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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나라의 만년필

2020.09.29

천 리에 떨어져 있어도 자기 집을 찾아오는 우리나라의 진돗개. 군견으로 유명한 저먼 셰퍼드는 독일, 험상궂게 생겼지만 친절한 불도그는 영국. 프랑스엔 발랄한 푸들이 있고 하얀 털에 눈, 코. 입이 까만 몰티즈는 이탈리아. 큰 덩치에 썰매를 끄는 순둥이 알래스칸 맬러뮤트는 미국입니다. 이 밖에도 수많은 개의 종류가 있습니다. 종류가 많은 이유는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목적에 맞게 품종을 개량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추석을 앞두고 웬 개소리냐고요? 사실 만년필과 반려견은 상당히 많이 닮았습니다. 먹이를 주듯 잉크를 채워주어야 하고, 목욕을 시키듯 세척(洗滌)을 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이 둘은 주인을 알아본다는 점입니다. 반려견이 주인을 보면 꼬리치듯이 만년필을 매일매일 써 주면 펜 끝이 주인의 필기습관에 맞게 닳아 매끄럽고 부들부들한 그 특별한 필기감은 오직 그 사람만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만년필도 나라마다 특징이 있을까? 먼저 만년필 종주국(宗主國)인 미국입니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모든 만년필은 모세관현상을 이용한, 가는 홈을 타고  잉크가 흘러 나와 펜촉을 통해 글이 써지는 것인데, 이 방법은 1883년 뉴욕에서 보험업을 하던 워터맨이라는 사람이 생각한 것입니다. 이 사람이 설립한 회사가 워터맨사(社)입니다. 몇 년 뒤 등장한 회사가 화살클립으로 유명한 파커사(社) 그리고 만년필에 평생을 보증하는 개념을 도입하여 만년필의 황금기를 연 쉐퍼. 이 회사들이 미국을 대표하는 회사들입니다. 미국 만년필의 특징은 “튼튼하고 수리가 쉽다."입니다. 수십 번 분해하고 조립해도 문제없이 잘 작동하고 꼭 전용도구가 아니더라도 분해하고 수리할 수 있습니다.

​영국은 미국 만년필 회사들이 많이 진출하여 전체적으로 미국과 비슷한데 “보수적이고 점잖다.”입니다. 미국에서 유행이 끝나도 영국에서는 계속 생산되는 것이 많고 대부분의 만년필 컬러는 빨강, 노랑처럼 튀는 색상보다는 자주색이나  남색이 많습니다.

독일은 현대 만년필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곳입니다. 유행과 이슈를 이끄는 몽블랑과 펠리칸이 독일 회사이기 때문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예전엔 그리 중요한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1920년대까지 미국에서 개발되는 것을 변형하여 썼고 독일이 발명한 것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1929년 잉크류를 만들던 펠리칸사(社)에 100분의 1mm까지 정밀하게 만든 잉크를 채우는 장치인 이른바, 피스톤 필러(piston filler)가 끼워진 만년필이 출시되면서 미국의 영향에서 벗어나기 시작하였습니다. 몽블랑도 이것에 자극받아 새로운 시도를 하면서 이 두 회사는 라이벌 관계을 유지하면서 독일 만년필이 발전하게 됩니다. 독일은 한마디로  “정밀하지만 융통성은 없다.”입니다. 왜냐면 전용도구가 없으면 분해가 힘들고 한 번의 분해도 좋지 않다는 것은 독일 만년필을 딱 맞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1930년대 생산된 펠리칸 100

         
프랑스는 “세련된 자기만의 고집.”입니다. 잉글리시 불도그를 개량하여 프렌치 불도그를 만든 것처럼 만년필 세계의 주도권이 미국에 있었던 시절에도 프랑스는 프랑스 특유의 세련됨을 잃지 않고 만년필을 만들었습니다. 물론 독일시대인 요즘도 마찬가지입니다.

​이탈리아는 “화려함 속에 감춰진 약한 몸.”입니다. 이탈리아 역시 초기엔 상표를 보지 않으면 미국 만년필로 보일 만큼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이탈리아만의 화려함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파랑은 에게해의 바다를, 빨강은 곧 장미였습니다. 그러나 그 화려함 뒤엔 문제가 있었습니다. 잉크를 채우는 장치가 쉽게 고장 나고 몸통이 부러지는 등 내구성이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그걸 알면서도 그 화려함에 끌려 '내 펜은 괜찮겠지' 하고 지갑을 여는 것이 만년필 세계에 누구나 한번 빠지게 되는 함정 중에 하나입니다.

마지막으로 일본은 “전부 B플러스.”입니다. 동급의 미국이나 유럽의 만년필에 비해 3분의 1정도 저렴한 일본 만년필은 성능 면에서 결코 떨어지지 않습니다. 제법 튼튼하고 펜촉도 야물지만, 아내가 모르는 특별 보너스가 생겨도 일본 만년필이 생각나지 않는 것은 일본 만년필의 문제 아닌 문제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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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박종진

1970년 서울 출생. 만년필연구소 소장. ‘서울 펜쇼’ 운영위원장.
저서: ‘만년필입니다’, ‘만년필 탐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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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설픈 역사소환

2020.09.28

KBS의 연중 대하드라마 ‘개국’이 한창 뜨던 1983년 봄 전혀 예기치 않은 편지 한 통을 받았습니다. 보낸 사람은 왕상은(1920~2019) 개성 왕씨(開城王氏) 종친회장. 왕 회장과는 일면식도 없었지만 부산에서 해운회사를 설립한 기업가로 재선 국회의원을 지낸 사람이라 금방 알아볼 수 있는 인물이었습니다. 일본 도시샤(同志社)대학을 나온 그의 편지는 격식과 예의를 갖춘 문투였습니다. 반면 내용은 흑역사(黑歷史)에 대한 강한 저항이었습니다.

편지 내용은 “드라마의 전개 과정에서 주인공 이성계의 쿠데타 당위성과 논리를 강조하려는 의도가 넘치니 개성 왕씨를 너무 폄훼하지 말도록 제작진에 일러 달라”는 부탁이었습니다. 당시 필자는 방송 담당 기자로 ‘주간 방송평’을 써온 터라 그런 간곡한 부탁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편지 내용을 담당 PD(고 장형일)에게 알려주면서 참고하라는 말을 했지만 구체적으로 드라마에 어떻게 반영되었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드라마 ‘개국’은 첫 방영 이후 시청률이 높았지만, ‘신군부의 집권을 노골적으로 정당화하기 위한 어용 사극’ '흑역사‘라는 비판을 지금까지 벗지 못하고 있습니다.
드라마의 극본을 쓴 작가(이은성)는 원작을 무시하고 완전히 자기 스타일로 개조하는 바람에 원작자(이태원)는 물론 방송사 고위 간부들로부터도 거센 항의를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잘난 조상 끌어대면 닭 새끼가 봉황 될까

문재인 정부 들어 ‘역사소환(召喚)’이라는 생소한 용어가 등장하면서 소환 대상이 줄을 잇고 있는 가운데 최근 안중근 의사가 불려나왔습니다. 추미애 법무장관 아들의 군복무 시절 전화로 병가를 연장한 사실을 두고 박성준 민주당 원내대변인이 “추 장관 아들이 군에 간 것은 안중근 의사의 ‘위국헌신 군인본분(爲國獻身 軍人本分)이라는 말을 몸소 실천한 것”이란 논평을 한 것이 발단입니다. 안 의사의 본관인 순흥 안씨(順興安氏) 종친들이 발끈했습니다. “정권 유지를 위해 안 의사를 파는 파렴치한 인간들이 어디 있느냐”고. 지난 21일에는 안씨 문중 관련 인사 20여 명이 국회를 방문, 박 대변인의 사퇴를 요구하는 항의서한을 민주당에 전달했습니다.
‘조국 흑서’를 낸 서민 교수(단국대)는 “추 장관 아들이 안중근 의사라면 윤미향은 유관순 열사, 정청래는 계백 장군, 황운하는 을지문덕 장군이냐”고 되물었습니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도 “도를 넘어선 망발”이라고 했습니다.

