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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가 풍을 맞았다

2020.04.07

‘우한(武漢) 바이러스는 하루에 막을 수가 없지만,
주사파 바이러스는 4월 15일 하루에 막을 수 있다.‘

‘대한민국 여권으로는 다른 나라에 갈 수 없다.
그래서 야권으로 바꿔야 한다.‘

‘뭉치면 죽고, 헤치면 산다.’

‘코로나 바이러스 오래 안 갈 거야.
왜냐하면 중국제(Made in China)니까.‘

코로나 바이러스 재앙이 온 나라와 전 세계로 확산되면서 낯선 말들이 횡행하고 있습니다. 착한 임대료, 사회적 거리, 도시 봉쇄, 코로나 백수, 코로나 난민, 코로나 블루(corona blue), 팬데믹(pandemic), 인포데믹(infodemic), 록 다운(lock down), 경제 빙하기, 고용 암흑기 등도 익숙하지 않은 말들입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았던 말의 강도가 갈수록 불안과 공포를 더해 가는 양상입니다. 지구촌 모든 나라가 우두망찰하고, 사람들은 넋을 잃어 가고 있습니다. 잔인한 死(사)월입니다.

말의 번롱(翻弄)을 넘어 나라 안에서는 절망에 가까운 상황이 엄습해오고 있습니다.
보육공백, 졸업·입학식 없는 학교 인터넷 강의 진통, 병실 없어 입원 못한 어머니 딸 옮을까봐 목숨 끊어, 무료 급식 스톱…독거노인·노숙인 끼니 막막, 코로나가 삼킨 취업시장…실직 쓰나미, 항공사 국내 첫 셧 다운…코로나 생이별, 한 달 매출 0원…여행사 93곳 폐업(3·월 6일), 한국 올해 마이너스 성장 예측…. 사람·기업뿐만 아니라 나라가 풍(風)을 맞은 격입니다.

# 창살 없는 감옥, 단절 좌절의 시대를 맞다

지구촌은 적막강산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단절의 시대가 되었습니다
도쿄 올림픽 1년 연기, 이동제한 급속 확대…35개 국 10억 명이 갇힌 상태(3월 23일), 전 세계 학생 40%가 등교 못해, 세계 자동차공장 셧 다운…붕괴 위기, 세계 증시 한 달 새 3경 원 증발, 미국 실업자 매주 400만 명 쏟아져, 이탈리아 신문 부고(訃告)란 1~3개 면서 10개 면으로 늘어, 세계 소비 50% 차지하는 미국·유럽 마비…물건 팔 곳이 없다, 美 감염 방치 땐 최대 2억 명 감염-170만 명 사망할 수도….

인류가 급격한 생태계 변화에 전전긍긍하고 있습니다. 아비규환입니다.
후진국에서나 있을 법한 휴지·빵·쌀·채소·과일·고기에 이르기까지, 생필품 사재기가 선진국에서 더 극성입니다. 한 달여 전 손자들 뒷바라지 도와주러 오스트레일리아에 간 아내는 “모든 것이 흔한 이 나라에서 키친타월을 휴지 대신 쓰고 있다”며, “여차하면 신문지로 밑 닦을 판”이라고 안달입니다. 한국으로 돌아올 항공편조차 없어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는 처지에 아노미 상태가 된 듯합니다. 일부 국가에선 가택 격리 위반 시민에 곤봉 세례, 사살 명령까지 내렸습니다.

질병보다 무서운 앞날이 시나브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정치판 야료(惹鬧)입니다.
맨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비례당’입니다. 민주당과 군소정당 4+1이 만든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산물입니다. 야당이 선수를 치자 반대하던 민주당도 유령정당을 만들었습니다. 구차스런 변명은 “의병(義兵)이 자꾸 나와서”(이인영 원내대표)입니다. 정작 실체를 보니 의원 꿔주기에다 ‘사돈’ ‘형제’ 운운하며, 선거 후에는 흡수·통합을 공공연히 거론하는 위성정당입니다. 의병이 아닌 귀태(鬼胎)의 의병(疑兵)들입니다.

이 원내대표가 거론한 의병은 죽창을 든 의로운 지사라기보다는 관군(官軍)입니다. 진짜 의병은 바이러스 창궐에 전력 대항하는 사람들입니다.
코로나 극복에 써 달라며 암보험 깬 기초수급자, 적어서 미안하다며 마스크 11장을 기부한 장애 어린이, 환자가 급하다고 대구로 뛰어간 신혼 1년차 간호사, 개인의원 접고 대형병원서 자원봉사 나선 의사, 죽음을 감내하는 의료진에 도시락·간식 후원하는 야시장 상인들. 이들이 진정한 의병입니다.

# 코로나 이후의 정치 또 다른 전쟁 되나

또 다른 걱정은 코로나를 왜곡하는 꼼수정치의 암담한 미래입니다.
여당은 ‘코로나 방역 성공’을 총선 슬로건으로 내걸었습니다. 그런데 아시아 4룡(龍 )국가의 확진자와 사망자 수를 보면 어이가 없습니다. 대만 298-2, 홍콩 644-4, 싱가포르 844-2인데 한국은 9,661-158입니다.(3월 30일 현재) 정부 여당은 이를 어떻게 설명할지 궁금합니다. 일부 외신들의 한국 방역 찬사를 앞세워 정치판은 자화자찬에 여념이 없습니다. 제비 한 마리 보고 여름이 왔다고 떠드는 꼴입니다.

보이지 않는 질병보다 보이지 않는 정치는 더 두렵습니다.
시민정신을 외면한 채, 넘쳐나는 가짜뉴스 속에서, 황당한 공약을 남발하는, 정체도 모를 깜깜이 정당들. 후보 얼굴도 못 보는 비대면 선거로 뽑을 21대 국회는 어떤 모습으로 어떤 행태를 자행할까요? 세금 쏟아붓기로 폭증한 나라 빚, 훌쩍 오른 공시지가가 부를 세금폭탄과 조세저항은 어쩔 건지, ‘사회적 패권 교체’는 무엇을 위한 꿍꿍이인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미래는 불안하고 암담하기만 합니다.
BC(Before Corona)는 겪어 봤지만, AD(After Disease)는 앞이 캄캄합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자유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김홍묵

경북고,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동아일보 기자, 대구방송 이사로 24년간 언론계종사.  ㈜청구상무, 서울시 사회복지협의회 사무총장, ㈜화진 전무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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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의 어둠을 밝히는 온라인 공연

2020.04.06

어제는 키릴 페트렌코(Kirill Petrenko)가 지휘하는 베를린 필의 연주를 들었습니다. 구 소련 옴스크에서 태어난 유태계 러시아 사람 키릴은 꼭 마음씨 좋은 이웃집 아저씨처럼 생겼습니다. 그의 곰살가운 표정과 몸짓이 유려하게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있었습니다. 베를린의 상징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 모인 수많은 무료 관객들을 위한 노천 연주회였습니다. <2019년 8월 24일 공연>

인류의 평화와 화합을 노래한 베토벤의 9번 교향곡 ‘합창’, 듣는 이의 가슴을 울렁거리게 하는 걸작이지요. 1, 2악장에서는 저 가슴속 밑바닥에서부터 치밀어 오르는, 용암처럼 뜨거운 것이 몇 번이나 꿈틀거리다 가라앉기를 반복합니다. 3악장에선 마치 그 뜨거움을 달래는 듯한 아름다운 선율이 계곡의 물소리처럼 잔잔히 흐르다가 마침내 폭발하는 환희의 합창이 4악장에서 이 대작의 절정을 이룹니다.

“오! 벗들이여. 이 소리가 아니오. 좀 더 즐겁고 환희에 넘친 노래를 함께 부르세!
(O Freunde, nicht diese Toene! Sondern lasst uns angenehmere anstimmen, und freudenvollere)”

환희의 송가를 여는 이 멋진 서창을 자랑스럽게도 우리나라의 베이스 연광철이 우렁찬 목소리로 불렀습니다.

오늘은 쇼스타코비치의 7번 교향곡 ‘레닌그라드’를 역시 베를린 필의 연주로 들었습니다. 2차 대전 중 약 900일에 걸친 나치 독일군의 봉쇄 작전으로 수많은 시민들이 포탄에 맞아 죽고 굶어 죽고 병들어 죽어간 레닌그라드(지금의 상트페테르부르크). 근 2년 반의 봉쇄가 풀렸을 때 250만 도시 인구가 50만으로 줄었다고 합니다. 작곡가는 자신이 태어나고 사랑했던 고향에 이 곡을 바쳤습니다. 그 처절했던 봉쇄 기간 첩보작전처럼 악보가 죽음의 도시로 전달되고, 목숨을 부지한 연주가들이 모여 이 곡을 연주했다지요. 당시 포위한 독일군마저 숙연히 들었다는 ‘레닌그라드’를 오늘은 동베를린 태생의 미하엘 잔데를링(Michael Sanderling)이 지휘했습니다. <2019년 6월 1일 공연>

마치 진격의 행군 소리처럼 무겁게 시작된 곡은 점차 길고 긴 고난을 이야기하듯 가냘픈 선율로 이어집니다. 반복되는 진군의 리듬, 불안과 혼돈의 소요, 인내의 고요, 절망 가운데 피어오르는 승리에의 기대, 생존의 환희. ‘레닌그라드’는 아마도 그런 희망을 노래한 듯합니다.

지휘자 미하엘은 세계 대전 이전에 동프로이센에서 태어나 독일과 소련에서 활약했던 쿠르트 잔데를링(Kurt Sanderling)의 아들입니다. 베를린 국립극장 지휘자였던 유태 혈통의 아버지 쿠르트는 나치 광풍이 몰아치던 1935년 모스크바로 망명했고, 2차 대전 중에는 독일군의 봉쇄로 참혹한 희생을 치른 바로 그 레닌그라드에서 지휘자로 지냈던 기연을 가지고 있습니다. 1960년 독일로 돌아온 그는 베를린과 드레스덴에서 토마스, 스테판, 미하엘의 세 아들과 함께 지휘자 가족으로 이름을 떨쳤습니다.

