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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필로 본 2019년  [박종진]

2019.12.14

12월 8일 일요일, 일본에 거주하는 중국인 F씨는 새벽까지 일을 하고도 아침잠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이틀 전 금요일 도쿄 신주쿠(新宿)에 있는 한 서점에 고양이를 주제로 한 만년필이 출시되었기 때문입니다. 개점 시각에 딱 맞춰 문구코너로 달려갔지만 ‘러시안 블루’와 ‘스코티시 폴드’는 각각 150, 300자루나 나왔는데도 이미 다 팔리고 없었습니다. 약 한 달 전 한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흰색 뚜껑에 보라색 줄이 몸통에 있는 독일산 바이올렛-화이트 만년필이 선주문 예약만으로 매진돼 매장에 나가지도 못하고 다 팔린 것입니다.

만년필의 대유행이 다시 시작된 것일까요? 좋지 않은 소식도 있었습니다. 20년간 해마다 봄에 열리던 일본 미스코시(三越) 백화점의 ‘세계의 만년필 제(祭)’는 올해를 마지막으로 열리지 않게 되었고, 얼마 전 만년필 매장마저 문을 닫았습니다. 그런데 11월 23일 서울 충무아트센터에서 열린 ‘서울 펜쇼(Seoul Penshow)’엔 2010년 창설 이래 최대 인파가 몰렸습니다.

이런 상반된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답은 여성들이었습니다. 고양이 만년필과 독일산 보라색 만년필 구입자 대부분이 여성들이었습니다. 이 트렌드를 반영하지 못한 미스코시의 ‘세계의 만년필 제(祭)’는 막을 내렸고, 이런 경향에 대비한 ‘서울 펜쇼’는 인산인해를 이루었던 것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경향의 중심엔 만년필과 멀어 보이는 SNS가 있었습니다. 특히 사진과 동영상 기반인 인스타그램의 역할이 컸습니다. 매일 매일 음식과 애완동물, 예쁜 만년필과 손 글씨 등의 사진이 올라오는데, 그 중심엔 여성들이 있었습니다.

여성들은 이미 만년필 세계에 새롭고 강력한 세력이 되었습니다. 만년필이 부활한 1980년대 중반부터 세계의 양대 기둥은 몽블랑 149와 펠리칸 M800이었습니다. 두 만년필의 무게는 약 32g과 28g이고 뚜껑을 꽂으면 깎지 않은 연필만큼 길어 여성들에겐 매우 불편했습니다. 여성들이 선택한 것은 보다 가볍고 연필(약 17cm)보다 짧은 만년필이었습니다. 이탈리아의 화려한 오로라 옵티마(약 15.3cm, 22g)와 펠리칸 M600(약 15.4cm, 16.5g), 파이로트 캡리스 데시모(약 14cm, 21g) 등입니다.

11월 23일 한국인 H씨는 새벽부터 부지런히 만년필을 챙기고 있었습니다. 만년필 동호인들이 모여 만년필과 잉크 등을 전시하고 교환, 매매하는 ‘펜쇼’에 참가하기 위해서입니다. 자동차로 치면 ‘모터쇼’ 같은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매년 봄과 가을 두 번 열리는데, 만년필은 물론 연필, 깃털 펜, 붓과 벼루, 원고지 등 종이류도 출품됩니다. 일본은 ‘도쿄(東京) 펜쇼’  ‘고베(神戶) 펜쇼’, 대만엔 ‘타이난(臺南) 펜쇼,’ 미국엔 보스턴 시카고 등 주요 도시마다 이 행사가 열립니다.

그는 한 달 전 ‘서울 펜쇼’ 운영위원장으로부터 여성들이 좋아할 만년필을 준비하라는 말을 듣고 가볍고 밝은 색상의 만년필로 트렁크를 채웠습니다. 펜쇼가 열리기 1시간 30분 전에 도착했는데, 행사장은 만년필 애호가들로 이미 꽉 차 있었습니다. 전혀 낯설지 않은 광경입니다. 4월의 봄 서울 펜쇼와 10월 초의 도쿄 펜쇼도 그러했습니다. 방금 도착한 일본인 N씨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H씨와 N씨는 구면(舊面)으로 올해만 세 번째 만남입니다.

2019년 만년필 세계의 특징은 여성들의 시대가 온 것, 동아시아 만년필 세계는 H씨와 N씨의 만남처럼 빠르게 뭉쳐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고양이 만년필을 구하려던 중국인 F씨 역시 H씨와 친분이 있고 내년부터 ‘서울 펜쇼’에 참가할 예정입니다. 내년 봄 ‘서울 펜쇼’는 한중일의 대표 격인 H, F, N씨 같은 사람들이 ‘만년필의 새로운 지배자’ 여성들을 잡는 치열한 각축장이 될 것입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새봄이 기다려지는 2019년의 겨울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자유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박종진

1970년 서울 출생. 만년필연구소 소장. ‘서울 펜쇼’ 운영위원장.
저서: ‘만년필입니다’, ‘만년필 탐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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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로 감퇴하는 기억력과 순발력

2019.12.13

한 해를 되돌아보는 연말이 되었습니다. 열한 달의 세월이 훌쩍 지나가고 20일도 안 되어 경자(庚子) 새해가 시작됩니다. 이때쯤 되면 으레 ‘다사다난(多事多難)했던 한 해’라는 판에 박힌 말이 모임이나 언론 등에서 등장합니다. 2019년은 한반도와 일본 열도에 막대한 피해를 남기고 간 때 아닌 가을 태풍, 로스앤젤레스의 주거지까지 위협한 장기간의 산불, 그리고 반년에 가까운 홍콩의 시위소동 등 국내외로 큰 뉴스가 많았습니다.

기해(己亥)년은 저 개인으로서도 오래 기억에 남을 한 해였습니다. 지난해에 통풍, 척추관 협착증 등으로 건강에 적신호가 나타나 자유로운 외출을 못 하던 상태에서 해가 바뀌자 이번에는 고령자에 치명적이라는 폐렴(肺炎)에 걸려 90평생 두 번째 입원 치료까지 받았습니다.

다행히 5~6년 전에 맞은 폐렴 예방주사 덕분인지 1월 하순에 입원했다가 설 명절 직전에 퇴원할 수 있었습니다. 입원 중 여러 검사를 거쳐 16가지 약 처방을 받아 투병생활을 계속했습니다. 3개월 후부터는 약의 가짓수가 반으로 줄었고, 휠체어에만 의지해 외출하다가 지금은 보행보조기도 가끔 쓸 정도로 보행 능력도 향상되었습니다.

컴퓨터 앞에 앉아 글 쓰는 것도 무리하면 한 번에 1시간 정도는 버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가장 걱정인 것이 기억력과 머리의 순발력이 날로 감퇴(減退)해 가는 현상입니다. 금년 초 입원했을 때 세밀한 치매검사도 받았습니다. 퇴원한 후 장애인 등급을 받을 때도 간단한 치매검사를 받았고, 지역 요양서비스 제공센터 두 곳에서 요양보호사의 파견을 받기 위해서도 간단한 치매검사를 받았습니다. 기억력에 약간의 문제는 있지만 치매 판정을 받을 정도는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저 자신의 생각으로도, 근래에 와서 기억력이 몇 해 전보다 너무나 떨어진 것을 느낍니다.

일제강점 시 보통교육은 지금 생각하면 암기 중심이었습니다. 다행히 어릴 때 제 기억력은 꽤 좋았습니다. 초등학교에서는 별로 느끼지 않았지만 중학교에 입학한 뒤 수학의 공식이나 화학의 원소치(元素値) 등 무조건 암기해야 할 것이 교과서뿐 아니라 그 외에도 무척 많았습니다.

광복 후 우리 집 아이들이 조선조(朝鮮朝) 임금 이름을 암기하는 것을 보고, 일제강점 시 중학에서 124대나 되는 일본 천황 이름을 암기했던 기억이 생각났습니다. 지금도 한 20대 정도는 외우고 있는 그 이름들이 사회생활에서 무슨 역할을 했는지 궁금합니다.