이보다 앞서 민주당 황희석 최고위원은 온갖 의혹으로 온 가족이 혐의를 받고 있는 조국 전 법무장관을 두고, 지난 6월 “조국 교수는 경상우도의 학풍을 세운 남명(南冥) 조식(曺植) 선생의 직계 후손”이라고 했다가 조씨 문중의 반발을 샀습니다. “창녕 조씨(昌寧曺氏)라고 다 같은 조씨냐. 전혀 사실이 아니다”는 강변입니다. 민변 출신인 황 위원은 지난해 9월부터 법무부 검찰개혁 추진지원단 단장 직을 맡고 있습니다.

법무부 인권국장이던 올 3월 황 위원은 “조국 하면 기묘사화의 피해자가 된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 선생이 떠오르고, 대윤·소윤 하면 권력을 남용하던 윤임·윤원형이 떠오른다”고 했다가 한양 조씨(漢陽趙氏) 문중의 분노를 샀습니다. “한양 조씨 문중과 국민을 모독하는 망언”이라고.
황 위원은 조(曺)국을 조(趙)광조 선생에, 윤석열 검찰총장을 윤임·윤원형에 빗댄 것입니다. 번지수가 틀린 억지 비유입니다.

# 정치적 역사공정, 축소지향 못 벗어나

역사소환은 문 대통령이 집권 초기인 2017년 6월 1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가야사(伽倻史) 연구와 복원을 국정과제에 포함하라”고 뜬금없이 지시하면서부터 스타트업 했습니다.
이후 ‘친일 청산’을 빌미로 이승만과 대한민국 건국 논쟁, 박정희와 새마을운동, 이명박과 4대강 보, 백선엽과 친일 행적 비판에다, 동학운동까지 거슬러 올라가면서 끝없는 역사소환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헌법 전문의 ‘자유’ 삭제, 5·18 비판 형사처벌, 휴전협정의 평화협정 전환, 한미동맹 파기와 전시작전권 환수, 한일협정 및 위안부 합의 부정 등 정치적 역사공정(工程)의 주춧돌을 놓고 있습니다.
5,000년 전 황제시대를 중국 역사의 시원으로 만든 역사공정과 주변 국가의 역사를 중국사의 일부로 편입시키는 동북공정(고조선, 고구려, 발해), 서남공정(티베트)처럼 중국이 확대지향의 공정이라면, 우리는 축소지향의 공정이라는 인식을 떨쳐버릴 수가 없습니다.

영어의 god(신)을 거꾸로 쓰면 dog(개)가 되듯이, 말을 쉽게 뒤집다 ‘신의 죽음’이 ‘개의 죽음’이 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을까 걱정스럽습니다. 흑역사(없었던 일로 해버리고 싶은 과거의 일)를 백역사(더 평가되고 알려져야 하는 과거의 일)로 치환하다 보면 호랑이 아비에 개자식(虎父犬子 호부견자)이 태어날 수도 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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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김홍묵

경북고,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동아일보 기자, 대구방송 이사로 24년간 언론계종사.  ㈜청구상무, 서울시 사회복지협의회 사무총장, ㈜화진 전무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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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목’(眼目)과 ‘맹목’(盲目)에 대하여

2020.09.26

인류 최고(最古·最高)의 대서사시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쓴 호메로스는 눈먼 유랑시인이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사실 호메로스의 실존 여부조차 논란의 여지가 있는 마당에 그가 진짜 맹인이었는지 확언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오디세이아>에서 아름다운 노래로 좌중의 마음을 울리고 백성들의 존경을 받는 가인(歌人) 데모도코스는 맹인입니다. 그에 대한 묘사에서 호메로스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습니다.

  무사 여신은 누구보다도 가인을 사랑하시어
  좋은 것과 나쁜 것 두 가지를 다 그에게 주셨으니
  그에게서 시력을 빼앗고 달콤한 노래의 재능을 주신 것이다.

왜 시인은 남다른 안목으로 세상사를 노래하는 시인을 맹인으로 설정한 것일까요? 우리가 흔히 뮤즈라고 부르는, 시와 음악에 영감을 주는 무사 여신은 왜 가인에게서 시력을 빼앗은 것일까요?

예로부터 눈은 인간의 분별력을 상징하는 신체기관입니다. 하지만 흔히 우리 인간의 눈은 온전한 분별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불완전한 기관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그래서 무사 여신은 가인들의 세상에 대한 남다른 안목을 위해 시력을 앗아간 것일 수도 있습니다. 여기에는 인간들의 보는 행위가 오히려 분별력과 판단력을 흐린다는 은유가 담겨 있습니다.

많은 고전 문학과 신화에서 눈과 분별력의 그런 관계를 상징적으로 그려왔습니다. <오이디푸스>가 그 대표적 예입니다. 오이디푸스는 테베를 괴롭히는 괴물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 정도로 지혜로운 자입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의 문제는 바로 보지 못해 비극적 파멸을 합니다. 그는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여 후손을 얻으리라는 끔찍한 신탁을 피하려 애쓰지만 결국 신탁은 이루어지고 맙니다. 자신이 저지른 짓에 대한 응징으로 오이디푸스는 스스로 눈을 찔러 소경이 됩니다. 이는 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한 어리석음에 대한 상징적 처벌인 것입니다.

셰익스피어의 <리어 왕>에서도 비슷한 은유를 볼 수 있습니다. 리어 왕을 돕다가 그의 둘째 딸 부부에 의해 눈알이 뽑혀 소경이 된 충신 글로스터 백작은 말합니다. “난 눈이 멀쩡할 때도 걸려 넘어졌다”고. 이는 둘째 아들의 계략에 속아 첫째 아들이 패륜을 저질렀다고 믿고, 결국 둘째 아들의 배신으로 그런 파멸에 이른 걸 표현한 겁니다. 그는 두 눈을 멀쩡히 뜨고 있을 때 두 아들의 진심을 바로 보지 못했습니다.

거짓 사랑 표현만 듣고 탐욕스런 첫째 딸과 둘째 딸에게 재산과 권력을 다 나누어주고 진짜 효성스런 막내딸과는 의절한 리어 왕과 글로스터 백작은 왜 자식들의 효심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을까요? 그건 듣고 싶은 말만 듣고, 보고 싶은 거만 보려는 인간적 결함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진실 된 말보다는 듣고 싶은 말에 귀를 기울입니다.

지금은 최첨단 기술로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정보를 접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누구나 관심과 의지만 있으면 유튜브 등 매체를 이용하여 어떤 분야에서든 기본적 안목을 지닐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세상에 대해 온전한 분별력과 판단력을 지니기는 더 힘들어졌습니다. ‘정보의 홍수’라는 말이 식상할 정도로 매일 수많은 정보가 쏟아지지만 극단적으로 편향된 시각을 지닌 정보들이 사람들의 생각을 점점 더 편향적으로 만들어 갑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자신의 사상과 취향에 맞는 정보만 찾아 듣기 때문입니다.

첨단 기술의 알고리즘도 이런 편향성에 한몫하는 듯합니다. 유저가 시청한 유튜브 기록을 바탕으로 그 사람의 취향과 경향에 맞게 정보들이 제공되면서 유저들은 편향된 정보를 아무 생각 없이 소비하게 됩니다. 그에 따라 사람들의 사고와 판단도 맹목적이 되고 때로는 극단적이 됩니다.

