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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허 침해, 친고죄가 폐지됐는데

2020.10.22

그제 2020년 10월 20일부터 특허침해죄 처벌제도에 중대한 변화가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특허권을 침해할 때에는 징역 7년 이하 또는 벌금 1억 원 이하에 처할 수 있습니다. 이 특허침해죄는 고소해야 처벌할 수 있는 죄(이른바 친고죄)였습니다. 이제는 이 죄가 ‘피해자의 명시적 의사에 반하여’ 공소를 제기할 수 없는 죄(이른바 반의사불벌죄)로 바뀌었습니다. 이 개정법은 2020년 7월 6일 이장섭 의원이 대표로 발의하여 그다음 날인 7월 29일에 산업통상자원중기벤처기업위원회(산자위)에 상정, 9월 16일 원안 가결, 그날 법사위로 넘어가 9월 23일 원안가결, 그 다음 날 9월 24일 본회의 상정하여 그대로 원안가결되었고, 10월 8일 정부로 이송되어 10월 20일 공포돼 시행되었습니다. 법안 발의에서 본회의 통과에 두 달 18일이 걸렸으니 정말 숨 가쁠 정도로 빨리 처리됐습니다.

개정법을 발의하면서 “특허권침해죄는 친고죄에 해당하여 피해자의 고소가 없거나 고소기간이 6개월로 제한되어 있어 실효성 있는 수단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어 이를 해소하려고 발의했다”고 제안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개정안을 검토한 전문위원은 ‘친고죄를 반의사불벌죄로 변경하려는 개정안의 취지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음. 다만, 친고죄와 반의사불벌죄는 죄의 종류 및 경중 등의 요건을 고려하여 결정되는바, 특허에 대한 침해죄도 해당 요건 등을 검토하여 결정할 필요가 있음’으로 의견을 제시했었더군요.

             
특허침해죄를 반의사불벌죄로 바꿨다고 하니, 2000년대에 저작권침해죄의 일부를 반의사불벌죄로 바꾸면서 생긴 사회적 문제가 떠오릅니다. 친고죄일 때에는 저작권자가 고소해야 했으므로 형사 사건이 많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나 고소할 수 있는 상태가 되고 고소가 없이도 수사 개시할 수 있게 되니, 이를 활용하는 무리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즉 법무법인이 저작권 침해자를 적극 찾아 나서 법적 조치에 나서면서 혼란스러워졌습니다. 그 당시에 중고생들은 자기 홈페이지를 만들고 사진작가 등 다른 사람의 작품을 가져다 자기 개인 홈페이지에 올려 방문객을 손짓하는 데 활용하고 있었습니다. 법무법인이 이들에게 저작권자를 대신해서 경고장을 마구 날렸고, 경고장과 경찰서 출석 요구에 압박을 받은 중고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태가 전국에서 생겼습니다. 개인이 비영리로 남의 저작물을 사용하는 것은 저작권 위반이 될 여지는 적은데도 그 사정을 잘 알 수 없는 학생들은 법적 조치에 짓눌렸던 것입니다. 문제점을 인식한 시민단체(법률소비자연맹)가 나서서 저작권 침해를 원래대로 친고죄로 바꾸려고 애썼지만 아직 해결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특허권을 침해하면 형사 처벌할 수 있습니다. 특허권 침해죄를 저지르면 징역 7년 또는 벌금 1억 원 이하로 다른 범죄와 비교할 때 형량이 무척 높습니다. 이는 1900년대에 우리나라가 지식재산권 해적국이란 오명을 들을 때 외교 문제를 풀기 위해 의도적으로 높였다는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특허권은 재산권입니다. 특허제도가 발달한 외국에서는 형사죄를 적용하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형사 처벌제도가 없더라도 그런 나라에서 특허권을 제대로 보호하지 않는다고 하지 않습니다. 길게 볼 때 우리나라도 특허권 침해에서 형사처벌은 없애 나가야 할 것입니다.

특허권을 제대로 보호해야 한다는 방향에는 동의합니다. 그러나 이 명분으로 형사처벌을 강화하는 것은, 부작용이 걱정됩니다. 특허법에서 적용하면, 실용신안법, 디자인보호법도 잇다라 개정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 법이 시행되면 지식산업계의 반응을 어떻게 나타날지 세심하게 지켜봐야 합니다. 만약 부작용이 생기면 곧바로 바로잡아야 합니다. 이 법은 지식재산을 보호하는 장치이어야 하지, 어느 누구에게 먹이감을 주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 법 시행으로 형사조치가 난무하는 상황이 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자유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고영회

경남 진주에서 태어나 진주고(1977), 서울대 건축학과(1981)와 박사과정을 수료(2003)했으며, 변리사와 기술사 자격(건축시공, 건축기계설비)가 있습니다.
대한변리사회 회장, 대한기술사회 회장, 과실연 공동대표, 서울중앙지법 민사조정위원을 지냈고, 지금은 서울중앙지검 형사조정위원과 검찰시민위원, 대한상사중재원 중재인, 법원 감정인입니다. 현재 성창특허법률사무소 대표와 ㈜성건엔지니어링 사외이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mymail@patinf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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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안전특별법' 제대로, 확실히 만들자

최명기 공학박사 . 안전기술사


 

발주자, 건설회사 등 모든 관련 주체들 맡은 바 역할 다하도록 해야 함은 당연

안전사고 감소 위해 이행력 강화 위한 촘촘한 법망 설계 및 확인제도 도입해야

스마트 건설 촉진에 따른 미래의 사회변화 현상까지 고려해서 제정 필요

건설현장은 하나이다, 「산업안전보건법」에 있는 건설안전 법규까지도 포함해야



    최근 정부는 이천물류창고 화재 사고의 후속조치 일환으로 「건설안전특별법」 제정에 속도를 내고 있고 조만간 입법예고 될 전망이다. 「건설기술진흥법」을 포함해 「건설산업기본법」, 「건축법」, 「건설기계관리법」 등에 산재되어 있는 건설안전과 관련한 규정만을 모은 포괄적인 단일법으로 「건설안전특별법」이 탄생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법령에 어떤 내용이 담겨있는지 현재로서는 전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최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개최된 토론회에서 나온 이야기들을 종합해 볼 때 개략적인 방향을 추론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동안 당연한 관례처럼 행해졌던 건설현장 작업자의 안전을 희생해 비용과 시간을 절감하는 회사에 대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이 담겨질 것으로 보인다. 또한 낮은 가격과 빠른 속도만을 강조하는 관행을 뿌리 뽑고 안전은 비용이 아니라는 인식을 산업에 뿌리내리는 방향으로 「건설안전특별법」이 제정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건설공사 발주자의 안전책임을 강화하는 내용과 공사 인·허가권이 있는 지자체에게도 안전관리 책임을 부여하겠다는 내용이 특별법에 포함된다는 이야기도 들리고 있다.




