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코끼리 나니아 이야기 [김수종]




아기 코끼리 나니아 이야기
2021.09.28

중앙아프리카 내륙에 이름도 생소한 '부르키나 파소'라는 나라가 있습니다. 이 나라에서 새끼 코끼리 한 마리가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생후 한두 달 만에 엄마를 잃고 고아간 된 아기 암 코끼리를 마을 사람들이 구해내어 4년 동안 돌보며 키워내서 지역의 마스코트가 된 이야기입니다.


이 코끼리의 이름은 '나니아'입니다. 아기 코끼리는 2017년 9월 어떤 연유에서인지 엄마와 헤어져 '보로모'라는 마을의 숲속을 헤매고 있는 것을 주민들이 발견했습니다. 엄마를 잃은 지 며칠 된 듯 심한 탈수증으로 거의 거동하기 힘들 정도로 기진맥진해 있었습니다. 주민들은 아기 코끼리를 마을로 데리고 갔지만 어떻게 할지 몰랐습니다. 근처에 있는 자연보호 관청에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관청에서 아기 코끼리를 기를 공간을 내주고 우유를 먹였습니다. 주민들은 돈을 계속 모아 우유를 사다 주었습니다. 코끼리는  건강을 찾았습니다. 문제는 식성이 너무 좋아 우윳값을 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널리 알려 모금을 하며 우윳값을 마련해야 했습니다.

 


아기 코끼리 우리와 이웃해서 양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코끼리와 양은 아주 친하게 어울려 단짝이 되었습니다. 동네 아이들도 이 두 동물을 좋아했습니다. 이이들은 아기 코끼리에게는 '나니아'라는 이름을, 양에게는 '윌'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코끼리 사회는 철저한 모계 가족 공동체입니다. 코끼리 새끼는 태어난 지 2, 3년은 모유만 먹으며 자랍니다. 코를 사용해서 풀을 뜯어 먹는 것도 엄마를 따라 하며 배운다고 합니다. 엄마는 새끼에게 젖을 먹이기 위해 열심히 먹어야 합니다. 따라서 새끼를 위험한 곳으로 가지 못하게 하거나 가족과 떨어지지 않게 돌보는 것은 이모나 언니들의 몫입니다.
나니아는 이제 젖만 먹고 자라는 유아기를 지나 스스로 풀을 찾아 먹어야 하는 유년기에 진입했습니다. 주민들은 고민이 생겼습니다. 무작정 코끼리를 동네에서 기를 수가 없고 야생으로 돌려보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역의 자연보호 관청이 국제동물복지 재단에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그 복지재단의 프로그램 전문가들이 나니아의 야생 복귀를 돕기로 했습니다.

​전문가들은 나니아의 DNA를 분석해서 가족을 추적하고 있습니다. 주변 숲속에 널려 있는 코끼리 똥에서 DNA를 채취해서 나니아의 것과 유사한 것을 찾는 작업입니다.

 


전문가들은 나니아가 아주 귀한 코끼리 종류라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아프리카에 사는 코끼리는 거의 사반나 코끼리입니다. 그런데 나니아는 숲속에 사는 희귀종 코끼리였습니다. 개체 하나하나가 귀중한 존재라는 겁니다. 엄마와 떨어진 젖먹이 아기 코끼리는 혼자 두면 거의 생존할 수 없다는 것이 전문가의 견해이고 보니, 나니아는 행운아였던 셈입니다.

​대개 고아간 된 아기 코끼리 주변에는 엄마의 사체가 있게 마련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이 상아를 채취하기 위해 밀렵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니아가 있던 주변에 코끼리 사체는 없었습니다. 전문가들은 나니아가 가족을 따라 밤중에 강을 건너다가 낙오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근에 서식하는 40여 마리의 코끼리 중에 나니아의 엄마가 있는 것이 DNA분석결과 밝혀졌습니다.

전문가들은 나니아의 야생 복귀 가능성을 놓고 걱정합니다. 나니아가 가족과 떨어진 지 4년이 넘었기 때문에 가족을 만나도 혹시 알아보지 못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사반나 코끼리의 경우 한두 해 떨어졌다가 가족과 친구를 만나도 너무 좋아 흥분하며 소변을 누거나 서로 비비며 야단법석을 떤다고 합니다.    

 



실제로 나니아가 야생의 코끼리 떼와 조우한 적이 있습니다. 자연보호관청 관리자들이 나니아를 데리고 야외로 나갔는데 어둠이 깔리자 야생 코끼리들이 몰려들었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움막에 숨어서 나니아와 그들이 행태를 살펴보았습니다. 나니아와 야생 코끼리들이 서로 소리를 지르며 교신하다  코끼리 무리들이 나니아 곁을 떠나 사라졌습니다. 나니아는 그 후 이틀간 설사를 하며 크게 앓았습니다. 안 좋은 만남에 대한 신체적 반응입니다. 전문가들은 나니아와 야생 코끼리가 서로 무슨 말을 했는지 정확히 모르나 야생 코끼리가 나니아에게 "우린 널 원하지 않아"라는 신호를 준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코끼리는 육상에 사는 동물 중 몸체가 가장 큰 존재입니다. 그리고 매우 지능이 높은 동물입니다. 가족을 끔찍이 사랑하고 부모가 늙어 죽으면 일정한 기간을 두고 그곳을 찾아가서 애도하는 듯한 행태를 보이는 것이  아프리카 코끼리 연구가들에 의해 관찰됐습니다. 때로는 사람도 해치고 농작물도 파헤치는 등 피해를 주기도 하지만 옛날부터 코끼리는 상서로운 동물로 인간의 사랑을 받아 왔습니다. 그런데 코끼리 수는 줄어들기만 합니다.  

세계자연기금(WWF)이 수집한 데이터에 의하면 현재 지구상 코끼리 개체수는 50만 마리가 안 됩니다. 아프리카에 41만5,000 마리 정도 서식하고, 아시아에 약 4만 마리가 있다고 합니다. 100년 전만 해도 아프리카에 약 1천만 마리의 코끼리가 떼 지어 다니고 아시아에도 10만 마리 이상 서식했습니다.

 


현재 세계 인구는 거의 80억 명에 육박합니다. 100년 전 인구는 20억 명에 훨씬 못 미쳤습니다. 100년 동안 인구는 4배 이상 늘었고, 코끼리 수는 20분의 1로 줄어들었습니다. 야생 코끼리가 줄어드는 이유는 사람들이 상아를 얻기 위해 밀렵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지난여름 중국 윈난(雲南)성의 야생국립공원에 사는 코끼리 16마리가 공원을 탈출하여 도시와 도로를 가로지르며 무려 1,500㎞를 여행하다 원래 공원으로 되돌아가는 기이한 행태를 보여 전 세계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습니다. 인간을 향해 내 영역을 내놓으라는 시위를 한 것은 아닐까요.


사람들은 코끼리의 DNA를 분석해서 나니아의 가족을 찾아주려는 동물애를 발휘합니다. 나니아가 가족과 합류했다는 소식을 기대해 봅니다. 이제 과학기술의 발달이 인간이 자연을 적게 쓰면서 만족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과연 그게 가능할까요. 불가능하다면 100년 후의 어린이들은 코끼리를 옛 영화나 백과사전 속에서만 보게 될지도 모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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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김수종
‘뉴스1’고문과 ‘내일신문’ 칼럼니스트로 기고하고 있다. 한국일보에서 32년간 기자생활을 했으며 주필을 역임했다. ‘0.6도’ 등 4권의 책을 썼다.
2006 자유칼럼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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