더불어 우리 사회의 양극화도 위험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많은 고전 문학에서 온건한 판단력의 중요성을 수없이 노래했듯이 넘쳐나는 정보들로 안목을 지닐 것인지 맹목적이 될 것인지, 곰곰이 고민해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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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권오숙
한국외대에서 셰익스피어 연구로 박사학위 취득. 현재 한국외대, 서울과학기술대 외래교수, 한국셰익스피어학회 연구이사. 주요 저서 『셰익스피어: 연극으로 인간의 본성을 해부하다』 『청소년을 위한 셰익스피어』, 『셰익스피어와 후기 구조주의』, 『셰익스피어 그림으로 읽기』 등. 『햄릿』, 『맥베스』,『리어 왕』, 『오셀로』, 『베니스의 상인』, 『살로메』 등 역서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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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막는 ‘진인사대천명’

2020.09.25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관상용 열대어 구피에게 먹이를 줍니다. 베란다에 가지런히 놓인 꽃들에게도 인사를 합니다. 믿음이 두터운 기독교인답게 찬송가를 틀어놓곤 잡곡밥에 된장국, 쌈채소, 멸치호두볶음, 들기름에 지글지글 구운 두부구이를 반찬으로 식사를 합니다. 뒷산을 30분가량 걸어 소화를 시킵니다. 집 안을 청소한 후 둥굴레차를 마시며 뜨개질을 합니다.

여든세 살 엄마의 일상입니다. 봄부터 여름 내내 아들딸에 사위, 며느리, 손주 열한 명의 카디건을 짰습니다. 지금은 귀한 자식을 우리집에 보내준 고마운 사람이라며 사돈들에게 선물할 조끼를 뜨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식사도 대충하고 혼자 우울하게 시간을 보내던 엄마가 변했습니다. 치매 걱정 때문이랍니다. 웬만한 젊은이보다 바삐 손을 놀리고 있습니다.

뜨개질은 단순하지만 정신을 집중해야 해 마음을 가라앉힐 때 좋다고 합니다. 신경이 곤두선 날에는 코가 잘 꿰이지 않거나 코를 빼뜨린다네요. 그러면 아차 싶어 풀어서 다시 뜨면서 심신을 안정시킨답니다. 우리 오남매에게도 뜨개질로 마음을 다스리라고 권유합니다. 스스로를 관리하는 엄마가 참 존경스럽고 고맙습니다.

9월 21일은 ‘치매극복의 날’입니다. 정부가 2017년 치매국가책임제를 도입하며 제정한 법정기념일입니다. 누구도 걸리지 않으리라 자신할 수 없는 치매. 인간의 존엄성마저 앗아가는 치매. 이 끔찍한 질병에 대한 인식 제고와 함께 예방, 관리를 위한 범국민적 공감대 형성을 위해 정한 날입니다. 국가가 관리할 정도로 심각한 질병임을 알 수 있습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65세 인구의 8~10%가 치매를 앓고 있으며 이 중 절반은 알츠하이머병이라고 합니다. 심지어 15분마다 1명씩 치매 환자가 발생한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이런 식이면 2025년에는 국내 치매 환자 수가 100만 명을 돌파할 것으로 추산됩니다. 아찔한 통계입니다.

사람들은 치매도 예쁜 치매, 미운 치매로 분류합니다. 치매를 앓는 이들의 모습이 다양해서겠지요. 얌전했던 사람이 험악한 욕을 한다든가, 폭력을 쓰는 등 가족과 주변 사람을 괴롭히면 미운 치매입니다. 예쁜 치매는 인지 기능이 떨어져 가족을 못 알아보더라도 잘 먹고 잘 자고 온순하게 지내는 이들입니다. 예쁜 치매의 대표적 사례로 꼽히는 아인슈타인의 이야기를 해볼게요.

아인슈타인은 기차 여행 중 차장이 검표하러 왔는데 표를 찾을 수 없었다. 주머니는 물론 가방까지 다 뒤졌지만 허사였다. 차장은 워낙 유명한 사람인지라 "괜찮습니다. 안 보여줘도 됩니다”라고 했다. 그래도 아인슈타인은 의자 밑을 더듬으며 허둥댔다. “정말 안 보여줘도 됩니다”라는 차장의 말에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말한다. “표를 찾아야 내가 어디로 가는지 알 것 아니오.”

치매가 공포의 대상이 된 이유는 뚜렷한 원인과 치료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전문가들도 “예방이 중요하다”고 한 목소리를 냅니다. 온라인상에 치매예방수칙, 세대별 치매예방법 등이 쏟아져 나오는 이유입니다. 나는 치매예방법 중 치매학회가 내놓은 ‘진인사대천명 수칙’을 따르고 있습니다.

“(진)땀 나게 운동하라. (인)정사정없이 담배를 끊어라. (사)회 활동을 열심히 하라. (대)뇌 활성화를 위한 독서·신문 읽기·글쓰기에 힘쓰라. (천)박하게 술 마시지 말라. (명)을 늘리는 음식을 먹으라.”

담배는 처음부터 입에 대지 않아 문제없습니다. 운동을 좋아하니 거의 매일 진땀 나게 하고 있습니다. 직업이 ‘기사 제대로(?) 읽기’인 덕에 매일 뇌를 굴립니다. 몸에 좋다는 음식도 제때 골고루 적당히 잘 먹고 다닙니다. 그런데 술에서 턱 막힙니다. 워낙 술을 좋아하다 보니 입에 대기만 하면 ‘천박’하게 많이 마십니다. 과음·폭음이 치매 위험을 1.7배 높인다니 이젠 술과도 이별을 고해야 할 것 같습니다.

치매는 한자로 어리석을 ‘치(癡)’와 어리석을 ‘매(呆)’자를 씁니다. 라틴어로는 ‘정신이 없어진 것’을 뜻합니다. 어리석고 정신이 없어지면 아무리 증상이 순하다 해도 결코 예쁠 수 없습니다. 건강할 때 예방하는 게 아름답고 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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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노경아

경향신문 교열기자·사보편집장, 서울연구원(옛 시정개발연구원) 출판담당 연구원을 거쳐 현재 이투데이 부장대우 교열팀장. 우리 어문 칼럼인‘라온 우리말 터’연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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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 오픈 테니스의 해프닝 -조코비치의 실격패

2020.09.24

경쟁하고 싸우고, 하는 짓은 아마도 살아 있는 것들의 본성일지도 모릅니다. 별로 부추기고 싶지 않은 그런 본성을 오히려 잘 길들이고 훈련시켜 그야말로 공정하고 안전한 룰 안에서 기량을 겨루도록 만든 인간의 창작품이 스포츠라 하겠습니다. 그렇게 경쟁, 투쟁이 스포츠 무대에 오르면서 가장 강조되는 사항이 규칙의 준수요 페어플레이입니다. 규칙이 지켜지지 않고 비신사적인 행위가 발생했을 때의 위험한 결과를 생각하면 너무도 당연한 요구입니다.

지난 13일 뉴욕에서 끝난 올해 두 번째 그랜드슬램 테니스대회 US 오픈에서는 뜻밖의 해프닝이 벌어졌습니다. 세계 랭킹 1위이자 톱시드인 최강자 노박 조코비치(Novak Djokovic, 33, 세르비아)가 뜻밖에 경기 도중 실격패를 당한 것입니다.