건설공사 현장 내의 작업자와 인근 구조물, 제3자인 일반인들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발주자, 건설회사, 건설사업관리자, 인․ 허가기관 등 모든 관련 주체들이 맡은 바 역할을 다하도록 해야 함은 누가 뭐래도 당연하고 당연하다. 그러나 건설업 관련주체에서는 불만의 목소리도 심심치 않게 흘러나오고 있다.


예를 들어 가정에서 주부가 빨래하기 위해 세탁기를 제조사로부터 구매한다고 생각해보자. 세탁기에 대한 안전 확보는 당연히 제조사가 해야 한다. 그런데 안전에 대해 문외한인 주부가 안전까지 확보하라고 하는 격과 같다고 한다. 정부는 이런 점을 고려해 관련주체의 의견들을 충분히 청취하기를 바래본다. 안전과 관련해 통일된 법을 만드는데 의미를 두지 말고 실질적으로 안전사고를 절감할 수 있는 방향으로 특별법이 제정되기를 기원해 본다.


특별법이 제정된다면 건설회사 입장에서는 법적 처벌이나 비용감소를 위해 안전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경영을 하게 되는 긍정적인 효과는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어려운 건설경기 상황에서 수주를 위한 저가 입찰과 빠듯한 공기 내 시공, 하자소송, 기타 열악한 경영환경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건설회사들은 빠듯한 공기를 단축하고 안전사고 저감을 위하여 가능한 작업자들을 사용하지 않고서도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찾을 것이고,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기술들을 활용한 스마트 건설 기술들을 적극 도입할 것이다. 모듈화의 확산에 따른 건설의 공장화, 로봇 등을 활용한 기계화, 3D 프린터 등의 도입이 2030년 내에는 아마도 일반화 될 것으로 보인다.




기존의 작업자들을 대체하는 인력이 절감됨에 따라 안전은 당연히 확보될 것이고 생산성도 향상될 것이지만 현재 건설시공의 대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작업자들의 일자리는 상당히 줄어들어 사회 문제화가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또한 자동화나 기계화에 따라 지금은 예상할 수 없지만 새로운 안전 문제가 새롭게 떠오를 수도 있을 것이다.


「건설안전특별법」에는 현재의 건설여건이나 상황뿐만 아니라 스마트 건설 촉진에 따른 미래의 사회변화 현상까지 고려하여 안전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산업안전보건법」에 있는 건설안전 법규까지도 이번에 제정하는 특별법에 포함하여 담아낼 필요가 있다. 고용노동부에서 담당하고 있는 작업자 안전과 국토교통부에서 담당하고 있는 제3자 안전, 구조물 안전 등을 별개로 놓고 안전을 논할 수는 없다. 건설현장은 하나인데 정부부처가 다른 서로 다른 법들로 인하여 건설현장은 그야말로 죽기 일보 직전이다.


특별법을 제정하는데 있어서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실질적인 이행력 강화를 위한 촘촘한 법망 설계와 확인제도 도입이 필요하다. 빨리 만드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만들 때 잘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의 이야기를 듣고 많은 대화를 하고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수렴해 실질적인 안전사고 감소 효과가 나올 수 있는 특별법이 되기를 안전전문가로서 기원해 본다.

최명기 / 본보 안전 전문기자 . 국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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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풍백화점 사고에도 고쳐지지 않은 한국의 못된 관행

김종훈 한미글로벌 회장


땅집고가 이번에 소개해드리는 책은 김종훈 한미글로벌 회장이 펴낸 '프리콘(Precon): 시작부터 완벽에 다가서는 일(엠아이디)'입니다.


[땅집고 북스] 낮은 설계 품질


     우리나라에서 프로젝트 매니지먼트 같은 프로젝트 관리 방안에 대한 인식은 공공이나 민간을 가리지 않고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국내 발주자의 일반적인 인식은 설계는 설계사에서 하고, 시공은 시공사에서 도면대로 하면 된다는 수준에 그친다.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처럼 들린다. 하지만 당초 발주자가 세웠던 원가 목표, 공기 목표, 품질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완성도 높은 도면을 설계사에서 적기에 공급하지 못하는 것부터 근본적인 문제가 시작된다. 이러한 현상이 관행처럼 만연해 있고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기까지 한다.


[땅집고] 우리나라 설계 품질은 아직 선진 수준에 훨씬 못 미친다. /게티이미지뱅크


건설 프로젝트에서 설계 도면을 작성하는 행위는 고도의 전문적인 영역이고 잘못된 설계 도면으로 건물이나 시설물을 지으면 심각한 폐해를 초래할 수 있다. 과거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는 설계자 잘못이 초래한 엄청난 결과를 단적으로 보여줬다. 부실한 설계 도면이 공공 안전에 미치는 영향은 심각하다. 




우리나라에서 불건전한 설계 행태가 성행하게 된 근저에는 설계(디자인)적 가치를 중시하지 않는 문화적 배경, 질보다 양적 측면에 치우치는 사회적 제도와 산업적 배경, 여기에 더해 수주 위주 운영을 하면서 설계 품질을 높이려는 노력에는 소극적인 설계 회사들이 자리하고 있다. 설계자에게 법적 책임을 묻는 제도적인 틀이 미비한 것도 원인이다다. 이러한 관행은 설계비 수가가 선진국보다 매우 낮고, 그나마 낮은 설계 수가도 저가 경쟁과 덤핑 수주로 제살 깎아먹기가 보편화되어 있다는 점에서 비롯한다. 게다가 예술로 취급되어야 할 건축 설계나 엔지니어링 업무조차 수주 과정에서 일부 부패의 사슬에서 벗어나지 못해 올바른 경쟁을 무력화시키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땅집고] 1995년 서울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현장 모습. /조선DB


국내 설계 회사에서는 계획 설계(Schematic Design)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는 단계에서 공정별로 나누어 설계 하청을 주는 경우가 다반사다. 미국 등 건설 선진국에서는 설비, 전기, 구조 설계 등 엔지니어링 분야는 외주를 주기도 하지만 건축 설계는 거의 100% 자체 설계를 한다. 하청으로는 설계 품질을 보증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미국에서는 민간이든 공공이든 건물이 완공된 상태에서 사고가 발생했을 때에 설계 결함이 발견되면 여지없이 설계 회사에 중대한 법적 책임을 묻기 때문이기도 하다. 심지어 건물 외부 계단에서 넘어져 다친 경우에도 설계상의 오류가 있다고 판단되면 설계 회사를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한다.


국내에서는 설계 잘못에 대해 법적 책임을 묻거나 설계사를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하는 사례가 극히 드물다. 그런 탓에 설계 도면 생산이 대부분 영업이나 손익에 맞춰 이루어지고, 설계도 작성 과정에서 프로 정신을 찾아보기 힘든 경우가 허다하다. 설계 진행시 도면이 제대로 검토되지 않을 뿐 아니라 건축, 구조, 설비, 전기 도면 간 코디네이션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원가나 시공성이 검증되지 않은 미완의 도면들이 건설 현장에 공급되는 실정이다. 앞뒤가 서로 맞지 않고 완성도가 떨어지는 설계 도면이 시공을 위한 도면으로 공급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외국 전문가들은 직무 유기라고 표현하곤 한다.




