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당을 견제・심판할 기회를 늘려야 [추천시글]

 

집권당을 견제・심판할 기회를 늘려야

2021.04.20

 

독일의 선거를 참관할 기회가 몇 번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주민의 축제였고 정권을 심판하는 중요한 권리행사 날이라고 느꼈습니다. 1980년대 후반(통일 전) 세계 각국에서 초청받아 온 기자들과 함께 브레멘 시(市이지만 州에 해당하는 지방정부)의 의원 선거운동과정을 지켜보았고, 투표장 참관도 했습니다.

 

입후보자의 TV 토론이 우리와 많이 달랐습니다. 젊은 유권자들을 선거에 동참시키려는 행사였는데요. 장소는 음식점이었고, 지방 방송이 생중계했습니다. 후보자와 방청객이 함께 맥주(일부에서는 한창 인기를 끌던 와인)를 마셨습니다. 방청객은 방송 시작 전 테이블 별로 건배도 했으며 다른 정당 지지자와 춤도 췄습니다. 토론 주제인 근로조건 변경을 놓고는 격돌했습니다. 야당은 전후 최고로 증가한 실업자 문제가 중앙정부의 근로 및 복지정책 실패 때문이라고 맹렬하게 공격했습니다. 집권당은 국제 경기가 저조한 탓이라고 맞받아쳤습니다. 열기가 한참 고조되자 진행자가 밴드에게 연주를 부탁했고, 가수도 나와 노래를 불렀습니다.

 

 

각국 기자들에게는 그들 나라의 상황을 물었습니다. 필자에게도 당연히 차례가 왔습니다. 지방 정부가 있느냐는 질문에 “없다”면서 “독일의 후보와 정당을 따로 선택하는 두 표 제도가 합리적일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인터뷰 직전(음악연주 중) 진행자에게 우리나라 상황을 깊게 말할 수 없다고 미리 양해를 구했습니다. 진행자가 당시 우리나라 상황(그가 독재라고 말함)을 잘 이해하고 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반면 멕시코에서 온 기자는 자기 나라 상황을 신랄하게 비판했습니다. 필자는 소태를 씹는 맛이었고, 다 설명하지 않은 것이 잘 했던 것인지 지금도 가끔 생각납니다.

 

거리유세는 형형색색의 풍선을 든 아이들로 가득 찼습니다. 부모들이 지지하는 정당의 고무풍선을 사주자 끈에 매고 거리를 누볐습니다. 모든 정당의 당직자들이 몰려나와 보행자들과 악수를 했습니다. 우리나라처럼 시끄러운 차량 유세와 요란한 현수막은 없었습니다. 일인 시위 때 손에 드는 크기의 판에 정당과 핵심공약을 적어 길가에 세워두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다음 날 투표장 풍경은 정말 경이로웠습니다. 투표소는 지역 초등학교에 마련되었습니다. 학교가 정당과 정파로부터 가장 공정하게 중립을 지킬 수 있는 장소이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투표장 안은 잔치 분위기였습니다. 커피를 마시면서 담소했고, 투표종사자는 투표가 끝난 유권자와 집안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어느 당 소속이었던가는 기록도, 기억도 없습니다만 참관자에게 두 번째 투표용지(정당을 선택하는)를 얻을 수 있겠냐고 했더니 연필로 견본(Muster)이라고 쓰더니 선뜻 내주었습니다. 무한한 신뢰가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인구 60만 명의 브레멘 시 선거에 전국의 시선이 집중되었습니다. 선거 결과에 따라 연방 상원(분데스라트)의 구성이 바뀔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즉 지방 선거일이 연방 상원 일부의 선거일이었습니다. 연방 상원(현재 69석)은 지방 정부가 파견한 대표들로 구성됩니다. 브레멘도 상원에 3명을 보냅니다. 지방 선거로 중앙정부의 실책을 견제 또는 수시로 심판할 수 있는 제도이지요.

 

​지방선거제도는 우리와 근본부터 다릅니다만 흥미로운 것은 선거일이 지방정부마다 제각각인 점입니다. 해산되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독일 각 지방정부의 다음 선거는 2022년에 니더작센, 2023년에 브레멘, 베를린, 헤센주, 2024년에 브란덴부르크, 작센주, 2025년 함부르크 등에서 열립니다. 이렇게 제각각인 것은 지방정부가 해산되면 곧바로 선거를 하며, 선출된 이들은 4년의 임기를 보장받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지방정부 선거는 항상 중앙정부와 관련된 정치적 의미를 띠고 있습니다. 그러니 제도적으로 중앙정부가 늘 긴장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전직 시장의 추악하고 몰염치한 성추행으로 자리가 비었던(자유칼럼 2020년 8월 10일자 참조) 서울과 부산 시장 보궐선거가 끝났습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국회에 제출한 보궐선거에 필요한 예산은 서울시장 570억 9,900만 원, 부산은 253억 3,800만 원입니다. 이렇게 엄청난 예산을 투입하고도 내년에 또 선거를 해야 합니다. 비용과 시정운영 공백 등 피해가 눈에 보입니다. 광역지방자치단체장도 궐위되면 대통령처럼 즉시 선출되어 4년의 임기를 보장받아야 합니다. 막가자는 중앙정부의 정책을 견제・심판할 수 있어야 올바른 민주제도가 정착될 것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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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신현덕

서울대학교, 서독 Georg-August-Universitaet, 한양대학교 행정대학원, 몽골 국립아카데미에서 수업. 몽골에서 한국인 최초로 박사학위 방어. 국민일보 국제문제대기자, 한국산업기술대학교 교수, 경인방송 사장 역임. 현재는 국민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서독은 독일보다 더 크다, 아내를 빌려 주는 나라, 몽골 풍속기, 몽골, 가장 간편한 글쓰기 등의 저서가 있습니다.

자유칼럼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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