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퇴출 타워크레인, 두 달 만 신규 장비 등록... ‘부실 검증’ 논란

    안전기준을 위반한 제작 결함으로 건설 노동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뒤 사업 현장에서 퇴출됐던 소형 타워크레인 기종이 등록 말소 두 달 만에 신규 장비로 다시 등록된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더욱이 재등록 과정에서도 건설기계 결함 등 안전도를 평가하기 위한 정부 공식 심의기구를 거치는 게 통상적 관행인데, 이조차 건너뛰어 ‘부실 검증’ 논란이 일고 있다.

 

 6일 국토교통부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건설노조 타워크레인지부 설명을 종합하면, 지난해 2월 용산 케이티(KT) 데이터센터를 건축하는 공사 현장에서 와이어로프가 끊어지면서 철근을 떨어뜨려 아래에 있던 작업자를 숨지게 한 타워크레인 기종(DSL-4017) 7대 가운데 2대가 지난해 10월 신규 장비로 재등록됐다. 국내에서 사용 중이던 같은 기종의 타워크레인 7대 모두 와이어로프가 당시 철심보다 약한 섬유심으로 만들어져 철근 무게를 견디지 못하는 등 안전기준을 위반했고, 도르래(시브) 개수도 신고된 도면과 달랐다. 국토부는 문제가 된 타워크레인의 결함을 파악한 뒤 그해 8월 “제작 결함 타워크레인을 건설 현장에서 퇴출하겠다”며 직권으로 등록을 말소하고 같은 기종에 대해 국내 시장에서 판매중지 명령을 한다고 보도자료를 통해 알렸다.

 

 

 

그러나 이런 공지 두달 만인 지난해 10월 국토부 산하 기관인 교통안전공단과 대한건설기계안전관리원(안전관리원)은 퇴출된 기종 타워크레인의 소유주가 제출한 보완 자료를 도면 상으로 검토한 뒤 ‘신규 등록이 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타워크레인 소유주가 와이어로프를 철심으로 교체했고 도면도 실물에 맞게 수정했다는 이유였다. 도면과 실물이 같은지 확인하는 ‘실물 검사’ 절차는 민간 검사업체가 대행했다. 하지만 국내 7개 검사대행업체는 지난해 부실 검사로 영업 정지 처분을 받은 사례도 있다.

 

게다가 국토부는 건설기계관리법에 근거해 전문기관과 민간 위원 등으로 구성된 ‘건설기계 제작결함심사평가위원회’(심평위)를 따로 두고 있다. 현행 법령상 타워크레인의 신규 등록과 재등록 심의 때 심평위를 거치는 게 의무는 아니지만, 국토부는 통상 건설기계 관련 안전 사고가 발생하면 외부 전문가가 들어간 이 기구를 활용해 제작 결함 여부 등을 검증해왔다. 하지만 이번 용산 사고 기종 심의에선 이를 건너뛰었다. 국토부 관계자는 “타워크레인 결함이 과다하지 않아 심평위를 별도로 개최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사망 사고 직후 사업현장과 시장 퇴출이라는 처분까지 받았던 건설기계가 두 달 만에 상대적으로 ‘가벼운 결함’을 가졌다는 국토부 차원의 평가를 받은 셈이다.

 

앞서 정부는 지난 2017년 7명의 사상자를 낸 경기도 용인 타워크레인 사고 등을 계기로 전국 대형 타워크레인 위주로 일제 점검에 나섰다. 이어 타워크레인 노동조합이 소형 타워크레인에도 안전 대책을 세워달라고 요구하며 파업에 나서자 정부가 지난해 특별 점검에 나선 것이다. 그 와중에 지난해 8월 서울 용산 건설현장에서 소형 타워크레인 사망 사고가 나자, 처음으로 제작결함에 따른 등록 말소 조처까지 나왔다. 또 올해 2월엔 소형 타워크레인 특별점검 결과에 따라 120대의 등록을 말소했다.