시방서 작성은 설계사의 중요한 업무이고 매우 전문적인 영역인데도, 국내 설계업체에는 이를 전문적으로 작성하는 기술자가 없다. 그 결과 품질도 많이 떨어지고 시방서 자체를 중요하지 않게 취급한다. 하지만 외국에서는 설계, 시공, 원가, 자재, 장비, 공법에 통달한 전문가가 시방서를 작성한다. 그래서 내용이 매우 디테일하고 구체적이며, 특정 제품을 언급하며 언급된 제품과 동등의 제품(or equal)을 쓰도록 명기한다. 그래서 해외 프로젝트에서는 계약서의 우선순위를 규정할 때 통상 시방서가 도면보다 우선한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시방서에 언급되는 제품이 자재나 장비 납품업체의 로비 대상이 되기도 하고 부패가 개입되는 계기를 제공하기도 한다. 이러한 이유로 일부 발주자는 설계자에게 구체적인 자재 선정을 하지 못하도록 하기도 하는데, 이는 결과적으로 디자인의 일관성과 완성도를 제어하게 되며 결국 성공적인 결과 도출을 막는 원인이 된다.



건설사는 시방서나 도면이 불완전하거나 불충분하다는 이유를 들면서, 도면대로 시공하는 대신에 융통성을 발휘하거나 편한 방식을 적용해서 시공하기도 한다. 그 결과 설계사와 시공사가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면서, 프로젝트를 부실하게 만들고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한국의 글로벌 기업 발주자나 글로벌 건설 기업들조차 도면 없이 조각 도면으로 시공하는 것을 패스트트랙 방식이라 여기며, 공기 단축을 목표로 밤낮없이 돌관 작업을 일삼는다. 그 결과 설계 변경에 따른 재작업, 과다 또는 과소 설계에 따른 막대한 시행착오 비용이 발생하곤 한다.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프리콘 활동이 제대로 되지도 않고, 적합한 프로젝트 관리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주요 건물이나 시설물에 피어 리뷰(peer review) 제도가 적용되어 제3자 검증을 의무화하고 있으며, 상호 간의 책임과 역할을 엄격히 관리한다. 국내에서도 이를 본떠 이와 유사한 설계 검토 제도를 도입하였으나, 아직까지는 유명무실한 상태다. 또한 대부분 프로젝트가 설계와 시공이 분리되어 있고, 시공자가 설계 단계에 참여하는 IPD(협력적 프로젝트 수행 계약)나 파트너링 등의 선진 방식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러한 선진 방식 도입 시 프리콘 활동을 가능하게 하여 설계 품질 향상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


국내의 설계 품질이나 경쟁력 수준을 종합적으로 평가하자면, 선진 수준에 비해 턱없이 낮을 수밖에 없다. 관련 제도와 발주자 및 관련 업계의 인식 수준이 뒷받침되지 않는 상태에서 저가 수주 경쟁의 결과로 빚어진 낮은 설계 품질이 우리 건설 산업의 경쟁력을 낮추는 데 결정적인 시발점이 되고 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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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을 위한 기술적 판단의 최종 책임자 누구인가?

이석종 구조기술사


    최근 공공시설을 설계 또는 시공하는 과정에서 기술적 결정을 누가하는 것이 맞냐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일부 발주처들이 감사를 통해 실무부서에서 결정을 내린 기술적 사항들에 대해서 잘못된 결정을 했다면서 지적하고 설계자에게 벌점을 부과하거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조달청 Twi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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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지니어링 업계에서는 감사들이 기계적으로 또는 실적쌓기용으로 지적을 남발하고 있다면서 반발하고 있다. 이런 논란은 자연스럽게 최종적인 기술적 판단의 주체가 누구냐는 논의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전문가들은 설계라는 것은 칼로 무 자르듯이 명확한 것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많아서 기술적 결정을 해야 하는 경우가 있는데, 누가 최종 결정을 내려야 하고,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를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토로한다. 




최근 A 프로젝트 설계를 발주한 B공사 감사실은 지하차도 진입부 유타입(U-Type)옹벽 구간의 토압을 자사의 지침을 따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설계자는 B공사의 지침에 오류가 있다면서 따를 수 없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논란이 된 내용은 토압의 크기에 관한 것이다. 땅 아래 쪽에 설치되는 유타입 옹벽에 작용하는 토압의 크기를 어떻게 볼 것인가를 두고 감사실은 자사의 방침은 정지토압과 주동토압의 평균값을 쓰도록 하고 있으므로 이를 따르라고 지적했다.


반면 설계자는 설계기준에는 정지토압 또는 주동토압을 쓰도록 되어 있어서 두 토압의 평균을 취할 수 없다고 맞섰다. 


이에 대해 본 지가 취재한 결과 B공사가 2016년에 발행한 연구보고서에 'U-type 옹벽이 변위를 허용하지 않는 구조물로 정의하고 정지토압을적용하는 것이 타당하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같은 발주처에서 서로 다른 결론을 내린 것이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기술적인 사항에 대해서 의견이 갈렸을 때 누가 결정할 자격이 있고,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결정을 해야하는지? 그리고 누가 결정한 사항에 대해서 책임을 지는 것이 맞냐는 것이다.


첫번째 질문은 자격에 관한 것이다. 누가 결정할 자격이 있는가?라는 이 질문은 기술적인 결정을 함에 있어서 누가 더 잘 아는가?라는 질문으로 바꿀 수 있다. 발주처 감사실 직원이 더 잘 아는지? 아니면 20년 이상 한 분야에서 설계를 한 엔지니어가 더 잘 아는지? 




두번째 질문은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결정을 해야하는가의 문제다. 기술적인 것이라고 해서 모두 1+1=2처럼 명확한 것은 아니다. 여러가지 이유로 명확하지 않은 것들을 만나게 된다. 그 때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결정을 하야할까? 


엔지니어들은 이런 상황에서 안전이라는 가치관을 기준으로 판단한다. 하지만 발주처는 특히 실적을 올려야 하는 감사실은 경제성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 서울시 감사위원회는 지하철 내진보강을 결정한 설계자에게 벌점을 부과하고 손해배상을 청구하도록 결정했다. 이 사업에 대해서도 엔지니어는 안전을, 감사는 경제성을 기준으로 판단을 한 것이다.


세번째 기술적 판단의 책임을 누가 지는가?이다. 서울시 지하철 내진보강 설계를 수행한 엔지니어는 "발주처와 협의를 했고 발주처가 요구하는 절차인 자문, 기술심의를 통과했는데 감사는 설계자가 독단적으로 결정을 한 것으로 판단을 했다"며 "이렇게 모든 책임을 설계자가 져야 한다면 협의, 자문, 심의는 아무 의미가 없으니 발주처는 일절 관여하지 않는 것이 맞다'라고 항변했다.


