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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삼중고…수해, 코로나, 아베

2020.07.13

일본 제국주의 정부를 패망으로 몬 태평양전쟁의 도화선이 된 중국과 일본의 전쟁은 양국이 다 선전포고(宣戰布告) 없이 1937년 7월 7일에 시작되었습니다. 공군을 포함한 전면 무력층돌이었지만, 일본은 이것을 ‘지나사변(支那事變)’이라 불렀습니다. 1941년 12월 8일 미국 진주만을 기습 공격하여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뒤 비로소 일중전쟁(日中戰爭)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지나사변’이 시작된 이 7월 7일은 태평양전쟁 이전에는 일본 각지에서 대대적으로 기념행사가 열려, 초전에 ‘연전연승(連戰連勝)’한 일본군을 축하하고 국민의 전의를 고양하는 데 이용했습니다. 전쟁기념일 행사는 태평양전쟁이 시작된 후에는 물론 12월 8일로 옮겨졌습니다.

일본이 패전한 후에는, 매년 8월 15일을 종전기념일(終戰紀念日)이라 호칭하고 천황, 총리를 비롯한 정부 고관과 유족 대표들이 모여 310만으로 추정되는 전쟁 희생자를 위한 위령제를 가집니다. 그러나 7월 7일이나 12월 8일은 공식 행사 없이 조용히 지냅니다. 지난주 7월 7일도 중일전쟁에 관한 일본 정부의 아무런 언급 없이 지나갔습니다.

중국 공산당은 1985년에 중일전쟁으로 인한 중국인 인명 피해를 군인 약 100만 명, 민간인 약 2,100만 명이라고 발표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금년 7월 7일을 전후한 한 주일 동안 일본 열도 많은 곳이 기록적인 폭우와 이에 따른 홍수와 산사태로 극심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지난 토요일 현재 사망자 66명, 행방불명자 16명이라고 일본 정부가 발표했습니다. 서일본 규슈(九州)의 인구 173만의 구마모토현(熊本縣)의 피해가 제일 커 11일 현재 62명이 사망했다고 경찰이 발표했습니다. 구마모토현에 있는 ‘센주엔(千壽園)’이란 양로원이 탁류에 휘말려 수용 중인 60명의 고령자 중 거동이 불편한 14명이 익사한 참사가 보도되기도 했습니다. 장마철에 들어간 일본은 큰비가 얼마동안 계속될 것이라고 일본기상청이 예보했습니다. 재물 피해는 호우가 계속되는 중이어서 당국이 아직 조사를 못 하고 있습니다. 우리 문재인 대통령이 위로 전문을 보낼 정도의 참상입니다.

이 기록적인 홍수 피해에 겹쳐 한때 소강상태에 있던 신형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자가 갑자기 증가하기 시작하여 일본 각계는 코로나 제2파의 시작이 아닌지 우려를 표시하고 있습니다.

수도 도쿄(東京)의 하루 감염자 수가 지난 9일 224명으로 지금까지의 최고 숫자라고 발표되었습니다. 1주일 전에 재선에 성공한 도지사(都知事)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여사는 기자회견에서 방역 전문가와 긴급회의를 갖고 대책을 강구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이 감염자 확장세는 전국적으로도 356명으로 지난 3개월 중 최고치를 기록하였습니다. 도쿄도의 이 숫자는 다음 날 243명으로 늘어 신기록이 또 갱신되었습니다. 한편 전국 숫자는 한 명 줄어 355명이었다가 10일에는 441명으로 늘어났습니다. 이 현상은 PCR 검사가 종전보다 더 많이 진행되기 때문이라고 정부 대변인인 관방장관이 말했습니다.

우리나라처럼 무관중 프로야구 경기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는 일본은 7월 10일 처음으로 제한된 수의 관중을 입장시키는 경기를 조심스럽게 시도했습니다. 프로 축구협회도 뒤이어 관중을 5,000명으로 제한한 경기를 시작했습니다.

일본 스포츠계에서 가장 인기가 있는 종목의 하나인 전국고등학교야구대회는 주최 측이 중지를 공고하자, 이미 참가가 내정되어 있던 학교가 여러 지방 도시를 돌며 비공식 경기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소동 전부터 불경기 바람에 시달리고 있던 일본 경제는 주요 산업인 관광업을 비롯해 많은 기업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올림픽 개최 연기로 이미 막대한 경제 손실을 입어 일본 경제의 앞날을 어둡게 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각종 정치 스캔들에 휘말려 지지도가 많이 떨어진 아베 신조(安倍晉三) 총리가 국면 타개를 위해 국회 해산이라는 비상수단을 쓸지 모른다는 소문까지 나돌기 시작해 일본 정계의 혼란을 가속시키고 있다고 보도되고 있습니다.

여당 총재가 총리직을 맡게 되어 있는데, 아베 총리의 임기는 내년 9월까지입니다. 이미 3선째 임기를 맡고 있는 아베 총리는 당 규칙에서 4선을 못하게 되어 있어 이에 따른 정치 불안정이 일본 경제를 더욱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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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황경춘

일본 주오(中央)대 법과 중퇴
AP통신 서울지국 특파원, 지국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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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이 정도를 걸어야 나라가 바로 서죠

2020.07.10

얼마나 정권에 부담이 되었을까요? 언제는 “우리 총장님”, “검찰개혁 최적임자” “살아있는 권력도 엄정히 수사해달라”더니 표변했습니다. 문 정권의 기획자라는 조국은 ‘검찰 파쇼’라고 극언했고 조국 사건에 연루된 최강욱 의원은 “공수처 수사 대상 1호는 윤석열 부부가 될 것”이라는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검찰총장 공격 최전선에 선 ‘폭언의 여왕’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말을 잘라먹는다, 이런 검찰총장은 처음 보았다”며 작년 7월 25일 취임해 임기가 1년도 더 남은 사람을 품위 없이 몰아쳤습니다.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게 그렇게 싫은가요?  2013년 10월 그의 국정감사 발언에 감명을 받은 듯 조국 교수는 “윤석열 검사의 오늘 발언, 두고두고 내 마음속에 남을 것 같다”고 트위터에 올렸습니다.

의회 독재를 막는 장치라고, 야당 때 외치던 사람들이 정파를 초월해 국회를 운영하라는 ‘무소속 국회의장’의 정신을 무시한 박병석 의장의 협조로 불문율의 야당 몫이던 국회 법사위원장 자리를 빼앗고도 불안한가요? 김명수 사법부가 고분고분해도 안심이 안 되나요? 추 장관이 민주당 대표 시절에 우파의 소행으로 보고 고발한 8,840여만 건의 댓글 여론조작, 드루킹 사건의 최초 ‘발굴자’로 대통령의 최측근 김경수 경남 지사를 감방에 처넣은 ‘과오’를 만회하려고 정권과 교감하나요?  

