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를 움직이는 시(詩) 한 편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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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를 움직이는 시(詩) 한 편

2021.02.23

“재산의 절반을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기부하겠습니다.” 지난 2월 8일 카카오 창업자 김범수 이사회 의장의 선언이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갖가지 문제로 휩싸인 한국 사회에 한 줄기 희망의 빛이 되고 있습니다.

언론 보도를 보면 김범수 의장이 약속한 기부 규모는 5조 원 정도라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카카오톡도 하고 카카오택시도 이용하지만 카카오가 그렇게 큰 기업인 줄 미처 몰랐습니다. 소위 인터넷 플랫폼 기업으로서 카카오는 코로나19시대를 맞아 그야말로 폭풍 성장하고 있습니다. 그 시장가치(주가 총액)가 포스코를 능가했다고 하니 나같은 아날로그 형 두뇌로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김 의장의 약속이 현실화된다면 한국 부자들의 기부 문화에 새로운 이정표가 될 것입니다.

무엇이 김범수 의장으로 하여금 재산 절반을 기부하도록 유발했을까요? 언론은 갖가지 이유를 얘기합니다. 그러나 그의 기부 행위의 동기와 스타일은 지금까지 대기업으로 돈을 크게 벌었던 소위 재벌 총수의 사회 환원 방식과는 다른 것 같습니다. 김 의장이 카카오 임직원들에게 보낸 메시지를 보면 그의 마음을 개략적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격동의 시기에 사회문제가 다양한 방면에서 더욱 심화되는 것을 목도하며 더 이상 결심을 늦추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재산의 절반 이상을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기부하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용할지는 이제 고민을 시작한 단계이지만, 카카오가 접근하기 어려운 영역의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사람을 찾고 지원해 나갈 생각입니다.”
그는 오래전부터 재산의 사회 환원을 생각했다고 합니다. 특히 실리콘밸리 IT기업가들이 자선재단을 만들어 사회에 선한 사업을 하는 것이 영향을 주었을 것입니다. MS를 창업하여 한때 세계 최고 부자로 평가받던  빌 게이츠가 재단을 만들어 제3세계 사람들의 질병문제를 해결하고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것은 21세기 억만장자들의 돈 쓰는 모델이 되고 있습니다.

중앙일보의 기사에 의하면 김범수 의장이 큰 기부를 결심하게 된 심적 바탕에는 시 한 편이 있었다고 합니다. 19세기 미국 시인 랠프 왈도 에머슨의 시 ‘무엇이 성공인가’(What is success)입니다. 김 의장은 이 시를 자주 읽고, 또 시구에서 차용하여 “내가 태어나기 전보다 더 나은 세상을 꿈꾸며’라는 카카오톡 메시지를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성공인가’는 참 소박하게 성공 얘기를 시작합니다.

“자주 그리고 많이 웃는 것.
현명한 이에게서 존경을 받고
아이들에게서 사랑을 받는 것.
정직한 비평가의 찬사를 듣고
친구의 배반을 참아내는 것
아름다움을 식별할 줄 알며
다른 사람에게서 최선의 것을 발견하는 것
건강한 아이를 낳든
정원을 가꾸든
사회 환경을 개선하든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
자신이 한때 이곳에 살았음으로 해서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성공이다.“

랠프 왈도 에머슨(1803~1882)은 19세기 중반 미국인들을 타락시키는 종교와 정당정치를 개탄하고 인간은 자존하고 독립적이어야 한다고 부르짖으며 낭만주의 운동을 선도했던 시인이자 사상가입니다.

한국은 성공을 추구하는 사회입니다. 한국만 아니라 인류 사회가 다 그럴 것입니다. 돈 많이 벌고, 사회적 지위가 높아지고, 더 많은 권력을 쟁취하고, 이런 것들이 모아져서 많은 사람으로부터 부러움을 사는 것이 성공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이 시에서 에머슨이 말하는 성공은 소소하고 소박해 보입니다. 자주 많이 웃는 것, 한 뙈기의 정원을 만드는 게 성공이라니 성공은 먼 데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시에 흐르는 사상은 세상으로부터 많이 얻어내는 것보다는 세상에 무엇을 주는 것이 성공의 조건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그래서 각양각색의 사람들에게 나름의 의미를 주고 동기를 유발하는 것 같습니다. 한국의 신흥부자 김범수의 이상도 이 시의 영향을 받았을 거라고 생각해 봅니다.

에머슨의 시 ‘무엇이 성공인가’는 미국 부자들에게도 큰 영향을 주는 것 같습니다. 당연히 본 고장 사람들이니까 더 큰 영향을 받을 것입니다.
1982년 미국 댈러스의 어느 고등학교 졸업식에서 수석의 영예를 안은 한 여학생이 졸업 연설에서 “자신이 한때 이곳에 살았음으로 해서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 이것이 행복이다”는 에머슨의 마지막 시구를 인용했습니다. 에머슨의 시가 너무 마음에 와 닿았기 때문입니다.
그 여학생이 지금은 MS 창업자 빌 게이츠의 부인 멀린다 게이츠입니다. 그녀는 남편과 더불어 세계 최대의 자선단체 '빌&멀린다게이츠 재단'의 공동대표로 자선사업 활동을 하며 제3세계, 특히 아프리카 아이들의 질병 예방과 치유에 엄청난 돈과 마음을 쏟고 있습니다.
최근 그녀는 신문 인터뷰에서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기부와 봉사의 정신은 고등학교 때부터 좋아했던 에머슨 시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고 술회했습니다. “에머슨의 시가 지금도 내 귓전에 생생히 남아 있고, 그 구절이 내가 정의하는 성공"이라고 털어놨습니다.

읽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성공이 어마어마한 담론이 아니라 소소하고 소박한 의지로 세상을 보다 살기 좋게 만드는 것도 성공이라는 지혜를 깨닫게 해줍니다. 김범수 의장도 돈을 잘 써야 성공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에머슨의 시 한 편이 부자들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사실이 감동적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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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김수종

‘뉴스1’고문과 ‘내일신문’ 칼럼니스트로 기고하고 있다. 한국일보에서 32년간 기자생활을 했으며 주필을 역임했다. ‘0.6도’ 등 4권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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