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 현장에서 도망치는 경찰관 [방석순]

 

 

범죄 현장에서 도망치는 경찰관

2021.12.09

 

서울 고려병원 앞 작은 길(지금의 강북삼성병원 앞 송월길)을 건너려고 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섰습니다. 노폭이 좁아 한걸음에 건널 수도 있었지만 서울기상관측소에서 정동사거리 쪽으로 내려오는 승용차들이 줄을 이었기 때문입니다. 마침 사람과 차가 붐비는 출근시간이어서 경찰관 한 사람이 교통정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한참을 기다려도 차량 통행이 멈추지 않자 사람들은 짜증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그때 모여 섰던 가운데서 한 사람이 경찰관에게 다가서더니 따귀를 한 대 올려다 붙였습니다. “똑바로 해!” 그렇게 소리 지르고 그는 차량 행렬을 끊더니 휭하니 길을 건넜습니다. 느닷없이 따귀를 맞은 경찰관은 일순간 멍해져서 그 자리에 얼어붙었습니다. 그 바람에 사람들은 우르르 멈춰선 차량 행렬을 가로질러 길을 건넜습니다. 오래전에 들은 친구의 목격담입니다.

 

정복을 입고 근무 중인 경찰관을 때렸으니 반드시 공무집행 방해에 폭행에 여러 가지 죄를 물을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경찰관은 신분을 알 수 없는 행인의 서슬에 눌려 한마디 항의조차 하지 못하더랍니다. 그런 경찰관이 줄지어 내려오는 승용차들을 세우기도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 승용차에 또 어떤 고관대작이나 힘센 사람들이 타고 있을지 알 수 없는 일이니까요.

 

미국에서는 걸핏하면 경찰의 과잉 단속, 과잉 진압으로 말썽이 인다는데 우리네 사정은 정반대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복을 입고 근무하는 경찰관들을 어려워하기보다는 얕잡아 보는 편입니다. 심지어 범법자들이나 그런 위험군에 드는 사람들이 경찰을 ‘짭새’라고 조롱해 부르기도 합니다. 그런 수모를 감내하고 지내온 게 우리 민중의 지팡이 경찰이었습니다. 

 

범죄 현장에서 도망치는 경찰관

 

그런 경찰에게 검찰의 수사(지휘)권을 박탈해 독립적인 수사 권한을 부여하자는 게 현재 진행 중인 ‘검찰 개혁’의 골자입니다. 왜? 경찰의 힘이, 업무 능력이 남아 돌아서? 아닌 것 같습니다. 오히려 경찰이 만만해 보이고 훨씬 다루기 쉬운 조직이기 때문인 듯합니다. 고위 공직자의 비리에 대한 수사와 기소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맡기고, 검찰은 아예 관여하지 못하도록 하자는 것 역시 검찰 개혁의 주요 내용입니다. 왜? 너무 힘이 세진 검찰이 두렵기 때문일 것입니다. 누가? 일반 국민이? 천만에요. 제 맘대로 힘을 쓰고 싶고, 제 맘대로 돈을 주무르고 싶은 정상배들, 제 맘대로 주먹을 휘두르고 싶은 폭력배들 말고는 검찰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일반 시민들로서야 한평생 살아가면서 검사 얼굴 한 번 볼 일이 없을 것입니다.

 

 

 

경찰이 가장 우선해야 할 업무는 사건이 벌어진 후의 수사가 아닙니다. 사건이 벌어지기 전에 안전을 지키는 일입니다. 그런데 시민에게 닥친 위기 상황에서 경찰이 먼저 도망치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해외 토픽으로나 얻어들을 수 있는 이야기가 바로 우리 곁에서 일어난 것입니다.

 

이미 보도된 대로 지난달 15일 인천에서 층간소음으로 발생한 흉기 난동사건 당시 출동했던 남녀 경찰관들이 시민의 목숨이 경각에 달린 순간 사건 현장에서 이탈했습니다. 칼을 휘두르는 현장을 피해 도망친 것입니다. 남자 경찰관은 권총을, 여자 경찰관은 테이저건을 지니고 있었지만 무용지물이었습니다. 그들의 비겁한 행동에 격한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칼이 춤추고 피가 쏟아지는 상황은 참으로 무섭고 끔찍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도주한 경찰에게는 진압 과정에서 자신에게 돌아올 책임이 더 무섭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범죄 현장에서 범인을 제압하다 발생하는 상해에 대해서도 책임을 묻는 게 우리의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실제 위태로운 현장에서 범죄자를 진압하기 위해 무기를 사용했다가 거꾸로 범죄자의 바가지를 쓴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흉기로 경찰관을 위협하던 사람이 테이저건을 맞고 넘어지면서 자신의 흉기에 찔려 죽은 일이 있었습니다. 하늘나라 판사님은 그 상황에서 테이저건 사용은 불법이라고 판결했습니다. 범죄를 막으려던 경찰관이 졸지에 범죄인이 된 것이지요.

 

​시비를 가리기 어려운 사회적 분규에 위정자들이 우선 몰아세우는 게 경찰력입니다. 어떤 사태에서든 물리적 충돌에 대한 책임은 거의 경찰 쪽이 뒤집어쓰기 마련입니다. 화재로 건물이 불타고 사람이 목숨을 잃어도 재물 손괴에 대한 책임이 두려워 불법 주차 차량들을 헤치고 나갈 수 없는 것이 우리 소방관들입니다. 범죄의 피해자보다 범죄자의 인권을 더 소중히 여기는 듯한 나라가 바로 여기 우리나라입니다.

 

 

​결국 입으로만 공정을 외치는 위정자들, 가자미눈을 가진 고매한 인권론자들, 힘을 가진 자들이 우리 사회의 치안 일선을 담당하는 경찰을 그렇게 허수아비로 길들여 온 셈입니다. 범죄 현장에서 도망친 경찰관들을 감쌀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그러나 책임을 묻기 전에 맡겨진 일을 바르게 수행할 수 있는 합당한 권한을 부여하고 보장하지 않는다면 똑같은 해프닝이 재발할 수밖에 없습니다. 공권력이 무너지면 그 폐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올 뿐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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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방석순

스포츠서울 편집국 부국장, 경영기획실장, 2002월드컵조직위원회 홍보실장 역임. 올림픽, 월드컵축구 등 국제경기 현장 취재. 스포츠와 미디어, 체육청소년 문제가 주관심사.

 

2006 자유칼럼그룹

www.freecolum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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