전시체제가 강화되면서, 교과서 외에 암기해야 할 것이 더욱 많아졌습니다. 일본의 오래된 봉건체제를 타파하고 근대화 유신을 이룩한 메이지(明治) 천황의 ‘교육칙어’(敎育勅語)는 일본 근대교육의 기본 틀을 만든 것으로, 중요한 학교 행사가 있을 때마다 교장이 꼭 ‘봉독’(奉讀)했습니다. 학생들은 이 긴 ‘칙어’를 암기해야 했습니다. 이밖에 ‘황국신민(皇國臣民)의 서사(誓詞)’, 전진훈(戰陣訓) 같은 것도 암송해야 했습니다. 중학교(지금의 고등학교) 교가는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으며, 선배들로부터 배운 당시 유행가라 불리던 우리말 노래 몇 곡도 아직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런 기억력이 얼마 전부터 저 자신이 놀랄 정도로 떨어진 것입니다. 그와 함께 머리의 순발력도 무척 둔해졌습니다. 명동, 종로, 효자동 등 자주 쓰고 일상 회화에 많이 오르는 동네 이름은 머리에 바로 연상이 됩니다. 그러나 문래동, 화곡동, 전농동 등 자주 듣지 않는 동네 이름은 듣는 즉시 머리에 와 닿지 않아 그 동네가 서울의 어느 동 이름인 것은 생각이 나나 어디에 있는 마을인지 한참 있다가 감이 잡히는 일이 종종 생깁니다.

외국 지명인 경우는 머리에 와 닿는 시간이 더 걸립니다. 위구르, 그루지아(조지아), 아제르바이잔 등의 단어가 방송에서 흘러나올 때 이를 감지하는 능력이 과거보다 훨씬 둔해진 것을 나이 탓만으로 돌릴 것이 아니라고 걱정할 때가 많습니다.

몇 년 전 일기 쓰기를 다시 시작한 이유 중 하나가 자꾸만 잊혀가는 한자(漢字)를 되도록 기억에 남기려는 목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잠자리 들기 전에 일기를 쓰는 습관은 완전히 회복되었는데, 한자 기억력은 점점 줄어들어 조금 전에 생각났던 한자도 쓰려고 하니 기억에서 사라져, 그저 쉬운 대로 한글로 써 버릴 때가 많습니다. 책을 읽을 때 나오는 한자는 잘 이해하면서 왜 이렇게 쓰려고 하면 기억에서 사라지는지 답답할 뿐입니다.

그러나 지난 한 해를 되돌아볼 때, 연초 병원에 입원했을 때에 비해 체력과 기력도 믾이 회복되고 식욕도 어느 정도 돌아왔습니다. 이 독거노인을 돌보는 여섯 아이들의 부담도 영양보호사의 파견근무로 약간 가벼워졌습니다. 새해 경자년은 쥐띠인 저의 해입니다. 위기를 포착하고 민첩하게 움직이는 기민성을 습득하여 ‘100세 인생’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지며 새로운 희망을 가져보려고 합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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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황경춘

일본 주오(中央)대 법과 중퇴
AP통신 서울지국 특파원, 지국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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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반구에서 만난 호주매화, 마누카(Manuka)를 보며

2019.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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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누카 (도금양과) 학명 Leptospermum scoparium

세상은 넓고 큽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과 상식은 매우 좁고 한정적입니다. 배우거나 체험할 수 있는 통상적인 것과 일반적인 견문 안에서만 안다고 할 수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일반적 상식으로 3월은 봄이고 11월은 늦가을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반대쪽에 또 다른 세상이 있습니다. 우리가 낮이면 그곳은 밤입니다. 또한 적도를 넘어 남쪽에는 3~4월이 봄이 아니라 9~10월이 봄이며 온갖 꽃과 새싹이 피어는 계절입니다. 우리 땅은 낙엽이 지는 가을이지만 그곳은 꽃이 피는 봄입니다. 산타클로스 하면 흰 눈과 썰매, 빨간색의 모자와 빨간 외투, 빨간 장화 차림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남반구에서는 러닝셔츠에 빨간 반바지를 입고 슬리퍼를 신은 산타가 심심찮게 등장한다고 합니다. 우리의 지식과 상식 밖의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가을이 깊어 성큼 겨울로 들어서는 11월, 북반구의 반대쪽인 남반구를 향하여 11시간 반 동안 비행 끝에 도착한 곳은 뉴질랜드 오클랜드 공항이었습니다. 옷깃을 파고드는 쌀쌀한 날씨에 두툼한 패딩을 입고 인천 공항에서 비행기를 탔는데 오클랜드 공항에 내리니 햇살이 따사롭고 날씨가 포근했습니다. 사방천지에 훈훈함이 감돌았습니다. 거리의 가로수에는 파릇파릇 한창 새싹이 돋아나고 있었습니다. 넓은 벌판에는 푸른 풀 더미 속에 하얀 난쟁이 데이지 등 들꽃이 마치 민들레 꽃밭처럼 펼쳐있었습니다. 라일락, 만병초, 겹벚꽃이 활짝 피어 있었습니다. 11월이면 으레 온 산천이 벌겋게 물든 단풍의 계절로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분명 11월에 각종 꽃이 피고 푸른 잎새가 돋아나고, 목장의 양들이 저마다 새끼 양을 데리고 노니는 봄 풍경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11월이라는 기존의 계절 감각과 전혀 다른 상황 속에 서 있는 것입니다.

차창에 스쳐 가는 수많은 산들꽃, 봄이 무르익어 가고 있었습니다. 재스민, 서양골담초, 미나리아재비 등이 만발한 뉴질랜드 산과 들의 봄 풍경에 푹 빠졌습니다. 붉게 붉게 단풍이 물들어 가야 할 11월에, 다투어 피어나는 꽃과 담록의 새 이파리를 보고 있노라니 11월의 상식적 감각은 이곳 현장과는 동떨어진 것이었습니다. 내가 사는 세상만의 상식은 오직 그곳에서만의 상식일 뿐이라는 생각이 또렷하게 피부에 와닿았습니다.

이처럼 헷갈린 계절에 피어나는 많은 꽃 중에서 유달리 관심을 끌었고 기억에 남는 꽃이 하나 있었습니다. 로토루아(Rotorua) 호수 근처, 테푸이아(Te Puia)의 마오리 민속촌에서 만난 꽃입니다. 로토루아 호수는 우리의 아리랑만큼이나 뉴질랜드 국민이 즐겨 부르는 민요, ‘포카레카레 아나(Pokarekare Ana)’의 발원지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 ‘연가’라는 제목으로 번안(飜案)되어 잘 알려진, 두 남녀의 애절한 사랑 노래입니다. 로토루아 호수 인근 테푸이아 민속촌 일대는 뜨거운 물이 간헐적으로 높이 솟아오르는 간헐천과 진흙 열탕이 펄펄 끓고 있으며 하얀 수증기가 끊임없이 뿜어져 나오는 화산지대입니다. 이곳의 덤불 숲과 작은 나무 사이에서 낯익은 꽃 더미가 눈에 띄었습니다. ‘호주매화’라는 이름으로 국내에 유통되고 있는 꽃나무, 마누카(manuka)였습니다. 제가 서울 양재 꽃시장에서 ‘호주매화’라고 해서 길러 보려고 화분을 구매하여 베란다에서 기르다 실패한 경험이 있는 꽃입니다. 이런 환경에서 자라는 꽃이구나! 바짝 호기심이 일었습니다. 꽃이 매화꽃과 매우 닮았으며 키 작은 나무에 가지마다 많은 꽃송이가 달리는 깜찍하고 고운 꽃나무입니다. 이 꽃나무를 원산지에서 야생으로 만나니 친근한 벗을 만난 것처럼 반갑기 한량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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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에서 호주매화로 유통되는 마누카 (Manuka)

마누카는 호주, 뉴질랜드가 원산지로서 잔가지가 많이 생기는 상록 관목(灌木)입니다. 잎의 길이는 2cm 정도의 피침형으로 광택이 있고 뻣뻣합니다. 꽃은 봄부터 가을까지 잎겨드랑이나 가지 끝에 흰색 또는 분홍색으로 피며 꽃잎은 5장으로 매화꽃을 닮았습니다. 국내에서 호주매화로 유통되고 있지만, 꽃 모양만 닮았을 뿐 계통상으로는 매화와 전혀 상관이 없는 꽃입니다. 호주매화라는 이름 외에도 꽃과 잎의 모양에서 유래한 송홍매, 솔매, 정유매 등으로 불리기도 하나 봅니다. 마누카는 뉴질랜드의 마오리족 단어입니다.

