람을 연상케 합니다. 체격은 그리 크지 않지만 뼈대가 굵어 단단해 보이고, 머리가 짧고 얼굴은 둥근 편인데 광대뼈가 약간 튀어나왔습니다. 

유심히 살펴보니 그는 한마디로 끝없이 부지런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를 보지 못한 날은 더러 있지만 그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가만있거나 손님과 잡담하는 걸 본 적은 없습니다. 운동복을 크기별로 개어 쌓아놓고, 젖은 운동복과 수건이 담긴 빨래 통을 바퀴 굴려서 옮기고, 탕 내의 각종 물품을 정리하고, 화장실을 청소하고 휴지를 새로 끼우느라 잠시도 쉬지 않습니다.

누구나 잘 아는 일이지만 사우나 손님들은 물건을 함부로 쓰고 아무데나 버리고 물을 아끼지도 않습니다. 몸의 물기를 다 닦지 않은 채 여기저기 걸어 다녀 바닥에 물을 떨어뜨리고, 흠뻑 젖은 수건을 걸레처럼 발로 질질 밀고 다니다가 아무 데나 팽개쳐둡니다. 스킨로션을 온몸 여기저기에 처바르거나 머리를 말리다 선풍기를 켜놓고 가버리는 사람도 많습니다(즤네 집 거면 그렇게 하겠어?). 같은 손님인 내가 화가 날 지경입니다. 

하지만 그 직원은 찡그리는 일 없이 늘 뒤치다꺼리를 잘해 손님들을 미안하게 만듭니다. 사우나는 수영장 이용자도 함께 쓰는데, 수영 강습이 끝난 초등학생 손님들이 들어오면 뛰고 떠들어 정신이 없을 정도입니다. 그런데도 그는 꼬마손님들에게 아버지나 삼촌처럼 친절하고 자상하게 대해줍니다. 신발을 신발장에 넣지 않고 사우나 입구에 벗어놓는 사람들도 많아 늘 경황없는 상가(喪家)처럼 신발이 어지럽게 널려 있곤 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쉴 새 없이 쓸고 닦자 요즘은 그런 사람들도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그는 마주치는 손님들마다 반갑게 인사를 합니다. 나가는 사람에게는 “안녕히 가십시오”나 “또 오세요”가 아니라 “내일 뵙겠습니다” 하고 인사를 합니다. 며칠 전엔 목욕을 마치고 나오는데 그가 “회원님, 잠깐만요” 하고 불러 세우더니 내 뒤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말려 들어간 바짓단을 펴주기까지 했습니다. 

한번은 탕 내의 벽에서 물이 계속 흘러나오기에 마침 옆에 온 그를 붙잡고 이야기했더니 왜 그런 일이 생기는지를 자세하게, 좀 지루할 정도로 친절하게 설명하더군요. 내가 걱정스러워하는 것 같자 안심시키려는 취지였습니다. 사우나시설의 구조와 현황에 대해 정밀하게 파악하지 않고는 해줄 수 없는 설명이었습니다. 

그를 보면서 자신이 속한 세상을 바꾸는 사람의 노력에 대해, 그 방법에 대해, 사람을 고르고 쓰는 문제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보다 먼저 있던 직원도 게으른 사람은 아니었고 나름대로 성실했지만 지금 직원과 같은 변화를 이끌어내지는 못했습니다. 그 둘의 차이가 무엇인가도 생각하게 됐습니다. 

누구든 어느 조직이든 변화와 개혁은 솔선수범과 상호 소통 없이 이루어낼 수 없습니다. 자신이 몸담은 곳을 더 낫고 생활하기 좋게 바꾸는 것은 언제나 말이나 구호보다 부지런하고 사심 없는 실천입니다. 자신을 돋보이게 하려고 먼저 직원의 흠을 잡거나 여건만 탓하고 있으면 달라질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 사우나는 특별히 자랑할 만한 게 있는 곳이 아닙니다. 수건이 걸레로 보일 정도로 해진 것도 많고, 운동복은 정말 세탁을 했는지 의심스럽게 불결하고 낡아 보여 그만 버렸으면 싶은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열악한 여건에서도 최선을 다해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즐겁게 해내고 있습니다. 때를 미는 것은 그의 담당이 아니지만 나는 그를 보면서 조금씩 내 때가 벗겨지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고 있습니다. 공직자들이 이런 사람을 본받았으면 좋겠습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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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임철순(任喆淳)