한편 건설기술진흥법에는 ' 다리, 터널, 철도, 그 밖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시설물의 구조에서 주요 부분에 중대한 손괴(損壞)를 일으켜 사람을 다치거나 죽음에 이르게 한 자는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라는 내란죄에 버금가는 벌칙 조항이 있다. 이법에서 말하는 '사람을 다치거나 죽음에 이르게 한 자'는 아무래도 감사 담당자나 사업부서 담당자는 아닐 것이다. 실제 실무를 담당한 설계, 감리, 시공 엔지니어가 될 가능성이 높다.




안전을 책임지는 사람이 권한도 행사해야 더 안전한 사회가 될 것이다. 기술적으로 더 잘 아는 사람이 결정을 해야하는 것도 당연하다. 시민의 안전을 위해서 책임은 엔지니어가 지고 권한은 발주처가 행사하는 잘못된 관행을 하루 속히 뿌리뽑아야 한다. 


이석종 구조기술사

한양대학교 겸임교수 건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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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뉴딜`의 성공, AI 기술 도입 속도에 달렸다

김동현 오토데스크코리아 대표


    정부가 코로나19 이후 경기 회복을 위한 국가 프로젝트로 한국판 뉴딜을 발표했다. 디지털 뉴딜과 그린 뉴딜이 그것이며 미래 먹거리 창출을 위한 선도형 경제, 기술 융복합과 저탄소 경제, 그리고 이를 통한 미래 일자리 창출을 골자로 한다. 한국판 뉴딜을 위한 첫걸음으로 국가와 기업들의 혁신 기술 도입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 본다.




최근 컨설팅 기업 액센츄어는 `AI가 미래 성장을 주도하는 이유(Why Artificial Intelligence is the Future of Growth)` 보고서를 통해 인공지능(AI)이 미국, 독일 등 주요 선진국의 경제 성장률을 두 배 이상 높이고 노동 생산성은 최대 40% 향상시킬 것이라고 예측했다. 사람들이 비즈니스 성장을 위한 더욱 가치 있는 일에 집중하도록 AI가 일하는 방식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해외 글로벌 기업들은 AI와 같은 혁신 기술을 내세워 스마트, 저탄소·친환경 산업으로 전환에 나서고 있다. 특히 생산의 기본이 되는 설계 단계부터 AI 기술을 도입해 업무 효율성과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친환경 공정을 통해 환경문제 해결에도 기여하고 있다.


일례로 에어버스(Airbus)는 혁신 기술을 활용한 항공기 부품 경량화로 205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절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를 위해 2015년 AI 기반 설계 기술을 도입했다. 이는 설계자를 대신해 AI 기술로 항공기 파티션 설계를 직접 실행한 업계 최초의 시도였고, 결과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사람의 안전과 직결되는 항공기의 까다로운 설계 조건을 충족시키면서 무게는 50%나 줄였다. 에어버스는 해당 파티션을 사용해 연간 46만5000메트릭톤(metric tons)의 탄소 배출량을 절감할 것으로 내다봤다.




폭스바겐은 전기차 부품 제조에 AI 기반 설계 기술을 활용했다. 연료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초경량 고강도 부품 제작이었다. 그 결과 2019년에 콘셉트 전기차 `타입(Type20)`의 휠 중량을 18% 절감했다. 그뿐 아니라 당초 개발에 1년 이상 걸릴 것으로 예상했으나 AI 설계 기술로 단 3~4개월 만에 이뤄냈다.


두 사례 모두 AI 기술을 기반으로 컴퓨터가 사용자 요구에 맞는 설계 옵션을 생성·산출해주는 오토데스크 제너레이티브 디자인(Generative Design) 기술을 사용했다. 이를 통해 스마트, 친환경 생산을 실현하고 생산·운영 비용도 절감할 수 있었다. 이는 우리 정부와 기업들이 한국판 뉴딜 프로젝트를 통해 얻고자 하는 선도형, 저탄소 경제 실현과 같은 맥락이라고 본다.


Why Artificial Intelligence is the Future of Growth/Accen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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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에서는 이 같은 혁신 기술이 사람들의 일자리를 위협한다는 다소 우려 섞인 목소리가 있다. 단순히 설계자의 설계 업무 관점에서 본다면 그렇겠지만, AI 기술을 효과적으로 운영하고 보다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분야에 사용하면 기업 경쟁력 제고와 고용 측면에서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본다. 산업 현장에서의 적극적인 기술 도입에 따라 기계학습이나 데이터 전문가, 제너레이티브 디자인 엔지니어 등 기술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일자리가 계속해서 생겨날 것이다.




컨설팅 기업 딜로이트는 `제조업의 미래(The future of work in manufacturing)`를 발표하고, 기술 발전으로 인한 일자리 감소보다 새로운 일자리 창출 비율이 더 높을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제조 산업 일자리는 지속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다만 숙련된 기술을 갖춘 전문인력 부족으로 2028년까지 일자리 240만개가 비어 있을 것으로 예측했다. 기술 발전으로 인한 일자리 부족이나 스킬 갭이 아닌, 미래 제조 산업이 필요로 하는 기술 인력 부족에 대한 사회문제가 더 커질 것으로 우려된다.


곧 다가올 미래에 직면할 이 같은 문제에 대비하고 성공적으로 한국판 뉴딜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정책 지원뿐만 아니라 오토데스크와 같은 소프트웨어 기업들 역할도 중요하다. 제너레이티브 디자인과 같이 생산의 밑거름이 되는 AI 설계 기술을 적극적으로 시장에 알리고, 현장에서 활용하도록 지원해야 한다.


특히 규모와 상관없이 기업들을 위한 기술·교육 지원을 통해 국내에서도 스마트, 저탄소·친환경 산업을 가속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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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상] 못 버틴 섬진강 제방

한삼희 선임논설위원


    "말이 아니지 속은, 그러나 하늘이 그런 걸 내가 뭐라고는 못 하겠고, 몸만 나왔어요." 


그제 저녁 TV 뉴스에 나온 섬진강변 외이마을 노인은 범람한 강물 위에 지붕만 둥둥 뜬 동네 풍경을 가리키면서 겉보기엔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자연에 순응하려는 어르신의 마음가짐이 찡했다. 화면엔 소들이 머리만 간신히 물 위로 내놓고 축사 안에서 버둥대는 모습이 비쳤다.


칼럼 관련 일러스트


남원시 금지면의 섬진강 제방이 터져 일대가 물바다가 됐다. 