영명(英名)은 tea tree, New Zealand teatree, broom teatree 등으로 불리는데 초기의 이주자가 이 식물의 잎을 차의 대용으로 사용한 데서 유래한다고 합니다. 특히 1769년 뉴질랜드 북섬 기즈번에 첫발을 디딘 영국 제임스 쿡((James Cook, 1728~1779) 선장의 탐험대가 이 잎을 이용해 '차' 음료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영명 tea tree에 나타나듯이 마누카 잎은 생것 또는 말려서 차로 이용하며, 에센셜 오일은 근육 피로를 풀어 주는 데 사용한다고 합니다. 절화(折花)는 수명이 길고 고와 화훼장식의 소재로 인기가 있습니다. 그러나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더 알려진 것은 마누카에서 채취한 꿀입니다. 마누카 꿀은 일반 꿀과 차이 나는 놀라운 성분이 있다고 합니다. 영양 및 면역 강화 능력, 특히 UMF(Unique Manuka Factor)라 불리는 독특한 천연 물질로 인해 높은 항생, 항균 효능이 뛰어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겨울의 문턱을 들어서는 계절에 마치 봄의 어느 한때처럼 활짝 핀 수많은 들꽃, 특히 매화를 닮은 마누카꽃을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겨봅니다. 춘삼월이 아닌 만추(晩秋)의 계절, 11월에 한창 꽃들이 피고 있다는 눈앞의 사실이 뜬금없습니다. 그동안 당연한 것으로 알고 있었던 사실도 언제 어디서나 진실이 아닐 수 있음을 체험합니다. 세상에 진실은 하나일지언정 진실이라고 믿고 있는 그 사실은 진실이 아닐 수 있습니다. 북반구의 11월과 남반구의 11월 자연환경은 이토록 서로 다릅니다. 오직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이 절대적 선이요 진실이라고만 믿으며, 모든 반대편의 생각과 말과 행동은 무조건 그릇되고 악이라고만 우겨대는 우리의 모습에 이러한 오류는 없는 것인가? 각자의 지식과 상식에 한계가 있기 마련이거늘. 한정적이고 갇힌 자기끼리의 세계에서 오직 자기들 기준만으로 세상만사를 편 가름하는 ‘진영 논리’에 얽매여 사는 듯한 작금의 추세가 어찌하면 바뀔 수 있을까. 그저 암담합니다.

(2019. 11 월 뉴질랜드 북섬 Te puia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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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박대문

환경부에서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과장, 국장, 청와대 환경비서관을 역임했다. 우리꽃 자생지 탐사와 사진 촬영을 취미로 삼고 있으며, 시집 『꽃벌판 저 너머로』, 『꽃 사진 한 장』, 『꽃 따라 구름 따라』,『꽃사랑, 혼이 흔들리는 만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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反核 프란치스코 교황 방중과 방북?

2019.12.11

11월 프란치스코 로마교황이 4박 5일 동안 자신의 아시아 여행국으로 네 번째인 일본을 방문했습니다. 필자는 1984년 5월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방한을 취재했던 데다 대통령이 작년 로마교황청에서 북한 측의 교황 방북 초청 의사를 구두로 전달한 바 있어 관심이 컸습니다. 일본에서 일곱 차례 열린 82세 교황의 강론 몇 건을 일본어 자막이 깔린 유튜브나 연설 텍스트로 지켜봤습니다.

가톨릭신자는 아닙니다. 오래된 성당이면 들어가 명상에 잠기기도 하고 소액을 헌금함에 넣기도 합니다. 스페인에 가려고 피레네산맥을 넘기 전에 들렀던, 프랑스의 작은 마을 루르드의 동굴 성당이 생각납니다. 성처녀 베르나데트가 성모의 발현을 본 기적과 병자를 치유한다는 성수로 널리 알려졌죠. 루르드 동굴에 양초를 불붙여 올렸습니다. 동굴 입구에는 녹슨 지체 장애인들의 철제 보조 용구가 많이 걸려 있어 그들이 제 발로 걸어 나갔을 거라고 짐작했죠.

프란치스코 교황의 메시지에서는 원자폭탄 참화의 기억과 동행, 3·11 동일본 대지진, 쓰나미, 후쿠시마 원전의 3중 재앙에 대한 경고와 위로, 젊은이를 위한 강론이 인상 깊었습니다. 교황은 나루히토 일본 천황을 만난 자리에서 자신이 아홉 살 때 원폭 투하 뉴스를 접한 양친이 흘린 눈물이 가슴 깊이 새겨져 그런 마음을 담아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서 메시지를 전했다고 말했습니다. 교황은 피폭지 방문을 자신의 사명으로 품어 왔다고 했습니다.

교황은 “핵무기의 사용은 인간의 존엄성에 반하며, 지구촌의 미래도 위협함으로써 비윤리적이며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도 윤리에 반하는 것”이라고 말해 가톨릭이 전쟁 억지력으로 인정해오던 핵무기 보유도 비난했습니다. 교황은 요한 23세의 발언을 상기시키며 “군비의 균형이 평화의 조건”이라는 말은 “진정한 평화는 상호신뢰가 아니고서는 구축되지 않는다”로 바꿔야 한다고 했습니다. “인류사에서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폭이 불러온 피해가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핵무기는 오늘의 국가적이고 국제적인 안전보장의 위협으로부터 우리들을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잊지 말도록 정치 지도자들에게 요구한다”라고도 말했습니다.

교황은 로마로 돌아가는 기내 기자회견에서 “핵무기의 사용은 부도덕하고 그것이 가톨릭교회 교리서에 집어 넣어야 하는 이유다. 통치자의 광기가 인류를 파괴할 수 있다.”면서 ‘4차 대전은 몽둥이와 돌로 전개될 것’이라는 아인슈타인의 문명파괴 경고를 환기했습니다. “한 국가가 공격을 받았을 때 합법적인 전쟁이 존재할 수 있느냐”는 물음에는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Si vis pacem para bellum)”는 로마 격언이 있음을 언급하면서도 정당방위 또한 외교와 중재를 통해야 하며 “무력은 마지막 수단임을 나는 강조한다”고 역설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제수이트 회 출신 최초의 교황으로 이 교파가 설립한 조치대(上智大)의 강론에서 청년들에게 “언제나 행동이 공정하고 인간적일 것, 모범이 되는 책임에 관심을 갖는 인간이 되고 약자를 옹호할 것, 말과 행동이 허위나 기만인 지금의 시대에서 더욱 필요한 성실한 사람이 되어줄 것”을 당부했습니다. 교황은 도쿄의 여러 강론에서 “가장 가난한 이를 섬긴 테레사 수녀는 일찍이 ‘고독과, 누구로부터도 사랑받지 못한다는 느낌이 가장 잔혹한 형태의 가난이다.’라는 예언적인 말을 했습니다.… 인류는 수많은 도구를 발명했지만 영혼의 셀카는 찍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행복해지려면 누군가에게 내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해야 하기 때문입니다.”라면서 자신의 껍질을 벗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마음으로 향하라고 설파했습니다. 소통을 좋아하는 교황의 트윗(@Pontifex) 팔로워는 1,810만 명입니다.

여러 언론이 핵무기에 대한 교황의 단호함을 ‘만만찮은 교황 외교’라고 다루었습니다. 미 워싱턴 포스트는 교황이 올해 11번째 해외 순방국인 일본 나가사키의 연설에서 ‘핵 억지력’을 부정해 전임자들보다 더 나아갔다면서 반핵 메시지가 방일의 핵심이었다고 썼습니다. 배경에는 핵 군축 부진, 장기교착 상태의 이란과 북한 핵 문제, 중거리핵미사일협정(INF)의 실효(失效) 등이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대량파괴 무기를 관리하는 다국간 합의가 쇠퇴함으로써 일어나는 새로운 군비 확장 경쟁의 경고로 풀이했습니다. 프랑스의 르 피가로는 교황이 나가사키와 히로시마를 하루에 도는 일정을 언급, “치열하게 긴 싸움에 도전하려고 한다”며 핵 폐기의 집념을 보도했습니다. 가톨릭신문인 프랑스의 라 크루와 지는 교황의 언급이 “최근 미국과 러시아가 신 냉전의 시대에 들어가는 듯한 국제정세에 명확한 인식의 표현“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반면 일본 산케이는 “핵 억지력, ‘비극’을 막기 위해 필요하다”는 사설에서 “모든 나라가 핵무기 폐기에 합의해도 숨기거나 몰래 제조하는 국가나 세력이 나타난다면 끝장이다. 핵무기 없는 일본이 북한이나 중국, 러시아의 핵 위협에 노출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인류의 현 과학기술 수준에서 핵 위협에는 핵을 포함한 전력으로 억지하는 태세가 불가결하다. 핵확산 방지조약(NPT)으로 인정된 핵 억지력의 존재가 핵전쟁이나 대국 간의 전쟁을 막아왔음은 부정할 수 없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미국의 더 리더 헤럴드는 ‘교황의 발언은 현실이 아니라 희망의 반영(Pope’s words reflect hope, not reality)‘이란 사설에서 원폭이 아니었다면 얼마나 더 많은 희생자가 미일 양국에 나왔을지를 교황은 생각했겠느냐고 물었습니다. “미국과 러시아는 교황 말대로 핵무기를 폐기해야 하나? 그럼 회교국가 이란, 무신론의 북한, 중국은? 교황은 미국과, 아마도 러시아가 핵무기의 재사용을 마지막 수단으로 본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핵무장 국가들은 무기와 이를 운반할 미사일을 타국을 지배하는 수단으로 인식할 것이며 ‘반도덕’이라는 말은 그들의 정책에 고려되는 단어가 아니다”라고 반박했습니다.

