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블루베리 농부입니다(4) [함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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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블루베리 농부입니다[함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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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블루베리 농부입니다(4)

2021.10.02

 

패트리어트, 블루 크롭, 챈들러…

 

사과는 요즘 홍로가 제철이요 부사는 다소 이르다네요. 복숭아는 마도카, 천중도를 지나 만생종 앨버타가 자리를 지키고 있는 듯합니다. 블루베리 또한 이국적 이름의 매우 다양한 품종들이 있습지요.

 

농사 첫해엔 5품종을 심었습니다. (이미 말씀드렸듯이) 블루베리는 한 알 한 알 따야 하는 어려움이 있어 시차를 두고 수확할 요량으로요. 첫 줄엔 조생종 패트리어트(미국에서는 품종 이름에도 애국(愛國)이라는 표현을 쓰네요.)를, 다음 두 줄엔 조중생종 블루 레이와 블루 크롭을, 그 옆줄엔 중생종 토로를, 그리고 다섯 번째 줄엔 만생종 넬슨을 심었습니다. 그렇게 한 줄마다 15~16그루씩 36줄을 채웠지요.

 

 

화분에 심은 묘목만 보면 블루 레이인지 넬슨인지 이름표 없이는 구분이 불가능했는데, 해를 거듭하면서 품종별로 저마다의 개성을 드러내는 것이 초보 농부의 눈엔 그저 신기하고 놀라웠답니다. 마치 신생아들을 보면 얼굴이 비슷비슷해서 누가 누군지 혼돈되곤 했는데 점차 커가면서 복스러운 코가 탐나는 녀석, 커다랗고 까만 눈동자가 인상적인 녀석, 특별히 예쁜 구석은 없지만 매력이 넘치는 녀석들처럼 말입니다.

 

블루베리 열매의 대표적 특성 중 하나는 나무에 달려 있을 때만 숙성하는 것이랍니다. 바나나 토마토 복숭아는 덜 익은 걸 따도 온도에 의해 후숙(後熟)되어 알맞게 맛이 들지만, 블루베리는 나무에서 따는 순간 색깔은 변할지언정 맛은 절대로 들지 않아 90% 정도 익었을 때 따야(만) 싱싱하면서도 제대로 맛이 든 블루베리를 즐길 수 있습니다. 100% 익은 완숙과(完熟果)는 그 자리에서 먹을 수 있다면야 “따봉”이지만, 배송하게 되면 물러 터지거나 변색될 수 있기에, 상품성을 고려해야 하는 농장에서는 가능한 한 완숙과는 피하려 합니다.

 

업계의 비밀을 폭로(?)하자면요, 대형마트나 청과물 시장에 출하하는 경우는 아무래도 일정한 유통기한을 필요로 하는 만큼, 싱싱한 상태를 유지하고자 다소 덜 익은 열매(대체로 70% 수준에서)를 수확한다고 합니다. 하룻밤을 재워 두면 붉은색이 연한 보라색으로 변한다고 하네요. (국내산 사정이 이러한데, 저장성이 썩 좋지 않은 수입 생블루베리 상황은 어떨까... 싶습니다요.)

 

 

저희 농장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품종은 블루베리 특유의 새콤달콤한 맛이 일품인 넬슨입니다. 대신 넬슨은 처음에 익는 알들만 굵게 열리고 다음부터는 알 크기가 급격히 작아진다는 단점이 있구요, 송이가 달릴 때 너무 사이가 좋아 다닥다닥 붙어 있다 보니 적당히 잘 익은 열매를 따는 것이 은근히 까다롭습니다. 윗부분은 잘 익었는데 엉덩이 부분은 여전히 새빨간 경우가 다반사라서요. 패트리어트 또한 블루베리 특유의 새콤한 맛이 매력적인 품종인데, 넬슨과 마찬가지로 엉덩이 쪽을 확인하기 어려워 덜 익은 상태에서 따노라면 한 입 깨무는 순간 양 어금니에 침이 고일 만큼 시큼한 맛이 강하게 올라오는 아쉬움이 있답니다.

 

블루 레이나 토로는 블루베리 중 당도가 높은 품종으로, 열매 송이도 여유롭게 달려 엉덩이 부분을 쉽게 확인할 수 있어 따는 데 어려움이 없는 반면, 각종 벌레나 이름 모를 균에 상대적으로 약한 것 같습니다. 특히 토로는 따는 시기를 하루만 놓쳐도 완숙과가 되어 버리고, 완숙 상태의 토로는 문자 그대로 무미 무취 상태가 되어 버립니다.

 

모든 과일나무가 그러하듯 튼실한 열매를 수확하기 위해서는 가지치기는 물론이요 꽃눈과 열매 솎아주기가 필수입니다. 30년 복숭아 농장을 해오신 친지의 조언인즉, “가지치기든 열매 솎아주기든 주인의 마음으로 하면 안 되고 종의 마음으로 해야 한다”네요. 주인 마음이야 열매를 하나라도 더 얻고자 욕심을 부리지만, 열매를 직접 따야 하는 사람 마음으로 아낌없이 치고 가차 없이 솎아내야 굵고 알찬 열매를 얻을 수 있다는 겁니다.

 

 

한데 주인장 마음이 아니어도 초보 농부의 요령부득에 소심함까지 겹쳐 농사 초창기엔 작고 보잘것없는 알에 시큼한 맛이 달콤한 맛을 압도하는 실패를 거듭했었지요. ‘굵은 열매야 사람 중심의 생각에서 나온 것이고 블루베리 입장에서 보면 그대로 두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을까’ 못난 생각도 했더랬습니다.

 

이후 닥터 한 블루베리가 “고퀄”(제자가 가르쳐 준 말인데요, 고(高)+Quality의 합성어겠지요?) 반응을 얻기까지는 몇 번의 고비가 있었는데요, 지금 돌아보면 품종 개량과 수경재배용 유기농 비료에 아낌없는 투자를 한 것이 ‘신의 두 수’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지금 저희 농장에는 5품종에 더해 5품종을 보식하여 10품종이 사이좋게 자라고 있습니다. 보식한 품종은 블루칩, 챈들러, 드래퍼, 레거시, 에코타랍니다. 요즘 나온 새 품종들은 새콤한 맛보다 달콤한 맛이 더 강해졌고, 아주 굵은 건 500원짜리 동전만 하게 열릴 만큼 알이 굵어졌고, 송이가 널널하게 열려 따는 것이 수월해지는 방향으로 개량이 되었답니다.

 

**꿀팁: 한국에서 생블루베리는 6월 중순부터 7월 중순까지 한 달 정도, 아무리 길어도 6주가량이면 수확이 끝납니다. 저희 경험으로는 6월 마지막 주~7월 첫째 주에 수확하는 블루베리가 가장 맛이 좋습니다. 그때를 놓치지 마세요. ^^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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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미 에모리대대학원 사회학 박사. 이화여대 사회과학대학장 역임.

 

2006 자유칼럼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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