영·호남 모두 폭우가 온 것은 같은데 낙동강·영산강은 버텼고 섬진강 제방은 무너졌다. 그러자 소셜미디어를 통해 '섬진강은 4대강 사업에서 빠져서 그런 것'이라는 주장이 퍼지고 있다. 충분히 그런 말이 나올 상황이라 생각한다. 4대강 사업은 강바닥 준설로 물그릇을 키워 가뭄에 대비하고, 제방을 보강해 홍수를 견디고, 보(洑)를 쌓은 후 수문을 달아 물 흐름을 통제하는 세 가지가 목적이다.


한강·낙동강·금강·영산강은 4대강 사업에 포함됐지만 섬진강은 제외됐다. 

이명박 정부 시절 4대강 사업 본부장을 맡은 심명필 인하대 명예교수는 "지역에선 4대강 사업에 끼워달라는 얘기가 많았지만 환경 단체 등에서 반대했고, 풍광이 훌륭한 섬진강은 있는 모습 그대로 보전하자는 의견이 많았다"고 했다.




문화일보가 2017년 5월 재해 연보를 분석해 4대강 완공 이전(2006~2012년)과 이후(2013~15년)의 자연재해 피해 규모를 비교해 보도한 일이 있다. 

그 결과 연간 사망·실종자는 사업 이전 30.3명에서 이후 2명으로 줄었고, 이재민은 연평균 2만6000명에서 4000명으로 감소했다. 자연재해에 따른 침수(浸水) 면적은 357분의 1로 급감했다. 문화일보는 전문가를 인용해 "4대강 사업 후 피해가 준 것은 확실히 맞는다"고 했다.


유실된 섬진강 제방/ytn


유실된 섬진강 제방/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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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감사원은 현 정부 출범 후 시행한 역대 4번째 감사에서 4대강 사업에 든 총비용은 31조, 편익은 6조6000억원이라고 발표했다. 

특기할 것은 홍수 예방 편익을 '0원'으로 잡은 점이다. '사업 완공 후 비가 적게 내려 홍수 피해가 줄었다는 증거를 확인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감사원 역사에 기록될 만큼 기가 막히게 비틀어 갖다 맞춘 설명이었다. 그때 분석을 맡았던 전문가들도 최근 10여 년 사이 수해 의연금 모금이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다는 것은 인정할 것이다. 4대강 사업에는 그늘도 있고 양지도 있다. 두 측면을 모두 보고 균형 있게 얘기해야 공정한 판단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다.

조선일보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8/10/202008100001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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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ECD 최고 수준 건설 현장 사고 왜 자꾸 일어나나

강제상 경희대 행정학과 교수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주인공 의사가 보여준 인간적인 면모와 더불어 일상적인 책임을 충실히 다하는 전문가다운 모습이 시청자들 마음을 움직인 경우였다. 지난 4월, 38명 생명을 앗아간 이천 물류창고 화재 사고를 살펴보자면 건설 현장에서 '슬기로운 안전생활'을 실천하는 전문가란 무엇인가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지난해 한 해에만 건설 현장에서 428명이 소중한 생명을 잃었다. 1년 365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1명 이상 사망자가 나온 셈이다. 노동자 1만명당 사고 사망자 비율인 사고사망만인율은 OECD 최고 수준이다. 산재로 인한 경제적 손실 규모 역시 매년 증가하고 있다. 자연재해보다 16배 많은 규모라고 한다.


정부도 사고 때마다 발 빠르게 대책을 내놓긴 하지만 기대만큼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번 이천 화재 사고 이후에도 관계 부처 합동으로 건설 현장 화재 안전 대책을 발표했다. 적정 공사 기간 산정 의무화, 안전 전담 감리 제도 도입, 안전 관리 불량 업체 명단 공개 등을 비롯, 산업재해 등 다수 사망자가 발생한 다중인명피해범죄에 대한 특례법 제정을 추진하고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건에 대한 구형 기준을 강화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이런 대책이 현장에서 실효성 있게 자리 잡으려면 몇 가지 더 필요한 요소들이 있다.




첫째, 대책은 건설 현장에서 발생하는 문제점들을 구체적으로 반영해야 한다. 2008년 이천 냉동창고 화재 사고와 달리 이번 공사 구조는 발주사가 전문 건설사업관리(CM·Construction Manager)사와 '건설관리형 공사감리계약'을 체결하고 시공사 선정에서부터 기간, 품질, 안전, 위험 요소 관리 일체를 맡기는 구조로 진행됐다. 발주사는 건설공사에 대해 무지했고 전문CM사가 공사 전반을 관장했는데 사고가 나면 대부분 비난은 발주사에 돌아간다. 이런 구조에선 전문CM사의 도덕적 해이를 막을 수 없다. 전문 CM사가 일상 책임을 소홀히 할 경우, 어떻게 책임을 질 것이며 어떤 방책이 있는지 구체적으로 적시해야 한다.


둘째, 서류 위주로 이뤄지는 현장 안전 감독을 현장 위주로 전환할 수 있도록 규제 기관 인력을 확보해야 한다. 이번 이천 사고 현장에서는 시공사가 서류상 약속과는 달리 협력 업체를 운영하고 관리하면서 일상의 안전 수칙을 지키지 않았다. 협력 업체가 불법 하도급을 주고, 하도급 업체가 안전 관리 없이 작업을 하는데 지방자치단체 등 규제 기관 현장 지도는 서류 중심으로 이뤄져 실효성이 부족했다. 이런 기초적인 공사 현장 안전 관리가 충실히 이뤄질 수 있도록 현장 중심형 안전 전문가를 육성하는 양적·질적 보완책이 병행되어야 한다.


셋째, 안전은 기업은 물론 정부, 개인이 모두 함께 지켜야 할 사회적 가치다. 사실 현장에서 일하는 근로자와 현장 감독자 안전 의식이 없이는 어떠한 규제도 요식행위에 불과하다. 이런 공백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건설업체 스스로 안전하게 작업할 준비가 되지 않은 협력 업체나 작업자는 현장에 투입하지 않고, 근로자도 안전이 보장되지 않은 작업 환경이라면 작업을 거부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




'슬기로운 안전생활'은 이 같은 현장 안전 의식 변화가 일하는 방식 변화, 관리 방식 변화로 이어지면서 새로운 안전 문화가 정착할 때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변화는 궁극적으로 기업 경쟁력을 강화하는 주춧돌이 될 것이다.

조선일보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8/03/202008030365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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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건설기술제도의 역할과 위상에 대한 고찰

권완택 서울시 기술심사담당관 


기술직 공무원 직무역량 높이고, 현장과 제도간 간극 좁혀야


권완택 서울시 기술심사담당관.


    세계적 경제 불황과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사회적 불안이 확산된 요즘 건설업 경기 또한 회복의 기미를 쉽게 보이지 않고 있다. 특히, 직격탄을 맞고 있는 자영업, 소상공인과 마찬가지로 중・소규모의 용역・시공사 등 건설업체들도 이러한 장기 불황에 대한 대응은 쉽지 않은 실정이다.