일본의 네티즌들의 댓글도 부정적이었습니다. “비핵국 일본에서가 아니라 러시아나 북한, 중국에 가서 해야 할 말”이라는 지적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유일한 원폭 피해국인 일본에서 전 세계를 향해 발신하는 메시지라는 높은 평가도 있었습니다.

교황은 기내 회견에서 태국에서 일본으로 비행 중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에게 전보를 보낸 것과 홍콩의 시위 및 지방자치 선거에 관해 묻자 전보는 모든 나라의 국가원수에게 보내지며 영공을 통과하는 나라의 허가를 구하는 정중한 방법이고 이념이나 지지를 의미하지 않는다고 답변했습니다. 이어 “기자가 생각하는 그것은, 홍콩만이 아니며 민주적인 프랑스에도 노란 조끼의 해[年]가 있었고 중남미 제국, 유럽에도 일반적”이라는 말로 희석했습니다.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나는 평화를 존중하며 문제를 가진 모든 나라에 대화와 평화를 요구한다”면서 “베이징에 가고 싶다. 나는 중국을 좋아한다”라고 말했습니다. 교황은 항상 바쁜 서양인은 명상이나 고행 같은 동양인의 지혜에 시간을 들이는 것도 좋은 일이라고 예찬하기도 했습니다.  

교황청은 대만과 외교 관계를 갖고 있죠. 중국 가톨릭은 관영 애국 교회와 지하교회로 양분되며 가톨릭 신자가 1,00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교황청은 최근 두 번째 중국 교구 주교를 서품했습니다. 중국과의 공동 승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교황이 중국에 가고 싶다고 해서, 또 주교의 초청을 받았다고 해서 성사되는 것은 아닙니다. 여건의 성숙이 필요한 거죠. 옛 공산국 폴란드 출신의 요한 바오로 2세 교황(1920~2005)은 취임 다음 해인 1979년 모국을 9일간 방문하여 “성령이 강림하여 이 땅을 새롭게 하시옵소서.”라며 신앙의 희망을 불어넣어 공산 체제에 대한 공포를 없애고 자유노조 설립 등 동유럽 민주화운동에 불을 붙여 공산주의 몰락에 기여했죠. 교황은 1981년 교황청 앞 광장에서 치명적인 암살 공격을 받고 간신히 목숨을 건지기도 했습니다.

교황청 국무원장인 피에트로 팔로린 추기경은 지난해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북 초청과 관련, “북한이 채워야 할 조건이 있는가”라는 언론의 물음에 “그것은 나중이 될 것이다. 이 여행을 하는 가능성에 대해 진지하게 검토하고 여행할 수 있는 조건을 생각해야 한다”라고 답변했습니다.

남북의 권력자가 어떤 목적으로, 성경책을 지니면 수용소로 간다는 북한에 교황의 초청 안을 짜냈는지 모르지만, 핵무기를 보유한 북한, 30만 명으로 추정되는 기독교인 중 5만 내지 7만5,000명이 노동수용소에 있다는 무엇보다 상징적인 현실을 어떻게 할 것인지, 여건 성숙에는 매우 긴 시간이 필요하겠다는 것을 이번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일 메시지를 읽으며 느꼈습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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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김영환

한국일보, 서울경제 근무. 동유럽 민주화 혁명기에 파리특파원. 과학부, 뉴미디어부, 인터넷부 부장등 역임. 우리사회의 개량이 글쓰기의 큰 목표. 편역서 '순교자의 꽃들.현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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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말법

2019.12.10

지난 11월 8일자 칼럼 ‘뒤바뀐 말’ 기억하시는지요? 일상생활에서 저지르기 쉬운 어법상 잘못을 소개했었죠. 이번 글도 비슷한 맥락에서 언어 습관의 잘못을 살펴봅니다.

# “OO역 O번 출구에서 만나.”

누구와 약속을 할 때 오갈법한 어법이에요. 그런데 좀 이상합니다. 말 하는 사람의 입장이야 그렇다 하더라도 상대방이 꼭 지하철을 타고 오리라는 법은 없잖아요. 택시나, 버스, 자가용, 도보로도 올 수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O번 출입구’라고 해야 바른 말법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긴 출구나 입구나 그게 그거지라. 길항대립의 관계가 아니라 상호보완적인 관계니까요. 동전의 앞면이나 뒷면, 손등이나 손바닥처럼. 삶과 죽음의 관계도 마찬가지인지도 모르겠네요.

# “이 역은 지하철과 승강장 사이가 넓으니 내리실 때 발빠짐에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지하철 방송에서 무시로 듣는 말입니다. 발이 빠지는 것은 당연하고 그러니 일단 빠지고 나서 주의하라는 말인가요? 이 방송 멘트가 아직도 고쳐지지 않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아래처럼 바루어야겠지요.
“이 역은 지하철과 승강장 사이가 넓으니 내릴 때 (발이 빠지지 않도록)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곁들여 오래전 유행했던 아재개그성 멘트도 생각납니다. 금연이 아니라 끽연을 권장하는 말법이었죠. “담배를 삼가 하시기 바랍니다.” 노파심에서 어법을 바루면 "담배를 삼가시기 바랍니다."

# “요새 통 바깥출입을 안 해서 말야.”

오랜만에 만난 친구 사이에 오갈 법한 말입니다. 반갑기도 조금은 쑥스럽기도 한 터에, 한편으로 친구의 변한(늙은) 모습에 놀라기도 하면서. 나도 못지않게 변했으려니 자괴감도 드는 터에. 큰 시비를 걸 것이야 없다 할지라도 원래대로라면 ‘안팎 출입’이라고 바루어야 하는 것 아닐까요? 사는 것이 변변치 못하고 자꾸 쪼그라들면 만사가 귀찮기는 하죠. 그러다 보면 경조사를 소홀히 하거나 친지 모임에 나가지 않는 일도 생기기 마련입니다. 그러고 보니 나 역시 ‘바깥출입’을 안 한 지 꽤 오래되었네요. 내가 마지막으로 친구들에게 선을 보인 것이 언제였더라? 말이 나온 김에 (오래)간만에 올 동창회에는 참석해볼까?

#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말 뒤바뀜의 표현의 압권은 무어니 해도 기억도 아련한 ‘국민교육헌장‘입니다. 위 말은 헌장 첫머리에 나오는데, 순서도 안 맞는 협박성 신탁(神託) 때문에 이 땅의 남자들이 역사적 사명을 불러일으키느라 얼마나 가위눌리며 살았던가요? ‘역사적 사명’이란 말 자체도 버겁습니다. 그런 유의 거창한 담론은 초인(Uebermensch)이나 성현, 타고난(이 또한 말이 안 되지만) 애국지사 같은 사람들이 누란의 위기나 엄혹한 시대상황과 맞물려 여차여차해서 우연히 갖게 되는 것 아닌가요? 어찌어찌해서 태어나 ‘하루 벌어 하루 못 먹고 사는’ 이 땅의 갑남을녀(甲男乙女), 장삼이사(張三李四), 우수마발(牛溲馬勃)이야 택도, 어림도 없지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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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김창식

경복고, 한국외국어대학 독어과 졸업.수필가, 문화평론가.
<한국산문> <시에> <시에티카> <문학청춘> 심사위원.
흑구문학상, 조경희 수필문학상, 한국수필작가회 문학상 수상.
수필집 <안경점의 그레트헨> <문영음文映音을 사랑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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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공동체가 생동해야 한다

2019.12.09

결산과 이월의 계절입니다. 연말이 되면 개인이든 단체든 한 해를 되돌아보며 새해에 이을 것과 버릴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중견 언론인들의 언론 연구, 친목단체인 관훈클럽이 ‘위기의 언론 새 길을 찾는다’는 책자를 최근 발간한 것도 2019년의 화두를 정리하면서 2020년으로 생각을 이어 나가는 작업입니다. 한 해 동안 계간지 ‘관훈저널’에 실었던 글과, 관련 좌담을 종합 정리한 책에는 언론의 사명과 생존에 관한 고민과 제안이 두루 담겨 있습니다.

