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미술관 기증 작품 특별전을 보며 [정달호]

 

이중섭미술관 기증 작품 특별전을 보며

2021.10.07

 

서귀포 이중섭미술관은 작지만 강한 미술관입니다. 이중섭미술관은 서귀포를 찾는 미술 애호가들이 반드시 관람하는 미술관으로서 규모에 비해 많은 관람객이 오는, 전국에서 몇 안 되는 흑자 운영 공공 미술관입니다. 와서 보고는 많은 사람들이 이 미술관의 좁은 공간 때문에 불편함을 느끼는 것도 사실입니다. 건물도 초라하고 소장품도 풍부하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 예술가로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화가 이중섭의 이름을 내건 알찬 미술관이며 그의 작품을 감상할 뿐 아니라 그와 그의 가족이 피란시절에 거주하던 집이 함께 있어 그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곳입니다.

 

이중섭미술관이 서귀포 문화 아이콘 제1호임을 부인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이 미술관은 여느 미술관처럼 짜인 계획에 따라 어느 날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닙니다. 이중섭은 영양실조에 간염이 겹쳐 만 사십이 되던 해인 1956년에 쓸쓸히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후 이중섭을 기리는 전시가 서울 등지에서 몇 번 있었던 데다 1973년에 고은 시인이 '이중섭, 그 예술과 생애'를 출간함으로써 국내에서 이중섭이

 

이중섭미술관 뜰에 세운 조각과 이중섭의 시 '소의 말

 

 점차 크게 조명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 가운데 서귀포시는 1996년에 이중섭 거주지를 낀 거리를 '이중섭 거리'(나중에 '이중섭 문화의 거리'로 개명)로 명명하고 그 이듬해에 이중섭이 세 들어 살던 초가집을 복원하였습니다. 그러고 나서 수년 후인 2002년에 '이중섭 전시관'을 건립하였습니다. 놀랄 일이지만, 건립할 당시에는 이중섭 작품의 소장이 전무한 상태였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2003, 2004년 어간에 가나아트갤러리(대표 이호재)와 갤러리현대(대표 박명자)가 이중섭 작품 9점을 비롯한 미술 작품 120점을 기증하였습니다. 이로써 2004년 9월에 전문미술관으로 등록할 수 있게 되어 지금의 이중섭미술관이 된 것입니다. 말하자면 이중섭 작품 9점을 가지고 이중섭미술관을 시작한 셈이죠. 만일 그때 미술관을 짓지 않았더라면 통영이나 부산 어디든 이중섭과의 연고를 주장하는 다른 도시에서 이중섭미술관을 지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당시 서귀포시장들(오광협, 강상주)이 선견지명을 가지고 발 빠른 행보를 하였던 결과로서, 지금 이중섭미술관이 차지하는 위상을 생각하면 당시 관계자들의 비상한 노력과 열정은 칭찬받고도 남을 만합니다.

 

서귀포시는 이중섭이 6.25전쟁 중 원산에서 남한으로 피란 와서 1951년 초부터 일 년 가까이 서귀포에서 지내며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한 것을 바탕으로 그의 이름으로 된 미술관을 거주지 부근에 짓기로 한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이중섭의 예술과 예술혼을 기리는 한편 이 미술관을 서귀포의 문화 아이콘으로 만들어 도시의 격을 높이고자 하였던 것으로 봅니다. 또 이를 통해 관광객이 상당히 증가할 것으로 내다보았을 것입니다.

 

 

일단 미술관 이름은 근사하게 내걸었지만 알맹이인 이중섭의 작품이 태부족이라 미술관 관계자들(명목상 관장은 서귀포시장, 명예관장은 오광수 평론가, 실제 책임자는 전은자 학예연구사)은 미술관 탄생 이래 내내 작품 구입과 작품 기증 받기에 온갖 노력을 경주해야 했습니다. 다행히 추가적으로 기증하는 분들도 있었고 제주도와 서귀포시의 노력으로 어렵사리 예산을 확보하여 이중섭 원화를 꾸준히 구입하였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얼마전까지 은지화 25점을 포함, 원화 48점을 소장해오다가 이번 이건희 컬렉션 중 이중섭 원화 12점을 기증 받으면서 원화 총 60점을 소장하게 된 것이지요. 더 자세하게는, 은지화 27점, 유화 15점, 편지화 2점, 엽서화 10점, 수채화 2점, 드로잉 4점입니다. 다른 작품까지 하면 이중섭미술관은 미술 작품 총 3백여 점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이런 빈약한 미술 자산을 가지고도 이중섭미술관은 매년 수차의 기획전을 열고 부대행사로서 이중섭 오페라, 연극, 뮤지컬 등을 서귀포 예술의 전당에 올리도록 지원하였습니다. 아마도 그간의 노력이 돋보여 이번에 삼성가로부터 이건희 컬렉션 12점을 받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번 기증이 있었기에 '70년 만의 귀향--이건희 컬렉션 이중섭 특별전(2021. 9.5~2022. 3. 6)'도 개최할 수 있게 된 것이죠. 저는 13년 서귀포 체재 중 이 미술관의 모든 이중섭 전시를 거의 다 관람하고 2016년 서울 덕수궁현대미술관에서 이중섭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서 연 '이중섭 100년의 신화'전도 보았지만 이번 특별전이야말로 이중섭의 예술을 대중에게 더 잘 알리기 위해 이중섭미술관의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한 매우 잘 짜인 전시라고 봅니다. 