어제오늘 뜻하지 않은 안방 음악회의 호사는 친구의 귀띔 덕분이었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 창궐로 전 세계의 공연과 전시가 취소되거나 무기한 연기되는 게 현재 상황입니다. 듣고 싶어도 공연장을 찾기 어렵고, 보고 싶어도 극장을 찾아 나서기 어려운 문화적 암흑시대가 도래한 분위기입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들이 무료로 안방을 찾아든 것입니다. 베를린 필하모닉은 준비했던 공연 일정을 취소하는 대신 디지털 콘서트홀을 무료로 활짝 열어 주었습니다. 누구든지 인터넷 홈페이지(www.digitalconcerthall.com)를 열어 자신의 이메일 주소만 입력하면 간단히 회원으로 가입되어 한 달 동안 무료 공연을 즐길 수 있습니다. 1960년대부터 최근까지 600여 편의 공연 영상이 공개되고 있습니다.

베를린 필만이 아닙니다.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도 매일 공연 한 편을 무료로 공개한다고 합니다. 오스트리아 빈 국립오페라단, 독일 바이에른 국립오페라단도 온라인 무료 공연에 합류했습니다. 국내 예술의전당, 국립국악원도 홈페이지와 유튜브 등을 통해 온라인 무료 서비스에 나섰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온 세계가 사회적 거리두기, 고독의 공포에 휩싸인 이 고통의 시기에 고맙게도 문화단체들이 다투어 세계 시민들에게 무료 공연의 은혜를 베풀고 있습니다.

이 위태로운 시기에 병구완을 자청해 병상으로 달려가는 아름다운 발길이 이어졌습니다. 위로의 엽서를 띄우고, 성금을 모으는 따뜻한 손길이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국내외 유수의 예술·문화단체들이 외로움과 우울증에 시달리는 세계 시민들에게 예술의 향기, 문화의 온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시련이 인내와 극기의 정신을 기른다고 하지요. 정말 이 봄 시련의 비를 뿌려 이 땅에 인내와 극기, 배려와 사랑의 싹을 돋게 하려는 뜻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내일은 이탈리아 밀라노 출신 리카르도 샤이(Riccardo Chailly)의 지휘로 햇살같이 밝고 경쾌한 멘델스존의 4번 교향곡 ‘이탈리안’을 들어볼 참입니다. 코로나바이러스의 발원지 중국보다 더 혹심한 고초를 겪고 있는 이탈리아 시민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마음으로.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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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방석순

스포츠서울 편집국 부국장, 경영기획실장, 2002월드컵조직위원회 홍보실장 역임. 올림픽, 월드컵축구 등 국제경기 현장 취재. 스포츠와 미디어, 체육청소년 문제가 주관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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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재윤 인터뷰] "한국 권력자들이여, 변방의 중국몽에서 깨어나라"

'슬픈 중국' 출간한 캐나다 맥매스터대 교수


'집단이 개인에 우선, 공산당은 무오류' 앞세워
수천만명 죽인 중국정부의 인권유린 방관 안돼
현 정부의 반미친중 흐름의 뿌리는 NL자주파에
홍콩 시위가 중국 체제 변화의 신호탄 될 것

신간 ‘슬픈 중국: 인민민주독재 1948~1964’는 중국의 역사와 현재를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내년까지 제2권 ‘문화대반란 1964~1976’, 제3권 ‘대륙의 자유인들 1976~현재’ 등 3부작으로 출간할 계획인 저자 송재윤(51) 캐나다 맥매스터대 교수는 “인간의 기본권이 보장되지 못하고 공산당 일당독재로 유지되고 있는 중국은 한마디로 ‘슬픈 중국’이라고 했다. 이메일로 질문하고 답변을 받았다. 아래는 인터뷰 전문.

'슬픈 중국'을 쓴 송재윤 캐나다 맥마스터대 교수.



―책 제목이 ‘슬픈 중국’이다.

“오늘날 중국은 중국공산당 일당독재의 국가다. 1949년 건국 이래 1976년 마오쩌둥 사망 때까지 중국의 인민들은 1948년 유엔총회에서 채택한 세계인권선언에 보장된 인간의 기본권을 거의 모두 박탈당한 채 비참한 극빈의 늪에서 허우적댔다. 집산화가 절정에 이르렀던 대약진운동 시기 중국의 인민은 대규모 집단농장에서 국가의 농노로 전락한 채 인류사 최악의 기근에 시달려야만 했다. 그 과정에서 3000만에서 4500만에 이르는 인민이 굶어죽고, 맞아죽고, 강제노역에 시달리다 숨졌다.
이어지는 문화대혁명(1966-1976) 시기 중국인들은 다시 또 ‘10년의 대동란(大動亂)’에 내몰렸다. 1978년 12월 13일 중공중앙 부주석 예잰잉(葉劍英·1897~1986)의 담화에 따르면, 문혁 기간 10년 동안 무려 전체 인구의 9분의 1에 달하는 1억 1300만 명이 ‘정치적 타격’을 입었다. 많게는 23만이 4300 여 건의 큰 규모 무장투쟁에서 희생됐고, 억울하게 죽임 당한 숫자는 수백만을 넘어 심지어는 2000만에 달한다는 주장도 있다. 정확한 피해의 규모는 영원히 밝힐 수 없을지 모른다.
그야말로 상상을 절하는 극단의 역사였다. 1978년 이후 개혁개방으로 중국은 30~40년에 걸쳐 경이로운 경제성장을 이어갔지만, 정치체제의 기본골격은 바뀌지 않았다. 중국공산당은 여전히 일당독재의 권위주의 체제를 이어가고 있다. 중국 헌법 전문과 총강령 제1조는 중국이 ‘인민민주독재’의 사회주의 국가라 명시하고 있다. 중국의 인민들은 여전히 인간의 기본권을 누리지 못한다. 언론, 출판, 집회, 결사 등 표현의 자유는 극히 제한돼 있다. 사상, 종교, 양심의 자유도 보장되지 못한다. 거주 이전의 자유, 출산, 양육 등 사생활의 자유도 제한된다. 인구 14억의 ‘비대한 대륙 국가’인데 여전히 중국공산당의 일당독재로 유지되고 있다. 그런 중국의 현대사를 한 마디로 압축하면 ‘슬픈 중국’이 아닐까.”

'슬픈 중국'(까치) 표지.

 


―앞 부분에서 홍콩 시위 이야기를 썼다. 홍콩의 미래를 어떻게 전망하나. 중국의 미래이기도 하고, 코로나 사태에서 보듯 중국의 문제가 곧 세계의 문제이기도 하다.

“홍콩의 미래에 관한 단기 전망은 어두울 수 있겠지만, 장기 전망은 매우 밝다고 생각한다. 홍콩 사람들은 자유, 민주, 인권, 법치 등 인류 보편의 가치를 체득하고 날마다 영어로 전 세계의 정보를 흡수하는 세계시민들이다. 그들은 베이징의 중공정부가 원하는 중국인들이 될 수가 없다. 2019년 홍콩 시민들은 ‘반송중(反送中)’의 구호를 들고 나왔다. 반송중의 영어 번역은 ‘No extradition to China’이다.

홍콩 시민들이 중국에 범죄인을 인도할 수 없다고 주장한 셈이다. 일국양제에 의하면 홍콩은 중국의 일부이며, 홍콩시민들 역시 중국인들일 테지만, 홍콩시민들은 스스로를 홍콩어(Hong Kongers)라고 자칭한다. 홍콩 중문대학의 시위에서는 ‘천멸중공(天滅中共)’ 곧 ‘하늘이 중국공산당을 멸망시킨다!’는 구호까지 등장했다. 이 책의 제1장에 그 장면의 사진이 증거로 포함돼 있다. 시위에 참여하는 학생과의 교신을 통해서 어렵게 입수한 사진이다.
2019년 홍콩의 반공산당 자유주의 운동은 곧바로 타이완의 선거혁명으로 이어졌음에 주목해야 한다. 전 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는 해외 중국계의 인구는 5000만에 달한다. 홍콩, 타이완, 해외 중국계 인구로 연결되는 자유의 벨트는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세력이라 볼 수도 있다. 2000년 존속되던 황제 지배체제를 종식한 중국 공화혁명의 아버지 쑨원은 홍콩에서 혁명운동을 시작했다. 1895년 홍콩의 흥중회(興中會)가 일으킨 혁명의 마파람이 결국 15~16년에 걸쳐 청조를 무너뜨리는 민국혁명으로 이어졌다. 2019년 홍콩의 자유화 운동의 여진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전 세계가 숨죽이며 바라보고 있는 상황이다.

 


친중 이데올로그들은 흔히 중국공산당의 능력주의(meritocracy), 시진핑의 탁월한 지도력, 공산당에 대한 중국인민의 압도적 지지 등을 강조하지만, 중국체제에 관한 그 모든 찬사는 중공정부의 프로파간다에 불과하다. 중국의 열악한 인권상황을 살펴보라. 빈부격차, 지역갈등, 도농갈등, 낙후된 의료시스템, 관료주의, 부패구조 등등 중국은 흡사 큰 화물을 싣고 육중하게 굴러가는 저거너트(Juggernaut)를 연상시킨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으로 다시금 증명되었다. 중국의 문제는 더는 중국만의 문제일 수가 없다. 세계는 더 이상 중국공산당의 전체주의적 인권유린 및 정치범죄를 그대로 방관할 수는 없다. 중국은 변해야만 존속할 수 있다. 홍콩의 시위는 그 변화의 시작일 수 있다.”