권부와 연루된 추한 사건이 즐비합니다. 자녀 입시 비리와 유재수 감찰 무마 건의 조국과 정경심 부부, 울산시장 선거의 황운하 전 울산경찰청장, 송철호 울산 시장, 단수 공천 의혹의 추미애, 유재수 비위 무마 의혹 백원우, 투자자들에게 1조 원이 넘는 손실을 준 라임과 옵티머스 사모펀드 의혹도 있습니다. 추 장관은 아들의 카투사 시절 미복귀(탈영) 의혹과 압력 행사 의혹에 이어 중3 때 에티오피아 의료봉사 개입 여부도 논란 중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현안은 총선 소송이죠. 4·15총선은 139건의 소송이 제기돼 20대 13건의 10배가 넘었고 원고인 후보자만 26명입니다. 기독자유통일당은 아예 총선 무효 소송을 제기했죠. 선거 소송은 결과를 조속히 확정하기 위해 제소 기간이 30일로 짧고 법원은 소가 제기된 날부터 180일 이내에 처리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불법 당선자를 빨리 무효화하자는 법의 정신이죠. 선관위는 사람들이 선거 결과에 이의를 달자, 불평불만 하지 말고 소송을 내라고 했었습니다. 대법원은 뭘 망설입니까? 주호영 통합당 원내대표는 “과거 재검표는 두 달 안에 끝났는데 4·15총선은 아직 한 곳도 안 했다. 조속한 재판과 재검표를 요구하는 민심이 커지고 있고, 시간을 끌수록 선거 결과에 대한 불신만 증폭될 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수도권 사전 선거는 63대 36의 여야 득표율에, 서울은 424개 모든 동에서 여당 사전투표 득표율이 지역 특성을 무시하고 당일 득표율보다 평균 10퍼센트 이상 높다는 통계가 나왔죠. 법률이 정한 바코드 아닌 QR코드를 왜 썼는지도 의혹입니다. 자유민주주의는 공정한 선거가 기반입니다. 60년 전 1960년 3·15 부정선거로 내무부 장관 최인규와 이에 항거한 4·19 혁명의 발포 명령자로 법무부 장관 홍진기가 사형선고를 받고 최인규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집니다. 홍진기는 사면되어 중앙일보를 창간하죠.

윤 총장을 찍어내면 다음은 아마 추 장관과 잘 통하고, 대통령과 경희대 동문인 이성윤이 될 테니까 안심이라고 생각했을까요? 국민이 지켜봅니다. 말과는 달리, 살아있는 권력이 진실의 압박이 무서워서 수사를 차단하는 것이냐고요. 그간 각종 권력형 사건을 수사하던 간부 검사들을 각지로 좌천시켜 수사팀을 공중분해 했죠. 그러니 검찰 간부들이 뭉쳐서 총장을 성원하는 겁니다. 이게 개혁이냐고요. 추 장관이 핏대 올리며 책상을 쳐도 추미애보다 윤석열이 옳다는 여론이 높습니다. 그렇게 검찰에 개입하고 싶으면 법을 고쳐서 미국처럼 법무부 장관이 검찰총장을 겸임하시던가요. 법조인 출신의 여당 조응천 의원은 "추미애 장관 거친 언행은 경험 못 한 낯선 광경이며 말문이 막힌다"라고 비판했습니다.  

추 장관은 ‘해방 후에도 검찰이 일제 경찰을 불러 신고' 운운하며 근거가 아리송한 반일적인 프레임을 검찰에 씌웠죠. 옛날 일본이 아닙니다. 일본 검찰의 활약상을 볼까요. 동경지검 특수부는 1976년 의원 100여 명을 거느린 집권 자민당 최대 파벌의 맹주 다나카 가쿠에이를, 총리 시절 미 록히드 항공에서 5억 엔의 로비자금을 받은 혐의로 전격 체포했습니다. 1988년엔 상장 직전 주식이 정·관·재계에 뇌물로 제공된 리쿠르트 사건을 파헤쳐 다케시타 노보루 총리를 사퇴시켰죠. 그 특수부는 가와이 가쓰유키 전 법무부 장관과 그 부인 가와이 안리 참의원이 작년 총선 때 각각 지방의원 매수자금 2,400만 엔과 선거운동비 170만 엔을 불법 지출한 혐의로 지난 6월 체포했습니다. 아베 총리는 안리 후보의 유세 현장을 방문할 정도로 가와이 부부가 최측근이라는데 ‘마음의 빚’ 같은 건 없었나 봅니다. 살아있는 권력의 수사를 보호하는 것입니다. 가와이 장관은 혐의가 불거지자 바로 사퇴했습니다.

1988년 12월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은 유엔총회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국민에게 권리를 거부한다는 것은 달성된 균형조차 위태롭게 한다. 선택의 자유는 예외를 허용하지 않는 보편적인 원칙이다.” 이것이 소련의 붕괴, 동유럽 민주화를 잇는 개혁(페레스트로이카)과 개방(글라스노스트)입니다. 유재수 수사 때는 인권과 법 적용을 논의하는 검찰수사자문단을 권장하고, 윤 총장 측근 한동훈 당시 부산고검 검사장과 채널 A기자가 연루된 의혹에는 수사 자문을 말라고 수사 지휘 하면서 이성윤 서울지검장에 맡기라고 했습니다. 버티던 윤 총장은 강력하게 압박하는 추 장관의 지휘를 받아들였습니다. '나쁜 선례'라는 검사들의 반발도 일고 있지만 다른, 그 자리에서 더 큰 권력형 범죄 수사를 지휘하기 위한 전략적인 후퇴로 풀이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어디를 가고 있는 걸까요? 길고 캄캄한 터널인 한 번도 경험 못 한 나라로의 후진인가요? 한 일간지 칼럼니스트는 ‘대한민국은 文主공화국’이라는 기사 댓글을 읽었다고 썼습니다. “모든 권력은 문재인에게서 나온다”는 거죠. 시간은 어느덧 3년이 더 흘러 여야 모두 후임을 노리는 사람들이 몸을 풀고 있습니다. 부메랑은 던진 대로 돌아옵니다.

권력이 법의 적용에 개입하지 말라는 건, 법이 정도를 걸을 때만이 한 나라의 역량이 극대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는 문 정권 이전엔 그렇게 잘 굴러왔다고 봅니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역대 대통령들은 최측근이 부패에 구속되기까지 했으나 노골적으로 개입하지 않았습니다. 살아있는 민주국가였죠. 난잡한 연줄과 정실, 코드 인사로 난맥상을 보이는 국정 운영은 선진국의 길이 아닙니다. 요즘 한국, 인도, 호주, 러시아 등의 영입설이 나오는 G7의 원래 국가들은 정도(正道)의 전통을 살린 역사 깊은 나라들입니다. 흉내를 내려거든 겉모습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정신을 배워야 합니다. ‘본질적인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L'essentiel est invisible pour les yeux.)고 했습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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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김영환

한국일보, 서울경제 근무. 동유럽 민주화 혁명기에 파리특파원. 과학부, 뉴미디어부, 인터넷부 부장등 역임. 우리사회의 개량이 글쓰기의 큰 목표. 편역서 '순교자의 꽃들.현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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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종 위기 ‘솔선수범’

2020.07.09

모범을 보여야 할 사람들이 모범은 깊숙이 처박아 놓고 조상과 후손들에게 수치스러운 일만 저지르는 게 끝이 없습니다. 이제 사전에서 ‘솔선수범(率先垂範)’이라는 좋은 말은 사라지고 ‘솔선수치(率先羞恥)’가 그 자리를 꿰찰 것 같습니다.

