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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관 예우가 법조보다 더 심각한 데가 있다는데

2020.11.23

전관예우라는 말을 들어보셨죠? 글자 그대로 풀어보면 ‘전관’이었던 사람을 ‘예의를 지키어 정중하게 대우하는 것'입니다. 말 자체로는 나쁜 뜻은 아닌데, 우리가 받아들이기는 딴판입니다. 사전을 찾아보니 '장관급 이상의 관직을 지냈던 사람에게 퇴직 후에도 재임 때와 같은 예우를 베푸는 일'이라 합니다. 처음에는 장관급을 전관이라 했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영향력이 있었던 자리로 범위가 넓어진 것 같습니다.

전관예우는 법조비리의 온상으로 지목되어왔습니다. 이를 방지할 목적으로 판·검사로 재직하던 전관 변호사는 개업 후 2년간 퇴임 전 소속되었던 법원이나 검찰청 사건을 수임할 수 없게 하려고 변호사법을 개정했었죠. 변호사법 규정으로 대법원 법무부 대한변호사협회가 추천하는 위원 9명으로 구성한 법조윤리협의회가 설치됐습니다. 법조윤리협의회는 공직에서 퇴임한 변호사는 퇴직일부터 2년 동안 수임한 사건 관련 자료를 제출하게 하고 사유가 있을 때 징계나 수사를 의뢰하는 것이 주요 임무입니다. 겉 따로 속 따로 자료를 제출했을 때에도 이를 찾아내 전관 비리를 제대로 바로잡을 장치가 될지 의문스럽습니다.

전관예우는 전관 때 가졌던 지위를 이용해서 사건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니 비리(非理)입니다. 따라서 되도록 '전관 비리'라 부르겠습니다. 어떤 사건이든 객관적 판단기준으로 보면 ‘⓵이길 사건 ⓶질 사건 ⓷이길지 질지 경계선에 있는 사건’으로 구분됩니다. ⓷은 법리 주장과 입증할 자료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올 수가 있습니다. 정말 실력 있는 대리인이 필요한 사건입니다. ⓶와 같이 질 게 뻔한 사건을 이기려고 나설 때 문제가 생깁니다. 합법적인 오판을 내려고 전관을 찾아 나섭니다. 사법계에 있는 사람은 전관 비리는 없다고 잘라 말하지만 일반인은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당장 인터넷에서 찾아봐도 전관을 찾아 나서는 사람이 많고, 실제 전관예우가 작용한다고 믿는 사람이 많을 것 같습니다.

져야 할 사건은 재판 결과에서 져야 합니다. 돈이 없어 사건에서 졌다는 일이 나타나면 정말 곤란합니다. 이렇게 되면 사법제도를 믿지 못하게 되고, 이는 우리 사회에 아주 큰 부담으로 나타납니다. 전관 비리를 막아서 사건이 왜곡되지 않게 해야 한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기본 규칙입니다. 돈이 없어, 줄이 없어서 이겨야 할 사건에서 진다면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2020년 11월 18일 대한변호사협회(변협)는 ‘법조 유사직역 자격자의 전관예우 근절방안’이란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고 이찬희 협회장은 “세무사, 변리사, 행정사 등 법조 유사 직역 자격사에게도 전관예우 문제가 있으며, 실상은 법조계 전관예우 문제보다 오히려 더 심각하다”고 주장했다고 합니다.

인접 직역에서 전관예우가 법조계보다 더 심각하다니, 이 말이 사실이면 정말 심각한 일입니다. 이날 토론회에서 발제는 정현근 경희대 법전원 교수가 맡고, 토론은 곽정민(변협 법제연구원 운영위원) 김민규(변협 세무변호사회 이사) 최재원(변협 대한특허변호사회 부회장) 임지석(변협 등기경매변호사회 총무이사) 변호사 4명이 참여한 것으로 보도에 나옵니다. 대한변협 조직표를 보면 대한특허변호사회는 특별위원회 형식으로 설치돼 있고, 세무변호사회나 등기경매변호사회는 보이지 않습니다만 변협 소속 모임인 것 같습니다. 법조계 아닌 다른 분야에서 전관예우가 문제가 되고 우려스럽다면 해당 분야를 잘 아는 사람을 토론자로 모셔서 개선 방안을 찾아야 할 일일 텐데, 토론자로 참여한 사람 모두 변호사였습니다.

변협도 법조분야가 아닌 분야의 전관예우 문제를 다룰 수는 있겠습니다. 그렇지만 법조계보다 더 심각하다는 사실을 토론회 결과로 주장하려면 적어도 해당 분야의 실상은 제대로 알 것으로 보이는 사람이 참여하였어야 합니다. 어느 분이 단 댓글처럼 “참 웃기는 사람들이네요. 변호사들끼리 모였으면 자기들 부조리를 자성해야지 웬 오지랖이랍니까? 너나 잘하세요." 이런 비아냥을 받습니다.

우리 사회는 정의로워져야 합니다. 이를 위하여 '변호사는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함을 사명으로 한다. 변호사는 그 사명에 따라 성실히 직무를 수행하고 사회질서 유지와 법률제도 개선에 노력하여야 한다.'는 변호사 사명에 충실해야 합니다. 변호사 이외에는 법조 유사직역이라고 말하는 것도 다른 분야 전문가를 애써 무시하려는 태도로 예의가 아닙니다. 훨씬 심각한 법조계 전관예우에는 눈을 돌리고 더 심각할 수가 없는 인접 분야를 더 심각하다고 주장하면 곤란합니다. 전관 비리를 없앱시다. 중요하고 심각한 사법 분야에서 전관 비리를 없앨 방법을 깊이 고민하여 바로잡읍시다. 변호사법 제1조(변호사의 사명)을 곰곰히 읽길 권합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자유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고영회

경남 진주에서 태어나 진주고(1977), 서울대 건축학과(1981)와 박사과정을 수료(2003)했으며, 변리사와 기술사 자격(건축시공, 건축기계설비)가 있습니다.
대한변리사회 회장, 대한기술사회 회장, 과실연 공동대표, 서울중앙지법 민사조정위원을 지냈고, 지금은 서울중앙지검 형사조정위원과 검찰시민위원, 대한상사중재원 중재인, 법원 감정인입니다. 현재 성창특허법률사무소 대표와 ㈜성건엔지니어링 사외이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mymail@patinf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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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과 행동의 차이

2020.11.19

기업에서 전략을 세울 때 거치는 단계가 있습니다. 강약점 분석도 그중 하나입니다. 우리 회사의 강점과 약점을 파악합니다. 경쟁 상대방의 강약점도 분석합니다. 손자가 말했다는 지피지기백전불태(知彼知己百戰不殆)와도 통하는 이야기입니다. 이 분석 내용을 토대로 실행안을 고안합니다. 우리 회사의 강점을 강화, 활용하여 경쟁 상대의 약점을 공격한다는 게 전략의 기본입니다. 실제로는 경쟁 상대를 공격하기보다는 시장이나 고객의 요구에 잘 응하는 데에 더 무게를 두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여러 회사 직원들에게 전할 때 항상 말했습니다. “강점을 강화, 활용하려 해야지, 약점을 보완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약점을 보완하느라고 자원(자금, 사람, 시간)을 많이 투입해도 성과를 얻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2000년대 이후로는 이런 생각을 개인행동에도 적용했습니다. 생각만큼 잘해 오지는 못했습니다. 개인에게는 시간이 가장 중요한 자원인데 이걸 낭비하는 일이 많았으니까요. 이런 사실을 의식한 때는 마음속으로 ‘사람이 어떻게 이성에만 따라서 사나, 감성과 본능에도 따르는 게 인생이지’ 하는 식의 강력한 자기 합리화 논리를 폈습니다.