―홍콩 이후엔 대만, 대만 이후엔 한국이 중국 지배에 들어갈 것이란 우려도 있다. 시진핑 주석은 한국이 원래 중국 것이었다고 한 적도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를 잘 돌아보자. 타이완과 홍콩은 모두 기민하게 중국발(發) 입국을 막았다. 그 결과 2020년 4월 1일 현재 타이완의 확진자는 329명, 홍콩은 714명으로 통제되고 있다. 일국양제 하에서 홍콩은 중국의 일부이다. 타이완의 제1교역국은 바로 중국이다. 대중국 수출이 전체 수출의 27.9%에 달한다. 그럼에도 타이완은 기민하게 중국발 입국을 막았다. 타이완은 또한 홍콩과 긴밀한 경제적 유대관계를 맺고 있다. 홍콩은 타이완의 제3교역 대상이다. 결국 타이완과 홍콩의 시스템이 연동돼 있음을 보여준다. 타이완과 홍콩 모두 중국 현실에 빠삭하기 때문에 기민한 봉쇄(containment) 전략으로 방역(防疫)의 성공을 이룰 수 있었다.

 

 

과연 중화인민공화국이 현 체제를 그대로 유지한 채로 타이완과 홍콩을 흡수할 수 있을까? 그럴 수는 없을 듯하다. 2019년 홍콩의 시위를 보라! 날마다 대규모 시위가 이어졌지만, 중공정부는 1989년처럼 무력진압을 시도할 생각조차 못한 듯하다. 이미 중국은 전 세계와 무역을 하는 세계 제2의 경제대국으로 덩치를 키웠다. 국제적 고립을 자초할 수 없다. 세계가 실시간으로 홍콩의 상황을 감시하는데, 베이징이 어떻게 1989년처럼 시민들에게 탱크부대를 보낼 수 있겠는가?
홍콩, 타이완, 한국, 일본, 베트남, 몽고 등 중국을 에워싼 모든 국가들은 강력한 ‘자유’의 연대를 결성해야 한다. 중국은 세계 제2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했지만, 글로벌 스탠다드(Global standards)에 맞는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지 못한다. 오늘날 중국공산당은 인류를 위한 보편 이념을 창출하지 못한다. 기껏 ‘부강(富强)’을 제1가치로 내세우고 있다. 아편전쟁 이후 자강운동 당시의 모토 그대로이다. 100년 국치를 극복하고 부강한 국가를 만들겠다는 일념이다.
과거 중화제국은 동아시아에 통용되는 세계적 가치를 창출했다. 변방의 지식인들이 중화제국의 가치에 매료됐던 이유도 거기 있었다. 오늘날의 중국은 인류를 감동시키는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지 못한다. 중국 정부는 자유주의가 서구의 가치이므로 배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중국의 인권문제를 거론하면 ‘문화침략’이라 맞선다. 마르크스-레닌이즘 역시 서구에서 발원했으며, 인권은 서구의 가치가 아니라 보편가치이다.

 

 

오늘날 중국은 열린 대륙이 아니라 닫힌 섬과 같다. 인구는 많고 국토는 방대하지만, 이념적으로 너무나 왜소한 나라가 되어버렸다. 중화인민공화국이 존속하기 위해선 앞으로 보다 민주적이고(more democratic), 보다 자유롭고(more liberal), 보다 헌정적이고(more constitutional), 보다 열린(more open) 체제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코로나 사태 이후 세계 모든 국가들이 공식적으로 중국 정부에 투명한 정보의 개방과 국제기준의 확립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


―마오쩌둥은 내전 승리를 위해 일본에 정보를 넘기고 대가를 받기도 했다는 얘기가 있다. 이런 일을 중국인들은 알지 못하나.



“이 책의 3, 4장에서는 국공내전 당시 공산당군의 만행이 집약된 ‘창춘 홀로코스트’를 다룬다. 창춘 홀로코스트의 생존자 중에는 당시 7세의 소녀 엔도 호마레(遠藤譽)가 있었다. 이 소녀는 이후 중국 정치를 연구하는 학자로 성장해 최근까지도 왕성한 저술활동을 하고 있다. 엔도 선생은 창춘 홀로코스트의 체험을 세밀하게 기록한 넌픽션을 발표했고, 이어서 중일전쟁 당시 중국공산당의 친일행각을 고발하는 문제작 ‘마오쩌둥: 일본군과 공모한 남자’를 발표했다. 한국어 번역본도 나와 있다(‘모택동: 인민의 배신자’). 엔도 선생의 고발에 의하면, 국공내전 당시 마오쩌둥은 일본과 공모한 친일분자다. 창춘 홀로코스트의 생존자가 역경을 딛고 일어나 그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간 중국공산당에 무서운 복수를 하고 있는 셈이다.
중국 정부는 대외적으로 200만의 인원을 고용해서 인터넷을 감시하고 있다고 선전하고 있다. 실제로 중국의 인터넷은 실시간으로 감시를 받는다. 중국의 언론통제, 소셜미디어 감시는 상상을 초월한다. 여러 사람이 가입한 소셜미디어의 단톡방 메시지에서 문제가 되는 한 두 텍스트를 핀셋으로 집듯 잡아내기도 한다. 2014년 이래 중국 정부는 개개인의 모든 신상정보를 취합해 등급을 매기는 사회신용시스템까지 구축해가고 있다. 때문에 인터넷 공간에서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거나 ‘불온’ 메시지를 주고받기 쉽지 않다. 시진핑 집권 이후로 더더욱 언론통제가 강화되고 표현의 자유가 위축됐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여성의 신체 통제에 대해 썼는데,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하나.

“1자녀 정책(One Child Policy)이 대표적이다. 책의 2장에 다루고 있지만, 중국에서는 아이를 낳기 전에 정부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혼외임신, 특히 미혼임신일 경우엔 낙태가 강요된다. 모든 가임기 중국 여성의 신체는 국가의 통제 대상이라 할 수 있다. 2009년 당시 중공 정부는 1자녀 정책을 도입한 이래 3억 3800만 명의 인구가 덜 태어났다며 성과를 자랑했다. 또 중공 정부는 1979년 이래 여성의 몸속에 강압적으로 자궁내 피임기구(IUD)를 삽입했는데, 2015년 이후에는 그 기구를 빼라고 강요하고 있다. 인간의 신체에 가해지는 무시무시한 오웰적 전체주의 통제가 아닐 수 없다.”

―중국은 코로나 사태가 중국발이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최근 통계상 중국에서 코로나는 잠잠해진 것으로 돼 있는데 이 역시 조작으로 보나.

“중국 정부로선 코로나 바이러스의 외부 유입설을 주장해야만 대내적으로 정부의 권위를 유지할 수 있지 않을까. 현재 통계를 보면, 중국 측 주장을 진실로 믿기는 어렵다. 3월 31일 현재 코로나 발원지 중국의 확진자는 8만여 명인데, 미국은 이미 20만에 육박하고 있다. 홍콩대학 생물통계학 전문가 가오번언(高本恩) 교수의 추산에 의하면, 중국 내 확진자의 실수(實數)는 4월 1일 현재 이미 23만을 초월했다. 과연 무엇이 진실일까?

 


해외 전문가들 중에 중국 정부의 주장을 그대로 믿는 사람은 드물다. 중국공산당의 어두운 역사를 돌아보면, 통계조작쯤은 경범죄에 속한다. 공산 유토피아 건설을 목적으로 추진됐던 대약진운동이 수천만 인명을 앗아가는 대기근을 초래한 이유도 바로 정부기관의 허위보고, 통계조작 및 폭력구조에 기인했다. 중국의 반체제 아티스트 왕펑(王鵬, 1964~)의 주장대로 ‘집단은 개인에 우선하며, 공산당은 무오류’라는 두 가지 전제가 중국 정부를 지배하는 ‘인민민주독재’의 실상이다.
물론 중국이 코로나 바이러스의 통제에 큰 성과를 발휘했을 수도 있다. 전체주의적 격리 및 통제의 방법으로 전 인민을 감시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며칠 전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뉴욕, 뉴저지 일대의 전면적 출입금지(lock-down)를 언급한 직후 뉴욕주의 주지사 쿠오모(Cuomo)는 불법(illegal)이라 맞서는 장면을 보았다. 코로나 바이러스 같은 비상의 위기관리에서 입헌민주주의(constitutional democracy)가 중국식 인민민주독재보다 비효율적일 수 있다. 입헌민주주의에서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다. 그런 이유 때문에 중국식 인민민주독재가 입헌민주주의보다 우월한 체제라 말할 수 있을까?”

 


―한국이 중국 지배권에 속하면 안 되는 이유는? 그리고 어떻게 해야 중국 지배권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이 책은 중국 건국 비사(祕史)에서 대기근까지 약 15년의 세월을 중국 헌법 총강 제1항에 명시된 ‘인민민주독재’라는 그릇된 정치이념이 빗어낸 비극이라 해석하고 있다. ‘인민민주독재’는 1949년 6월 마오쩌둥이 인민일보에 발표한 논설을 통해 정식화한 중국 정부의 통치 원칙이다. 마오쩌둥은 인민민주독재는 “반동 세력의 발언권은 박탈하고, 인민만이 발언권을 누리게 하는 것”이라 규정한다. 중국공산당은 인간을 ‘인민’과 ‘적인’으로 나눈다. 인류를 인민(people)과 “비인민”(non-people)으로 양분하는 전체주의적 발상이다. 20세기 역사를 돌아보면, 바로 그 인민의 이름을 특정계급, 혹은 특정 종족이 선점하고 사칭할 때, ‘비인민’에 대규모 인종청소, 인권유린 및 정치범죄가 자행되었다.
대한민국의 헌법은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결합한 자유민주주의를 기본이념으로 삼고 있다. 대한민국의 헌정사는 자유, 인권, 법치의 확장 과정이었다. 선거를 통해 수차례 정권교체를 이룬 민주제도의 정착 과정이었다. 오늘날 대한민국 지식계 및 정치계에 널리 퍼져 있는 친중·사대주의는 중국현대사에 대한 몰이해와 무관심에서 비롯되는 듯하다. ‘반미·친중’의 사상적 근저에는 1980년대 NL 자주파의 ‘민족해방’ 이데올로기가 깔려 있지는 않나? 당시에는 NL자주파는 ‘반전반핵 양키고홈!’을 외쳤다. 그들은 북한과 손 잡고 ‘미제를 몰아내자’고 주장했었다. 그들에게 중국은 민족해방운동의 종주국과도 같았다. 그들로서는 중국과 한국이 ‘운명공동체’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다. 더 깊이 보면 일본제국의 범 아시아적황색인종주의에까지 소급될 수도 있다. 당시 일제는 ‘귀축미영(鬼畜美英)’이란 구호로 미국과 영국을 악마화했다.