대통령 비서실장 노영민은 부동산 투기를 잡는 데 모범이 되겠다며 두 채 집 중 국회의원일 때 자기 지역구였던 청주에 있던 집을 내놓겠다고 했습니다. 서울 강남 반포에 있는, 값이 이미 많이 오른 데다 앞으로 얼마나 오를지 아무도 모르는 ‘똑똑한 한 채’를 남겨놓고요. “아들이 살고 있어서 반포 집을 남겼다”라며 대충 변명하고 넘어가려던 그는 따갑고 날카로운 비난이 홍수 때 큰물 나듯 넘쳐 쏟아지자 뒤늦게 이 집을 팔겠다고 나섰습니다만 이걸 솔선수범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지 싶습니다. 오히려 열세 평짜리, 코딱지 만한 반포 집을 움켜쥐려던 그의 판단은 서울에 집을 살 만한 능력이 되는 사람들이 뒤 안 돌아보고 그냥 따라가야 할 길이 됐습니다. 돈보다는 윤리와 명예와 솔선수범을 중요히 생각하는, 한 줌도 안 되는 사람들은 마침내 멸종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법무부 장관 추미애도 솔선수치를 행하는 사람들의 맨 앞줄에 서 있습니다. 열흘간의 병가가 끝났음에도 납득되는 사유 없이 부대로 돌아오지 않은 그의 아들이 아무 처벌도 받지 않은 걸 본 같은 부대의 한 사병은 “우리 엄마도 추미애였으면 좋겠다”라고 했답니다. 이 이상 가는 솔선수치의 예가 달리 있을까요? 그는 이 문제가 시끄러워지자 “아들 문제를 검찰이 조속히 수사해주기 바란다”라고 말했다는데, 이 발언 또한 검찰 수사에 가이드라인이 된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이뿐 아닙니다. 이 사건 보도는 제보자의 제보가 바탕인데 그는 검언유착의 한 사례라고 우기고 있습니다. 검찰이 수사상황을 언론에 흘려주고 있어서 아들의 ‘탈영’ 기사가 계속 나온다는 거지요.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 검찰을 개혁해야 하고, 검찰총장 윤석열은 개혁을 가로막는 세력의 대표이니까 물러나야 한다”는 그의 주장에 코웃음 치는 사람이 많은 것은 부끄러움을 모르는그의 이런 언행 때문일 겁니다.

민주당 의원 윤미향도 솔선수치한 사람의 예에서 빠트려서는 안 될 겁니다. 솔직히 말하면, 제일 앞에 세워놓고 싶습니다. 불쌍한 할머니들을 잘 돌보겠다며 받은(뜯어낸?) 기부금과 후원금, 정부 지원금을 주머닛돈처럼 쓴 게 아니냐는 심각한 의혹의 주인공임에도 의혹 해소에는 지극히 불성실했던 그는 국회의원이 되자마자 또 후원회를 구성해 기부금 걷기를 시작했습니다. 그가 하는 걸 보면 “명예는 순간이고 이문(利文)은 영원하다”는 시정의 우스개가 솔선수치를 행하는 사람들의 좌우명이 아닌가 싶군요.

‘조국백서’를 내겠다며 전 법무부 장관 조국 지지자 9,300여 명에게서 나흘 만에 3억여 원을 모금한 ‘음모론 전문가’ 김어준, 변호사로서 김어준과 어울리다가 국회의원까지 된 김남국 같은 사람들도 앞장서서 부끄러운 짓을 저질러 온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올 1월  “2019년 하반기 이른바 ‘조국 사태’를 거쳐 오며 시민들은 검찰과 언론의 민낯을 봤다. 함께 슬퍼하고 분노했던 시민들과 조국 사태를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백서 제작을 준비했다”는 제작 취지를 설명하면서 돈을 모았습니다. 하지만 돈 받을 때 약속한 책 발송일 4월이 지난 지 오래인데도 책이 언제 나온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습니다. 김어준은 18대 대선이 조작됐다는, 음모론을 주장하는 영화 ‘더 플랜’을 만들 때도 20억 원을 모금했는데 그 용처가 명확하지 않다는 지적도 받고 있습니다.

참, 감감무소식인 ‘조국백서’ 대신 ‘반(反) 조국백서’가 곧 나올 모양입니다. 이 소식을 전한 6일자 동아닷컴(donga.com)에 따르면 이 책 저자는 논객 진중권(전 동양대 교수)과 김경율(회계사, 전 참여연대 집행위원장), 서민(칼럼니스트, 단국대 의대 교수), 권경애(변호사, 법무법인 해미르 소속) 등입니다. ‘진보 진영 인물’로 이름 높았으나 작년 가을 조국 사태 이후에는 대통령과 측근이 하는 말과 행동 모두를 날카롭게 비판해온 사람들이지요. 그 때문에 지금은 그 진영으로부터 엄청난 비판과 욕을 먹고 있기도 하고요.

7월 중 발행이 목표라는 이 책이 ‘반 조국백서’인 것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라는 제목(가제) 때문입니다. 대통령이 2017년 5월 10일 취임사에서 정말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는 뜻으로 “단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습니다”라고 한 걸 저자들은 “조국 사태 이후 좋아진 게 뭐가 있나, 좋아지기는커녕 대통령이 조국을 싸고돌면서 내로남불, 위선, 거짓말, 뻔뻔스러움, 덮어씌우기, 편 가르기 등등 공동체 발전을 저해하는 것들만 더 두드러지지 않았나, 정말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가 되지 않았나”라고 힐난한 겁니다. 진중권 같은 이는 아예 “대통령 선거 공약 서른 개 중 하나만 실천됐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마지막 공약이 그것이다”라고 정신 박힌 사람이라면 아프기 그지없을 야유를 보냈습니다.

‘반 조국백서’를 무척 기대하고 있는 나는 이 책에 ‘솔선수치’와 관련된 부분이 반드시 있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조국 사태의 핵심이자 본질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들이 공직, 그것도 최상층의 공직을 맡거나, 김어준처럼 민간 영역에서도 분에 넘치는 자리를 맡아 자기네 이득을 우선적으로 챙겨왔다고 믿기 때문이지요.

내가 반 조국백서 필자라면 ‘솔선수적(率先垂賊)'이라는 말도 사용했을 거라는 말로 이 글을 끝내겠습니다. 솔선수치를 행하는 사람 중에는 남의 것을 훔치는 것과 다를 게 없는 짓을 하는 사람이 없지 않다는 생각에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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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정숭호

1978년 한국일보 입사, 사회부 경제부 기자와 여러 부서의 부장, 부국장을 지냈다. 코스카저널 논설주간, 뉴시스 논설고문, 신문윤리위원회 전문위원 등 역임. 매주 목요일 이투데이에 '금주의 키워드' 집필 중. 저서: '목사가 미웠다'(2003년), '트루먼, 진실한 대통령 진정한 리더십'(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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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아끼셔야지

2020.07.08

전에 비슷한 소재로 쓴 칼럼(2018. 6. 19) 기억 못 하시겠지요? 이사 후 집이 좁아 책을 정리해 버리던 중 만난 파지 수거 아저씨와 나누었던 이야기였습니다만. 글 제목이 ‘책은 버리셔야지’였죠. 차츰 이삿짐 정리가 돼 책 버리는 일이 뜸한 어느 날이었어요. 연세가 좀 돼 보이는 아저씨가 요즘은 왜 책이 안 나오느냐고, 그래도 근수가 나가는 책이 파지 분야에서는 ‘상등품’이어서 그나마 돈이 되는데 아쉽다고 내게 불평 겸 푸념을 했더랬죠. 이 글은 그러니까 ‘시즌 2’에 해당합니다. 당시 오갔던 이야기를 떠올립니다.

  “여기 이사 온 분이쇼?”
  “아, 예. 고생 많으십니다.”
  “책 버리신 분 맞나요?”
  “아, 예. 그렇습니다만.”
  “근데 요샌 책이 왜 잘 안 나와요?”
  “아, 예. 대강 정리가 끝나서요.”
  “그래도 책은 버리셔야지. 다른 건 몰라도.”
  “예? 아니, 무슨 말씀을?”
  “그나마 책이 돈이 좀 되거든요.”

이렇게 끝나는가 싶었는데 혼잣말이 이어졌습니다.

   “그래야 우리 같은 사람도 먹고살지.”