남자 단식 16강전에서였습니다. 상대는 20번 시드의 카레뇨 부스타(29, 스페인). 이전 세 차례 대결에서 조코비치는 한 번도 진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날따라 부스타의 반격이 만만찮았습니다. 앞서가던 첫 세트에서 자신의 서브 게임까지 빼앗기며 5-6으로 역전당하고 말았습니다. 실망한 듯 조코비치는 주머니에 남아 있던 볼을 꺼내 베이스라인 뒤로 쳐냈습니다. 하필이면 이 볼이 여자 선심의 목에 명중했습니다. 선심은 그 자리에 쓰러지며 고통을 호소했습니다. 물론 조코비치가 선심을 겨냥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순간적으로 자제력을 잃어 하지 말았어야 할 동작을 취한 것입니다.

조코비치는 깜짝 놀라 쓰러진 선심에게 달려가며 사과의 뜻을 나타냈습니다. 그러나 심판진은 이 위험한 사태를 야기한 조코비치에게 실격패를 선언했습니다. 조코비치가 거듭 의도하지 않았던 단순 실수였음을 해명했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게 바로 그랜드슬램 테니스대회의 규칙이었기 때문입니다. 1995년 윔블던에서는 팀 헨먼(영국)이 볼 걸을, 2017년 데이비스컵에서는 데니스 샤포발로프(캐나다)가 심판을 공으로 맞혀 실격되었습니다.

남자 테니스 빅 3 가운데 유일하게 출전했던 조코비치는 그렇게 대회 중도에 탈락하고 말았습니다. 최근 출전한 모든 대회에서 연전연승, 대적할 선수가 없었던 그로서는 허무한 도중하차였습니다. 그랜드슬램 우승 20회의 페더러, 19회의 나달을 추격하던 조코비치의 18회째 우승 기회도 물거품처럼 사라졌습니다.

너무도 아쉬웠지만 조코비치는 자신의 실수와 그에 대한 판정에 수긍, 상대 선수 부스타에게 축하의 악수를 건네고 코트를 떠났습니다. SNS에는 “결코 고의로 한 것은 아니지만 매우 잘못된 행동이었다. 대회 주최 측에도 사과한다. 이번 일을 성숙한 인간으로서 발전하는 계기로 삼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번 사태는 조코비치 개인은 물론 US 오픈대회로서도 참 불행한 일이었습니다. 최고의 선수가 경기도 제대로 치러보지 못한 채 경기장에서 물러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역시 세계 정상의 자리에 오른 테니스 스타는 떠나는 모습도 남다르구나, 하는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룰에 승복해 책임지고 물러나면서 상대에 대한 축하 인사도 잊지 않았습니다.

조코비치의 그런 멋진 퇴장은 그날 순간의 모습이 아닙니다. 이전부터 그는 상대의 멋진 플레이에 엄지를 치켜세워 칭찬을 보내던 멋쟁이였습니다. 2년 전 부상에서 회복되어 돌아온 호주 오픈 16강전에서 약관의 정현에게 뜻밖에 6-7, 5-7, 6-7로 완패한 후 정현의 어깨를 다독이며 축하해주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빅 3가 모두 빠진 US 오픈 테니스 남자단식 결승에서는 한 번도 그랜드슬램 우승 경력이 없는 2번 시드의 도미니크 팀(27, 오스트리아)과 5번 시드의 알렉산더 즈베레프(23, 독일)가 맞붙었습니다. 초반 두 세트를 2-6, 4-6으로 내리 잃었던 팀은 3세트부터 반격을 펴 6-4, 6-3, 7-6<타이브레이크 8-6>으로 따내며 힘겨운 역전승을 거두었습니다. 4시간이 넘는 혈투가 끝난 후 두 선수는 코로나로 인한 상호 격리의 원칙에도 불구하고 코트를 넘어와 얼싸안은 채 서로를 축하하고 위로해 주었습니다. 그 코로나 때문에 관중석의 박수와 함성이 사라진, 텅 빈 코트여서 둘의 포옹은 더욱 애틋해 보였습니다.

▲ 승자 팀(왼쪽)과 패자 즈베레프의 포옹

보름 동안 테니스 코트에서 선수들의 멋진 플레이, 아름다운 모습이 연출될 때마다 편법, 탈법, 불법 시비에 거짓과 발뺌, 말 바꾸기와 망언이 낭자한 우리 사회의 그늘진 모습들이 겹쳐 떠올라 머리를 어지럽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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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방석순

스포츠서울 편집국 부국장, 경영기획실장, 2002월드컵조직위원회 홍보실장 역임. 올림픽, 월드컵축구 등 국제경기 현장 취재. 스포츠와 미디어, 체육청소년 문제가 주관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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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질과 정치적 선택

2020.09.23

요즘 각종 국제 비교에 대한 보도가 많습니다. 선진국들에 비해 경제사회적 발전이 좀 늦게 시작된 우리나라의 위치와 위상에 대한 궁금증 때문일 것입니다. 이에 비해 미국은 경제, 군사 대국일 뿐 아니라 노벨상 수상, 대중예술 등 소프트파워 분야에서도 1등인 나라로 국제비교에서 늘 선두권입니다. 그런데 최근 발표된 2020 사회진보지수(Social Progress Index, SPI) 국제 비교에서 한국이 17위인 반면 미국은 28위를 차지했습니다.

■ 1인당 국민소득과 사회개발지수(SPI)

국제비교에서 흔히 쓰이는 1인당 국민소득(GDP per capita)은 일정 기간 내 경제활동의 결과를 보여주지만 삶의 질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여러 국제기구가 생활수준이나 사회 발전상을 보여주는 다양한 지표에 바탕을 둔 지수를 개발했습니다. SPI도 이런 성격의 지수로 사회진보조사기구라는 국제적 비영리단체가 개발하여 2011년부터 매년 130개가 넘는 나라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발표하고 있습니다.

소득과 삶의 질 지표는 1대 1로 연관되어 있지 않습니다. 1인당 소득 수준이 한국의 반 이하인 나라들의 경우 대체로 소득이 높으면 SPI도 높습니다. 하지만 소득이 높아질수록 이런 동행성은 약해집니다. 예를 들어 싱가포르의 소득이 뉴질랜드보다 높지만 SPI 순위는 반대입니다. 2020년 순위를 보면 뉴질랜드는 4위, 싱가포르는 29위입니다.

SPI는 ‘인간의 기본니즈(needs)’, ‘웰빙의 기반’, 그리고 ‘기회’라는 세 가지 큰 분야 각각에 4개의 항목, 또 각 항목마다 4~5개 지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순차적으로 늘어나는 세부항목 구성이 피라미드 그림을 닮았습니다. 분야별, 또는 총점을 이용하여 국가 간의 비교, 그리고 특정 국가의 성과가 해가 바뀌며 어떻게 달라졌는가를 알 수 있지요.

■ 한국과 미국의 2020 SPI

한국은 2011년 이후 20위권에서 등락하다 지난 3년 사이 3~4단계 순위가 높아졌습니다. ‘웰빙의 기반’ 분야의 개선이 기여한 바 큽니다. 인터넷과 휴대폰 사용의 확산, 그리고 감염병으로 인한 조기 사망의 감소 등이 점수를 끌어 올렸습니다. ‘양질의 의료서비스 접근’, '개인의 안전'과 같은 분야에서 한국은 미국보다도 훨씬 높은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반면 양성평등, 성소수자 포용 등의 분야 점수가 낮습니다.

