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는 내 마음의 거울[추천시글]

 

 

제자는 내  마음의 거울

2021.05.03

 

5월에는 스승의날이 있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1964년 5월 26일에 ‘스승의날’을 제정·선포했고, 그다음 해인 1965년에 세종대왕의 탄생일인 5월 15일로 날짜를 바꾸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작금의 우리 사회는 스승에 대한 존경심이 사그라진 지 오래인 듯합니다. 스승의날이 가진 본연의 의미 또한 무색해져서 심지어는 ‘스승의 날 무용론’이 대두하고 있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우리의 고유하고 훌륭한 사회정신이 많이 손상된 것입니다.

 

1950년대 말엽, 독일에서 공부할 때의 일입니다. 하루는 독일 친구의 집을 방문해 주말의 한가로운 시간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이런저런 대화 도중 친구의 모친이 현직 중학교 교사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필자는 존경의 마음을 담아 한국에는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다고 얘기해주었습니다. (실제로 필자는 학창 시절 그런 얘기를 들으며 성장했습니다) 필자의 말에 친구의 모친은 매우 놀라워하면서도 기쁜 표정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함께 있던 친구의 여동생이 갑자기 “와우, 너무 감동적이야!” 하며 손뼉을 쳤습니다. 알고 보니, 그녀는 모친의 뒤를 이어 교사가 되는 게 꿈이라고 했습니다. 아마도 그래서 더욱더 필자의 말이 가슴에 와 닿았던 모양입니다. 여하튼 그날 이후로 ‘스승의 그림자’ 이야기는 우리 동기생들 사이에서 무슨 ‘한국의 신화’처럼 회자되었습니다. 속된 표현으로 필자와 한국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건 분명 동양의 작은 나라에 보내는 ‘따듯한 마음’이었습니다.

 

그리고 몇 년 후 귀국했을 때 스승께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자네도 알겠지만, 내 밑에서 성장한 제자가 한둘이 아니며, 그들이 독일 여러 대학에서 학자로 명성을 날리고 있지 않은가? 그건 분명 나의 보람이며 자랑이지. 그러나 자네는 그 누구보다 내 마음에 간직한 으뜸 보석일세.” 참으로 벅찬 격려의 말씀이었습니다. 스승에게서 받은 보살핌이 너무도 컸기에 당혹스럽기까지 했습니다.

 

스승의 은혜를 절감한 에피소드가 있어 소개합니다. 마르부르크(Marburg) 대학 피부과학교실에 입문하도록 적극적으로 권하셨던 시렌(Carl Georg Schirren) 주임교수님이 급성 간암으로 갑자기 별세하셨습니다. 전문의 과정 초년생 때 일입니다. 졸지에 스승을 잃고 당혹스러워할 때 괴테(Goethe) 대학교 피부과학교실 주임교수님에게서 연락을 받았습니다. 작고하시기 전에 시렌 교수님이 동료인 나제만(Theodor Nasemann) 교수님에게 특별히 당부한 결과였습니다.

 

비교적 훈훈한 분위기에서 인터뷰가 진행되는 가운데, 문득 나제만 교수님이 피부과 전문의 과정 이후 어떤 사회적 역할을 하고 싶으냐고 질문하셨습니다. “능력과 여건이 허락하면, 연구와 교육 분야에서 성장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교수님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내일이라도 당장 오라고 하셨습니다. 인터뷰는 그렇게 끝났습니다. (훗날 듣기로, 28번째 대기 명단에 있었답니다.)

 

나제만 교수님의 문하생으로 근 1년이 지날 즈음, 엄청난 갈등과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동안 수련의로서 이런저런 작은 논문을 과제로 받았습니다. 그리고 물론 열심히 논문을 작성해 제출했습니다. 그런데 문득 능력에 한계를 느끼며 회의감이 몰려왔습니다. 그래서 작심하고 주임교수님과의 면담을 청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교수님, 저는 아무래도 교수의 길(Akademische Laufbahn)을 포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정작 필자는 담담하게 말하는데, 교수님은 매우 놀라워하며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동안 서너 편의 임상 보고서를 작성해 제출했지만, 그 과정이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A4 용지 8~10매 정도 분량의 논문 한 편을 작성하는 데 거의 열흘 동안 밤을 새워 끙끙거려야 했습니다. 그런 저간의 사정을 말씀드리고 “앞으로 교수가 되려면 수많은 논문을 써야 하는데, 부끄럽지만 도저히 제 능력으로는 감당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라고 솔직하게 제 심정을 털어놓았습니다.

 

주임교수님이 차분히 물었습니다.

“논문을 작성하기 어려운 이유가 독일어 때문인가?” 잠시 생각하곤 “문장 자체가 어려운 게 아니라 적절한 표현, 알맞은 낱말이 떠오르지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라고 실토했습니다. 그러자 앉은 자리에서 일어난 교수님이 곁으로 다가와서는 필자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씀하셨습니다. “그간 자네가 작성한 ‘임상 사례 보고서’를 유심히 살펴보았는데, ‘수식어’가 없는 특징을 보았네. 담백한 문장은 큰 장점이지 단점이 아니네. 그걸 견지하는 게 좋을 것 같네.” 그러면서 학술 논문이 너무 서술적이면 오히려 해롭다며 용기를 주셨습니다. 참으로 따듯한 스승의 격려였습니다.

 

 

돌이켜보면, 오늘까지 국내외 교육계라는 큰 울타리에서 함께 숨 쉴 수 있도록 힘과 계기를 마련해주신 분은 바로 큰 스승 나제만 교수님이라 생각이 듭니다. 스승의날이 다가오는 요즘 다시금 그분의 은혜를 절감하는 이유입니다.

 

또한 결코 짧지 않은 삶 동안 여러 훌륭한 스승을 모실 수 있었던 필자는 큰 복을 누린 셈입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여러 제자의 스승이기도 하다는 사실이 새삼 떠오릅니다. 많은 훌륭한 스승을 모실 수 있었던 ‘스승 부자’이면서 ‘제자 부자’이기도 하다는 생각에 행복과 자부심이 마음에 차오릅니다. 스승으로 지켜보는 제자가 많이 있다는 사실이 무거운 책임감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여태껏 ‘제자는 내 마음의 거울’이라는 생각을 잊지 않으려 노력해왔다고 자부합니다. 그렇기에 혹시 우리 사회에서 조금의 누라도 끼친다면 많은 제자가 얼마나 부끄러워할까 조심스럽습니다. 스승의날을 맞이해 우리 모두 제자의 마음으로 스승을, 스승의 마음으로 제자를 돌아보았으면 합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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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이성낙

뮌헨의과대 졸업. 프랑크푸르트대 피부과학 교수, 연세대 의대 교수, 아주대 의무부총장 역임.

현재 가천대 명예총장, 전 한국의ㆍ약사평론가회 회장, 전 (사)현대미술관회 회장,

(재)간송미술문화재단 이사

자유칼럼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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