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만두 속 ‘행운’을 먹다 [노경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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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만두 속 ‘행운’을 먹다

2021.02.02

“돈 걱정 없이 살겠네. 내 말을 믿으렴. 하하하~”
중국집을 운영하던 친구 선이 어머니의 덕담입니다. 오래전 설날, 친구네 집에서 만두를 먹다 동전을 씹은 직후였습니다. 중국에서 살다 온 친구네는 설날이면 만두로 운세를 점쳤습니다. 이 만두는 중국 말로 자오즈, 교자(餃子)입니다. 그날 친구는 만두에 땅콩이 들어 있다며 입에서 꺼내 보여주었습니다. “우리 선이는 건강하겠네. 건강이 최고지 최고야” 하시던 선이 어머니의 목소리가 귓가에 생생합니다.

친구네 집 만두에는 건강을 상징하는 땅콩, 부(富)를 가져다준다는 동전과 함께 아름다움의 상징 사탕도 들어 있었습니다. 입맛이 둔한 데다 식탐이 많은 나는 설령 사탕이 들어 있었다 해도 단맛을 못 느낀 채 꿀꺽꿀꺽 삼켰을 겁니다.

미스코리아가 되고 싶었던 현나는 사탕이 든 만두를 찾느라 배가 터지도록 먹고 또 먹었습니다. 아뿔싸. 부의 상징 동전이 초반에 나에게 걸려들자 친구들 사이엔 전투력이 불붙었습니다. 쌀집 주인이 꿈인 홍이는 혼자 한 접시를 다 먹을 판입니다. 한두 개 남았을 즈음 홍이가 신이 나서 소리쳤습니다. “야호~ 동전이다.”

며칠 전 케이블방송 예능 프로그램 ‘다시 보기’에서 중국 ‘복만두’ 이야기를 보며 떠오른 추억입니다. “우리나라엔 ‘만두를 예쁘게 빚으면 예쁜 딸 낳는다’는 속설이 있다. 중국에도 이런 게 있나”라는 가수 홍진영의 질문에 셰프 이연복이 ‘복만두’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이연복은 “중국은 설날에 복만두를 만든다. 만두소에 동전, 대추 등을 넣는다. 동전이 들어 있는 만두를 먹으면 재물이 따른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소개했습니다. 그는 이어 “동전의 액수에 따라 상금을 주는 풍습도 있다. 상금 욕심에 아이들이 너무 과식한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습니다. 순간 친구 홍이랑 현나가 생각나 모처럼 통화하며 깔깔거렸습니다.

만두에 지저분한 동전을 넣는다고? 위생을 걱정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예전에 선이 어머니는 “만두 속 동전은 여러 번 삶았다”며 “치약으로도 깨끗하게 닦았으니 배탈 걱정일랑 하지 말아라”라고 했습니다. 소꿉장난하며 흙도, 고드름도, 눈도 먹던 우리는 아주머니의 말씀을 귓등으로 들었습니다.

홍이는 만두 속 동전을 지금껏 지니고 있답니다. 동전 덕에 꿈꾸던 쌀집 주인이 되었고, 최근엔 3호점까지 냈다며 귀하게 여깁니다. ‘동전 만두’ 덕인지 나도 지금껏 남의 집에 쌀 꾸러 가지 않고 잘살고 있습니다. 선이 역시 마흔둘에 셋째를 낳고 30·40대 젊은 학부모들보다 더 팔팔하게 뛰어다닙니다. 예쁜 현나는 키가 작아 미스코리아가 되지 못했습니다. 만약 그날 사탕이 든 만두를 먹었다면 키가 쑥 자라 꿈을 이뤘을까요? 그러고 보니 ‘만두 운세’가 참 용합니다.

설날 오후가 되면 우리집도 붐볐습니다. 동네 어른들이 토정비결을 보러 왔기 때문입니다. “올핸 뭘 조심해야 할까요? 우리 집 운세는 어때요?” 기대 반 긴장 반으로 아버지 말에 귀 기울이던 아저씨·아주머니들의 표정은 꽤나 심각했습니다. 아버지는 덕담은 큰 소리로, 경고나 주의는 아주 작은 소리로 말했습니다. 동네 어른들이 가고 나면 방문 앞에 청주(淸酒)가 줄지어 있었습니다. 토정비결이 한 해의 길흉화복 예언서로 큰 인기를 끌던 시절 이야기입니다.

최근 설을 앞두고 용하다는 점집이 북적인다고 합니다. 정월은 희망과 걱정이 교차하는 시기이니 그럴 만도 합니다. 빛처럼 빠른 첨단과학 시대라 해도 우리네 미래는 한 치 앞도 알 수 없으니까요.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을 무속인에게라도 위안받고 싶어서겠지요.

점집 주고객이 10·20대라는 사실은 좀 많이 놀랍습니다. 매일매일 운세 사이트에 접속하는 이른바 ‘운세 중독자’들도 이들이 대부분이랍니다. 진학 혹은 취업이 제대로 될지, 실타래처럼 얽히고설킨 청춘의 고뇌가 느껴져 가슴이 답답합니다. 꿈 많은 나이에 점괘 속 신수를 운명으로 받아들이지 않길 바랄 뿐입니다.

운명이 애초부터 정해져 있다면 매일매일의 삶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점과 토정비결은 재미에 그쳐야 합니다. 복(福)을 원한다면 욕심을 줄이고 화를 참고 마음을 너그럽게 가지세요. 매사 최선을 다한다면 미래는 밝을 테니까요.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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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노경아

경향신문 교열기자·사보편집장, 서울연구원(옛 시정개발연구원) 출판담당 연구원을 거쳐 현재 이투데이 부장대우 교열팀장. 우리 어문 칼럼인‘라온 우리말 터’연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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