미국은 2011년 19위로 출발했으나 순위가 낮아져 작년에 22위, 올해 28위로 밀려났습니다. ‘기본니즈’와 ‘기회’ 분야의 점수가 시간이 지날수록 떨어져 전체 순위가 낮아진 것인데 ‘기본니즈’ 분야의 하락을 주도한 것은 ‘개인의 안전’ 항목입니다. '교통사고 사망', '범죄율이 높다는 인식', '살인범죄' 등 부정적 영역의 결과가 나쁘고 시간이 지나도 개선되지 않고 있습니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니콜라스 크리스토프는 9월 초 글에서 2020년도 SPI 발표를 통해 본 미국의 현실에 대해 개탄합니다. “미국은 대학 평가에서 세계 최고를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양질의 기초 교육에 대한 접근도는 91위이다. ... 의료 기술면에서 세계 최고를 기록하고 있지만, 양질의 의료 서비스 접근성은 97번째이다.” 올해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으로 드러난 미국의 난맥상은 이번 자료에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에 내년 조사에서 미국의 위상이 더 나빠질 개연성이 큽니다.

■ OECD의 삶의 질 지수(BLI)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30여 개의 회원국을 대상으로 경제적 변수도 포함하는 삶의 질 지수(Better Life Index, BLI)를 발표하고 있습니다. ‘물질적 삶의 조건’, ‘삶의 질’의 두 영역의 세부 사항에 대해 조사하여 매년 발표하고 있습니다. 물질적 조건에는 주거비, 소득과 부, 직업과 소득이, 그리고 삶의 질에는 사회적 관계, 환경, 건강, 일과 삶의 조화 등이 하위 항목입니다.

BLI로 본 한국의 상황을 요약하자면 OECD 평균에 비해 부채를 감안한 소득은 낮고, 빈부격차는 좀 높은 편이나 주거비 부담은 작은 편입니다. 3개월 동안 소득이 없으면 빈곤층으로 떨어질 처지의 인구 비중은 OECD 평균이나 미국에 비해 더 작습니다. 하지만 평소 각종 모임이 빈번한 것을 보며 받는 인상과는 달리, 어려움에 처했을 때 도움을 청할 친구나 가족이 없다는 사람 비중이 상당히 높고, 삶의 만족도가 낮은 편입니다. 자살률이 높은 것은 재언할 필요가 없습니다. 불안하고 불만스런 삶을 사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지요.

■ 미국인들은 왜 트럼프를 뽑았나?

SPI나 BLI는 미국 서민들의 처지가 어려운 것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근래 미국 유권자들의 선택은 쉽게 납득이 안 됩니다. SPI에서 알 수 있듯이 국민의료보험이 없는 미국에서 민간 의료보험이 비싸서 의료서비스 접근성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지난번 선거에서 서민들의 의료서비스 접근을 용이하게 해주는 오바마케어 정책의 민주당보다 부자와 기업의 세금을 낮추는 것을 우선시하는 공화당의 후보를 대통령으로 뽑았습니다.

다른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토마스 프리드먼에 따르면 납득이 쉽지 않은 이런 선택을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습니다. 많은 유권자들이 그간 지도층·지식인들이 자신들을 무시한다는 굴욕감을 느껴왔다는 것입니다. 지난 대선에서 이를 잘 이용한 선동적인 후보에게 표를 주었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내륙 중서부나 남부에 살며 전통 제조업, 농축산업에 종사하는 대졸 이하 학력 백인들에게 동해안 뉴욕 월가의 금융업, 서해안 캘리포니아의 실리콘 밸리의 정보통신업의 호황은 남의 나라 일인 거지요. 동·서해안 대도시 중심의 호황과 다문화 추세가 상대적으로 낙후된 지역을 비껴가며 이 지역 주민들의 이질감과 소외감과 걱정이 커졌다는 것입니다. 이런 배경에 등장한 트럼프는 ‘그동안 사회 지도층과 언론이 당신들을 무시했고, 불법 이민자들을 위하느라 당신들의 처지가 나빠졌다. 내가 이런 적폐를 확 뒤집어 여러분의 미국이 다시 위대하게 할 것이다’라는 일종의 反엘리트 마케팅에 성공해서 대선에서 신승했다는 것입니다.

코로나바이러스 확산 등 그간 드러난 무능과 거짓 언행에도 불구하고 많은 기존 트럼프 지지자들의 선택이 바뀌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민주당의 바이든 후보가 마음의 상처를 안고 있는 유권자들에게 자신이 그들을 존경하며 걱정하는 바를 알고 있다는 점을 설득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라고 지적합니다.

■ 한국은?

통계를 정리하고 관련 글을 보며 우리나라에서도 그동안 이어진 사회지도층의 행태가 서민 계층에게 모멸감을 느끼게 한 것이 과거 보수적 정권이 퇴장하게 된 원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객관적 삶의 질 지표들을 보면 우리나라의 상황이 그리 나쁘지 않기에 ‘못 살겠다’가 정권교체의 중요한 이유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지도층이 지연·혈연·학연, 사적 이익에 얽혀 공적 결정을 내리고 적법한 데 뭐가 문제냐는 행태가 거듭되면 구린 냄새가 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들어선 현 집권 세력이 국정 운영을 잘하거나, 과거 세력들에 비해 더 도덕적이거나 공정하지도 않아 보입니다. 하지만 지난 두 번의 큰 선거를 크게 이기는 것을 보며 한국에서도 무시당했다는 정서의 유권자들이 많고 이들을 대상으로 마케팅을 잘 한 결과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인용된 기사)
‘We’re No. 28! And Dropping!‘, Nicholas Kristof, New York Times 2020. 9. 9.
Who Can Win America’s Politics of Humiliation?, Thomas Friedman, New York Times 2020. 9. 8.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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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허찬국

1989년 미국에서 경제학 박사학위 취득 후 미국 연지준과 국내 민간경제연구소에서 각각 십년 넘게 근무했고, 2010년부터 2019년 초까지 충남대 무역학과 교수로 재직. 다양한 국내외 경제 현상을 조사하고 연구하는 것이 주된 관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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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비 2만원이 주는 걱정

2020.09.22

나의 휴대폰 사용료는 매월 3만원에서 5만원 수준입니다. 이번에 정부 여당이 4차 추경을 편성하면서 코로나19 사태로 고생하는 국민을 위로하기 위해 13세 이상의 모든 휴대폰 사용자에게 2만원의 통신비를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코로나19 사태가 일상생활에서 비대면을 요구함에 따라 휴대폰의 사용빈도나 사용량이 많아진 데 착안한 결정이라고 합니다. 1인당 2만원이 너무 적은 돈이 아니냐는 지적에, 여당 쪽은 4인 가족 기준으로는 8만원이니 결코 적지 않다고 효용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나의 경우 지원액만큼 부담은 덜어지나 나머지는 내야 할 형편입니다. 한 달 치를 몽땅 내준 것도 아니니, 고맙기는 하지만 기억에 남도록 오래 고마울 것 같지는 않습니다. 나보다 휴대폰 사용료가 많은 사람일수록 그런 느낌이 아닐까 여깁니다.

2만원 미만인 사람은 나라 덕분에 한 달 치를 공짜로 썼다는 기억과 함께 짜장면 한 그릇 값이 남았다면 그만큼 고마움의 기억이 더해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 점에서 이번 조치는 2만원의 경제적 가치를 크게 생각하는 영세민들을 겨냥한 조치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2인 가구 기준 60만원이었던 1차 지원금으로 나는 가족들과 회식을 한 두 차례 했고, 안경을 새로 하나 샀습니다. 나머지는 나라가 지원의 목표로 삼았던 경기활성화에 부응하기 위해 동네의 소형 가게들을 찾아다니며 필요한 물건들을 샀을 것입니다.

​안경을 쓸 때마다 나는 나라가 준 돈으로 맞춘 것임을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만으로도 1차 지원금은 나와 국가를 위해 효과적으로 쓰였다고 생각합니다. 그 무렵 동네 음식점들이 북적였던 기억을 떠올리면 전국적으로 소비 진작 효과도 있었을 것입니다.