 

 

하지만 당초 ‘등록 말소’ 제도 자체가 정부가 강조하거나 시중에서 인식하는 것과 달리 ‘퇴출’에 무게가 실린 조처가 아니다. 또 재등록 심의 등 후속조처조차 부실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올해 2월 특별점검 결과를 발표하며 “건설기계 안전 기준을 만족하지 못하는 장비는 강력히 제재하는 차원에서 직권 등록 말소하고 그 외의 장비는 시정조치해 안전성을 확인한 뒤 사용이 가능토록 한다”고 밝혔다. 이는 등록 말소 장비는 ‘시정조치가 가능한 대상’이 아니란 얘기로 들린다. 그러나 현실에선 등록 말소된 기계도 소유주가 서류를 보완해 오면 재등록 여부를 검토했다. 건설기계관리법은 등록이 말소된 타워크레인을 새로운 건설기계로 등록할 길을 열어두고 있다.

 

이에 건설 현장에선 “국토부 산하기관과 민간 검사대행업체가 한 ‘짬짜미’ 검증을 신뢰하기 어렵다”며 반발한다. 최동주 건설노조 타워크레인지부장은 “용산 건설 현장에 사용된 타워크레인은 처음부터 도면대로 만들어지지 않은 구조물이어서 한두가지를 시정했다고 다시 쓸 수 있는 게 아니다”라고 짚었다. 타워크레인 임대사 단체인 타워크레인협동조합의 한상길 이사장은 “도면 위주로 검증해선 장비의 결함이 실제로 시정됐는지 확인하는 데 제약이 있다”고 말했다.

 

 

이와 별도로 국토부 산하 안전관리원이 제작 결함이 있었던 타워크레인의 재등록을 검토하면서 안전성 검증에 소홀했던 정황도 있다. 준정부기관인 안전관리원은 새로 등록하려 하는 타워크레인의 도면이 안전 기준에 부합하는지, 도면이 실물과 일치하는지 등을 일차적으로 확인한다. 안전관리원은 지난달 24일 제작결함 심평위의 하위기구인 ‘타워크레인 안정성 검증 태스크포스’ 회의에 120대 타워크레인의 재등록 검토 자료를 제출했다. 이들은 올해 2월 발표한 특별점검 결과에 따라 등록 말소 대상이 된 기계들이다. <한겨레>가 박상혁 의원실(더불어민주당)을 통해 입수한 자료를 보면, 안전관리원은 타워크레인 소유주가 제출한 보완 사항을 검토해 처음에 ‘적합’이라는 글자를 기재한 보고서를 만들었다가 나중에 삭제해서 제출했다. 태스크포스 회의는 최종적으로 ‘재등록 부적합’ 결론을 내렸다. 안전관리원 검증의 신뢰성에 의문이 가는 대목이다. 당시 회의에 참석한 오희택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시민안전감시위원장은 “제출된 자료를 보니 기존의 설계 도면보다 장력이 두 배 가까이 늘었는데 그 근거가 없었고 안전율 결과값에 맞추어 숫자를 역산했을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제작 결함이 있는 타워크레인을 신규 장비로 재등록할 수 있게 하려면 지금보다 실효성 있는 안전 검사가 필수적이라고 지적한다. 타워크레인 안전성 문제를 연구하는 안형준 전 건국대 건축대학장은 “국내 타워크레인 상당수가 외국에서 들여와 소유주가 다 닳은 부품을 제대로 고치지 않거나 값싼 부품으로 대체하다 보니 안전 사고가 발생하곤 한다”며 “이런 문제는 타워크레인 설치업자, 정부와 시공회사 책임자가 현장에 모두 와서 구조물을 해체·조립하는 과정을 면밀하게 살펴봐야만 걸러낼 수 있다”고 짚었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원문보기:

https://www.hani.co.kr/arti/society/labor/998230.html#csidxfe697703ea0ae6a983c3a863a17bbf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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