나는 그중에서도 언론의 신뢰에 관한 부분에 주목해 책을 읽었습니다. 사실 신뢰 문제는 언론 위기의 원인이면서 결과이므로 무엇이 해법이라고 명토 박기 어렵습니다. 언론계 안팎의 급변하는 환경과 도전, 시대의 변화양상을 고루 검토하고 논의해야 합니다.

신뢰 회복을 위한 노력은 다양하지만, 나는 페이크뉴스(뉴스처럼 만들어진 허위 정보) 차단과 오보, 불충분 보도 방지에 초점을 맞추고 싶습니다. 가짜뉴스라고 하면 뉴스에 진짜도 있고 가짜도 있다는 오해를 유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적합한 우리말이 없는 한 페이크뉴스라고 쓰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페이크뉴스 차단은 언론사의 온라인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대외적 활동입니다. 자체 생산한 뉴스보다는 온라인을 통해 게재/확산되는 외부 생산 기사가 대상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언론사가 팩트체크 기능을 통해 사실이 아닌 허위 정보를 걸러내거나 삭제하고, 사실 여부 미확인 상태인 기사에 대해 ‘논쟁 중’ 또는 ‘미검증’이라고 표시하는 외국 사례는 우리도 서둘러 도입하거나 강화해야 할 장치입니다. 이를 위한 언론사 간의 협력과 정보 공유도 필요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내부 검증입니다. 거의 30년 전 방문했던 미국 타임 본사의 경우 기사 하나를 데스크과정에서 열두 번 고친 걸 본 적이 있는데, 이보다 더한 사례도 허다하다고 했습니다. 일간지보다 상대적으로 시간에 덜 쫓기는 주간지라 해도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문장만 고치고 다듬는 게 아닙니다. 기사의 취재원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사실 여부를 점검하기까지 하니 기사가 나가지 못하고 아예 폐기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박재영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의 글에 의하면 미국 시사주간지 ‘뉴요커’에는 이런 내부지침이 있다고 합니다. “기사를 읽다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읽기를 중단하고 창문을 열어 그 빌딩이 아직도 그 자리에 있는지 확인하라!” 확인, 또 확인, 더 확인, 다시 확인을 강조한 말입니다.

그 ‘뉴요커’에는 ​잡지가 인쇄되기 전까지 편집자, 작가, 팩트 체커, 보조 교정자와 함께 글을 교정하고 관리하는 사람, 오케이어(OK’er)가 있습니다. 오케이어가 승인해야 글이 나갑니다. 40년 가까이 그곳에서 일한  오케이어 메리 노리스(67)는 ​‘마녀’, ‘콤마 퀸’으로 불렸다고 합니다. 그런 장치와, 근무자들의 열성 덕분에 ‘뉴요커’는 세계 최고의 잡지가 될 수 있었습니다.
https://blog.naver.com/fusedtree/221288209265 참고.

그런데, 지금 우리는 어떤가요? 1997년 IMF 외환위기가 덮치자 언론사들은 경비 절감을 위해 맨 먼저 교열부(또는 교정부)를 없애거나 축소했는데, 이후 20년이 넘도록 나아진 게 별로 없습니다. 그 조직을 확대 발전시키기는커녕 원상회복도 하지 못한 언론사가 대부분입니다.

신뢰 회복을 위해 우리 언론이 해야 할 첫 번째 과제는 교열기능을 대폭 확대 확충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종전처럼 오자, 탈자만 가리는 게 아니라 사실 확인, 이른바 팩트 체크 기능까지 할 수 있게 문자 그대로 넓은 의미의 교열(校閱)을 해야 합니다. 이런 일은 내부적으로 인기가 없기 마련이며 자칫 종속적인 업무로 처지기 십상이니 그 직능과 직위와 명칭과 대우에 특별한 배려를 해야만 실효를 거둘 수 있을 것입니다. 언론 경영자들은 언론의 품질 향상과 신뢰 회복의 길이 무엇인지 깊이 궁리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기자공동체를 유지 또는 복원하는 것입니다. 입사 이전에 체계적 교육기회가 거의 없었던 기자들은 회사의 분위기와 선배들로부터 배우면서 성장합니다. 특히 하리코미(張り込み)라는 이름의 잠복취재 훈련을 통해 경찰과 부대끼며 세상과 인간에 대해서, 취재방법에 대해서 알아가게 됩니다. https://blog.naver.com/fusedtree/221344215698 참고.
전통적 기자 훈련방법이었던 하리코미는 이제 주 52시간 근무제 등의 영향으로 점차 없어져가고 있지만, 반드시 부정적 측면만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꼭 집에 들어가지 않는 잠복취재가 아니라도 입사 초기의 기자들에게 사건 취재를 경험토록 하는 것은 기자에게 필요한 밀착 취재와 끈질긴 확인 습관의 체질화를 위해 중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선배(특히 1진)와의 교감이 넓어지고, 동료나 타사 기자들과 경쟁 속의 유대가 형성됩니다. 넓게 말해 기자공동체가 이루어지는 바탕이 생기는 것입니다. 기자공동체는 당연히 이익집단이나 권익 추구단체가 아닙니다. 가르치고 이끌어주고 격려 또는 질타하면서 언론인으로서의 자질과 체질을 길러주는 한편 스스로를 점검하고 확인하는 능력을 갖추게 해주는 존재입니다.

나는 기자 생활을 하는 동안 선배들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절대 한쪽 이야기만 듣고 기사 쓰지 마라”, 이것이 수습기간에 처음 들은 말입니다. “기사는 120을 취재해서 80만 쓰는 거다.”, “사쓰마와리(察回り, 경찰서 출입 사건기자) 선배는 인생 선배다,”, “신문기자의 눈은 카메라 같아야 한다. 현장을 3분 봤으면 30매도 쓸 수 있어야 한다.” 말을 좀 ‘거룩하게’ 내가 가공했지만 메시지는 충분히 전달됐을 것입니다. 사쓰마와리 선배가 인생 선배라는 말은 나이가 아무리 적어도 취재경험이 더 있는 사람은 인간의 삶과 세상에 대해 그만큼 더 안다는 뜻이니 잘 배우라는 뜻이지요.

그리고 한국일보 창간발행인 백상 장기영(1916~1977)의 어록-. “납이 녹아서 활자가 되려면 600도의 열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활자화되는 기사는 600도의 냉정을 가지고 써야 한다. 뜨거운 냉정, 이 양극을 쥐고 나가는 게 신문이다.”,  “신문은 비판하는 용기가 있어야 하지만 칭찬하는 용기도 있어야 한다.” 활자를 심어 판을 뜨는 시대는 지나갔지만, 언론의 기본은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그만한 냉정과 열정이 잘 보이지 않고, 선배가 후배를 질책하며 기사를 고쳐주고 취재방향을 바로잡아주는 일도 드물거나 원활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오히려 이런 일을 '갑질’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짙어지는 것 같습니다.

