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목공학이란 이름 - 김재영 서울대 건설환경종합연구소장

 

 

  중학교 동창 중에 김정일이 있었다. 

 

우리가 태어났을 때는 그 이름이 전혀 주목받는 이름이 아니었지만 중학교 시절 이미 그의 별명은 '지도자 동지'로 굳었고, 반공이 국시였던 때라 학교 생활에는 애로사항이 만발했다.

 

 

다행히 그 친구는 비뚤지 않게 성장하였고 법원의 도움을 받아 이름도 바꾸었다. 이름이나 명칭은 무엇일까. 유아 사망이 많을 때는 아이가 태어나면 오래 살라는 염원을 담아 이름을 짓기도 하고, 천하게 불려야 귀하게 된다고 험한 이름으로 부르기도 했다. 사물이나 제도의 명칭은 실체와 내용에 대한 이미지를 연상시키고, 역할이나 위상이 이름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 '국민학교'는 '초등학교'에 비해 전체주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국민학교를 다녔던 세대도 이제 초등학교란 이름에 더 친숙하다. 유해 미세입자인 '미세먼지'도 먼지라고 부르니 위험이 덜 심각하게 느껴진다.

 

 

대학에 진학해서 한동안 의아스럽게 생각한 이름이 있다. 토목(土木), 땅과 나무. 뭔 학과 이름이 이런가. 영어로는 Civil Engineering이다. 우리말로 번역하기 난망하다. 공학은 국방과 전쟁을 목적으로 시작되었고, 축적되고 발전한 기술이 민간에 확산 적용되면서 군사공학(Military engineering)에서 Civil Engineering, 즉 민간용 공학이 기원하였다.

 

이렇게 시작된 Civil Engineering은 기계공학, 화학공학, 전기공학 등으로 분화되었다. 공학의 분화는 정보공학, 환경공학, 금융공학, 교통공학, 생태공학 등으로 지금도 진행형이다.

 

서양의 과학기술이 쏟아져 들어오던 시절 듣도 보도 못한 문물과 제도에 이름을 붙인 당대 동양 선각자들의 조어 능력은 경이롭다. 서구 언어들과 달리 의미를 고려해 한자로 전문용어를 만드는 건 대단히 어려운 작업이었을 것이다. 이미 분화가 이루어진 공학이 유입된 근대 동양에서는 Civil Engineering을 기계공학, 화학공학, 전기공학 등과 동등한 독립된 하나의 공학 분야로 인식하고 고대 중국 문헌에서 '土木'이란 용어를 찾아내 이름 붙였을 것으로 추론한다. 설계와 시공이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 동양적 현실이 반영되어 사람이 사는 구조물을 다루는 건축과 사람이 살지 않는 구조물을 다루는 토목으로 구분하지 않았을까 싶다. 선각자들의 숙고에도 불구하고 Civil Engineering의 의미와 역할을 충분히 담아내지는 못한 '토목공학'이란 이름은 많은 아쉬움이 있다.

 

 

더욱 안타까운 점은 사회기반시설을 설계시공하고 유지관리함으로써 사회의 안전과 편익을 위해 필수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토목이란 이름이 우리나라에서 부정적 의미의 대명사로 전락했다는 점이다. 이 분야의 역할은 폄하되고 해당 분야 종사자들은 상처받고 자존감마저 훼손되고 있다. 세상에 처음부터 나쁜 기술은 없다. 누가 왜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문제다.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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