 

 

2층으로 된 미술관의 1층 전시실에는 이번에 기증된 이중섭 원화 12점과 함께 각 작품마다 자세한 설명이 붙어 있습니다. 대표 기증 작품인 '섶섬이 있는 풍경'은 70년 전 이 그림을 그린 바로 그 자리에서 찍은 섶섬 풍경 사진과 함께 나란히 전시되어 있어 특별한 감회를 일게 합니다. 다른 무엇보다, 이 작품이 70년 후, 그가 살며 그림을 그리던 그 장소로 돌아왔다는 것이 큰 의미가 있습니다.

 

섭섬이 보이는 풍경

 

그래서 이번 특별전의 타이틀도 '70년 만의 귀향'인 것이죠. 70년 만에 이 그림이 돌아온 것과 함께 작고한 이중섭의 예술혼도 함께 서귀포로 돌아온 것으로 생각되었습니다. 서귀포를 떠난 후에도 서귀포에 관한 그림을 많이 그린 걸 보면 이중섭만큼 서귀포를 사랑한 예술가는 없었다고 하겠습니다.

 

다른 그림들은 이미 잘 알려진 대로, 해변에서 아이들이 새 또는 물고기와 노는 모습, 가족이 함께 즐겁게 지내는 모습 등을 그린 것인데 대부분의 작품들이 바로 옆, 매우 작은 방에 같이 살면서 온 가족이 행복하게 지내던 짧은 시기에 그린 것들이라 그 작품들에서도 당시 가족의 삶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전란의 와중에 먹을 것도 없어 해변에 나가 게나 물고기를 잡아 먹어야 하는 시절 오로지 예술혼을 불태우며 화업에 몰두한 이중섭의 창작의지를 짐작하게도 해줍니다.

 

 

2층 전시실에는 이중섭의 전 생애에 걸친 작품활동을 평양, 일본, 원산, 서귀포, 부산과 통영, 서울 시절로 나눠 각 시기 대표 작품들과 함께 소상한 설명을 붙여 전시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그의 부인 이남덕(일본명 야마모토 마사코) 여사와의 인터뷰 기사까지 전시하여 기막히게 애절한 그의 생애를 엿볼 수 있도록 돼 있습니다. 나아가 새로운 미디어 기법을 활용하여 고해상도 촬영을 바탕으로 이번 대표 작품들의 디테일을 미세한 붓 터치까지 나타나도록 영상 제공함으로써 보다 관심있는 관람자들을 배려하였으며 그 옆에는 비록 작은 벽면이지만 아이들도 즐길 수 있게 '빛의 벙커' 식으로 벽에 확대 비디오 영상을 쏘는 등 다양하고 입체적인 전시를 하고 있습니다. 큰 공간에서 이 전시를 했더라도 아주 훌룡한 전시가 될 수 있었을 내용과 형식이었습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새로 알게 된 사실은 이중섭의 전매특허 같은 은지화 또는 은박지 그림에 관한 것입니다. 전시 중 물자가 달리고 재료를 살 돈이 없어서 은박지에 그림을 그린 것으로만 알았는데 이중섭은 원산 시절부터 은박지에 연필이나 못으로 그려왔다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시인이자 친구인 구상이 증언한 것처럼 그는 언제 어디서나 틈만 나면 그림을 그리는 화가였습니다. 다른 일을 하다가도 조금이라도 짬이 나면 본능적으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었으니 우선 피우던 담뱃갑에서 은박지를 빼내서라도 그 위에 생각나는 대로 그렸던 것이죠. 그야말로 그림狂이자 그림王입니다. 고흐에 비견할 비운의 화가이기에 더욱 '국민화가'라는 별칭이 어색하지 않습니다.