그 일이 있고 난 후 ‘책의 운명’을 생각하며 자괴감도 들고 씁쓸한 사념이랄까, 잡념에 사로잡혔지요. 조금은 비감한 느낌도 들고요. 내다버린 책이 어떤 사람에게는 일용할 양식이 되는 책의 기구한 운명에 대하여. 지식과 지성, 지혜의 상징인 책이 물질과 돈, 일상의 삶에 저당잡히다니! 그렇게도 낮추어보려 했던 물질에 헌신하는 책의 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인가? 그에 더해 그렇게 또 역설적인 삶을 꾸려가는 이웃의 삶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등이 굽고, 앞니가 빠졌으며, 듬성듬성 수염이 돋은 아저씨의 인상착의에 대해서도 못다 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아저씨는 한쪽 눈이 의안(義眼)이었어요. 아저씨의 모습은 어릴 적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이야기 속 망태할아버지를 생각나게 했습니다. 한쪽 눈알을 요술처럼 뺐다 꼈다 한다는 불구의 형상을 떠올린 것이에요. 상상 속 망태할아버지가 무서운 사람이 아니라 아이들을 무서워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은 한참 세월이 흐르고 나서였습니다. 그런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아이들과 개가 가장 무섭다는 말도 있잖아요.

한동네에 살다보니 파지를 수거하고 쏘다니는 아저씨와 이따금 조우했습니다. 그렁저렁 살가운 정도 조금은 들었지요. 알고 보니 아저씨는 지역 상권을 관장하는 ‘셀럽’이자, 새벽부터 열심히 일을 하는 ‘근면성실남’이었습니다. 한번은 동네 산책 중 그럴싸한 양옥집을 지나는데 낯익은 손수레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저씨의 손수레였지요. 수레 위 벽에는 휘갈겨 쓴 경고문이 붙어 있었습니다. ‘촉수엄금. 주인 있음!’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수레를 대하니 조금은 반갑기도 했답니다. “니가 왜 거기서 나와~?”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비좁은 집에 감당할 수 없을 만치 많은 책은 적지 않은 골칫거리였습니다. ‘책이 사는 집’이 아니라 ‘사람이 사는 집’이어야 하지 않겠냐는 아내의 불평 섞인 핀잔도 핀잔이려니와, 책 모둠을 레고 블록처럼 침대 밑에 매트리스 대용으로 깔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보지 않은 것도 아니었지요. 어쨌거나 시간이 흐르며 어영부영 집안이 정리 되고 더 이상 책을 버릴 일이 없어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다시 그 아저씨와 만났습니다. 다음은 아저씨와 나눈 대화를 간추린 것이에요. 뜻을 알 듯 말 듯 알쏭달쏭한. 그러니까 ‘병 받고 약 받은’ 이야기? 

  “이제 책은 완전히 끝물이구만?”
  “더 이상 버릴 책이 없어서요.”
  “허, 참. 그러게 내가 뭐랬소?”
  “예? 그 무슨? 아, 그러니까….”
  “저런, 그러게 책은 아끼셔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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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김창식

경복고, 한국외국어대학 독어과 졸업.수필가, 문화평론가.
<한국산문> <시에> <시에티카> <문학청춘> 심사위원.
흑구문학상, 조경희 수필문학상, 한국수필작가회 문학상 수상.
수필집 <안경점의 그레트헨> <문영음文映音을 사랑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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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을 집에서 '구독'한다고?

2020.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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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구독이란 말은 신문이나 잡지를 정기적으로 배달받아서 보는 걸 말하는데, 요새는 반찬에다 커피, 과자, 이젠 편의점 얼음 컵까지로 범위가 넓어졌습니다. 소비자들 입장에선 좋아하는 먹거리를 정기적으로 저렴하게 소비할 수 있고, 업체 측도 단골을 확보라는 이점이 있어서 구독 서비스는 빠르게 확산할 거란 전망입니다. 보통 책이나 영상을 정기적으로 보려고 매달 돈을 내는 구독 서비스가 이젠 분야를 넘나들고 있습니다. 더워진 날씨에 얼음이 담긴 컵부터 갓 구운 빵까지 구독하는 이색적인 서비스가 속속 나왔습니다."

어느 방송의 앵커가 한 말입니다. 문장도 이상한 곳이 있지만 그대로 인용했습니다. 다음은 앵커의 소개에 이어진 취재 기자의 보도.

“날이 더워지며 찾는 사람이 부쩍 늘자 편의점에서는 얼음 컵 정기권을 내놨습니다. 구독기간 동안 매일 얼음 한 컵을 싼 값에 가져갈 수 있어 알뜰족들에게 인기입니다. 인기제품부터 갓 출시한 신제품까지 여러 종류의 과자를 배달해주는 구독 서비스도 있습니다. 매달 다르게 구성한 과자 박스 열어보는 재미에 SNS에서는 구독 후기가 잇따라 올라옵니다. 대형 백화점들도 매일 갓 구운 빵을 제공하는 ‘빵 구독’부터, 매주 반찬 고민을 덜어주는 ‘반찬 구독’까지 다양한 구독 서비스를 내놨습니다. 코로나 이후 비대면 바람에 실적이 급감한 오프라인 업체들이 구독 서비스를 통해 충성 고객들을 붙잡아두려는 겁니다.” 

이 보도에도 나왔듯이 원래 구독은 책이나 신문 잡지 따위를 구입해 읽는 것을 말합니다. 방송 기사에 한자가 나오지는 않지만 기사가 말하는 購(구)는 사다, 구하다, 친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며 讀(독)은 읽다, 이해하다, 세다, 계산하다라는 뜻의 글자입니다.

이른바 ‘구독서비스’를 하는 상품은 빵이나 반찬 등 주로 입으로 들어가는 것들이지 눈으로 읽고 이해해 정보나 지식을 늘리는 상품이 아닙니다. 그런데 구독이라고 하는 것은 신문 잡지를 정기적으로 배달하듯 이런 것들도 같은 방식으로 서비스를 한다는 점에서 만든 말이겠지요. 하지만 원래 구독이라는 말 자체에는 정기적으로 배달한다는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어불성설(語不成說)입니다.

그런데도 대학의 경영학과 교수라는 사람이 “구독자가 된다는 건 그 브랜드에 충성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고…“라면서 맞장구를 치고 있습니다. 그 기사는 ”구독 소비자의 소비 패턴을 분석하면 물류비용을 아끼고 향후 수요도 예측할 수 있어 구독 서비스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입니다.“라고 끝납니다.

말의 개념을 제대로 모르니 옳게 보도할 수가 없습니다. 설령 대기업이나 제조업체가 그런 말을 ‘개발’해 보도자료를 돌리며 영업을 한다 하더라도 신문이나 방송은 말의 옳고 그름을 따져 바로잡아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한자를 배우지 않아 개념을 모르는 어린 기자들은 선배나 데스크가 가르쳐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요즘 이런 기능이 거의 작동하지 않고 있습니다.

비슷한 사례가 참 많지만, 이미 수도 없이 기사에 나와 대세로 정착된 것 같은 말 중에서 ‘탑재’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두 가지 기사를 무작위로 뽑았습니다.

1) 새 제품 모두 마스크 본체는 100% 재활용할 수 있는 투명한 실리콘 등으로 돼 있고 자체 김 서림 방지 기능까지 있어 마스크를 벗지 않아도 스마트폰의 얼굴 인증을 쉽게 할 수 있다. (중략) 그중 첫 번째 라인인 헤파 제품은 기본적으로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충분히 차단할 수 있는 N99 등급의 헤파 필터를 탑재했다. 이는 0.33㎛의 미세입자를 99.99997% 차단할 수 있다.

2) 경남 진주시는 오는 6일부터 코로나19로 인해 지난 3월 1일부터 유예했던 시내버스 탑재형 CCTV 불법주차 단속을 실시한다고 5일 밝혔다. 시에 따르면 고질적 안전무시 관행의 하나인 불법 주정차 문제를 개선하고 원활한 시가지 교통소통과 버스승강장 주변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불법주차 단속에 들어간다. 시는 시내버스 3개 노선(130, 251, 350)에 각 노선별 3대씩 총 9대의 시내버스에 탑재형 CCTV를 장착해 지난해 12월 18일부터 시범 운영에 들어갔다.