​2만원이 절실한 돈인 사람도 있겠으나, 우리나라 경제규모로 비춰 큰 구매가치를 지닌 금액은 아닙니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돈이라고 하겠습니다. 누가 거저 2만원을 준다고 해도 “사람을 뭘로 보냐?”고 기분이 언짢아질 수 있는 돈입니다.

​이 돈은 나의 지갑으로 들어는 돈도 아닙니다. 세금을 징수할 때 징세비용이 들어가듯 지원금을 분배할 때도 비용이 들어가지만, 전체 규모로 1조원에 가까운 이 지원금은 분배비용을 들일 필요도 없이 KT, SKT, LG유플러스 같은 거대 통신회사로 곧장 들어갑니다. 두 회사의 2019년 기준 연간 매출액은 50조원이 넘습니다.

​통신회사들이 고객으로부터 떼일지도 모르는 돈까지 국가가 대신 갚아주는 경우도 생길 것입니다. 영세자영업자 지원과 내수경기 활성화를 명분으로 했던 1차 지원금과는 성격이 다르고, 휴대폰 사용자들이 실감하기에는 혜택이 사소합니다.

​휴대폰 요금은 각자가 사용량에 맞춰 가격대를 정합니다. 사용한도가 차면 통신회사는 가입자들에게 그 사실을 알립니다. 통신은 덜 필요한 부분을 줄여서 필요한 부분에 돌려쓸 수 있는 신축적인 서비스입니다.

​국가의 정책이 꼭 생색나는 것이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만, 그렇다고 받는 사람이 고마움을 별로 느끼지 못하고, 사람에 따라서는 ‘과잉 친절’ 또는 ‘낭비’라는 느낌을 받게 하는 분야에다 돈을 쓸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예산의 책정과 집행에서 선택과 집중을 중시하는 것은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입니다. 1조원 가까운 통신비 지원예산도 일정금액 이하의 소액 사용자를 선별해서 지원한다면 그나마 효율을 높일 수 있을 것입니다.

​표를 의식해야 하는 정치인들은 많은 사람에게 혜택이 가는 보편적 복지를 선호하기 마련입니다. 집권당이 아무리 낭비적인 복지예산을 편성해도 야당이 반대하기가 어려운 이유입니다.

​이번 통신비 지원과 관련해 야당인 국민의힘이 반대를 표명하고 있습니다. 일회성의 통신비 지원 대신 전 국민 독감백신 접종비용으로 쓰자고 주장합니다. 이 역시 보편적 복지 분야이지만, 질병의 예방과 의료비 절감 등 보다 지속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조금 나은 예산 사용법이라고 하겠습니다.

코로나19라는 비상사태의 탓이라지만 한 해에 4차 추경편성은 유례가 없는 일입니다. 그 결과 나라는 올 한 해에 100조원이 훨씬 넘는 유례없이 큰 빚을 지게 됐습니다. 선심이 넘쳐나는 추경안을 보며 ‘돈을 풀어야 선거에서 이긴다’는 것 하나밖에 모르는 정부 여당이 아닌지 점차 걱정이 커지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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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건

한국일보와 자매지 서울경제신문 편집국의 여러 부에서 기자와 부장을 거친 뒤 서울경제신문 논설위원 및 사장을 끝으로 퇴임했으며 현재는 일요신문 일요칼럼, 논객닷컴 등의 고정필진으로 활동 중입니다. 한남대 교수,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위원 및 감사를 역임했습니다. 필명인 드라이펜(DRY PEN)처럼 사실에 바탕한 글을 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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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를 잇는 직업, 대물림하는 가업

2020.09.21

얼마 전에 황석영의 최신작 '철도원 삼대'를 읽었습니다. 그의 명성에 걸맞은 훌륭한 작품으로서 작가는 이 소설을 한국의 노동자들에게 바치는 헌사라고 말합니다. 일제시대부터 지금까지 노동의 현장과 노동자들의 삶을 절절하게 그려내면서 한편으론 노동 현장을 중심으로 싹트고 번져온 노동자들의 권리투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수탈적 노동에 내몰린 식민지 민초들의 삶 속에서 철도원 삼대가 겪는 파란만장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철도원 직업은 조부에서 손자까지 3대로 끝나고 4대는 현 시대의 해고된 공장노동자로서 노동자의 권리투쟁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이 책이 '노동자들에게 바치는 헌사'일 만큼, 현장이 아니면 실감하기 어려운 노동의 무게와 존엄을 느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5백 페이지에 가까운 그의 소설을 읽으면서 노동에 관한 헌사를 넘어, 황석영은 역시 대단한 이야기꾼이란 생각이 듭니다. 판타지적 요소가 가미된 서민들의 따뜻한 삶의 이야기가 노동자들의 처절한 삶과 얽혀 있습니다. 노련한 작가의 시선을 통해 잊혀가고 있는 그 시대의 삶이 더욱 절실하게 와 닿습니다. 황석영의 소설에 이미 여러 번 등장한 그의 판타지적 내러티브는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을 연상하게도 해 줍니다.

책 이야기가 길어졌는데 소설책 한 권 읽은 감상을 토로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제목에 나오는 '삼대(三代)'라는 말이 흥미를 끌어 그 얘기를 하고 싶어서 소설을 끌어들인 것일 뿐입니다. 요즘 조부, 부, 본인 3대가 같은 직업을 갖는 것이 아주 희귀한 일은 아닙니다. 정치인, 법조인, 군인, 의사 등에서는 3대가 같은 직업을 이어오는 예가 적잖이 있지만 노동자에 속하는 철도원이란 직업이 한 집안에서 3대를 잇는다는 것은 흔한 일은 아니죠. 할아버지는 철도공작창 직원이며 아버지는 당시 조선인으로서는 드문 철도기관사이며 아들도 아버지를 따라 기관사가 됩니다. 일제 때니까 남들이 부러워하는 철도원 직업 3대가 가능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철도원 아버지가 아들이 철도원 되는 것을 원하지 않고 아들 또한 철도원이 되는 것을 희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모르긴 해도 생활이 나아진 요즘 농업이나 어업에서도 3대를 이어 종사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을 듯합니다. 얼마 전 텔레비전에서 '3대 돌돔잡이 어부'를 현장 르뽀로 소개하여 흥미를 가지고 보았습니다. 모든 어부는 그 일터가 험한 바다인 만큼 대부분 극한작업에 종사한다고 하겠습니다. 아들은 생업에 몸 바쳐온 어부 아버지의 가업을 도우다가 자연스레 어부가 되었으며 손자는 도시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바다의 매력에 빠져서인지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가업을 돕는 케이스입니다.

그들이 돌돔을 잡아올리는 조업 장면을 보면 극한직업임을 바로 알 수 있습니다. 동이 트기 한참 전에 거센 파도를 헤치면서 그물 쳐놓은 자리를 찾아 항해하는 것부터가 힘들고 지치는 일입니다. 현장에 도착하여 영세한 장비로 팽팽한 그물을 끌어올리는 것은 매우 위험하기도 합니다. 돌돔은 깊은 바다 돌 사이에 서식하면서 전복, 소라, 게 등 갑각류와 새우 등 귀한 먹이를 찾아먹는 일종의 포식자로서 힘이 센 물고기입니다. 돌돔은 도미류 중 가장 상위의 어종이며 횟집에서는 고가에 팔립니다. 그런 보답이 있기에 어부 3대가 돌돔잡이에 매달린다는 점도 있겠지만 여하튼 극한직업에 3대가 함께 종사한다는 것은 드문 일이라 하겠습니다.

