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세계를 대하는 정치의 자세 [추천시글]

 

 

미지의 세계를 대하는 정치의 자세

2021.08.18

 

“잘 모르고 있는 걸 잘 모른다고 하는 게 솔직한 답변이다. 대통령이 모든 걸 다 잘 알 수는 없다. 대통령이 되면 실력 있는 인재들을 적재적소에, 지역이나 정파 관계없이 선발해 대처하겠다.” 기자의 물음에 이렇게 최재형 전 감사원장은 답했습니다.

“준비가 덜 되었으니 더 공부해 출마하라”고 비판에 나선 쪽은 내심으로는 모든 것을 다 알아야 한다며 만기친람(萬機親覽)의 제왕적 대통령을 꿈꾸나 봅니다.

 

​고 김영삼 대통령은 “머리는 빌릴 수 있으나 건강은 빌리지 못한다”고 명언했습니다. 국민은 지금 그 머리도 빌리지 못하는 파탄의 정치를 보고 있습니다. 건강에도 육체와 정신의 양면이 있죠.

 

 

존 볼턴 전 미 백악관 안보 보좌관은 작년 공개한 회고록에서 "내 판단은 항상 옳다. 무능하고 정신 분열적인 미국과 한국 정상이 북한 핵 폐기 협상에서 아무 성과도 거두지 못했을 뿐이다"라고 주장했습니다. 2018년 9월 29일 트럼프는 “그(김정은)는 나에게 아름다운 편지들을 썼다”, “우리는 사랑에 빠졌다”는 해괴한 말투로 자유민주 세계를 기만했고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들의 예견대로 북한 비핵화 실패를 깨닫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내년 3월 9일의 대선을 향해 뛰어든 신인 주자를 비난하는 기성 주자는 “나는 경제전문가야. 당신들은 아는 게 뭐지?”라고 경멸하는 듯,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갑자기 대통령이 되면 위험하다고 폭언했습니다. 직접 체험한 권력의 폭정과 탈법으로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하려고 가시밭길을 택한, 고명한 주자들을 비난하는 대선 재수 희망자는 “그럼 당신은 뭘 했는데? 미증유의 국난을 초래한 정권을 불러온 대통령 탄핵의 도우미질과 우익 분열 후보밖에 더 했어? 정계를 떠나라”라고 자신을 향해 쏟아져 온 비판은 모르는 걸까요? 여론조사를 보면 그는 여당 지지자들의 역선택으로 자당 집토끼들의 저미한 지지율을 끌어올리고 있죠. 차라리 지지자가 많은 여당 후보로 나서지 그랬어요. 경험이라면 대통령 자리에 최근접했던 사람은 대통령권한대행을 했던 황교안 전 총리 정도죠.

 

 

대체로 정치를 잘 안다는 게 뭘 잘 아는 건지 궁금합니다. 대통령은 작년 12월 9일 “코로나 터널의 끝이 보인다”고 오버했죠. 국무총리(정세균)는 올해 1월 8일 “수입 백신과 함께 국내 개발 백신으로 브리지 역할을 할 수 있다. 적절한 백신 물량은 4,400만 명분인데 전문가와 야당의 의견을 들어 5,600만 명분을 계약했다”고 국회 본회의에서 자랑했습니다. 안 오는 모더나를 재촉하러 정부 대표단이 방미한 거나, 5주 간격으로 늘어난 나의 2차 백신 접종 문자 알리미가 이 말의 허구성을 증명해줍니다.

 

당시 선진국들이 왜 인구의 5배, 7배나 되는 백신을 확보하는지를 묻는 야당 의원의 질문에 총리는 “그 나라에 가서 물어봐라. 우리는 필요한 양을 제때 확보한다는 것이 백신 확보의 전략이다. 많이 사면 폐기하게 되고 세금을 낭비하는 것”이라고 평범한 원론을 펼쳤습니다. 그는 팬데믹의 전문가가 아니므로 델타 바이러스나 3차 부스터 접종 개념을 알기 어려웠을 테지만 다국적 제약회사들이 먼저 권장했던 백신 물량 확보에 안이했다는 건 분명합니다.