여기 나오는 탑재(搭載)는 원래 물건을 나르기 위해 배나 비행기 자동차에 싣는다는 말입니다. 搭은 타다, 태우다, 싣다라는 의미이고 載는 싣다, 오르다, 머리에 이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CCTV를 어디로 실어 나르거나 마스크를 운송하는 게 아니라면 위의 두 기사는 용어 사용이 잘못된 겁니다. 두 번째 기사의 맨 나중에 나오는 ‘장착(裝着)’이라는 말을 쓰거나 이런저런 장치를 갖추었다는 의미에서 ‘구비(具備)’라고 해야 할 것을 탑재라고 하고 있으니 정말 어이가 없습니다. 컴퓨터 디지털 기기에 관한 기사에 수도 없이 나옵니다.

구독과 탑재, 이 두 가지 중에서 구독은 이제 막 사용되기 시작해 아주 널리 퍼지지는 않은 말입니다. 그러니 초장부터 바로잡을 수 있습니다. 언론 종사자들이 바로잡아주기 바랍니다. 특히 업계에 새롭고 정확한 개념의 용어를 만들어 내도록 촉구해야 합니다. 불러주는 대로, 자료를 받은 대로 쓰는 건 언론의 정도가 아니며 내 생각에는 그런 기자가 기레기입니다. 잘못된 말을 바로잡고 좋은 우리말을 찾아내 쓰는 것은 언론의 책무이기도 합니다. 이런 일에는 지면 제작이나 방송 편성권을 갖고 있는 부장급 이상의 선배들, 데스크들이 나서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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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任喆淳)

한국일보 편집국장 주필, 이투데이 이사 겸 주필 역임. 현재 한국언론문화포럼 회장. 한국기자상, 삼성언론상, 위암 장지연상 등 수상. 저서 ‘노래도 늙는구나’, ‘효자손으로도 때리지 말라’, ‘손들지 않는 기자들’, ‘내가 지키는 글쓰기 원칙’(공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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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필에는 만년필

2020.07.06

1945년 4월 1일 아이젠하워 원수(元帥)는 1페이지 분량의 편지를 미국 위스콘신 주(州)에 있는 파커사(社)로 보냈습니다. 편지를 받은 사람은 케네스 파커. 회사의 사장이었습니다. 내용은 대충 이런 것입니다. 만년필 선물은 잘 받았고, 유럽에서의 궁극적인 적대행위의 종식(독일의 항복)에 공식적인 서명이 있다면 나는 그 만년필을 사용하겠다는 것. 이 두 사람은 1937년부터 친분이 있었습니다.

약 한 달 뒤 이 약속은 지켜졌습니다. 5월 7일 프랑스 상파냐 지방 랭스 아이젠하워 장군 사령관실에서 독일의 무조건 항복 조인식이 이루어졌습니다. 이 조인식에서 미국, 소련, 프랑스, 독일, 4개국 대표가 서명을 했고, 여러 기록에 의하면 이 때.사용된 만년필은 세 자루였습니다.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서명한 사람은 4명인데 만년필은 세 자루. 이 중요한 순간에 누군가 한 사람이 실수로 만년필을 가져오지 않은 것일까요. 관련 필름을 찾아봤습니다. 독일 대표는 탁자 중앙에 놓인 만년필을 잡아 다른 종이에 써본 후 서명을 합니다. 펜 끝이 살짝 보이고 클립은 화살클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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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대표 알프레드 요델이 파커51로 항복문서에 서명하고 있다. 출처- 위키디피아

미국과 프랑스 대표 역시 같은 모양의 만년필을 잡았습니다. 소련 대표만 다른 만년필입니다. 화살클립에 펜촉이 살짝 보이는 것은 틀림없는 미국 파커사(社)의 파커51입니다. 서명식이 끝나고 아이젠하워는 파커51 두 자루로 V자를 만들어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편지의 내용과 필름에서 본 것을 종합하면, 추측이지만 실상(實狀)은 이런 것 같습니다. 조인식 전(前) 연합군 최고 사령관 아이젠하워는 각국 대표에게 만년필을 준비하지 말라는 연락을 했고, 독일과 프랑스는 이 연락대로 했지만 소련은 따르지 않았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 사소한 에피소드가 앞으로 있을 미국과 소련의 냉전을 예언처럼 예고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다음 달 6월 5일 독일이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 4개국으로 분할 점령하는, 나중에 동서(東西)로 45년간 분단되는 베를린조약 문서에 아이젠하워 원수는 파커51로 서명합니다. 참고로 5월 7일 항복 조인식에서는 아이젠하워 원수는 파커51을 제공만 하고 서명은 하지 않았습니다. 어찌되었든 파커51은 항복과 분단까지 이래저래 독일에 아픔을 준 만년필입니다.  

파커51 어떻게 생겼을까요?

파커51은 공식적으로 1941년에 처음 출시되었고 1978년에 생산이 중단되었습니다. 펜촉의 대부분은 손잡이 속에 들어가 있고 펜 끝만 살짝 나와 있어 뚜껑을 열어놓아도 잘 마르지 않았습니다. 뭐니 뭐니 해도 이 만년필의 최대 장점은 매우 튼튼하다는 것입니다. 초기에 생산된 1940년대 것들 중에도 아직 현역(現役)으로 있는 것이 많고 1948년 이후의 것들은 고장 난 것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입니다. 아이젠하워 원수가 좋아했던 것은 물론 올해 94세인 엘리자베스 영국여왕이 지금도 파커51을 사용하는데 자주색 몸체에 금색 뚜껑의 모델을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밖에 트루먼 대통령, 니미츠 원수, 마크 클라크 장군이 사용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도 가장 인기 있는 만년필일까. 20~30년 전이라면 몰라도 현재 1위는 정반대 편이라고 할 수 있는 독일 회사인 몽블랑사(社)의 마이스터스튁 149입니다.  

몽블랑 149는 1952년에 출시되었으니 파커51보다는 아홉 살 적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생산되고 있어 현존 최장수 모델이면서 만년필 역사상 가장 나이가 많은 만년필입니다. 펜촉을 보면 파커51처럼 감싸 있지 않고 펜촉은 시원하게 오픈되어 있습니다. 이런 펜촉을 오픈 펜촉 이라고도 하는 데 149는 오픈 펜촉의 대표, 파커51은 감싸진 펜촉의 대표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정반대라고 하는 것이 이제는 이해되시죠.  

그런데 참 신기한 것은 149가 51에게서 1위를 빼앗기도 했지만 1990년 독일의 통일 서명에 사용되었다는 점입니다. 미국의 파커 51이 독일을 나누었다면 독일 몽블랑의 149는 독일을 다시 합치게 한 것입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만년필에는 만년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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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박종진

1970년 서울 출생. 만년필연구소 소장. ‘서울 펜쇼’ 운영위원장.
저서: ‘만년필입니다’, ‘만년필 탐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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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왜 전쟁을 하나?

2020.07.03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이 없는 날은 하루도 없었다.”

저널리스트이자 평화·반전운동가인 일본의 히로세 다카시(廣瀨隆 1943~)가 1984년에 쓴 책 <왜 인간은 전쟁을 하는가>에서 던진 말입니다. 왜? 그는  “전쟁이 벌어지는 것은 그것을 지향하는 인간의 의지 때문”이라고 결론지었습니다.
오자병법(吳子兵法)을 낸 중국 전국시대 병법가 오기(吳起 ?~기원전 381)는 전쟁의 원인을 다섯 가지로 압축했습니다. △지도자가 내세우는 명분 △이권 다툼 △악정의 누적 △내란·내분 △기근입니다.