지난달 『작은 시도』(10월 20일)라는 글에서 평생 잘못하던 글씨 쓰기를 개선하기 위해 천천히 노력하겠다고 했습니다. 그 글을 쓰면서, 그리고 이후에도, 자신의 논리에 반(反)하는 일이 아닌가 하는 작은 갈등이 있었습니다. ‘잘하는 일(강점)을 더 잘해야지, 못하는 일(약점)을 개선하려면 시간만 낭비하고 성과는 얻지 못할 것인데’라는 걱정인 거죠. 무엇보다도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바를 거스른다고 생각하니 속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여러 회사의 직원들 앞에서는 강점 강화에 주력해야 한다며 이런 말도 덧붙였습니다. “강점이 과거보다 더 높은 수준에 도달하면 주변의 다른 능력도 (강점만큼은 아니어도) 동반 성장합니다. 사업에 필요한 관련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의 설득력을 높이느라고 산의 모양을 이용하였습니다. 꼭대기를 강한 능력, 주변부는 높이에 따라 차이가 있는 다른 능력이라 합니다. 높은 산은 주변부도 다른 산에 비해 높다는 데서 강점을 더 높이면 다른 능력도 높아진다고 설명하는 것이죠. 거기에 더해 높은 산은 산자락의 면적도 낮은 산보다 넓다는 데서 강점을 더 높이면 과거에 없던 능력도 개발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결론이 나옵니다. 자신에게 있는 얼마간의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 행동해 왔는데 글씨는 남에게 보여주기 싫을 정도로 못쓴다면 아예 재능이 없는 것이 아닌가?

그러다가 언젠가 말했던 다음의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그런데 지금 하고 있는 사업에서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면 어떻게 할까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을 겁니다. 한 가지는 약점을 지닌 채로 사업을 하는 거죠. 그래서 업계에서 2류, 3류의 회사로 존재하지요. 다른 선택지는 그 약점 부분에서 단기간에 혁신을 이루기 위해 시도하는 겁니다. 내부 자원을 집중 투입해서 할 수도 있고 외부에서 사람을 구하거나 기술을 사 오는 방법으로 할 수도 있습니다.”

개인의 경우 외부에서 능력을 조달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이 대목에서 ‘글씨 쓰기가 내 삶에 치명적인 약점인가?’ 하는 질문이 떠오릅니다. 좋은 글씨를 갖지 못하는 일이 치명적이지는 않다 해도 꽤 큰 약점이기는 합니다. 회사 다니던 시절에는 PC가 출현해서 약점을 많이 가릴 수 있었습니다. 그 이후에도 상황은 비슷했습니다. 지금은 그다지 중요한 부분은 아닙니다. 그런데도 글씨 쓰기에 신경이 쓰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수십 년 묵혀두었던 문제를 얼마간이라도 덜어버리고 싶은 내면의 요청이 있다고 결론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남은 숙제는 ‘연습을 하면 글씨 쓰기 능력은 개발 가능한가?’입니다. 삶에 치명적인 부분은 아니라 해도 쓰기라는 재능으로 말하면 치명적이라고 여겨 왔는데 말이죠. 이제는 ‘재능은 개발이 가능하다’와 ‘치명적인 약점 개선은 어렵다’는 모순되어 보이는 내면의 주장이 공존하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다니엘 카너먼(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미국의 심리학자)이 『생각에 관한 생각』에서 말한 것처럼 합리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 자연스러운 사람의 모습이라면 위안이 됩니다. 그러면서도 모순이 아니라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는 기대를 가져 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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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홍승철

고려대 경영학과 졸. 엘지화학에서 경영기획 및 혁신, 적자사업 회생활동 등을 함. 1인기업 다온컨설팅을 창립, 회사원들 대상 강의와 중소기업 컨설팅을 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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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류 시대의 단상

2020.11.18

현생인류를 지칭하는 생물학적 학명(學名)인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는 ‘사람’을 의미하는 속명(屬名) 호모(Homo)와 ‘지혜로움’을 일컫는 종명(種名) 사피엔스(sapiens)의 합성어로 '지혜가 있는 사람'이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4차 산업혁명으로 빠르게 변하고 있는 세상사와 함께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류사회 문화가 크게 바뀌며, 호모 사피엔스에서 ‘호모’나 ‘사피엔스’를 변화에 적응하는 말로 바꾸어 신인류 시대를 지칭하는 신조어들이 많이 대두되고 있습니다. 급변하고 있는 현대 사회에 적응하는 신인류를 지칭하는 신조어들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일까요.

종명 사피엔스를 바꾸어 신인류를 지칭하는 신조어들은 100세 시대를 사는 현대인을 지칭하는 호모 헌드레드(Homo hundreds), 일과시간 내내 의자에 앉아서 지내는 호모 체어쿠스(Homo chaircus), 휴대전화 모바일폰(mobile phone)의 사용에서 유래한 호모 모빌리쿠스(Homo mobilicus), 드라마 즐김에 빠져 들고있는 호모 드라마쿠스(Homo dramacus), 미세먼지를 두려워하며 생활하는 호모 더스트쿠스(Homo dustcus) 등에서 보는 것처럼 매우 다양합니다.

속명 호모를 바꾸어 신인류를 지칭하는 신조어로는 ‘포노 사피엔스(Phono sapiens)’와 ‘코로나 사피엔스(Corona sapiens)'가 대표적입니다. 스마트폰이 낳은 신인류 ‘포노 사피엔스’(최재붕 저, 2019)가 발간되었고, 코로나19 사태 이후 바뀔 사회에 적응하는 신인류를 지칭하는 ‘코로나 사피엔스'(최재천 등 6인 공저, 2020)도 발간되었습니다. 본 글에서는 앞으로 지구상에 생존하게 될 신인류에 대한 이야기를 포노 사피엔스와 코로나 사피엔스를 중심으로 살펴봅니다.

‘포노 사피엔스’ 책 표지에는 "‘뜨는 것들’ 뒤에는 ‘포노’들이 있다!"는 메시지와 함께 ★새로운 부의 창출 ★새로운 행동의 표준 ★새로운 마켓의 중심이라는 내용이 곁들여져 있습니다.

포노 사피엔스는 2015년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서 처음으로 사용한 말입니다. 포노 사피엔스에서 ‘포노(Phono)’는 언제 어디서든 디지털 접속이 가능해지고 있는 스마트폰(smart phone)에서 유래한 말로, ‘지혜가 있는 사람’이라는 의미의 담고 있는 호모 사피엔스에서 '호모'를 '포노'로 바꾸어 스마트폰에 의존하는 신인류를 ‘지혜롭게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사람’으로 지칭한 것입니다.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해온 포노 사피엔스가 일상에서 카톡은 물론 인터넷, 유튜브 영상, 카드 결제 등을 스마트폰에 의존하며, 오프라인보다 온라인이나 디지털 플랫폼에서 지내는 시간이 크게 늘고 있습니다. 사람의 유전자(DNA)는 생존율이 높은 쪽을 선택하는 적자생존(適者生存)의 법칙을  따르는데, 코로나19 사태의 지속으로 스마트폰 중심의 언택트(untact) 생활 분야도 빠르게 확장되고 있습니다. 지금이 바로 언제 어디서든 디지털 접속이 가능해지고 있는 스마트폰 시대에 생존하게 될 신인류 포노 사피엔스가 ‘디지털 문명시대’의 주인공 역할을 정립할 때입니다.

‘코로나 사피엔스’ 책의 표지에는 “코로나19 이후 인류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누구도 겪어보지 못한 신세계에서 살아갈 우리를, 감히 코로나 사피엔스라 부른다.”는 글과 함께 ‘포스트 코로나-무엇이 남고, 무엇이 변하고, 무엇이 사라지는가. 전 지구의 삶을 관통하는 놀랍도록 대단한 통찰이 펼쳐진다!’라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많은 석학들이 코로나19 사태로 평소 당연하던 일들이 당연하지 않은 것으로 바뀌며, 인류의 삶이 코로나19 이전의 삶과 완전히 달라질 것으로 예견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확산이 지속되고 있는 코로나19의 대유행이 마무리되고 나면 세상이 이전과 완전히 달라질 것이라는 주장과 함께 신인류 코로나 사피엔스의 세계사가 ‘BC’와 ‘AD’가 아니라 ‘BC’와 ‘AC’로 나뉠 것이라는 예측도 대두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이전’인 기원전을 의미하는 BC(Before Christ)와 ‘주님의 해(年)’란 의미로 예수 탄생 이후인 기원후를 일컫는 AD(anno Domini)가 ‘코로나 이전’을 의미하는 BC(Before Corona)와 ‘코로나 이후’를 지칭하는 AC(After Corona)로 전환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코로나19 발생 전과 후가 인류사회 문화의 변곡점이 되어 정치, 경제, 사회 등 각 분야에서 전례 없는 변화가 발생해 ‘문명의 대전환점’이 될 수 있음을 예고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포노 사피엔스와 코로나 사피엔스는 코로나19 이후 일하는 방식, 일상생활 양식, 가치관, 철학 등이 크게 바뀌면서 새로 열리고 있는 세상을 지혜롭게 살아가야 할 신인류입니다. 코로나19의 팬데믹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는 언택트 문화로 ‘디지털 경제’의 ‘디지털 문화’ 의존도가 더욱 심화될 것이기 때문에 포노 사피엔스가 제대로 적응해 생존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삶의 목표 설정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코로나19로 일상에서의 건강과 보건도 개인 차원을 벗어나 범사회적 과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지금이 바로 신인류 코로나 사피엔스가 코로나19에 대한 사회적 방역시스템 구축에 대한 범인류 차원의 대응 방안을 마련해 강력하게 추진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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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재욱

양정고. 서울대 생물교육과 졸. 한국생물과학협회, 한국유전학회, 한국약용작물학회 회장 역임. 현재 충남대학교 명예교수, 한국과총 대전지역연합회 부회장. 대표 저서 : 수필집 ‘나와 그 사람 이야기’, ‘생명너머 삶의 이야기’, ‘생명의 이해’ 등. bangjw@c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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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밥을 따던 소녀

2020.11.16

충북 영동읍에는 가로수가 감나무입니다. 읍내 거리에만 감나무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가로수로 심은 감나무가 5만여 그루니까 어지간한 도로에는 감나무가 서 있습니다.

