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시하며, 감시당하며, 분을 삭이는 사회 [고영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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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시하며, 감시당하며, 분을 삭이는 사회

2021.03.10


1.
예전에 어느 방송에 ‘한적한 시골길에 건널목을 만들고 신호등을 달고, 빨간 불일 때 자동차가 서서 기다렸다가 가는지’를 지켜보는 방송물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신호를 잘 지키는 운전자가 있으면 달려 나가 ‘당신 참 좋은 운전자’라고 치겨세워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때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부분 신호를 지키지 않고 지나는데, 꾹 참고 지키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니 본받으라는 뜻이겠습니다. 교통 신호등을 다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규칙을 지키는지를 시험하는 도구가 아니라, 안전하게 운전하게 하는 수단입니다. 차도 사람도 별로 다니지 않는 곳에 신호등을 달아 저어 멀리서 감시한다, 이게 교통 안전에 도움이 될까요? 그것보다는 깜박등을 달아주는 게 통행과 안전에 도움이 되겠지요. 만약, 방송제작진 대신에 감시장치가 지키고 있었다면 어땠을까를 상상하니 오싹해집니다.

2.
요즘에는 교통규칙을 위반하는지는 주로 기계장치가 잡아내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이른바 카파라치제도가 있었습니다. 시민이 교통규칙을 위반하는 것을 신고하면 포상금을 주는 것이었죠. 이게 돈벌이가 된다 하여, 증거를 모으는 방법을 가르치는 학원도 번창했습니다. 서초구청 근처 고속도로가 시작되는 언덕 위에는 고성능 사진기를 지닌 사람들이 진을 치고 먹이를 기다리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교통 위반 신고제가 교통안전을 위한 것이었을까, 아니면 일자리 만들기였을까요?

 

 

3.
최근에 일하러 5명이 외부로 움직인 적이 있었습니다. 점심때가 되어 한 음식점에 들어서면서 5명이라 하니, 주인이 기겁하듯이 손을 절레절레 흔들면서 나가라 합니다. 2명, 3명이 나눠 앉겠다고 했더니, 여기저기 자리가 충분한데도 안 된다고 합니다. 우리 5명이 들어오는 것을 여기 있는 사람들이 봤다면서(그런데도 자리에 앉히면 신고할 것이고, 그러면 나는 큰일이다. 이런 뜻이겠지요) 나가라 합니다. 그렇게 쫓겨 나왔습니다.
5명이 모이지 말라는 기준을 정한 목적은 무엇입니까? 코로나바이러스가 확산하는 것을 막자는 목적이겠지요. 그렇다면 기준은 목적에 맞게 합리성 있게 정하고, 그걸 지키야겠지요.
저 주인의 몸짓은 방역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신고당해서 받을 불이익에 몸서리치는 모습입니다. 음식점에서 방역은 한 자리에 4명까지 앉게 하고, 자리끼리는 전염을 막을 만큼 거리를 두면 되겠지요. 방역보다는 신고하는 것이 목적이 된 현실에 더 몸서리쳐집니다.

 

4.
제가 사는 아파트는 한 동으로, 지하 1층과 지하 2층에 주차장이 있습니다. 각 층에는 장애인용으로 표시된 주차장이 있습니다. 최근 저는 구청에서 ‘장애인 등 편의법’에서 정한 규정을 지키지 않았다며 과태료 고지서를 받았습니다. 구청은 어느 주민의 신고를 받고 주차위반임을 확인하고 과태료를 매겼다고 합니다.
지하 1층 주차장이 거의 찬 뒤에 지하 2층으로 내려가므로 지하 2층 주차장은 대개 여유롭습니다. 그리고 장애인용 주차장은 승강기 바로 앞에 있습니다. 지하 2층 장애인용 주차 자리는 대개 비어있고, 주민들은 짐이 있을 때, 급한 일이 있을 때 이따금 그 자리에 차를 세우기도 했습니다.
이번 과태료 받은 일로 동네가 시끄러워졌습니다. 우리 동네는 50여 세대가 모여 살고, 주차장은 주민을 위한 공동 공간입니다. 장애인 편의를 위해 주차자리를 따로 만들었으니 장애인을 배려한 것이고요. 주민 자치 공간인데 구청이 나서서 과태료 고지서를 날린 사실이 참 꺼림칙합니다. 잠시 차를 세운 것이라도 법을 위반한 것이니 죄값(?)을 물어야 한다면 할 말은 없죠. 법대로 하겠다고 하면 맞습니다, 맞고요.
이렇게 신고하고, 처벌받고, 누가 신고했는지 의심하고, 그러면서 이웃끼리 반목으로 갈 우려가 많습니다. 구청은 신고를 받았을 때, 관리실로 연락하여, 그곳에 주차하지 않게 미리 막는 게 더 나은 방향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게 주민 자치 정신에 맞고요.

 

 

5.
법이나 제도는 목적에 맞게 만들고, 목적에 맞게 운용해야 합니다. 수단이 목적이 되는 순간에 그 제도는 재앙으로 바뀝니다. 우리 국민들이 머슴인 공무원에게 비싼 돈을 주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좋은 제도로 밥값하라는 뜻이지요. 자기가 해야 할 일을 국민에게 신고하게 하고, 거기에 그 대가로 보상금을 주는 짓을 보면 참 짜증납니다. 당신들 덕분에 웃으면 살게 해달라고 하진 않겠습니다. 그래도 분을 삭이며, 또 삭이며 살아야 하는 세상으로 만들지 말아달라고요.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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