지구촌에는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보이지 않는 적이 덮쳐 반 년 만에 50만 명이 넘는 인명을 앗아갔습니다. 염불하듯 ‘평화’를 외쳐댔는데도 한반도는 북측의 ‘불바다‘ 위협에 오뉴월 서리가 내릴지도 모르는 공포로 뒤덮이기도 했습니다. 전쟁 없이 마음 편할 날이 하루도 없습니다.
피를 흘리지 않는 정치판의 싸움도 전쟁과 다를 바 없습니다. 여·야의 원구성 진통,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의 갈등, 4·15총선 ‘부정’ 시비, 현충원 친일파 파묘 논란…, 전쟁 의지만 없으면 평화가 오는지를 의심하게 하는 투쟁의 파노라마입니다.

-“평화란 전쟁 끝에 잠시 찾아오는 소강(小康)상태다”

400여 년 전 일본의 도쿠가와(德川家康)막부(1600~1863) 초창기,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편의 서군은 도쿠가와 이에야스 편 동군과 벌인 세키가하라 대전(1600년)에서 완패했습니다. 이후 서군의 전쟁 낭인들은 히데요시의 아들 히데요리(秀賴)가 지키고 있던  오사카(大阪)성으로 몰려들었습니다. 소강 평화론은 당시 오사카 서군의 군사(軍師)를 맡았던 사나타 유키무라(眞田幸村)의 논리입니다.

1614년 오사카 전투에서 동군의 병력과 전력에 비해 턱없이 열세인 서군의 지휘를 자청한 사나타의 결단은 전쟁을 지향하는 의지 때문이었을까요? 오히려 피할 수 없는 전쟁이라면 차제에 시국의 쓰레기(전쟁 낭인)들을 모두 모아 전국(戰國)을 청소하겠다는 소임으로 몸을 던졌다는 후세의 평가가 더 그럴듯합니다. 세키가하라 대전과 오사카 전투에서 승리한 도쿠가와는 사실상 막부의 기틀을 다졌고, 300년 전국시대를 종식시켰습니다. (자유칼럼 2012년 12월 13일 <정치 낭인 쏟아지나> 참조)

-“모험심 있는 또라이 지도자가 전쟁을 일으킨다.”

히로세 다카시에 지대한 영향을 준 클라우제비츠(Carl von Clausewitz 1780~1831)는 <손자병법>에 비견되는 전쟁이론서 <전쟁론>에서 다음의 세 가지 조건이 모두 있어야 전쟁이 발생한다고 했습니다. 3대 충분조건은 △적에 대한 증오와 적개심 △승리로 얻는 물질적 이익 △망하거나 죽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모험심 있는 또라이 지도자입니다.
그러나 그는 “욕심과 자만심에서 발생한 전쟁은 위대한 영웅과 장쾌한 서사시를 남기는 게 아니라 눈물과 고통과 피만 남긴다”고 역설했습니다.

12세에 프로이센 군에 입대한 클라우제비츠는 프랑스 혁명군과 벌인 라인전투(1793~94) 참여, 1801년 베를린육군대학 입학, 1812년 나폴레온 진격 직전 러시아 군 참모로 들어가 초토화 후퇴작전으로 나폴레옹 퇴치 기여, 1818년 육군대학 총장 부임 등 평생을 군무에 몸담은 군사 이론가입니다.
12년 동안 역사연구와 전략문제를 고증해 다룬 저서 <전쟁론>은 독일 군사전술 발전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유럽과 미국의 전쟁 연구, 마르크스· 앵겔스· 레닌의 정치이론 도출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클라우제비츠는 콜레라로 숨지기 전까지 수많은 전쟁 명언을 남겼습니다.
-전쟁은 정치의 영역이다.
-전쟁은 우연의 영역에 속한다.
-군사행동의 원인 중 4분의3은 지극히 애매하고 불확실한 구름(일명 ‘전쟁의 안개’)에 잠겨 있다.
-불가능한 것을 얻으려고 지금 얻을 수 있는 것을 놓치는 인간은 바보다.
-자신과 타인을 지배하는 데서 얻는 만족을 다른 모든 것보다 우위에 두는 것은 정신적인 허영심이다.

6·25사변(事變은 선전포고 없이 일으킨 전쟁) 70주년에 되새겨 본 전쟁 잠언은 이 밖에도 허다합니다.
-노인들이 전쟁을 선포하지만, 싸우고 죽어야 하는 것은 젊은이들이다.(허버트 후버)
-전쟁을 좋아하는 민족은 반드시 망하지만, 전쟁을 잊은 나라 또한 망한다.(리델 하트)
-평화적 수단으로만 평화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 국가는 머지않아 다른 나라에 흡수될 것이다.(리처드 닉슨)
-무기는 100년 동안 쓸 일이 없다 해도, 단 하루도 갖추지 않을 수 없다.(정약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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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김홍묵

경북고,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동아일보 기자, 대구방송 이사로 24년간 언론계종사.  ㈜청구상무, 서울시 사회복지협의회 사무총장, ㈜화진 전무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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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보훈의 달, 유월을 돌아보며

2020.07.02

지난달 25일은 6·25 동란 70주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오랜 세월 구천을 떠돌던 국군의 고혼들이 그날 자신들이 목숨 바쳐 지켜낸 조국의 품에 안겼습니다. 북한 지역에서 발굴, 미군으로 추정되어 하와이의 미 국방부 전쟁포로 및 실종자 확인국에 옮겨졌던 유해 가운데 한국군으로 판명된 147구가 70년 만에야 고국 땅으로 되돌아온 것입니다.

국군 유해 발굴 소식이 전해질 때면 “Freedom is not free.”라는 문구가 떠오릅니다. 피가 뜨거웠던 젊은 시절 외고 다니던 모윤숙의 헌시(獻詩)도 생각납니다.

산 옆 외따른 골짜기에
혼자 누워 있는 국군을 본다
아무 말 아무 움직임 없이
하늘을 향해 눈을 감은 국군을 본다.
누런 유니폼 햇빛에 반짝이는 어깨의 표지
그대는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소위였구나
가슴에선 아직도 더운 피가 뿜어 나온다
장미 냄새보다 더 짙은 피의 향기여!
엎드려 그 젊은 죽음을 통곡하며
듣노라! 그대가 주고 간 마지막 말을……

70년 전 6월 25일 일요일 새벽 북한군은 예고 없는 남침으로 ‘우리민족끼리’의 전쟁을 시작했습니다. 3년 1개월 2일(1,129일) 동안의 전상(戰狀)은 너무나 참혹했습니다. 밀고 밀리는 전투에서 남북의 군인과 민간인 사상자와 실종자가 200만 명이 넘었습니다. 유엔군과 중공군을 합치면 인명피해는 350만 명에 이릅니다. (이상은 국가기록원 자료지만 그보다 훨씬 더 큰 숫자로 발표된 자료도 많음). 남북한 인구 3천 만을 헤아리던 땅에서 거의 1천 만이 이산(離散)의 아픔을 겪었습니다. 삶의 터전은 처참히 잿더미로 변했습니다.

얼마 전 양평 사는 작은형님 생신 축하로 형제자매가 모였습니다. 코로나로 근신하다 모처럼 만들어진 자리였습니다. 오가는 이야기 중 잃어버린 고향 흥남(興南)의 추억도 절로 화제에 올랐습니다. 누님은 동란 중 이층 방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폭격에 구멍이 뻥 뚫려 새파랗게 질렸던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가까운 산비탈에 아버지와 큰형님이 임시 방공 굴을 만들던 기억도 생생하답니다. 다섯 남매 중 막내는 바로 그곳에서 태어나 서너 달 후 피란길에 올랐으니 삶의 출발부터가 고난이었던 셈입니다.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이던 작은형님은 아버지 손목 잡고 해수욕 갔던 일, 근처에 주둔한 국군들을 집으로 이끌고 와 음식을 대접하게 했던 일들을 기억했습니다.