기자공동체가 온전하고 단단하다면, 그리고 살아서 움직인다면 그런 현상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이 공동체가 나선형 틀로 발전하고 전진하는 것, 과거와 전통을 바탕으로 나아가는 언론사의 분위기와 틀을 확립하는 것이 절실합니다. 항상 눈뜨고 있는 물고기의 비늘처럼 얇지만 단단한 구조, 갑옷의 미늘처럼 겹겹이 촘촘하게 엮인 조직을 그리워하고 소망합니다. 인위적으로 그런 공동체를 조성하기 어려워진 세상이라 하더라도 언론의 신뢰 회복과 발전을 위해 늘 잊지 말아야 할 점이라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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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임철순(任喆淳)

한국일보 편집국장 주필, 이투데이 이사 겸 주필 역임. 현재 자유칼럼그룹 공동 대표, 한국언론문화포럼 회장, 시니어희망공동체 이사장. 한국기자상, 위암 장지연상, 삼성언론상 등 수상. 저서‘노래도 늙는구나’, '효자손으로도 때리지 말라’,’손들지 않는 기자들‘,‘1개월 인턴기자와 40년 저널리스트가 만나다(전자책)’,‘내가 지키는 글쓰기 원칙(공저)’'마르지 않는 붓'(공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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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구적 평등과 현실적 불평등

2019.12.06

-즐겨 입는 옷의 80%는 옷장에 걸린 옷의 20%에 불과하다.
-20%의 고객이 백화점 전체 매출의 80%에 해당하는 물건을 산다.
-전체 교통사고의 80% 정도를 20%의 운전자가 낸다.
-20%의 범죄자가 80%의 범죄를 저지른다.
-우수한 20%의 인재가 80%의 문제를 해결한다.
-운동선수 중 20%가 전체 상금의 80%를 싹쓸이한다..
-소득세의 80%는 과세대상자 20%가 부담한다.
-핵심제품 20%가 기업 이익의 80%를 가져다준다.

파레토 법칙(Pareto Principle)의 예증들입니다. 이탈리아의 경제학자이자 사회학자 빌프레도 파레토(Vilfredo Pareto 1848~1923)가 “이탈리아 인구의 20%가 전체 부의 80%를 가지고 있다”고 한 주장에 근거해, 조셉 주란(Joseph Juran 1904~2008, 미국 품질관리 전문가)이 1951년 이름 지은 법칙입니다. 80-20 법칙(80-20 Rule) 또는 2-8 법칙(2-8 Rule)이라고도 합니다.
그리 낯설지 않은 말입니다. 2011년 1%가 99%의 부를 독식하고 있다며 미국 뉴욕의 월가(Wall Street)를 텐트로 뒤덮고 점거했던 월가 시위, 노무현 정부 때 국민을 잘사는 20%와 못사는 80%로 가르던 주장들입니다.

파레토는 어느 날 땅 위를 기어다니는 개미떼에서 묘한 현상을 발견했습니다. 전체 개미의 20%만 열심히 일하고 나머지 80%는 빈둥댄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부지런한 20%의 개미만 따로 모아 관찰했는데 거기서도 같은 비율의 일중독자와 게으름뱅이로 나뉘었습니다. 꿀벌에서도 같은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파레토는 인간사회에서도 이러한 법칙이 적용되는지를 연구한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어냈습니다. ‘전체 부의 80%는 상위 20%의 사람이 소유하고 있다.’ 그리고 ‘전체 인구의 20%가 전체 노동량의 80%를 일한다.’

# ‘세상에 평등한 것은 없다’는 파레토의 법칙

인간은 평등한가? 파레토가 관찰하고 주란이 명명한 파레토의 법칙은 결국 ‘세상에 평등한 것은 없다’는 사실을 사회과학적으로 구명한 논리입니다.
인간의 불평등은 까마득한 옛적부터 있어왔습니다. 공자는 2,500년 전에 이미 일반 백성을 가리키는 인민(人民)을 지배하는 사람[人]과 지배받는 사람[民]으로 구별했습니다. 그보다 200년 뒤 공자와 맹자의 유가사상을 집대성한 순자도 인간 세상의 불평등을 언급했습니다.
-계급이 균일하면 다스려지지 않고
-세력이 균등하면 통일되지 아니하며
-대중이 차별이 없으면 부릴 수 없다-라고.

요즘 우리 사회에는 평등을 외치는 물결이 홍수처럼  넘쳐흐르고 있습니다. 17, 18세기 홉스(Thomas Hobbes) 로크(John Locke) 루소(J. J. Rousseau) 등 사회계약론자들이 창출한 평등(equality)의 개념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권리 의무 자격 기회 등에 차별이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 대상은 법 앞의 평등, 정치적 평등, 경제적 평등, 남녀평등, 국가 간 평등, 인종 간 평등처럼 수없이 많습니다.
오랫동안 우리는 평등이라는 용어의 마력에 심취해왔습니다. 그러다 문득 눈앞에 펼쳐지는 정규직·비정규직 갈등, 미투·워마드 운동, 복지재원 마련을 위한 정부의 증세정책과 국민의 조세저항, 내년 총선이 분수령이 될 촛불세력과 적폐·청산 대상 세력의 사활 투쟁을 보면서 과연 평등은 이루어질 수 있는 현실인가 의문이 생기기도 합니다.

# 허구와 현실 구별하는 능력 키워야 고통 줄어

국내 문제만이 아닙니다. 용서와 사랑이라는 슬로건은 뒷전인 채 자살·폭탄 테러가 끊이지 않는 기독교와 이슬람 대립, 수많은 중동·아프리카 난민과 이를 막는 유럽국가들, 멕시코인들의 미국행 월경 시도와 트럼프의 장벽정책, 극심한 물가상승과 생필품 부족으로 이웃나라로 탈출하는 남미 국가 국민 등은 자유와 평등 생존을 갈구하는 사람이 엄청 많다는 것을 말해주는 현상입니다. 합법적이든 불법적이든 이들 대부분의 갈등과 대립 투쟁은 불평등에서 비롯된 밥그릇 싸움이 아닌가 합니다.
태초부터 천당과 지옥, 극락과 수라장(修羅場)으로 구분돼 온 불평등 세계가 아직도 완전히 평등한 세상으로 진입하지 못한 것은 세월이 모자라서일까요?

최근 이스라엘 석학 유발 하라리(Yuval Harari 1976~, 예루살렘 히브리대학) 교수가 이러한 의문을 다소 풀어 주었습니다. ‘세계 석학 8인에게 인류의 미래를 묻다’라는 부제의 책 <초예측(Super Forecast)>에서 하라리는 “인간은 스스로 만든 허구(虛構)가 주는 ‘고통’ 때문에 고민하고 분노하고 저항한다”고 진단했습니다. 그 예로 허구인 국가나 기업은 고통을 느끼지 못하며, 국가가 전쟁에 패하거나 기업이 망해도 고통의 주체는 항상 국민 또는 회사 경영자와 사원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끊임없이 허구(fiction, lie, concoction, invention)를 만들어냈습니다. 그리고 그 굴레 안에서 웃거나 울고 있습니다. 돈 국가 법인 인권 복지 행복 평화 공정 정의 보수 진보 민주주의 사회주의 자유 평등 같은 굴레들입니다.
하라리는 절대다수 사람의 허구에 대한 신봉이 인류를 영장류 최고봉에 올려놓았지만 "허구의 노예가 되지 말라"고 결론지었습니다. 위정자나 국민 모두가 현실과 허구를 구별하는 능력을 키워야 고통을 줄일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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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김홍묵

경북고,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동아일보 기자, 대구방송 이사로 24년간 언론계종사.  ㈜청구상무, 서울시 사회복지협의회 사무총장, ㈜화진 전무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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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보드 차트 그리고 대학 랭킹

김도연 객원논설위원·서울대 명예교수


랭킹 비즈니스, 1980년대 대학에 도입

한국대학 최근 발표에서 100위 내 5개 포함

내부 혁신 없이 논문 양적 팽창의 결과

100위권 밖 이스라엘 대학들, 노벨상 7명에

1600개 기업 설립해 10만 개 일자리 창출

허수 랭킹서 벗어나 진정한 경쟁력 성찰해야



 

   단 하루의 대학수학능력시험으로 몇십만 명의 젊은이를 한 줄로 세우는 일에 익숙한 탓인지 우리 사회는 무엇이든 랭킹에 관심이 많다. 인터넷 포털에는 정치, 경제, 사회 등과 함께 랭킹 섹션도 있는데, 여기에는 많이 본 뉴스 등이 순서대로 나타나 있다. 잘 팔리는 서적은 물론이고 식당들에도 랭킹이 매겨져 발표되고 있다. 이렇게 랭킹을 따지는 일은 결국 스스로의 주관적 판단보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더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랭킹 작업 효시의 하나는 음악잡지 빌보드라 여겨지는데, 인기 팝송의 순위를 매겨 이를 매주 발표하기 시작한 것이 1936년이다. 처음에는 방송 횟수에 따라 순위를 결정했지만 요즈음엔 다운로드 횟수 그리고 유튜브 조회 수 등도 합산되고 있다. 사실 일주일마다 좋아하는 팝송을 바꾸는 사람은 없지만, 그래도 랭킹은 새로운 유행이나 1위 곡에 관심을 갖게 만든다. 결국 랭킹 발표는 팝송 시장을 넓히는 좋은 비즈니스 모델이며 아울러 사람들을 한쪽으로 쏠리게 만든다. 매크로를 이용한 기계적 댓글 올리기로 선거 판에서 특정 뉴스를 가장 관심 받는 것으로 만들어 여론을 조작한 일도 랭킹의 위력을 이용한 것이다.




