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엔 달력이 없나 [추천시글]

 

대법원엔 달력이 없나

2021.04.15

 

이번 4·7 경부 시장 보궐선거에는 국회의원 재·보궐선거도 당연히 있을 것으로 기대해왔습니다. 여당의 폭주를 견제하기 위해 야당의 의석 한 석이 아쉬운 정치 지형에서 작년 총선 직후부터 당선무효나 선거무효로 이어질 수 있는 120여 건의 4·15 총선 재판에 관심이 컸기 때문입니다. 한 곳도 없었습니다.

 

​당선무효나 선거무효의 소송은 소를 제기할 날로부터 180일 이내에 대법원이 판결하도록 공직선거법이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선거 후 1년이 다 되어가도 단 한 건의 판결도 없다가 첫돌 맞이 기념행사인가요. 4·15총선이 불의하다고 국내외에서 열변을 토해온 KBS 앵커 출신 민경욱 전 미래통합당 국회의원이 인천 연수구 선거관리위원회를 상대로 제기한 선거 무효소송의 첫 변론 기일이 오늘 열린다고 합니다. 변론 기일이란 원고와 피고가 자신의 주장을 밝히는 것이죠. 소 제기는 선거일 후에 한 달 안에 하도록 강제하면서 선거 1주년에 첫 변론을 듣는다는 것이 너무나 우습죠.

 

 

​21대 총선에선 139건의 선거소송이 제기되었고 그중 12건의 소가 취하되어 127건이 진행 중이라고 합니다. 개헌선인 180석의 광기에서 완전히 돌아버린 민심이 이번 서울시장, 부산시장의 보궐선거 결과로 보이는데 대법원이 한 건이라도 4·15총선 관련 판결을 추가했었더라면 정부와 여당이 민심의 소재를 파악하는 데 더 도움을 주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김명수 대법원장의 복지부동이 원인일까요. 이분들은 뭐 때문에 자리를 지키고 계실까 안타깝습니다. 대법원장은 춘천지방법원장에서 대법원장으로 몇 단계를 뛰어 사법 스타덤에 올랐죠. 게다가 국제인권법연구회라는 ‘편향성 판결’ 논란을 부르는 단체의 초대 회장 출신이죠. 경륜으로 보자면,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한일 외교 이슈로 보아 망설인 것 등이 사법 거래 적폐로 찍혀 사법부 수장 출신으로 헌정사상 처음 구속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달리 김 대법원장은 배상을 국내 이슈로만 본 단견으로 외교를 후진이 불가능하게 만들었다는 차이가 있죠. 양 전 대법원장은 중앙선거관리위원장도 역임했고 선거 관리를 잡음 없이 잘 해왔다고 봅니다.

 

​어진 풍모의 김명수 대법원장은 십몇억 원을 들여 공관을 고치면서 웬 손자 놀이터를 설치했고 다 큰 아들 부부의 집 마련을 돕기 위해 관사에 동거시켰다는 구설에 시달렸습니다. 지난해 5월엔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가 사의를 표하자 국회가 탄핵하려는데 정치적인 상황도 살펴야 하고 내가 사표를 받으면 이상해지지 않느냐라면서 권력 3부 주체의 자세를 의심케 하는 발언으로 사의를 저지하여 부장판사를 정치적 탄핵으로 내몰았습니다. 이런 발언을 부인했지만 임 부장판사가 녹취록을 터트리자 가물가물했다는 식으로 자신의 기억력을 핑계로 숨다가 결국 사과했습니다.

 

 

몇 달 전의 이질적인 사례를 정말로 기억하지 못한다면 대법원장으로 부적격이죠. “물러나라, 탄핵한다”라고 야당이 요구해도 요지부동이었습니다. 호의호식하고 법복이 자신을 지켜주는데 그 옷을 벗고 싶을까요? 사실 법관들은 권위주의적인 법복부터 벗어야 한다고 봅니다. 특별히 법관이 법복을 입어야 한다면 국회의원들도 본회의장에서 국회의원 복을 입힐까요? 군인이나 경찰은 특별한 목적으로 작전도 수행하는 조직이므로 통일된 복장으로 피아 구분이 필요하지만,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는 법관이 획일적인 유니폼을 입을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권위는 공정한 판결로 나오는 것이지 단체복에서 나오는 게 아니니까요.