감이 익어 가는 시기에 영동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읍내는 물론이고, 거리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감나무들이 신기해서 사진을 찍거나, 차에서 내려 구경을 하기도 합니다. 가끔은 길가에 서 있는 감나무의 감은 군청에서 따 가느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감나무 관리는 군청이 합니다. 감꽃이 피어날 무렵하고, 감나무 잎사귀가 무성하게 자라났을 때쯤 약을 한 번씩 쳐 주거나, 감나무 가지가 너무 무성해서 건물을 가리게 되면 가지를 쳐 줍니다.

감 수확은 감나무 뒤에 있는 가게주인이나 집 주인, 혹은 밭이나 논 주인이 합니다. 그도 저도 아니고 주인이 없는 산을 낀 도로에 서 있는 감나무의 감은 군청에서 따갑니다.

감을 수확할 때는 까치 같은 새들의 몫으로 까치밥을 남겨 둡니다. 시내에 있는 감나무나 감 농장에 있는 감나무는 까치밥을 남겨두지 않습니다. 까치가 영리해서 먹이가 있다는 걸 알면 다시 찾아오는 까닭입니다.

요즈음은 산에 있는 밭둑이나 빈터에 감나무를 심지 않습니다. 예전에는 산에도 감나무가 많았습니다. 늦가을 서리가 내릴 즈음에는 산에서 놀다가 까치밥이 있는 감나무가 보이면 갑자기 군침이 돕니다.

까치밥은 감나무 꼭대기거나 가지 끝에 매달려 있습니다. 장대로 쉽게 감을 딸 수 없는 부분이라 팔 길이가 짧은 아이들은 감 따기가 더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빨갛게 익은 홍시를 그냥 지나칠 수는 없습니다. 나무타기를 잘하는 아이가 올라가서 가지를 흔들거나, 발로 가지를 구릅니다.

손으로 따지 않은 홍시가 얌전하게 떨어질 확률은 절반도 되지 않습니다. 풀밭이나 덤불 같은 곳에 떨어지는 홍시는 멀쩡하지만, 맨땅에 떨어지는 홍시는 프라이팬에 깨 넣은 달걀 신세가 됩니다. 떨어지는 감을 받겠다고 홍시를 쳐다보고 있다가, 손바닥이 아닌 얼굴에 떨어져서 홍시범벅이 되기도 합니다.

인숙이라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인숙이는 또래의 여자들과 고무줄놀이를 하거나, 땅따먹기 같은 것을 하지 않고 남자들과 어울렸습니다. 성격도 괄괄해서 웬만한 남자들은 느닷없이 뒤통수를 때리거나, 다리를 걸어서 땅바닥에 패대기를 치기도 합니다.

그 시절에는 특별하게 가지고 놀 것이 없어서 나무에 올라가 노는 아이들이 많았습니다. 나무를 탈 때는 늘 제일 높은 곳까지 점령을 하기 일쑤입니다.

냇가로 가는 길목에 수령이 이백 년이 넘는 느티나무가 세 그루 서 있었습니다. 느티나무는 아이들 서너 명이 손을 잡아야 둘레를 잴 수 있을 정도로 컸습니다. 나무 밑에는 봇도랑이 흐르고 있는 데다 가지가 무성해서 여름에 올라가 있으면 시원합니다.

인숙이는 가끔 느티나무에 혼자 올라가서 동네 쪽을 무심히 바라보고 있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의 인숙이 모습은 선머슴이 아니고 얌전한 소녀처럼 보입니다. 훗날에야 인숙이가 가끔 외로움을 타는 이유를 알았지만, 그 시절에는 좀 생뚱맞게 보였을 뿐입니다.

감나무에 매달려 있는 까치밥을 따 먹기 위해 일부러 산에 올라가는 경우는 드뭅니다. 골목이나 장터에서 노는 것이 지겨우면 산으로 올라갑니다. 산에는 서리가 내리기 전까지는 입맛을 다실 것들이 많습니다. 봄에는 칡뿌리를 캐러 올라가거나, 삐삐를 뽑으러 가기도 하고, 찔레나무 새순을 꺾어 먹으러 올라갑니다. 여름에는 산딸기나 개암, 보리수 열매, 으름 등이 있습니다. 가을에는 산사과며 돌배, 오미자, 머루, 밤 같은 것이 있어서 올라갑니다.

지금 생각해도 저절로 웃음이 나오는 장면이지만, 까치밥을 따러 감나무에 올라가는 일은 인숙이 몫입니다. 남자애들은 밑에서 마른 침을 삼키며 홍시가 떨어지기를 기다리며 해바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인숙이가 금방이라도 부러질 것 같은 작은 가지에 올라서거나, 꼭대기에 매달려 산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오줌을 지릴 정도로 애간장이 탑니다. 연신 마른 침을 목이 아프도록 삼키며 인숙이가 떨어지지 않기를 빕니다.

이윽고, 몇 개의 홍시를 떨어뜨린 인숙이가 원숭이처럼 빠르게 감나무에서 내려옵니다. 홍시를 딴 사람은 인숙이니까, 분배도 인숙이 몫입니다. 이를테면 인숙이가 우리들 대장 노릇을 하는 겁니다. 깨지지 않고 말짱한 것은 인숙이 몫이고, 깨지거나 금이 간 것은 분배를 해 줍니다.

하루는 규동이란 녀석이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홍시를 뒤늦게 주워서 들고 산 아래로 도망을 쳤습니다. 화가 난 인숙이 규동이를 향해 돌멩이를 던졌습니다. 그 시절에는 장난치고 도망치는 아이에게 돌팔매질을 하는 것은 예사로운 일이었습니다. 대부분 겁을 주기 위해 던지는 것이라서 일부러 사람을 맞히지는 않았습니다.

그날은 규동이 일진이 나빠서 그랬는지, 인숙이가 돌을 잘 던져서 그런지 규동이가 머리를 싸매고 주저앉았습니다. 홍시를 들고 뛰어가 보니 뒤통수가 깨져서 피가 철철 흐르고 있었습니다. 겁이 난 인숙이가 마른 쑥을 뜯어서 대충 상처를 막고, 동네를 향해 내려갔습니다.

규동이 상처는 다행히 심각하지 않았습니다. 된장을 바르고, 헝겊으로 싸맨 것으로 대충 마무리를 지었지만 인숙이는 집에서 쫓겨났습니다. 밤이 늦도록 장터를 서성거리고 있는 인숙이에게 규동이가 찐고구마를 갖다 주는 것으로 상황은 마무리가 됐습니다.

그 규동이는 지금 포도농사를 크게 짓고 있습니다. 인숙이는 읍내로 시집을 가서 곶감을 깎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가을에 남의 집 곶감을 깎아 주는 일부터 시작해서 지금은 다섯 동이나 한다고 합니다. 감 한 동이 백 접이니까 1년에 5만 개나 곶감을 깎는 셈입니다.

