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필에도 오행이 있다.[박종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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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필에도 오행이 있다.

2021.02.05

올 신축(辛丑)년은 왜 하얀 소의 해로 불릴까요? 그리고 황금 돼지는 뭐고 검은 호랑이는 또 뭘까요? 이것은 한문 시간 때 배웠던 갑을병정(甲乙丙丁)으로 시작하는 십간(十干)과 오행(五行)의 기초 적인 내용을 알면 쉽습니다. 십간 중 성질이 급해 맨 앞에 있는 갑을(甲乙)은 오행 중 가장 빠른 목(木)에 해당합니다. 목은 나무와 가장 많이 닮았습니다. 나무는 푸르니까 파랑입니다. 다음 병정(丙丁)은 화(火)입니다. 불은 당연히 빨강이겠죠. 참! 갑을, 병정 이렇게 묶은 것은 같은 성질이고 앞의 것이 양(陽) 뒤의 것은 음(陰)이기 때문입니다. 딱 중간에 있는 무기(戊己)는 토(土). 모든 것을 감싸고 받아들여 연결하는 성질의 흙입니다. “하늘 천 땅 지 검을 현 누를 황” 천자문 맨 앞에 나오는 것처럼 땅은 황. 노랑입니다. 무겁고 딱딱한 경신(庚辛)은 금(金). 돌과 쇠붙이들로 색깔은 하양입니다. 언뜻 금속하면 황금빛 노란 금이 떠올라 노랑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황금(gold)은 극히 예외적인 것으로 쓰임이 가장 많은 철과 알루미늄을 보면 은색 즉 흰색입니다. 마지막 임계(壬癸)는 수(水). 물입니다. 색깔은 검정입니다. 저는 검정을 이렇게 이해했습니다. 하늘은 검고 그 하늘에서 내린 비(雨)는 물. 깊은 물은 푸르다 못해 검게 보여 그런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러므로 신축년의 신(辛)은 금. 흰색. 축(丑)은 소. 하얀 소가 됩니다
. 검은 호랑이는 어떻게 나왔을 까요. 내년은 임인(壬寅)년으로 임(壬)은 수. 물은 검정, 인(寅)은 호랑이. 이렇게 된 것입니다. 내친김에 살짝 더 들어가면 봄은 목, 여름은 화, 가을은 금입니다. 가을이 금인 것은 열매가 단단해져 익는 계절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겨울은 수입니다. 토는 중간 중간에 있는 환절기입니다. 또 우리 몸에 있는 쓸개는 목, 소장은 화, 위는 토, 대장은 금, 방광은 수입니다. 억지 같다고요. 모두 책에 있는 것들입니다. 억지는 다음 줄 부터 펼쳐지는 제가 지어낸 만년필 이야기입니다.

만년필도 음과 양이 있습니다. 뚜껑이 음, 펜촉이 있는 몸통이 양입니다. 1880년대에 등장한 초기 만년필들은 뚜껑은 초라했습니다. 음이 심하게 부족한 불균형 상태였습니다. 장식 하나 없이 그저 펜촉이 마르는 것을 방지하고 충격을 보호하는 역할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모양을 보면 연필심을 보호하려고 연필에 깍지를 씌어 놓은 모양이었습니다

이런 불균형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1890년대 초부터 뚜껑은 변화되기 시작하여 1900년대 초반 클립(셔츠에 꽂을 수 있도록 만들어진 금속 고리. 가장대표적인 것이 파커社의 화살클립입니다. )이 생기고, 몇 년 후 잉크가 새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돌려서 잠그고 여는 나사식 뚜껑도 등장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뚜껑은 길고 커졌습니다.

1900년대 초 만들어진 스완 만년필

아직 펜촉이 달린 몸통에 비해 화려함이 부족했습니다. 화려함은 1920년대 후반에 채워졌습니다. 챔피언 벨트처럼 굵은 밴드(band, ring으로도 불리는 금속장식)가 여러 모양으로 새로 등장한 몇몇 만년필에 채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음양의 균형을 이루게 된 것이지요. 그렇다면 뚜껑이 꼭 있어야 만년필일까? 아닙니다. 뚜껑이 없는 만년필도 있습니다. 이른바 뚜껑이 없다는 뜻의 캡리스(capless) 만년필이 있습니다.

하지만 뚜껑이 있어도 펜촉이 없으면 만년필이 아닙니다. 초창기엔 바늘보다 더 가는 백금선(白金線)를 통해 잉크가 나오는 펜 역시 만년필로 보았으나 요즘은 펜촉이 없어 만년필로 보지 않습니다. 그런 이유로 뚜껑이 있지만 볼펜, 수성펜 등은 만년필이 아닙니다. 마지막 질문을 드리자면 펜촉이 있으면 모두 만년필일까요? 아닙니다. 오행으로 본다면 펜촉은 금인데 만년필은 금은 물론 나머지 네 개를 갖고 있어야 합니다. 먼저 목입니다. 앞서 말씀 드린 것처럼 계절상 봄이고 봄은 청춘입니다. 만년필은 늘 청춘입니다. 만년필 재질에 가장 우선하는 것이 늘 새것처럼 내구가 좋은 것들입니다. 화는 자동차로 치면 엔진인데 만년필의 엔진은 모세관현상입니다.

뚜껑이 없어  어색해 보이는 캡리스 만년필

 이 모세관현상이 좋지 않으면 만년필은 잉크가 가득차 있어도 몇 줄 못쓰고 뚜껑을 열고 바로 쓸 수도 없습니다. 수는 당연히 잉크입니다. 마지막 토는 어려운데 우리 몸속에 있는 장기 위(胃)를 생각하면 이해가 됩니다. 만년필의 위. 잉크를 저장하는 저장고입니다. 그리고 토는 자기를 포함한 이 다섯 가지를 감싸고 화합하여 갖고 있는 능력의 최대치를 끌어냅니다. 이것은 기계로 할 수 없고 오랜 기간 일한 숙련공의 솜씨에서 나옵니다. 어찌 보면 현대 만년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방금 말한 “토”의 두 번째 성질입니다. 화합의 역할은 잘 보이지는 않고 설명하기도 어렵지만 만년필 회사의 실력은 여기서 판가름 납니
다. 나머지 것들은 밝혀질 만큼 밝혀졌고 공개될 만큼 공개되었기 때문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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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박종진

1970년 서울 출생. 만년필연구소 소장. ‘서울 펜쇼’ 운영위원장.
저서: ‘만년필입니다’, ‘만년필 탐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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