 

미래 대응력이 결핍된 인사 참사에서 돌려막기, 코드, 보은, 회전문이 아닌 인재 위주의 팀플레이가 필요하다는 걸 절감합니다. 입법부, 행정부의 경력이 아무리 좋아도 나라의 할 일은 너무나 다종다양하고 또 늘 새로운 일이 생겨나기 때문에 정치인이 모든 것을 잘 알기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오늘날 문재인 치하에서 인사의 실패로 야기된 정치, 경제, 외교, 국방, 보건, 에너지 등 모든 분야에서의 파멸적인 국난이 이를 웅변해준다고 생각합니다.

 

중국의 지원 덕택에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이 될 수 있었던 에티오피아의 거브러여수스는 보건부 장관을 거쳤는데도 “코로나의 사람 간 전염은 없다"며 중국 여행을 제한할 이유도 없다는 등 여러 가지로 강변했습니다. 세계보건기구의 수준을 자국 수준으로 떨어트리나 우려했죠. 단정하지 말고 기다려야 했습니다. 청와대 방역기획관이 되기 전 기모란은 “백신 확보를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정치인 아닌 '전문가'들도 헤매면서 지금 세계와 우리나라 방역의 중책을 맡고 있으니 우습죠.

 

팬데믹 말고도 지구는 지금 재난 속에 있습니다. 그리스와 터키, 알제리, 미국이 초고온 기후에 초대형 산불로 국토가 불탔고 독일, 벨기에 네덜란드 등 유럽은 살인적인 홍수를 겪었습니다.

 

 

우리는 환경이 대체로 안전하다고 믿고, 인간의 지혜가 환경을 잘 통제하여 문제가 발생해도 잘 해결할 것이라고 낙관했죠. 그렇지 않았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창궐도 그렇지만 1989년 ‘역사의 종언’이라며 죽은 걸로 알았던 공산주의가 기승을 부리는 중국은 돈 좀 벌었다고 고개를 쳐들고 팬데믹을 은폐했으며 자유민주주의 국가들과의 갈등을 고조시키고 있습니다. 공자학원은 세계에 널렸다는데 그가 가르친 인(仁)은 어디에 있나요.

 

누구도 풀기 어렵습니다. 코로나가 언제, 어떤 형태로 끝날지, 전체주의가 어떻게 종식할지 누구도 모르죠. 혹시 지구는 이런 식으로 제3차 세계대전을 향하고 있는 걸까요? “누구에게도 지지 않겠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라던 부정적인 언사의 불길한 위력이 대단하다고 느낄 뿐입니다.

 

 

​영국과 미국에서 정치인들의 회동 때 마스크를 벗은 게 큰 자랑이라고 호들갑을 떨었지만 확진자는 폭증입니다. 정치인의 희망처럼 자연은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확증입니다. 우리는 6월 말 “접종 완료자는 노 마스크, 인원 제한에서 예외”로 할 것처럼 말하더니 곧 4단계 방역 강화로 급반전했습니다. 코로나 대책은 환기와 거리두기, 백신, 마스크라는데 백신은 아직 부족하고 땅속을 다니는 지하철엔 일회용 마스크 쓴 젊은이들투성이입니다. 푼돈 뿌리지 말고 K94 마스크나 넉넉하게 주세요.

 

​다음 경쟁까지 살아남기 위해 지지율이 높은 사람을 끌어내리려고 내부 총질에 전념하는 일부 야당 대선 주자들의 태도에는 미래와 겸손이 실종했습니다. 나는 아직 모른다고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게 아닙니다. "코로나 터널의 끝이 보인다"라거나 "코로나는 코리아를 이길 수 없다"는 말장난이 필요 없죠. 정치인은 언론과 마찬가지로 사실 앞에 겸손해야 합니다. 하나도 알지 못하는 것 같은데 거미줄 친 창고에서 끌어낸 듯한 화두에, 써준 냄새가 풀풀 나는 생경한 언어로 하는 연설보다 나는 모른다고 솔직히 인정하면서 출발하는 게 더 지도자답지 않나요.

 

​배움에는 끝이 없습니다. 다 안다고 교만 떨지 맙시다. 그래서 다 안다는 당신은 국가 사회에 무슨 기여를 했는지부터 말해보시죠. 혼자 다 아는 정치인은 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없습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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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김영환

한국일보, 서울경제 근무. 동유럽 민주화 혁명기에 파리특파원. 과학부, 뉴미디어부, 인터넷부 부장등 역임. 우리사회의 개량이 글쓰기의 큰 목표. 편역서 '순교자의 꽃들.현 자유기고가.

 

2006 자유칼럼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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