 


수학과 과학은 인류의 공동유산이다. 마찬가지로 자유와 인권은 서구의 가치가 아니라 인류의 보편가치다. 한국현대사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수렴해 가는 과정이었다. 한국현대사의 성공사례가 중국의 미래를 밝히는 등불이 되어야 한다. 그 역(逆)은 역사의 퇴보이며, 문명의 쇠퇴이다.”

―책은 3부작으로 예정했다. 책을 관통하는 궁극적 메시지를 한마디로 말한다면.

“제2권 ‘문화대반란 1964-1976’을 집필 중에 있다. 가능하면 올해 안에 마치고, 내년에는 제3권 ‘대륙의 자유인들 1976- 현재’를 쓸 계획인데, 과연 끝낼 수 있을지 두렵다. ‘문화대반란’은 오늘날 중국의 정치문화를 만든 10년의 대참사를 조명한다. ‘대륙의 자유인들’은 마오쩌둥 사망 이후 전개된 중국 민주화 운동의 도도한 흐름을 조망할 예정이다.
궁극적 메시지를 한 마디로 압축하자면, 아마도… 한국인들이여, ‘변방의 중국몽’에서 깨어나 ‘세계시민의 눈’으로 현대 중국의 슬픈 역사를 직시하자! 보다 자유로운, 보다 민주적인, 보다 헌정적인, 보다 열린 미래의 중국을 위해 ‘대륙의 자유인들’과 더불어 세계시민의 자유 연대를 이루자!”
이한수 기자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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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 같은 남자로 사는 법

2020.04.03

아들이 좋을까, 딸이 좋을까? 이 어려운 질문을 40대 초반의 결혼한 남자 후배한테 하니 “고양이가 좋아요”라고 대답합니다. 30대 중반의 여자 후배는 “고양이보다 토끼가 예뻐서 세 마리 키우고 있어요”라고 합니다. 아기 대신 애완동물이라니, 세상 정말 많이 변했습니다. ‘농장지경, 농와지경’이 삶의 가장 큰 기쁨이던 조상님들이 이 이야기를 듣는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요.

농장지경(弄璋之慶)과 농와지경(弄瓦之慶)은 자식을 낳아 기르는 부모의 자상함이 듬뿍 담긴 옛말입니다. ‘손에 구슬을 쥐어주는 즐거움’을 뜻하는 농장지경은 아들 낳은 기쁨을 표현한 말입니다. 고대하던 아들을 봤는데, 구슬만 쥐어줬을까요. 비단 이불에 누이고 고까옷을 입히고 무럭무럭 자라라고 참젖으로 소문난 젖엄마도 구했겠지요.

딸을 낳으면 ‘실패를 갖고 놀게 하는 경사’인 농와지경이라고 축하했습니다. 바느질을 배워 집안일을 돕는 살림꾼으로 자라라는 뜻이겠지요. ‘딸은 살림 밑천’이라는 말처럼, 덕담 같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아들이 아닌 것에 대한 섭섭함이 담겨 있습니다. 어쩌면 농와지경은 경사에 한참 못 미치는 그저 ‘즐거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남아선호 사상이 극심했던 시절 이야기입니다.

구슬을 갖고 놀던 사내아이는 좀 자라면 친구들과 칼싸움·창싸움을 하며 놉니다. 바로 ‘희롱’을 하는 것이지요. ‘농(弄)’은 사내아이가 손에 구슬(玉)을 들고 장난치는 모습을, ‘희(戱)’는 창(戈)을 들고 전쟁놀이하는 모습을 묘사합니다. 그러니까 스마트폰, 게임기가 없던 시절의 사내아이들은 ‘희롱’을 하며 성장했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선 ‘희롱’을 어떻게 풀이했는지 궁금합니다. ①말이나 행동으로 실없이 놀림. ②손아귀에 넣고 제멋대로 가지고 놂. ③서로 즐기며 놀리거나 놂. 사내아이가 손에 옥구슬을 쥐고 노는 모습은 ②, 좀 자란 사내아이가 친구들과 함께 창놀이를 즐기는 모습은 ③에 해당하겠지요. 둘 다 유쾌한 장면입니다.

그런데 어려서나 하는 희롱을 나이가 들어서도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특히 ‘성(性)’이라는 글자를 보태 ‘성희롱’을 하다 다른 사람의 인생까지 망친 못나고 어리석은 이들도 많지요. 말 한마디, 행동 하나로 누군가에게 큰 상처를 줄 수 있는 게 성희롱입니다. 시각적·언어적·신체적으로 수치심이 들게 하는 모든 성적 행위가 성희롱입니다. 성적 내용을 담은 정보를 의도적으로 유포하는 행위, 성적 관계를 강요하거나 회유하는 행위, 음란한 내용의 전화 통화 등이 모두 해당합니다. 외설적인 사진이나 그림, 낙서를 게시하거나 자신의 특정 신체 부위를 고의적으로 노출하거나 만지는 것도 당연히 성희롱입니다. “웃자고 한 얘기”라도, 누군가 수치심을 느꼈다면 성희롱 범죄가 성립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음담패설과 유머를 구분하지 못하는 친구가 있습니다. 모처럼 만난 자리에서 ‘유머감각 넘치는’ 친구가 분위기를 띄워놓으면 여지없이 ‘낯뜨거운 음담패설’로 찬물을 끼얹곤 하지요. 밖으로 데리고 나가 주의를 주면 “조크를 모르는 너희들이 답답하다”고 되레 성질을 냅니다. 참 무지하고 위험한 친구입니다.

반대로 과하게 조심하는 지인도 있습니다. 강원도의 한 대학 교수인데, 제자들과의 관계에서 행여 성희롱 등 추문에 휘말릴까 봐 무척 조심한다고 합니다. 학생이 학점·진로 등의 문제로 찾아오면 연구실 문을 활짝 열어 놓거나 조교를 부른다네요. 학생을 위로할 상황이나 축하할 일이 있어도 악수는커녕 어깨도 토닥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교수가 존경받는 길은 사제간의 정은 멀리하고 오로지 지식을 바탕으로 지도만 하는 것입니다. 코로나19로 온라인 강의를 하는 요즘이야말로 정말 마음 편합니다.” 무척 씁쓸한 말을 무덤덤하게 합니다.

이슬같이 맑은 남자로 사는 법, 어렵지 않습니다. 음담패설하지 말고, 손 가볍게 놀리지 말고(아내와 딸은 제외), 머릿속에서 남녀 차별적 의식 버리기!
꼰대로 살지 않는 법도 어렵지 않습니다. 아기 대신 개나 고양이 키우는 게 좋다는 후배에게 반론 제기하지 않기, 결혼한 후배들에게 아기 낳지 않는 이유 묻지 않기!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자유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노경아

경향신문 교열기자·사보편집장, 서울연구원(옛 시정개발연구원) 출판담당 연구원을 거쳐 현재 이투데이 부장대우 교열팀장. 우리 어문 칼럼인‘라온 우리말 터’연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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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에게 묻다

2020.04.02

지금 세계는 코로나19 바이러스와 전쟁 중입니다. 눈으로 보이지도 않는 이 미물은 현미경에선 왕관을 쓴 제법 위엄이 있는 모습이어서 이름조차 왕관을 뜻하는 코로나(Corona)로 지어졌습니다. 보기에는 산수유 꽃 같기도 하나, 하는 짓은 꽃 달린 수류탄입니다.

보통 전쟁은 적대세력 간에 벌어지는데, 코로나19는 전 인류를 상대로 무차별 공격을 가하고 있습니다. 공격하는 의도가 무엇인지도 분명치 않습니다. 이 전쟁은 코로나19가 이겨 인류가 망하면 코로나19도 멸망하는 공멸의 전쟁입니다. 

전 지구적 지혜로 대처해야 할 이 전쟁에서 인간의 단합을 방해하기라도 하려는 듯이 코로나19는 사람 사이는 물론 나라 사이를 단절시키고 있습니다. 학교와 교회와 공항의 문이 닫히고, 올림픽이 연기됐습니다. 공장이 문을 닫아 실업자가 쏟아집니다.

인간이 개발한 핵무기와 같은 고성능의 무기는 이 전쟁에선 아무런 쓸모가 없습니다. 인간이  쓸 수 있는 대응책이라곤 검사하고, 격리하고, 통행금지하고, 마스크를 쓰고, 손을 씻는 것이 고작입니다. 그 결과 한국에서는 5,000만 명의 전체 인구가 마스크를 쓰는 단군 이래 처음 보는 동시패션이 나타났습니다. 인류의 종말이 이렇게 오는 건가 하는 공포가 엄습합니다.

인류의 공적(公敵) 1호가 된 코로나19를 만났습니다. 그는 숙주로 삼은 인간의 몸속 깊숙이 숨어 있었습니다. 보자마자 그의 숨통을 누르고 싶었지만 나에게 들러붙을 게 분명해 악수도 하지 않았습니다. 끓어오르는 분노를 누르며 그에 대한 호칭을 2인칭(너)으로 했습니다.

