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칩(驚蟄)에 사랑을 고백하세요 [노경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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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칩(驚蟄)에 사랑을 고백하세요

2021.03.03

 “이 비 그치면/ 내 마음 강나루 긴 언덕에/ 서러운 풀빛이 짙어오것다.// 푸르른 보리밭 길/ 맑은 하늘에/ 종달새만 무에라고 지껄이것다.// 이 비 그치면/ 시새워 벙글어질 고운 꽃밭 속/ 처녀애들 짝하여 새로이 서고// 임 앞에 타오르는/ 향연과 같이/ 땅에선 또 아지랭이 타오르것다.”

시인 이수복(1924~1986)이 예찬한 ‘봄비’입니다. 시인은 봄비가 풀빛을 짙게 할 거라고 말합니다. 봄비에 보리밭 길도 더욱 푸르게 변할 것이라고 노래합니다. 고교 시절 우리 학교 국어선생님이 눈을 감고 자주 읊조리던 시입니다. 그런데 늘 ‘서러운 풀빛’ 구절에선 감았던 눈을 떴습니다. 꾸벅꾸벅 졸던 친구들은 '서러운'만 들리면 두 눈을 부릅뜨고 수업에 집중하는 척했습니다. 저 역시 그 시간이 무척 지루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니 선생님은 광산촌 여고생들에게 낭만과 삶의 여유를 가르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며칠 햇살이 따뜻하더니 삼월 첫날, 전국에 엄청난 눈이 내렸습니다. 특히 강원 영동 지역은 큰 눈에 고속도로 일부 구간이 통제되고, 산간 마을엔 길조차 끊겼습니다. 그래봤자입니다. 눈은 봄볕에 쉽사리 녹아 내렸습니다. 비가 되어 메말라 부르트고 갈라진 땅에 부드럽게 스며들어 싱싱하고 힘찬 기운을 퍼뜨렸습니다. 냉이, 달래, 쑥, 꽃다지 등은 긴 잠에서 깨어나 꼼지락거리고 있습니다. 머지않아 목련이 꽃망울을 터뜨리고, 벚꽃 잎도 휘날릴 것입니다.

산과 들이 기지개를 켜는 모습에 우리 동네 강퍅한 할아버지의 입가에도 웃음꽃이 피어납니다. 카페 창가에 앉아 손편지를 쓰는 이도 눈에 띕니다. 느리게 사랑하는 법을 아는 청춘 같아 괜히 반갑습니다.

내일모레가 경칩(驚蟄)이니, 봄입니다. 어린 시절, 이맘때면 친구들과 개구리 알이나 도롱뇽 알을 찾아 학교 뒤 연화산 계곡을 뛰어다녔습니다. “새봄에 까놓은 개구리·도롱뇽 알이 아픈 허리와 폐에 좋다”는 선생님의 이야기 때문이었습니다. 광부의 자식들은 지하 검은 막장에서 일하는 아버지의 기침소리가 늘 마음에 걸렸거든요. 양동이에 알이 그득한 날이면 목청껏 교가를 부르며 산을 내려왔습니다. “서기 어린 태백의 정기를 받아/푸른 꿈 키우는 우리의 요람…”

그나저나 경칩이 ‘사랑을 고백하는 날’인 거 아시죠? 서양인들이 ‘밸런타인데이’에 달콤한 초콜릿으로 이성에게 사랑을 구했다면 우리 선조들은 경칩 날 마음에 품은 이와 은행을 까 먹으며 사랑을 맹세했답니다.

왜 하필 은행이었을까요? 은행나무는 암수가 가까이 있지 않아도 마주볼 수만 있다면 결실을 맺어 ‘순수한 사랑’을 상징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 선조들은 또 천년을 살아가는 은행처럼 ‘영원한 사랑’을 기원했던 것 같습니다. 1996년 상영돼 큰 감동을 일으켰던 ‘은행나무 침대’가 생각납니다. 천년의 사랑을 담은 애틋한 영화입니다.

조선 세조 때 문신 강희맹도 <사시찬요(四時纂要)>에 경칩 날의 풍경을 기록했습니다. “경칩 날 남녀가 마주보면서 은행을 깨 먹었다. 또 처녀 총각들은 이날 날이 어두워지면 동구 밖에 있는 암수 은행나무를 도는 것으로 사랑을 증명하기도 했다.”

천년이나 이어지는 지고지순한 사랑을 꿈꾸는 건 지나친 욕심이겠지요. ‘연인의 날’인 경칩에 사랑하는 이와 은행을 까 먹으며 ‘오십년의 사랑’이라도 약속해 보는 건 어떨까요. 오십년도 너무 긴가요?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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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노경아

경향신문 교열기자·사보편집장, 서울연구원(옛 시정개발연구원) 출판담당 연구원을 거쳐 현재 이투데이 부장대우 교열팀장. 우리 어문 칼럼인‘라온 우리말 터’연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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