한국일보 편집국장 주필, 이투데이 이사 겸 주필 역임. 현재 자유칼럼그룹 공동 대표, 한국언론문화포럼 회장, 시니어희망공동체 이사장. 한국기자상, 위암 장지연상, 삼성언론상 등 수상. 저서‘노래도 늙는구나’, '효자손으로도 때리지 말라’,‘1개월 인턴기자와 40년 저널리스트가 만나다(전자책)’,‘내가 지키는 글쓰기 원칙(공저)’'마르지 않는 붓'(공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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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 살리자는 개각인가 [김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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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 살리자는 개각인가

2019.04.08

“경제가 좋아지고 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을 문재인 정권의 낙관론입니다. 그럼 장하성 정책실장은 왜 바꿨을까요? 서울 종로 대로변 빌딩에도 ‘임대’라는 팻말들이 왜 널려 있을까요? 투자, 수출, 성장, 고용은 왜 내리막길일까요? 

2기 내각 지명자의 아들이 미국에서 모는 차가 포르쉐라고 하여 말이 많았고, 후보자들의 부동산 투기에 국민이 절망했습니다. 국토부 장관 내정자는 자진사퇴했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내정자는 지명을 철회했습니다. “‘코드’를 보호하려는 ‘비 코드’ 희생타”라는 비판이 있었습니다. 30년 전세를 살다가 10억 원 빚을 얻어 25억 원의 주상복합을 구입해 물의를 일으키고 물러난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이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차라리 담백하다는 생각이 든다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개각으로 뭐가 달라지나요? 정치는 ‘북적북적’, 북한과 적폐 청산에 매몰되고, 경제는 미래를 향한 눈이 안 보이고, 외교·안보는 외톨이죠. 정부의 내년 예산 요구액은 500조 원입니다. 4월 시작된 일본의 올 회계연도 예산이 100조 엔(약 1,000조 원)이죠. 우리의 약 2배니까 인구나 경제 규모로 볼 때 적은 겁니다. 세금으로 세출을 다 못 대면 국가 빚이 늘고 미래 세대의 등이 휩니다. 저소득 실업자에게 반년간 월 50만 원, 전국에 24조 원을 퍼붓는 23개 공사의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계속되는 최저임금 보상 등 총선을 앞둔 선심이 기승을 부릴 판입니다. 

관의 배급보다 기업을 북돋아 일자리를 만들어야죠. 부존자원이 없는 우리나라는 대기업이 수출로 경제를 이끌고 있습니다. 그런데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외국에 나가 “상위 10대 재벌 자산총액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80%”라며 특정 연도 부가가치의 합산인 GDP와 기업이 창립 이후 수십 년간 축적해온 기업 자산을 괴이하게 비교해 대기업을 비판했습니다. 2017년 대기업 수출 비중이 66.7퍼센트입니다. 한때 일각에서 중소기업이 주력인  대만 경제를 배우자고 했습니다. 지금 그들이 대한민국을 부러워합니다.  

중소기업의 철학을 들려줘야 할 박영선 중소기업벤처부 장관 후보자는 지난 3월 27일 자신의 인사청문회를 야당 대표 공격의 장으로 돌변시켰죠. 하명 수사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검사 출신 이용주 의원이 난데없이 장관의 자질 검증과 무관한 김학의 사건을 질의했고 그녀는 이를 만류하기는커녕 기다렸다는 듯이 “2013년 3월 13일 오후 국회 법사위원장실에서 (이틀 전 취임하여 인사차 방문한) 황교안 법무부 장관에게 차관으로 임명되면 문제가 커진다며 김학의 동영상 CD를 보여주었다”고 전국에 생방송 했죠. 