인숙이의 아들은 제 자식하고 고등학교 동창입니다. 농협에서 근무를 하는데 언젠가부터 하나로마트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놈을 볼 때 마다, 너희 엄마가 예전에는 왈가닥이었다는 말을 하고 싶은 충동에 입이 간질간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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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한만수

1990년부터 전업으로 소설을 쓰고 있음. 고려대학교 문학석사. 실천문학 장편소설 “하루” 등단. 대하장편소설 “금강” 전 15권 외 150여권 출간. 시집 “백수블루스”외 5권 출간. 이무영문학상 수상. 장편소설 “활” 문화예술진흥위원회 우수도서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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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한 사랑, 오상고절(傲霜孤節)의 꽃, 산국(山菊)

2020.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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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국(山菊) (국화과) 학명 Dendranthema boreale

아스라이 높아만 가는 늦가을 하늘은 푸르다 못해 암청색(暗靑色)이 배어나고 땅 위의 온갖 푸르름은 빛을 잃어 누렇게 쇠잔해가는 계절입니다. 아득히 높은 하늘 아래 피어난 산국의 꽃 무더기를 보니 「천자문(千字文)」의 첫 구절, 천지현황(天地玄黃 : 하늘은 검고 땅은 누렇다.)이 떠오릅니다. 이 구절을 처음 알게 된 어린 시절부터 그 뜻이 묘연하여 고개를 갸우뚱거렸는데 이 가을에 산국 앞에 서니 불현듯 바로 지금과 같은 하늘과 땅을 묘사한 것이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에 미칩니다. 올가을은 예년과 달리 왠지 암울하고, 을씨년스럽고 가슴이 시리니 하늘도 검고 땅이 누렇게만 보이나 봅니다.

올 한해는 참으로 이제껏 겪어보지 못한 해였습니다. 연초부터 불어 닥친 코로나 19의 대유행으로 일상 활동과 여행이 제한되었습니다. 지난날의 소소한 일상이 특별한 그리움의 대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일상의 행복을 잃어버린 채 맞이하는 가을 역시 마냥 삭막합니다. 통상적으로 익혀온 옳고 그름에 대한 세상사의 뒤바뀜도 유별났습니다. 우리 사회에 합리성과 순수성을 찾아볼 수 없는 견강부회(牽强附會)의 말, 글, 행동의 뻔뻔함과 망령(妄靈)됨이 날이 갈수록 우심해지니 서글픔도 함께 깊어갑니다.

어느덧 가을 끝자락! 빈 하늘 아래 산국의 꽃 무리가 청초한 자태와 맑은 향을 드리웁니다. 요사(妖邪)한 인간사와 달리 흐트러짐 없는 자연 세계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제 길을 이어가나 봅니다. 메마른 소슬바람에 초목은 시들어가고 낙엽 진 숲속의 그림자 엷어져 그늘 깊은 곳에도 가을 햇살 파고드니 풀덤불에 묻혀서도 그 모습을 드러낸 산국이 마냥 반갑습니다. 긴긴날 숲 그늘에서 꽃 피울 날 기다렸기에 저무는 계절이 아쉬운 듯 꽃을 무더기로 피워 올립니다. 노란 꽃잎이 햇살 받아 화사하게 빛나고 감미로운 산국 향이 바람에 날리니 이미 가을이 깊었나 봅니다.

감미롭고 따스한 햇볕 속에 다투어 피어나던 온갖 꽃이 다 시들어가는 차가운 계절에 어려움을 이겨내고 피운 꽃입니다. 무서리 속에서도 굴하지 않는 가상한 기개와 굳센 의지가 돋보이는 꽃입니다. 풀꽃 시든 차갑고 황량한 벌판에서 지치고 배고픈 벌, 나비에게 마지막까지 꿀과 향을 베푸는 정경이 더 아름다워 보입니다. 그 앞에 서니 은은하게 감도는 국향(菊香)이 가슴을 달구고 새 힘이 솟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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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현황의 산국(山菊) 꽃 무리

산국은 전국의 산과 들에 흔하게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입니다. 들국화의 한 종류로서 개국화라고도 합니다. 산천에 초록빛 가득한 계절에는 드러내지 않다가 가을이 되면 산기슭의 비탈과 계곡, 개울 언저리에 무리를 지어 꽃을 피웁니다. 이른 봄에 싹이 터서 햇볕 좋은 봄, 여름 다 보내고 늦가을 서리 내릴 때쯤에 노랗고 자잘한 꽃을 올망졸망 무더기로 피워냅니다. 첫눈이 내리는 시기에도 핍니다. 이를 보고 예부터 시인 묵객이 오상고절(傲霜孤節)의 꽃, 충절의 꽃으로 칭송하며 좋아했던, 가장 한국적인 우리 야생화입니다.

늦가을 벌판에 노랗게 핀 야생 국화에 산국과 감국이 있습니다. 산국(山菊)은 감국(甘菊)보다 꽃의 크기가 작고, 꽃의 수가 2~3개씩 달리는 감국과 달리 꽃이 다닥다닥 많이 달립니다. 맛을 보면 감국은 단맛이 있고 산국은 쓴맛이 납니다. 산국은 주로 산이나 양지 녘에서 자라는데 감국은 바닷가나 그늘진 곳에서 자라며 개체 수가 적어 내륙에서 만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산국의 꽃말은 ‘순수한 사랑’입니다. 서릿발이 성성한 계절에도 꿋꿋이 피어나 ‘충절의 꽃’이라고도 합니다. 순수와 상식이 퇴색해 버린 암울한 세상에 내 편, 네 편으로 딱 갈라져 힘과 세(勢)로 정의(正義)가 정의(定義)되고 위선과 교만을 교언영색(巧言令色)으로 둘러대는 참으로 뻔뻔한 세상에 순수와 충절의 들꽃 앞에 서니 부끄럽기 한량없습니다. 내가 하면 바른말, 남이 하면 막말, 아전인수에 몰두한 온갖 술책과 거짓, 협잡, 되씌우기가 일상처럼 벌어지는 세상에서 산국이 내포하는 것과 같은 ‘순수’와 ‘충절’을 바라는 것이 가당키나 한지 모르겠습니다.

동일 사안을 놓고 보는 시각이 진영에 따라 어찌 이리도 다를 수 있을까? 임진왜란 직전 일본을 방문한 조선 통신사절단의 상반된 보고가 다시금 생각나게 하는 요즈음입니다. 알게 모르게 말도 못 하고 한쪽 무리에 휩싸여 가고 있는 나 자신부터가 측은해 보이기조차 합니다. 그런데도 늦가을에 곱게 핀 산국의 꽃 무리를 대하니 혹한의 시기를 꿋꿋이 참고 넘겨 새봄이 되면 따스한 날이 오듯이 사람 사는 세상도 변할 날이 오리라는 기대가 생깁니다. 더욱 희망적인 것은 편 가르기와 진영 논리의 막말, 적대감이 결코 바른길이 아님을 멀리 해외에서나마 입증하니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 우리도 상호 간에 입장을 배려하고 국론 분열의 폐해가 사라지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염원합니다.

(2020. 10 월 남한산성 성곽길의 산국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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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문

환경부에서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과장, 국장, 청와대 환경비서관을 역임했다. 우리꽃 자생지 탐사와 사진 촬영을 취미로 삼고 있으며, 시집 『꽃벌판 저 너머로』, 『꽃 사진 한 장』, 『꽃 따라 구름 따라』,『꽃사랑, 혼이 흔들리는 만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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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안긴 혹독한 신참례(新參禮)

2020.11.12

농민의 자격 같은 세 가지 기본 조건을 지난 3월부터 준비해 지난달 말 다 갖췄습니다. 농업경영체는 지난 7월, 농지원부는 8월에 등록을 마쳤으며 농협에는 10월 말에 조합원으로 가입했습니다. 신고서에 잉크도 마르지 않아 풋내가 물씬 풍기는 참신한 신참입니다. 의사자격증을 따고서도 인턴 레지던트를 거쳐야 제대로 의사가 되는 것처럼 농부도 단계별로 배울 일이 참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농업을 해 오신 분들께는 죄송합니다만 이제부터는 직업란에 농부라고 쓸 작정입니다.

올 농사는 천방지축 좌충우돌이었습니다. 시행착오도 많았습니다. 어릴 때 어깨너머로 배운 것과 지난 몇 년 간 집 앞 화단에다 팬지 코스모스 상추 고추 오이 가지 토마토 등을 길러 본 것이 전부인데 겁도 없이 여섯 마지기 농사를 짓겠다고 달려든 결과지요.