올해 서울시는 도로・철도 분야 등 주요 SOC 사업에 1조1,000억원을 투자해 기반시설 확충 및 경제 활성화, 일자리 창출을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신규 사업 발굴 또한 힘쓰고 있다. 재건축, 재개발 등 민간부분과 더불어 공공분야에서도 수많은 건설 용역과 공사가 발주돼 낙찰, 계약이 이루어지고 있긴 하나,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 환경과 진보하는 기술 속에서 우리 건설기술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에 대한 고민은 항상 끝이 없는 것 같다.


서울시 기술심사담당관은 그런 고민의 중심에 서서 건설기술관련 각종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도로, 구조, 건축 등 분야별 전문가 228명으로 구성된 지방 건설기술심의위원회를 구성해 연평균 약 200건(2017~ 2019)의 건설기술심의를 운영하고 있다.




기술용역 발주 전 타당성심사와 용역발주 심의를 통해 용역수행의 필요성과 대가 및 과업내용의 적정성을 검토하고 있으며, 사업부서의 설계 과정에서 설계의 경제성(VE) 검토 및 기본설계 심의, 공기 적정성 심의 등을 운영하며 내실 있는 설계가 될 수 있도록 조력자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설계・시공 사후평가, 터널, 고가차도 등 시설물 정밀안전진단 심의를 통해 공사 준공 이후 유지관리까지 건설사업 일련의 과정에 참여해 성과물의 완성도를 높이는 업무를 하고 있다. 


서울시는 건설기술진흥법 및 그 하위 법령, 조례에 근거를 둔고 건설기술관련 제도를 운영하면서 상위 법에서 다 담지 못한 제도의 미비점을 보완하기 위해 항상 깊은 고민과 제도 보안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특히, 그동안 서울시는 설계 경제성(VE) 검토와 설계심의 업무가 원가심사 부서(계약심사과)와 기술심사담당관으로 이원화돼 있어 업무의 연속성이 떨어지는 문제가 있어 왔다. 문제 해소를 위해 2020년 조례 개정을 통해 ‘설계 경제성 검토 소위원회’를 구성하고 기술심사담당관으로 업무를 일원화시켜 설계의 일관성을 강화할 수 있게 됐다.


2019년 4월 신설된 제도인 ‘공기 적정성 심의’는 대형공사의 불합리한 공사기간 산정을 예방하고 시설물 품질 향상 및 안전 확보, 발주자와 시공자 사이의 공정한 계약관행 정착 기능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서울시만의 자재・인력 수급 실태, 교통처리 등 실제 현장여건 및 시공방안에 대한 논의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아 형식적 심의 운영의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기술심사담당관에서는 개선방안 마련을 위해 내부 방침을 수립했다. 본심의 개최 전 유사 공종의 우리시 대형공사 현장에서 근무하는 현장소장, 공사・공무팀장, 감리원이 참여하는 실무검증위원회를 2회 개최해 심의의 내실화를 도모할 수 있도록 했다. 



2020년 서울시는 대형공사 일괄입찰, 기본설계 기술제안 입찰 등 기술형 입찰 설계평가를 위해 엄격하고 공정한 선발 절차를 거쳐 내부 공무원과 외부전문가 70명으로 구성된 설계심의분과위원회를 구성했다. 임기는 올해 말까지 1년이다. 2020년 강동자원순환센터(3월), 동부간선(창동~상계간) 지하차도(7월), 영동대로 광역복합환승센터(토목, 12월)를 추진하고 있으며, 2021년에는 영동대로 광역복합환승센터(건축, 2월), 지하철 9호선 4단계 연장(4월)에 대한 설계평가가 예정돼 있다.




우리시는 과거 기술형 입찰이 지닌 부정적 인식을 완전히 불식시키기 위해 공정성과 투명성, 무관용을 3대 원칙으로 삼고 있다. 평가위원 선정시 서울시 감사실 입회, 심의위원 감찰활동 강화, 입찰업체 접촉 차단 등 공정성을 확보하고, 평가 시 감사옴부즈만 감시, 공동설명회 개최, 위원별 평가점수 공개 등 완벽하고 투명한 평가회의를 운영하고 있다. 또한, 부정행위 및 비리행위 업체에 대해서는 입찰참가 제한 등 단호하고 엄격하게 제재할 계획이다. 


그간 건설기술 제도들을 운영하면서 다양한 개선의 노력을 해왔다. 건설기술자와 업체의 입장에서 최대한 고민을 함께 하려고 하며, 좋은 제안이 있으면 귀 담아 듣고 상호 발전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공사 착공 전까지는 수없이 많은 검토와 심의, 평가가 수반된다. 엔지니어링 용역사가 그 역할의 중심에서 많은 기관과 사람을 상대하게 된다. 하지만 현실을 반영 못한 대가로 인해 업체의 수익성 악화, 기술 서비스 질 하락, 고급인력 유입 감소, 결국에는 산업경쟁력 약화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다행히도 2019년 ‘엔지니어링사업대가의 기준’이 개정되고, 국토계획・교통 등 6개 분야에 대한 ‘엔지니어링 표준품셈’이 제정됨으로써 적정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겨났다.


서울로7017.


지난 6월 서울시에서도 용역비 과소로 인해 유찰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는 지구단위계획, 도시재생 등 도시계획 분야의 용역대가를 현실을 반영해 상향 조정하도록 산출기준을 개선했다. 하지만 아직도 일부 발주처에서는 대가를 과소하게 주는 사례가 있어 적정 대가가 지급될 수 있도록 인식 전환 등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건설공사 생애주기 중 초기 건설비용 만큼이나 보수비용, 인건비 등 많은 비용이 투입됨에도  검토 과정에서 쉽게 간과하는 부분이 유지관리일 것이다. 특히, 설계공모의 경우 수주 목적으로 경관, 미관 등 디자인에만 치중한 나머지 통상적인 시설물 점검이 불가능한 설계안이 설계심의에 상정되곤 한다. 구조적 역할이 중요한 부재들에 대한 접근성이 확보돼야 하나 외장재를 부착해 한계성을 드러낸 설계안에 대해

선 개선 방안을 검토하도록 요청한 사례도 있었다.


월드컵대교 공사현장.


건설기술 발전을 위해서는 기술직 공무원의 직무 역량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본다. 서울시는 역량 강화를 위한 직장내 교육을 활성화하고 있다. 연간 6회에 걸쳐 토목 및 건축직 직원을 대상으로 ‘공사관리실무 교육과정’을 운영하며 건설공사 계획・설계・시공・유지관리단계 업무 추진절차 및 안전・품질관리 등을 교육하고 있으며, 토목시공, 건설안전 등 기술사 수준의 전문과정 수업도 개설하고 있다. 특히, 이 수업은 자격증 취득을 원하는 직원들로부터 많은 호응을 얻고 있다. 또한, 계약금액 조정 요령, 신기술 활용방안 등 업무수행에 도움을 주는 교육을 정기적으로 시행해 수백명의 직원이 참여하고 있다. 최근에는 VE 업무역량 강화를 위해 기술심사담당관 전 직원이 건설 VE전문가 기본과정을 수료했다.