딱히 3대가 아니라, 수 대를 이어 가업에 종사하는 좋은 예는 작은 식당처럼 먹거리 분야에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찾아보면 우리나라에도 대를 이어 먹거리 가업을 유지해오는 곳들이 있을 것입니다. 최근에 4대를 이어오는 떡집이 방송에 소개된 것을 관심 있게 본 적이 있습니다. 제각기 특별한 이유가 있겠지만 대를 이어 가업을 유지하는 것은 그럴 만한 매력이 있으며 나름대로 가업 발전에 대한 보람을 느끼기 때문일 것입니다. 1940년부터 3대를 이어 막걸리 양조장을 하는 집도 있습니다.

수 대를 이어 가업을 승계해오는 식당이나 제과점 등이 일본에는 상당히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도쿄 등 대도시에는 2, 3백년 되는 우동집, 소바집, 오뎅집들이 적지 않다고 합니다. 줄을 서서 기다려도 시간이 아깝지 않을 맛집들이겠죠. 10여 년 전 어쩌다 제가 가본 곳은 오사카에 있는 150년 역사의 고급 튀김요릿집인데 관록이 느껴지는 식당의 분위기에다, 완벽한 튀김요리를 내어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일본인 특유의 정성스러운 안내가 곁들여져 기분좋은 식사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역사가 오래된 집은 단골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단골이란 오랜 거래를 통해 신뢰관계가 형성된 것을 말합니다.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소가 오래갈수록 단골도 더 많아질 것이며 영업도 안정적으로 유지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자손들이 대를 이어 가업에 종사할 동기가 충분합니다.

우리나라도 가업을 소중히 여기는 풍조가 생기면 좋겠습니다. 대물림하는 가업이 많을수록 생산자와 소비자 간 신뢰가 커져 전반적으로 사회의 안정성이 높아질 것입니다. 작금 소상인, 자영업자들이 우후죽순처럼 일어났다가 추풍낙엽처럼 쓰러지는 사태는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대를 잇는 가업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지만 창의성과 차별성과 비상한 노력으로 창업을 하여 발전을 이루고 있는 곳들도 있습니다. 이런 업소들이 다 잘 돼서 대를 잇는 가업으로 남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그래야 소비자도 믿고 찾아갈 수 있고 소비의 즐거움을 향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가업을 잇는 작은 비즈니스들이 많을수록 신뢰, 안정이라는 사회적 자본이 꾸준히 축적될 것이란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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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달호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후 줄곧 외교관으로 일했으며 주 파나마, 이집트대사를 역임했다. 은퇴 후 제주에 일자리를 얻는 바람에 절로 귀촌을 하게 되었고, 현재 제주평화연구원 객원연구위원으로 있으면서 한라산 자락에 텃밭과 꽃나무들을 가꾸며 자연의 품에서 생활의 즐거움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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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과 치료에 형사 벌, 곤란하다

2020.09.17

지난 10일, 서울중앙지법 형사9단독 정종건 판사는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강남세브란스병원 의사 임상조 씨(40)에게 금고 10개월을 선고하고, 그 의사를 법정에서 구속했습니다. 기사에서 사실관계는 ‘환자 이씨(당시 82세)는 뇌경색으로 치료를 받는데, 2016년 6월 엑스레이 검사와 씨티 촬영에서 대장암 의심 정황이 나와 입원했다. 주치의(강씨)는 CT 촬영 등에서 장폐색 의심 증상을 보였던 이씨가 복부 팽만이나 압통이 없고 대변을 보고 있다는 임상 상황을 고려하여 대장 내시경을 실시하기로 했고, 전공의는 임상조의 승인을 받아 환자에게 장 정결제를 투여했는데, 하루 만에 다발성 장기손상으로 사망했다. 원인은 이씨의 장폐색이었다.’고 정리합니다.
형법 제267조(과실치사)에는 ‘과실로 인하여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한 자는 2년 이하의 금고 또는 7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합니다. 여기에 나온 과실은 사전을 뒤져보면 ‘어떤 사실을 인식할 수 있었음에도 부주의하여 인식하지 못하여, 다시 말하면 주의하지 않아서 범죄가 구성되는 것’으로 설명됩니다. 의사가, 이렇게 처치하면 환자가 죽음에 이를 수 있는데, 주의하지 않아(과실) 그런 일이 생겼다(치사)는 뜻으로 풀이합니다.

□ 의료 분야의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

의사는 아픈 사람을 치료하고,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합니다. 어느 분 말대로, 의사는 죽을 사람 열 명이 있을 때 한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합니다. 중증 환자는 대부분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형법에서 치사는 특별한 경우일 수 있지만, 중증을 치료하는 병원에서는 아주 흔한 일이기도 합니다. 특별한 상황에서 적용하는 과실치사죄를 의료분야에 그대로 적용하면 곤란합니다.

□ 의학에서 아직 밝혀지지 않은 분야도 많은데

의학은 사람에게 생기는 증상의 원인을 찾아 치료하는 분야입니다. 끊임없이 밝히고 지식을 쌓아가고 있지만 완전히 밝혀진 부분보다 못 밝혔고, 치료법을 개발하지 못한 부분도 많다고 들었습니다. 오래전에 읽은 글을 떠올립니다. 일본에서 명의로 소문난 사람에게 오진율이 얼마나 되는지 물었고, 그 명의는 아마 25% 정도라고 답하자, ‘과연 명의’다고 감탄한 기사가 있었습니다. 사람의 병을 완벽하게 진단하고 처치하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어려운 일입니다. 전문가가 의료기 측정값과 임상 상태로 판단하더라도 오진 위험은 언제나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합니다.

□ 의사의 재량 판단에 형사 잣대는 위험하다

임상조 교수에게 여덟 살과 네 살 먹은 애 둘이 있어 가슴이 먹먹하다는 신파조 감성을 얘기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병을 진단할 때 오진할 위험은 분명히 있지만, 환자는 의사의 전문성에 몸을 맡겨야 합니다. 현존하는 오진율을 애써 외면하려 하면 부작용으로 나타납니다. 벌써 의료계에 있는 사람은 ‘진행성 대장암, 더 이상 치료하지 말라는 판결이 나왔다’고 한탄합니다. 또, 인터넷에는 아래와 같은 풍자성 질문도 있더군요. 

           
의사가 주의하더라도 의학 지식과 경험의 한계로 오진은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강하게 처벌하면 의사는 자신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행동하게 됩니다. 이을 의사의 직업정신이나 소명의식과 연결하여 비난하기 어렵습니다. 앞으로 중증 환자가 오면 시간이 걸리든 말든 치료비가 얼마가 들든, 환자의 형편을 고려하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은 살려 달라고 급하다고 외치지만, 최선이라고 생각하였던 처치 결과가 나쁘게 나오면 당장 무찔러야 할 적으로 바뀌는 상황에서, 그 위험을 무릅쓰고 처치하겠습니까? 환자야 어떻게 되든 의사의 안전을 생각하겠지요.

□ 형평에도 맞지 않는다

이번 사건은 다른 전문 분야와 비교해도 형평에 어긋납니다. 형사 판단을 내리는 판사도 증거를 잘못 보고, 오판을 낼 수 있습니다. 오판이 나온 것에 비난을 받을 수 있겠지만, 오판을 낸 판사에게 형사죄를 묻지 않는 것으로 압니다. 의사가 영상자료와 임상 상태를 종합하여 재량으로 판단한 것이 죽음이란 결과로 나타났다고 하여 형사 잣대로 처벌하는 것은 지나칩니다. 분노한 의사들이 ‘그 판사가 병원에 올 때 두고 봐라’는 댓글은 섬뜩하지 않습니까?

