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시글] 화(火)는 화(禍)를 부른다

 

화(火)는 화(禍)를 부른다

2021.04.02

 

요즘 들어 사람들이 화(火)를 잘 냅니다. 가치관이 굳어버린 나이 든 꼰대들만의 관행인가 싶었는데, 꼭 그런 것만도 아닙니다. 젊은이와 어린 아이들도 곧잘 분통을 터뜨립니다. 입에 빗장을 걸고 발이 묶여 재택근무와 화상회의에 짜증이 겹겹이 쌓인 직장인, 장보기가 겁나고 친구 동창모임도 없어져 침묵을 강요당하는 주부,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가 문을 닫거나 비대면 수업에 싫증이 난 아이들까지 벌컥벌컥 분노를 폭발시킵니다.

1년 넘게 심신을 오그라들게 하는 코로나 바이러스 역병이 가장 큰 원인이 아닌가 합니다.

 

2019년 12월 31일 세계보건기구(WHO)에 공식 보고된 이후 지금까지 코로나19 감염증은 전 세계에서 1억2,800만 명 이상이 감염, 280만 명 이상의 생명을 앗아갔습니다. 지구인의 삶을 송두리째 삼킨 재앙, 코로나 팬데믹은 온갖 어두운 미래 전망을 내놓았습니다.

-방역 명분하에 정부의 감시체제가 정당화될 수도 있다.(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저자)

-주식시장의 버블 가능성이 있다.(마이크 오설리번 크레디트스위스 수석 투자책임자)

-계층 간, 국가 간 회복 속도 차로 양극화는 더욱 심해질 것이다.(다니엘 그로스 유럽정책연구센터 소장)

 

 

​이 밖에도 여성 일자리 감소, 악수(握手)와 오프라인 소매업 멸종, 30경(京) 원에 이르는 각국 정부의 부채 등 비관론이 많지만 낙관론도 있습니다.

-직장 동료 아닌 가족의 가치를 재조명하게 된다.(린다 그래턴 런던비즈니스스쿨 교수)

-생명과학과 의료기술의 황금기가 올 것이다.(애스워스 다모다란 뉴욕대 교수)

-유럽 선진국이 더 유능하고 덜 부패했다는 환상은 깨졌다. 미국 없이도 글로벌 경제 통합이 진전된다.(애덤 포젠 미 피터슨연구소장)

 

사람들은 왜 화를 낼까?

눈으로 볼 수 없는 역질이나 석학들의 거창한 미래 예측에 동참할 수 없는 일반인들은 일상의 사소한 부조화에 더 화를 내는 것 같습니다. 엘리베이터에 붙여놓은 층간 소음 줄이기 경고문 중 ‘식탁·탁자 위의 휴대폰 진동 소리’ 대목에 구역질이 납니다. 콩나물시루 지하철에서는 왜 코로나 바이러스가 옮지 않는지 투덜대도 돌아오는 건 쓴웃음뿐이어서 씁쓸합니다. 배달 음식에 ‘확찐자’가 되어 산책삼아 대형 마트에 가보면 북새통인데, 축구장·야구장에선 띄어 앉아서도 치킨 ·라면마저 못 먹게 하다니 이런 게 공정인가 싶어 열이 납니다.

 

 

​옛말에 ‘농민은 땅이 밭이고, 관리는 농민이 밭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전월세, 집값, 땅값 잡겠다고 정부가 철퇴를 휘둘렀는데도 결과는 전국의 부동산 매물 품귀와 가격 상승만 낳았습니다. 서민의 내 집 마련 꿈은 사라지고 일부 공직자만 배를 불렸습니다. 개발 정보, 대출 특권을 악용한 땅 짚고 헤엄치기에 농민은 패가망신하고, 농민의 땅은 관리의 땅이 되어버렸습니다. 윗물은 깨끗한데 바닥이…? 거머리에게 헌혈한 꼴입니다.

직(職)보다 집을 택해 고위직을 내던지는가 하면(김조원), ‘아내가 저지른’ 부동산 투자로 물러났던 자가 국회에 입성하고(김의겸). 경제정의를 외치던 정책 사령탑은 부동산 3법으로 제 발등을 찍었습니다(김상조). 청와대 윗선에서 일어난 일들입니다. 화나게 할 짓들입니다.

 

​코로나가 하늘의 재앙이라 체념하고 건강과 생계 챙기기에 몰두하던 사람들이 보궐선거를 앞두고 목소리를 더 높였습니다. 보이지 않는 적보다 보이는 적이 만만해 보여서일까요?

-“서울시장 보궐선거, 왜 하죠?”(서울시장 위력 성폭력사건 공동대응 단체 캠페인 현수막)

-“(대통령이) 중증 치매환자도 아니고….”(오세훈,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를 비판하며)

-“부산은 현재 3기 암환자와 같은 신세. 수술 잘 하면 충분히 살릴 수 있지만….”(김영춘)

-“주말마다 낚시 가면 어부인가?”(야권·시민단체, 문 대통령 ‘영농 경력’ 11년 주장에)

당사자도 아니면서 나서기 좋아하는 정치판 언저리 사람들은 잽싸게 토를 달았습니다. “암· 치매환자와 가족에게 상처를 주는 발언”이라고. 대통령은 “좀스럽다”고 화를 내고….

 

 

​화(火)는 화(禍)를 부른다고 합니다. 화(火)란 언짢아서 성을 내는 것, 화(禍)는 재난과 재앙을 일컫습니다. ‘홧김에 서방질한다’ '홧김에 살인한다‘ 는 속담도 있지만 욕심과 울분을 참지 못하고 일을 저지르면 치도곤(治盜棍)이나 감방이 기다릴 뿐입니다.

그보다 심한 화(禍)도 많습니다. 설화(舌禍) 필화(筆禍) 사화(士禍)는 입과 글이 빌미가 된 화입니다. 설화(雪禍)나 수해(水害) 한해(旱害·寒害) 화재(火災) 풍재(風災) 지진(地震)은 자연이 내리는 화입니다.

 

화(火)의 폐해는 과학적으로도 구명되고 있습니다. 캐나다의 한 과학자는 악을 쓰며 화를 잘 내는 사람의 입김을 냉각시켰다가 액체로 만들어서 쥐에게 주사했더니 쥐가 3분 동안 발작증상을 일으키다 죽었다고 합니다. 입김에서는 코브라 독보다 강한 맹독성 물질이, 타액에서는 황소 수십 마리를 죽일 수 있는 독극물이 검출되었다고 합니다. 그 독을 없애는 방법은 웃음이라고 하네요.

-내가 웃어야 거울도 웃는다.

-네가 웃으면 세상도 웃는다.

화를 내지도 말고, 화나게 할 짓도 삼가며 살 수 있는 웃음 가득한 세상은 언제쯤 올까요?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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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김홍묵

경북고,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동아일보 기자, 대구방송 이사로 24년간 언론계종사.  ㈜청구상무, 서울시 사회복지협의회 사무총장, ㈜화진 전무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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