박지원 의원은 당시 박 위원장이 “나에게 전화해 ‘황 장관이 귀까지 빨개졌다’며 낄낄댔다”고 최근 방송에서 보탰습니다. 박영선은 청문회 날 밤 기자들에게 장관에게 CD를 보여준 적도, 재생해준 적도 없다고 말을 바꿨죠. 팩트가 생명인 기자 출신이 사실이 아닌 것을 자신의 인사청문회에서 말한 것이죠. 박지원은 입수한 동영상 건을 묵혔다가 회심의 반격을 기획한 걸까요? 이 사건은 재수사 중이고 야당이 요구하는 특검을 할지도 모르니 밝혀지겠죠. 2006~2007년에 발생한 사건입니다.

성 접대라는 1~2분 정도의 동영상이 어떤 내용인지 모르지만 별걸 다 공유하는 ‘박 남매’라고 생각합니다. 박 후보자는 2013년 3월 13일 황 법무가 예방한 날 점심 식대 42만 원을 정치자금 사용으로 보고했지만 사실은 황 법무가 아니라 지역구 사람과 식사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한국당은 그를 △업무방해죄 △직권남용죄 △뇌물죄 △출판물 등에 의한 명예훼손죄 △정치자금법 위반 △공직선거법 위반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습니다.

자유한국당은 박 후보자가 국회에서 삼성을 저격하고 뒤로는 국제변호사인 남편이 수백억 원대의 삼성 소송사건을 수임했다고 터트렸습니다. 평창 겨울올림픽의 하얀 롱패딩은 새 발의 피고, 서울대병원 ‘황후 진료’ 의혹, 금지된 법인의 정치자금 수수 의혹도 폭로되었습니다. 그는 병원 특혜 의혹 지적에 대해, "XXX 위원님, 전립선암 수술하셨습니까? 이렇게 말씀드리면 어떻게 느끼겠습니까?"라며 청문회장에서 병명을 발설하지도 않았는데 여성 비하로 둔갑시켰죠. 세계적인 여배우 앤젤리나 졸리는 NYT에 여성암 수술을 받았다고 당당하게 기고했습니다. 필자는 박 의원을 모르지만, 언론인이었던 그녀의 전 시아버지(작고)에게서 아들과 그녀에 관해서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기업을 경영한 경험이 없으나 아주 부자인 박 의원이 지역구가 구로단지라서 중기벤처 장관을 시켰는지 모릅니다. 박 의원은 청문회에서 구로산업단지의 가동률도 알지 못했다고 합니다. 임명권자는 청문회가 야당 대표까지 엮자 곤혹스러울지도 모릅니다. 낙마 안 한다면 늘 저돌적인 박 의원이 무슨 이상한 논리로 대기업을 들볶을지 걱정됩니다. 전체 기업 수의 99.9퍼센트인 354만 개, 전체 종사자의 82.2 퍼센트인 1,430만 명이 일하는 중소기업이 커져서 대기업이 늘어나야 좋은 겁니다. 대기업은 청년들이 선호하는 일자리입니다. 대기업을 괴롭히면 중소기업은 성장을 억제하거나 규제 없는 나라로 옮기겠죠. 20대가 비판적인 이유도 문 정부의 반기업 정서와 무관하지 않을 겁니다.

박영선이 장관이 되면 달라질까요? 전임 홍종학은 졸졸 대통령 사진 찍는 데 따라다닌 것만 기억납니다.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 씨 피살은 ‘통과의례’. ‘사드 배치하면 나라 망한다’”라고 말해 “북한 대변인 같다”는 통일부 장관 김연철 후보자를 비롯해 왜 이런 사람들만 고르냐는 질문에 당정은 그래도 나은 사람을 고른 거라고 강변했습니다. 더 나은 사람들은 전 정권 고관들이 줄줄이 구속되는 걸 보며 교도소 담장을 걷는 모험을 피했을지 모릅니다. 