 

​물론 암울한 현실에서도 사법부는 많은 용기를 보여주었습니다. 2013년 1월 "(18대 대선 민주당 후보였던) 문재인은 공산주의자"라는 요지로 언급한 고영주 변호사의 명예훼손 소송에서 “이 같은 주장은 시민이 자유롭게 의견을 표현하는 공론의 장에서 논박을 거치는 방식으로 평가돼야 한다”며 2심의 유죄와 달리 무죄를 선고한 1심 판사, 대통령이 마음의 빚을 졌다고 공언한 살아있는 권력의 상징이었던 조국의 처 정경심에게 4년 실형을 선고한 판사가 그 예일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조국 아들 허위 인턴 활동 확인서 발급 혐의 등으로 기소된 최강욱 의원의 결심 공판을 판사가 몸이 안 좋다며 연기시켰을 거라는 보도도 나왔죠. 교원 채용 뒷돈을 받은 조국 동생에겐 징역 1년을 선고하고 전달책에겐 1년 6월의 더 무거운 형을 선고하기도 했습니다. 청와대 하명 수사와 관권선거 혐의의 송철호 울산시장은 기소된 지 15개월이 되어가는데도 피고로 재판정에 세우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유세장에서 "(문 대통령이) 유일하게 형이라고 호칭하는 사람, 저 하나뿐입니다"라고 지근 거리를 자랑했습니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작년말 전국법원장 회의에서 "갈등과 대립이 첨예한 시기일수록 공정한 재판의 가치는 무겁고, 사법부 독립에 대한 도전이나 위협은 거세지기 마련이다. 그럴수록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당당하게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용기와 사명감을 가지고 의연한 모습으로 재판에 더 집중해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과 전혀 다르다고 볼 일이 또 일어났습니다. 선거 재판에 늑장을 부리다가 자유 시민단체들이 대법관 14명 전원을 선거 소송 고의 지연과 관련한 직무유기 혐의로 형사 고발하는 초유의 사건이 터진 것입니다.

 

​대법원은 사건은 많은데 판사는 부족하다며 엄살을 떨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법원도 선거 전담재판소를 만들어 드릴까요? 선거는 민주주의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음을 눈으로 보는 거의 유일한 정치행사입니다. 선거 소송 재판의 기간을 180일로 명시한 것은 선거 결과의 확정으로 당선자의 지위가 부당하게 흔들리지 않도록 법적 안정성을 부여함과 동시에 불법, 부당하게 그 자리를 꿰찬 사람들은 빨리 끌어내야 한다는 법의 정신을 구현하려는 것이죠.

 

대법원에는 달력이 없나요? 걸핏하면 선출된 권력이라고 뻐기는 문제적 당선자들을 모두 임기 말 근처까지 끌고 갈 작정이 아니라면 대법원은 관련 지역의 재검표와 각종 전자기기를 빨리 검증하고, 왜 수도권 사전투표의 득표율이 본 투표와 달리 여당 후보가 획일적으로 앞섰는지, 왜 선관위는 투표용지에 몇 개의 정보만이 필요한 바코드 대신에 더 복잡한 정보를 담는 QR코드를 인쇄했는지, 개표기에는 왜 통신 기능이 달려있었는지 등 선거에 얽힌 각종 사안을 따져 묻는 소송 제기자들과 시민들의 의문에 종지부를 찍도록 재판을 서둘러야 합니다. 대답이 필요한 음지가 너무 넓어 보입니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Justice delayed is justice denied.)’ 영국의 4선 총리 글래드스턴 경이 19세기에 했던 말을 21세기의 우리 법조인들에게 촉구한다는 게 서글픕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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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김영환

한국일보, 서울경제 근무. 동유럽 민주화 혁명기에 파리특파원. 과학부, 뉴미디어부, 인터넷부 부장등 역임. 우리사회의 개량이 글쓰기의 큰 목표. 편역서 '순교자의 꽃들.현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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