전문 분야, 특히 의료 분야에서도 정보 접근 등 고쳐야 할 것이 많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전문가의 재량에 속하는 판단에 형사의 칼을 들이대는 것은 정말 조심해야 합니다. 의사가 지켜야 할 것을 놓쳐 생긴 결과를 두둔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재량으로 판단한 것에 형사 잣대를 들이대지 말라고 요구합니다. 오진율을 낮춰 나가고, 정말 귀신같이 치료하는 의사가 많이 나오게, 전문가로서 의사의 역량을 더욱 키울 수 있게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것이 더 중요하겠습니다. 전문가 재량 판단에 형사 잣대는 거두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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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고영회

경남 진주에서 태어나 진주고(1977), 서울대 건축학과(1981)와 박사과정을 수료(2003)했으며, 변리사와 기술사 자격(건축시공, 건축기계설비)가 있습니다.
대한변리사회 회장, 대한기술사회 회장, 과실연 공동대표, 서울중앙지법 민사조정위원을 지냈고, 지금은 서울중앙지검 형사조정위원과 검찰시민위원, 대한상사중재원 중재인, 법원 감정인입니다. 현재 성창특허법률사무소 대표와 ㈜성건엔지니어링 사외이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mymail@patinf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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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 소명의식이 필요합니다.

2020.09.16

1987년 봄, 대학에 입학해 사회학 수업을 준비하면서 읽었던 원서에 ‘소명(vocation)으로서의 직업’이라는 구절이 나왔습니다. 필자는 이 대목에서 한참을 생각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직업이란 ‘돈을 버는 수단’이며 따라서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이 좋은 직업이라고 생각했던 제게 ‘소명으로서의 직업’이라는 개념은 매우 낯설었습니다. 게다가 역사와 종교, 문화가 우리와 전혀 달랐던 서양의 종교개혁 시기에 이 개념이 싹튼 것이기 때문에 더욱 이해가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이 ‘소명으로서의 직업’이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의 모체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모든 것이 명료하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자본주의의 정신적인 토대는 ‘돈을 버는 것’에 대한 신학적 면죄에서 시작합니다. 예수님이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고 했지만, 캘빈(Calvin)은 ‘근면, 절약, 금욕의 삶을 통해 축적한 부(富)는 하늘 나라로 가는 증거가 된다’라고 주장하면서 돈을 버는 행위에 대해, 면죄를 넘어 신의 은총을 쌓아 나가는 것으로 승격시켜 주었습니다. ‘메이플라워’ 호를 타고 신대륙으로 건너간 청교도들은 캘빈주의자들이었습니다. 이 사람들이 지금의 미국을 만들었고 그때와는 많이 변형되긴 했으나 미국은 여전히 자본주의의 중심으로 굳건한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자본주의의 모체인 캘빈주의는 근면, 절약, 금욕적 삶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흥청망청하는 천박한 자본주의와는 다른, 영적이고 관념적인 가치가 훨씬 더 우선시되었던 것입니다. 소명으로서의 직업은 이러한 토대 위에 설명이 가능합니다. 따라서 소명으로서의 직업은 단순히 개인의 적성에 맞는 천직이라는 개념이 아닌, 스스로 엄격하게 삶을 통제하는 가운데 이웃에 대한 봉사를 통해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수단이라고 봐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사랑의 실천을 통해 돈을 벌어 부자가 되는 것은 구원의 증거가 되는 것으로 간주하게 됩니다.

의사단체의 집단행동으로 국민은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고, 또 한번의 분열로 서로의 마음에 상처가 생겼습니다. 하필 코로나19로 힘든 시기에 의사들을 자극해서 결국 정부는 얻은 것도 없이 모양만 빠졌고, 의사 단체는 집단 이기주의라는 오명을 쓰게 됐으며, 국민은 또 한번 불편한 감정을 느껴야 했습니다. 갈등은 봉합됐지만, 여진은 남아서 ‘의사국가고시’를 거부한 의대 4학년 학생들을 구제하는 문제로 또 한번 파장이 예상됩니다.

요즘 부모들이 자식을 의대에 보낼 때, “너는 인술을 펼쳐서 병마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아픔을 덜어줘야 한다.”라는 얘기를 할까요? 아니면, “요즘 같은 때, 의사만큼 좋은 직업이 없다. 회사에서 잘릴 걱정 안 해도 되지, 사회적으로 대접도 받고 돈도 많이 벌 수 있잖니? 그리고 늘 ‘선생님’ 소리를 듣고 얼마나 좋아?”하고 말을 할까요? 이 빌어먹을 입시지옥에서 보통의 경우는 부모가 죽을힘을 다해서 뒷바라지를 하고 본인 스스로도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아야 가는 곳이 의대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기를 쓰고 의대에 가는 이유가 단지 세속적인 욕심을 채우기 위한 것이라면 우리는 자식 세대를 잘못 키우고 있는 겁니다.

직업을 통해 세상에 도움을 주는 대가로 돈을 버는 것이 소명으로서의 직업을 실천하는 것인데, 돈이 목적이 되어버리면 직업은 수단으로 전락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많아지면 세상도, 사람도 불행해집니다.

우리 사회에서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우대를 하는 대표적인 직업이 두 개가 있습니다. 바로 법조인과 의사입니다. 그런데 이 두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언제부터 다른 직종보다 돈을 더 많이 벌기 시작했을까요? 변호사의 수임료, 의사의 진료비는 누가 언제 어떤 근거로 책정한 것일까요? 아파서 못 살겠고, 억울해서 못 살겠고, 감옥 갈까 두려워 찾는 사람들이 그들입니다. 수요자의 절박함이 그들이 높은 수입을 올리는 근거입니다. 그리고 그 두 직종의 높은 진입장벽 또한 그들이 누리는 높은 수입의 원천입니다. 게다가 이 두 직종은 실패를 해도 돈을 법니다. 패소를 해도, 수술을 했지만 사람을 살리지 못해도 돈을 법니다. 다른 직종의 경우는 결과가 좋지 못하면 오히려 소송을 당하는데, 이 두 직종은 가능합니다. 그 이유는 의사와 변호사의 직업적 양심을 믿고 전문성을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렇기 때문에, 이 두 직종에 더 높은 사회적 책임이 있습니다. 그리고 더 높은 도덕적 양심이 필요합니다. 그렇다고 성직자 수준의 높은 희생정신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히 아닙니다. 다만, 이 두 직종은 잘못을 했을 경우 바로 잡을 수 있는 더 높은 전문가 집단이 없기 때문에 자정(自淨)이 가능할 정도의 사회적 책임의식과 윤리의식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그런데, 지난 십 수년간 우리 사회에 비친 이들의 모습은 돈에 의해 움직이는 인상을 많이 주었습니다.

국시를 거부한 의대생들은 “의료 전문가와 상의 없이 졸속으로 추진된 정책들이 결국 의료의 질적 하향을 야기하고 국민의 건강권을 위협할 것이 자명했다”며 “단체행동에 처음 나선 이유인 ‘옳은 가치와 바른 의료’를 지키겠다는 마음에는 일말의 변함도 없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옳은 말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들의 말이 진심인지를 못 느끼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어떻게 의사가 됐는데, 우리가 얼마나 고생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우리를 이렇게 궁지로 몰면 곤란하지.”라고 얘기하는 것으로 들리는 것 같습니다.

학생들은 어른이 보호해줘야 합니다. 그리고 제대로 가르쳐줘야 합니다. 그들에게 진정한 직업적 가치를 가르치지 않은 어른들이 지금 이런 사태를 초래한 겁니다. 하긴, 그 어른들조차도 그런 교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 거겠지만, 이제라도 각자, 자신의 직업에 소명의식이 생기기를 희망합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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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박상도

SBS 선임 아나운서. 보성고ㆍ 연세대 사회학과 졸. 미 샌프란시스코주립대 언론정보학과 대학원 졸.
현재 SBS 12뉴스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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