봄날 굴삭기와 덤프트럭을 동원, 잡초와 수목이 우거진 농토를 정리하는 일부터 난관이었습니다. 모종 때는 곁눈질하느라 여념이 없었습니다. 들깨 파종 과정에서는 숫제 창피함을 느꼈습니다. 파종은 오래전부터 아시던 분이 직접 해 주셨습니다. 씨를 밭에 뿌려주고 새가 쪼아 먹지 못하게 부직포로 덮었습니다. 모종할 때는 더 당황했습니다. 그분은 이랑 간격은 충분하게 모종은 한꺼번에 3~4포기를 모아 중간을 휘게 땅에 묻으면 좋다고 설명했습니다. 수확량을 늘리기 위해서는 성장을 약간 억제하는 것이 효과적이랍니다. 키가 너무 크면 송아리가 많이 달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할로윈 축제 때 ‘귀신을 쫓기 위해 조각한다’는 호박씨도 심었습니다. 개당 30~40㎏ 아주 크면 100㎏까지도 자란다고 소개된 것입니다. 씨앗 스무 개를 심었는데 싹이 튼 것은 고작 세 개뿐이었습니다. 줄기가 채 1m도 자라지 않았습니다. 물론 열매는 달리지 않았고요. 이밖에도 옥수수 콩 취나물 등을 파종했는데 잘 자라지 않았습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올해 밀어닥친 세 차례의 태풍 때 개울둑이 터져 토사가 농토를 덮었습니다. 산과 경계한 지점이라서 고등학교 때 배워 잊고 있었던 선상지(扇狀地) 현상으로 힘들게 가꾸었던 농작물이 몽땅 피해를 입었습니다. 조금 남은 옥수수는 멧돼지가 몰려와 엉망으로 만들었고, 콩은 고라니가 달려들어 잎과 줄기를 뜯어 먹었습니다. 수확한 것은 볼품없는 옥수수 서너 자루, 스물 남짓한 호박이 전부였습니다.

필자는 이 결과를 농사에 처음 발을 내디딘 신참례(또는 신래: 어느 분야에 처음 참가한 자를 괴롭히는 일종의 잘못된 통과의례)라고 웃어넘깁니다. 사람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나마 다행입니다. 마음에 상처를 받았을 텐데, 자연의 가르침이니 겸손해집니다.

신참례는 고금을 통해 혹독했나 봅니다. 오죽하면 조선 경국대전에 '신래를 침학(侵虐, 심하게 괴롭히고 학대함)하는 자는 장(杖) 60에 처한다'는 벌칙 규정까지 두었겠습니까. 조선 최고기관인 도평의사사가 모든 관직에서 신참들에게 가하는 소위 신고식이 너무 혹독하다는 여론에 태조 1년 11월 25일 금하도록 청했습니다. 얼마나 심했기에 신참례 폐지가 건국 초기 역점 사업 중의 하나가 되었을까요. 후대로 갈수록 더 혹독해졌습니다. 관원이 된 신참에게 말을 주지도 않고 말 값이란 명목으로 돈을 뜯어냈고(태종 1년 윤 3월 23일), 성균관에서 임용대기 중인 신참에게 온갖 잡희(雜戲)를 시킨 관원이 의금부에 갇혔습니다(세종 5년 5월 27일).

신참례를 폐해야 한다고 조선 초기부터 명문화했었지만 잘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오늘에 이르기까지도 변함없습니다. 최근에는 어느 병원 간호사가 신참례(그들은 ‘태움’이라고 했음)를 못 견뎌 세상을 등졌다는 일이 보도되었습니다.

농사 이야기만 나오면 어느 자리에서나 아직도 멈칫멈칫합니다. 농사 경험이 많은 분들 이야기를 듣다보면 그들이 부럽습니다. 아주 형편없었지만 가을걷이가 끝났으니 도로 연수를 마치지 않은 초보운전자와 똑같은 심정으로 내년 농사를 기획합니다. 맨홀 묻기, 전기 가설, 관정 파기, 울타리 설치, 그늘막 마련 등 할 일이 참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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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덕

서울대학교, 서독 Georg-August-Universitaet, 한양대학교 행정대학원, 몽골 국립아카데미에서 수업. 몽골에서 한국인 최초로 박사학위 방어. 국민일보 국제문제대기자, 한국산업기술대학교 교수, 경인방송 사장 역임. 현재는 국민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서독은 독일보다 더 크다, 아내를 빌려 주는 나라, 몽골 풍속기, 몽골, 가장 간편한 글쓰기 등의 저서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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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약과 비수가 되는 언어

2020.11.10

창밖에 늦가을의 땅거미가 지고 있습니다. 빨강으로 노랑으로 고동으로 물들었던 잎들이 하나 둘 떨어져 다소 스산한 느낌입니다. 그 숲으로 새들이 날아듭니다. 날아온 새들이 가지에 앉으면 잎새 사이에 숨어 보이질 않습니다. 그러다 한두 마리가 푸드덕 하고 날아오르면 뒤이어 수십 마리가 한꺼번에 날아오릅니다. 장관이 따로 없습니다. 그런 광경이 창밖이 어두워질 때까지 수차례 펼쳐집니다.
그런데 창밖에 이런 풍광을 지닌 집에서 십여 년 살았지만 그런 광경이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불과 몇 년 되지 않습니다. 버지니아 울프의 <나방의 죽음> (“The Death of the Moth”)에서 다음 구절을 읽고 나서야 비로소 내 눈에 그 광경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떼까마귀도 그들의 연례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나무 꼭대기 주위로 날아올라 마치 수천 개의 검은 매듭을 가진 거대한 그물이 허공에 던져진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는 잠시 뒤 나무에 천천히 내려앉아 나뭇가지마다 가지 끝에 검은 매듭을 지닌 것처럼 보였다. 그러다 갑자기 그물이 다시 공중으로, 이번에는 더 커다란 원 모양으로 던져지는 것 같았다. 허공으로 던져졌다가 나무 위에 천천히 내려앉는 것이 아주 신나는 듯 시끄럽게 울어댔다.

죽어가는 나방이 생명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모습을 그린 이 에세이에서 울프는 그와 대조적으로 생명력 넘치는 주변 광경을 묘사합니다. 그중 한 장면인 울프의 이 묘사를 읽었을 때 정말 마음에 한 편의 그림이 생생하게 떠올랐습니다. 한 떼의 까마귀가 나무 위에 날아와 앉았다 한꺼번에 날아오르는 모습을 허공에 던져진 그물에 비유하여 생생하게 시각화시킨 것입니다. 울프의 이런 절묘한 묘사에 감탄하고 난 뒤 갑자기 우리 집 창밖에서 일상적으로 연출되고 있었던 그런 풍광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새삼 울프와는 달리 무디고, 무감각한 필자의 관찰력에 좌절하면서 울프의 글이 내 눈에 어떤 마법을 걸었는지 깨달았습니다.
작가들은 남다른 관찰력으로 평범한 우리 곁의 일상을 보고 전혀 새롭게 그것을 그려냅니다. 그들의 펜을 통해 일상은 전혀 새롭고 낯선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그것을 러시아 형식주의 학자들은 문학의 ‘낯설게 하기’ 기법이라 표현했습니다. 우리에게 <조이럭 클럽>으로 잘 알려진 중국계 미국 작가 에이미 탠(Amy Tan)도 <모국어>(“Mother Tongue”)라는 에세이에서 “어떤 감정과, 시각적 이미지와, 복잡한 생각과, 단순한 진리를 불러일으키는 언어의 힘”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언어가 지닌 이런 힘은 종종 마법에 비유되었습니다. 셰익스피어의 <오셀로>에서 원로원 귀족의 영애 데스데모나가 늙은 무어인 용병 장군 오셀로와 비밀 결혼을 하자 그녀의 아버지 브라밴쇼는 원로원 회의에서 오셀로가 “마법”을 사용하여 딸의 정신을 홀렸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이런 브라밴쇼의 주장에 오셀로는 자기가 데스데모나에게 사용한 마법은 자신의 인생 이야기였다고 답합니다. 아버지에게 들려주는 오셀로의 인생이야기를 엿듣고 데스데모나는 굴곡진 그의 삶에 연민과 동정을 느꼈습니다. 그렇게 자신을 연민하는 데스데모나의 따뜻한 마음씨에 오셀로도 사랑을 느껴 급기야 두 사람은 비밀 결혼까지 하게 된 것입니다. 그들의 사랑 이야기는 언어가 지닌 마법과 같은 힘을 보여주는 한 편의 동화 같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마법 같은 힘을 발휘하는 언어가 부정적으로 사용되면 그건 사람의 이성적 판단력을 마비시키는 독약이 됩니다. 오셀로의 부관이 되고 싶었으나 캐시오라는 젊은 부관에게 그 자리를 빼앗긴 이아고는 오셀로와 캐시오를 한꺼번에 파멸시키고자 합니다. 이아고는 오셀로와 캐시오가 자기 아내와 잠자리를 가진 것 같다는 의처증에도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데스데모나가 캐시오와 부적절한 관계인 것처럼 오셀로의 마음에 의심을 불어넣어 그들을 한꺼번에 파멸시킵니다. 베니스의 이방인이자 데스데모나와 나이 차이도 많이 나고 피부색도 다른 오셀로는 이아고의 마법 같은 언어에 하릴없이 휘둘리고 맙니다.
이를 보고 이아고는 "무어 놈은 벌써 내 독약으로 변하고 있어."(3막 3장 330행) 라고 비웃습니다. 이제 이성적 판단력이 마비된 오셀로는 순결한 아내 데스데모나를 부정한 여자라고 생각하여 목 졸라 죽입니다. 이렇게 교묘한 이아고의 언어는 존재하지도 않는 데스데모나의 부정을 창조해 냅니다. 그래서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어낼 수 있는 언어의 무서운 힘을 보여줍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이런 부정적 언어의 힘이 빚어내는 비극을 너무 자주 목격하게 됩니다. 현대의 이아고에 의해 만들어진 이야기가 유튜브를 통해, 각종 SNS를 통해 떠돌아다닙니다. 그런 거짓들은 이아고의 독약 같은 말처럼 많은 사람들의 이성적 판단을 흐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존재하지도 않는 사실을 진실처럼 믿게 만듭니다. 주로 정치 리더들에서부터 젊은 연예인들까지 대중의 관심을 받는 사람들이 그들의 타깃이 됩니다.
그러면 뒤이어 이성적 판단이 마비된 사람들의 비수 같은 언어가 등장합니다. 그들은 수많은 댓글과 트위터 실어 나르기 등을 통해 그 만들어진 이야기의 주인공의 마음에 칼을 겨눕니다. 그들의 칼날은 너무도 날카롭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모진 칼질은 상대가 스스로 극단적 선택을 할 때까지 절대 멈추는 법이 없습니다. 400년 전 셰익스피어가 그린 한 가정의 비극은 이제 현대의 인터넷 기술을 등에 업고 무차별적으로 사방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독약 같고 비수 같은 언어가 무고한 사람들을 베어 쓰러뜨리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이것이 필자가 그 흔한 블로그도, 트위터도, 카카오 스토리도, 인스타그램도 하지 않는 이유입니다. 누군가에게 칼질이 될까봐 댓글 하나 달지 않는 이유입니다. 불특정 다수의 칼날이 언제, 어떻게 나를 타깃으로 할지 모름을 인지하고 우리의 언어 행위가 좀 더 신중해져야 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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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권오숙