- 단도직입적으로 묻는다. 사망은 사탄의 흉계라고 했는데 너는 사탄의 자손인가?
▲ 천만의 말씀! 나를 품게 될지도 모르면서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 나도 인간을 만든 창조주의 질서 안에서 존재할 뿐이야. 내가 사탄이 되는 것도, 천사가 되는 것도 인간이 하기나름이지.
- 너의 존재가 인간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거야?
▲ 생각해 보라구. 인간들은 서로 편을 가르고 싸울 궁리만 하잖아? 그 싸움에서 이기겠다고 지구를 파멸시키고도 남을 만큼 많은 핵무기를 만들어 놨잖아? 자신의 몸 안에 있는 나 같은 미물을 다스리지 못하면서 핵무기로 어쩌겠다는 거야? 그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유익한 거지.
- 너로 인해 인간 사이의 불신이 깊어진 것 같은데.
▲ 그렇다면 미안해. 허나 “세상에 믿을 x  없다”는 말을 누가 하는데. 인간들이 나를 막겠다고 하는 행동 모두가 인간에 대한 불신의 표현이더군. 누가 나한테 걸린 사람인지 모르니 모두를 걸린 사람으로 일단 의심하고 보겠다는 거지. 마스크를 쓰는 것, 악수 대신 팔꿈치 치기, 구두치기 인사를 하는 게 다 그런 거 아냐?
- 남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도 의심해야 하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불신 사회가 됐다는 거지.
▲ 하기야 발병하기 전까지는 자신이 나에게 걸렸는지 알 수가 없지. 걸렸으면서도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사람도 있고. 자기 살자고 남을 의심하는 것이니 ‘불신사회 조장’ 어쩌구 하며 나를 탓하지 말라고.
- 세계 패권을 다투는 미국과 중국, 그리고 한국도 들어 있긴 하지만 G20의 강대국들이 너의 공격 앞에 속수무책이던데?
▲ 무기개발에 퍼부은 돈의 100분의 1이라도 나를 막는 데에 썼더라면 나도 꼼짝을 못했겠지. 돈 가지고 엉뚱한 짓을 한 업보 아니겠어? G2라는 미국과 중국이 나의 공격에 최대 피해자가 된 이유를 새기라고. 한심하게도 사람들은 나에게 대비한다고 생필품 사재기하더군. 미국에선 총을 사려고 줄을 섰고. 나를 총으로 죽이겠다는 거야?
- 한국에선 마스크를 사려고 매일 약국앞에서 줄을 서는데.
▲ 매우 안타깝지. 핸드폰 자동차를 각각 수천만, 수백만 대 만드는 나라에서 어쩌다 천과 재봉틀만 있으면 되는 마스크 하나 충분히 못 만드느냐고? 하기야 한국은 기다려서라도 살 수 있지만 없어서 못 사는 나라도 많더군. 그래서 한국은 인구 전체가 마스크를 차는 나라가 됐고, 그런 국민들의 열성 덕에 나를 잘 다스린 나라라고 칭찬을 듣더군. 나를 원망하지 말고, 그런 것으로 위안을 삼으셔.
- 사회적 거리두기(Social Distancing)는 어떻게 생각해
▲ 자기편이라고 너무 친한 척 하지 말고, 자기편 아니라고 너무 미워하지 말라는 거야. 인간 사이는 좋을 땐 간을 빼줄 듯하다 돌아설 때 원수가 되기가 다반사 아냐? 서로 거리를 두고 바라볼 때도 있는 게 좋은 거지. 그렇게 다져진 관계가 건강하고 오래가는 법이니까.
- 사회적 거리 2m만 떨어지면 너로부터 안전한 거야?
▲ 말할 때 침이 튀는 거리가 2m라던데 물리적 거리가 중요한 게 아니지. 한국은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사회라고 하잖아. 나도 인간이 침을 튀기며, 입에 게거품을 물고 큰 소리로 떠들면 여기저기 달라붙기 좋지. 소통도 중요하지만 조용한 목소리로, 때로는 눈빛으로, 때로는 침묵으로 소통하는 법도 익혀두라는 얘기로 이해해줘.
- 노약자 치사율이 매우 높던데 노인한테 가혹한 것이 아닌가?
▲ 나는 누구를 공격할 때 남녀 노소 강약을 차별하지 않아. 공격거리 안에 있으면 누구에게든 달라 붙지. 노약자 치사율이 높은 것도 노인일수록 건강에 더 조심하라는 뜻일 뿐이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경제를 살리기 위해선 노인의 희생은 감수해야 한다고 했더군. 그런 게 차별이지.
- 네가 온 목적은 달성될 것이라고 보나?
▲ 그게 그리 쉽겠어? 미국과 중국이 나의 원산지를 놓고 서로 싸우는 것만 봐도 알만하잖아.
지난달 26일 나를 잡기 위해 열린 G20 정상 간의 사상 첫 화상회의에서 좋은 말들을 많이 했더군. 역시 정치꾼들이다보니 고작 돈을 왕창 풀자는 것 외에 뾰족한 얘기는 없더군. 내가 할 걱정은 아니지만 뒷감당이 될지 모르겠어. 어떻든 인간들이 불신과 적대를 깨고 양보와 협동의 정신으로 뭉쳐서 나와 대적하지 않는 한 나는 인간에게 패배하지 않을 거야.
- 이런 판국에 미사일 발사하는 북한은 어떻게 생각해?
▲ 한심하지. 나 같은 미물보다도 생각이 모자란 거지. 총도 아닌 미사일로 바이러스를 잡겠다는 발상이 아니겠어. 주민 수천 명을 격리시켰다고 하면서도 감염자가 없다고 시치미를 떼고 있으니, 얼굴도 두껍지. 북한의 집권자에게 나의 맛을 보여 주는 수밖에 없겠어.
- 신천지는 어때?
▲ 종말론을 근거로 교세를 키워온 종파라지? 세상의 종말에 14만4,000명만 구원을 받는다니 그게 믿어지는 얘긴가. 세상이 혼란스러우면 그런 종파들이 기승을 부리게 되니 조심하라고 일찍이 성인들도 말했지. 서울시장이 그들을 반사회적 집단이라고 했던데 나의 얘기를 대신했더군.
- 언제 갈 거야?
▲ 백신을 개발한다고 나라마다 난리던데 한 곳에서라도 성공하면 나도 갈 거야. 내가 간다고 너무 좋아하지는 말아. 없는 동안 내가 놀고 있을 거로 생각하면 큰코다칠 거야. 다시 올 때는 훨씬 세질지도 몰라. 더 치명적인 것은 공기전염기술로 무장할 수도 있어. 그 때는 마스크도, 손 씻기도 소용없을 거야. 그렇다고 숨을 안 쉴 수도 없을 테니.
- 얘기를 듣고 보니 “서로 믿고 살지 않으면 멸망한다”는 메시지를 인간에게 전하러 온 예언자 같군.
▲ 인간이 그걸 알면 인간과의 전쟁에서 내가 불리해지지만, 인간의 몸에 기숙하는 입장이니 "고맙다"는 인사는 해야겠군.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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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임종건

한국일보와 자매지 서울경제신문 편집국의 여러 부에서 기자와 부장을 거친 뒤 서울경제신문 논설위원 및 사장을 끝으로 퇴임했으며 현재는 일요신문 일요칼럼, 논객닷컴 등의 고정필진으로 활동 중입니다. 한남대 교수,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위원 및 감사를 역임했습니다. 필명인 드라이펜(DRY PEN)처럼 사실에 바탕한 글을 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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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강산’에 발현된 우리 ‘넋[魂]의 DNA’

2020.04.01

-식목일 75년째에 즈음하여-

몇 년 전 독일 친구 내외와 함께 한 달여 동안 한반도를 둘러보며 여행한 적이 있습니다. 궁금한 것이 많은 친구 내외는 여행 중 들르고 보는 곳마다 신기한지 이것저것 물어보는 것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스쳐 지나가는 도로변의 울창한 숲을 보면서는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기색이었습니다. ‘있을 게 있다’고 생각하니 도로변의 푸른 숲이 그저 그런 풍경으로 보였던 것이겠지요. 은근히 자랑하고픈 마음이 동했습니다.

그래서 이 푸른 강산이 얼마 전까지 나무가 없어 헐벗었었다고 말했더니 자못 놀라워하면서도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우지 못했습니다. 그래서인지 며칠 여행하는 동안, 푸른 숲을 가리키며 “그러니까 이 숲이 ‘근작(近作)’이라는 거지?” 하며 간간이 되묻곤 했습니다. 아마 여전히 믿기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1946년 4월 5일 제정된 ‘식목일’로 그때부터 매년 4월 5일이면 민관(民官)이 함께 나무를 심었으며, 무차별 벌목을 행정력을 동원해 엄히 다스리면서 지키고 가꿔온 산물이 바로 오늘의 우리 ‘푸른 강산’이라고 자세한 설명을 덧붙이자 자못 경탄(敬歎)해 마지않았습니다.

감탄하는 친구 내외를 보면서, 문득 반세기 전 어느 세미나에서 들었던 충격적인 얘기가 생각났습니다. ‘우리 주거 환경의 사막화 문제’라는 주제를 다룬 대학 내 특강 시리즈였습니다. 특강의 요점은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있는 이베리아(Iberia)반도와 이탈리아반도의 산이 준(準)사막화한 원인은 15세기(1492년)에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요컨대 신대륙의 발견이 해상 교역을 크게 촉진했고, 이것이 다시 그 운송 수단인 해양 선박 건조 붐으로 이어지는 바람에 산림을 남벌하는 환경 파괴가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선박 건조용 목재의 벌목이 이베리아반도와 이탈리아반도의 산을 준사막화시킨 주범이었다는 얘기였습니다.

