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고발] 우리 애도 차라리 조금 늦게 맞을 걸....50대 아버지의 슬픔

 

 

“이젠 20대는 AZ 안 맞는다면서요.

우리 애도 차라리 조금 늦게…”

 

 수화기 너머 50대 아버지는 말끝을 잇지 못했다. 그의 20대 아들이 병원 일을 늦게 시작했다면 지금의 불행이 피해갔을지도 모른다는 회한 때문이었다. 아들 김호영(가명·26세)씨는 지난달 4일 정오에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을 맞았다. 이후 거동이 힘들어졌다. 부자는 AZ 백신 접종 때문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정부와 병원 누구도 속 시원한 설명을 해준 적이 없다.

 

백신 접종 후 이상증세가 나타나 경기도 안양의 한 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은 호영씨. 사진 김모씨 제공

 

아버지 김모(53)씨는 거동이 힘든 아들을 데리고 병원을 전전하고 있다. 재활병원 작업치료사였던 호영씨는 지난달 4일 AZ 백신을 맞은 뒤 의식이 오락가락하다가 양팔과 다리가 강직됐다. 지금은 제대로 서지 못한다. 김씨는 “기저질환이 없는 아들은 백신 접종 1달 전 건강검진에서도 이상이 없었다. 백신을 접종한 뒤 이상증세가 왔고 지금도 재활치료를 받고 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백신을 맞기 전 “맞아야 할까” 잠시 고민하다가 원칙을 따르겠다던 아들 모습을 생각하면 더 울화가 치민다고 했다.

 

 

사회생활 열흘 만에 백신 맞아

호영씨는 지난 2월 경기도 안양시 한 재활병원에 작업치료사로 취직했다. 뒷바라지해온 부모님의 짐을 덜어주기 위해 ‘졸업장 잉크도 마르기 전에’ 직장을 구한 효자였다. 뇌졸중·척수손상 등 중추신경계 환자들의 사회 복귀를 돕는 직업이었다.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지 열흘째인 지난달 4일 정오쯤 호영씨는 직장에서 AZ 백신을 맞았다. 재활병원 근무자였기에 우선 접종 대상이 됐다.

 

그날 밤 호영씨는 구토와 발열 증세에 시달렸다. 병원 응급실에 실려 갔고 안양의 한 종합병원에 입원했다. 병원에서는 호영씨의 증상이 상세 불명의 뇌염, 척수염 및 뇌척수염으로 보인다고 했다. 담당 교수는 “백신과의 연관성에 대해 검토가 필요하다”는 취지의 소견을 내놓았다. 아들은 팔다리의 70~80%를 제대로 쓰지 못했다. 아버지는 생업을 멈추고 곁을 지켰다. 보름간 약물치료를 받았다. 오른쪽 종아리는 여전히 떨리고 홀로 걷기가 버겁다. 재활전문 병원에 가야 한다는 병원 측 의견을 듣고 퇴원했다.

 

지난달 16일 입원중이던 병원에서 진단한 호영씨의 증세. 사진 김씨 아버지 제공

 

 

당국 “백신과 관련 없다”는 답변만

호영씨는 지난달 말부터 재활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고 있다. 아버지는 여전히 아들이 탄 휠체어를 끌고 수도권의 여러 종합병원을 오간다. 아들을 낫게 할 방안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실낱같은 기대에서다. 그 사이 병원비는 눈덩이처럼 불어 1500만원이 넘었다.

 

건축현장 소장으로 일하는 아버지는 버거운 병원비를 지원받을 길이 있는지 보건당국에 문의했다가 다시 한번 상심했다. 질병관리청은 인천시를 통해 “백신과 인과성이 없다”는 답변을 전해왔다. 시간적 선후 관계는 있지만, 척수염이라는 원인병명이 불명확해 백신 접종과 연관 있다고 볼 수 없다는 설명이었다.

 

한 달 뒤 20대 AZ 접종 중단한 정부

호영씨에게 원인 불명의 병마가 덮친 지 한 달여가 지난 7일 정부는 AZ 백신 접종을 잠시 중단했다. 유럽에서 AZ 백신을 맞고 희귀 혈전이 발생하는 사례가 잇따랐기 때문이다. 정부는 논의 끝에 지난 12일 국내 AZ 백신 접종을 재개하면서 30세 미만은 AZ 백신을 맞추지 않기로 했다. 

 

‘30세 미만은 백신 접종으로 인한 이득이 희귀혈전증으로 인한 위험보다 크지 않다’는 판단이었다. 가디언지에 따르면 영국 정부가 AZ 백신 접종으로 얻는 이득과 부작용의 위험도를 따진 결과, 20대에선 접종의 이득이 0.8이었고 위험이 1.1이었다. 20대는 AZ 백신 접종으로 잃는 게 더 많다는 의미다. 60대는 이득은 14.1, 위험은 0.2였다. 한국 보건 당국도 같은 입장이었다.

 

호영씨가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 사진 김씨 제공

 

‘그렇다면, 내 아들은?’  이익이 0.8이고 위험이 1.1인 일을 아들에게 시킬 아버지가 있겠는가. 그걸 몰랐다가 알게 된 불과 한 달 사이, 호영씨는 제대로 걷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김씨는“대통령과 백신을 믿었는데…”라고 흐느꼈다. 대통령이 책임지고 백신을 맞으라고 한 만큼 지원책도 마련해야 한다면서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국무회의에서 “어떤 백신이든 백신의 안전성을 정부가 약속하고 책임진다”고 했다.

 

 

‘갑작스럽게 바뀐 30세 이하 백신 정책에 아들의 운명이 엇갈린 것이라면….’ 아버지는 대통령과 정부, 그리고 정책 앞에 한없이 작은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부를 믿고 맞았는데, 절망한 저에게 되돌아온 답은 ‘인과성이 없다’는 거였습니다. 이렇게 외면하는 게 말이 되나요”라고 아버지는 절규했다. 동시에 “몸이 안 좋은 아이의 마음에 상처를 더 주고 있는 거다”라고 병상의 아들을 염려했다. 이 사회의 또 다른 아들들을 위해서라도, 끝까지 대책을 요구하겠다는 게 아버지의 생각이다.

 

한편, 방역 당국 관계자는 “백신 접종 인과성과 관계없이 복지 차원에서 선지급 후 심의해서 진료비를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고 있다”라고 말했다.

심석용 기자 shim.seokyong@joongang.co.kr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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