한국외대에서 셰익스피어 연구로 박사학위 취득. 현재 한국외대, 서울과학기술대 외래교수, 한국셰익스피어학회 연구이사. 주요 저서 『셰익스피어: 연극으로 인간의 본성을 해부하다』 『청소년을 위한 셰익스피어』, 『셰익스피어와 후기 구조주의』, 『셰익스피어 그림으로 읽기』 등. 『햄릿』, 『맥베스』,『리어 왕』, 『오셀로』, 『베니스의 상인』, 『살로메』 등 역서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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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 지옥의 오만방자

2020.11.09

무서운 속도로 세금이 올라갑니다. 경기는 침체했는데 재산세 등 주택 보유세를 최대 40퍼센트나 폭증시켰습니다. 물가 상승률의 반영이라며, 국민연금은 올해에 겨우 0.4퍼센트 더 주고 있죠. 세금은 물가가 아닌가요? 집이 소득을 만들지 못하는데 세제는 ‘집 장사’를 전제로 하는 모양입니다. 1 주택 소유자인 은퇴자나 실업자는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죠. 그래서 “나라가 니꺼냐‘는 구호도 등장했습니다.

미국의 재산세는 매입 가격으로 매기며 연간 인상률도 2퍼센트 정도(캘리포니아 주)라고 합니다. 양도소득세는 1년 이상 보유하면 최고 세율이 20퍼센트랍니다. 정부가 중산층을 세금으로 맹공격한다면 살림이 거덜 나 세금 납부가 지속 불가능할 겁니다. 고 이건희 삼성 회장의 작고로 유족의 상속세는 우리나라 3년치 상속세인 약 11조 원을 내야 한다는데요. 기업 기반이 흔들릴 세액이죠. 한국경제연구원은 한국 상속세율이 OECD 국가 최고 수준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개인이 집을 팔려고 해도, 보유 기간에 거주 기간까지 소급해 적용하는 조항을 신설해 인생을 궤도 수정해야 하니까 여의치 않다고 합니다. 소유한 1주택에서 장기간 살아야 세금을 줄여준다니 이건 세법을 넘어 주거 이전의 자유를 보장한 헌법의 저촉 여부와도 상관될 문제죠. 주택을 사려면 자금 조달 계획도 써내야 하고 세를 놓으려면 부동산 임대업 신고에 2+2라는 계약갱신청구권이 도사리죠. 옥죄는 규제 공화국입니다.

주택 가격은 늘 부침한다는 속성을 무시하는 가혹한 세금부과 조치를 보면 혹시 중산층을 붕괴시키고 좌익 포퓰리즘을 교리로 삼아 모두가 정부의 배급에 의존하는 이해찬의 20년, 50년 장기집권을 획책하는 저의가 아닌지 의문을 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정책의 수혜자들에게선 지지도가 높습니다. 대통령은 총선 코앞에서 “소득 하위 70% 가구에 대해 4인 가구를 기준으로 가구당 100만 원의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고 자랑했죠. 재난을 빙자해 세금으로 현금을 약속한 선거는 없었습니다. 그러니 감읍하는 것이죠. “얼마나 잘하고 있냐”라는 소리도 합니다. 특히 40대 사람들이.

지금 받는 돈이 자식들의 미래를, 몇 배의 프리미엄을 붙여 괴롭힐 것은 알지 못하죠. 아니 당장만 좋으면 된다며 알려고도 하지 않겠죠. 2015년 9월 9일 현 대통령은 야당 대표 시절에 국가채무비율(GDP 대비) 40%를 지켜 재정 건전성을 지키라고 정부를 비판했지만 지금은 깨버렸고, 그 비율을 지킬 필요가 없다고 권력 주변 사람들이 말합니다. “일본은 200퍼센트야”라고 핑계를 대지만 그들은 G7 국가고 엔화는 세계에서 통용되는 외환 준비금입니다.

시혜를 받는 특정 연령대가 권력과 공생 관계가 된 듯합니다. 정권은 공생자를 늘리기 위해 분발합니다. 방계 조직까지 나섰습니다. 서울시교육청은 세금 410억 원을 들여 모든 중고교 신입생에게 입학 축하금 30만 원을 쏜다는 것이죠. 종편에서는 인권 구호단체들이 소녀들에게 생리대를 보내자고 캠페인을 합니다. 이런 불우한 곳에 쓰는 게 우선순위가 아닌가요?

국민은 불경기에 시달리고 코로나 19로 거의 500명이 죽었는데 돈이 썩는지 악착스레 거둔 돈을 거리에 퍼붓는 작업도 한창입니다. 어느 구청은 ‘걷고 싶은 거리를 만든다’고 늦장마 철부터 멀쩡한 보도를 뜯더니 새 돌을 1킬로미터가량 깔았습니다. 돈이 남아돌면 코로나로 폐업한 자영업자 등 실업자들을 돕는 데 배려해야죠. 김포 한강로 입구에 늘어난 도로포장을 보며 연내에 예산을 털려는 ‘연말’이 아닌가, 실감합니다.

주식 보유자도 과세의 과녁이 될까 불안합니다. 100억 원이었던 대주주 범위가 계속 확대되더니 내년부터 종목별로 3억 원으로 하려다 포기했습니다. 장관은 사표 쇼도 벌였습니다. 너무 올라버린 집값에 주포자(주택 구입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주식에서나 돈 좀 만져보려고 뛰어들죠. ‘주린이’(주식 초보자)라는 말도 등장했습니다. 국회가 소득세법은 만들지만 너무 많은 것들을 대통령령에 위임합니다.

이렇게 경제적 안정이 흔들리는 것은 유독 많은 학생회장 등 운동권 출신 정치인들이 세상을 지배한다고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각종 정치 기사의 댓글을 읽으면 국민이 부글부글 끓습니다. 코로나 정치 방역으로 집회의 자유를 억압당하지 않는다면 서울의 주요 대로는 분노로 미어터질 것 같은 느낌입니다.