그런 시각에서 보면 유럽 대륙을 참혹한 전쟁터로 만들었던 로마 제국의 정복 전쟁 역시 광기 어린 벌목과 무관하지 않았으리라는 걸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으며, 프랑스의 나폴레옹(Napoleon Bonaparte, 1769~1821)이 벌인 전쟁 역시 마찬가지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는 산림학자의 고찰은 필자에게 많은 깨우침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세미나 말미에 강연자는 현재에도 산림이 훼손되어 새로운 사막화의 길목에 서 있는 나라들이 존재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멕시코를 비롯한 중남미 대륙의 몇몇 나라와 더불어 한국, 바로 우리나라를 거명하는 것이었습니다. 특단의 대책 없이는 한 세기 후면 산야의 사막화 과정을 막는 게 거의 불가능한 단계에 이를 것이라는 예견까지 언급하면서 말입니다. 필자에게 예기치 않은 충격을 안겨준 그 얘기에 며칠 밤을 설쳤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1970년대에 귀국한 필자의 눈에 들어온 우리나라의 강산은 아직 ‘어설픈 녹화’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1980년대 말, 1990년대에 들어서자 필자의 시계(視界)에 들어온 우리 주변의 산과 들녘은 어느덧 생기가 감도는 검푸른 숲으로 변했습니다. 참으로 감탄이 절로 나오는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이와 관련해 유엔 기구의 발표에 의하면, 세계 여러 나라에서 추진한 ‘재(再)산림녹화 사업(Reforest project)’ 중 한국에서만 유일하게 성공적인 결과를 일궈냈다고 합니다. 그만큼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는 뜻입니다.

과거를 돌이켜보면, 역사를 관통하는 한 축이 보입니다. 우리가 일궈낸 한반도의 성공적 산림녹화는 결코 우연의 산물이 아닙니다. 임진(壬辰)·정유(丁酉) 왜란(1592~1598) 당시 침략자 일본이 패전(敗戰)한 원인 중 하나는 각 지방에서 불같이 일어난, 민간 또는 승려로 구성된 ‘의병대(義兵隊)의 출현’이었다고 합니다. 일본인들로서는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죠.

어디 그것뿐이겠습니까. 1919년 일제 강점에 맞서 비폭력을 앞세우며 일어난 삼일운동이 그러하고, 1997년 전국적으로 350만 명이 참여해 약 227톤이라는 엄청난 양의 금을 모아 국가적 위기인 IMF 사태를 조기에 극복한 것 역시 그렇습니다.

또한 2007년 서해안 태안 앞바다에서 발생한 원유 유출 사고 때는 약 50만 명의 자원봉사자가 전국 각지에서 몰려왔습니다. 그리고 한 달여 만에 시커멓게 오염된 해안 구석구석을 손걸레로 청소해 마침내 원래의 자연환경으로 돌려놓은 쾌거를 이루었죠.

상기 열거한 사건들에는 앞서 언급한, 역사를 관통하는 한 가지 축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러한 쾌거가 ‘그 시대의 몇몇 영웅’이 이룩한 산물이 결코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 한반도에 살며 몸과 마음을 함께 나누는 모든 사람이 이루어낸 결과물인 것입니다.

이는 어느 시대, 어느 나라, 어느 문화권에서도 결코 찾아볼 수 없는 우리만의 ‘현상’이기에 그 특별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 서두에 얘기한 독일 친구 내외를 만나 옛 여행담을 나누던 중 그때 무엇이 가장 인상적이었냐고 물은 적이 있습니다. 그러자 그 친구는 주저 없이 “재조성한 푸른 산야”라고 대답하더군요. 울창한 푸른 산야에 담긴 우리 ‘넋[魂]의 DNA’에 대해 새삼 생각해보는 계기였습니다. 그러면서 4월 5일 식목일 75회에 얽힌 우리 겨레의 혼을 돌아보며, 자랑스러운 마음이 가득했습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자유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이성낙

뮌헨의과대 졸업. 프랑크푸르트대 피부과학 교수, 연세대 의대 교수, 아주대 의무부총장 역임.
현재 가천대 명예총장, 전 한국의ㆍ약사평론가회 회장, 전 (사)현대미술관회 회장,
(재)간송미술문화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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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물 안전점검, 산 넘어 산이 되지 않게

2020.03.31

978년 10월 홍성에서 진도 5 지진이 생겨 온 국민을 놀라게 했습니다. 그 뒤 한동안 잠잠하다가, 2016년 9월 경주에서 진도 5.8, 2017년 11월 포항에서 진도 5.4 지진이 생겼습니다. 지진 때 건물이 기울어지거나 파괴된 상황은 우리나라도 지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다시 일깨워 주었습니다. 그리고, 1993년 구포역 철도 사고,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사고, 1995년 삼풍백화점이 무너지는 사고가 생겼습니다. 이런 사건이 생길 때, 내가 사는 곳, 내가 사는 집은 안전한지 걱정이 앞섭니다.

시설물의 관리자는 시설물을 안전하게 유지하고 관리해야 합니다.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문제가 생길 때에는 책임을 져야 하겠습니다. 건축물을 소유자나 사용자가 유지 관리하게 맡겨두면 곤란합나다. 예기치 않은 상황이 생기면 큰 사고가 생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법률에서 안전점검을 받도록 규제하고 있습니다.

안전을 점검하도록 정한 법은 건축법, 시설물의 안전 및 유지관리에 관한 특별법(시설물안전법, 관련자들은 통상 ‘시특법’이라 부릅니다.), 공동주택관리법 등이 있고 관련 법으로 건설기술진흥법, 지진ㆍ화산재해대책법(지진대책법),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재난안전법) 등이 있습니다. 이들 법에서 시설물 소유자는 법에서 정한 기간마다 점검하게 합니다. 점검에는 정기안전점검과 정밀안전점검이 있으며, 점검은 대상물의 규모와 용도와 기한에 따라 정해집니다. 점검은 등록한 사업자가 수행할 수 있습니다. 등록요건에 자본금, 기술인력, 검사 장비 보유 등으로 기술문제를 점검할 능력이 있는지를 확인하고 등록해 줍니다. 시설물 관리자는 법에서 정한 주기에 성실하게 점검해야 합니다. 점검이 형식에 그치면 곤란합니다. 조사자는 전문지식을 활용하여 실제로 시설물이 안전한지를 제대로 점검해야 하고, 관리자는 점검 결과에 따라 후속으로 사고가 생기지 않도록 보수하거나 보강하는 등 적절히 조치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아 사고가 생기면 형사상 책임을 져야 합니다. 벌칙이 매우 무겁습니다. 민사상 책임은 당연히 뒤따라옵니다.

2018년 1월 밀양 병원 화재 등 크고 작은 화재사고들, 2019년 7월에는 잠원동에서 건축물을 철거하는 중에 건물 잔재가 인도와 차도에 쏟아져 사람이 깔려 숨지는 사고가 났습니다. 참 안타까운 사고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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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원동 붕괴 현장

이런 여러 사건이 생기지 않게 하려면 건축물을 생애동안 관리할 필요가 많아졌습니다. 이를 위하여 건축법에 있던 내용을 옮기고 강화하여 ‘건축물 관리법’이 생겼습니다. 이법에는 정기점검, 화재성능보강, 해체공사 허가와 감리 등 중요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처음 법을 일부 보강(잠원동 해체 사고가 생긴 뒤 이혜훈 의원이 대표 발의하여 해체공사 허가 대상 건축물 범위를 확대함)하여 오는 5월 1일부터 시행합니다.

현재 시설물안전법과 앞으로 시행될 건축물관리법은 대상물 구분, 조사 내용. 점검 시기가 서로 다릅니다. 따라서 관리자는 각 법에 따라 점검을 받아야 합니다. 건축물 관리법 시행령(안)에 따르면 구조 안전 항목은 다른 법에서 안전 점검이나 안전진단을 했을 때에는 생략할 수 있지만 정기점검은 ‘산 넘어 산’이 될 수 있습니다(표 참조). 이렇게 되면 소유자는 이중 부담을 져야 합니다. 예를 들면, 사용승인을 받은 지 16년 지난 연면적 4,000제곱미터인 아파트는 시설물안전법에 따라 해마다 2회 이상 정기안전점검을 받아야 하고, 건축물관리법에 따라 3년마다 정기점검을 또 받아야 합니다. 이를 어기면 형사 처벌을 받습니다. 건물 소유주는 긴장해야겠습니다.

시설물안전법은 주로 다리, 터널, 항만, 철도 등 기간 시설물을 관리하는 것이고, 새로 만드는 ‘건축물 관리법’은 건축물을 관리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현재 시설물안전법에서 적용 대상에 건축물을 넣은 것을 빼어 건축물관리법에서 한꺼번에 규정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건축물 소유자나 관리자가 2개 법을 찾아가면서 규정을 확인하는 것도 어렵고, 엇비슷한 항목을 되풀이해야 할 불합리함도 있습니다. ‘건축물’을 소유하거나 관리하는 사람은 ‘건축물 관리법’에서 정한 내용대로 점검함으로서 실제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고, 다른 법을 놓쳐서 형사처벌을 받을 위험도 없애고, 중복하여 점검할 필요가 없어지니 비용도 줄일 수 있습니다.