중기벤처부 장관은 성공의 예가 없다는 소득주도성장을 고치고 최저임금제도를 개선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정치는 공정, 균등, 정의 같은 ‘잘난’ 어휘로 속일 수 있지만, 경제는 숫자의 사회과학입니다. 성장, 취업, 실업, 수출, 세입과 세출, 급여, 모든 게 수치죠. 목표를 숫자로 나타내지 못하는 경제정책은 허구입니다. 고용 통계에서 올 1월 농어업인이 1년 전보다 10만 7,000명이나 급증했답니다. 작년 전체로 이 분야에서 6만 2,000명이 늘었는데…. 지난 1월 총 취업자 증가는 1만 9,000명이니 실제로 농어업 외에서 8만 8,000명이 준 거죠. 실직자, 은퇴자들이 입에 풀칠하려고 가족과 함께 농촌에 간 것이 고용 증가의 실상이라고 전문가들이 숫자를 풀이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박정희, 전두환 두 대통령의 고도성장기에 한 해 10% 이상도 성장했습니다. 21세기 들어 맥을 못 추고 있습니다. 국가는 왜 존재하고 그 비전은 무엇인지, 정부·여당이 대오각성해야 합니다. 정부는 세금을 마구 걷어 마구 쓰라는 게 아닙니다. 부강한 나라를 목표로 삼고, 대선 공약대로 일자리를 만들어야죠. 요즘 국민의 미래를 책임질 국민연금도, 현재를 지키는 건강보험도 포퓰리즘으로 고갈 시기가 당겨지고 있습니다. 책임자가 국사 전공인 국민연금은 작년 약 32조 원의 주식 손실을 냈죠. 국민 돈으로 수익성 개발보다 대기업 잡는 연금 사회주의에 정신이 빠져 있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이렇게 어려울 때는 내 편이고 코드가 맞더라도 ‘조조 라인(조국, 조현옥)’ 같이 인선을 20여 차례나 잘못한 참모들은 바꿔서 인재를 초당적으로 기용해야 할 것입니다. 인사가 만사라는 말을 존중해야 합니다. 그런 철칙을 어기면 큰 후환이 따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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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김영환

한국일보, 서울경제 근무. 동유럽 민주화 혁명기에 파리특파원. 과학부, 뉴미디어부, 인터넷부 부장등 역임. 우리사회의 개량이 글쓰기의 큰 목표. 편역서 '순교자의 꽃들.현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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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중국에 이길 길은 자유뿐 [김상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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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중국에 이길 길은 자유뿐

2019.04.06

중국에서 그렇게 뜨거운 ‘자유찬가’를 듣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지난달 26일부터 나흘간 하이난(海南)섬에서 열린 2019 보아오(博鰲) 아시아포럼에서였습니다.

리커창(李克强) 총리는 개막 기조연설에서부터 “자유무역과 대외개방은 중국의 기본적 정책”이라며 보호무역주의를 집중 겨냥했습니다. ‘아메리카 퍼스트’를 외치는 트럼프의 미국을 염두에 둔 발언이려니 했지만 리커창은 ‘자유로운 중국’을 거듭 역설하며 이를 뒷받침할 조치들을 열거, 눈길을 끌었습니다. 외국인 투자와 금융기관에 대한 대대적 규제 완화를 비롯, 외국기업에 대한 기술이전 강제를 금지하는 규정 신설에 이어 지식재산권이 침해되면 감당하기 어려운 대가를 치르도록 하겠다는 약속까지 했습니다.

내심 ‘정말 중국이 그렇게까지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만 하이난의 한 제조업체가 감세와 비용인하 조치로 이익이 10% 증가, 이를 연구개발과 경쟁력 향상에 쓰고 있다는 얘기엔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실제로 하이난은 맹렬한 속도로 홍콩, 싱가포르, 두바이를 능가할 아시아 최대의 자유무역지대로 거듭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바로 그 주역입니다. 그는 지난해 4월 13일 하이난 경제특구 설립 30주년 기념행사에 직접 참석, “하이난 전역에 자유무역실험구를 조성, 중국 특색의 자유무역항 건설을 추진해나가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이튿날인 14일 중국 국무원은 2035년까지 하이난에 글로벌 최고 수준의 자유로운 사업환경을 부여하는 구체적 일정을 제시했는데, 국제 관광소비 중심은 물론 ‘국가 중대전략 서비스 보장구(保障區)’와 ‘국가 생태문명 실험구’로서의 성격도 명확히 했습니다. 요컨대 중국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모든 것을 하이난에서 먼저 자유롭게 구현해 나가겠다는 것입니다.