대선 주자들의 랭킹을 논하기는 이르지만 추세는 엿보입니다. 왜, 어느 인물에게 수백 개의 화환이 답지했을까? 이런 걸 바라는 게 아닐까요? “나라를 망쳐 먹어, 집어넣을 자들을 반드시 집어넣고야 말 인물을 기대한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한 일간지 칼럼에서 ‘청와대부터 개혁하라’고 주장했습니다. 집권 세력은 우익인 전직 두 대통령에게 가해진 수십 년의 징역형을 어떻게 볼까요?

임기 말을 향하는 문 정권은 겁나지 않을까요. 대통령의 얼굴을 보면 과로인지 걱정인지 표정이 매우 어둡게 보입니다. 권력자들은 대가를 치를지도 모를 날이 점점 다가옵니다. 청와대 비서실장이 국회에서 국민을 향해 "살인자"라고 큰소리를 쳤습니다. 그 오만방자한 말을 과학적으로 검증해 보시죠. 코로나 확산 초, 중국인을 막지 않은 정권은 뭡니까? 권력에 취할 대로 취해 있죠. 대법관에게 “'의원님, 꼭 살려주십시오.' 이렇게. (예산을) 살려달라고 말해보라.”는 박범계, 공익 제보자를 단독범이라고 매도한 황희, 조국 사수 김남국 의원, 대통령이 검찰에 당부한 '살아 있는 권력의 수사'를 정치 검찰이라고 뒤집어씌우는 추미애 장관의 오만이 하늘을 찌를 듯합니다.

미 46대 대통령에 당선된 조 바이든은 “대통령 직은 모든 사람들을 대표하는 유일한 기관이고, 모든 미국인을 돌볼 의무가 있다. 반대자를 적으로 간주하는 것을 멈춰야 한다.”며 분열주의를 경고하고 화합을 강조했습니다. 최근 좌파의 원로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가 한 말이 떠오릅니다. “보수정당이 재건되느냐에 따라 한국 정치가 달라질 수 있다. 현재 한국 정치의 특징은 자유주의의 부재다”. 그 민주주의의 역행에 국민은 해결책을 찾고 있습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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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김영환

한국일보, 서울경제 근무. 동유럽 민주화 혁명기에 파리특파원. 과학부, 뉴미디어부, 인터넷부 부장등 역임. 우리사회의 개량이 글쓰기의 큰 목표. 편역서 '순교자의 꽃들.현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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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훈 시인 탄생 100주년

2020.11.06

‘승무’로 유명한 조지훈(1920~1968)은 박목월 박두진과 함께 청록파로 불린 시인입니다. 그가 다른 두 명과 다른 점은 시인으로서만 활동한 게 아니라 한국의 문화와 멋을 탐구해 한국학의 기틀을 다진 학자이며 한학에 조예가 깊은 교수로 수많은 제자들을 길러낸 점입니다. 특히 두드러지는 것은 빛나는 명문 ‘지조론’(1960년)을 비롯한 각종 논설을 통해 시대의 병리를 질타하며 올곧게 바른길을 추구한 지사적 풍모입니다.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아 대산문화재단과 한국작가회의는 6월 18일 심포지엄을 시작으로 문학의 밤, 학술대회 등 ‘2020년 탄생 100주년 문학인 기념문학제’를 열었습니다. 금년 대상자는 조지훈과 곽하신 김상옥 김준성 김태길 김형석 안병욱 이동주 이범선 조연현 한하운 등 열한 분입니다.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는 처음 생존 문인으로 100년을 맞았습니다. 계간 ‘대산문화’ 여름호는 김상옥 이동주 조연현 조지훈의 유가족들이 생전의 아버지를 떠올리는 회고 글을 싣기도 했습니다.

이 중 조지훈의 경우 생전에 재직했던 고려대가 탄생일(12월 3일)을 앞두고 ‘지훈 주간’을 설정해 11월 9일부터 다양한 행사를 합니다. 먼저 9일에는 도서관에 조지훈의 기증 자료 등을 전시한 ‘조지훈 열람실’이 개설됩니다. 고려대박물관은 유족이 기증한 친필 원고 등 유품을 공개하는 특별전시회 '빛을 찾아가는 길, 나빌네라 지훈의 100년'을 엽니다. 육필 미발간 시집 '지훈시초'가 처음 공개되는 이 전시회는 내년 3월 20일까지 계속됩니다. 또 11일 ‘조지훈 탄생 100주년 기념강연·추모좌담회'와 12일 '학생들과 함께하는 조지훈 시 낭송 축제', 13일 학술대회 등도 개최됩니다. 아울러 세계시인 동상공원을 조성하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키예프국립대에 조지훈 흉상이 세워질 예정입니다. 제막식은 내년으로 예정돼 있습니다.

산책 길의 조지훈.
옷차림과 걸음걸이에서 멋이 우러난다.

다른 문인들에 비하면 탄생 100주년 행사가 훨씬 다양하고 풍성합니다. 고려대의 경우 문과대, 국문학과, 민족문화연구원, 박물관, 도서관, 의료원 등이 다 나섰습니다. 지훈은 1947년부터 타계할 때까지 고려대 국어국문학과에서 교편을 잡았습니다. 행사가 풍성한 것은 이 대학의 교풍 덕분이거나 제자들이 많아 그렇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지훈의 인품과 업적이 크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가 남긴 일화를 읽어보면 어느 한 구석 구차스러운 게 없고 당당하며 의연합니다. 6·25 종군작가 시절, 술 마시는 문인들을 본 군인이 총을 휘두르며 심통을 부려 다들 겁먹고 숨죽인 상황에서 홀로 일어나 호통을 쳐 제압하고, “지옥불이 무섭지 않으냐?”며 목사가 담뱃불로 손등을 지지는데도 끄떡하지 않아 상대를 질리게 했다는 이야기가 그런 사례입니다. 한복을 즐겨 입던 지훈이 어느 겨울날 강의를 하면서 “솜바지를 입으니 조지가 훈훈하다”고 농담을 했다는 이야기도 재미있습니다.

6척 장신에 굵은 안경테 속에서 먼 곳을 보며 걷는 사진은 그의 고운 시, 깊은 학문과 매운 지조 등 고고한 지성을 읽게 해줍니다. 이미 노성한 대가와 같아 보였지만, 숨질 때의 나이는 겨우 48세였습니다.

조지훈 탄생 100주년 특별전 포스터

세상을 떠나기 3개월 전 ‘병에게’라는 시를 발표했던 지훈은 “아직도 할 일이 많은데…”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그가 타계하자 같은 문과대의 영문과 교수였던 김종길 시인은 “나라도 경영할 수 있는 큰 인물을 잃었다”며 슬퍼했습니다.

지훈의 제자인 시인 오탁번 고려대 명예교수는 어느 인터뷰에서 “조지훈 선생은 4·19를 겪으며 이미 이 땅의 가장 존경받는 스승의 높은 자리에 올라 있어 그의 글과 기백이 캠퍼스 곳곳에 스며 있었다.”고 회고했습니다. 지훈의 3남인 조태열 전 주 유엔대사는 “48세에 돌아가셨지만 사진을 보면 20대 때 이미 40대처럼 중후한 모습이셨고 그 모습이 돌아가실 때까지 이어졌다. 자식이 봐도 범접하기 어려운 근엄함이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일찍 늙으면 중년이 길어 좋다”는 말도 했다고 합니다.

지훈의 집안에는 ‘삼불차(三不借)’ 가훈이 있다고 합니다. 재불차(財不借), ‘재물을 빌리지 않는다’, 문불차(文不借), ‘문장을 빌리지 않는다’. 인불차(人不借), ‘사람을 빌리지 않는다’, 이 세 가지입니다. 남의 재물을 빌리지 않고 남의 문장을 가져다 쓰지 않고 대를 이으려고 인위적으로 양자를 들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조태열 씨는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아버지와 삼불차의 교훈으로 많은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인물을 평가하고 고르는 기준에 신언서판(身言書判)이 있습니다. 첫째 인물이 잘났나, 둘째 말을 잘할 줄 아는가, 셋째 글씨는 잘쓰는가, 넷째 일과 사물에 대한 판단이 옳은가, 이 네 가지가 기준입니다. 이 네 가지에서 조지훈은 어느 것 하나 빠지는 게 없는 인물이었습니다. 맵고 반듯한 선비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술꾼을 부주(不酒)부터 폐주(廢酒)까지 열여덟 단계로 분류한 '주도유단(酒道有段)'이나 '멋 설' '돌의 미학' 같은 글에 드러나듯이 지훈은 호방한 애주가이면서 뛰어난 멋쟁이였습니다.

