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학의 역할이 창업기지인가" 염한웅 포스텍 교수

 

    최근 몇 년간 국내 선도대학 총장들은 대학 내 창업을 강조하는 대학 혁신을 주장해 왔다. 이전 정부의 창조경제 정책에서 대학발 창업이 크게 강조됐고 현 정부의 혁신성장 정책도 이를 일부 이어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학에 산학협력과 기술이전에 대한 보다 선진적인 플랫폼이 필요하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대학의 본래 역할이 창업의 기지라는 생각은 대학과 국가경제의 경쟁력 확보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주장이다.

 

염한웅 포스텍 교수·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부의장

 

대학의 본래 기능은 사회와 산업에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고 산업의 기초가 되는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전자가 교육이고 후자가 연구다. 하지만 지금 한국의 대학은 사회와 산업에 필요한 높은 수준의 인재들을 적시에 공급하지 못하고 있다. 또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생산하지 못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에서도 대학의 인재육성 기능이 뒤떨어져 있음은 극명하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 분야만 보더라도 인재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대학이 그동안 산업의 새로운 변화에 대응할 인재를 육성하지 못한 탓이다. 미국의 애플이 AI 비서 ‘시리’를 처음 내놓은 2011년 AI의 미래가 분명했는데도 국내 대학은 과연 무엇을 했는지 돌아봐야 한다. 정부와 대학은 2017년이 되어서야 AI 인재 육성의 목소리를 높였지만 10년씩 걸리는 핵심 인재 양성을 뒤늦게 해서 어떻게 AI 선진국을 따라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한국의 대학이 높은 수준의 연구로 세계 경제를 선도할 새로운 지식과 지식재산을 만들어내고 있는지 살펴보면 여전히 부정적이다. 논문과 특허 수는 양적으로 늘어났지만 논문의 질을 나타내는 피인용 수는 세계 33위 수준이다. 세계 대학평가에서 국내 선도대학들은 100∼200위에 정체됐고 중국, 홍콩, 싱가포르 대학들이 선두권으로 약진했다. 연구력만을 평가하는 세계대학평가지표에서 국내 대학 순위는 더 떨어진다.

 

이런 상황에서 더 높은 수준의 논문과 특허를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하는지, 창업을 우선해야 하는지 대답은 자명하다. 미국 하버드대와 매사추세츠공대(MIT) 등 세계 최고 수준의 대학들이 과연 교수들에게 창업을 장려하는지 살펴볼 일이다. 높은 수준의 연구와 새로운 발견은 자연스럽게 사업화 움직임으로 이어지고 혁신기업이 만들어진다. 대학의 연구 수준이 낮아 이전할 혁신기술이 없는 것이 문제인데, 연구 몰입을 장려하는 대신 창업부터 하라는 것은 대학을 발전시키고 국가경쟁력을 확보하는 방책일 수 없다.

 

국내 첨단 주력산업과 기업들을 받쳐주려면 대학이 지속적으로 높은 수준의 인력을 배출하고 미래를 내다보는 투자를 해야 한다.

 

 

급성장하는 창업생태계와 벤처캐피털에도 높은 수준의 인재와 창업의 토대가 될 기초·응용연구의 결과물인 새로운 지식재산을 공급해야 한다. 대학에 창업을 주문하는 것은 우물가에서 숭늉을 찾는 격이다.

동아사이언스

 

http://dongascience.donga.com/news.php?idx=44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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