이러한 랭킹 비즈니스가 대학 사회에 들어온 것은 1980년대 중반이다. 유에스뉴스앤드월드리포트가 미국 내의 대학들을 평가해 순위를 발표하면서 독자들의 관심을 끌었고, 그 후 다른 많은 신문사들도 같은 일에 뛰어들었다. 그 후 영국의 사업가 한 사람이 QS란 이름의 평가 전문 회사를 차려 경영대의 순위를 발표하다가 2004년부터는 세계의 유수 대학들을 모두 한 줄로 세우기 시작했다.


랭킹은 대학 간의 경쟁을 유발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요소도 있다. 그러나 대학은 팝송처럼 잠시 유행하고 사라지는 존재가 아니며 또 그 순위가 매년 크게 바뀔 까닭도 별로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 평가 기관들은 비즈니스를 위해 끊임없이 크고 작은 순위 변화를 만들어 내는 듯싶다. 이런 평가 순위에 일희일비하는 우리 대학들의 신세가 어쩌면 애처롭다.


여하튼 처음으로 세계 대학 랭킹이 발표되던 2004년 우리나라의 대학 이름은 100위 안에 하나도 없었고, 이에 대해 상당한 사회적 질타가 있었다. 2005년에 서울대가 93위가 되었고, 그 후 우리 대학들은 계속적으로 순위가 상승해 최근 발표된 2020년 QS 랭킹에서는 100위 안에 모두 5개의 대학이 들어갔다. 서울대는 37위 그리고 KAIST는 41위가 되었으니 놀랄 만한 발전이다. 그사이 대학들의 내부 혁신은 전혀 눈에 띄지 않았고 재정은 지난 10여 년간의 등록금 동결로 크게 축소된 상황이니, 사실 이런 도약은 불가사의한 일이다.


대학은 국가 발전의 엔진이며 그런 측면에서 대학 경쟁력은 더할 수 없이 중요하다. 그런데 앞서 언급한 평가 순위 상승을 위한 우리 대학들의 노력은 마치 수능에서 정답 고르기를 철저히 연습해 좋은 성적을 얻으려는 수험생과 흡사한 모습이다. 예를 들어, 대학들은 의미 없는 일임을 잘 알면서도 높은 순위를 위해 논문의 양적 팽창을 지향하고 있다. 실제로 서울대는 발표 논문 수에서는 세계 10위지만 피인용 상위 10% 숫자로는 세계 600위권의 대학이다.


https://www.qs.com/portfolio-items/qs-world-university-rankings-2019/

https://www.billboard.com/charts/the-billboard-hot-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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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헤브루대와 이스라엘공대(테크니온)는 각각 대한민국의 서울대와 KAIST에 상응하는 곳이다. 그런데 헤브루대는 21세기 들어 이미 7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으며, 이 대학 역사학과 유발 하라리 교수가 저술한 ‘호모 데우스’ 등은 40개가 넘는 언어로 번역되어 세계 독자를 사로잡았다. 아울러 컴퓨터과 교수가 창업한 모빌아이란 벤처는 2년 전 인텔이 사상 최대 금액인 17조 원을 주고 인수해 갔다.


그리고 테크니온 졸업생들은 지난 20년간 1600여 개의 기업을 세우고 이를 운영하면서 무려 10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했다. 2020년 QS 평가 162위인 헤브루대와 257위인 테크니온의 모습이다. 이 대학들은 랭킹에 별로 관심도 없다. 우리 대학들도 이제는 허수에 불과한 랭킹에서 벗어나 진정한 경쟁력이 무엇인지 성찰해야 한다. 그리고 사회도 이를 독려하고 성원해야 한다. 자국 대학의 낮은 랭킹을 비판하는 이스라엘 사람은 없을 듯싶다.

김도연 객원논설위원·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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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컴퓨터에 몽당연필의 초심을 담아

2019.12.05


이사 준비로 분주한 친구에게서 뜻밖에 유명 브랜드의 만년필과 볼펜 세트를 얻게 되었습니다. 때이르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는 기분입니다. 친구는 수십 년 간 살던 단독 주택에서 아파트로 이사하려다 보니 정리할 물건이 너무 많다며 비명을 지르던 참입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소중히 간직해온 귀한 물건들을 요즘 산타클로스처럼 주변에 나누어주고 있습니다.

그는 예전부터 소문난 수장가였습니다. 고교 졸업 50주년 기념앨범을 만들 때 모교 배지(badge)와 모표, 졸업장, 성적통지표는 물론 학생증, 수험표까지 내놓아 동기들이 입을 딱 벌렸습니다. 지금 서울시립박물관에는 수년 전 그가 기증한 여러 물건들이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전시되고 있습니다.

친구의 필기구 선물이 까맣게 잊고 있던 옛 추억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어린 시절 몽당연필에 침을 묻혀 찢어진 봉투 조각에다 삐뚤빼뚤 획을 그으며 가갸거겨를 익히던 일. 처음 접한 잉크에 쩔쩔매며 공책, 책가방, 옷에까지 잔뜩 묻히고 다니던 일. 눈에 콩깍지 씌어 연애하던 시절 선물로 받은 몽블랑 만년필로 입사 시험을 치르던 일. 갖가지 기억들이 아직도 눈앞에 삼삼합니다. 그런데 오늘은 연필, 만년필, 볼펜 다 밀어두고 컴퓨터 자판을 두들겨 원고를 쓰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글씨 쓰는 도구도 정말 엄청난 변화를 보여 왔습니다. 오랜 옛날엔 양반님네들이나 벼루에 연적으로 물을 따라 먹을 갈고 붓으로 글씨를 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붓으로 글씨를 쓰는 일은 이제 서예니 서도니 해서 예술 형태로만 남았을 뿐입니다.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신 어머니는 부엌 바닥을 노트 삼아 부지깽이로 글씨를 익히셨다고 합니다. 그 당시엔 사각 나무판에 모래를 깔아서 손가락이나 막대기로 글씨를 익히기도 했답니다.

저희가 어릴 땐 연필과 지우개로 글씨를 쓰고 지우며 공부했습니다. 당시 국산 연필의 재질은 볼품이 없었습니다. 육각형을 이룬 나무 두 쪽의 결이 틀려서 칼로 깎으려다 한 쪽이 뭉청 떨어져 나가 낭패를 보는 일이 허다했습니다. 어쩌다 잠자리표 일제 톰보 연필을 하나 얻으면 대단한 자랑거리가 되었지요. 쓰기에도 깎기에도 아주 부드러웠습니다. 아까워서 마음놓고 쓰지도 못했지만.
고무로 만든 지우개는 너무 거칠고 억세서 잘못 문지르다가 공책이 찢어지는 경우도 적잖았습니다. 친구들 가운데 더러 찹쌀 지우개라며 글씨를 아주 부드럽게 지워내는 지우개를 자랑해 부러움을 사기도 했습니다.

중학교에 들어가며 처음 사용하기 시작한 철필과 잉크는 사고뭉치였습니다, 노트는 물론 책가방에 잉크가 번져 책과 옷을 온통 시퍼렇게 물들이는 사고가 빈발했지요. 고교 시절엔 콩나물시루 같은 버스 속에서 고맙게도 무거운 책가방을 받아준 여학생 치마에 잉크를 묻혀 얼굴이 빨개졌던 사건도 있었습니다.

유복한 친구들은 파카 21이라고 쓰인 통통한 만년필을 저고리 윗주머니에 끼우고 다니며 폼을 잡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여름철 버스 창가 자리에 앉았다가 느닷없이 날치기당하는 사고도 심심찮게 벌어졌습니다. 철사 고리로 만년필을 번개같이 낚아채는 대낮 절도범들이 설쳤거든요. 그래서 한동안 학생들 사이에 비상경계령이 내렸었지요.