복잡한 사회 구조와 발 빠른 변화 속에서 건설기술도 신속한 적응과 대응이 필요하다. 건설기술 제도는 개선과 보완을 거듭하고 있으나, 아직도 실제 현장여건과 보이지 않는 괴리가 있으며, 한계도 분명 있을 것이다. 건설기술 제도가 이러한 거리감과 인식차를 좁혀 나가고 통제나 제약이 아닌 건설업 발전을 위한 실용적 도구로 활용될 수 있을 때, 그 역할과 위상이 빛을 발할 것이다. 이 점이 필자를 포함한 우리 건설기술자들이 풀어야 할 향후 과제가 아닐까 싶다.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나눌 때 분명 더 나은 건설기술의 성과물이 탄생할 것이고 시민의 삶의 질이 윤택해질 것이다. 코로나 종식과 건설 경기의 빠른 회복을 기원하며 건설기술의 더 나은 발전을 기대해 본다.

한국건설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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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암 칼럼] 탈현장 건축방식의 기대와 바람

한국건설기술연구원 김수암 선임연구위원


   최근 매스컴에서 많이 언급되는 건축·주택분야 키워드의 하나가 공장생산 현장조립의 탈현장(Off-Site Construction)건축방식일 것이다. 중소규모의 업체에서 시작된 모듈러 건축과 우리나라에서 1990년경에 많은 건설업체가 참여했던 PC(Precast concrete)건축분야다. 최근 모 건설업체에서도 모듈러 생산업체를 인수했고 PC주택도 다시 관심이 증가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 김수암 선임연구위원


탈현장 건축방식은 공장에서 부품이나 유닛, 유닛의 조합형태의 모듈을 공장에서 생산해 현장에서 조립·설치하는 방식의 총칭이라 볼 수 있다.


공장에서 구조체만 생산하는 경우도 있고 구조체부터 창호, 외벽, 설비, 마감까지 완성된 형태도 있어 범위가 넓다. 이 용어가 사용되기 이전에는 프리패브(Prefabrication)건축, 공업화(Industrialization) 건축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으며, PC건축도 이 부류에 속한다. 모두 현장시공을 기점으로 그 이전에 공장에서 부품형태든 모듈형태로 만들어 현장에서는 조립을 통해 완성하는 것이다.


부품은 기계분야 등에서는 공장에서 생산된 것이면 나사와 같은 것도 부품으로 보지만 건축분야에서는 어떤 기능을 수행할 수 있을 정도의 규모를 지칭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예로 기둥·보, 벽체, 문, 바닥, 천장, 화장실, 부엌 등 여러 자재들이 조합돼 하나의 부위를 형성하는 것을 말한다. 형태로 보면 기둥이나 보 같은 선 형태, 벽, 바닥, 천장 등의 면 형태, 화장실이나 부엌 등의 입체 형태로 구분한다. 모듈러는 이들의 조합으로 볼 수 있다. 건축재료 측면에서 보면 철재계통, 콘크리트계통, 목재계통 등으로 일반화돼 있고, 구조요소와 비구조요소의 구분은 없다.  




탈현장 건축방식의 초기사례는 180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1960년대에서 1970년대에 걸쳐 인구증가와 도시집중으로 인한 주택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대량주택공급 목적으로 유럽, 미국, 일본 등 선진국에서 확산된 방식이다. 획일적인 공간구성방식의 대량공급이 거주자의 요구 다양화에 대응하기 어려운 방식이라는 점에서 이후 급격하게 사라졌다.


우리나라에서는 1980년대 후반 1990년대 초 5개 신도시 건설과 맞물려 200만호 달성을 위한 수단의 하나로 전 세계의 PC건축방식과 개선된 방식이 총동원된 적이 있었다. 한 건설방식을 몇 개 업체가 도입해 시공한 경우도 있었고, 외벽만을 적용한 경우도 있었다. 일부업체를 제외한 대부분 업체가 대형패널방식의 벽식구조방식을 채택하고 있었고, 고정화된 획일적인 평면방식으로 공급했다. 일부업체에서 접합부의 시공불량이 사회 문제화됐고, 현장기능공들의 값싼 임금과 맞물려 현장 타설 철근콘크리트 벽식구조방식으로 현장은 일원화돼 PC건축방식은 정착되지 못했다.        


최근 건설현장의 현장시공에 따른 노동생산성의 한계, 기능 인력의 부족과 고령화, 외국인 기능 인력의 비숙련화에 따른 한계, 고용의 질적인 문제, 현장의 안전성 강화, 근로시간 단축, 공기단축과 건설비용의 절감 필요성 등 현장의 여건변화가 이뤄지고 있다. 이에 따라 공동주택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지하주차장과 옹벽, 고층·고소작업 부분인 옥탑층에 적용이 증가하고 있으며, 물류센터, 반도체 공장 등 비주택에서 많은 적용이 이뤄지고 있다. 최근 국가연구과제로도 모듈러 주택이나 PC를 기반으로 하는 연구단의 연구가 이뤄지고 있으며 다양한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여기에 4차 산업의 발달로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생산방식의 변화가 선진국을 중심으로 대두되고 있으며, 3D프린팅, 로봇, BIM 등의 발전으로 기존 건설시스템에서 탈현장 생산방식으로 전환이 가속화되고 있다. 건설산업 환경의 급격한 변화에 따른 기존현장 건설방식의 많은 문제점 개선과 더불어 생산방식의 혁신, 성능향상과 건설산업의 경쟁력 향상을 위해서도 최근 지향하는 탈현장건축방식은 분명 지향해야 할 방향의 하나로 보인다.


이런 점에서 새롭게 발전할 탈현장방식은 이전에 있었던 방식과 달라져야 할 것이다. 시대가 변하고, 주택환경이 달라졌고 도달해야 할 목표가 다른 이상 새로운 기술과 결합해 바람직한 방향으로 전환하는 초기단계에서 보다 발전적인 방향으로 추진돼야 한다.


우리나라의 인구구조와 가족구조가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고 10년 이내에 인구감소와 연계해 후속되는 가족구조·가구원수 변화가 예측되는 것과 연계해 생산방식의 혁신만이 아닌 사용과 유지관리의 혁신을 전제로 해 발전하도록 전환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첫째, 기존의 방식처럼 내력벽 방식·구조체 중심의 획일적인 공간구성은 지양해야 한다. 구조체는 건물을 지지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한 번 건설하면 변경하기 쉽지 않다. 더구나 벽식구조이면 더욱 그렇다. 공간의 가변성이 풍부한 방향으로 고려가 필요하다.