규제는 되도록 없는 게 좋지만, 사회 안전에 꼭 필요한 규제는 규제를 받는 쪽이 덜 불편하게 그들 처지에서규정해야겠습니다. 그것이 우리 사회의 안전을 지키는 길이 될 것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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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고영회

경남 진주에서 태어나 진주고(1977), 서울대 건축학과(1981)와 박사과정을 수료(2003)했으며, 변리사와 기술사 자격(건축시공, 건축기계설비)가 있습니다.
대한변리사회 회장, 대한기술사회 회장, 과실연 공동대표, 서울중앙지법 민사조정위원을 지냈고, 지금은 서울중앙지검 형사조정위원과 검찰시민위원, 대한상사중재원 중재인, 법원 감정인입니다. 현재 성창특허법률사무소 대표와 ㈜성건엔지니어링 사외이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mymail@patinf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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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보틀(Blue Bottle) 단상

2020.03.30

10여 년 전이었습니다. 지금은 음대에 들어간 딸아이가 주말마다 샌프란시스코 콘서바토리로 피아노를 배우러 다닐 때, 필자가 자주 찾은 카페가 블루 보틀(bluebottle)이었습니다. 블루 보틀이라는 이름은 1600년대 말, 최초로 문을 연 유럽의 카페 이름을 빌려 온 거라고 합니다. 샌프란시스코 컨서바토리를 끼고 돌아 두 블록 정도 골목으로 들어가면 주택가에 작은 창고를 개조해서 만든 카페가 하나 있었는데, 그곳이 바로 블루 보틀이었습니다. 말이 카페지 앉을 자리 하나 없이 테이크 아웃만 가능한 허름한 곳이었습니다. 특이한 점은 반려견을 위한 과자를 무료로 비치해 놨는데 처음에는 반려견과 같이 산책을 나와 커피를 마시라는 유인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기엔 장사가 너무 잘되는 것이었습니다. 언제나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려야 했는데, 아마, 애완견 스낵은 줄을 서서 기다릴 때, 지루해할 반려견을 위한 배려였던 것 같습니다.

필자의 기억에 블루 보틀은 늦게 오픈해서 일찍 닫았습니다. 당시 스타벅스나 피츠커피(Peet’s coffee)같은 유명한 체인점들은 늦어도 아침 7시에는 문을 열어 모닝커피를 찾는 손님들을 맞이했는데, 블루 보틀은 전혀 부지런하지 않았습니다. 마치 “나는 돈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어, 나는 내가 일하고 싶을 때 일할 거고, 내가 즐겁게 일해야 맛 좋은 커피가 나올 수 있어. 그러니 당신들이 내 시간에 맞춰서 커피를 마셔줘.” 라고 얘기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매일 길게 줄을 서는 불편함을 감수했습니다. 필자가 그 당시 판단하기에도 블루 보틀의 카페라테는 그만한 가치가 있는 맛이었습니다. 가격은 3.5달러 정도로 적당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한동안 블루 보틀 커피를 꼬박꼬박 챙겨 마시다 보니 재미있는 변화가 생겼습니다. 그 맛에 익숙해지면서 처음 마실 때의 신선한 충격이 점점 잊히는 거였습니다. 게다가 커피의 맛이라는 것이 그날그날 여러 변수에 의해 미묘하게 차이가 나고, 또 그걸 마시는 사람의 컨디션에 따라 많은 영향을 받기 때문에, 어떤 날은 만족스럽지 못한 경우도 종종 생기게 됐습니다. 결국 몇 달이 지나자 “굳이 그렇게 오래 기다려서 먹어야 할까?”라는 회의가 생겼고, 그 이후 몇 달은 찾지 않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다가 어쩌다 우연히 마시게 되면, “역시, 이 맛이야!” 하며 다시 찾게 되었고, 또 그러다가 뜸해지는 것을 반복했던 것 같습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필자가 살았던 팔로 앨토(Palo Alto)의 보더스(Borders)라는 책방이 없어지고 그 자리에 블루 보틀 카페가 들어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2,000만 달러의 투자를 받으면서 블루 보틀이 공격적으로 점포를 늘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 후 일본에 이어 지난해엔 우리나라에 상륙했습니다. 성수동에 문을 연 1호점은 초기에는 뉴스에 보도될 정도로 손님으로 미어터졌습니다. 필자는 ‘저렇게 손님이 많은데 품질 관리가 잘 될까?’라는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한바탕 소동이 지나고 올해 초에 많이 기다리지 않고 성수동 블루 보틀의 커피를 맛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궁금증은 해소됐습니다. 사실 이미 지난해 초에 뉴욕을 방문했을 때, 73번가 근처의 블루 보틀 커피를 맛보고 한 번 실망했던 터라 그다지 많은 기대를 하지는 않았지만, ‘혹시 샌프란시스코에서 처음 맛을 봤던 10여 년 전의 추억을 다시 소환할 수 있을까?’ 라는 소박한 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추억은 추억일 때 아름다운 법이라는 것을 다시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얼마 전에 국내 일간지에 블루 보틀을 창업한 제임스 프리먼(James Freeman)의 인터뷰가 소개되었습니다. “내가 맛있다고 생각한 커피를 팔았더니 많은 사람이 좋아했다.” 라며 블루 보틀의 인기 비결을 얘기한 내용이었는데, 아마도 프리먼이 한국 매장에서는 커피를 마시지 않은 모양입니다. 하긴 요즘은 주로 집에서 커피를 즐긴다고 하니 예전에 필자가 샌프란시스코 골목에서 마셨던 맛있는 커피는 이제 프리먼의 집에 초대되어야만 맛을 볼 수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조금 더 준비하고 조금 더 성의있는 모습으로 한국 고객을 만났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커피 한 잔에 6,000원 안팎인데 그 돈에 맞는 공력은 들여야 하지 않을까요? 한국에 진출한 블루 보틀은 보면서 “우리는 잘나가는 커피 집이야, 모두 줄을 서서 우리를 영접하길 바라. 커피맛? 그게 뭐가 그리 중요해? 어차피 당신들은 사진 찍으러 오는 거 아니었나?”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아서 슬쩍 화가 납니다.

필자가 블루 보틀 커피를 맛있게 즐겼을 때와 지금의 블루 보틀은 성격이 많이 다릅니다. 커피보다 자본의 냄새가 더 난다고 해야 할까요? 분명 더 멋진 장소에서 더 큰 규모로 커피를 내려서 팔고 있는데 감동은 없으니 아마도 대량화의 과정에서 열정이라는 정성적(定性的) 요인이 빠져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클라리넷 연주자였던 프리먼은 커피와 연주를 비교하면서, “연주나 커피나 매일 연습하면 조금씩 나아져요. 커피가 좀 더 유연하긴 하죠. 실수하면 다시 끓이면 되니까."라고 말을 했습니다. 창고에서 출발해서 SNS의 스타로 올라선 성공한 커피 체인점이 ‘실수를 인정하고 다시 끓일 것’ 같지는 않지만, 그 맛을 추억 속에만 묻어두기는 아까운 마음에 수상(殊常)한 시절에 아둔한 넋두리를 해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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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박상도

SBS 선임 아나운서. 보성고ㆍ 연세대 사회학과 졸. 미 샌프란시스코주립대 언론정보학과 대학원 졸.
현재 SBS 12뉴스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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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대학 교정을 거닐며  [함인희]

2020.03.28

우울함을 넘어 이토록 암울한 봄맞이는 난생처음인 듯합니다. 지난 2월 초순 가족들끼리 조촐한 모임을 계획했다가 조심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다음 달에나 모이자고 할 때만 해도 큰 불안감은 없었습니다. 2월 중순이 되면서 집안 노총각이 3월 셋째 주로 잡아 둔 결혼식 날짜를 연기하고, 최고 어르신께서 구순(九旬) 잔치를 그만두자 하실 때만 해도 나름 현명한 결정이거니 했지 지금처럼 불안하지는 않았습니다.

하기야, 3월 2일 개강을 앞두고 코로나19 확산을 방지하고자 개강일을 두 주일 연기한다고 할 때만 해도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3월 16일부터 두 주일 동안 온라인 교육을 실시하라는 메일을 받고부터는 ‘아 지금 상황이 꽤 심각하구나’ 슬슬 걱정이 밀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와중에 학사 일정과 관련해서 중요한 회의가 소집되어 모처럼 학교에 갔다가 그만 텅 빈 교정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순간 눈물이 핑 돌 만큼 가슴이 먹먹해왔습니다. 매해 새 학기를 시작할 때면 교정 곳곳에서 새내기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고, 20대 초반 특유의 생기발랄함으로 활기와 활력이 넘치곤 했는데, 대강당 앞 계단에도 학생문화관으로 가는 후윳길(올라갈 생각만 해도 한숨부터 나온다고 해서 생긴 이름)에도 학생들은 온데간데없고 정적만 가득했습니다. 이런 우리네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하시라도 꽃망울 터뜨릴 준비를 하고 있는 개나리 진달래 목련을 보자니 야속하다는 생각이 들기까지 했습니다.

‘77학번 58년 개띠들’에겐 텅 빈 캠퍼스의 경험이 아주 낯설지만은 않습니다. 대학 3학년 때인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이 발생한 바로 다음 날 전국의 대학 문이 일제히 닫혔습니다. 이듬해인 1980년에는 ‘5·18 광주사태’(지금은 광주민주화운동으로 공식 명칭이 바뀌었지요) 발발 즉시 전국의 대학 문이 다시금 굳게 닫혔습니다.

지금처럼 인터넷도 동영상도 유튜브도 온라인 강의도 없었던 당시는 수강과목 교수님들께 우편으로 리포트를 제출한 후 성적표를 받아 든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와 지금 대학이 문을 닫게 된 원인은 천양지차지만, 원인과 무관하게 대학 문은 언제라도 닫힐 수 있다는 데 생각이 미치자 우울함이 더욱 깊어지네요.

그래도 이제 두 주만 지나면 3월 30일부터는 강의실에서 학생들을 직접 만날 수 있겠거니 희망을 품고 있었는데, 온라인 강의를 2주간 연장한다는 발표를 접한 순간 힘이 쭉 빠졌습니다. 이번 학기 내내 온라인 강의를 지속하겠다고 발표한 대학도 있다고 합니다. 제 경우 학부 강의는 운 좋게 K-MOOC(Massive Open Online Course; 대규모 공개 온라인강좌)를 개발한 터라 별 문제없을 테지만, 전공 책을 읽고 토론식으로 수업을 진행하는 대학원 강의는 뾰족한 대안이 없어 꿈속에서도 걱정을 놓지 못하는 중입니다.