대학 시절 비로소 책상 위에 주무기로 등장한 볼펜[ball(-point) pen]은 가히 필기구의 혁명이었습니다. 잉크병을 따로 들고 다니다 쏟아지는 불편과 위험이 일시에 사라진 것입니다. 너도 나도 국산 육각형 모나미(mon ami) 볼펜을 사서 쓰며 그 편리함에 감탄했었지요. 어쩌다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검은색 둥근 볼펜은 심에서 잉크가 흐르지 않아 더욱 좋았습니다. 이후 각국 유명 브랜드의 볼펜들이 오늘날까지 필기구의 강자로 우열을 다투고 있습니다.

저희 학창 시절엔 요즈음 수많은 학생들이 들고 다니는 샤프펜슬[mechanical pencil]을 쓴 기억이 거의 없습니다. 아마도 볼펜보다 더 늦게 보급되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연필처럼 번번이 깎아서 써야 하는 불편을 없앴으니 공부하는 학생들에겐 볼펜 못지않게 혁명적인 필기구인 셈입니다.

편리성을 위주로 한 필기구로는 아직까지 볼펜이나 샤프펜슬이 최강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듯합니다. 만년필은 좀 더 격식을 따지는 서명에나 쓰이는 정도이고. 박물관행을 앞두고 있는 형편이라고나 할까요.

그러나 볼펜이나 샤프펜슬도 글자 몇 자, 몇 줄 쓸 때 필요한 도구일 뿐 디지털시대의 본격적인 글쓰기 도구 자리에서 밀려난 지 오랩니다. 글쓰기를 업으로 삼든 취미로 삼든 컴퓨터 자판을 두들겨 만든 글이 아니면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합니다. 볼펜으로든 만년필로든 종이 위에 쓴 글은 반드시 누군가의 컴퓨터 작업을 거쳐야만 활용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젠 기사, 칼럼을 쓰든 시, 소설을 쓰든 글쓰기 작업은 컴퓨터에 매달릴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키보드를 두들기는 약간의 기술만 익히면 글쓰기에 그만큼 편리한 장비도 없습니다. 글자의 삭제와 삽입, 문장의 복사와 옮겨 붙이기가 손가락 몇 번의 놀림으로 간단히 이루어집니다. 예전에 미리 써 두었던 글을 오늘 찾아 새 글에 활용하기도 하고, 누군가의 서술을 손쉽게 복사해 인용하기도 합니다. 인터넷이라는 세계적인 통신망을 통해 글의 전달과 유통도 대단히 편리해졌습니다.

그러나 컴퓨터와 인터넷의 편리함에 취해 글을 함부로 다루면서부터 나타난 폐단들도 적지 않습니다. 손가락 장난하듯 경박한 글, 다른 사람을 일방적으로 헐뜯는 무례한 글, 근거도 출처도 알 수 없는 정체불명의 글, 진실과 허위가 뒤바뀐 글들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글을 너무 손쉽게 다루게 되면서 글에 대한 진정성은 오히려 떨어진 탓일 겁니다.

우선 저부터 과연 예전 침 묻힌 연필로 종이에 또박또박 끌로 파내듯 글을 쓰던 때의 정성과 마음이 담긴 글을 쓰고 있는지, 자신이 없습니다. 도구의 편리함에 취해 정작 글에 들이는 성의는 그만큼 떨어진 것은 아닌지, 곰곰 생각해보게 됩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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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방석순

스포츠서울 편집국 부국장, 경영기획실장, 2002월드컵조직위원회 홍보실장 역임. 올림픽, 월드컵축구 등 국제경기 현장 취재. 스포츠와 미디어, 체육청소년 문제가 주관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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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2019.12.04

만만했던 종이에 손끝을 베였습니다. 날카로운 쓰라림이 가슴을 파고듭니다. 늘 가까이에서 기꺼이 제 몸을 내어주던 종이라, 맘대로 해도 되는 ‘내 거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쉽게 보지 말라며 경고를 줍니다. 생채기로 생긴 아릿한 통증이 오랫동안 눈썹 끝에 매달립니다. ‘너 참 차갑다.’ 사실 제 머릿속에 종이는 따듯함이었는데, 서운함도 있지만 이따금씩 일어나는 종이의 반기(叛旗)는 귀하게 여겨 달라는 충고일 것입니다.

종이를 참 좋아합니다. 무언가 끼적이고 싶은 잘생긴 백지의 매끈함, 채색할 때 사용하는 순지의 유연함이 좋고, 먹을 깊게 받아들이는 화선지는 아련합니다. 앙리 마티스는 노년에 관절염으로 정교한 작업이 어렵게 되자, 붓 대신 가위를 들어 페이퍼 커팅(paper cutting) 작업을 했는데, 그 사각거림이 얼마나 자유롭고 유쾌했을까 싶습니다. 아트북의 명장 게르하르트 슈타이들은 책을 만들 때 알맞은 향기를 지닌 종이를 고르는 것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는데, 그 기분을 알 것만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우리의 삶에 있어 종이는 집처럼 아늑하게 곁에 있어 왔습니다. 특히 어린시절 추운 겨울날에는 온돌방 따듯한 종이 장판 바닥에 볼을 갖다 대고 엎드려 숙제를 했습니다. 어머니는 ‘눈 버린다’며 야단하시지만 그렇게 글을 쓰면 글씨마저 나긋나긋 부드러워졌고, 스르르 잠이 오던 기억이 있습니다. 인쇄된 종이 인형을 잘라 옷 입히기 소꿉놀이를 했고, 종이의 선택에 심혈을 기울이던 딱지치기까지, 종이에 얽힌 추억에는 따스한 미소가 번집니다.

오래전부터 종이는 글을 쓰는 문필용뿐 아니라 복주머니, 실첩, 반짇고리, 그릇 등 우리네 생활의 필수품이었고 예술과 놀이의 도구였습니다. 더욱이 문, 벽, 천정 그리고 방바닥에까지 종이를 사용한 나라는 우리나라가 거의 유일하다고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비슷한 문화권이어도 중국은 입식 생활을 해왔고 일본은 습한 섬나라로 다다미를 놓았으니 바닥마저 종이를 사용한 나라는 우리나라뿐이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종이문화는 자랑할 만한 역사를 갖고 있기도 합니다. 알려진 대로 고구려의 뛰어난 제지기술은 서쪽으로는 고선지 장군에 의해 실크로드를 따라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등에 전해졌고, 동쪽으로는 승려 담징이 일본에 그 기술을 전하는 등 전 세계로 전파되었습니다. 또한 중국의 경우 색종이는 종이를 뜬 후 염색하여 사용하는 방식이었다면, 우리나라는 종이 원료 자체에 물을 들여 한 번에 색종이를 뜨고, ‘봉투’라는 것을 만들어 사용한 세계 최초의 민족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종이는 종교 의례용으로도 활용되는데, 얼마 전 강경에 위치한 나바위 성당에서 독특한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나바위 성당은 김대건 신부님께서 사제 서품 후 우리나라로 들어올 때 상륙하신 장소로 성당 외관도 아름답지만, 대부분의 성당 창문이 스테인드글라스로 화려하게 되어있는데 비해 이곳은 색한지와 먹선으로 간결하게 표현된 성화(聖畵) 창문이 소박한 아름다움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성당 외부에서는 한지로 만든 성화의 뒷면이 보이게 되어 담담하게 외관과 조화를 이루고, 내부에서는 성화의 앞면이 선명하게 보이는데, 한지의 부드러움이 곱고 정다웠습니다.

서양문물이 들어오기 전까지는 이렇게 한지를 이용한 성화가 우리의 신앙체계를 표현하는 양식으로 귀하게 쓰였을 것이고 또한 옛 전통의 방식을 오늘날 잘 활용하고 있는 사례를 보는 것 같아 마음이 포근해졌습니다. 칼바람으로 추운 겨울날 불현듯 따듯한 종이를 생각해봤습니다. 친환경적이고 감성적인 소재. 모든 것이 디지털화되어 가는 시대에 종이의 소중함과 귀함을 가벼이 여기지 않았음 하는 바람입니다.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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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안진의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 교수. 삶의 중심은 그림이지만 그림과 함께 일상을 풀어내는 방법은 글이다. 꽃을 생명의 미학 그 자체로 보며 최근에는 ‘꽃과 문명’이라는 화두를 붙잡고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저서 <당신의 오늘은 무슨색 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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