둘째, 구조체와 비구조체의 분리를 바탕으로 다양한 요구변화에 쉽게 대응할 수 있도록 사용과 리모델링 및 관리가 쉬운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 내장과 설비가 공장에서 미리 설치되면 현장보다 정교하게 설치가 가능하므로, 사용방식을 고려해 다양한 사용변화에 대응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 PC방식이라면 더욱더 구조체와 내장 및 설비는 분리가 용이하다. 내장과 설비는 구조체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수명이 짧다. 이를 수명차이와 사용방식 변화, 유지관리가 용이한 마감과 배치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포스코건설은 지하주차장의 이 회사가 개발한 지하주차장 공법이 국토교통부 신기술로 지정됐다고 최근 밝혔다. 사진은 마천지구 1단지 지하주차장 내 시범시공을 완료한 모습./비즈워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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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특히 PC를 중심으로 한 주택단지의 경우 현재도 일부 지하주차장은 PC화하고 있어서 상부구조와 연계를 가지는 기둥방식으로 할 경우 합리적인 배치에 따라서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진다. 




넷째, 장수명화 할 수 있도록 장수명 주택 인증제도의 연계성을 고려할 필요가 있고, 내구성에 대한 인증기준을 미리 준비할 필요성이 있다. 대규모 단지로 구성할 경우 1000세대 이상은 현재 장수명 인증제도의 일반등급이 의무화돼 있다. 1000세대가 넘는 단지의 일부로 시공되더라도 장수명 인증제도의 규정을 적용받지 않는다는 사항은 없다. 그런데 현재 내구성에 대한 기준은 현장타설 철근콘크리트만 대상이기 때문에 철골이든 PC든 목재든 간에 이에 대한 기준이 없다. 국가나 협회차원에서 선행적으로 검토해야 할 사항이지만 업체의 협력도 필요하기 때문에 준비가 필요하다.


다섯째, 구조체 부분뿐만 아니라 비구조체의 설비의 부품화와 더불어 연계된 산업으로 치수체계, 성능체계를 동반해 검토해야 한다.  


모처럼 새롭게 전환을 시작하는 탈현장방식은 분명 기존공법을 벗어날 수 있는 주택산업의 새로운 전환점이다. 지난날처럼 의욕만 앞서서 문제점을 발생시켜서는 안 된다. 탈현장방식이 장기간의 발전방향을 고려해서 정착돼 주택산업이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고,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출 수 있기를 기대한다.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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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부동산 정책 실패는 전세의 역기능 외면한 때문

조기숙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



어느 나라나 귀족의 부를 약탈해 궁핍한 평민들에게 재화를 나눠주었던 의적 이야기가 존재한다. 민초들은 영웅 한 명을 가슴에 담아 궁핍한 삶을 이겨낼 위안으로 삼았던 것이다. 영국 중세 시대의 로빈후드가 대표적이다. 우리 야사에는 유난히 의적이 많이 등장한다. 홍길동·임꺽정·장길산…. 그 만큼 선조들의 삶이 만만치 않았음을 엿볼 수 있다.

 

전세 낀 갭 투기에 대출·세제 혜택

다주택자에 조세피난처 제공한 셈


오늘날 더 이상 낭만적인 의적 이야기는 없다. 그저 영화처럼 도둑들이 있을 뿐이다. 현대 정부가 합법적으로 조세제도와 복지 정책을 통해 의적이 했던 부의 재분배를 적극 시행하기 때문이다. 문재인 케어를 비롯한 다수의 현 정부 정책도 부의 재분배에 기여하고 있다.

 

하지만 유독 부동산 정책에 관한 한 서민을 보호한다는 현 정부의 선한 의지를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의심이 그럴듯한 설득력을 갖는 건 구체적 사례를 보면 쉽게 이해가 된다.



 

우리 집에서 정부의 보호를 전혀 받지 못하는 사람은 지방의 원룸에 살며 대학원에 진학 중인 둘째 아들이다. 학비는 대출을 받았지만, 집세는 부모가 내준다. 수요·공급의 불균형으로 지방의 원룸 가격이 서울대 근처와 맞먹는다. 소득이 없는 아들이나 집세를 내주는 부모는 소득공제를 전혀 받지 못한다. 주거복지의 사각지대에 존재하는 것이다.

 

석사학위를 받고 대기업에 근무하는 큰아들은 회사 근처 원룸에서 생활하는데 연간소득 7000만원 이하에 해당해 최대 90만원의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다. 세후 소득의 3분의 1에 가까운 액수를 집세로 내는 청년이 돌려받는 세제 혜택은 턱없이 작다. 청년들에게 이 땅에서 결혼하고 애 낳으라는 말을 차마 할 수 없는 이유다.

 

시댁 식구들이 우리 집에 살게 되면서 공직자는 물론 공직을 했던 사람도 당연히 1가구 1주택이어야 한다며 10년 넘게 전셋집을 전전하는 우리 부부는 그나마 공적 혜택을 가장 많이 누린 편이다. 5억원을 신용대출하면 이율이 3.7%가 넘지만, 전세자금을 대출받으면 이율이 2.5%라서 우리 부부는 연 600만원 이상의 이율 차액을 공적 부조로 받은 셈이다.

 

그렇다면 주택 부자의 형편은 어떨까. 박근혜 정부에서 도입돼 현 정부에서 확대된 주택임대사업자 등록법(주임사법)은 어차피 전세를 끼고 갭 투기를 하는 다주택자에게 대출 특혜는 물론 엄청난 세제 혜택을 주었다. 특혜가 일부 축소됐지만 주임사법은 여전히 이들의 갭 투기를 가능하게 해 부동산 위기의 주범이 됐다고 다수의 전문가는 입을 모은다. 정부가 다주택 투기자들에게 합법적인 조세피난처를 제공한 셈이다.




나는 문재인 대통령은 물론이고 당(黨)·정(政)·청(靑)의 선한 의지를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다. 그나마 다주택 공직자들의 집을 처분하라는 결정도 민심에 민감한 정부였기에 가능했다고 본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정부는 서민의 전·월세 안정을 명목으로 서민의 고혈을 짜내 집 부자들에게 재분배하는 역(逆)로빈후드의 역할을 해온 것이다.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실패한 가장 큰 이유는 임대의 공적 기능을 하고 있는 월세와 달리, 금융이 미발달한 과거에 순기능을 했던 전세가 역효과를 내고 있음에도 이를 외면한 데 있다. 과거의 고정관념으로부터 사고 발상의 전환이 이뤄지지 않은 게 가장 큰 원인이다.

 

선진국에 전세가 없는 건 그럴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당정은 아직도 전·월세를 구분하지 않은 채, ‘임대차 3법’ 통과를 서두르고 있다. 이번 위기가 지속가능한 부동산 입법을 패키지로 통과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진 문재인 정부에게는 천운일 수도 있지만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다.

 

등산 중 조난이나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는 일이 많지만 대부분 대형사고는 1차가 아니라 2차 사고에서 일어난다. 이번 부동산 대책은 신중하고, 충분히 여론을 수렴해 준비해야 하는 이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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