학생들 입장에서 현재의 응급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지 궁금하던 차에, 지난 월요일 미국으로 편지 부칠 일이 있어 우체국에 갔습니다. EMS 국제 특송 서비스를 신청하니 ‘항공편 결항 등으로 인해 한 달 이상 소요될 수 있고, 우편물 전달과정에 대한 서비스가 불가하다’는 안내를 받았습니다. “서비스의 질이 낮아지는 것만큼 값을 깎아주나요?” 하고 물었더니 “우체국 책임이 아니니 24,000원을 그대로 내야 한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학생들 마음도 크게 다르지 않으리란 생각이 들더군요. 분명 학생들 입장에서는 기대했던 서비스의 질은 낮아졌는데, 등록금은 그대로 내야 하나 의구심이 들 것 같았습니다. 물론 대학 입장에서는 대학이 책임질 일이 아니요 대학도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니,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위기 상황을 등록금 문제와 연계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생각이 들 것 같구요.

지금 대학의 텅 빈 교정과 고요함은 폭풍 전야와 닮아 있습니다.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대학은 자신의 의미와 위상과 역할을 둘러싸고 어떤 교훈을 얻어야 할 것인지 깊이 생각해야 할 것 같습니다. 위기를 기회로 삼아 냈던 선례들을 폭넓게 섭렵하면서 말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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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미 에모리대대학원 사회학 박사. 이화여대 사회과학대학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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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운전 이야기(2)

2020.03.27

대리운전 사업을 하는 회사는 두 부류가 있습니다. 여러 회사들이 기사와 고객을 모집하고 전화로 양쪽을 연결하는 전통적 서비스를 합니다. 규모가 큰 회사는 모바일용 앱을 개발하여 통화 없이 가능한 영업을 합니다. 제3의 회사도 있습니다. 모바일 앱을 개발하여 전화로 서비스하는 회사에 앱을 제공하고 그 이용료를 수입으로 챙깁니다. 앱만을 제공하는 회사는 다수의 대리운전 회사를 참여시켜 대리기사나 대리운전 이용 고객을 통합 관리하니 효율을 높입니다.
회사는 손님에게서 받는 운전요금의 20퍼센트 정도를 수수료로 거둡니다. 그 밖의 운영 정책은 회사별로 차이가 있습니다. 내가 속한 회사에서는 20퍼센트 공제가 대리기사 부담액의 전부였습니다. 다른 회사에서는 소프트웨어 이용료, 보험료 등을 별도로 운전자에게 부담 지웁니다. 어떤 회사는 하루 실적이 회사가 정한 기준에 미달한 운전자에게 다음 날 콜 배정에 상당한 불이익을 줍니다. 이런 정책은 경쟁사의 콜을 받지 못하게 하려는 수법입니다. 많은 대리운전자들이 둘 이상의 회사에 적을 두고 일하는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입니다.

지난 2월 초 한 일간지가 플랫폼 사업 노동자들의 수입 금액을 기사로 다루었습니다. 플랫폼 사업이라 했지만 운수 분야에 한정되었습니다. 대리운전자의 수입은 얼마나 될까요? 그 기사는 내가 소속되었던 회사의 정보를 이용해서 월 534만 원이 대리기사의 최고 수입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정도의 정보로는 그게 실질 수입인지 아닌지 알 수 없습니다. 경험을 토대로 말해야겠군요.
나의 경우는 별일이 없으면 한 달에 21일이나 22일 정도 일했습니다. 한 달에 운전수입이 250만 원 남짓 되었습니다. 이 금액은 순수입이 아닙니다. 20퍼센트의 회사 수수료 말고도 부대비용을 지출합니다. 앞에서 말한 대로 이동 비용을 써야 하고 라면 값도 듭니다. 그런 돈이 전체 수입의 15퍼센트 정도 되었습니다. 그래서 순수입이 월 150만 원 정도였고 많은 때는 30만 원 범위 이내에서 추가되었습니다. 나중에 요령이 생겨 이동 비용을 상당히 줄여보았습니다. 하루 기준으로는 전체 부대비용을 7퍼센트까지도 낮춰보았는데 순수입은 별로 변화가 없었습니다. 코스를 가려서 운행하다 보니 총수입이 얼마간 줄었으니까요. 그래도 운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을 상당히 앞당기는 효과는 있었습니다.
젊은 대리운전자가 한 달 수입을 내게 공개해 준 적이 있습니다. 2018년 11월 말일이었는데 앱 속의 근거를 보여주면서 그 달 총수입은 400만 원이라고 했습니다. 순수입은 250만 원 정도라고 했습니다. 그가 400만 원의 총수입을 올리기 위해서는 한 달 중 일한 날수가 나보다 많았거나 하루 중 일한 시간이 더 길었을 것입니다. 실제로 아침이 밝아오도록 콜은 있으니까요.

앞에서 말한 경우 말고도 긴 거리를 걸은 경험은 많았습니다. 차는 다니는데 인적은 없는 길을 걷다가 호의를 베풀어 주는 사람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버스 통행이 끊긴 남양주의 어느 길에서 서울 방향으로 걸을 때 차 한 대가 멈춰 서며 태워주었습니다. 나이 지긋한 그가 말하기를 내가 걷던 방향에 있는 터널에는 인도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의 호의 덕분에 낭패를 면했습니다. 자신도 대리운전을 한다는 젊은이가 자기 차를 운전하다가 나를 발견하고 태워준 일도 있습니다.
상점 주인의 도움을 받기도 했습니다. 비가 많이 내린 날이었습니다. 신발 속까지 물이 차서 노원구의 어느 슈퍼마켓에서 양말 두 켤레를 샀습니다. 갈아 신으려는 나를 보더니 점주가 종이행주 한 뭉치를 갖다주었습니다. 그것으로 발과 신 안쪽의 물기를 닦아내고 남은 분량은 신발 깔창으로 삼았더니 발걸음이 가뿐해졌습니다.

손님과 대화할 기회는 적은 편입니다. 손님이 먼저 말을 걸어오게 되면 대화가 이어집니다. 어떤 이는 한두 마디 나눈 뒤에 이러더군요. “목소리가 무척 신뢰를 주는군요.” 내 답변은 이랬습니다. “최고의 칭찬으로 들립니다.” 몇몇 손님들은 이런 질문을 합니다. “진상 손님을 만나지는 않나요?” 그때마다 대답을 쉽게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서 전해들은 사례는 있지만 직접 겪어본 일은 거의 없습니다.” “운이 좋으셨군요.”
어쨌든 대리운전은 다양한 사람들을 접해 볼 기회를 갖게 해 주었습니다. 연인이나 가족 사이의 깊은 애정이 담긴 대화를 들으면 나마저 행복감을 느꼈습니다. 친구들이나 직장 동료 사이에 진지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면 속이 따뜻해졌습니다. 자신의 직업에 열정을 보이는 이들을 만나면 그 기운이 전염되어 오는 듯했습니다. 손님과 대화를 하게 되면 가끔 궁금한 점을 질문하기도 했습니다. 조언을 하거나 위로의 말을 해줄 수 있을 때는 만족감이 컸습니다.

새벽이 깊어지면 셔틀 속에서 전화로 다른 동료들과 만날 약속을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막걸리며 소주 한잔 하자는 것이지요. 그런 소리를 들으면 회사 다니던 시절 야간 근무를 하는 공장 직원들이 아침 퇴근길에 회식하며 소주잔을 나누는 모습을 본 기억도 났습니다.
일찍 집에 들어가는 날 혼자서 흉내 내기를 해보았습니다. 새벽 식당에서 순댓국에 소주 몇 잔 곁들이니 별미였습니다. 한번 흉내 내어 본 것이 나중에는 나만의 작은 이벤트로 발전하였습니다. “어, 오늘은 대기 시간이 거의 없이 운전했으니 성적이 좋았어.” “오늘 실적은 형편없었어.” 구실은 만들기 나름이니까요.

서울에서 먼 지역까지 마지막 운전을 한 날은 새벽 시간에 버스나 전철 첫차를 탑니다. 그곳에서도 다양한 사람들을 봅니다. 장거리 출장 차림을 한 사람도 있고 야간 일을 마치고 피곤하여 조는 이도 있습니다. 첫차에선 아무래도 출근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납니다. 그중에는 인력 조달 회사로 가는 이도 있을 것입니다. 어떤 이는 도심 빌딩 청소를 할 것입니다.
과거에 겪어보지 못한 상황에서 사람들을 바라보게 되니 일상생활에서도 전에는 무심히 지나치던 사람들을 눈여겨 살피게 되었습니다. 파지 모으는 이들의 모습이 내 의식 세계에 들어온 경우가 한 예입니다. 몇 해 동안 관심 가졌다가 잊을 뻔했던 천사원의 남매를 다시 찾아보게 된 것도 이런 관점 변화의 한 결과이지 싶습니다.

대리운전을 하면서 신체에도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시작한 지 두 달 만에 체중이 큰 폭으로 줄어들었습니다. 워낙 많이 걸었으니까요. 당연히 허리둘레가 변해서 바지가 맞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일을 그만두고 한 달이 지나니 아쉽게도 과거로 회귀하고 있었습니다. 체중이 줄어들었을 때는 끼니때 먹는 양을 상당히 늘릴 수 있어서 먹는 즐거움도 새삼 느꼈습니다. 그러나 다시 그 즐거움을 억눌러야 했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기회가 되면 운전을 더 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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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홍승철

고려대 경영학과 졸. 엘지화학에서 경영기획 및 혁신, 적자사업 회생활동 등을 함. 1인기업 다온컨설팅을 창립, 회사원들 대상 강의와 중소기업 컨설팅을 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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