우리 가족의 피란은 뜻밖의 사고였습니다. 어느 날 아침상을 차리는 중에 평소 드나들던 국군이 뛰어들어 당장 집을 비우지 않으면 위험하다고 이르더랍니다. 남편이 출타 중이고 가재가 널렸는데 어떻게 떠나느냐? 그래도 며칠 동안은 집을 비워야 산다. 그래서 좀 귀하다고 생각되는 몇 가지 물건, 양식 보따리를 꾸려 떠난 게 고향과의 영원한 이별이었습니다.

어머니가 다섯 남매를 이끌고 도착한 곳은 생전 들어보지도 못했던 섬 거제도였습니다. 학교 교실, 어장 창고로 옮겨 다니며 아이들 잠자리를 걱정하던 때였습니다. 간신히 한 주민의 작은 방을 얻어 며칠 지낼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답례로 싸 들고 내려온 옷감을 골라 예쁜 옷을 지어 주인집 딸에게 입혔습니다. 주인집 아주머니는 들고나며 지나다니는 모든 사람들에게 옷 자랑을 했습니다. 소문 덕에 여기저기서 옷 지어달라는 주문이 밀려들었습니다. 규방 수업으로 닦은 어머니의 바느질 솜씨가 홀로 다섯 아이들을 키우는 생업의 밑천이 된 것입니다.

소문이 소문을 낳아 건넛마을, 산 너머 마을에서도 일감이 들어왔습니다. 딸자식 출가에 대비해 소중히 보관하던 옷감을 통째로 품삯과 함께 등짐장수에게 들려 보내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옷을 짓고 남은 옷감 역시 등짐장수 편으로 되돌려졌습니다. “그곳 사람들의 선한 인심이 없었더라면 내가 너희들을 어떻게 키웠겠니.” 어머니는 돌아가실 때까지도 거제도 주민들의 순박하고 따뜻했던 마음씨에 고마워했습니다.

우리 사회의 눈부신 발전에 가려 6·25 동란은 많은 사람들에게 이젠 아스라이 잊혀 가는 과거사가 되었습니다. 전화(戰禍)의 고통을 모르고 자란 세대에게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민족상잔(民族相殘)의 비극은 끝난 게 아닙니다. 이산과 실향의 슬픔을 간직한 사람들의 가슴속엔 세월이 흐르고 또 흘러도 치유되지 않는 크고 깊은 상처가 남아 있습니다.

양평 모임엔 몸이 불편한 큰형님이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큰형님에 얽힌 얘기가 빠질 수는 없었습니다. 아직 철도 덜 났을 중학생 나이에 폭격을 피해 방공 굴을 파던 얘기, 고달픈 피란살이에서도 어머니를 도우며 막내를 절대 남에게 주어선 안 된다고 고집하던 얘기, 성냥 한 갑을 큰돈에 팔아 기뻐했는데 고구마 몇 개 값밖에 안 되더라는 얘기…

어릴 적 자주 들었던 큰형님의 망향가가 떠오릅니다. 제목도 지은 이도 모르지만 곡조와 가사는 지금껏 또렷이 기억합니다. 그러나 너무도 세차게 가슴을 옥죄어 끝까지 불러본 적은 거의 없습니다. 이 땅에 진정한 평화가 찾아올 날은, 우리 가슴속 슬픔이 영원히 가실 날은 언제일지. 한 맺힌 이 노래를 가슴 활짝 열고 불러볼 수 있는 날은 언제일지.

저 멀리 흥남이라 아득한 내 고향
기다리는 부모와 형제 그립습니다
야속하다 삼팔선아 내 어이 이별이냐
옛 추억이 그리웁구나 어머님 품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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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방석순

스포츠서울 편집국 부국장, 경영기획실장, 2002월드컵조직위원회 홍보실장 역임. 올림픽, 월드컵축구 등 국제경기 현장 취재. 스포츠와 미디어, 체육청소년 문제가 주관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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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꽃·노을에 물든 나그네

2020.07.01


“무슨 나무 심을래 /십리 절반 오리나무/열의 갑절 스무나무/대낮에도 밤나무/방귀 뽕뽕 뽕나무/깔고 앉아 구기자나무/거짓 없어 참나무/그렇다고 치자나무/칼로 베어 피나무/입 맞춘다 쪽나무/너하구 나하구 살구나무/갓난 애기 자작나무/앵돌아져 앵두나무/동지섣달 사시나무/바람 솔솔 솔나무(하략)”

전라도 지방에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나무타령’입니다. 재미있는 노랫말에서 옛사람들의 나무에 대한 애정이 느껴집니다. 앵두나무를 묘사한 ‘앵돌아지다’라는 표현이 특히 반갑습니다. ‘토라지다’와 같은 뜻의 순우리말입니다. 토라져 ‘앵’ 소리를 내며 고개를 홱 돌리는 모습이 떠오르지 않나요?

언젠가 “‘앵돌아지다’는 앵두 닮은 입술을 삐죽거리는 귀여운 여자 아이의 모습을 보고 만든 말 같다”고 했다가 꾸중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소녀만 그런다고 생각하면 오산이유. 나이 많은 남자 어른들도 언짢으면 ‘앵두’ 같은 입술을 삐죽거리면서 고개를 홱 돌릴 수 있슈!” 순간 편향적 시각으로 단어를 판단한 것이 몹시 부끄러웠습니다.

“매실이 어떤 나무의 열매인지 알아? 오디는?” 전북 전주에 사는 세 살 터울의 동생이 물어봅니다. ‘나무타령’도 동생이 알려준 노래입니다. 서울에서 살다가 전주로 이사 간 지 10여 년. 동생은 자연과 함께하는 시골살이의 즐거움에 빠져 사계절 내내 열매로 효소를 담그고, 청을 만들고, 술을 빚습니다.

요즘엔 ‘뽕’에 취해 산다고 하네요. 놀라셨나요? 마약이 아니라 뽕나무와 그 열매를 먹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잎은 살짝 데쳐서 무쳐 먹고, 가지와 뿌리는 차로 끓여 마시고, 달콤한 열매는 냉동시켜 간식으로 먹는답니다. 뽕나무 열매가 오디, 매화나무 열매는 매실입니다.

동생네 집엔 지금쯤 오디는 물론 앵두, 살구, 매실, 복숭아, 보리수가 달큰한 향을 내며 술로 잘 익어 갈 것입니다. ‘술 익는’ 구절에서 혹시 이 시를 떠올렸나요? “강나루 건너서/ 밀밭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 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 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1940년대 초 스물일곱 살 청년 목월이 쓴 ‘나그네’입니다.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 노을이여-지훈에게’라는 부제가 눈에 띕니다. 다섯 살 아래 절친인 지훈에게 편지와 함께 시를 받은 후 크게 감동해 쓴 화답시입니다. 그런 까닭에 조지훈의 ‘완화삼’과 박목월의 ‘나그네’는 감정이 오묘하게 통합니다.

“차운산 바위 우에 하늘은 멀어/ 산새가 구슬피 울음 운다.// 구름 흘러가는/ 물길은 칠백 리// 나그네 긴 소매 꽃잎에 젖어/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 노을이여.// 이 밤 자면 저 마을에/ 꽃은 지리라.// 다정하고 한 많음도 병인 양하여/ 달빛 아래 고요히 흔들리며 가노니….”