 

이중섭미술관이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장르는 바로 은지화로서 총 27점입니다. 전체 2백여 점으로 추산되는 이중섭 은지화 가운데 30여 점을 소장하고 있다면 가위 은지화 전문 미술관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은지화는 물론 이중섭의 창의적 미술 형태이지만 전시 설명을 보면 은지화는 일종의 선각화(線刻畵)로서 마애불 선각화와 금속공예의 은입사(銀入絲), 또는 고려청자의 상감기법과 유사한 것이라고 돼 있습니다. 이런 미술 기법의 전통에 따라 이중섭이 실용성 있게 고안해낸 것이 은지화입니다. 은박지 위에 못 같은 것으로 선을 새긴 후 물감을 바르고 마르기 전에 닦으면 선에만 물감이 들어가서 선각화가 되는 것입니다. (은지화는 1955년 대구 미국문화원 원장이 3점을 구입하여 뉴욕의 MOMA에 기증한 이래 그 미술관에 그대로 소장돼 오고 있음)

 

 

저 같은 단순 애호가의 눈으로 볼 때 이중섭의 작품에는 2개의 큰 소재가 있다는 생각인데 하나는 황소, 흰소 등 소 그림이며 다른 하나는 아이들과 함께 노는 물고기나 새와 같은 작은 동물들을 소재로 하는 은지화입니다. 물론 다른 서정적인 소재를 다룬 작품들도 많습니다. 이중섭미술관이 은지화는 충분히 소장하고 있는 편인데 유감스럽게도 소 그림은 복제된 황소 머리 그림 하나 외에는 원작이

 

흰소

 

한 점도 없다는 것이 큰 약점이라 하겠습니다. 이번 삼성가에서 기증 작품을 정할 때 아마도 이중섭미술관의 규모로 보아 소 그림을 전시할 공간이 부족함을 감안해서 소 그림들은 딴 데로 보내고 다른 그림 12점만 보낸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소 그림을 소장하지 못한 결점을 보완하기 위해 이중섭미술관은 소 그림을 구입 예산 확보를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적은 돈이 아니라서 미술관의 소망이 언제 이루어질지는 알 수 없습니다.

 

 

이제 이중섭미술관은 새로운 변모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미술관의 오랜 숙원이던 미술관다운 새 건물 신축이 이번 삼성가의 이중섭 작품 기증으로 급물살을 타게 되었습니다. 이중섭미술관은 이중섭 이름에 걸맞은 현대식 건물을 짓기로 하고 관계당국으로부터 예산을 확보하는 등 신축을 위한 본격적인 행보를 하여 조만간 국제공모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됩니다. 2, 3년 내 이 신축 건물이 완성되어 이중섭미술관이 새 모습을 띨 때 이 미술관은 서귀포의 문화 아이콘일 뿐 아니라 우리나라 아트뮤지엄(art museum)의 주요 아이콘으로 다시 태어날 것으로 기대됩니다.

 

차제에, 외람되지만 사계(斯界)에 정중한 권유를 하나 드리고자 합니다. 이중섭미술관이 국민이 찾는 진정한 이중섭미술관이 되려면 적어도 이중섭 미술의 트레이드마크인 황소 그림 한 점은 소장하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소 그림이 없는 이중섭미술관은 심하게 말하면 결격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국내에 이중섭의 황소 또는 흰소 그림을 여럿 보유하고 있는 기관이나 개인 소장자께서는 이 절박한 문제점을 살펴서 이중섭미술관 신축 완공에 맞추어 소 작품 하나를 기증해주신다면 이 미술관을 찾는 뭇 이중섭 애호가들에게 보다 큰 만족을 줄 뿐 아니라 우리나라 미술애호가들이 이중섭미술관 하나만 보아도 이중섭에 대한 이해를 높이면서 이중섭 미술에 대한 사랑을 더욱 깊이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 이번 기증 작품 특별전을 보면서 이중섭미술관과 이중섭 미술에 대해 써볼 생각을 했으나 전자만으로도 분량이 많아 나머지 이중섭의 미술에 대해서는 추후 별도의 칼럼으로 다루고자 합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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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정달호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후 줄곧 외교관으로 일했으며 주 파나마, 이집트대사를 역임했다. 은퇴 후 제주에 일자리를 얻는 바람에 절로 귀촌을 하게 되었고, 현재 제주평화연구원 객원연구위원으로 있으면서 한라산 자락에 텃밭과 꽃나무들을 가꾸며 자연의 품에서 생활의 즐거움을 찾는다.

 

2006 자유칼럼그룹

www.freecolum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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