하이난섬의 크기는 3만5,400㎢로, 각각 1,000㎢ 수준인 홍콩과 싱가포르, 4,000㎢ 수준인 두바이를 다 합친 것보다 큽니다. 제주도의 18배 크기지요. 인구도 930만 명에 달합니다. 40년 전 덩샤요핑(鄧小平)이 개혁개방의 요지로 손꼽았던 하이난은 시 주석의 부친 시중쉰(習仲勳)이 광둥(廣東)성장으로 관할했던 곳이며 지금은 일대일로(一帶一路) 해상 실크로드의 핵심 지역이기도 합니다, 여기에 세계 최고의 자유가 넘쳐난다면 어떻게 될까요.

이번 보아오포럼에서 열린 ‘자유무역지대: 중국과 국제사회의 성공사례’ 세션은 그런 점에서 흥미로웠습니다. 하이난을 비롯, 중국의 차세대 리더들이 대거 패널로 참여한 가운데 유일하게 초청받은 외국인은 원희룡 제주도지사 한 명뿐, 그에게 집중적인 질문이 쏟아졌습니다. “비자 프리 정책을 비롯, 자유경제와 특별 자치제에 이르기까지 한참 선배인 제주도로부터 중국과 하이난이 배워야 할 것은 무엇이냐?”는 것이 주된 요지였습니다.

원 지사의 답변은 이랬습니다. “중국이 배워갈 것은 이미 다 배워갔습니다. 이제는 시진핑 주석이 하이난에 부여한 특별한 자유와 자치가 솔직히 부럽군요. 제주도도 하이난과 같은 자유와 자치를 누리도록 시 주석께서 문재인 대통령께 얘기를 좀 해주시면 좋겠어요. 최소한 실험할 자유라도 갖고 싶습니다.” 재치 있는 답변에 좌중의 박수가 쏟아졌지만 원 지사의 마음속은 착잡했을 겁니다. 중국 하이난에서는 다국적 의료특구를 비롯, 블록체인 실험단지에 이르기까지 제주도에서는 하고 싶어도 원초적으로 ‘금지’되는 일들이 국가적 지원 속에 착착 진행되고 있으니까요.

토론에 참여한 저우샤오촨(周小川) 전 중국 인민은행장은 “중국은 개혁개방 과정에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많은 것을 배웠고, 그러므로 앞으로도 더 발전하기 위해 시행착오를 마다하지 않을 것”이라며 염장을 지르더군요. 그러고 보면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대한민국 대통령으로부터 ‘적폐청산‘은 자주 들었어도 ‘자유찬가’는 들어본 기억이 없습니다. 우리가 북한과 달리 자유로운 시장경제를 선택해 여기까지 왔고, 그런 한국을 중국이 배워왔는데 말입니다.

앞서 언급한 블록체인을 비롯, 빅 데이터와 인공지능, 재생에너지와 전기자동차, 심지어 세계 최초로 도입했다는 5G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중국에 실제로 이길 수 있는 규모의 기술과 산업은 이제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게 이번 보아오 포럼을 본 소감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남았을까요.
하이난의 어느 젊은 대학생이 힌트를 줍니다.
“우리의 자유는 국가의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진 자유입니다. 당에서 부여한 지시받는 자유예요. 시민 개개인을 위한 자유가 아니라 통치를 위한 면허증 같은 겁니다.”

관제(官製) 자유가 아니라 본연(本然)의 자유, 집단과 조직의 자유가 아니라 개개인의 자유! 이것이 중국과 한국, 하이난과 제주도를 가르는 마지막 카드가 아닐까요? 진정한 한국발 자유찬가를 고대합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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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김상협 카이스트 지속발전연구 센터장(초빙교수), (사)우리들의 미래 이사장

서울대 외교학과 석·박사, 매일경제 워싱턴 특파원, SBS 보도본부 미래부장, 대통령 직속 녹색성장기획관 역임. 현재 제주 그린빅뱅 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 한중일 협력대화(The CJK Cooperation Dialogue) 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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