운율이 살아 움직이는 주옥같은 시들입니다. ‘완화삼’의 뜻이 궁금해 국어사전을 살폈는데, 없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한자식 조어로 봐야겠습니다. 玩花衫, ‘꽃을 완상하는 선비의 적삼’이라고 글자 그대로 풀이하니 뭔가 좀 아쉽습니다. 이럴 땐 ‘표현의 달인들’이 부럽습니다. 김사인 시인은 ‘완화삼’을 ‘술과 꽃과 노을에 붉어진 나그네의 저고리’라고 풀이했습니다. 시인다운, 참으로 멋진 해석입니다.

경주의 여관방에서 밤새도록 문학과 삶을 이야기했을 청년 목월과 지훈을 떠올리니, 집에서 담근 잘 익은 술이 마시고 싶습니다. 요즘처럼 더운 날씨엔 보리로 만든 맥주도 시원하지만 찬 성질의 곡물인 밀로 빚은 막걸리가 아주 맛있습니다. 특히 배꽃이 필 때 담근 이화주(梨花酒)에 얼음물을 타서 마시면 뼛속까지 시원하지요. 희고 고운 자태 속 부드럽고 달보드레한 맛에 푹 빠질지도 모릅니다. 비 내리는 날, 맘 통하는 이들과 시를 안주 삼아 주거니 받거니 하며 술 한잔 하면 좋겠습니다. 집집마다 술을 빚어 마시던 풍습이 다시 살아난다면 더더욱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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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노경아

경향신문 교열기자·사보편집장, 서울연구원(옛 시정개발연구원) 출판담당 연구원을 거쳐 현재 이투데이 부장대우 교열팀장. 우리 어문 칼럼인‘라온 우리말 터’연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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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 전단지 대책 무모하다

2020.06.30

남북한 사이의 전단지(삐라)전쟁은 해방정국에서부터 시작되어, 한국전쟁 때 절정을 이뤘다가, 역대 정권에서 남북관계가 진전되면 중단되고 악화하면 되살아나는 단속적(斷續的)인 양상으로 전개되어 왔다.

박정희 정부 때의 7·4공동선언을 비롯해 노태우 정부의 남북기본합의서, 김대중 정부의 6·15공동선언, 노무현정부의 10·4 평양선언, 그리고 가장 최근인 2018년 4월 문재인 정부의 판문점선언 등은 남북이 삐라와 확성기 등을 이용한 상호 비방행위의 중단을 약속한 문서들이다.

이들 문서를 휴지로 만든 것은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핵실험과 미사일 도발, 비무장지대 목발지뢰 설치와 같은 북한의 무력도발이었다. 북한의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로 현존하는 문재인 정부의 판문점 선언이 또다시 휴지로 되어가는 여건이 조성되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올 초부터 여동생 김여정을 앞세워 문재인 대통령을 직접 겨냥해 온갖 비방을 자행하던 끝에 개성에 한국이 건립한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기에 이르렀다. 김정은은 여동생이 한 일을 몰랐다는 듯이 6월 23일 군사대결을 보류한다고 말했으나 그의 말은 신뢰를 잃은 지 오래다.

정부당국이 심리전의 하나로 북한에 전단지를 보내는 일은 21세기 들어 중단됐다. 탈북민이 주축이 된 민간단체들이 풍선에 실어 보내는 전단지뿐이다. 남한당국이 그것을 단속하지 않는다는 것이 북한의 불만이다.

북한 당국은 남한에서 보낸 전단지에는 독약이 묻어 있어 집었다가는 손이 썩는다고 선전할 정도로 차단하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전단지를 집어드는 것 자체가 정치범 수용소에 끌려갈 정도의 중죄로 처벌되는 사회가 북한이다. 그만큼 취약한 사회라는 뜻도 된다.

북한의 대남 삐라전쟁이 위협적인 때가 있었다. 1960년대에서 1990년대까지의 군부정권시대에 특히 그랬다. 권력이 부정부패로 얼룩지고, 언론이 통제되던 시절이었다. 정부가 국민의 신뢰를 잃어 유언비어가 기승을 부리는 틈새를 북한의 삐라가 파고들었다.

그때 그런 삐라를 주우면 당국에 신고해야 했고, 신고하지 않고 갖고 있었다간 지금의 북한처럼 불온문서 소지행위로 처벌받았다. 지금 남한 대통령을 비방하는 북한의 삐라가 서울에서 발견된다 해도 웃음거리가 되고 말 것이다.

북측이 남한도 당해봐야 한다면서 문재인 대통령의 얼굴에다 담배꽁초를 버려 쓰레기처럼 보이는 사진으로 만든 전단지를 보내겠다고 실물을 공개하며 협박하다가 실행하지는 않았다. 보내봤자 역효과만 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탈북민 단체가 제작하는 전단지의 주요 메뉴는 자신들의 탈북체험기, 북한의 3대 세습체제에 대한 비판, 북한의 인권탄압, 남한의 자유와 풍요 등 외에, 김정은 위원장의 방탕한 사생활 부분이 포함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북한 체제가 싫어서 탈북한 사람들이므로 북한에 관한 나름의 정보가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북한 권력자에 대한 반감이 큰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전단지에 과도하게 감정이 개재될 가능성도 있다.

정부 당국이 신경을 써야 할 일은 바로 그런 점에 국한돼야 한다. 북한 당국이 싫어한다는 이유로 엄연히 우리 국민인 탈북자들의 사실에 입각한 주의주장까지를 범죄로 몰아 처벌한다는 것은 헌법이 보장한 표현의 자유를 부정하는 처사다.

정부 여당은 이들의 전단지 살포가 남북교류협력을 저해하는 행위로 규정하고 남북교류협력법 위반으로 처벌하겠다고 하는가 하면 아예 전단지살포금지법을 새로 만들 태세다. 북한이 대북전단지 살포를 저지한다는 구실로 남한의 특정지역에 포격을 가한다면 우리 군도 대응 사격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고, 그것이 무력충돌로 번질 위험은 있다.

북한이 민간의 비군사적인 행위에 대해 군사적으로 대응한다면 우리도 상응한 군사적 대응으로 맞서면 된다. 위헌적인 법을 만들거나, 해당도 없는 남북교류협력법을 임의로 적용하는 행위는 북한의 협박에 굴복하는 것이다. 그런 자세로는 북한의 비핵화는 물론 남북의 교류협력도 이뤄낼 수가 없다.

한국이 삐라에 면역력을 갖추게 된 것은 체제가 개방됐기 때문이다. 루머는 언제나 나돌지만 루머의 사실여부는 순식간에 확인되는 사회가 됐다. 북한이 한국처럼 삐라에 면역력을 갖출 때 진정한 남북의 교류협력도 가능해진다.

북으로 보낸 풍선이 남한에 떨어져서 전단지 뭉치에 사람이 맞아 죽을 수도 있다고 경기도지사는 말했다. 날아가는 기러기의 배설물이 얼굴에 맞을 확률과 같은 황당한 주장이다. 그러니 코로나19 방역에 쓰라는 긴급재난문자에 전단지살포금지 내용이 들어가는 난센스가 벌어진다.

정부 여당의 대북 전단지 대책이 무모하기는 북한이나 마찬가지다. 북한에 대해 할 말을 할 줄 아는 정부 여당이라야 북한을 변화하게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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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임종건

한국일보와 자매지 서울경제신문 편집국의 여러 부에서 기자와 부장을 거친 뒤 서울경제신문 논설위원 및 사장을 끝으로 퇴임했으며 현재는 일요신문 일요칼럼, 논객닷컴 등의 고정필진으로 활동 중입니다. 한남대 교수,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위원 및 감사를 역임했습니다. 필명인 드라이펜(DRY PEN)처럼 사실에 바탕한 글을 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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