무녀리 모지리 찌질이 칠푼이 조무래기들이 벼룩 장판 뛰기하듯 설치고 깝치고 찧고 까부는 세상이라서 지훈같이 큰 인물이 더 그리워집니다. 지금 그가 살아 있다면 어떤 논설로 이 비루하고 조야(粗野)한 시대를 헤쳐갈까? 7일이면 벌써 입동, 2020년 한 해의 막바지에 탄생 100주년이 된 큰 인물을 만나고 탐구하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는 일입니다. 겨울은 자기 속으로 침잠해 스스로 내면을 키워가는 계절이 아닌가 싶어 더욱 그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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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임철순(任喆淳)

한국일보 편집국장 주필, 이투데이 이사 겸 주필 역임. 현재 한국언론문화포럼 회장. 한국기자상, 삼성언론상, 위암 장지연상 등 수상. 저서 ‘노래도 늙는구나’, ‘효자손으로도 때리지 말라’, ‘손들지 않는 기자들’, ‘내가 지키는 글쓰기 원칙’(공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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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7은 두 번 산다

2020.11.05

지난 10월 31일(영국 현지 시간) 향년 9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원조 제임스 본드 숀 코네리(Sean Connery, 1930~2016)의 부음을 듣고 아쉬운 마음 가눌 길 없습니다. 지난 6월에는 영화음악의 거장 엔니오 모리꼬네가 세상을 등졌죠. 중학교 저학년 때 망연자실했던 기억도 떠오릅니다. 게리 쿠퍼의 별세 소식을 접하고서였습니다. 게리 쿠퍼는 로버트 테일러, 버트 랭카스타와 함께 자천타천 ‘할리우드 키드’였던 그 무렵 필자의 마음속 3대 우상이었거든요.

스코틀랜드 출신의 명배우 숀 코네리는 테렌스 영 감독이 이안 플레밍의 소설을 영화로 만든 <007 위기일발(애인과 함께 소련서 오다‧From Russia With Love)>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영화 포스터 (구글 이미지)

영화는 1965년 피카디리 극장에서 상영했죠. <007 위기일발>은 <007 살인번호(Dr. No)>를 잇는 시리즈 2탄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먼저 소개되었고, 이후 007 시리즈 붐의 견인차 역할을 했습니다. 007 시리즈 중 역대 최고의 영화로도 꼽히는 것은 물론입니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이런 영화가 다 있다니! 오프닝 시퀀스부터가 압도적이었습니다. 예상을 뒤엎는 서정적이고 관능적인 멜로디(작곡 존 배리, 노래 매트 몬로)가 장중하게 흐르며 애상에 잠기려던 차, 총구를 형상화한 회오리치는 동그라미 속을 오가던 신사가 돌연 관객을 향해 총을 겨누질 않나, 화면의 출렁거림에 맞춰 기기묘묘한 자태로 여체가 흐느적거리질 않나…. 사람의 몸이 그토록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살짝 이른 나이에 깨쳤습니다.

놀람을 안겨 준 요소는 그밖에도 많았습니다. 지성과 야성의 쌈박한 조합인 주인공 숀 코네리의 매력이야 더 일러 무엇 하겠습니까만, 주인공 못지않은 강단을 보여준 빌런(악당) 로버트 쇼의 카리스마, 시계, 만년필 같은 소지품을 활용한 최첨단 호신무기 등등. 날틀(헬리콥터)과 사람의 아슬아슬한 숨바꼭질(1:1 데스 매치)은 또 어떠했던가요. 뇌쇄적인 본드걸의 등장도 ‘당근’ 빼놓을 수 없습니다. <007 위기일발>에서는 다니엘라 비안키가 출연해 매력을 과시했지만, 원조 본드 걸은 <007 살인번호>에 나오는 우술라 안드레스였어요.

위 두 여배우의 등장은 세상을 발칵 뒤집어놓았습니다. 당시 조숙한 편인 필자의 취향이 데보라 카, 그레이스 켈리 같은 고상하고 우아한 청순가련형 배우에 머물렀다가 시나브로 실바나 망가노('시집 가가나 말거나') ‘지나 롤로브리지다('허리가 부러지다') 같은 대중성을 갖춘 개성파 여배우로 옮겨온 터였어요. 007 시리즈에 출연한 두 여배우도 은근슬쩍 좋아하는 목록에 끼워넣었답니다. 역대 본드걸을 떠올리면 탄식이 절로 납니다. 당대 여신급 외모의 글래머러스한 배우들이 다수 출연했거든요. 질 세인트 존, 소피 마르소, 킴 베이싱어, 할 베리, 에바 그린, 모니카 벨루치, 레아 세이두….

숀 코네리 이야기를 하다 그만…. 숀 코네리는 위 두 영화를 포함해 <007 골드 핑거> <007 썬더볼 작전> <007 두 번 산다(You Only Live Twice)> <007 다이아몬드는 영원히> 이상 초기 6편에 출연합니다(<007 네버 세이 네버 어게인>은 정규 시리즈가 아니어서 열외). 이후 조지 라젠비, 로저 무어, 티모시 달튼, 피어스 브로스넌을 거쳐 다니엘 크레이그가 6대 제임스 본드 역을 맡고 있죠. 007 역을 맡은 배우 중 숀 코네리가 으뜸이라는 점에는 영화전문가와 일반대중의 의견이 대체로 합치합니다. 007 고유의 캐릭터에 유머 감각을 갖춘 로저 무어를 더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고, 요즘 젊은 층엔 다니엘 크레이그가 훨씬 더 친숙할 수도 있겠지만요.

2000년대에 들어서며 <007> 시리즈는 활로를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치밀한 구성과 리얼 액션을 내세우는 <본> 시리즈, 최첨단 스턴트 액션을 보여주는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 스타일리시한 액션을 선보인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 같은 신종 첩보물에게 자리를 내주었지요. 악당은 전 세계 네트워크를 실시간으로 장악하며 시대 트렌드를 선취하는데, 본드는 무늬만 신형인 결함투성이 애스턴마틴을 운전하거나, ‘시계태엽 속의 오렌지(폭탄)’를 투척하며 맨몸으로 때웁니다. 그에 더해 노쇠한 본드의 과거가 범죄조직(스펙터)에 저당 잡혀 있기도 하군요. 조심해 본드, 너 그러다 권총(월터 PPK) 뺏기고 살인면허 취소당하는 거 아냐?

강렬하고 야성적이면서도 신사적인 면모를 갖춘 숀 코네리는 <007 다이아몬드는 영원히>에 출연 후 MI6(영국대외정보국)을 대령으로 퇴사하고 자유를 찾아 떠납니다. 007 캐릭터에 얽매이면 연기 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에서였지요. 손 코네리의 판단이 옳았던 듯도 합니다. 이후 숀 코네리는 액션 및 성격배우로 거듭납니다. 숀 코네리의 굵직굵직한 필모그래피를 살펴보죠. <머나먼 다리> <대열차 강도> <바람과 라이언> <장미의 이름> <붉은 10월> <에덴의 마지막 날> <함정> <카멜롯의 전설> <더 록> <엔트랩먼트> <파인딩 포레스트>…. 숀 코네리가 제임스 본드였던 거 맞나요?

이 글을 쓰는 지금 눈앞에 코로나19로 기피 시설이 된 카지노장이 펼쳐지며, 나비넥타이를 맨 섹시한 중년 남자가 마스크도 쓰지 않은 차림새로 들어서는군요. 장내를 소오(笑傲)하더니 음료를 주문합니다. “보트카 마티니, 젓지 말고 흔들어서(Vodka Martini, shaken, not stirred).” 중후한 음성으로 자기소개도 곁들입니다. “마이 네임 이즈 본드, 제임스 본드(My name is Bond, James Bond)." ‘코네리 형’이 벌써 그립습니다. 코네리 형, 어서 돌아와요. 007은 두 번 산다잖아요!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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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김창식

경복고, 한국외국어대학 독어과 졸업.수필가, 문화평론가.
<한국산문> <시에> <시에티카> <문학청춘> 심사위원.
흑구문학상, 조경희 수필문학상, 한국수필작가회 문학상 수상.
수필집 <안경점의 그레트헨> <문영음文映音을 사랑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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