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만 보고 간다는 문 대통령[추천시글]

 

앞만 보고 간다는 문 대통령

2021.05.12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일, 취임 4주년 특별연설 및 출입기자들과의 질의응답에서 “임기를 마치는 그날까지 앞만 보고 가야 하는 것이 우리 정부의 피할 수 없는 책무”라고 말했습니다. 문 대통령은 부동산 정책에 대해 “죽비를 맞고 정신이 번쩍 들 만한 심판을 받았다”고 했지만, 전면적 정책 변화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검찰개혁에 대해서는 “더 완전한 개혁으로 나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남은 1년 동안에도 지금 하는 대로 하겠다는 선언을 한 셈입니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지금까지 해온 일에 큰 잘못이 없으며 지금까지 해온 일을 지금처럼 하는 일관성과 지속성이 중요하다고 믿기 때문일 것입니다. 문 대통령은 “남은 임기 1년이 대한민국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다는 자세로 임하겠다”는 말도 했습니다. 사실 이 말은 무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누가 어떻게 하든 앞으로의 1년이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건 맞습니다.

 

 

​하지만 운전이든 보행이든 앞만 보고 가는 것은 위험합니다. 운전을 예로 들면 전방 주시를 태만히 하면 안 되며 뒤도 돌아보고 좌우를 살피면서 차간거리를 지키고, 과속 신호위반 차선위반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더러는 보행자와 버스, 교통약자에게 양보도 하면서 다른 차의 끼어들기와 사고에 대비한 방어운전을 생활화해야만 안전운전이 가능해집니다. 특히 목적지에 다가갈수록 어떻게 큰길에서 벗어나 종착지에 이를 건지 경유로와 출구를 잘 파악해 길을 잡는 출구전략을 세워야 합니다. 왼쪽을 둘러보고 오른쪽을 곁눈질로 살핀다는 좌고우면(左顧右眄)의 자세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앞만 보고 가는 사람은 고개가 돌아가지 않는 환자일 수 있습니다. 근육이 과도하게 긴장하는 근막통증증후군이거나 목이 변형된 거북목증후군이거나 척추가 좌우로 굽은 척추측만증 환자들은 고개를 돌려 좌우나 뒤를 보기 어렵습니다. 지금 문재인 정부, 아니 대통령의 근육은 매우 경직되고 목은 많이 변형되고 척추는 상당히 굽은 상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신체적인 문제가 아니라 심리적 정신적 문제 때문에 앞만 보려 하는지도 모릅니다. 한동안 하향곡선을 그리던 지지율이 최근 다시 올랐습니다. 한국갤럽의 지난 4~6일 조사에서 문 대통령에 대한 긍정평가는 전주보다 5%P 상승한 34%를 기록했습니다. 취임 4년차 지지율은 노태우 12%, 김영삼 14%, 김대중 33%, 노무현 16%, 이명박 24%였습니다. 문 대통령은 어느 대통령보다 취임 4년차 지지율이 높습니다. 2016년 12월 탄핵소추안 가결로 직무 정지돼 평가가 중단된 박근혜 대통령의 경우 콘크리트 지지층이 있다고 했습니다. 문 대통령에게는 그보다 더 단단하고 굳센 다이아몬드 지지층이 있습니다. 그러니 목에 힘이 들어가고 고집이 강해지는 거겠지요.

 

 

문 대통령이 장관 후보자 3명에 대한 청문보고서를 보내달라고 국회에 다시 요청한 것도 그런 자세 때문일 것입니다. 5선 중진인 더불어민주당 이상민 의원이 임혜숙(과기부) 박준영(해수부) 두 후보자 임명을 반대하고 나설 만큼 당내 기류가 달라져가고 있지만, 대통령은 생각을 바꾸려 하지 않습니다. 여야의 청문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았는데도 임명 강행한 장관급 인사가 벌써 29명인데 3명쯤 더 한다고 무슨 탈이 나겠습니까?

 

​앞만 보고 가더라도 주의가 산만하지 않으면 큰 사고는 막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의 직진은 휴대폰을 들여다보느라 고개를 숙인 채 걸어가는, 이른바 디터우(低頭)족을 연상케 합니다. 앞에 무슨 장애물이 있는지, 길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건널목인지, 빨간 신호등인지 전혀 알려고도 하지 않은 채 보고 싶은 것만 들여다보는 디터우족은 남들에게 불편하고 본인은 위험합니다. 아니, 남들도 위험하고 본인도 위험합니다.

 

​문 대통령의 분신이라 해도 좋을 탁현민 청와대 의전비서관이 대통령 회견 하루 전날 스스로 ‘통치 4년’을 회고하는 글을 올린 것도 놀랍습니다. 그는 맹자의 ‘관해난수(觀海難水· 바다를 본 사람은 함부로 물을 말하지 않는다. 정확하게는 觀於海者難爲水)‘를 거론하며 문재인 정부에 대한 비판을 맞받아쳤습니다. 이 말은 바다를 본 사람은 그러지 못한 사람과 물에 대해 말하기 어렵다는 뜻으로, 맹자가 공자를 칭송한 표현입니다. 그러니까 탁씨는 “너희가 바다를 알아? 같이 말 못하겠으니 입 닥쳐”라고 한 셈인데, 비서 신분인 사람이 이런 말을 한 게 놀랍고 자신을 바다를 본 공자로 만든 건 더 놀랍습니다.

 

 

앞으로 1년, 문재인 정부 사람들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저 큰 인명사고가 나지 않기를, 그들이 맡아서 운전하는 우리의 차량이 회복 불능으로 망가지지만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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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임철순(任喆淳)

한국일보 편집국장 주필, 이투데이 이사 겸 주필 역임. 현재 미디어SR 주필, 한국언론문화포럼 회장. 한국기자상 삼성언론상 등 수상. 저서 ‘한국의 맹자 언론가 이율곡’, ‘손들지 않는 기자들’, ‘노래도 늙는구나’, ‘내가 지키는 글쓰기 원칙’(공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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